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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소니

last modified: 2019-11-03 07:43:44 Contributors

Contents

1. 스라소니의 서북 방언
2. 실존인물
2.1. 부정적 서술에 대한 반박
2.2. 매체에서
2.2.1. 야인시대에서의 시라소니
2.2.2.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

1. 스라소니의 서북 방언

실존하는 동물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 참조. 히라소니, 시라손 등으로도 표기되었지만 실제 서북방언 발음은 '시래손이'에 가깝다고 한다.

아래 항목의 이미지와 달리 이북지역에선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표현되며 '범 되다 만 시라소니', '호랑이도 새끼가 열이면 시라소니를 낳는다'는 속담이나 '호랑이는 절벽 아래로 새끼를 떨어뜨리고 기어올라온 새끼만 키운다고 하는데 이때 올라가지 못하고 낙오된 호랑이는 시라소니가 된다'는 설화 등이 많은 것을 보면 이북지역에서만 국한되어있던 표현은 아닌 듯 하다. 사실 아래 항목 실존인물의 별칭 또한 부정적인 의미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2. 실존인물


본명은 이성순(李聖淳). 1916~1983. 고향은 신의주.
네이버, 다음 포털사이트 이성순의 인물정보에 경력이 오랫동안 등록이 되었으나, 현재는 생년월일, 이름만 남겨두고 대부분 삭제되었다. 정확히는 2019-12-14 기준으로 Naver에서는 완전히 기록이 삭제되었고, daum에서는 이름 생년월일과 화제의 인물이라는 부분만 기재되었다.

해방 후 월남하여 김두한에게 대결을 신청했지만 김두한은 그와의 결투를 피해 무릎을 꿇고,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했으며, 그는 이를 받아들였다. 여기에 대해서 김두한의 한 부하였던 김영태는 이는 사실이 아니고 김두한이 시라소니보다 훨씬 강하다고 주장했지만, 여러 신문기사들과 김두한의 가족,부하들은 철저하게 전자의 이야기를 인정했다. 이후 항구의 막대한 이권이 걸린 인천으로 후배 주먹들과 진출해 인천을 차지했으며, 이후 인천 토박이 주먹패들과의 협상으로 인천 절반을 차지한 다음, 후배 주먹들에게 물려주고 물러났다. 이때 무장한 인천주먹 50여명이 밤에 기습을 한 것을 눈치를 못 채 죽을 뻔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지만, 이후 죽일테만 죽여보라고 태연히 대처했고, 실제 당시 시라소니를 죽일 생각이 없었던 인천 주먹들은 철수했고, 이후 최후의 결판을 짓기 위해 인천 무장 300여명을 상대로 후배 이북 주먹 4명과 같이 대치해, 살기와 호통으로 그들을 겁나게 해 물러가게 했다는 일화 등이 전해진다.'사탄전투'의 유금필과 '이자겸의 난'때 척준경의 사례의 재판. 이후 이북 주먹의 큰 형님격으로서, 이북주먹들로 구성된 서북청년단[1]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비정규전 부대에 참여해 북한 지역에 침투 정찰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전쟁 이후에는 1.4 후퇴 당시 부산에서 린치를 당하던 동대문파의 이정재를 구해준 인연으로 명동파 사람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이정재의 사무실을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2] 이성순은 동대문시장의 점포 양도문제로 이정재와 충돌했고 이권분산과 조직 위계질서가 흔들리는 것을 염려한 이정재는 부하들을 사주하여 손도끼,삽,쇠파이프,칼들을 이용해 이성순을 잔혹하게 린치하는데 이 사건이 '시라소니 동대문 린치사건'이다. 야인시대에서는 그걸로 끝난게 아니라 이 사건으로 백병원에 입원한 그를 이정재의 부하인 이석재가 후환을 없애겠다는 의도로 단독으로 병원으로 찾아가 쇠막대로 2차 린치를 벌여 그나마 하나 남은 멀쩡한 다리를 부러뜨린다. 뒤늦게 이 사실을 들은 이정재는 이석재를 크게 꾸짖고는 근신처분을 내린걸로 묘사된다. 이래서 드라마의 허구성을 조심해야하는 것인데, 실제로는 린치 당하기 전 방심한 틈을 이용하여 깁스로 얼굴을 치고 그 소란을 들은 간호사가 들어오는 바람에 이석재는 그대로 도망쳤다고 한다. 후에 임화수가 오자 시라소니는 마구 화내며 준비한 총을 들이대면서 임화수를 돌려보냈다.] 워낙 부상이 심해서 왼쪽 다리를 제외하면 모든 부위의 뼈가 부러지자, 의사들도 후유증이 평생 갈 것이라고 진단했을 정도였으나, 그는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후유증을 앓지 않고, 백병원에서의 6개월 입원기간과 이후 경기도 '팔당'에서의 8개월간의 수련 기간으로 정상적인 몸을 회복했다.
여기에 대해서, 소설에서는 시라소니는 '린치 사건' 당시 주요 장기들도 모두 파열되었다고 나오는데, 이는 소설의 과장으로 시라소니의 부인인 이진옥 여사는 이를 부인했다. 시라소니에 대한 과장의 한 예.


하지만 퇴원한 그는 여러번에 걸쳐 이정재 암살을 시도했지만 줄줄이 실패하자 거의 폐인이 되어 장티푸스에 걸리기도 했는데, 이 치료기간 중 개신교에 귀의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정재에 대한 복수에만 집착한 것은 아니였고, 제 3대 대통령 선거 운동때 신익희와 장면의 경호원으로 활약해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5.16 군사정변 이후 구악 일소라는 명분에 따라 혁명검찰에 의해서 체포되기도 하였지만 영락교회 신도들의 탄원으로 풀려나오기도 했으며, 당시 검찰에서 구속중이었던 이정재를 추가기소하기 위한 방증을 수집중 시라소니 린치 사건의 조사를 위해 이정재와 대질 심문을 가지기도 했는데[3] 린치 사실을 부인하며 이정재를 감쌌다고 한다.[4] 이 일은 주먹계의 허망함을 깨달은 시라소니가 결정적으로 주먹계를 은퇴하게 한 계기가 되었고 이후 시라소니는 영락교회를 다니다 이후 성복교회로 옮겨 성복교회 집사로 조용히 삶을 마쳤다.

그의 아내의 회고에 의하면, 결혼하기 위해 괴팍한 방법도 썼다고 한다.

48년에 친척의 소개로 남편을 처음 만났는데, 솔직히 너무 못생겨서 안 만나려고 했어. 그러니까 하루는 우리 집안 친척들을 다 모이게 하더니 쌍권총을 딱 꺼내놓고 결혼을 안 시켜주면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을 하더라고. 그러니까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친척들이 서둘러 결혼을 시켰지.”(여성동아 2003년 4월호 기사.)

그리고, 또 그는 월남 당시 이북에 딸을 두고 월남을 했는데, 그래서 그 딸을 평생 그리워했고, 그 딸은 나중에 김일성대 교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2.1. 부정적 서술에 대한 반박

그에 대해서는 위키백과,나무위키,리그베다위키 등에서 부정적으로만 언급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백과사전들은 우선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는, 바꿔 말하면 그가 주먹패라는 이유나, 혹은 다른 이유로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부당하게 언급할 수 있는 사전들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그리고 '나무위키'에서는 시라소니가 정말로 중국대륙,만주,평안도,서울을 주먹으로 주름잡았다고 한다면 중국과 만주에서 그에 대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시라소니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나 UFC 선수가 아니다. 뒷골목 주먹패이다. 뒷골목 주먹패의 싸움 실력에 대한 공식적인 자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더군다나 시라소니가 중국과 만주에서 활동할때는 만주사변 직후와 중일전쟁 기간이였으니, 제대로 된 자료가 있는 것이 더욱 어렵다.

게다가 그를 집단린치해서 그와 원수지간이니 '동대문'패에서도 그의 싸움실력을 '린치 사건'과 1954년 가을, 시라소니가 '건중친목회'를 배신했다고 여긴 이석재가 무장한 부하 50명을 거느리고 시라소니를 습격했다는 사건을 제외하면(이때
시라소니는 싸워보지도 않고 경찰서로 도주했다고 유지광은 자서전에서 밝혔는데, 여성동아 2003년 4월호와 중앙일보 2003년 4월 23일자 '아버지는 기개 있는 큰 싸움꾼' 기사를 보면 시라소니의 아들인 이의현 목사가 그의 아버지가 시라소니라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자신이 중2때 유지광의 자서전 만화를 보았는데 얼마후 유지광의 자서전 만화를 본 시라소니는 자신에 대해서 사실과 다르게 묘사했다며 발끈했고, 그래서 이후 유지광을 찾아가 혼내줄려고 유지광을 찾아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게다가 유지광이 좋은 인물도 아니고, 1954년이라면 시라소니가 한참 분노해 이정재 일파에게 복수를 할려고 한 시점이라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시라소니의 아들 이의현 목사는 이를 강하게 부정했다.)모두 인정할 정도였고, 그를 우리나라 최고의 주먹으로 극찬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중 하나가 원수에게서 인격과 능력이 자신(원수.)보다 더 낫다라고 인정받는 일이다. 인간은 깊은 감정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의 원수를 인격이나 능력에서 더 뛰어나다고 인정하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인류 역사상 쉽지 않은 일이다. 그의 싸움 능력들과 전적들이 거짓이라면 '그가 우리나라 최고의 주먹'이라고 인정하고, 또 '린치 사건' 때 단신에 비무장인 그를 사무실 안에서 무장한 상태로 집단으로 기습해서 이겼고, 이후 백병원에 입원한 그를 다시 공격했다고 인정한 '동대문'파는 그야말로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바보'라는 이야기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능력들을 부정하면서도 그의 사진 자료들은 그의 가족들이 원래 가진 자료들을 인용한 것이 많고, 언론과 소설에서 그가 싸움에서 실수한 것[5]이나 그의 인격의 잘못되었던 부분들만 인정하고 인용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는 정말로 전인수격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리고 입소문으로만 그의 싸움실력이 입증된다고 하는데, 단순히 입소문이 아니라 실제 목격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시라소니 사망 당시 우리나라의 주요 일간지들에서는 그의 사망 소식을 사회면 머릿기사로 소개하며, 그의 싸움실력을 극찬했다.
중앙일보,동아일보,경향신문,데이 서울, 기타 언론들의 이야기들과 유지광의 자서전을 인용하면, 그는 중국대륙,만주,평안도,서울을 주먹으로 주름잡았고, 김두한,이정재도 1:1 대결을 피하고 형님으로 모시는 실력자였고, 1:1 대결에서는 상대가 누구든 그 앞에서 5초를 넘게 버티기가 어려웠고[6]스피드가 워낙에 빨라 상대가 쓰러지는 모습만 보였지, 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라는 이야기나 만주 '봉천'에서 한국계 야쿠자인 카네미야 패거리 40명과 단신으로 싸워 이긴 것[7]이나 앉은 상태에서 수평으로 3M를 점프해 적을 박치기로 들이받아 쓰러뜨리거나 밭 몇개를 넘어 점프해 적을 들이받아 쓰러뜨리거나 제 자리에서 탁구대를 점프해 적을 받아 쓰러뜨렸고, 또 시속 140km로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려(여러 번의 '공중돌기' 끝에.)무사히 땅에 착지한 이야기들이나 중국 상해의 한 술집에서 중국 깡패 30명과 싸워 이긴 직후 출동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지만 비명 한 번 안 지르고 태연히 버텨 나중에 이에 감탄한 해당 일본 헌병대장이 풀어주고 친구가 되었다는 이야기 등이 있다.


다만, 그의 능력에서 과장된 것들이나 허구적인 것들은 당연히 존재한다. 위에서 언급된 '린치 사건'에서의 시라소니의 부상 정도나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이겼다든지, 김두한과의 대결때 과일 나무에 달린 한 과일의 한 지점을 정해놓고 젓가락 4개를 던져(실제로는 단검들이였다.)모두 한 점에 명중시켰다든지, 50:1로 이겼다든지, 72:1로 이겼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당연히 과장이나 허구의 이야기다.(이것들은 그의 가족들의 증언과 언론 기사의 경우로 입증되었다.)


2.2. 매체에서


그리고 이재학이 그린 협객 시라소니라는 만화가 있는데, 이는 대본소용으로 출간되었던 '히라소니' 만화를 서점용으로 묶어 출간한 것이다. 당시 이재학 문하였던 허영만이 전체적인 작화를 담당했다.[8]

이후에는 온갖 깡패영웅화의 근원이 된 극화가 방학기가 포츠서울에 연재했던 일제 치하부터 1공화국 종말까지의 주먹계 에피소드들을 그린 '감격시대'에서 김두한과 더불어 주연급 캐릭터로 등장했고, 여기서 시라소니 에피소드만 따로 재각색하여 별도로 연재한 '바람의 아들'이란 만화도 있다.[9] 여기서는 어린 시절 서북지역 유지였던 가문이 기독교에 빠져 가산을 탕진해 호구지책으로 열차를 이용한 섬유 원단 밀수를 하는 일명 '도비노리' 일을 하면서 훗날 자신의 싸움실력의 근간이 되는 신체 능력을 키웠으며, 이때 열차에서 떨어질 뻔하고 순사들에게 짐을 모두 빼앗긴 뒤부터 시라소니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묘사된다.

그러나 만화이므로 당연히 과장과 허구가 많다. 그리고 만주 웨스턴물과 무협물같은 분위기를 지향해서 과장과 왜곡이 심하니 다 믿지는 말자.

예를 들면 중국에서 벌어진 악녀 '데구치 가야'와의 이야기라든가 '모일화'와의 이야기 등이 있는데, 모일화 같은 경우 감격시대에서는 포악한 성격의 꽃미남 마적으로 등장했지만 바람의 아들에서는 시라소니와 잠깐이지만 불같은 사랑을 나누는 여협객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방학기의 원작 감격시대를 드라마화 한 KBS 드라마 감격시대에서는 원작만화의 시라소니를 모델로 했음이 분명하지만 '신정태'라는 이름의 가상인물로 등장하는 듯 하다. 방송가에서 시라소니를 주연으로 한 방학기의 원작의 드라마가 제작된다는 이야기는 야인시대 방영 이후부터 꾸준히 나왔다. 주연으로 이성재, 임호등이 거론되었지만 수차례 좌초를 거듭한 끝에 겨우 만들어지게 되었지만, 원작만화 자체가 왜곡과 과장이 너무 심한 상태에서 따로 각색까지 했으니 결과는...


1979년에는 이혁수 감독, 이대근 주연으로 영화화 되어서 서울 관객 40만의 흥행을 거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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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고무되어서 1980년에는 신성일까지 기용해서 협객 시라소니 part2라는 제목으로 속편이 제작되었다.


영화로 1992년작도 있다. 100편이 넘는 한국영화 각본을 맡았던 이일목이 첫 감독 데뷔를 했던 작품. 일본군 장교 앞에서 화장하고 남은 친우의 유골을 씹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영화가 저예산이라 자동차도 그냥 90년대 차를 썼을 정도다. 티날까봐 밤장면에만 나오는데 어차피 헤드라이트가 사각형이면 일제시대 차량으로 보일리가(…). 서울 관객 10만으로 흥행은 기대 이하였으며 당시 언론 평은 장군의 아들 영화 흥행 성공에 나온 짝퉁 수준으로 평가하며 평도 안 좋았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감독인 이일목은 그 뒤로 카루나 같은 영화를 더 감독했지만 그다지 흥행하지 못했고 결국 영화계에서 은퇴했다.

KBS 드라마 무풍지대에서는 박건식. MBC 드라마 '왕초'에서는 차룡[10]이 열연.

2.2.1. 야인시대에서의 시라소니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번역가로 유명한 조상구씨가 명연기를 펼쳤다. 김두한 장년기 파트에도 아주 비중있게 등장한다.
태종 이방원,궁예와 더불어 이환경 작가의 캐릭터들중 단연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야인시대 1부 50화 마지막에서 2부가 시작되며 청년 연기자에서 중년 연기자로 바뀌는 씬에서 아무것도 없는 검은 배경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며 가히 진 주인공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청년기엔 그냥 북쪽에 시라소니란 강자가 있다라고 언급만 되고 8.15광복 후 김두한의 장년기가 시작되면서 등장한다. 김두한과 처음 만날 때 다들 대결을 예상하고 기대했지만 김두한이 그와의 결투를 피해 무릎을 꿇고 형님으로 모시게 된다. 이정재도 6.25당시 부산깡패들에게 다굴당하던 이정재를 구해주어 의형제가 되었다.

싸움 실력은 김두한, 이정재와 함께 해방 이후 남한 주먹계 3톱 중에서도 최고의 사기캐. 야인시대 1,2부 전체 싸움 실력에서 김두한의 상위호환 실력자로 야인시대 1부에서 어린 김두한에게 무예를 가르쳐 준 가상인물 유태권을 제외하면[11],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 중에서는 단연 최강이다.

야인시대에서의 행적들을 보면, 해방 이전에는 만주와 중국 대륙을 주먹으로 주름 잡았으며[물론], 해방 이후 월남 당시의 행적으로 말하자면 위에서도 이야기가 되었듯이 김두한과의 대결때는 김두한이 그와의 결투를 피해 무릎을 꿇고 형님으로 모실 정도였고, 단신에 비무장으로 무장한 주먹패 수십명에게 포위된 상태로 한 대도 안 맞고 모두 때려눕히는 수준으로 극중에서 이런 모습을 자주 보여 준 캐릭터로 야인시대 2부에서 이런 모습은 시라소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시라소니의 이런 굉장한 모습을 보고 김두한파의 중간보스인 신영균"정말 귀신 같은 솜씨였습니다. 도무지 주먹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보이지 않더군요."라고 감탄했고, 무장한 공산청년전위대 수십 명을 거느리고 시라소니 린치를 시도한 중간직책인 김천호도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도무지 그런 괴물 같은 인간은 처음 봤습니다."라고 말했고, 김두한조차 시라소니를 처음 만났을때 "난생 처음 보는 괴물 같았다."라고 후에 고백했다. '시라소니 린치 사건'과 야인시대 2부의 가상 캐릭터인 금강과의 대결을 제외하면 유효타를 허용한 횟수는 단 한 번에 불과하다. 그것도 머리에 몽둥이를 일부러 맞은 것이고, 몽둥이는 부러졌어도 시라소니는 끄떡없었다. 졸개급은 물론이고 행동대장급들이 다구리를 놓을 때 정도는 애초에 막지도 않고 다 피해간다. 하지만 그런 실력도 실력이지만 김두한과 이정재, 심지어 자신이 일단은 몸을 담고 있는 명동파 등의 대립에서조차 한 발짝 떨어진 제3세력의 자유로운 풍모가 부각된다. 명동파나 김두한, 켈로부대원 등 친분이라고 할 만한 관계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독고다이를 즐기며 정치나 이념 어느 쪽에 속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다만 독고다이와 자유분방함이 지나치다보니 남을 함부로 대하고 남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안하무인의 성격도 드러난다. 그나마 우군인 명동파 상대로는 마이페이스가 강한 정도의 모습만 보이지만, 생판 남이던 동대문사단에겐 함부로 대하여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켰다. 동대문에 돈빌어먹는 상황인데도 조직원들 앞에서 이정재를 함부로 대하거나 이석재를 똘대가리라고 막부르는 것이 대표적 예시.[13]이영숙파가 운영하는 술집에 가서는 매향이라는 기생을 불러오라고 이영숙파에게 계속 시비를 걸었고, 이영숙은 겉으로는 정중하게 대하다 시라소니가 계속 안하무인으로 대응하자 약하게 기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시라소니는 이영숙에게 술세레를 퍼붓는 만행을 저질렀다.(95회) 그래서 시비가 벌어지니, 단신에 비무장인 자신을 포위한 그곳의 수십명의 무장 조직원들을 모두 가볍게 다 때려눕히고, 돌아가는 길에 술 사 주러 온 켈로부대원이 깜박하고 돈 안 내고 왔다고 가서 지불하려 했지만 이정재 휘하니까 괜찮다고 그냥 가자고까지 한다. 사실상 동대문사단 입장에선 시라소니는 시도 때도 없이 돈 뜯어가는 오만한 거렁뱅이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시라소니는 동대문사단과 하위조직들에게 많은 원한을 샀고, 이화룡은 이를 우려하며 동대문파에 가지 말고 차라리 돈 필요하면 얼마든지 빌려줄테니 자신한테 얘기하라고 했으나 시라소니는 이를 귓등으로 흘렸다. 이화룡이 우려한대로 이는 결국 시라소니 린치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비판으로 우선 시라소니는 실제 이정재보다 나이가 1살 많았을 뿐더러, 주먹 경력으로 치면 까마득한 대선배였다. 이정재가 단지 거대 조직의 보스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보다 연하이고, 주먹 경력이 까마득한 후배를 특별히 예우를 해줘야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부산에서 집단린치를 당하던 이정재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고, '동대문 점포 일부 양도 요구'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북 주먹 후배들을 위한 것이어서 이것들이 린치의 정당한 이유는 절대 될 수 없다. 그리고 이영숙의 사건도 부분적으로 시라소니를 변호할 부분이 있는 것이 이영숙이 나중에 고백하기를, "시라소니의 실력을 보고 싶어 일부러 시라소니에게 시비를 걸었다."라고 말했으니, 시라소니만 잘못했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또 자신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안전불감증도 상당한 편으로, 린치 사건에서 임화수는 한 번의 싸움으로 사로잡긴 어려울 것이라 보고, 힘 빼 놓기 용으로 배치한 입구의 습격조와 좁은 창고 가에서 마무리를 짓기 위한 본대로 부하들을 나누어 배치하는 계략을 꾸민다. 시라소니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었다면 바로 명동파나 켈로 부대원 쪽으로 후퇴해 사태를 지켜봤을터이니, 계락 자체는 허점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입구 인원들을 무난하게 정리한 시라소니는 굳이 그대로 혼자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행보를 보였고, 결국 시라소니는 처참한 결과를 맞이했다. 린치를 당한 뒤 시라소니는 자신이 너무 방심했다고 인정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시라소니는 나중에 "그때('린치 사건.')도 조심은 했었다. 다만 석회가루를 눈에 뿌릴 줄은 몰라서 그랬다."고 극중에서 말했다. 그리고 '린치 사건'의 2차 싸움에서 시라소니는 유리한 상태에서 눈에 석회가루를 맞아 진 것인지, 실력이 밀려서 진 것이 아니다.

1부 캐릭터인 신마적과 비슷한 점이 여럿 있다. 당대 주먹계 최고 오야붕이 한수 접어줬다는 점이나, 독고다이를 자처하며 여기저기에 진상을 부린다는 점이 비슷하다. 오만하게 있다가 하급자들의 도전으로 패했다는 점도 흡사하다.[14]그리고 둘다 만취상태로도 잘싸운다. 물론 캐릭터 역할이 서로 다르다보니 다른 점도 많다. 신마적은 꼬장이 일상이었으며 일반인들에게도 행패를 부린 반면에, 시라소니는 같은 주먹패들에게만 안하무인의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신마적은 주인공인 김두한에게 정식으로 패한 후 정신차리고 퇴장하는 비교적 평면적인 스토리 라인의 역할을 맡았지만, 시라소니는 악역 최종보스인 이정재를 이기며, 나중에 군사정권의 대질심문에서 재회해서 그를 진심으로 용서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대단히 입체적이고 다채로운 캐릭터성을 보여준다.
야인시대 안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의 역대 조폭영화들과 드라마들 중 야인시대의 시라소니역보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캐릭터는 없었다. 아무리 잘 쳐도 장군의 아들의 김두한 역이 그나마 비교가 될 수 있는데 그조차도 허점이 많았다.

다만, 야인시대 1부의 김두한과 비교해 파괴력이 부족한 것으로 비쳐진 부분이 있어 이 점이 아쉬운 부분. 야인시대 1부의 김두한의 경우, 그와 겨룬 사람들은 대부분이 크게 다쳐 병원으로 실려갔는데[15]야인시대 2부의 시라소니는 수많은 싸움으로 적들을 쓰러 뜨렸어도 병원에 실려간 사람은 아무도 없어, 파괴력에서는 1부 김두한에게 밀리는 것처럼 보인 부분이 있다. 다만 시라소니도 이정재와의 결투에서 그를 불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 한참 이전에 김두한 패거리와 종로회관 안에서의 대결에서는 박치기 한 번으로 5명을 쓰러뜨리는, 야인시대 1부 김두한도 못한 일을 하기도 했었다.

또 실제와는 달리 고수들끼리의 1:1 대결에서 극의 흥미를 위해서 오랫동안 싸움을 끌기도 했다.[16]그러나 이것은 야인시대 1부의 김두한도 마찬가지였으니, 피장파장.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시라소니에게 켈로 부대[17]라는 특수부대의 중요직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켈로 부대는 훈련을 하던 도중에 휴전선언으로 전쟁이 끝나게 되어 쓸모가 없어져버리고 그 탓에 켈로부대원들은 먹고살길이 막막해져 버린다. 이 때문에 대장으로써 책임감을 느낀 시라소니가 이후 이정재에게 계속 돈을 빌리는 계기가 된다.

처음에는 이정재가 순순히 돈을 건네주어 딱히 갈등이 없었다. 하지만 이정재에게 몇 번이고 찾아와 돈을 요구하고 나중에는 아예 점포 양도까지 해달라며 막대하는 시라소니에게 이정재의 부하들이 반감을 품게 되고, 시라소니를 깨버리자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이정재는 반대했지만 결국 김기홍을 비롯한 동대문파 간부들이 이정재 몰래 시라소니를 꾀어낸 뒤 무기로 무장한 부하들로 떼로 몰려가 시라소니를 습격한다. 그럼에도 시라소니를 당해내지 못하고 밀려버리니 비겁하게 눈에 석회가루를 뿌린 후에 쇠파이프로 집단 린치해 백병원에 보내버린다. 거기다 여기서 끝난게 아니라 이석재가 독단으로 병원에 찾아가 쇠절구공으로 시라소니의 왼쪽 다리를 으깨버려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18]

이 일로 이정재에 대한 원한과 분노로 이를 갈게된 시라소니는 미처 상처가 다 낫기도 전에 병원을 나와 켈로부대원들의 아지트에서 잠시 지내다가 이정재를 직접 박살내버리기[19] 위해 산으로 올라가 수련과 함께 재활 훈련에 들어가게 된다.

재활을 완벽하게 마친 뒤 산속에서 내려와 복수를 위해 혈혈단신[20]으로 이정재와 동대문파를 찾아간다. 때마침 동대문파는 김동진 저격사건으로 감옥에 있다가 출소한 후 파티를 열었으나 정작 이정재는 이미 귀가한 뒤였고, 이석재와 임화수를 비롯한 동대문 일당 거의 전원을 상대하여 유지광의 넘버1,2 부하라고 할 수 있는 도꾸야마와 독사를 2:1로 가볍게 발라버리고, 이후 덤벼든 권상사, 망치를 비롯한 동대문파 조직원 수십 명 역시 가볍게 작살낸 다음, 이석재와의 1:1 대결에서도 역시 이석재를 가볍게 박살내버린다. 특히 이석재와의 일대일 대결 후 "자네 주머니에 총이 있다는 걸 다 알고 있었는데, 왜 쏘지 않았나" 라는 시라소니의 물음에 웃으며, "그럴 생각도 했었소, 하지만 내가 총을 빼는 시간보다 형님 주먹이 더 빠르다는 걸 깨달아서 그만 둔거요. 역시 형님은 천하제일이오." 라고 대답했다. 이후 시라소니는 자신의 목적은 너희들이 아니라 이정재라고 하며 일단 물러난다. 그리고 다음날 밤 이정재의 집으로 직접 찾아간다.

이정재를 만나 결투를 벌이던 중 4번의 공격이 이정재에게 먹혀 들어갔고, 이에 비해 시라소니는 단 한 대도 허용하지 않자, 이정재는 자신이 졌으니 마음대로 하라며 G.G선언을 한다. 이에 시라소니는 수작부리지 말라며 공중 발차기를 날리지만 이정재는 눈을 감으며 공격을 그대로 받으려했다. 제대로 맞았으면 끝장났을수도 있는 발차기를 피하지도 않은 채 사죄하는 이정재를 보자 시라소니는 씁쓸한 듯 웃으며 이정재를 용서하고 돌아간다.

'그 힘을 나라를 위해 쓰자'는 김두한의 제의로 잠시 야당 대표 신익희, 장면의 경호를 서기도 했으나 일이 끝나자마자 아무 보수도 받지 않고 소리없이 사라졌으며, 그 길로 산중에 들어가 또다시 혼자가 된다. 여담으로 이 기간에 개그씬이 하나 있는데, 경호를 설 무렵 잘 안하다가 하게 된 넥타이가 갑갑해 풀어 주머니에 넣어놨는데, 정대발이 그와 대화를 하다가 주머니에 짱박은 넥타이를 보고선 능청스럽게 다시 메어주고 성님 타이가 삐뚤어졌어라 좀 꽉 조이자 켁켁 하며 갑갑해 한다. 선거가 끝난 이후에 다시 야인으로 돌아갈땐 이 넥타이를 다시 푼다.

이정재의 몰락 시점에서는 기독교에 귀의하여 교인이 된 상태였으며,[21] 취조실 장면에서 한 손에 성경책을 들고 오랜만에 재등장. 이 때는 특유의 억센 이북 억양까지 순화된 부드러운 말씨로 이정재의 린치 사실을 부인한다. 취조실을 나가는 길에 이정재를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뎡댸...힘내라우. 다 잘 될기야..."하는 대사가 또한 백미.

그러나 결국 이정재가 사형당하자 김두한, 이화룡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슬퍼했다.[22] 얼마 후 김두한의 비서 정대발이 다시 정치에 뛰어들려는 김두한의 지시로 그를 청년단체에 스카웃하려하자 지금은 신을 믿고 있다면서 정중하게 거절하고, 김두한에게예수를 믿으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한다. 이때 경동교회 장면은 실제 경동교회 교인들을 섭외하여 촬영되었다. 근데 김두한은 불교 마지막에는 김두한의 장례식에 참여했다.[23]

후일담으로 시라소니 역을 맡았던 조상구씨는 '야인시대' 2부가 1부에 비해서 시청률이 거의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진 원인에 대해서 작가인 이환경 씨의 소신에서 비롯되었다고 이야기를 한 바 있다.

당시 '야인시대' 의 장형일 PD를 비롯한 제작진들은 이환경 작가에게 '야인시대' 2부는 사실상 시라소니를 주인공으로 해서 만들자고 건의를 했다. 그 이유는 해방 이후 김두한의 좌익 타도를 주 이야기로 삼으면 당연히 젊은 사람들은 고루한 반공투쟁을 싫어해서 안 볼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 그래서 시라소니를 '야인시대' 2부의 사실상 주인공으로 해서, 적어도 6.25 전쟁 발발 이전까지는 시라소니를 사실상 주인공으로 해서 만들 것을 이환경 작가에게 건의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 시라소니의 러브스토리까지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환경 작가는 모두 거부했는데, 그 이유는 '야인시대'의 주인공은 김두한이라는 이유. 이렇게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결국 해방 이후 진행된 '야인시대' 2부는 오랫동안 김두한의 좌익 타도 이야기에 비중을 할애하는 덕에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시청률이 '야인시대' 1부의 거의 두 동강이 나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2부 후반부로 갈수록 시청률은 꽤 상승했고, 드라마가 상영된지 20년 가까이 된 시점에서는 2부가 재평가되고 있다.

시라소니 역의 조상구는 나중에 시라소니 이성순의 아들인 이의현 목사와 만나 의형제를 맺기도 했다.

2.2.2.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

여기서는 신정태라는 인물로 재창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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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서북청년단은 당시 이북에서 내려온 주먹들인 이화룡과 이정팔의 압록강 동지회와 대동강 동지회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서로 조직은 분화되었지만 공동의 목표를 두면 단합하는 성격이었다. 이 가운데에 이성순이 옵저버 역할을 하면서 중재를 담당했다. 정식 직함은 압록강동지회 감찰부장. - 대한민국 건국청년운동사(1989, 건국청년협의회), 청년운동 반세기(경향신문 1987. 02. 25)
  • [2] 당시 주먹계는 이전까지 가장 큰 세력이었던 김두한의 종로파가 김두한의 정계진출로 사실상 조직이 정리되고, 이후 청계천 다리를 경계로 하여 명동파와 동대문파가 양분하고 있었다.
  • [3] '이석재와 이정재는 이성순이란 사람을 도끼로 때려 중상해를 입힌 사실을 발견 수사를 재개'. - 동아일보 1960. 05. 29
  • [4] 실제로 사건에 관한 조사가 검찰에서 실시된 기록이 존재하나 이정재의 재판 당시 수많은 죄상 중 해당 사건에 관한 기록이 없는걸로 보아선 처벌불원에 의한 공소권없음 불기소처분으로 보인다. - 국가기록원 나라기록
  • [5] 인천에서 한 경찰에게 따귀를 맞아 한쪽 귀의 고막이 파열되었다는 이야기. 이에 대해 이의현 목사는 처음에는 이를 잘 몰라서 인정했지만, 나중에 자신의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시라소니 린치 사건'때 드러난 그의 엄청난 맷집을 생각하면 경찰에게 따귀 한대를 맞았다고 고막이 파열되었다는 이야기는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 [6] 물론 이의현 목사는 과거 시라소니 홈페이지에서 물론 정말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와 1:1를 해서 5초를 넘게 버틴 사람들이 있다고 인정했다.
  • [7] 이의현 목사는 이에 대해 40:1의 사건은 만주 '봉천'이 아니라 중국 본토의 '천진'의 공장지대 뒷공터였다고 상대는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들었고, 자신의 아버지는 단신에 포위된 상태로 고전 끝에 대부분을 쓰러뜨리고 항복을 받아냈다고 증언했다.
  • [8] 이후 본인 이름으로 출간한 각시탈 시기와 그림체가 거의 같다.
  • [9] 전작이 최영의의 일대기를 그렸던 바람의 파이터였던 관계로 저런 제목을 채택한 듯 하다. 후에 '바람의 아들 시라소니'라는 이름으로 소설판이 출간되기도 했다.
  • [10] 야인시대에서는 동대문 사단의 고위간부인 조열승을 맡았다.
  • [11] 유태권, 이 인간은 공중부양까지 하는, 무협지에나 나올 인물이다.
  • [물론] '야인시대'에서는 이 장면들은 나오지 않고 주먹계 인사들의 말로만 소개되었다.
  • [13] 물론 이석재도 대놓고 시라소니를 적대하고 손봐야된다고 떠들거나 '시라소니 린치 사건' 이후 백병원에 입원한 시라소니를 이정재의 지시가 없음에도 자기멋대로 시라소니의 남은 왼쪽 다리조차 부러트리는등 잘한 건 하나도 없다.
  • [14] 시라소니는 신마적과 다르게 '린치 사건'이후 복수전에 성공했다.
  • [15] '구마적'과 '시바루'를 비롯한 예외들도 있었다.
  • [16] 예를 들어 '시라소니 린치 사건'때 김동진,이석재와의 1:1 대결에서 실제로는 무기를 든 김동진과 이석재를 박치기와 주먹 한 대에 기절시켰다.
  • [17] 미군이 한국에 창설한 부대이며 지금의 서해5도를 지킬 수 있었던 장본인들. 후방에서 여러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라고 한다. 다만 비공식이라 자료는 많지 않으며 켈로라는 이름은 KLO(Korea Liaison Office: 주한 첩보연락처)를 한국식으로 읽은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 [18] 이를 들은 신사 파이터 기믹의 이화룡이 동대문 일대를 두들기라고 지시할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였다. 동대문 측도 두들기게 내버려두고 사전 지시를 받은 경찰도 체포가 아닌 해산 명령을 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 [19] 이때 시라소니의 복수를 위해 김동진의 사주를 받은(김동진은 오래전부터 이정재에 대한 반란을 계획하고 있었다) 켈로부대원들과 정양원 사람들이 이정재를 습격해 세트로 떡을 만들어 놓은 뒤 이억일은 버리고 이정재를 시라소니 앞으로 데려갔지만 시라소니는 복수는 자기가 직접하겠다며 놓아주기도 한다. 작중에서는 켈로부대원 수십명이 이정재와 이억일을 다구리하여 쓰러뜨린 후 이정재를 납치하지만 실제 이정재를 납치하였던 켈로부대원은 4명이라고 한다.
  • [20] 중간에 오상사를 비롯한 명동파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지원을 오긴 하지만 그냥 구경이나 하고 있는다.
  • [21] 극중 언급을 보면 깡패 소탕 당시 잡혀가지 않기 위해 예수쟁이 행세를 했다는 식의 말을 하지만 후에 진심으로 귀의한 듯 하다.
  • [22] 이정재를 한 번 살려보려고 '예수쟁이가 거짓말까지 해봤다'면서 노력했는데, 그게 수포로 돌아갔다며 매우 침통해 했다.
  • [23] 하지만, 실제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지 않았다고 '시라소니'의 아내인 이진옥 여사는 생전에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