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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병

last modified: 2019-03-27 21:16:15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한국
2.1. 삼국시대
2.2. 고려시대
2.3. 조선시대
3. 일본 소헤이
4. 현대
5. 대중문화에서의 승병
5.1. 임진록(게임)
5.2. 천년의 신화
5.3. 라크무
5.4. 토탈 워: 쇼군2
5.5.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 아시아 왕조
5.5.1. 소헤이
5.5.2. 콘시 야마부시 승병
5.5.3. 잇코잇키
5.5.4. 장님 수도승
5.5.5. 소림사 등패수
5.6. 징기스칸 4
5.7. 명량
6. 기타


1. 개요

승려들로 조직된 군대. 대개 사찰들이 전란의 시기에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승려들이 무장을 하고 절을 지키게 되었으며, 이러한 활동이 보다 조직화된 것이 승병이다. 비단 전란 시기가 아니더라도 산 속에 있는 절들은 많은 물자와 보물을 소장하고 있어 도적의 습격에 노출될 수 있었으므로 어느 정도 자체적인 무력을 보유할 필요가 있었다.

2. 한국


지나가던 스님. 전쟁기념관에 있는 승장 김윤후의 모습을 그린 처인성 전투 상상화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국사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하지만 몽골군이 토산에 말타고 돌진을 하는 등 고증에 문제가 있는 그림이라 역덕후들한테는 까이고 있다.

2.1. 삼국시대

삼국시대부터 전래되어 남북국시대부터 국교로 나라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한 한국 불교는 '불교를 굳게 믿음으로서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보위해야한다'는 한국 불교만의 독특한 사상인 '호국신앙'과 결부되었고, 이에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승려들은 살생을 금하는 교리를 어기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군대를 조직해 이들을 격퇴하는 데 힘을 보탰다.

한국 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승병은 고려사 최영전에 기록되어 있는 고구려당태종의 침공에 맞서 싸운 3만 명의 승병들이다. 다만 최영이 승병(勝兵), 즉 승리한 병사들을 승려 병사(僧兵)로 착각하고 말했다는 설도 있다.(...) 통일신라때부터 민란이 잦아지다 보니 사원을 지키기 위해 사원에서 자체적으로 경비 목적으로 승병을 양성하기도 했으며,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도 사원의 승병이 군벌로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2. 고려시대

고려대엔 가정이 있고 토지가 있으면서 노역을 하며 승려로서의 생활을 이어가는 '수원승도'라는 승려들을 징발해 전쟁에 동원하는 '항마군'[1] 제도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밖에도 많은 승려들이 국난 극복에 힘을 보탰다. 몽골군이 고려로 쳐들어올때 적장 살리타이헤드샷한 김윤후도 승병이다.

고려의 승병은 그 자체로 독자적 세력이기도 했다. 흥왕사를 비롯한 개성 인근 왕실 원찰의 승려들이 집결하여 최충헌을 공격한 사례도 있었는데, 이것을 근왕세력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혹은 문벌귀족들과 연결되어 있던 사찰에서 움직인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는 최씨 무신정권이 조계종을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등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2.3.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이 펼쳐진 조선시대에는 불교가 이전의 시대에 비해 억압받았고 사원의 토지가 몰수당하는 등 이전과 같은 승병조직을 구성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임진왜란 당시 사명당이나 서산대사 같은 수많은 고승들이 승병[2]을 조직해 왜군과 맞서싸우고 축성에도 종사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조정에서는 승병이 지역방어에 유용했던 점, 사찰들이 산에서 병영보다 유지하기가 쉬운 점을 이용하여 뼛속까지 착취하기 시작한다.[3] 왕실에서 승려 중 도총섭을 임명하여 승병을 통제하는 동시에, 남한산성에 7개의 승영사찰, 북한산성에 11개의 승영사찰을 지어 승병을 주둔시키고 성을 유지시키는 한 축으로 삼고, 임진왜란 때처럼 축성에 계속 종사시키는 등 꾸준히 국왕 직속의 상비전력으로 유지하기 시작한다.

승군이 하나의 요역으로 정착되었으나 각 사찰에서 인원을 징발하는 '의승방번제'의승이 아니라 징병승아닌가로 유지하기엔 무리가 많아서 승병을 보낼 사찰에서 돈을 받는 '의승방번전'으로 바꾸게 된다. 물론 돈으로 때우기 시작하자 부정부패가 만연하기 시작하고, 승병대장인 팔도도총섭은 막대한 비자금을 축적하기 시작한다.[4]영조정조가 이를 막기위해 손을 대보지만 납부금액만 약간 줄고 별다른 성과없이 계속 같은 모양새로 유지되다가 고종 때 되어서 갑오개혁 때 승병제가 폐지되면서 사라지게 된다

3. 일본 소헤이

이 문단은 소헤이로 들어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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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 스님들이 아니고 깡패다


일본의 승병은 '소헤이'라 불리는데 한국의 승병과는 달리 일종의 독립적인 무력집단이었다는 게 특징이다.

헤이안 시대에 이미 일본의 사찰은 봉건영주화 되어가고 있었는데, 유명한 사찰은 귀족들로부터 토지를 시주받아 넓은 장원을 보유하였고 많은 보물과 물자도 사찰의 창고에 쌓여갔다. 이들은 도적으로부터 사찰을 보호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한편 다른 정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승병을 조직하게 된다. 무력에 더하여 종교적 권위까지 등에 엎었기 때문에, 막강한 권력을 지녔던 시라카와 덴노 마저도 히에이잔 산의 승병은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을 정도로 위세가 막강했다. 이들은 수시로 교토로 몰려나와서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깽판"을 쳐댔는데 조정에서도 감당을 못하고 타협을 했을 정도. 사실 이 당시 무력 자체보다는 종교적 권위 탓에 손을 대기 껄끄러웠다고 볼 수 있다.

전국시대가 되자 중앙의 통제가 약해진 틈을 타서 사원 세력은 "깽판"을 치는 정도를 넘어서 실질적인 무력과 통치력을 갖춘 '종교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사원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에 사원 입구 부근에 시장이 생기고[5]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사찰 도시'라고 불릴 만한 형태로 발달했다. 수백 혹은 수십개의 절을 수반한 종단를 기반으로 하여 경제적 이익을 두고 다른 종단의 승병들끼리 싸우거나 심지어 다이묘들과 싸우기도 하였고, 가끔은 다이묘의 세력에 가담하여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들은 오다 노부나가가 이들을 때려잡을 때까지 당시 일본의 혼란을 더 부추겼다. 한마디로 땡추들. 주로 당시 일본의 거대 종파였던 언종이나 태종, 토종 등 웬만큼 커진 종단에 많이 보였다. 그냥 그 당시 종단의 교주들은 종교적 다이묘라고 봐도 된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세력권 내의 영지들엔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도 신라, 고려시대 사찰의 재산과 토지가 점점 늘어나게 되자 이를 방비할 목적으로 승려들이 자체적으로 경비대를 조직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들은 말이 승려이지 온갖 주지육림을 즐겼고, 심지어 떠돌이 낭인이나 도적을 절에서 고용해 머리만 깎여놓고 승병이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무신론자인 오다 노부나가(하지만 그는 불교를 탄압한게 아니라 단지 세금을 내라고 했다. 그 점만으로도 승병들이 맞서싸웠기에 일단 적은 가혹하게 뭉개는 오다에게 쳐죽일 적이 된 셈)가 자신에게 허구한 날 대들던 히에이산 엔랴쿠지 승단(천태종 계열)이 있었다.

오다는 그래도 여러번에 걸쳐 세금만 내면 그냥 뭘 하던지 신경 안 쓴다고 했지만 이들은 불적(佛敵)이라며 저항했고 결국 참다못한 오다는 엔랴쿠지를 대대적으로 공격하려 했는데 이에 아케치 미츠히데가 오랜 역사를 가진 엔랴쿠지를 불바다로 만드는 것은 민심을 잃기 쉽다고 반대하자 오다는 "아니, 민중들은 되려 썩어빠진 엔랴쿠지를 불바다로 만드는 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라며 기어코 명령을 내려 불바다로 만들어버렸다. 물론 이들도 죽기살기로 덤벼들었지만 총기로 중무장하고 전문적인 전투 훈련을 받은 오다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으며 불바다가 된 승단 쪽에선 여자들도 엄청 나왔고 옷도 챙기지 않고 나오는 승려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본 오다는 분노하면서 "말로는 청빈과 경건함을 외치는 혹세의 무리들이 바로 저런 것이다! 죄다 죽여버려라!"라 말하고, 그렇게 수천에서 수만여명이 학살당하자 "저놈들이 말하는 불지옥이 나타난 것뿐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시 땡중들의 횡포에 학을 떼던 민중들은 노부나가의 행동을 영웅시했다는 기록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걸 보면 오다도 백성들이 그 당시 세속화한 승려들의 횡포에 대하여 어찌 생각했는지 사전조사를 다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엔랴쿠지 토벌에 주저하던 미츠히데 역시 평소에 "仏のうそは方便と云う。侍のうそは武略と云う。士民百姓はかわゆきことなり。"("부처의 거짓말은 방편이라 하고, 사무라이의 거짓말은 무략이라 한다. 사민 백성들이 가련할 따름이다.")라고 하며 당시 백성들이 전쟁뿐만 아니라 승려들에게도 온갖 고초를 겪는다는걸 알고 있었다.

그나마 당시 기록에서도 엔랴쿠지에 죄다 썩은 자들만 있지는 않아서 오다에게 항복하고 이 기회에 제대로 승려답게 청빈하게 살자고 하던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엔랴쿠지에서 배신자로 몰려 학살당하거나 쫓겨나왔다. 이들 중 일부는 오다군이 쳐들어오자 상세하게 길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다. 오다는 '더러운 배신자가 아닌가?' 했지만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그들은 엔랴쿠지가 너무나도 썩어서 결국 오다님의 말대로 불로 다 태워야하기에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실토했다. 그리고 이들은 마지막 부탁이니 엔랴쿠지 창건 이후 계속 밝혀온 법등 하나만은 남겨 처음의 뜻을 밝혀 다시는 더럽히지 않도록 해달라며 애원했고 딱 1개의 법등이 남아서 지금도 일본에 있다.[6]

물론 다이묘들에게 있어서 불교 종단들은 중요한 정치적 수단이자 돈만 있다면 쉽게 군사력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노부나가를 싫어하던 다른 다이묘들은 맹렬하게 노부나가를 비난했다. 그 중에서도 열렬한 불자이던 다케다 신겐이 경악하여 불타버린 엔랴쿠지를 중건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잇코종 계열의 소헤이인 혼간지 세력은 8세 법주 혼간지 렌뇨의 카리스마와 능력으로 오오미, 호쿠리쿠 일대 세력을 구축하였다. 하지만 렌뇨의 아들인 간쇼지 렌쥰과 혼센지 렌고가 서로 대립하여 내전을 벌인다. 결국 패배한 렌고는 파문 당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은 내분에 니치렌종과 롯가쿠 사다요리, 아사쿠라 타카카게 등 주위 다이묘들의 공격으로 야마시나 혼간지가 불타버리는 지경에 이르자 견디지 못한 10세 법주 혼간지 쇼뇨는 본산을 지금의 오사카인 이시미야 혼간지로 옮긴다. 물론 잇코종은 각지에서 탄압 받는 건 달라지지 않아서 미카와에선 마츠다이라 가신들까지 잇코종에 가세하여 잇코잇키를 일으키기에 이른다.[7] 쇼뇨의 아들인 11세 법주 혼간지 켄뇨는 더욱 더 극렬하게 다이묘들에 대항하는 정책을 펼쳐 각지에서 잇코잇키를 일으켰다. 이 때문에 고생한 다이묘가 우에스기 겐신오다 노부나가. 특히 다케다 신겐은 겐신을 견제하기 위해 호쿠리쿠 일대의 잇코종 신도들에게 잇코잇키를 사주하였다.

켄뇨는 처음에는 노부나가에 신종하는 자세를 취했으나 이후 압박이 거세지자 그를 불적으로 규정하여 10년에 걸쳐 항전을 펼쳤다. 노부나가는 1570년 혼간지 세력과 미요시 3인중이 힘을 합치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이시야마 혼간지를 공격하나 노다성, 후쿠시마성에서 대패하고 만다. 여기에 아자이 나가마사, 아사쿠라 요시카게, 롯가쿠 요시카타까지 혼간지 세력에 가세하자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중재로 혼간지 켄뇨와 화의를 맺는다. 여담으로 사이가 마고이치의 사이가슈는 처음에는 오다군에 가세했으나 이들도 잇코종 신도들이라 이후 혼간지 세력에 가세한다.

이후 노부나가는 이세 나가지마에서 일어난 잇코잇키로 피똥싸게 된다. 혼간지의 방관 시모츠마 라이단이 일으킨 잇코잇키로 여러 일족과 장수들을 잃는 등 매우 고전한다. 그러다 잇키세력이 식량이 떨어져 항복하자 모두 총살에 처하고 나가지마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1574년 타카야성 전투에서 오다군이 승리하나 다케다 카츠요리가 침공해오자 결국 다시 화의를 맺는다. 물론 이 화의도 그리 오래가지 않아 1576년 텐노지 전투가 일어난다... 결국 1580년 오오기마치 덴노의 중재로 혼간지 켄뇨가 귀순하면서 이시야마 전투는 끝이 나게 된다. 이때 혼간지는 오다군에 계속 저항하자는 큰아들 혼간지 코뇨와 귀순하자는 3남 혼간지 쥰뇨가 대립하였고 켄뇨의 아내인 뇨쥰니가 쥰뇨를 후계자로 지지하자 히가시, 니시혼간지로 분열하고 만다.

종군기자로 유명했던 이탈리아 여기자인 오리아나 팔라치기독교이슬람, 그리고 유대교를 겉으로만 평화라고 외치고 서로 죽이고 죽여대는 학살 종교라고 비난하면서 불교가 그나마 평화의 종교로 높게 봐줄 종교라고 칭송하자 유럽 역사학자들이 반론하며 내세우던 게 바로 일본 승병들이었다. 팔라치의 저서인 《나의 분노, 나의 자긍심》에 따르면 위와 같은 유럽 역사학자들의 반론에 대해서 팔라치는 불교가 부처의 이름으로 살생을 내세웠냐면서 다시 반론했고 누구도 이 재반론에 또 다시 반론하지는 못 하였다…고 한다. 정말로 팔라치가 자신의 저서에서 써놓은 것처럼 아무도 반론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건지에 대해선 이제 와서 알 길이 없다만(…).

실제 위에 언급된 잇코 잇키 세력들 중에는 '부처님을 제대로 믿지 않는 자들은 불적' 이라는 명분으로 살생을 자행한 사례가 존재한다(…) 전투승병의 아이덴티티 유럽인들이 디테일에서 밀린 것인지, 팔라치가 1회 공방 이후에 찔끔찔끔 제기되는 재반론들을 '질질 끄는 키배의 미련'이라고 생각해서 자서전에 '이겼다! 끝!' 이라고 결론을 내렸는지는 모를 일. 본래 팔라치의 해당 저서가 종교분야 뿐만이 아니라 사회형태(싫어하는 형태에 대한 철저한 부정, 미국형 자유주의에 대한 찬양)에 대한 견해가 엄청나게 극렬하게 표현된 점으로도 이래저래 이야기를 많이 듣는 책이다.

그래도 일본 전국시대의 범위적 한계, 세력으로서의 지배적 위치를 획득하지 못한 점도 있어서, 대체적으로 일본의 부패 승려들은 유럽에서의 기독교 수준으로 대형 스케일의 악행을 저지르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여기서 '부처님 말'이 아니고 '우리 말'이라는 점이 포인트다 사실 믿으라면 "우리와 같은 동료 되어라"는 셈?

하지만 이런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가 부패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흔하게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굳이 따지자면 비슷한 자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묘법연화경(법화경)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8] 종파인 일련종, 정토진종 계열의 신도들(흔히 이코이키라고 부른다)이 있었다. 이들은 점점 시대가 지나고 초창기에 비해 세력이 커지자 자신감이 생겼는지, 자신들의 종교를 강권하는 성격도 가지게 되었으니 그나마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쪽은 정상적인 불교 집단이라기보다는 민란세력에 가깝기도 하고[9] 게다가 혼간지 켄뇨나 여러 승단이 전투용으로(...) 신도들을 선동해버려서 민란을 일으킨 정도이므로 광신도라기엔 뭔가 아리송한 면이 있다. 뭐 일본 불교는 오랜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이런 것도 많아져 일본의 승병을 아랍 및 서양 지역의 광신자와 같다고 보기에는 좀 모호한 면이 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광신도가 아니라 겉으로 종교를 내세워 특권을 누리고 권세를 휘두르다가 반대파가 생기면 스스로 광신도처럼 보여 내세를 들먹이며 겁을 주는, 완벽히 속세의 권력 맛에 찌들은(...) 자들이었다.

  • 사실, 이 종파들이 이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보인것은 부패하기 전부터 그랬었다. 이유는 다름아닌 묘법연화경 때문이었는데, 여기서 묘법연화경을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불교계의 마지막 불경으로서 석가세존이 입적하기 3년전부터 설법한 내용들을 담은 경전이다.
    그런데, 그 내용들이 그 시대 기준으로는 하나같이 충공깽스럽다. 남자와 여자 모두 똑같이 부처가 될 수 있으며, 거기에 부처가 되는 것은 자신의 노력에 따라 충분히 어렵지 않은 것이고, 지금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세는 내세와 같이 당연히 가치있고 중요하며, 왕이나 귀족도 생전에 악하게 행동했다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한술 더 떠서 기복신앙에 훨씬 더 엄격해졌다. 이게 별것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서 이 설법들이 2천 5백년 전에서생겼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있었던 그리스에서도 남녀평등은 없었다. 여기서 남자와 여자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현세도 중요하다는 것은 이전경에선 내세만을 중시하고 현세엔 별다른 설명이 없어 자칫 불교가 대부분 내세를 중시하는 종교들의 최대 약점인 '내세 중심으로 인한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기득권층의 권력 보호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 것에 확실히 선을 그은데다, 현세 역시 내세와 같이 중시한 것은 쉽게 말해서 지금 살고 있는 삶이 하찮고 쓸모없는 것이 아닌, 자신의 행동에 따라 충분히 가치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거기에 국가에 따라선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지만) 신의 자손이거나 신 그 자체이기도 한 왕과 귀족들이 특별 대우 그딴거 없고 악행을 했다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같이 그 당시에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혁명적인 설법은 석가세존이 얼마 말하지도 않았는데 나라한 대부분이 견디지 못하고 떠나갈 정도였다! 이렇게 그 당시에는 탄압 받을만한 내용이 가득하니 법화경이 주경인 종파들도 과격하게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기득권층은 어떻게든 법화경 전파를 막으려고 탄압했을테고, 그 반발로 더 강경해지는 악순환이...

  • 이같이 주경이 똑같은 묘법연화경인데도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천태종단들은 왜 과격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은 애초에 천태종이 밀교적인 성격과 도교(도가가 아니다!)의 선도 사상에 영향을 받고, 기득권층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현실과의 타협 때문이었다. 이게 언뜻 비굴해 보일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를 기준으로는 절대 잘못이 아니었다. 어쨌든 포교는 해야 하는데 민중은 내세보다는 현재의 고단한 삶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할 복을 내려줄 존재를 원하지, 지배층은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것은 없애버리지, 거기에다 기복신앙을 부정하면 원래 있었던 전통 종교들과 충돌할 위험도 있었다.
    이는 천태종은 일련종과는 달리 '법화경만 제일'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태종은 법화경을 중심으로 여러 대승경전들을 함께 인정하며, 다른 경전은 모조리 무시하고 오직 법화경 만을 주장하는 것은 일련종 특유의 관점이다.

이케가미 료이치가 그림을 그린 만화 오다 노부나가에서도 이코이키들이 죽창만 들고 우리 종파 아니면 죄다 불적이라며 죽어라 덤벼드는 게 소름끼치게 묘사되기도 한다. 이들은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의 은혜로 낙원이 열리느니 아미타불 아미타불, 불적에게 지옥이 기다리고 있느니~'만 외치며 죽창으로만 덤벼든다. 이건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그린 부분이다.

오다군도 피해가 제법 커서(이들은 비가 오는 날을 주로 공격하여 총포를 쏘지못하게 했다) 오다 노부나가도 안 그래도 다른 영주들과 전투를 벌일 일도 많은데 별 또라이광신도들이 이러니 무서워서분노하여 광신자들에게 공포를 알려줘야 한다면서 고른 방법이 이코이키 승단에 들어간 자들의 3족을 멸하는 방법이었다. 광신도들의 식구나 친척까지 싸그리 죽이는 방법인데 꽤 효과가 좋아서 자신은 극락에 간다고 나서던 광신도들이 상관도 없는 3족까지 죽게 할 수 없다면서 겁을 먹거나 포기하고 나가는 경우도 속출했다.이코이키 간부들은 죽은 3족도 극락에 간다고 부랴부랴 이들을 막으려고 했으나 세력이 크게 줄었고 혼간지를 비롯한 이들을 지원하고 만들던 거대 승단들이 오다에게 굴복하자 항복하여 사라진다. 몇몇 이코이키는 독립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들도 엔랴쿠지와 마찬가지로 오다 노부나가에게 철저하게 박살나 뿌리뽑힌다.

4. 현대

태국에서 21세기 들어와 승병이 조직되었다. 사실 태국 항목을 참조하면 알 수 있듯이 이 나라는 원래 군대 아니면,승려가 되는 나라이며 승려가 되었다가 군인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군인이었다가 승려가 되는 게 어렵지 않다. 승병이 조직된 곳이 바로 말레이시아 국경에 있는 빠타니·얄라·나라티왓 주이다. 이 3개 주는 원래 이슬람이 대다수인 곳인데 과거 타이가 강제로 합병하며 이슬람 인구와 허구헌날 무력 충돌이 벌어지는 곳. 이 곳에 거주하는 승려들이 승병으로 조직되면서 M-15로 무장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 태국 내에서도 반발이 크다. 이 승병이 말만 승려이지, 불교도 경호라는 명목으로 군인을 승려로 위장한 것이라는 비난에서부터 불교는 평화의 종교인데 이렇게 무장하여 비무장 무슬림을 정당방어 및 테러 진압이라며 사살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태국 내 승려들도 반발이 크다.

여담으로 한국에서도 유신정권시절 사회별로 민방위대가 조직되면서 호국승군단이라는 유사 승병단체가 조직되기도 했다. 당시 불교계에서 군대 가지 않고 수도생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 청와대에 찾아가 박정희 대통령과 논의하면서 만들어진 조직이라고. 20세 이상, 70세 이하 승려들은 군대 안 가고 봄 가을 자체적으로 군사훈련을 해서 해인사와 통도사에서 사단장이 참관해서 훈련 상태를 체크했다고 한다. 특별한 사유없이 훈련에 빠지면 승적이 박탈되었다고 하고, 호국승군단의 노래라는 군가도 따로 있었다.#

유신독재 붕괴 후에 사라지고, 승려들은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병역에 복무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가족이나 옛날 애인들이 뻔질나게 면회와서 환속하는 젊은 승려들도 꽤 많고, 어떤 승려는 자신이 승려 임을 알리지 않고 티도 내지 않아서 제대할 때까지 부대원들이 몰랐다고 한다.
어떤 젊은 스님의 경우는 승복에 고무신 차림으로 훈련소에 갔더니 개독신자로 짐작되는 장교가 복장이 심히 불량하다며 꼬장을 부리며 연병장 뺑뺑이를 돌렸다. 그런데 다행히도 안면 있는 신자를 만나 얼차려를 그만할 수 있었다. 그 신자분은 사단장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스님은 자대가기 전까지 그 개독 장교를 다시 볼 수 없었다고.

5. 대중문화에서의 승병

주로 역사를 주제로 한 게임들에서 많이 등장하며, 전투에 직접 나서기보다는 보조 마법사의 측면이 강하다.

5.1. 임진록(게임)

조선과 일본 모두 등장하는데, 사용 마법은 약간 다르다. 둘 다 공격력 게이지=마력이라 너무 적을 공격하다 보면 마력이 부족해 공격도 마법도 불가능해진다.
임진록2/조선의 반격에서는 조선군의 힐러로 등장. 초기에는 세 국가의 힐러 중 제일 마력이 적고 치료마법밖에 없는 전형적인 힐러였으나, 후에 패치로 2번째로 마력이 많은 힐러가 되어 조선 영웅들의 무한마법난타가 쉬워졌다. 그러나 여전히 사용마법은 치료마법 뿐이다.

5.2. 천년의 신화

천년의 신화에서 신라의 힐러로 등장. 고구려백제는 각각 도인과 박사가 대체한다. 여기서는 삼국의 힐러 중 제일 좋다.

5.3. 라크무

트리거소프트에서 만들다 만 RTS게임 라크무의 종족 중 동양계인 위국군의 힐러로 등장. 여기서의 승병은 발해의 호국불교 사상에 기초하여 무술과 술법을 겸비한 배틀메이지라는 설정. 때문에 의외로 강한 체력에 근접전을 하며, 치료마법과 디버프 해제 마법, 근처의 적에게 유도 화염부적을 날리는 기술을 쓴다. 폭찰 뿌리기

5.4. 토탈 워: 쇼군2

승병(Warrior Monk) 계열에 해당하는 여러 병종이 존재한다. 역사 고증인지, 상당히 강력한 최종 테크급 병과이며[10] 나기나타와 활, 화승총 등을 사용하고 주 종교를 불교로 유지할때만 사용 가능하다. 기독교로 개종하는 순간엔 양성 불가는 물론 보유한 병종마저 모두 사라진다.
우에스기 가문(이쪽은 고증에 안맞다.)과 이코이키(이쪽이 맞다)의 경우 승병에 특화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5.5.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 아시아 왕조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 아시아 왕조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탐험가로 수도승이 등장하며,[11] 일본과 중국 지형에서 교역소를 지어 동맹이 가능한 중립 종교단체 중 소림사와 선불교 사원에서 각각 소림사 등패수 과 소헤이를 생산 가능하다. 성능은 둘다 괜찮은 편. 이외에 고용 가능한 왜구 중에 장님 승병 궁사가 있다. 컨셉에 따르면 두 눈이 안보이는 대신 도력으로 물체를 맞춘다고 하는데, 사정거리가 무려 18이나 된다. 오오 그거슨 부처의 위엄리신?!

5.5.1. 소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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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교 원주민 용병. 나기나타 기병과 같이 나기나타를 든 중보병.

5.5.2. 콘시 야마부시 승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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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사관에서 국정책을 사용하면 시노비, 인술사와 함께 뽑을 수 있다. 마치 도깨비 방망이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둔기인 금쇄봉(金砕棒)을 장비한 중보병으로 꽤나 강력한 유닛.

야마부시 승병과 시 야마부시 두 종류 유닛이 있다.

5.5.3. 잇코잇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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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 대전사와 같은 일본의 영웅유닛. 중국 소림사 승려와도 닮았지만 활을 사용하는 원거리 공격이다.

체력이 얼마 남지않은 적에게 크리티컬을 주는 패시브가 있고, 다른 수도승처럼 감시자를 기절시킨다. 사쿠마 키치로처럼 연막탄을 터뜨려 홈 시티로 귀환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건물에게 폭탄을 던지는 특수 능력도 존재한다.

사실 이들은 열성 신도들이지 승병은 아니다. 그래서 삭발이 아니라 촌마게를 하고 있다.

5.5.4. 장님 수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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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감시자이자 수도원에서 고용 가능한 용병.

장님이라면서 사거리가 18이나 되는 을 쏘는 비범함을 보인다 지팡이는 장식이고 리신이 아니다

5.5.5. 소림사 등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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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패로 무장한 소헤이처럼 중국 소림사의 원주민 용병.

이 등나무로 만든 방패로 물 위를 배처럼 이동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게임 상에서는 수상이동 불가.

5.6. 징기스칸 4

해당 게임에선 '무사'와 함께 일본 문화권 고유 유닛 중 하나로 나온다. 보병 유닛 중 공격력이 강력한 편이며, 일본 문화권에 속한 인물들과 상성이 좋다.

5.7. 명량

병력이 부족한 조선 수군을 지원하기 위해 승병들이 명량해전에 참전한다. 판옥선에서 격군들이 노를 젓는 동안 기도를 하고(...) 격군들이 쉬는 동안 노를 젓는 장면이 나오며, 무기를 들고 갑판에서 왜군들과 백병전을 벌이는 장면도 등장한다.

6. 기타

영어로 굳이 번역하자면 Monk warriors[13]인데, 이걸로 검색하면 백이면 칠십은 소림사가 나온다. 소림사는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권법등 무술계에서 무술의 본산으로 취급되는데다가, 나라 때는 왜구를 상대로 승병을 조직하여 싸웠고, 시대에는 만주족 정권에 맞서 반청운동을 하다가 불타기도 하는 등의 이력을 갖고 있어 승병으로 볼 수도 있지만, 위의 이야기들이 다 날조라는 설도 있어 애매하긴 하다.

종교를 기반으로 하여 무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성당기사단이나 예수회를 이런 승병의 일종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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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도를 얻는데 해가 되는 마귀들을 굴복시키는 군대라는 뜻. 항마력과는 관계가 있나?
  • [2] 이전 시대처럼 승려만으로 구성된 군대라기보다는 승려들이 주축이 된 의병에 가깝다.
  • [3] 억불정책을 통해 신나게 찍어누르고 을 뺏어 서원을 만들기까지 하던 유림들과 양반들이 승병을 유지하고 그 유지비로 정기적인 예산도 편성 안하는 방향으로 바뀐 것은 착취라고 말하기도 충분할 지경이다.
  • [4] 이 비자금이 숙종 때부터 왕실로 흘러들어 갔다는 추정도 있다. 팔도도총섭 임명도 왕실이 하고 승병이 국왕 직속인 점을 생각해보자.
  • [5] 지금도 유래가 오래된 일본 사찰의 진입로에는 상점가가 줄이어 있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다.
  • [6] 쿠도 카즈야 원작, 이케가미 료이치 그림의 만화 노부나가에선 이 이야기와 다르게 매우 강한 승려 한 사람이 양심적으로 엔랴쿠지의 부패를 걱정했고 오다군이 쳐들어오자 이 법등을 멀리 안전한 곳에 둔 다음, 홀로 오다군을 베어가며 무쌍을 찍는다. 결국 오다군이 조총 사격으로 집중하여 그 승려를 죽이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는 죽어가면서도 미소지으며 쓰러지고 지금까지 남은 법등이 불을 밝히는 것으로 나온다.
  • [7] 이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책사인 혼다 마사노부가 잇코잇키에 가세한 것으로 유명하다.
  • [8] 법화경을 주경으로 세웠다는 점에서 천태종과 입장이 비슷했으나, 천태종은 다른 경전과 선종의 수행법도 인정한 데 반해 (다른 불경의 내용들도 모두 석가모니가 설법한 것들을 담은 것이므로 당연한 것이다.) 이쪽은 극단적으로 염불, 선 수행, 기복적 신앙(기복신앙은 원래 초기 불교에서도 부정했으나, 후에 민중의 불안 때문에 점점 불교가 기복신앙화 되어가는 이유 때문이다)을 부정했으며 오로지 법화경만을 인정한다. 더 쉽게 말하면 법화경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최소 극락행, 성실히 불도에 정진했다면 성불. 하지만 법화경을 믿지 않는 다른 종파들은 모두 지옥행.
  • [9] 초기엔 일련종은 워낙에 과격한 주장때문에 지배층은 당연히 인정하지 않았고, 정토진종도 일련종으로 분류될 정도여서 인정받지 못했으니 민란 세력이라고 불려도 별 수 없었으나, 전국시대 정도 되면 세력이 너무 커져서 다이묘들도 별 수 없이 일단 불교 종단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절들을 짓고 조직을 확립해서 이미 어엿한 종단으로 발족했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지만, 민주주의가 정착한 현재에는 별로 과격한 종단도 아니다. 오히려 보수적으로 보일수도 있을 정도로 시대가 발전해서...
  • [10] 상당히가 아니라 정신나간 스텟치를 보유하고 있다. 유일한 약점이라면 방어가 너무 낮아서 원거리 유닛한테 덤비면 좀 깨지고 들어간다는 것이지만, 갑빠 업그레이드를 해갖고 가면 그마저도 보완된다. 물론 갑빠 테크를 끝까지 탈 수 있는 지역이 상당히 적고, 그에 들어가는 비용도 무지막지하지만.
  • [11] 인도는 브라만교의 브라만이라 논외.
  • [12] 번역자의 무지함으로 인해 '이코이키'로 잘못 번역되었다.
  • [13] 소헤이 항목에 있는 사진에서는 Fighting Monk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