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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차기

last modified: 2015-02-09 20:22:17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규칙
3.1. 킥 규칙
4. 승부차기 돌입 시점
5. 이야깃거리

1. 개요

보는 사람과 차는 사람, 그리고 막는 사람의 똥줄을 태우는 지옥의 데스매치.

축구에서 연장전이 끝나도 비겨서 승부를 가릴 필요가 있을 때 사용하는 규칙. 주로 토너먼트 대회나 컵 대회에서 하고 리그전에서는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리그전에서 조별 리그의 마지막 경기에서 맞붙는 두 팀이 경기 결과 승점, 득실, 다득점 등 대회 규정에서 적용하는 순위 결정 원칙에 의해 완전히 동률일 때에 순위 결정을 위해 실시하도록 규정한 대회도 간혹 있긴 하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실시하며, K리그에서는 위에 내용과 관계없이 승부차기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승부차기 승리는 승점이 1점밖에 안 됐고, 약팀들 사이에서 '지느니 차라리 승부차기로 가서 승점 1점이라도 가져가자'는 마인드가 팽배해 지루한 경기가 속출하여 결국 1시즌 만에 폐지됐다. 먼저 도입했던 옆동네도 98년 이후로 폐지했다.

양 팀의 선수들이 번갈아가면서 페널티 킥과 같은 식으로 공을 차서 많이 넣은 쪽이 이긴다. 승부차기까지 가면 승패를 가르더라도 기록상으로는 양 팀 모두 무승부로 기록된다. 그래서 '승부차기는 축구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거기에 승부차기도 실력이라지만 본 경기보다 운이 많이 따라줘야 하는 건 사실인지라 '11m짜리 러시안 룰렛'으로도 불린다.

하나하나 넣고 못 넣고에 따라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기쁨과 안타까움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데 이 똥줄이 타는 것이 또 재미있기는 하다.

산술적으로는 11m 거리에서 찬 공의 속력을 반응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므로, 1/3확률로 골키퍼가 미리 찍은게 맞지 않는 이상 키커가 유리한 게임이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부담감으로 인한 실축 등이 생겨 키커의 승률이 낮아진다.

11m거리에서 노마크로 슛을 넣는 것은 축구 선수에게 쉬운일이지만, 차범근 감독의 말에 따르면 아무리 실력이 좋은 선수라도 배짱이 없으면 승부차기를 성공하긴 어렵다고 한다.[1] 시합이라면 책임분담이 되지만 승부차기는 얄짤없이 1명의 선수가 책임을 짊어지기 때문이다. 국가를 불문하고 승부차기에 실패하면 그 선수를 깨강정이 되도록 까는 진풍경을 보여준다.이것이 지구다!! 킥커는 물론 골키퍼도 엄청난 부담을 가진다.

키커 순서의 경우 1번 키커는 자신 있게 골을 꽂아 넣고 돌아오는 기선 제압의 역을 하기에, 팀에서 가장 자신만만하고 대담한 선수가 이를 맡는다. 이때 이 키커가 파넨카 킥이나 골망을 찢을 듯한 강슛을 보여준다면 기선 제압의 위력은 더욱 올라간다. 그리고 5번 키커는 승부차기를 마무리하는 역이기에, 팀에서 가장 신뢰하는 선수를 내보낸다. 2002 월드컵 8강 스페인전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은 1번 키커를 황선홍, 5번 키커를 홍명보로 선발하였다.

2. 역사

현대 축구에 승부차기가 도입된 역사는 의외로 짧은데, 1970년대 이전까지는 연장 120분 경기로도 승부가 갈리지 않으면 동전 던지기 혹은 다음날 재경기로 승자를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메이저 국제 대회에 도입된 계기는 1968년 EURO 컵 4강전인데, 소련과 이탈리아가 120분 동안 혈투를 벌였지만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결국 동전 던지기로 이탈리아가 결승에 진출한 데에서 기인했다. 이 대회 결승에서도 이탈리아는 유고슬라비아와 연장전 끝에 1:1로 비겼지만, 이때는 다음날 재경기를 가졌다. 그리고 2:0 이탈리아의 승리로 끝났다. 우리나라도 이 동전 던지기에 피해를 본 적이 있다, 당시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일본과 마지막 예선을 치른 대표 팀은 결국 홈, 원정 다 비겨서 동전 던지기로 승패를 결정했는데, 거기서 그만 떨어져서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일본은 그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한국의 속을 박박 긁었다가 A매치에서 독한 맛을 제대로 봐야 했다.

그 이후 70년대 중반까지 클럽 간 대항전을 중심으로 서서히 보급되다가 1976년 EURO 컵에서 처음 채택되었으며, 2년 뒤인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도 공식 채택되었다. 2012년 5월 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이 승부차기는 재앙이라면서 없애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자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승부차기를 대체할 만한 대안이 재경기 이외에는 없는데 대회 일정, 선수 보호 차원에서 재경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승부차기 폐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승부차기를 필요악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승부차기를 축구의 꽃, 스토리텔링 요소로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3. 규칙

가장 먼저 주심이 승부차기를 할 골대를 정한다. 그리고 동전을 던져 맞힌 팀의 주장이 먼저 찰지 나중에 찰지 결정한다. 승부차기 돌입 직전까지 뛰고 있던 11명의 선수를 사용할 수 있는데, 만일 어느 한 팀에서 선수가 퇴장을 당해 10명만 뛰고 있던 상태라면 상대 팀도 한 명을 빼고 10명이 뛰어야 한다. 다만 승부차기 중에 선수가 줄어들면 다른 팀은 인원수를 다시 맞출 필요는 없다. 순번이 한 바퀴 다 돌아서 다시 찰 경우 이전의 순서대로 차지 않아도 된다. 승부차기 중에 골키퍼가 부상을 당했을 경우 선수 교체가 남았다면 교체가 가능하다.[2] 키커와 양팀의 골키퍼를 제외하고 모든 선수는 하프 라인의 센터 서클 안에 있어야 한다. 고로 동료에게 패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순서대로 한 명씩 나와서 차는데, 기본적으로는 5명까지 나와서 뛴다. 예를 들어서, 다음과 같다.

팀명 1 2 3 4 5
A 팀 O O X O O
B 팀 X O O O X
이것은 A 팀에서 세 번째 키커가 실축하고 나머지 네 명은 넣었다는 뜻이고, B 팀에서는 첫 번째 키커와 다 섯번째 키커가 실축하고 나머지 세 명은 넣었다는 뜻이다. 이 경우 4:3으로 A 팀의 승리가 된다. 그리고 B 팀의 5번째 키커는 역적이 된다.

지고 있는 팀이 다 성공시키고 이기고 있는 팀이 다 실축해도 역전할 수 없는 경우는 그 시점에서 바로 끝이 난다. 예를 들어,

팀명 1 2 3 4 5
A 팀 X O X
B 팀 O O O
이 상황에서 A 팀 네 번째 키커가 성공하면 3:3까지 따라 붙을 가능성이 생기게 되지만, 실축하면 다섯 번째 키커가 성공하고 B 팀의 나머지 두 키커가 실축하더라도 2:3이 되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바로 B 팀의 승리로 낙착된다.

팀명 1 2 3 4 5
A 팀 X O X O
B 팀 O O O
앞의 예에서 A 팀의 네 번째 키커가 성공한 것이다. B 팀의 네 번째 키커가 성공하면 바로 B 팀이 승리한다. A 팀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B 팀의 네 번째 키커와 다섯 번째 키커가 모두 실축하고 A 팀의 다섯 번째 키커가 성공해서 여섯 번째 차례까지 끌고 가야 한다.

또한, 양 팀 모두 다섯 번까지 다 찼는데도 여전히 동점이면, 여섯 번째 키커가 나와서 승부를 가리고 거기서도 동점이면 일곱 번째 키커가 나와서 승부를 가리고 이런 식으로 끝장이 날 때까지 한다. 만일 11명이 다 나왔는데도[3] 계속 동점 상태라면 순번이 한 바퀴 돌아서 이미 찬 키커가 다시 차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쯤 되면 보는 사람들의 똥줄은 다 타고 없어져 버릴 듯...

팀명 1 2 3 4 5 6 7 8
A 팀 O O X X O O X X
B 팀 X O O O X O X
여기서 B 팀의 여덟 번째 키커가 성공하면 B 팀의 승리로 낙착되지만, 실축하면 아홉 번째 차례로 넘어간다.

3.1. 킥 규칙

앞서 말했듯이 패스해서 간접적으로 넣는 플레이는 불허되고 오로지 자신이 직접 차서 넣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한 번에 성공시켜야 한다. 즉, 골키퍼가 선방해서 튕겨나가거나, 슛을 했는데 아예 골대 밖으로 나가면 실패 처리된다.

다만, 골키퍼가 선방한 공을 아무도 안 건드렸는데도 저절로 골문 안으로 들어가는 경우는 골로 인정이 된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망신을 당한 골키퍼도 있다. 아래 이야깃거리 문단 참고.

4. 승부차기 돌입 시점

보통의 경우, 토너먼트 체제하의 경기에서 전후반 90분, 연장 30분을 치렀는데도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승부차기에 돌입하지만, 친선 경기라든지 기타 특수한 경우 연장전 없이 바로 승부차기에 돌입하기도 한다.

특수한 경우로는 유로 2008 대회 룰이 있었는데, 조별 리그에서 두 팀의 승점, 득실이 모두 같고 때마침 그 두 팀이 같은 경기장에 있을 때 즉시 승부차기로 상위 라운드 진출 팀을 결정하는 룰이었으나 이뤄지진 않았다. #

이러한 조별 리그에서 승점, 득실이 모두 같아 순위를 가리는 승부차기 룰이 나온 예가 하나 있는데, 바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여자 축구 종목에서 대한민국 대표 팀과 중국 대표 팀이 A 조에 배정되었는데, 승부가 나지 않아 정규 시간 종료 이후 연장 없이 바로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대한민국 대표 팀은 여기서 이겨 조 1위로 진출했던 일이 있다.

5. 이야깃거리

  • 1976년 당시,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렸던 UEFA 유로에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정상에 오르는 이변을 연출했는데, 이 때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2-2로 비긴 후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이때, 체코슬로바키아 축구 대표 팀의 미드필더였던 토닌 파넨카(Antonin Panenka)[4]가 4:3으로 앞서는 가운데, 다섯 번째 키커로 등장하여 골키퍼의 정면을 향하여 느리게 살짝 띄운 슛을 차서 골인에 성공하였고, 팀은 승리하였다. 이전까지는 골키퍼의 정면으로 느리게 슛을 하는 선수는 없었기 때문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왔고 그의 슛을 모방하는 선수들이 점점 늘어났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PK 상황에서 골키퍼를 향하여 느리게 살짝 띄우는 슈팅을 파넨카 킥이라고 부른다. 파넨카는 이 슛을 동료들과의 PK 승부에서 지는 쪽이 초콜릿 바와 맥주를 사는 내기를 하다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회고했다.

  • 1985~86년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는 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사연뻥을 시전했다. 상대 팀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의 골키퍼 헬무트 듀커담은 4연속 페널티킥 선방으로 영웅이 되었다.

  •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브라질과 프랑스와의 8강전의 승부차기에서 진풍경이 벌어졌다.
    두 팀 다 연장 접전 끝에 1:1로 비긴 뒤에 승부차기에 돌입했는데, 브라질의 첫 번째 키커 소크라테스의 슛은 골키퍼 선방으로 막혔다. 그 후 두 팀 다 한 골씩 넣었고,[5] 프랑스의 세 번째 키커 벨론의 슛은 처음에는 골 포스트를 맞고 튕겨나왔으나, 황당하게도 그 공이 브라질 골키퍼의 등을 맞고 들어가 버렸다(...).[6]
    그 뒤 나온 브라질의 키커는 주장 에지뉴였는데, 심판에게 무슨 얘기를 한 뒤 키커를 브랑쿠로 교체했고 브랑쿠가 골을 넣었다. 그 뒤에 나온 프랑스의 키커는 미셸 플라티니였는데, 플라티니의 슛은 크로스 바를 넘기고 말았다.[7] 그 뒤에 나온 브라질의 다섯 번째 키커 세자르의 슛은 골대를 맞추고 말았고, 프랑스의 다섯 번째 키커인 루이 페르낭데가 침착하게 성공시키면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두 팀의 피 말리는 사투는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 경기에서 진을 뺀 탓인지, 4강전에서 서독에게 허무하게 패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 보통 팀당 5점 이내에서 승부가 갈려야 정상이지만, 1988년 아르헨티나에서는 르헨티노스 주니어스라싱 클럽이 만나 무려 44명의 키커가 나서서 20-19라는 명승부를 연출했고, 기네스북에 역대 공식전 최다점수 승부차기로 등재되었다. 승부차기만 50분이나 걸렸다고.

  •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8강에서 유고슬라비아, 준결승에서 이탈리아와 2번 연속으로 승부차기를 벌였다. 아르헨티나는 그 두 개의 승부차기를 모두 이기고 결승에 진출하여 승부차기의 강자로 떠올랐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골키퍼로 뛰었던 르히오 고이코에체아는 베스트 11에 뽑혔다.

  • 1992년 세네갈에서 개최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의 결승전 (가나 vs 코트디부아르)에선 승부차기 돌입 후 11명의 키커가 다 슛을 하고도 10:10 상태로 승부를 결정짓지 못해 이미 찬 선수가 또 차는 보기 드문 기록이 나왔다. 승부는 바로 12번째에서 갈렸다. 가나 선수의 실축으로 코트디부아르의 11:10 승부차기 승.

  • 1994년 미국 월드컵은 사상 최초로 승부차기로 우승팀을 가린 월드컵이 되었다. 2:3으로 이탈리아가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이탈리아를 결승까지 이끄는 데 큰 공헌을 한 로베르토 바조가 마지막 키커로 나섰으나 슛이 크로스 바를 넘어 하늘로 날아가면서 브라질의 우승으로 낙착되었다. 바조는 한순간에 영웅에서 역적으로 추락했다. 이 때 바조가 킥을 성공시켰더라도 다음 브라질 키커가 득점하면 브라질이 승리하는 상황이었다.

  • 1995년 킹 파드컵(현재의 컨페더레이션스 컵) A 조 조별 리그에서 덴마크멕시코가 완전 동률인 상태에서 서로 간의 마지막 경기를 치렀는데 1:1 무승부가 되는 바람에 순위를 가릴 수 없게 되자 바로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결과는 덴마크의 4:2 승리로 결승 진출. 여기서 패한 멕시코는 3위 결정전으로 밀렸다.

  • 2002년 한국/일본 월드컵에서 한국은 8강에서 스페인을 맞아 승부차기까지 가는 힘든 승부 끝에 경기 당일 생일을 맞았던 호아킨 산체스생일빵실축에 힘입어 한국의 5:3 승리로 낙착되면서 아시아 최초 월드컵 4강을 찍게 되었으며 아시아 팀으로써 월드컵에서 승부차기를 경험한 것도 이때가 처음.

  •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한 팀이 승부차기를 모두 실축하는 진기록이 나왔다. 스위스우크라이나의 16강전이 그러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안드리 셰브첸코만이 실축을 했지만 스위스에서는 먼저 나온 3명의 키커가 모두 실축을 하는 바람에 우크라이나의 3:0 승부차기 승으로 낙착. 결국 스위스는 조별 리그 성적 2승 1무를 포함, 월드컵 사상 초유의 무실점 탈락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승부차기 패의 경우 기록상 무승부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 2007년 동남아시아 아시안컵에서 한국은 8강 진출 후 8강전과 4강전, 그리고 3위 결정전을 승부차기까지 끌고 감으로써 3연속 승부차기라는 기이한 기록을 세웠다.

  • 2007년 유럽 청소년 선수권 대회(21세 이하)[8] 준결승에서 네덜란드잉글랜드가 맞붙었는데 승부차기까지 갔다. 그런데 승부차기조차도 치열하게 박빙을 이뤘고, 결국 13:12로 네덜란드가 잉글랜드를 이겼다. 네덜란드는 올림픽 본선에서 8강에서 개사기 유닛 리오넬 메시, 앙헬 디 마리아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연장 혈투를 벌인 끝에 2:1로 탈락했고 승리한 아르헨티나는 그 이후 브라질과 나이지리아를 연파한 후 금메달을 획득했다.

  • 또한, 2010년 트리니다드 토바고 여자 U-17 월드컵 결승전은 한일전이기도 했지만 3:3으로 비긴 끝에 승부차기로 우승팀을 가린 결승전이기도 했다. 거기서 한국이 일본을 5:4로 제치고 FIFA 주관 대회 첫 우승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해당 항목 참조.

  • 2011년 아시안컵 4강전 한일전에서 나온 대한민국 대표 팀의 삼연뻥.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남미 최강팀 중 하나인 브라질 대표 팀은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또 4연뻥을 보여주며 패배의 쓴잔을 맛봤다.

  • 2011년 FA컵 16강전 강원 vs 대전에 경기에서 나온 승부차기가 충공깽이다. 무려 각 팀 각각 아홉 번이나 승부차기를 했다. K리그 팬들에게는 두고두고 회자될 지경.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

  • 2011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전북이 망할 중동 침대축구 알사드와의 경기에서 승부차기 두 번을 실축하며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알사드에서 실축한 건 이정수 뿐.

  • 2012년 런던 올림픽 8강전에서 대한민국 대표 팀이 축구 종주국이자 홈 팀이었던 영국 대표 팀을 승부차기로 이기고 올림픽 사상 첫 4강 신화를 이루기도 했다. 10년 전 2002년 월드컵 때 스페인과의 승부차기 대결과 흡사했던지라 그때와 비교하는 의견도 많았다.[9] 그 역사적인 순간을 보러 가기

  • 2012년에 있었던 2013년 FIFA U-20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는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 팀이 이라크와의 결승전에서 1:1로 비긴 뒤에 승부차기에서 4:1로 이기고 우승했는데, 이때 이라크 선수 쪽에서는 두 번째 키커와 세 번째 키커가 실축을 했었다. 참고로 이때 우리나라 중계진 해설은 이상윤이 맡았었는데, 두 번째 키커와 세 번째 키커가 실축하는 것을 맞춘 작두 해설을 보였다. 허나 아이러니하게 1년후 U-20 월드컵 8강전에서는 이와 반대로 이라크가 한국을 승부차기에서 꺾고 4강까지 올라갔다.

  • 2013년 FIFA U-20 월드컵 토너먼트 라운드에서는 승부차기에서 이긴 팀이 바로 그 다음 라운드에서 승부차기로 지는 일이 결승전까지 이어졌다. 16강전에서 콜롬비아를 승부차기에서 이겼던 대한민국은 위에서 언급됐듯 8강에서 이라크에 승부차기에서 졌다. 그러나 그 이라크도 4강에서 우루과이에 승부차기로 졌고, 우루과이마저 결승전에서 프랑스에 승부차기 패배를 당했다. 승부차기로 흥한 자 승부차기로 망한다[10]

  • 2013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8강 2차전에서 뉴웰스 올드보이즈는 보카 주니어스에 승부차기 10:9 라는 막장 스코어를 기록하며 승리했다. 팀당 13번의 슈팅, 총 26번의 슈팅을 기록했다. 보기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8강 네덜란드 대 코스타리카 전에서 루이 반 갈 네덜란드 감독은 승부차기를 앞두고 팀 크룰로 골키퍼를 교체했다. 이때 팀 크룰이 상대 키커한테 건 심리전이 예술인데, 라이언 루이스에게 다가가서 주먹을 맞대며 인사를 나눠 경계심을 풀거나 상대 키커에게 "너가 어떤 방향으로 찰 지 알고 있다"며 도발하여 혼란을 줬다. 또한 볼 차기 직전에 한쪽 방향으로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는데, 이렇게 하면 키커의 눈에는 잔상이 남아(착시 현상) 골키퍼가 걸어간 방향은 공간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그 반대쪽으로 킥을 하게 된다. 팀 크룰은 이런 식으로 5개의 킥 방향을 모두 읽었고, 이 중 2개의 킥을 막아 네덜란드를 준결승전에 올려놓았다.

  • 잉글랜드는 승부차기에서 정말 약하다. 메이저 대회 통산 전적이 무려 1승 6패[11].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영국 단일 팀[12]도 잉글랜드의 승부차기 징크스를 그대로 갖고 왔는지 한국과의 승부차기 대결에서 패했다. 이러한 전통 때문에 BBC 트위터는 2012년 올림픽 8강전 때 연장전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하자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라는 자학스러운 트윗을 하기도 했고, 실제로 패한 후에 우리에게 익숙한 결말이라는 기사를 냈다.

  • 승부차기로 유명한 국가는 독일이다. 서독 시절부터 유독 승부차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왔다. 영원한 토너먼트의 강자로 군림하는 비결 중 하나가 승부차기에 돌입하면 거의 이기고 올라가기 때문이다. 2006년 월드컵 이전에는 독일과 아르헨티나가 승부차기의 양대 산맥이었으나... 2006년 월드컵 8강에서 이 두팀이 맞붙어 승부차기까지 갔다. 로베르토 아얄라에스테반 캄비아소의 킥을 모두 옌스 레만 골키퍼가 막아내서 독일이 승리. 이로 인하여 월드컵 승부차기 무패 팀은 독일이 유일하다. 그리고 현재 국가 대표 팀이 참가하는 각종 메이저 대회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한 독일 선수는 단 2명으로 1976년 유로의 울리 회네스1982년 스페인 월드컵 4강전의 울리 슈틸리케[13] 이다. 성공률도 꽤 좋아서 92.8%(28명 시도 26명 성공)를 자랑한다.

  • 유로까지 범위를 넓히면 승부차기에 가장 강한 국가는 체코이다. 월드컵에서는 승부차기를 해본 적이 아직 없지만 위에 설명했듯 1976년 유로에서 바로 그 서독을 승부차기에서 꺾은 팀이 바로 체코이기 때문. 서독이 당한 이 결승전 승부차기 패배는 지금까지 독일의 유일한 승부차기 패배이며 유로 2012에서 피를로가 시도했던 칩킥으로 유명한 파넨카 킥이 바로 이 경기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음 유로에서도 이탈리아를 승부차기에서 꺾었는데 9대8까지 가는 말 그대로 똥줄 타는 승부였다. 이탈리아답지 않게 8명이 모두 성공했다. 콜로바티 한 명 빼면 참고로 이 승부차기에서 체코 선수들이 상대한 골키퍼는 각각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제프 마이어와 디노 조프였다. 그리고 최근의 승부차기에서는 유로 96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4강에서 승부차기 승리를 거두었다. 3번의 승부차기에서 20명의 키커가 모두 성공하여 성공률 100%는 덤이다.

  • 모로코의 클럽 축구 경기에서 키커의 낮게 깔아찬 슛을 골키퍼가 몸을 날려 막아냈다. 키퍼는 선방했다고 세레모니를 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고 막아낸 공에는 횡스핀이 심하게 걸려 있었다. 결국 골대 안으로 공이 저절로 들어가면서 골로 인정이 되는 해프닝이 있었는데 그 장면이 인터넷에서 '멍청한 골키퍼'라는 제목으로 돌아다니는 중.# 참고로 문제의 골키퍼 이름은 칼리드 아스크리로, 이후 경기 중 치명적인 실수를 한 번 더 해서 '멍청한 골키퍼'라는 별명이 굳어졌다. 안습. 그러나... 칼리드 아스크리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프로 리그에서 이런 실수 2번을 저지르긴 했어도 국가 대표 골키퍼이며 소속 팀인 라사 카사블랑카는 2013년 FIFA 클럽 월드컵에 개최국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 바이에른 뮌헨에 이어 준우승을 거두었으며 그는 이 대회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던 걸 보면 못하는 선수는 절대 아니다.

  • 이운재가 승부차기에서 강하다. 무려 승률이 90%대[14], 2002년 월드컵이케르 카시야스와 승부차기 대결을 벌여 이겼던 적도 있다. 그런데 이 이운재의 말에 따르면, 승부차기가 구석으로 들어오면 반응 속도의 문제 때문에 과학적으로 막을 수 없게 되어 있단다. 본인은 심리적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예상해서 막아내는 모양이다.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에서 브라질과 칠레의 승부차기도 역사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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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일단 차범근 본인부터가 고교 시절 승부차기 실축의 좋지 못한 기억 때문에 현역 시절 페널티킥 맡기를 회피했던 선수이다. 그래서 분데스리가 시절 PK 없이 98골을 넣은 기록이 더 위대한 것이다. 박지성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승부차기를 꺼리는 선수이다. 하지만 2002 월드컵 스페인전에서는 짬밥이 안 되어서(...) 히딩크가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찼다고 하며, 결국 성공했다.
  • [2] 승부차기에서 골키퍼는 부상이 아닌 경우 벤치에 있는 선수로 절대 교체할 수 없다. 단 출장 중인 필드 플레이어로 교체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래서 승부차기를 잘 막는 골키퍼가 필드가 아닌 벤치에 있을 때 이 선수를 승부차기에서 뛰게 하려면 연장전 끝날 때쯤 교체 출장시킨다. 2012 런던 올림픽을 전후하여 대한민국 대표 팀에서는 주전이 정성룡이라면, 승부차기 특화 선수는 이범영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는 연장 후반에 이 짓거리를 했다가 종료 직전에 결승골을 먹고 망했어요.
  • [3] 이쯤 됐다는 것은 이미 골키퍼도 키커 중 한 명으로 나와서 찼다는 뜻이다. 사실 선발 키커 5명 중 골키퍼가 들어가는 경우도 가끔 있다.
  • [4] 현재는 체코의 보헤미안스 1905의 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 [5] 브라질의 세 번째 키커는 지쿠였다. 그런데 경기 종료 직전에 페널티 킥이 나왔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킥의 달인 지쿠의 페널티 킥은 프랑스의 골키퍼 엘 바에게 막히고 말았다.
  • [6] 11-12 UEFA 챔피언스 리그 아포엘올랭피크 리옹의 승부차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7] 플라티니가 바로 프랑스의 동점골을 넣은 주인공이었고 게다가 이 날은 플라티니의 생일이었다.죽지만 않았지 다른 의미로의 사망 플래그이다
  • [8] 2008 베이징 올림픽 유럽 지역 예선을 겸했다. 유럽에 배정된 팀이 4팀이므로 4강 진출 팀이 일반적으로 본선에 나가지만, 이 대회에서 잉글랜드가 4강에 들었고, 본선 경기를 포기하였기 때문에 5-6위전(이탈리아 대 포르투갈)을 실시하여, 5위 팀(이탈리아, 역시 승부차기 승)이 잉글랜드 대신 본선에 나갔다.
  • [9] 둘 다 강팀을 꺾고 역사상 첫 4강에 들게 된 의미 있는 대결이기도 했고, 2002년 당시 마지막 키커이자 주장이었던 홍명보가 2012년에는 감독으로서 그 대결의 중심에 서기도 했으며, 스터리지-이범영의 대결은 2002년 당시의 호아킨-이운재의 대결과 매우 유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 2012년 모두 우리나라에서는 첫 키커부터 마지막 키커까지 다섯 명 중 한 명도 실패하지 않고 가볍게 슛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 [10] 실제로 토너먼트 내에서 팀이 연속으로 승부차기까지 갈 경우 그 경기들을 모두 승리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 [11] 자국에서 열린 1996 유로컵 8강전에서 스페인 상대로 이긴게 유일한 승. 허나 다음 경기였던 독일전에서는 승부차기에서 패배했다.
  • [12] 말이 단일 팀이지 사실상 잉글랜드 선수가 대부분이고 웨일스 선수 몇 명 껴 있는 정도였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약과. 1972년까지의 영국 올림픽 대표는 전원 잉글랜드 선수로만 구성되었다.
  • [13] 홍명보에 이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지휘하게 된 그 사람 맞다.
  • [14] 국가대표 레벨에서 승부차기에서 진적은 단 한번 뿐인데, 그게 하필이면 아쉽게도 2007년 아시안컵 4강 이라크전 패배였다. 이 당시에도 방향을 잘 잡았는데 이라크 선수들이 워낙 잘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