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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last modified: 2016-10-23 01:28:09 Contributors

Steven Paul Jobs

Stay hungry, Stay foolish.
 - 2005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졸업생들에게 축사하면서 맨 마지막에 사용한 인용구. 이는 잡스가 연설에서도 언급했던 Whole Earth Catalog의 1974년 판에 씌여있던 말이다[1]. 잡스가 생전에 인용했던 말 중 가장 유명해진 말이기도 하다.[2]



생몰 1955년 2월 24일 ~ 2011년 10월 5일

Contents

1. 개요
2. 생애
2.1. 유년 시절
2.2. 애플의 시작
2.3. 애플에서 쫓겨나다
2.4. NeXTStep
2.5. 픽사
2.6. 애플로 복귀
2.7. 아이팟 신화
3. 경영 철학
4. 인간성 논란
5. 트리비아
6. 암투병과 사망
7. 그가 남긴 것
8. 매체



1. 개요

세상을 바꾼 혁신가
빌 게이츠와 함께 21세기 자수성가의 끝판왕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이라는 거대 전자기기 및 소프트웨어 회사를 이룬 창업주이자 창조주. 그리고 마케팅의 천재[3][4]

2. 생애

2.1. 유년 시절

steve-jobs.jpg
[JPG image (Unknown)]
수 많은 애플의 기기로 표현한 잡스
미국 캘리포니아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인 어머니와 시리아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부 압둘파타 존 잔달리는 시리아 정치학부 이민자로 후에 정치학과 교수가 되었으며 현재는 네바다 주에서 카지노의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그러나 그들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는데다 당시 잡스의 생모는 아버지의 반대로 잔달리와 헤어진 상태였으므로, 태어나자마자 아이를 입양보내려 했다. 이에 잡스는 친부모와 헤어져 폴 잡스와 클래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된 불우한 과거를 지니고 있는 사나이.[5] 처음부터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던 빌 게이츠와는 좀 다르다. 이름도 양부모가 지어준 것.[6]

폴 잡스 부부는 양아들을 자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키웠으나[7] 어렸을 때 잡스는 부모 속을 많이 태우는 아이였다고 한다. 아버지 폴의 말에 따르면 스티브는 그렇게까지 천재성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고아라고 아이들이 놀리는 바람에 아이들과 노는 대신 차고에서 안쓰는 부품을 모아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의 생부모는 정식으로 결혼, 소설가이기도 한 잡스의 여동생 모나 심슨 을 낳았는데, 둘은 성인이 될 때까지 서로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으나, 만난 후에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그 친부모라는 작자들은 결혼한 후 몇 년 만에 또 이혼했다.(...) 잡스는 "양부모"라는 단어를 싫어하는데, 친모와는 만난적이 있지만 친부와는 끝내 만나지 않았고 폴과 클래라 잡스 부부만을 진짜 부모로 여기고 있다.

잡스의 사업가 인생은 고등학교 때 전자공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별볼일 없고 꿈없이 살던 잡스는 갑자기 전자공학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HP사에서 방과후 수업을 들었다.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공부해 197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HP(휴렛 패커드)에 여름 인턴으로 채용된다. 그 곳에서 애플을 같이 세운 동업자인 워즈니악을 만난다. 인턴이 끝나고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 칼리지에 입학해 한 학기만에 전공이 맘에 들지 않고 대학생활에 흥미가 없다는 이유로 중퇴했다고 알려졌으나 최근 스탠퍼드 대학에서의 연설에 의하면 부모님의 저축을 몽땅 투자할만큼 자신의 대학생활이 가치있지 않다고 생각해서 였다. 잡스의 전공은 철학이었는데, 대학을 중퇴 많은 교양 수업을 청강한 것이 나중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나중에 UI용 글씨체를 디자인할 때 서예 강의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8] 동양철학에 특히 관심을 보였는데 그 영향으로 종교는 불교. 결혼할 때도 '고분 치노'라는 일본인 스님이 주례를 섰다고 한다.

2.2. 애플의 시작

젊었을 적 훈남스티브 잡스
그 뒤 1년 정도 문학철학에 심취해 있다가, 우연한 기회로 아타리(게임회사)에 게임 디자이너로 취직하게 된다. 그곳에서 (Pong)과 같은 초기 비디오 게임에 빠져버린 잡스는 컴퓨터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아타리에서 또 1년도 못 채우고(...) 사표를 낸다. 그 때 워즈니악은 아직 HP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가 운영하고 있던 '손수 컴퓨터 만들기 클럽'에 가입한 잡스(20세, 남, 무직)는 컴퓨터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그 후 워즈니악과 잡스는 의기투합하여 직접 컴퓨터 제작에 착수, 1976년 애플 I이라는 PC역사상에 길이 남을 기종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을 롤아웃한다.[9] 비록 나무 케이스에 모니터조차 없는 투박한 플라스틱 기판과 실리콘칩 덩어리였지만, 꽤 큰 반향을 일으키며 그들에게 꽤 많은 돈을 안겨주었다. 워즈니악의 아버지는 "왜 그 놀고먹는 백수(잡스)와 45:45로 나누느냐?!"라고 했다고 한다.[10]

처음 애플I을 개발했을 때 당연히 이것을 받아주려는 가게는 없었는데 이때 컴퓨터라는 것은 큰 회사나 대학, 정부기관에서만 쓰는게 일반 적이었고 PC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정의도 돼있지 않던 시절이다. 그런데 잡스가 이것을 한 가게에 자신의 유창한 말빨(...)로 팔기로 구두계약을 하고 생산을 했는데... 애플 I의 사진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모니터고 뭐도 없이 요즘으로 치면 컴퓨터 본체만있는 기기다. 당연히 모니터와 기타 입력장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주인은 당황하지만 대인배 적인 마인드로 그걸 그대로 판다. 그리고 그 뒤의 일은 다들 아는 바와 같이...뭐야 뭔데 말빨 영업의 신 고 잡스옹

애플 I의 가격은 666.66달러였다(...). 혹자는 잡스와 워즈니악이 악마의 숫자 666을 좋아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그냥 숫자가 반복되는 게 멋져서 그랬다고(...).

사실 애플 I은 거의 '기판만 있는' 수준의 물건이라 케이스 등은 자작 해야 하므로 거의 요즘으로 보면 '기판 키트' 수준의 물건이었다. 대량 생산되지도 않았고 동네 상점에다가 영업망을 뚫어서 판매했다. 구조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어서 워즈니악만이 A/S 업무를 할 수 있었다. 제대로 상업적으로 출시된 제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애플 II, II+ 등 후속 모델들이 차례로 성공하면서 명성과 부를 얻게 되었다.

2.3. 애플에서 쫓겨나다

하지만 애플 II, II+ 이후로 애플은 위기에 봉착하기 시작한다. 일단 애플 II는 모도어 등의 경쟁을 받기 시작하며,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들지 않고 스티브 잡스의 개입이 심했던 애플 III망했다. 해당 항목 참조.

애플 III가 망하자 잡스는 GUI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리사 프로젝트와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동시에 시작한다. 원래 잡스는 자기 딸의 이름까지 붙인 리사 프로젝트를 맡고 있었다가 리사팀에서 쫓겨나서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된다.

이후 잡스는 자신을 쫓아낸 리사 프로젝트에 대한 경쟁심이 불타오른 나머지 매킨토시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기 시작하며 주 90시간 근무를 시키는 등 공돌이를 갈아넣기 시작하고 애플 II 팀, 리사 팀, 매킨토시 팀은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매킨토시 팀이 애플 본사에 걸어놓은 해적기를 리사 팀이 뺏어가기도 하고, 매킨토시 팀이 "주 90시간 근무 야 신난다!" 라고 하자 리사 팀은 "주 70시간 근무했는데 매킨토시보다 빨리 출시할 예정이다!" 라고 하고, 애플 II 팀은 "주 50시간 근무로 회사를 먹여살린다!"라며 서로를 디스하기도 했다(...).

또한 잡스가 회사에 "리사 팀은 정말 형편없는 팀이다. 그들은 회사에 도움이 안되는 팀이니 리사 팀을 해체시키고 매킨토시에 올인하자." 라고 주장한 사실이 리사 팀에게 전해지자 리사 완성에 오기가 생긴 리사 팀의 개발자들은 "리사가 출시되지 못하면 집단 사표를 쓰고 회사를 나가겠다." 고 선포하였다. 당시 막 들어온 존 스컬리는 애플 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잡스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서 리사 팀을 매킨토시 팀에 병합시키려고 하였고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리사 팀과 매킨토시 팀의 병합이 거론되자 연봉 문제가 터지는데, 당시 잡스의 의해 반강제로 1 ~ 2만 달러를 받으면서 주 90시간 노동을 하던 매킨토시 팀은 자신들보다 일도 덜하는 리사팀이 연봉은 5만달러나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분노가 치솟아올랐다. 잡스는 매킨토시 팀에게 보너스 제공을 약속하면서 잠재우는데 성공...했더니 이번에는 그들보다 적은 연봉으로 일하고 있었던 애플 II 팀이 들고 일어났다.

이 잡스가 몰고온 대형 폭풍은 잡스의 애플 내에서의 위치를 위험하게 만들었다. 결국은 이사진은 물론 갓 들어온 존 스컬리와 계속해서 의견 충돌을 일으켰고, 이에 스컬리를 쫓아내기로 결심한 잡스는 과감하게 이사회에서 투표를 걸었는데, 이미 위의 사건사고들로 인망도 잃을 대로 잃었고 실적도 부진했고 그러면서 친목질도 심각했기 때문에 때문에 그냥 졌다(...). 이리하여 1985년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나중에 이 조치를 회사가 악의적으로 선량한 잡스를 내쫓은 것처럼 설명하는 곳이 많은데, 잡스 자신이 자초한 거다.[11] 당시의 잡스는 정말 뭔가... 심했다라고 쓰고 정신줄 놓고 있었다고 읽는다(...).

이때에 투자처를 찾던 그는 그의 모교인 Homestead High School의 선생을 찾아 투자해주지 않겠냐는 질문을 했고, 당시 그의 성공 가능성을 그리 좋게 보지 않은 선생은 그러겠노라고 해 놓고 정작 입금은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생은 후에 잡스가 성공한 사실에 땅을 치며 후회하며 아직도 선생노릇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학교에도 애정이 남아 있는지 애플 사의 컴퓨터를 종종 보냈다고 카더라.

2.4. NeXTStep

쫓겨날 때 엔지니어 몇 명을 같이 데리고 나와 NeXT라는 회사를 차리고 NeXTStep이라는 이름의 차세대(그때 당시) 컴퓨터 개발에 매진했다. 이 때도 여러가지 기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완전 자동화 된 공장, 화장실이 하나만 있는 회사 빌딩 같은 것들.

그것의 일환으로 1986년에는 루카스필름에서 CG를 담당하고 있던 픽사를 인수했는데, 이때는 NeXT프로젝트의 일환으로써 인수한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결정은 잡스의 뜻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아 버렸다.

잡스가 온갖 열정을 쏟았던 NeXT는 기술적으로는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시장에서 참패한 반면,[12]픽사는 틴 토이라는 토이스토리의 원조격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다. 어떻게 보면 안습.

결국 잡스는 결단을 내려 NeXT의 생산을 1993년 완전 중단했다. 하지만 NeXT 자체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NeXT의 OS인 NeXTStep은 뒷날 애플에서 맥 OS X과 결국 iOS의 기반이 되었다. 사실상 지금의 맥은 매킨토시 클래식보다는 NeXT의 후계에 더 가깝다.

2.5. 픽사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픽사는 최초에 잡스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위해 구입한 회사였다. 픽사는 당시 소프트웨어 개발팀과 그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기 위한 기술데모 및 3D 애니메이션 외주를 맡던 창작팀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애초 잡스가 픽사를 인수한 이유는 오로지 자사 컴퓨터에 킬러 소프트로 탑재할 소프트웨어가 필요해서였다. 그런데 존 라세터의 회상에 의하면 처음 스티브 잡스는 회사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창작팀이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을 본 뒤, "누구 작품이냐?"고 묻고 대답을 듣자. 그 이후로 창작팀에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픽사는 500만 달러의 적자를 냈는데 당시 잡스의 다른 회사도 적자행진 중이었고 애플은 넥스트에 특허소송을 걸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전혀 간섭하지 않아서 당시의 잡스를 "보기 드물게 관대한 투자자"로 묘사한다. 창작팀은 잡스가 전혀 간섭하지 않아서 아직도 이 때 근무했던 픽사 창작팀 직원들은 스티브 잡스를 사장이라기 보다는 투자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회상한다.

이후 픽사가 3D 애니메이션 틴 토이를 발표하면서 영화제에서 시상을 하고 호평을 받게 되자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 자기 욕심을 버리고 3D 애니메이션 제작을 지원해주게 되었다. 잡스는 디즈니의 주식을 다량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디즈니에서 픽사 애니메이션을 스폰서하고 마케팅을 담당하도록 로비를 했고, 덕분에 1995년 개봉한 토이스토리는 대 히트를 기록한다. 그리고 토이스토리의 성공과 픽사 덕분에 잡스는 실패한 CEO의 대 명사에서 차세대 전자산업의 리더로 다시 복귀하는데 성공한다.

잡스가 픽사의 상업적인 성공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자기가 직접 경영방향을 정하고 컨트롤하려 한 때는 픽사의 흑역사에 가까웠고 잡스에게도 큰 이익이 없었다. 도리어 프로젝트에서 한 발 빼고 자금과 스폰서줄을 잡아준 뒤 알아서 일하게 시켜놓자 대박을 거둔 것. 이것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겠지만, 이 시기를 전후해서 잡스가 꽤 많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2012년 픽사는 헤드쿼터 빌딩을 새로 단장하면서 건물 이름을 "스티브 잡스 빌딩"으로 명명했다.

2.6. 애플로 복귀

한편, 잡스도 없고 워즈니악도 없던 애플 사는 잡스 시절부터 계속되던 부진으로 인해 겨우겨우 연명만 하는 수준이었다가, 결국 1996년 Nextstep사를 인수하고 잡스를 다시 경영컨설턴트로 불러들이는 쪽팔린 짓을 하고 만다.(...)

잡스가 애플사에 돌아왔을 당시(1997) 애플은 무려 1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고, CEO인 길 아멜리오는 온갖 삽질을 반복하며 직원들과 이사회의 신뢰마저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아멜리오가 잡스를 복귀시키려한다는 소식을 들은 빌 게이츠는 당장 애플로 달려가 아멜리오에게 잡스를 불러들이는 것은 실수이며 결국 당신은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이츠가 질투에 눈이 어두워 그랬다기 보단, 이미 잡스 본인 또한 경역악화로 애플에서 쫒겨난 위인인지라 실패한 전 경영자를 다시 불러 들이는 모양새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잡스는 어렵지 않게 경영권을 장악하고 아멜리오를 쫒아낼 수 있었다.

잡스는 복귀하고 게이츠와 쌍방간의 소송 취하 합의를 이끌어 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특허소송을 합의로 마무리시킨다. 또, 애플은 잡스가 경영권을 잡은지 1년만에 4억 달러 흑자로 돌아서는 기적을 연출해낸다. 사실 기적이라고 하기엔 방법이 의외로 간단한데 아멜리오는 최대한 많은 제품을 개발하고 많은 사업에 손을 대는 방식의 경영을 하고 있었고, 이와 반대로 경영권을 잡은 잡스는 제품의 종류를 줄이고 꼭 필요한 사업을 제외한 기타 사업에서 손을 때며 동시에 직원 3000명을 해고했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애플의 수익성을 회복시키며 파산 직전에 몰려있던 애플을 간신히 살려놓는데 성공한다. 이 시기의 애플의 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제품은 1998년부터 발매되기 시작한 반투명케이스의 일체형 컴퓨터인 iMac G3이었고, 그 디자인을 책임졌던 조너선 아이브(Jonathan Ive)는 이후 애플의 디자인 부문을 이끌면서 뒤에 부사장의 지위까지 승진한다.

이후 애플의 호전된 경영 성과에 더해 픽사의 두번째 작품 벅스 라이프까지 대박을 터트리면서 잡스는 완전히 정상에 올라선다.

2.7. 아이팟 신화

사제폭탄 아이팟 나노 1세대를 소개하는 잡스
그렇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01년 그는 아이팟을 세계시장에 선보였는데, 이 MP3플레이어는 아이튠즈와의 연동작전이 성공하면서 아이리버 등의 제품들을 제치고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대히트를 치게 된다. 노하우와 함께 경험도 경험이니만큼 전반적인 기술력 자체는 아이리버가 뛰어났으나, 터치 기술과 함께 디자인 등의 새로움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아이팟은 무려 1억 대나 넘는 물량을 팔아치웠다. 아이튠즈는 아이팟에 넣을 수 있는 MP3음원을 판매하고 있으며, 1억 5000만 곡 이상의 노래를 매년 팔아치우고 있다.

그리고 2004년 애플의 CEO로 완전히 복귀했다. 2004년 제품 설명회에서의 CEO 취임 선언은 가히 충공깽. 사실 잡스는 설립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 애플의 CEO 직함을 가진 적이 없었다. 젊은 잡스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이사회에서 그에게 CEO 자리를 맡기지 않았고, 자신도 CEO를 맡는 것을 원치 않아 했다고 한다. 이때서야 처음으로 애플의 CEO가 된 것이다.

이런 전성가도를 달리던 도중 잡스는 2004년 8월에 췌장암 시한부 선고라는 청천벽력을 맞게 된다. 온갖 역경을 넘어 다시 우뚝 섰다 싶었던 잡스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특히 췌장암은 암 중에서도 가장 나쁜 암으로 애초부터 발생 자체가 희귀할 뿐만 아니라 발견시기도 보통 늦기 마련이어서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잡스의 췌장암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췌장암 중에서도 희귀한(약 1%) 섬세포암이었다. 잡스의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한동안 잘 살고 있었다 한다. 그런데… 이후의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문서를 조금만 더 읽어보자.

스탠퍼드 대학 졸업축사 중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진단을 받은 바로 그 날) "나는 목으로 내시경을 넣어 위와 창자를 거쳐 췌장의 종양에서 조직을 떼어내는 검사를 받았습니다. 나는 약으로 잠든 상태였는데, 같이 있던 아내가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보고 소리치기 시작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암은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매우 희귀한 췌장암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수술을 받았고, 이제 괜찮습니다."

그리고 iMac 등의 출시로 데스크탑 시장에서도 착실하게 시장을 점유하고 있으며, Mac OS X도 이번에 레오파드가 새로 출시되었다. 전임자들과는 달리 매킨토시에 인텔의 CPU를 쓰고, 부트캠프 같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윈도우와의 호환성을 확보하는 등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3. 경영 철학

프레젠테이션의 귀재로 유명하다.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소개하는 데에 아주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인 발표방식을 쓰면서 많은 발표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경영 철학은 다음과 같다.

  1. 경영은 기존 질서와 철저히 다르게
  2.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선정해 직접 몸으로 뛰어라
  3. 항상 새로운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포기하지 마라
  4. 기술력을 과신하기보다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라
  5. 간단하고 단순하게 하라.

스티브 잡스는 철저한 제품 위주의 경영을 하였다. 제품이 중심이며, 뛰어난 제품을 만드는 게 애플의 신념인 것이다.

4. 인간성 논란

잡스가 따분한 IT계의 인물인데다가 일반인들이 그다지 존경하기 쉽지 않은 기업가라는 측면에서 잡스의 대중적인 인지도는 독특한 일이다. 이것은 "나름 혈통은 좋은 출생 - 서민 가정에 입양 - 특유의 기질로 성공 - 성격과 개인의 결함으로 나락으로 추락 - 전과 다른 면모로 화려하게 부활"이라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삶을 실제로 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잡스의 인간성은 인생의 굴곡만큼이나 변화가 많았다.

어린 시절 잡스는 누구의 눈에나 띄일 정도로 대단한 아이는 아니었고, 성격도 어른이 안 된 사춘기 소년 같았다. 그는 풍족하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내심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려고, 서부에서 등록금이 비싸기로는 탑을 다투는 리드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경제적 부담을 이용해서 부모를 포기시키려 한 것이다. 그래도 부모가 희생해서 학비를 마련해 준다고 하자, 실용성하고는 담을 쌓은 철학과를 선택한다. 그래도 부모는 그를 대학에 보냈다. 자신의 의도가 좌절된 것이 너무 화가 나서 잡스는 대학으로 떠나올 때 인사는 커녕 부모의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고 한다.[13] 잡스 전기에 따르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한다. 또, 리드 대학 중퇴의 주 이유는 부모에게 가해질 경제적 압박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애플로 인해 갑부가 된 이후 잡스는 말 그대로 돈많은 자아도취형 돌아이였다. 예를 들면 애플에서 나올 당시, 옛 동거녀였던 크리스 앤이 딸 리사를 데려오자 잡스는 그 딸을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때 "나는 무정자증이다."라면서 변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iGoja 그리고 이 일은 까들에게 두고두고 까인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는 자기도 무지 쪽팔려하는 것 같다. 딸을 버려놓고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더 이상하긴 하지만. 그런데 정작 당시 개발하고 있던 PC는 '리사'로 지었다.[14] '리사' 컴퓨터는 말아먹었지만(...). 이름을 딸 이름으로 지어준 걸로 봐서는 나름대로 멋진(?) 아버지라 할 수 있을지도...혹은 지능적인 딸 모욕이거나

잡스는 실패를 경험하고 많은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면서, 안드로메다에 보냈던 개념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딸에게 다정한 아버지가 되었다고 한다. 다만 잡스가 리사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건 1991년에 로런과 결혼한 이후(리사 10대 이후)였고, 리사를 받게 된 것도 리사의 어머니가 경제적으로 키울 처지가 안 되자 딸(리사)만 잡스의 회사에 남기고 떠나서 그런 것이다. 비록 나중엔 딸을 키웠다고 할지라도 이런 잡스를 나쁘다면 나쁘지 좋은 아버지라고는 할 수 없다.

'또라이 제로 조직'이라는 책에 따르면 잡스는 같이 일하기에는 괴로운 상사였다고 이야기된다. 그의 밑에서 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확실히 일은 굉장하게 해내지만 부하직원들한테 자신의 뜻이 잘 전달이 안 되거나 자신의 뜻대로 일처리를 하지 못했을 때 심하게 화를 내는 부류의 상사라고 한다. 일례로 애플 사에서 배달 운반용 차를 대량 구입했는데 이 차의 색깔이 애플 사 건물의 색깔과 잘 매치되는 흰색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그가 떼를 쓰는 바람에 회사가 상당한 금액을 다시 들여 차의 색깔을 모조리 그가 원하는 대로 바꿔 주었다고 한다.

이런 잡스의 막장행보에 관해서는 윌리엄 사이먼 저 'iCon' 아이콘?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워낙 신랄하게 비판한 터라, 기껏 MS와 대립각을 세워 정의의 이미지(?)를 구축했던 잡스로서는 대단히 화가 나는 일이었는지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의 잡지를 맥스토어에서 다 치워버렸다고.

스티브 워즈니악과도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아직 잡스가 애플로 돌아오기 전 워즈니악이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잡스에 대해 언급한 바에 따르면, 잡스는 워즈니악이 애플의 주식을 부인이나 친구들에게 나눠줄 때 극구 말렸다고 한다. 애플은 창업자의 것이 아니고 주주의 것이고, 주식이 없으면 애플에게 워즈니악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당연히 물욕이 별로 없고[15] 베풀어주기 좋아하는 워즈니악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주식 대부분을 나눠주었고, 애플의 주식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팔아 써버렸다. 워즈니악과 잡스의 관계는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소원해지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안드로이드 폰의 성장세가 두드러지자 그 선봉에 서 있는 HTC에게 멀티터치 지적재산권 분쟁도 걸었다. HTC의 뒤에 있는 구글과 한판 크게 붙을 기세.[16].

예전에는 유닉스의 그래픽 UI 등에도 지적재산권으로 분쟁을 걸려 했지만 측에서 '님들 MAC OS 기본은 우리 유닉스에서 따왔심 ㅋㅋ'이라는 한 마디에 버로우를 탄 적도 있다.(여담으로 빌 게이츠도 오픈 오피스에 대해 재산권 분쟁을 걸려다가 윈도우 Java의 관련 기술에 대해 언급하자 버로우 탔다고 한다.)

외국 사이트 등을 둘러보면 소시오패스가 성공한 훌륭한 예라고 써있기도 한데 이 사람은 행동양식이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인물이긴 했지만 정확한 진단은 받지 않아서 함부로 취급하긴 그렇다. 아직 소시오패스라는 병명은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잡스의 뒤통수 치기 행각에 대해서 정리한 글이 있다. 극단적 표현이긴 하지만 사실만 담아놓은 이야기로, 잡스의 행각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한다.#

1991년 잡스는 조지 부시 행정부에 의해 대통령 수출 위원회에 영입이 거론되고 있었다. 때문에 인사 검증 목적으로 FBI가 잡스의 뒷조사를 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지인들은 FBI와의 인터뷰에서 잡스를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바로 옆집에 살던 이웃은 잡스에 대해 조용하고 잘난 척하지 않는 인물로 칭한 뒤 자신의 집 조경공사 때는 우리 집에 찾아와 공사 때문에 문제가 없는지 물어볼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지인들은 애플의 성공 이후 그는 때때로 정직성과 통합적 사고능력을 잃거나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기도 했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참고로 애플의 성공이란 복귀 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젊을 때의 첫번째 성공을 말한다. 이 당시는 NeXT 사장 시절. 결국 스티브 잡스는 결격 사유 없음으로 결론이 나서 대통령 수출위원회의 위원으로 공직에 봉사했다.

이 시기에 황야에서 고난을 겪으면서 인간성이 변화하였는데, 그 과도기적 사건이 바로 광포해서 픽사의 창립멤버 중 하나이자 부사장이었던 앨비 스미스의 이름을 아예 픽사의 기록에서 말살한 사건이다. 애초부터 그는 그냥 잡스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잡스와 열렬한 회의나 논의를 하다보면 항상 둘 사이에는 고성이 오가고 서로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할 정도로 맹렬히 싸웠다. 그래도 앨비는 하고싶은 소리를 다 했고, 잡스도 앨비와 싸우면서도 앨비를 인정하고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그러다 마지막 싸움에서 잡스는 앨비 흉내를 내며 조롱했고, 앨비는 절대로 타인이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룰이 있었던 잡스 사무실의 화이트 보드에 마구 글을 썼다. 이 싸움 이후 앨비는 사표를 냈고, 잡스는 사과하면서 회사에 남아달라고 설득했지만 거절당했다. 앨비가 퇴사한 이후 앨비의 이름은 픽사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이성적인 일에 이성을 잃고 광포한 것은 예전 잡스의 모습이지만 애초에 자신에게 대놓고 대드는 인물을 중요한 자리에 두고 그의 의견을 듣는다든지, 싸움 후에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일은 이전의 잡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잡스는 본래 능력있는 인물을 알아보는 눈이 탁월했지만 그 뭣같은 성격 때문에 많은 인물들이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넥스트의 1992년에서 93년간의 1년 동안 부사장급 9명 중 7명이 떠났을 정도. 하지만 이 시기에 인생의 암흑기를 겪으면서 잡스의 성격은 변화를 겪는다. 이 때의 변화에 대해서는 뉴욕 타임스의 "스티브 잡스가 황야에서 배운 것"#이라는 기사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전 잡스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자신이 지시하고 부하가 뭐라든 듣지 않았다. 그러나 잡스는 드디어 부하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기 시작했다.

단적으로 이전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오로지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잡스를 띄우기 위한 소품에 불과했고 오로지 잡스를 위한 쇼였다. 하지만 복귀 이후 이런 모습은 없어지고 각 부분의 담당자들이 자기 파트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애플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디자인의 조너선 아이브, 관리의 팀 쿡, 소프트웨어의 레이그 페더리기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고,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협상의 에디 큐, 마케팅의 필 실러, 하드웨어의 밥 맨스필드라는 애플의 분야별 전문가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전의 잡스라면 이런 인물들의 건의는 다 묵살하고 자기 멋대로 아주 사소한 것까지 간섭하고, 잘된 모든 공은 자기가 차지했을 것이다. 또한 잡스의 독차지 때문에 사람들은 실무진들의 이름조차 몰랐을 것이다.

고난을 통해 인간성의 결함이 다듬어진 잡스에게 드디어 능력있는 인물들을 붙잡아 두고 조화시키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결국 이러한 잡스가 죽자 포스톨은 제어가 안되기 시작해 축출되었고 맨스필드는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변한 점은 이전의 잡스는 뛰어난 인재를 집어내고 그에게 임무를 맡기기는 하지만 일이 진행되는 동안 사사건건 간섭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기 고집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는데, 고난을 겪고 복귀한 이후에는 "믿지 못하겠으면 일을 맡기지 말고, 일을 맡겼으면 믿으라."는 경구에 충실하게 변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가 복귀한 이후 나중에 iMac이 되는 애플의 컴퓨터 라인업인 프로젝트 C1의 마케팅을 잡스가 마케팅 전문회사에 일을 맡겼는데, 이들이 iMac이라는 이름을 뽑아낸 뒤에 잡스를 만나러 갔다. 거기서 잡스는 애플에서 C1에 멋진 제품명을 지었는데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한다. 잡스가 보여준 이름은 필 쉴러가 지은 MacMan...만약 이랬다면 아이북은 북맨, 아이팟은 팟맨, 아이튠즈는 튠즈맨, 아이폰은 폰맨(...), 아이패드는 패드맨...빈스 맥맨은 앉아서 횡재[17] 잡스는 이들에게 맥맨이 애플의 마케팅 부사장 필 실러의 아이디어라고 밝혀주었다. C1 마케팅을 맡은 마케팅 전문회사의 켄 시걸은 맥맨은 부적합하다 아이맥이 낫다고 말했지만 잡스는 고집을 부렸다. 그러면서 다음 미팅까지 맥맨을 능가하는 다른 이름을 지어오지 않으면 맥맨으로 하겠다고 한다. 두 번째 미팅에서 잡스는 새로 마케팅 회사가 뽑아온 이름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여전히 맥맨이 좋다고 하자 켄 시걸은 다시 아이맥을 제안했다. 잡스는 아이맥이란 이름이 싫지는 않지만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며 맥맨이 낫다고 말한다. 두번째 미팅 다음 날 잡스는 아이맥으로 결정 하자고 한다. 나중에 애플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잡스는 아이맥이라는 이름이 어떤지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녔고, 실제로 실크스크린으로 iMac을 C1에 프린트한 뒤 한동안 들여다 보기도 한 뒤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로서 iDevice가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의 고집불통 잡스였다면 스스로 뽑은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맥맨이라고 이름을 붙였을 것이고, 아이팟은 팟맨, 아이폰은 폰맨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황야에서 고행을 마치고 돌아온 잡스는 그 못된 버릇을 고친 것이다.

5. 트리비아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곤 하지만, 이 사람은 '사업가'이지 절대 '개발자'가 아니다. 근데 엑스박스를 구원한 거대 프랜차이즈를 바라보는 안목이 없었던걸 보면 게임업계와는 그닥 인연이 없었던걸지도 모른다.
물론 IT분야를 제대로 이해하는 (뛰어난)경영자임은 사실인데 위의 FBI 보고서에는 '그런데 기술 부분에서는 좀 거시기...' 라는 평가도 있었다고.그러나 그가 이룬 업적은 결코 무시할수 없다. 입양아,문제아,명문대학도 아니고 그저 대학중퇴자인 그가 21세기 IT시장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그의 삶 자체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희망을 준다

스티브 잡스 코스프레를 하려면 네 가지가 필요하다. 회색 뉴발란스 운동화, 바이스 501, 검은 쭉티[18], 그리고 one more thing.뭐긴 뭐야 안경이지[19]

스탠퍼드 대학에서의 연설 중 일부.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통념, 즉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잡스의 이 스탠퍼드 대학 연설은 아직까지도 명연설로 꼽히며 유튜브 조회수 2천만건을 돌파했다.#

연봉 1달러 CEO로 유명하다.[20] 대신 주식(애플, 그리고 디즈니)이 있으니까. 애플, 디즈니 주식을 반 정도 매각해 약 5억달러의 이익을 얻었다. 게다가 추가적인 옵션까지...

2008년 건강 악화설이 돌자 애플 주가가 하락하고 사망 후에 실리콘 벨리자체가 순간 활기를 잃었을 정도로 많은 IT기업인들의 아이콘이었다.

아이폰 4의 수신률 불량 문제(왼쪽 하단을 잡으면 수신율이 현저히 떨어짐)에 대해, 개인 이메일로 "그렇게 잡지 않으면 될 거 아니냐"라고 대답한게 밝혀졌다.링크 개인 이메일이라면 시니컬한 성격의 잡스니 봐줄 만하겠지만, 문제는 저게 아이폰 문제에 대한 애플의 공식 입장임이 드러났다. 제안한 해결책이 그렇게 잡지 말든가, 범퍼 악세서리 사세요. 덕분에 여러 군데에서 신나게 까이고 있다. 그리고 모두의 우려대로 범퍼 무료제공으로 대충 때웠다.[21] 스티브 잡스의 전기에서 나오는 내용으로는 이런 성의없는 대응이 아이폰4의 결함이 언론에서 과장된 바와 다르게 큰 문제가 아닌듯 보이기 위한 '계획된 대응'이었고, 결과적으로 아이폰4는 전작의 절반에 불과한 환불률을 보였다.

젊었을 때는 은행에 돈을 빌리러 가서는 은행장의 넥타이가 촌스럽다고 솔직히(...) 말한다든가, 프랑스 대통령 주최의 오찬에 참석해서는 느끼한 프랑스 요리 말고 이탈리아 요리는 없습니까. 지난 주에 이탈리아에 가서 먹었더니 참 맛있던데하고 테랑 대통령께 직접 요청하거나 하는 용자의 기질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22]

사실 대학시절부터 이미 공짜로 장거리 전화를 거는 기계장치[23]인 블루박스를 제조해서 팔아먹었고[24], 심지어는 그걸 가지고 로마 교황한테 공짜 장난전화를 거는 용자짓도 한 바 있다. 국내 단위로 해도 코렁탕 먹을 짓을 국제 레벨로 벌이다니 하지만 정확히는 스티브 워즈니악의 작품이다. 심지어 교황한테 장난 전화 에피소드도 스티브 워즈니악의 유쾌한 장난 가운데 하나였다. 교황한테 전화는 걸었으나 시차로 인해 세벽 5시이기 때문에 교황이 잠자고있다고 대답이 왔다고. 모스크바 국제회담을 들먹거리며 목소리를 흉내내 가면서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당시 둘은 그때까진 절친이었고 파트너였다.

한편, 존 스컬리에 의하면 잡스는 현실 왜곡장 뿐만 아니라 눈에서 레이저도 쏜다고 한다.[25]

자가용으로 애용한 벤츠에 번호판이 없는 채로 다닌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국내에서는 이 이야기에 불법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지만 사실은 캘리포니아 교통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것이라는 워즈니악의 증언이 있다. # 이에 캘리포니아 교통당국은 따로 특혜를 주거나 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방법은 전기에서 밝혀졌는데, 새 차를 인도받고 6개월이 지나기 전에만 번호판을 달면 되는 캘리포니아법에 따라 6개월마다 새 차를 리스했다고 한다. 벤츠 SL55 AMG 차종을, 그것도 늘 똑같은 은색 차종을 6개월마다 새로 리스했기에, 합법적으로 번호판을 달지 않은 벤츠를 몰 수 있었다! Think Different

또 애플의 주차장 중에서 장애인 구역에 차를 대곤 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워즈니악에 의하면 애플 주차장에 세워둔 잡스의 벤츠가 털린 적이 있어서(…) 사무실 창문에서 잘 보이는 곳에 차를 대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 이에 애플 직원들은 차에 Park Different라 써진 쪽지를 붙여놓는 것으로 대응(...).[26]

문명 5 확장팩에서는 위대한 상인으로 추가되었다.기술자나 과학자가 아닙니다 등장하는 위인 계열 유닛 인물 중에서는 가장 최근에 사망한 사람일 듯.

애플의 성공신화가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는 싸장님들이 잡스를 성공지표로 삼고 "자네 잡스라고 아나? 스티브 잡스. 걔가 어떻게 성공했냐 하면 말야"라고 운을 떼면서 아랫사람들에게 설교를 늘어놓는 붐이 일기도 했다. PC잡지 마이컴이나 컴퓨터 학습을 통해서 탈모 이전의 잡스부터 리얼타임으로 지켜봐온 한국 컴덕후들 입장에서는 무척 짜증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정직하게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때부터 분위기 싸늘해지니 어른의 사정으로 그냥 적당히 때우고 자리를 피하는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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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사실이지만,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1983년 11월 당시 삼성 이병철 전 회장과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에서 회동을 가진 적이 있었다고. 이 당시 이병철회장은 잡스를 만난후"굉장히 훌륭한 기술을 가진 젊은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금은 경쟁자

또 잡스는 삼성전자의 매장에 매킨토시를 전시할 것을 제안했지만 당시 삼성은 PC보다는 반도체에 더 관심이 있던 상황이라 제안을 거절했다. 만약 이때 삼성이 이 제안을 승낙했으면 지금 대한민국의 IT시장이 조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훗날 잡스 복귀 후 애플이 아이팟을 출시 했을때부터 지금까지 애플은 삼성과 좋은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27]

6. 암투병과 사망

''' "매일 매일이 마치 당신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십시오. 언젠가는 틀림없이 정말 그렇게 될 것입니다.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 스티브 잡스, 2005년 6월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

2010년 말에는 스위스로 병가를 갔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그의 건강이 우려되고 있다. 거기에다가 희귀암에 걸려 애플의 주가가 폭락해 버렸다. 나쁘게 말하자면 잡스의 건강에 따라 애플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을 제대로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28]

병가에 대해서, 2011년 2월 17일 현재 병이 더 악화되어, 의사한테서 6주 시한부를 판정 받게 되었다는 루머가 올라왔다. 현재 인터넷에 기사가 퍼질대로 퍼지고 누리꾼들이 여러곳에서 술렁이고 있는 상황. 애플 측에서는 '노 코멘트'. 문제는 이 루머의 출처가 인콰이어러로 밝혀져 있었다는 것. 당연히 해외 언론에서는 이런 것은 출처라고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무시했다. 얼마 후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실리콘밸리 오찬에 참석하기로 하여 루머를 불식시켰다. 오바마 대통령과 미팅 예정 - ABC발 뉴스[29] 게다가 같은 달에 캘리포니아에 자택 재개발을 신청했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6주 시한부인 사람이 집을 새로 지을 리가 있을까) 하지만 한국언론에서는 시한부설을 계속해서 반복 보도하더니 급기야 SBS와 MBC가 간판 뉴스시간대에 이걸 방송해버렸다. 나중에 SBS는 스스로도 쪽팔렸던지 "미국은 스티브 잡스가 영웅이기 때문에 보도 안 했던 것"이라는 개드립을 쳤다. 힐러리의 입양은 언제 보도할 거냐[30]

그리고 2011년 3월 3일 아이패드2 발표회장에 강림하여 "나 아직 안죽었다"고 전세계에 선포하였고, 잡스 시한부설로 위태위태하던 애플의 주가는 폭등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게 된다.

다만 후에 iOS 발표때 다시 등장했을땐 한층 수척해진 모습으로 나와 주가가 다시 폭락해 버렸다...(정녕 애플주식자체인 잡스)

WWDC 2011 첫날, 오전 10시의 발표회에도 재등장. 더욱 수척해졌다.

2011년 8월 25일, 결국 CEO직에서 사임한다고 밝히고, 대신 애플 이사회장으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CEO 사임 이후 최초로 언론에 공개됐다는 사진이 있다. # 다만 옷차림과 생김새, 출처를 생각할 때, 콰이어러 6주 드립처럼 조작의 가능성이 농후하다.[31] 하지만 실제 사후에 공개된 잡스의 모습은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

2011년 10월 5일, 5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이 날 사람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업인이 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다음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전 세계의 인사들이 남긴 추모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 "가장 위대한 미국의 혁신가 중 하나였다. 다른 생각을 할 만큼 충분히 용감했고, 자신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충분히 대담했으며, 실제로 해낼 만큼 재능이 있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바로 잡스가 발명한 기기로 그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는 것만큼 그에게 큰 찬사는 없을 것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 "스티브와 30여년 전에 처음 만나 서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동료이자 경쟁자, 친구로서 지내왔다. 나는 스티브와 일할 기회가 있었던 행운아였다. 스티브가 매우 그리울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 "스티브, 멘토가 돼 주셔서, 친구가 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당신이 만들어 낸 것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세르게이 브린. 구글 공동창업자 = "래리 페이지와 나는 비전과 리더십에 대한 영감을 찾기 위해 쿠퍼티노를 바라봤다." "스티브, 최고를 위한 당신의 열정은 내가 지금 이 메시지를 쓰고 있는 '맥북'을 포함해 애플의 제품을 만져 본 누구에게도 느껴졌을 것이다."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창업자 = "내가 구글의 CEO가 됐을 때 잡스는 매우 친절히 대해줬고 건강이 안좋을 때도 그의 지식과 조언을 들려주느라 시간을 냈다. 구글 직원들과 내 심정은 잡스의 가족과 애플 직원들과 같을 것이다."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창업자 = "전화를 걸어온 기자를 통해 부고를 접했을 때 존 레논이나 케네디의 피격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뇌리에서 가시지 않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특출한 경영 사상가였으며 높이 올라온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그가 기존의 발상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생각해 내는 데에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 것이다." … "우리가 젊은 개발자였던 시절부터 그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었던 기술들을 시험 도입해보고 미래의 발전형은 어떤 모습일지를 탐구하는 데 열성적이었다. 당시 우리는 자본도, 경영을 해본 경험도 없이 부직업으로 돈벌이해가며 집에서 일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미래를 뒤바꿀 만한 아이디어만으로 전전긍긍하며 승부하는 다른 수백만의 젊은이들과 같았다." … "우리의 협력 관계는 양측 모두에게 득이 되었다. 초창기에 그는 나의 협력을 기대할 수 있었고, 나에게 있어서 그를 동업자로 얻은 것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운이 좋은 일이었다. 그는 경영인으로서 엄격하고 가차없었다지만 나에게는 항상 대단히 친절했고 좋은 친구였다. 나는 그를 그리워 할 것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들은 세계를 변화시킨다. 유족들을 비롯해 그의 지성과 재능을 존경했던 모든 이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 "스티브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우리는 뛰어난 걸작들을 탄생시킨 기술계의 개척자를 잃었습니다."

에릭 슈밋. 구글 회장 = "그는 지난 50년동안 미국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CEO였습니다.애플을 창업한 데 그치지 않고 첫 10년동안 회사를 성공기로 이끌기도 했을 뿐 아니라 이후에는 쓰러져가던 애플을 재건하는데 일조했죠. 그 위기를 이겨내고 오늘날 같이 큰 규모의 회사로 성장시킨 건 역사상 그 어떤 미국 기업 내에서도 이루어진 적이 없는 일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스티브는 공돌이들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기술자인 동시에 예술가였던 스티브는 그 예술적인 부분들이 무엇인지 보여주었고 그를 제외한 사람들은 아름답고 간단한 상품이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란 사실을 간과했죠. "

존 라세터. 픽사 최고창의성책임자 = "스티브 잡스는 대단한 선지자이자 우리의 각별한 친구, 나아가 픽사의 미래를 비추는 빛이였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픽사의 잠재력을 알아봤고, 사람들의 상상 그 이상이 될 수 있을거라는것 역시 알고 있었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영화를 만들자는 우리의 말도 안 되는 꿈을 그는 믿어주었고, 그 대가로 요구한 것은 단 한가지: "잘 만들어달라"는 것 뿐이였다. 그는 픽사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이유이고, 그의 용기, 진실성, 그리고 사랑은 사람으로서의 우리를 성장하게 해주었다. 그는 평생 픽사 DNA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의 아내 로린과 그의 아이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로버트 아이거. 월트디즈니 최고경영자 = "그는 믿을 만한 조언자일 뿐 아니라 좋은 친구였다. 잡스가 남긴 유산은 그가 만든 제품이나 구축한 비즈니스를 초월해 그에게 영감을 받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그가 변화시킨 삶, 그가 정의한 문화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는 매우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한 시대를 정의하는 '오리지널'이었다. 디즈니는 가장 훌륭한 동반자를 잃었다."

루퍼드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 "오늘 우리는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이자 창조가, 기업가를 잃었다. 스티브 잡스는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최고경영자였다. 그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끼며 그동안 잡스 덕분에 받았던 엄청난 충격을 떠올려 본다. 그는 사람들이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를 접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은 주인공이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 "평소 존경했던 스티브 잡스 애플 전 CEO의 별세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 고인은 세계 IT산업에 비전을 제시하고 혁신을 이끈 천재적 기업가였으며, 그의 창조적 정신과 뛰어난 업적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고인의 가족과 동료들께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의장 = "스마트폰이야말로 융합 기술의 아이콘이다. 우리가 지금도 토머스 에디슨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100년 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 이름은 모를지라도 스티브 잡스의 이름은 기억할 것이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 = "어릴적 모짜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그사람과 동시대에 살았기를 바랐던적이 있었다. 우리는 지구위에서 스티브잡스와 함께 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축복받았던 삶이다. 그를 기린다. 우리의 영웅이여, 우리의 영원한 맨토여"

이 외에 각종 IT 관련 업체들도 줄줄이 잡스의 부고에 대한 애도의 표시를 내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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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삼성은 고인드립을 시전했다. 사실은 아이폰 4s관련 정보를 입수한 삼성이 애플을 비웃었는데 하필이면 묘하게 잡스 사망일자와 겹친 것 뿐(…). 그리고 삼성도 최지성 부회장(CEO) 명의로 조의문을 발표하고 잡스의 장례기간 동안 기존 진행되던 소송에 대하여 함구하기로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 정말 안 좋은 쪽으로 유명한 웨스트보로 침례교회에서 레알 고인드립을 시전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했다.이래서 예수쟁이라는 말이 나온거지. 그리고 리처드 스톨먼고인드립을 시전했다(...)[32] 해가 바뀌어도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을 보면 그의 영향력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잡스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삼성전자 주식이 급등했는데 이는 일본 대지진 이후 한국 주식이 오른 것과 함께 '시장에 눈물은 없다'라는 명제를 증명하는 예시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덤으로 생전의 호적수였던 빌 게이츠가 각종 포털 사이트들의 검색어 목록에 올라갔다(……). 아이러니 하게도 잡스의 병명이 췌장암, 영어로 Pancreatic Cancer로, "PC가 잡스를 죽였다"는 장난 아닌 말장난이 해외에서 퍼졌었다.

불쌍하게도, 여러가지 의미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보니 고인드립이 범세계적으로 마구마구 생산되었고, 또한 그의 죽음을 이용해서 악성코드를 퍼뜨리는 인간들도 있등장하였다. 'Steve jobs alive'같은 제목의 메일을 보내고 메일 안의 링크를 클릭하면 악성코드에 컴퓨터가 감염되는 식으로.

사망 직후 전세계에서 목빠지게 기다리던 스티브 잡스의 공식[33] 전기가 출간되었다. 책 자체는 2011년 11월 21일에 나올 예정이었지만 스티브 잡스 본인의 사망으로 인하여 집필 속도에 불이 붙음에 따라 한달이나 이른 2011년 10월 25일 전세계에 동시에 출간됐다.[34] 제목은 Steve Jobs. 월터 아이작슨이 집필했으며, 이 작업을 위해 잡스 자신과 가족, 그리고 동료들에 대한 모든 접근 권한을 얻었다고. 출판도 안 된 상황에서 국내외 베스트 셀러에 올랐었다. 결국 출간 하루만에 가뿐히 1만 부 돌파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어판 번역이 구리다는 말이 제기되었다. 단 10쪽 분량에서도 오역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보러가기 번역가 안진환씨가 촉박한 시간 때문에 자신이 운영하는 번역회사 직원들에게 대신 나눠서 번역을 시키고 자기 이름만 올려놓지 않았을까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출판사인 민음사가 카페를 통해 오역을 접수받고 재판때 수정한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번역서에 비해 이 책이 그렇게 번역이 나쁜 편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번역가들 모임에서는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몇몇 오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큰 문제는 아니라는 정도로 의견이 모여졌다고 한다. 이보다 번역 엉망인 책은 수없이 많다. 이 정도면 너그럽게 넘어가자.

월터 아이직슨에 의하면, 아직 미공개 신제품에 대한 이야기 등 애플의 전략 사정으로 올리지 못한 내용이 많으며, 이는 나중에 재발간으로 보태겠다고 밝혔다.[35] 이 내용중에 계속 떡밥이 나오는 새로운 TV에 관한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도 은근 많다.

사후에 그가 대체의학에 의존하다가 치료 시기를 놓쳐서 죽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잡스는 2003년 10월 이미 췌장암 판정을 받았으나, 이듬해 3월까지 수술을 거부하고 정신수행, 식이요법과 침술 등으로 암을 고치려 했다. 잡스는 몸에 칼을 대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으며, 부인이 설득하고 난 뒤에야 겨우 수술을 받아들였다. 수술을 받아들은 뒤에도 자신의 병에 대해 치밀하게 공부한 뒤 치료법까지 지시하는 등 전문가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 발견 당시에 췌장의 5%만 퍼져 있었던 암은 9개월 뒤에는 췌장 전체로 퍼졌고 수술을 한 뒤에도 전이가 계속 되어 결국 목숨을 잃게 되었다.# 에휴...

그가 죽기전 만난 사람 중 빌게이츠도 있었는데, 집에 누워있던 잡스가 찾아간건 아니고 게이츠가 잡스를 찾아왔다. 평생 고집불통이었던 천하의 잡스도 죽을 지경이 되니 빌 게이츠의 개방적(분할적) 사업방식이 괜찮은 방식임을 인정했다. 게이츠도 자신은 개방적인 사고만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놓고보니 잡스가 고집한 엔드 투 엔드 방식도 나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건 잡스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앞으로는 애플의 그런 사업방식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을 했고, 잡스 역시 게이츠의 사업방식을 인정하긴 했지만 제품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적어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지 않을 것이라는 맞디스 평생의 라이벌답다 를 시전했다. [36] 또한 빌 게이츠의 부정적인 애플의 미래에 대해 그럴리 없을 것이라 단호히 말하기도 했다. 죽을때가 되니 밑 사람 좋은 말도 해준다.

윌터 아이작슨의 집필한 자신의 전기에 대해 "내가 맘에 안들법한 얘기도 있겠지요?" 라는 질문을 했는데 이 질문에, 아이작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잡스는 알았다고 한 뒤 "열받고 싶지 않으니 지금은 읽지 않겠습니다. 한 1년뒤에 읽어보지요. 그때까지 제가 살아있다면요."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두달 좀 안되어 잡스가 사망했기에 이 말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그가 죽기 직전에 남긴 말이 "Oh wow. Oh wow. Oh wow."였다는 사실이 그의 여동생 Mona Simpson에 의해 확인되었다. #

사후 1주기인 2012년 10월 5일, 애플의 홈페이지 메인에 추모 동영상과 CEO 팀 쿡의 메세지가 게재되었다.

7. 그가 남긴 것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능력있는 CEO를 넘어 IT계를 주도한 인물이었고 또한 실적이 부진하거나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회사들을 뛰어난 창의력과 적극성으로 기업가치를 크게 끌어올리는 수완을 발휘하였다.

곤경과 실패, 그리고 몰락 역시 경험했으나 이를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로 화려하게 재기했다는 점에 있어서 본보기가 될 만한 케이스. 암이 아니었다면 그의 열정과 성취욕으로 볼 때 노년까지 일선에서 왕성히 활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트렌드를 창조하고 자사 제품을 새로운 메인스트림의 정점에 올려 놓는 데에 성공함으로서 그의 탁월한 안목을 여러 번 증명하였으며 이런 경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두드러졌다. 마우스, GUI, 컴퓨터 그래픽스, MP3 플레이어와 앱 스토어, 터치 스크린 핸드폰, 태블릿 PC 등은 물론 그만의 발명품이나 유물은 아니지만, 이들의 상용화와 보편화를 가속화시키고 인지도를 대폭 높이는 데에 잡스가 크고 작은 기여를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실 2007년 등장한 아이폰은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쉬운 인터페이스와 파격적인 디자인은 전세계 휴대폰 사용자들을 매료시켰고, 이후 출시된 대부분의 스마트폰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연 아이폰이 성공하지 않았다면 삼성이 갤럭시 시리즈를 만들었을까? 핵폐기물은 나왔을 듯.

한편 그는 새로운 기기들의 단순함과 조작의 편리성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능적이고 참신한 디자인을 선보여, 출시된 제품들을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하는 능력도 보여주었다. 또한 이미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 후발 주자로 뛰어들어서 단시간 내에 강한 입지를 구축하고 선구적인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었던 것을 보면 그의 사업 능력이 상당히 비범함을 알 수 있다. 애플이나 자기 자신의 이미지 관리와 활용에도 능숙했으며, 20세기와 21세기의 IT시장 역사에 굵은 획을 그은 위대한 인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듯.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면에선 많은 아쉬움과 실망감이 있으나 그의 존재감과 안목, 기획력과 실행력은 독보적이었던 만큼 잡스를 역사의 저 너머로 보낸 애플이 어떤 행보를 보일 지가 주목된다.

애플 측 공식 반응.

Apple has lost a visionary and creative genius, and the world has lost an amazing human being. Those of us who have been fortunate enough to know and work with Steve have lost a dear friend and an inspiring mentor. Steve leaves behind a company that only he could have built, and his spirit will forever be the foundation of Apple.

애플은 한 명의 비전과 창의성을 함께 지녔던 천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정말 놀라웠던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스티브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던 저희는 사랑하는 친구이자 늘 영감을 주는 멘토였던 그를 잃었습니다. 이제 스티브는 오직 그만이 만들 수 있었던 회사를 남기고 떠났으며, 그의 정신은 애플의 근간이 되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

애플 이사회 공식 반응.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스티브 잡스가 5일 타계한 것을 전하며 깊은 슬픔에 빠졌다.

스티브의 명석함과 열정, 에너지는 우리 세계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 끝없는 혁신의 근원이었다. 세계는 스티브 덕분에 진보했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 로런과 그의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놀라운 유산에 감사를 보낸다.

"시리아 이민자의 아이"라는 트윗 - 아시아 경제

2015년 유럽 난민 문제에서 뜬금없이 언급되었는데, 잡스의 생부가 시리아 출신이었기 때문. 스위스의 IT 기업가 '데이비드 갤브레이스'가 이 트윗을 작성했는데, 시리아 난민 소년인 일란 쿠르디의 죽음을 보고 이 같은 트윗을 작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8. 매체

현재 스티브 잡스를 다룬 영화는 두 편이 제작되거나 제작중에 있다. 쉬튼 커처가 주연한 《잡스》(Jobs)는 조슈아 마이클 슈턴이라는 주로 인디영화를 찍었던 경력의 감독이 찍는 영화이며 전기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2002년까지의 이야기만을 다룬다. 처음에는 독립영화였으나 커처의 미칠듯한 싱크로율 덕분인지 애플 사에서도 간간히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2013년 선댄스 영화제에 공개되는것이 확정되었다.
http://blog.daum.net/_blog/photoImage.do?blogid=0Cj2T&imgurl=http://cfile212.uf.daum.net/original/03606B4F50BED7E02710D9
Jobs의 한국개봉은 8월 29일로 확정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할리우드의 명망있는 각본가인 에런 소킨이 각본을 쓰고, 28일 후,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대니 보일이 감독을 맡게 된 소니 픽처스의 《스티브 잡스》라는 영화가 준비 중이다. 이 영화야말로 스티브 잡스 전기에 기반한 영화이며 스티브 워즈니악이 자문을 맡고 있는 어떻게 보면 진정한 잡스의 전기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잡스 역에 확정된 배우는 바로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에서 최고의 배트맨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크리스찬 베일이다!!팬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배우개그가 난무하고 있다 근데 잡스는 성격 때문에 욕먹었던 사람인데 베일은 손꼽히는 대인배라는 게 함정 그러나 얼마 안 돼 베일이 하차하고, 이어 마이클 패스벤더가 잡스 역을 맡은 채로 2015년 초에 촬영에 들어갔다. 역시 캐스팅 문제와 이로 인한 제작 지연에 계속 시달린 소니도 프로젝트를 포기했고, 이어 유니버설이 배급을 맡기로 결정했다. 아직 개봉 시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2015년 말-2016년 초에 나올 예정. 이야기는 1998년 첫 아이맥까지의 세 가지 제품 발표를 중심으로 할 예정이라고 한다.

위에 논의된 영화들은 둘다 잡스가 성인의 반열에 오른후 에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1999년작 "Pirates of Silicon Valley"는 잡스가 아직 자체 후광을 두르고 과거 세탁을 거친후 IT계통의 성인으로 올라서기 전이어서 그런지 나름 정직하게 만들어져 있다. 실제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마지막에 잡스와 게이츠가 서로 나쁜놈이라고 소리지르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 가끔 대한민국 케이블 TV에서 해준다.

문명 5 확장팩 신과왕에서는 위인 계열 유닛으로 나오는데, 위대한 상인이다. 절대 위대한 기술자나 과학자가 아니다.

심슨에서는 항상 강매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호머 심슨은 물론이고, 리사 심슨과 신도 절절맨다(...)

닥터후에서는 사후세계라고 하는 네더스피어에 있다고 한다. 정확히는 저승인데 아이패드가 있냐고 묻자 스티브 잡스도 여기 있는데 뭐 이상할게 있냐는 식으로 말한 것. 근데 이 네더스피어는 사실…[스포일러]

세인트 영멘에서는 천국에 온 후로 영혼 입국 시스템을 파격적으로 띁어고쳐놔서 접수탐당인 12제자들이 여러가지로 한가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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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잡스는 이 간행물이 자신의 10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한다. 여담이지만 저 말은 이 간행물의 마지막 판 뒷장에 쓰여져 있었고 제목에는 'Whole Earth Epilog'라고 적혀 있었다깨알 말장난
  • [2] 직역하면 "계속 굶주리고, 계속 미련해져라."가 되겠지만,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굶주린 것처럼) 계속 추구하고, (미련한 것처럼) 계속 시도하라."라는 표현이 알맞다. 즉 '무식하면 용감하듯이' 계속 시도해서 얻으라는 말이다.같은 말이지만 말하는 사람이 다르면 느낌도 다르다 김정일항목 참조
  • [3] 다만 잡스의 마케팅이 굉장히 특별한 것은 아니며, 사실 다른 회사들도 잡스와 비슷한 마케팅 전략을 취할 때가 많다. 그런데 남들 다 하는 마케팅 기법을 사용하는데도 특별히 성공적인 마케팅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 잡스의 특이한 점이다.
  • [4] 사실상 잡스 자체의 저돌적인 면이나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뛰어난 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 [5] 대학원생이었던 잡스의 친모는 잡스 부부가 대학을 나오지 않아 입양을 거부하려 했으나 잡스 부부가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고 입양에 동의했다.
  • [6] 우연인지는 몰라도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동갑이다. 하지만 2월생인 스티브 잡스가 10월생인 빌 게이츠보다 한 학년 위였다.
  • [7] 스티브가 어렸을 때 양어머니는 잡스를 수영교실에 보내기 위해 가정부 일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정말 열심히 키웠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잡스가 원하는 것은 모두 들어주는 식으로 지극정성으로 키운 나머지 조금 버릇이 엉망이 되어버린 듯...인데 이처럼 대성한 것을 보면 아예 '버릇을 들일 것'이 아니라 그냥 원하는대로 내버려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듯 하기도 하고...
  • [8] 하지만 현대 타이포그래피는 독자적으로 과학적인 이론을 거쳐 발전했으로 동양의 서예 기술과는 거의 무관계하다. 허풍일 가능성이 높다.
  • [9] 근데 워즈니악은 자서전에 Apple I, Apple II 할 것 없이 스티브(잡스)가 한 건 아무것도 없고 내가 혼자 만들었다라고 적어뒀다. (그리고 사실이다.)
  • [10] 그런데 이것은 잡스가 영업을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업직을 조금이라도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쪽 일이 원래 사람 만나서 밥먹고 커피먹고 하는 것이 일이다.(...) 농담 같지만 사실이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지만 그만큼 인간관계가 영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 [11] 잡스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해고하기 위해선 이사회의 결정이 필요한데, 이익을 보고 움직이는 이사회가 왜 잡스를 잘랐겠는가? 이익은 커녕 손해만 내는 짓을 하고 있어서다. 물론 잡스의 독선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성격도 한 몫했지만.
  • [12] NeXT는 애플과의 계약으로 대중적인 PC(개인용 컴퓨터)를 판매하지 못했고 잡스 개인의 목표로 비교적 비싼 개인용 워크스테이션을 판매했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개인에게 그런 기기는 별로 필요없었고 실패했다. 애플의 정통 데스크탑 라인인 파워 맥과 인텔로 넘어와서의 맥 프로가 이 개인용 워크스테이션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 [13] 미국에서는 대화할 때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은 동등한 관계에서도 모욕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어른이랑 대화할때 눈마주치는 습관이 없는 동양계 유학생들은 죽어 나간다.
  • [14] 리사는 1978년생. 그리고 리사 컴퓨터는 1978년에 개발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중에 추가적으로 나온 거에 따르면 "Local Integrated Software Architecture"의 약자는 Lisa에 끼워맞췄다고 한다. 물론 이름 자체는 딸인 리사가 맞다고 본인이 직접 밝혔다.
  • [15] 어느 정도냐 하면 워즈니악은 초반에 잡스가 더 많은 몫을 가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잡스가 그걸 개인적으로 써버리지 않고 다시 회사에 썼기 때문에 그냥 넘겼다고 한다.
  • [16] 2011년 7월 판결에서는 HTC의 손을 들어주어 역관광#(알겠지만, S3은 HTC계열사)이 되나 싶었으나 동년 11월 22일 판결에서는 다시 뒤집혀서 애플의 완승
  • [17] 잡스는 골수 소니빠였기 때문에 이 명칭이 소니의 히트작 워크맨에서 따왔다고 오해하기 쉽상이나 맥맨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다시 말하지만 필 쉴러였다. 물론 시걸이 잡스에게 맥맨은 소니 제품의 뉘앙스와 여러가지 이유로 좋지 않다고 말하자 잡스 자신은 맥맨이 맘에 든다며 고집을 부렸다. 최종적으로 아이맥으로 결정하기 전까진 고집을 꺾지 않았으나 그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꺾은 것 자체가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일화. #
  • [18] 이 제품은 잇세이 미야케의 제품이다. 미국의 세인트 크로의 제품이라는 것은 그 회사의 언플로 밝혀졌다.
  • [19] 잡스가 프레젠테이션 때 자주 사용한 문구이다.
  • [20] 구글 CEO 래리페이지, 페이스북 CEO 저커버그도 1달러 연봉 CEO다.
  • [21] 범퍼 무료제공으로 덮은 후에 2013년에 안테나게이트 소송전이 끝났다. 모든 구매자들이 15불 환불 받는걸로.
  • [22] 이러한 점 때문에 애플 이사회는 스티브 잡스를 위험요소로 여기고 제거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 잡스가 스스로 존 스컬리를 데려와주시는 바람에...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23] 미국은 시내 전화는 기본료에 포함으로 공짜이다.
  • [24] 정확히 애플1과 마찬가지로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들었고 잡스는 팔아먹기만 하였다.
  • [25] 정확히는 레이저를 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고 한다.
  • [26] 애플의 광고 슬로건인 Think Different의 패러디.
  • [27] 삼성,애플에 적개심을 불태우는 몰지각한 삼성빠,애플빠들의 생각과는 달리 실제로 애플과 삼성전자는 좋은 파트너이다. 모바일은 아니다. 아이팟을 굉장히 낮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었던 것도 삼성이 부품가격을 몹시 싸게 공급했던 것이 한몫했다. 소송전 등으로 잡스가 삼성에게 전쟁을 선포했을 때, 부품 공급을 담당하던 팀 쿡이 '더 이상 삼성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말라.' 라고 충고를 한적도 있을정도. 그리고 이 팀 쿡은 현 애플의 CEO이다. 게다가 이번에 지구최강 저효율 TSMC의 수율에 엿먹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28] 2011년 1월 17일 현재 병가를 낸 상태. 스티브 잡스 또 병가, 이번에도… 상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췌장암 혹은 이의 후유증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병가가 알려지자 마자 애플 주가가 6.6% 급락, 시가총액 220억달러 증발...ㅎㄷㄷ
  • [29] 근데 또 언론에서는 "등만 보인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가 배려해주고 있는 거라는 개드립을 쳤다. 커버그도 시한부다. 역시 국 언론까야 제맛
  • [30] 사망후 나온 기사들에 따르면 인콰이어러의 6주 시한부는 루머였지만, 실제로 2월에 자신이 오래 살수 없음을 알게되었고 그때부터 지인들을 만나며 삶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31] 스티브 잡스 전기에 따르면 공개된 사진들이 진짜인 듯한 뉘앙스의 문장이 있다.
  • [32] 완전 고인드립은 아닌 듯 싶은게 일단 그를 추모하면서도 비판을 가한 것으로 미뤄봐서는 완전 고인드립은 아닌 듯 싶다. 하긴, 애플의 그 뭣한 독자 시스템을 생각한다면...
  • [33] 이미 잡스에 대한 전기는 꽤 있었으나, 그동안은 잡스가 공인을 하지 않은 것들.
  • [34] 처음에는 자서전이라고 써있었지만 전기가 맞다. 번역본 광고도 '전기 출간'이고.
  • [35] 실제로 전기에는 출간 당시 아직 발표하지 않은 아이패드 교과서에 관한 언급이 한 문단 정도 넌지시 있었다.
  • [36]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윈도 역시 그렇고, 구글의 안드로이드도 개방성을 통해 빠르게 점유율을 올리며 성장했지만, 호환을 위해 성능을 포기했고, 제멋대로인 규격으로 일어난 파편화 탓에 전체적인 제품의 완성도 자체는 높지 않다. 그래서 구글은 빠르게 올린 점유율을 바탕으로 구글북스와 같은 컨텐츠 허브를 도입하고 정책을 통해 안드로이드 제조사를 어느정도 통제하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애플 역시 잡스 사후 개발자에게 상당히 개방적인 이유도 바로 게이츠가 말한 문제점을 해소시키려 하는 것. 또 현 CEO 팀쿡의 사상이기도 하다.
  • [스포일러] 미시가 만든 가짜 사후세계에, 원래 용도는…. 나름 고인드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