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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이치로

last modified: 2015-07-06 08:52:53 Contributors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세이프코 필드에 서다.


프로데뷔 20년, 드디어 4000안타를 치다

마이애미 말린스 No.51
스즈키 이치로 (鈴木 一朗, Ichiro Suzuki)
생년월일 1973년 10월 22일
국적 일본
출신지 아이치현 니시카스가이군 요야마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1년 드래프트 4위
소속팀 오릭스 블루웨이브(1992~2000)
시애틀 매리너스(2001~2012)
뉴욕 양키스(2012~2014)
마이애미 말린스 (2015~)

1994~1996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MVP
쿠도 키미야스
(세이부 라이온즈)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블루웨이브)
니시구치 후미야
(세이부 라이온즈)

2001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사사키 가즈히로
(시애틀 매리너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에릭 힌스키
(토론토 블루제이스)

2001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제이슨 지암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미겔 테하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2007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J.D. 드류
(보스턴 레드삭스)

노력하는 야구천재.
메이저리그 최고의 안타 제조기 중 한명
일본이 낳은 아시아 최고의 야구선수.
메이저리그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레전드.

Contents

1. 개요
2. 상세
2.1.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2.2. 메이저리그 시절
2.2.1. 시애틀 매리너스
2.2.2. 뉴욕 양키스
2.2.3. 마이애미 말린스
3. 비판
4. WBC
4.1. 망언?
5. 기타

1. 개요

イチロー. 일본의 야구선수. 현재는 메이저리거.
통산 기록

흔히 그의 이름인 '이치로'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91년 NPB(일본프로야구)의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하며 프로야구선수로서의 생활을 시작하였고, 2001년 MLB(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시애틀 매리너스(Seattle Mariners)로 이적, 2011년까지 동 팀에서 뛰다가 성적부진등으로 2012년 7월 23일에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로 트레이드되었다.

2. 상세

2.1.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1991년 입단 당시 포지션은 투수. 드래프트 순위도 4위였던 그냥 별볼일 없는 평범한 선수였으나 들어가자마자 타격쪽으로 전향해서 큰 성공을 본 케이스이다. 특히 데뷔 초창기에는 특유의 타법인


시계추 타법때문에 더욱 더 유니크한 타자였다. 다만 이 시계추 타법을 못마땅해한 팀 고위층때문에 풀타임시즌이 늦어지게 되었다.

1994년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한 시즌 200안타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1995년 리그 우승, 1996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기여한다.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전신인 한큐 브레이브스의 3연패(1975~77년) 이후 19년만에 우승을 안겨준 것. 일본 통산타율이 무려 .353으로 비공식 역대 최고 타율을 보유하고 있다. 공식 기준인 4000타수에 381타수 부족한 3619타수라서 때문에 공식 기록으로는 인정이 되지 않으나, 일본 통산 타율 레론 리가 .320, 2위인 와카마츠 츠토무와 3위인 장훈이 .319, 현재 4위를 달리고 있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가 .318이니 거의 넘사벽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설령 위에 모자란 381타수에서 모두 아웃을 당한다 해도 통산 타율은 .3195로 역대 2위. 여기에 안타 3개만 치면 .32025로 통산 타율 1위가 되는 정도. 특히 1995년에는 홈런과 볼넷을 제외한 공격 전 부문을 석권한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이 당시 홈런 또한 1위와 단 3개차이인 25개였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7년 연속 수위타자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었는데, 이것 또한 일본 신기록. 이종범은 당시 이 타자와 비견이 되었다. 요약하자면 일본 내에서는 표면적인 기록만 보자면 가히 오 사다하루, 장훈, 오치아이 히로미츠와 같은 NPB의 전설적인 강타자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최근의 ops를 제외한다면 타율만 본다면 말그대로 저들은 상대가 안된다. 특히 압권은 2000시즌으로 1994,1995시즌의 엄청난 임팩트이후 일본리그 수준을 뛰어넘은 실력탓에 점차 매너리즘[1]에 빠졌던 자기자신을 반성하고 4할을 선언한후 시즌에 돌입 .387 - .460 - .539 - .999 21도루 1도루실패라는 엽기적인 성적을 달성하게 된다.

2.2. 메이저리그 시절

2.2.1. 시애틀 매리너스

시애틀 매리너스 역사상 최강의 리드오프.[2]

일본에서 제왕으로 군림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시절부터 꿈이었던 메이저리그로의 진출을 위해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참가, 그 이후 엄청난 격차를 느끼고 타격폼의 전면수정에 들어갔다.[3] 이런 노력은 결국 2001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로 진출[4]한 후에, '이치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진출 첫 해에 신인왕과 아메리칸 리그 수위 타자(타율 0.350), 최다안타 1위(242안타), 도루왕(56도루)[5] 리그 MVP를 동시 석권[6]하는 발판이 되었다. 또한 이 때의 기록을 일본에서도 높게 평가해 총리가 주관하는 국민영예상을 주려고 했으나 이치로 자신은 아직 갈 길이 남았다며 거절하였다. 최다 안타를 친 2004년에 또 한 번 주려고 했으니 이것 역시 고사하였다. 그리고 2004년에는 1920년 조지 시슬러가 기록했던 257안타의 기록을 넘어선 메이저리그 역대 단일시즌 최다인 262안타를 쳤다. 161경기에서 친 것을 감안한다면, 한 경기당 평균 한 두개의 안타는 꼭 친 셈.[7]

2007년 올스타 게임에서는 올스타 게임 역사상 최초로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치면서 올스타 게임 MVP를 수상했다.[8]

그리고 2009년 9년 연속 200안타 및 아시아인으로는 장훈에 이어 통산 두번째로 3000안타를 달성하였으며, 메이저리그 2000안타도 채웠다. 앞으로 4~5년 정도 현재 기량을 계속 유지한다면 3000안타도 가능하다. 물론 이치로의 나이가 이제 슬슬 걸리기 때문에 4~5년을 지금과 같은 기량을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데뷔 이후 10년동안 단 32경기만 결장할만큼 초인적인 자기관리능력과 매 시즌 안타를 200개씩 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은 기록이다. 참고로, 9년 연속 200안타는 야구 초창기었던 때에 윌리 킬러가 1894~1901년에 기록한 8년 연속 기록을 깬 것으로 MLB 최초이다. 홈런과 같은 장타가 안나오던 베이브 루스가 나왔던 시절 이전의 그때와는 달리 홈런이 많이 나오고, 변화구가 많이 개발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치로는 세계의 누구와도 비교해서 밀리지 않는 타격실력을 갖추고 있다. 2010시즌까지의 MLB 통산 타율 역시 .331이나 된다. 단지 미국으로 건너와서는 장타율이 급락했다.[9] 2013시즌 기준으로 현존 메이저리거 중 타율 3위로 1위는 조 마우어, 2위는 알버트 푸홀스.


일본리그를 초토화시키던시기 사용하던 시계추 타법을 쓰던 시기에는 두자릿수 홈런과 +.500의 장타율을 꾸준히 기록하는 타자였지만 MLB 스프링캠프에서의 쇼크이후 타격폼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풀타임 1번타자를 맡게 되면서 장타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컨택을 극대화시킨 유형으로 출루 자체보다는 공을 때리는 것에 집중하는 스타일로 전환했다. 포볼로 진루하는 경우가 상당히 적은 편이고 타율 대비 출루율은 낮은 편이다. 통산 타율 3할 3푼대인데 출루율 4할을 넘긴 적인 단 한 시즌밖에 없을 정도다. 하지만 어떻게든 출루하는 것을 최우선시해야 할 1번 타자로서는 시대착오적인 자세라고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자세한건 밑 참조.

그러나 야구에서 1번 포지션은 출루를 목적으로 하는 타순인만큼 상대방 또한 가장 출루시켜서는 안되는 타순이며, 경기가 진행됨에따라 타순이 돌아올때도 가장타력이 약한 하위타순이후에서야 다시 타격기회를 잡을 수 있기때문에 가장 주자를 적게두고 시작하는 타순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투수는 타자에만 집중할 수 있어 가장 사사구가 적은 타순이 1번이다. 게다가 1번은 대체적으로 주루센스가 뛰어나고, 발이 빠르기때문에 투수는 더더욱 출루시키고 싶어하지 않는 타순이다. 그에따라 1번타자의 출루율은 +.350~.360이면 준수한 수준으로 보는게 보통이다. 또한 1번타자중 통산 출루율이 4할을 넘기는 타자는 '그를 반으로 쪼개도 둘 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라는 찬사를 받는 역대 최고의 1번타자 리키 헨더슨이 유일하다. 게다가 이치로의 메이저리그 통산출루율인 .376는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1번타자중에서는 높은 축에 속하며, 현역 1번타자중에서는 독보적인 1위이다. 게다가 타율대비 출루율이란 말에는 허점이 있다. 장타력이 동일하다는 가정하에 타율이 높아 출루율이 높은 케이스가 타율은 낮지만 출루율이 높은 케이스보다 득점생산력이 높기 때문이다.[10] 머니볼을 잘못 이해해서 생긴 대표적인 오류사례이다.[11] 어쨌든 종합적인 선수가치인 war로 보면 뛰어난 선수임에는 틀림이 없다.

리키 헨더슨 이후부터 MLB 선수들의 파워넘버가 상향평준화되고 투수들의 피장타 억제책까지 따라올라가면서, 이치로와 같은 클래식 1번타자보다는 그래디 사이즈모어 같이 파워넘버까지 갖춘 선수로 대세가 변하면서, 이치로의 장타력 부재가 까임거리로 떠올랐다. 그에 대한 이치로의 대답은 '타율이 .220대라도 상관없다면 40홈런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런 모습이 팀에 도움이 될까?'라고 했는데 세이버매트릭스 관점으로 보면 슬랩히터를 버리고 라인드라이브 타자로 200안타를 생산했다면 더 도움이 됬을 것이다.하지만 불가능한 소리에 가깝다. 장타력을 위해 벌크업을 시도했던 많은 1번타자들이 체형변화의 부작용으로 스피드가 떨어지고, 체형변화의 부작용으로 잔부상에 시달리며 내구성과 꾸준함에서 심각한 결함을 보였고, 특히 약물단속이 강화된 이후 장타력에서 스피드와 수비력으로 다시 트렌드가 변하면서 다시금 최고의 1번타자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최근 세이버 매트릭스의 대중화로 이치로의 타격생산성에는 어마한 과대포장이 이루어 지고 있다고 다시 받아들여진다. 200안타의 상징성으로 타격생산성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란 평가.타격지표중 가장 뛰어난 지표로 인정되는 wrc+에서 통산 108을 기록. 메이저 평균보다 8%뛰어날 뿐이고
커리어 하이 시즌인 2004년 wrc+131를 기록하였다.

데뷔 2년차때부터 미국의 전문가들의 입에서 이치로가 중견수로 옮겨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치로 정도의 재능이라면 중견수 수비를 하는 것이 팀에 이득이라는 논리를 주장했다. 실제로 이치로는 한 시즌 중견수로 뛰었는데 우익수 자리에서는 로베르토 클레멘테와 함께 역대 1, 2위를 다투는 괴물같은 수비력을 보이는 반면, 중견수로 옮긴 이후에는 레인지(수비범위)는 평균이하 였지만 장점인 어깨로 만회하는 형국이었다. 즉 우익수 이치로만큼 리그를 압도하는 수비수는 아니었다. 결국 1시즌 지난후 우익수로 복귀하였다. 이치로가 추신수를 싫어해서 중견수로 전환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는데 해당 포지션에서 역대 최고를 논하는 수비를 갖춘 선수가 신인을 위해 자리를 옮긴다는 것이 말이 되는지 생각해보자.[12] 추신수 이적 이후 중견수로 전환한 것도 추신수를 비롯한 시애틀이 자랑하던 외야유망주들이 줄줄이 실패한 후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마저도 대체자원이 영입되자 곧바로 우익수로 복귀했다. 다만 중견수를 뛰었으면 팀에게는 더욱 이득이 되는 상황이었다. 아담존스,추신수를 떠나보낸 시애틀의 외야는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트레이드후 아담존스,추신수 둘의 누적war 는 44에 육박한다. 이런 이유등으로 팀보다는 자기 프라이버시와 기록을 더 중시한다는 이미지를 심어 주게 되었다.

youtube(BgqEjlpIXOQ)
어깨가 굉장히 좋아 보살 역시 능하다. 중견수던 우익수던 그 포지션에서 3루, 홈까지 거의 노바운드로 송구가 가능한 엄청난 강견. 위 동영상에서 역시 강견으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게레로를 두번이나 보살하고나서 게레로의 허망한 웃음이 인상적이다.그런데 조인성은 세이프가 되었다

도루는 2009시즌을 제외하고는 5위권 바깥으로 나가 본 적이 없고 성공률은 9시즌 중 세 시즌 말고는 항상 80% 이상에다가 2008 시즌엔 무려 92%였다. 다만 2008시즌을 기점으로 나이에 따른 스피드저하와 부상위험때문에 자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거기에다 10년 연속 골든글러브에 2000년대 메이저리그 올스타 외야수 부문에도 선정.

2010년에도 200안타를 달성하였다. 이로서 01년부터 10년 연속 200안타 달성.
이 연속 200안타 부문의 기록의 2위는 Willie Keeler로 1894년부터 01년까지 8년동안, 3위는 웨이드 보그스 7년으로 차이가 좀 난다. 사실 이치로 말고는 올해까지 계속 200안타 연속기록을 이어오는 선수조차 없는 상황이니.

그러나 2011년 시즌 초반 타율이 2할 초반대에 머무는 부진을 보이다가, 결국 184안타, 타율 0.272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11년 연속 200안타에 실패했다. 올스타전에도 출전하지 못해 11년 연속 올스타전 출전도 실패.
이러한 결과에 대해 배트 스피드가 느려졌다느니 장타력이 떨어졌다느니 발이 느려졌다느니 속구 대응력이 떨어졌다느니 이런저런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결국 종합하자면 늙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작 본인은 연속 200안타 기록에 대한 중압감에서 해방되어 홀가분 하다는 모양.[13]

자기 관리에 관련해서 이치로 본인이 밝힌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치로는 경기 시작하기 직전에 하는 식사는 미국 진출 이후 안정기에 들어온 이후부터 무조건 페퍼로니 피자를 먹는다고 한다.

이는 이치로가 피자를 미친듯이 좋아해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몸의 리듬을 완벽하게 같은 상황으로 만들기 위해라고 한다. 즉 뱃속에 들어가 있는 음식을 언제나 같은 것으로 해서 컨디션에 의해 변할 요인을 통제하는것. 그런데 원정경기가 많은 야구 선수 특성상 미국 전역 어디에서도 일정하게 판매하는 음식이 필요 했고, 그 후보가 햄버거와 피자였는데, 햄버거만 먹어서는 아무래도 에너지가 부족하고, 고기 상태에 따라서는 체할 위험이 있는 햄버거는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피자를 선택했고, 미국 진출 10년 넘는 세월동안 이를 습관화 시켜서 경기전에는 무조건 페퍼로니 피자를 먹고 나서 경기에 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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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미국 진출 이후 홈경기 때에는 무조건 아내(TBS 아나운서 출신 후쿠시마 유미코-8살 연상)가 만들어 준 카레만을 아침 겸 점심으로 먹었다. 아내가 없을 때를 대비해서 냉동실에 잔뜩 보관해 두었다가 데워 먹기도 한다(이를 두고, 마츠모토 히토시는 '인도인이라도 그렇게 아침부터 카레를 먹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우스갯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2013년 10월 6일 가키노츠카이 방송 분에서) 그러고 보면 "결혼해서 제일 좋은 점이 뭐냐?"라는 질문에 "삼시 세끼 인스턴트가 아닌 밥과 국을 먹을 수 있다." 라고 대답한 적도 있는데...

이것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본인의 집착 혹은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높은 커리어를 내기 위한 개인의 섬세한 노력중 하나라는 면에서는 호평을 받을 만 하다.[14]

2.2.2. 뉴욕 양키스

2012년 7월 23일, 시애틀 팬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이치로가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것. 이는 이치로가 팀의 리빌딩을 위해 쥬렌식 단장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이뤄진 것이라고 알려졌다. 말년에 겸사겸사 우승반지도 도전할겸, 시애틀에서 엇갈렸던 이치로와 A로드가 40가까이돼서 한자리에 모이는구나 흥미로운 것은 이치로의 첫 경기가 세이프코 필드 경기라는 점이었고, 열광적인 기립박수를 받고 등장한 첫 타석에서 목례로 답한 뒤 안타를 때려내고 도루까지 성공하며 다시금 기립박수를 받았다.


한편 일본 웹상의 팬들은 이치로 하나만 바라보고 마이너 계약을 감수하며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가와사키 무네노리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8월 19일 對 레드삭스와의 홈경기에서 조시 베켓을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보기 드문 연타석 홈런인데 아무래도 양키 스타디움의 버프를 받는 것 같다. 또한 2011~12 시즌에 연속으로 팀에 깽판친 조시 베켓을 향한 나름의 권선징악포이기도 한 듯.

결국 양키스가 지구 우승을 거머쥐고 메이져 와서 11년만에 처음으로 우승 세레모니라는걸 해봤다고 한다. 실은 이적 첫해에 시애틀이 지구우승을 하긴 했는데 하필 이때가 911테러가 벌어진 해라서 우승 세레모니를 자제하는 움직임 때문에 지구 우승하고도 조용히 넘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플옵에서 떨어진 이후 시애틀은 나락으로(...).

그리고 시애틀 말년에 .260대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맛 봤으나 순수하게 양키스 이적 후에는 타율 .322를 기록했다. 시즌 통합 타율 성적은 .288로 전성기 포스에 비하면 8번도 치고 좌익수도 보는 등 그렇게 좋은 건 아니였지만, 이적 전에 90경기나 뛰고 2할 6푼대에서 허우적 대던거 생각하면 많이 올린편. 처음 이적 시에는 다음 시즌 재계약은 힘들고 시즌 중간에 땜빵정도로 끝날거라는 관점이 지배적이였지만 시즌 중 성적도 좋고 플옵과 월드시리즈 성적에 따라서는 가능할 것 같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실제로도 포스트시즌에서 롸동자커현이가 잉여가 되가는 상황에서 섹느님과 함께 양키스를 이끌고 있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섹느님이 발목 골절을 당하시어 시즌 아웃

섹느님이 ALCS 1차전에서 부상으로 아웃되고 이적후 처음으로 1번 우익수로 남은 경기를 출장했으나, 2번이나 8번칠때에 비해서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다만 시리즈 내내 양키즈 타선이 전체적으로 크고 아름답게 삽을 들어준 바람에 욕 안 먹고 적당히 묻어갔다(...). 같이 못쳤는데 그나마 다른 사람 보다는 조금 쳐준 덕인듯.

그리고 3000안타에 대한 열망이 있는지 오프시즌에 양키스와 2년 계약에 합의하였다. 당초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더 높은 금액을 불렀지만 양키스에 동년배들이 많아서인지(...) 노인정 양키스 더 편안함을 느끼고 약간 디스카운트를 해서 사인한 듯. 2년간 연평균 200안타 정도면 3000안타 달성이 가능하고 늦어도 2015년에는 3000안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류현진이 양키스타디움에서 등판한 인터리그 경기에서는 류현진을 상대로 홈런을 치고 호수비까지 선보이면서 경기 내용상 완승을 거뒀다. 뒤이어 텍사스 레인저스다르빗슈 유와 양키스의 구로다 히로키의 선발 맞대결로 주목받았던 경기에서 9회 2사 끝내기 홈런을 날리고 이날의 진 주인공이 되었다. 8월 21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홈경기에선 1회말 R.A. 디키를 상대로 좌전안타를 쳐내며 미일통산 4000안타라는 금자탑을 달성했다. 팀동료들도 덕아웃에서 모두 나와서 축하해주는 장면이 펼쳐졌다.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를 망라한 프로 통산기록이다. 이것은 타이 콥, 피트 로즈, 행크 아론, 스탠 뮤지얼에 이은 5번째 대기록이자, 마이너를 제외한 프로리그로 한정하면 타이 콥, 피트 로즈 를 이은 3번째 기록이다.[15] 리그 운영의 차이 등으로 공식기록으로 인정 받지 못한 지커 스태츠의 기록까지 합하자면 6번째.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NPB에서 뛴 기록 덕분이지 처음부터 MLB에서 데뷔해 활동했으면 4000안타는 꿈도 못꿨을 거다'라며 폄하하는 의견도 있지만, 이치로의 경우 MLB로 오고나서 딱히 폼이 떨어지지도 않은데다 오히려 MLB의 많은 경기수 덕분에 일본에 있었던 시절 보다 연간 안타가 늘어난 케이스다(…). 결국 고려할 가치도 없는 헛소리.

통산 4000 안타를 달성하며 호프 집 예약을 해 둔 건 좋지만 순수히 2013년 성적만 따지면 좀 안습하다. 특히 타석에서의 기량 하락이 심각한 수준. 원래부터 그다지 차이나지 않는 타율과 출루율 사이의 간극이 약점이었지만 타격왕을 차지할 정도의 높은 타율로 출루율을 올리던 그였다. 하지만 나이 때문에 타율이 수직 낙하를 해 2013년의 최종 타/출/장이 .262 / .297 / .342 밖에 되지 않는다. 메이저 리그 평균은 .253 /.318 /.396 이다. 타율이 평균을 약간 상회하긴 하지만 출루율과 장타율이 리그 평균에 크게 뒤쳐지는 마당에 큰 의미를 가지진 못한다.

한마디로 타석에서는 평균 이하의 선수가 되었다. 대신 수비와 주루 센스는 여전히 훌륭해서 이를 무기로 양키스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그걸 공격에서 다 깎아먹어 전체적으로 큰 도움은 안 되고 있긴 하다.(...) 2013시즌에 기록한 WAR는 1.1로, 수비 잘하고 주루 플레이 좋지만 공격이 안 좋은, 전형적인 나이 많은 백업 선수의 스탯을 기록했다. 물론 연봉도 백업 수준이라 돈이 아까운 활약은 아니다.

물론 이는 그를 폄하하는 게 아니다. 40살이 넘은 선수가 메이저리그 레벨에서 이 정도 스탯이라도 찍을 수 있는 건 그가 레전드이기 때문. 물론 아무리 그래도 이런 성적을 찍으면서도 꾸준히 출장할 수 있는 건 쓸만한 선수가 안 남은 양키스의 안습한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

2014년 시범경기에서도 안타를 거의 못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세금과 이치로의 안타는 줄지 않는다는 명언이 있을만큼 화려하고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었지만 천하의 이치로도 세월 앞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입지 탓인지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를 시도한다는 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본인도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시범경기 거의 막바지 몇경기에서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팬들 역시 부정적인 시선과는 다르게 3000안타를 치고 은퇴하기를 바라고 있다.
정규시즌에 들어와서는 백업으로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고 .284의 타율과 102개의 안타를 기록하며 14년 연속 빅리그 세자릿수 안타를 기록했다. war는 0.3으로 대체선수 수준의 역할을 했는데, 앞으로 향후 몇년간은 이렇게 선수생활을 할 듯하다. 미&일 통산 3000경기 넘게 출장한 상태로, 몇년동안 선수생활을 어떻게든 지속한다면 피트 로즈의 기록을 노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2.2.3. 마이애미 말린스

2015년, 마이애미 말린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지안카를로 스탠튼, 크리스티안 옐리치, 마르셀 오주나의 뒤를 받치는 백업 외야수로 활약할 듯 하다.

3. 비판

정확한 타격, 빠른 발, 넓은 수비범위, 강력한 송구능력 등으로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면 탑 클래스에 속할 야구기술의 소유자고 실제로도 그에 걸맞는 훌륭한 성적을 남기고 있으나, 자신의 개인 기록에만 의지하고 팀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치로가 몸 담아왔던 팀들의 전력이 결코 약한 팀이 아니었음에도 우승 경력이 오릭스시절 딱 한번이었음은 물론, 팀이 좋은 성적을 남긴 숫자도 그의 능력과 성적을 감안했을 때 적다는 점에서 그러한 근거를 찾는 일부 야구팬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오릭스는 이치로 이전에는 우승과는 거리가 있는 팀이었고, 시애틀은 명단장 팻 길릭의 해임 이후 빌 버베이시 단장 체제로 바뀌면서 노화징후가 보이던 팀체질개선에 실패해서 팀 성적이 대폭락한 케이스이다. 그 이전 2001-2003시즌의 시애틀은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의 강자였다. 선수 혼자서 팀성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선수는 배리 본즈가 유일하다. 그 외의 블라디미르 게레로, 알버트 푸홀스,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팀원들이 부진할때는 PO진출에 실패했던것이 현실이다.

팀성적이 좋을때는 아무 이야기도 없다가도 팀성적이 나쁠면 이치로가 비판받는데, 이는 과거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겪던 현상으로 팀의 대표선수가 나쁜성적의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현상이다.

독고다이 스타일의 성향상 한번 팀이 되면 팀을 중시하는 미국의 스타일과는 매우 안 맞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07년부터 꾸준히 나오는 이치로와 팀메이트간의 불화설이 대표적인데,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에서 이치로의 위치는 '자기 기록 올리기에만 여념이 없는 철저한 개인주의 플레이어'라고 한다.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뉴욕 메츠로 이적한 J.J 푸츠가 이적 전에 시애틀 타임즈라는 지역 신문과 한 인터뷰에서는 '누군지는 말 안 하겠는데 매리너스 안에 팀웍을 망치는 암적인 존재가 한놈 있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는데, 99.9%쯤 이치로 얘기라고 한다(...). 그리고 이 후 팀 리더격인 아드리안 벨트레가 인터뷰를 통해서 이치로를 돌려서 깠다. 관련자료 1 관련자료 2 하지만 켄 그리피 주니어라울 이바녜즈는 이치로를 감싸고 두둔했다. 2009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팀 동료들이 이치로에게 무등을 태워주는 사진이 찍힌 것으로 봐서 최근 동료들과의 관계는 어느정도 회복한 듯 싶다.

이치로의 득점권 타율은 매우 높은 편이지만 비슷한 수준의 득점권 타율을 가진 타자들과 비교했을때 타점은 2/3에 불과할 정도이다. 이것을 가지고도 이기적인 성향때문이라며 까이지만, 실제로는 공격의 출발점이자 하위타선이후에나 등장해야 하기때문에 타점찬스자체가 적은 1번타자이기 때문인것이 가장 큰 이유. 1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순수하게 1번타자가 100타점을 넘긴것은 대런 어스태드가 유일하다.[16] 역대 최고의 1번타자라는 리키 헨더슨조차 순수 1번 타순에서는 70타점을 넘기는 것도 버거워했다는점을 상기하자. 이는 그 사람이 야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증거일 뿐. 1번 타순에서 4할 출루율과 21홈런을 기록하며 역대 레벨의 1번타자 시즌을 보낸 2013년 시즌의 추신수도 타점은 54타점에 불과했을 정도로, 1번타자의 타점은 기량보다는 하위타선의 역량에 달려있다. 그러나 이치로처럼 극단적으로 장타가 적고 내야안타 비중이 높은 타자는 같은 득점권 찬스라도 타점에서 손해를 더 많이 볼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세이버메트릭스 계열에서 보면 또 혼란이 생기는데, 어떤 이들은 이런 주장을 펼친다.
일단 이치로의 RC, XR, wOBA 등의 스탯 자체는 메이저리그 리드오프 중 정상급이라 봐도 무방한 편이지만 그 내용에서 이치로의 극단적인 내야안타 비중을 놓고 보면,
예를들어 XR(Extrapolated Runs, 추정 득점) = 1루타×0.5 + 2루타×0.72 + 3루타×1.04 + 홈런×1.44 + (몸에 맞는 볼 + 볼넷 - 고의4구)×0.34 + 고의4구×0.25 + 도루×0.18 - 도루실패×0.32 - (타수 - 안타 - 삼진)×0.09 - 삼진×0.098 - 병살타×0.37 + 희생플라이×0.37 + 희생번트×0.04.
이 공식에서 주자를 진루시키지 못하는 경우의 내야안타는 실질적으로 볼넷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도 무방한데 어떻게 그것을 외야안타와 같은 값으로 계산하냐는 것.
하지만 이런 것을 일일이 따지다보면 주자 1루 상황에서 병살타를 당할 위기인데 당하지 않는 것도 능력이고, 삼진을 당하지 않는 것도 능력이며, 도루 성공률(81.316%)과 도루와 도루자로 인한 Runs(28.16)도 능력이며, 시애틀 매리너스의 투수 친화적인 파크팩터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적을 냈다는 것도 능력이라는 등 자잘한 스플릿만 자잘하게 파고들면서 선수의 평가에 있어 본질을 벗어나게 되는 결과가 나온다. 또한, 결론적으로 푸홀스 외에는 그 누구도 욕 안먹는 타자가 없게 된다. 그런데 구홀스도 발전이 없다고 욕먹잖아? 안될거야 아마

빌 제임스 이래 여러 기록 덕후들이 나타났음에도 아직까지 이치로의 가치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스탯은 없다. 그 누구도 이런 타자가 나올거라 생각치 않았기 때문이다.[17]

분명한 것은, 현재 이치로의 현역 활동 기간에 이치로보다 높은 WAR를 기록한 선수는 구홀스, A-Rod, 벨트란, 버크먼#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실제 전문가들의 평에 의하면 이치로는 (어떤 의미로든) 전무후무한 선수로서 이미 역사에 한 획을 그었으며 영원무궁토록 실제 가치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고 한다. 이치로의 가치에 대한 논쟁은 야구가 없어질 때까지 영원토록 끝나지 않을듯 하다. 포기하면 편해.

게다가 시애틀 타선은 2004년부터 막장화가 시작. 투수들이 이치로가 1번타자임에도 고의사구로 거를 정도가 되었고, 결국 9년차이던 2009년 올타임 리드오프 고의사구 순위[18]에서 139개로 피트 로즈(135개)를 제치고 1위로 등극했다. 현역 선수 중에서도 단 11시즌만을 중심타선도 아닌 리드오프로서 뛰고도 웬만한 클린업 히터들과 맞먹는 개수를 기록 중이다. 10년이나 더 뛴 짐 토미와 맞먹는 고의사구 개수로, 2011년 종료 시점에서 7위. 현역 고의사구 순위


2010년에 은퇴한 켄 그리피 주니어와의 한 때.

이전에는 팀에서 겉돌았던 이치로였지만 켄 그리피 주니어 덕에 팀원들과의 사이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참고로 그리피는 이치로의 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다. 이치로가 고교야구에서 뛰던 시절부터 그리피의 팬이었다고 하며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던 1995년 오프시즌엔 미국여행을 가서 마이클 조던, 켄 그리피 부자와 만남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구입한 켄 그리피 주니어의 져지는 그가 가장 아끼는 소장품 중 하나라고 한다. 2009년 그리피가 시애틀 매리너스로 돌아왔을땐 그리피는 언제나 나의 영웅이었다. 꿈이 실현된거 같다라고 밝히며 누구보다 그리피의 복귀를 환영했다.
기사

4. WBC

06년 WBC 1회 대회, 09년 WBC 2회 대회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명성에 걸맞지 않는 부진한(?) 모습을 보여 많은 한국인에게 그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

위의 기사에서도 그렇듯 알려진 이미지와 다르게 올스타전이나 국가대표전에서는 스스로 국빠를 자처하는지라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으며 무시하는 발언을 간혹 내뱉어서 한국에서는 입치로, 입치료 등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한일전에서는 땅볼만 친 것으로 봐서 '츤데레가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럴리는 없지만 사실이면 흠좀무. 여담으로 이치로의 망언은 일본 대표팀에게 매우 큰 디버프로 작용한다는 특징이 있다.(30년 망언 후의 WBC 1회 대회에서 2연패 등)

아래는 망언 목록 중 몇개.
  • 앞으로 30년동안 일본 야구를 이기지 못하게 해주겠다.
    WBC 1회 대회 지역예선중. 사실 원문은 '싸운 상대(한국&대만)가 30년 동안 (일본야구를)넘볼 수 없을 정도로 이기고 싶다'. 왜곡하여 보도한 언론의 탓일뿐 별다른 문제는 없는 발언이었다. 간혹 한국 미디어의 왜곡이라고 하는데, '한국과 타이완'이란 주석을 단 것은 일본 언론. 관련자료 그리고 김병현"그냥 만화를 많이 봐서 그런 것 같은데..."라고 반응. 야구 명언 참조.

  • 내 야구인생에서 가장 굴욕적인 날.
    WBC 1회 대회에서 한국에게 2연패 한 뒤. 이것도 '한국에게 진게 굴욕이다'라는 식으로 보도됐지만, 사실 '같은 상대에게 두번 진 것이 굴욕적이다'라는 의미. 그게 그거 같은데 일본이나 미국에서의 시즌 중에는 같은 팀한테 한번도 진적이 없나보다.(…)

  • 없어. 그런거. 없어.
    WBC 2회 대회 2라운드 한국전을 앞두고. '한국과 함께 아시아 야구 수준을 높여갈 의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실제로 그리 답변한지는 알 수 없지만 보도된 바로는 상당히 비아냥 거리는 말투(ね~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박동희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기자들 중 아무도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없었다고. 이 기사를 올린 산케이 신문 기자의 망상이라고 밝혀졌다. 역시 명불허전 산케이[19]

그리고 WBC 2회 대회 2라운드 한국과의 경기에서 봉중근에게 조련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래저래 한국만 만나면 안습.(관련자료) 하지만 "봉중근의 공은 정말 치기 어렵다"고 인정하고[20] WBC 2회 대회 결승전 연장 10회에서 임창용 상대로(...) 결승 2루타를 때려서 일본 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한국의 경기중계방송에서 선수들의 이름이 나올 때 다른 일본 선수들은 후쿠도메, 조지마처럼 성만 나오는데 비해 스즈키 이치로만 이치로라고 이름만 나오는데, 등록명 자체를 이치로로 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스즈키라는 성이 워낙에 흔하기 때문에 감독이 특이하게 이름을 등록명으로 하길 권했고 이걸 메이저에서도 그대로 썼다.

4.1. 망언?

위와 같은 인터뷰들이 왜곡되면서 이치로 = 망언이라는 공식이 따라 붙게 되었다. 그때문에 이후에 인터뷰들도 왜곡되어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3년 6월 20일 류현진의 공을 눈감고 홈런쳤다.라고 했다는 기사가 떳는데 이건 전형적인 기레기왜곡 기사다. 우선 산케이스포츠와의 인터뷰를 보자.

「(七回、左前に2点適時打)何もアイデアはなかった。振ったら当たった。(狙い打ったように見えたのは)普段の僕がそう見せているということ。(八回の好捕は)真後ろの打球だったので難しかった。点差があったので(積極的に)いってみようと。そしたらうまく入ったという感じ」
(7회 좌전 2타점 적시타) 아무 생각없이 휘둘렀는데 맞았다. (노려친 것처럼 보여진 것은) 평소의 내가 그렇게 보이고 있다는 것. (8회의 호수비는) 바로 뒤로 날아가는 타구였어 어려웠다. 점수차가 있었기 때문에 포구를 적극적으로 가져갔고 그 결과 잘 들어간 느낌.
 
이다. 여기에선 어디에도 눈을 감고 쳤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데, 기자가 떡밥을 문 눈을 감았다라는 표현은 MLB와의 인터뷰에서 등장한다.

"I haven't changed anything," Suzuki said through a translator. "I haven't done anything different. To be honest, I just closed my eyes and swung."
"난 바뀐게 없다". 이치로가 통역사를 통해 말했다. "난 달라진게 아무것도 없다. 단지, 좀더 마음을 비우고 스윙했을 뿐이다."원문 출처
 
하지만 여기서 "closed my eyes"는 "마음을 비우고"를 나타내는 속어다.[21] 오히려 인터뷰 내용은 국내 기자들이 쓴 내용과는 전혀 다른것. 이렇게 이치로는 또 까입니다. 결국 다른 기자가 나서서 기자를 까는 기사를 올렸다. 거기다 위의 문구는 류현진의 공을 친것에 대한 말이 아니라, 최근 타격감이 올라온 것에 대한 질문 이었던 거다. [22]

5. 기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본에서는 イチロー, 미국에서는 ICHIRO 라는 등록명으로 선수 생활을 하였고, 실제로도 그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담으로 '스즈키'라는 성과 '이치로'라는 이름은 둘 다 일본에서 흔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흔한 성과 흔한 이름이다. 원래 一朗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자식을 많이 낳던 시절에 첫째는 이치로, 둘째는 지로(二朗), 셋째는 사부로(三朗), 넷째는 시로(四朗), 다섯째는 고로(五朗) 같은 식으로 짓던 이름. 그런데 스즈키 이치로는 차남이다(…).김씨 집안 둘째 아들 김장남씨 형 스즈키 카즈야스(鈴木 一泰)는 디자이너로 기업 상표나 로고, 캐릭터 등을 만든다고 한다.[23]

그의 등번호 51번은 사실 투수들이 많이 쓰는 번호. 그런데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감독이었던 오기 아키라가 이치로의 컨택 능력과 빠른 발을 보고 반하여 이치로를 응원할 때 'Go いち'라는 말을 주로 했는데 이후 5는 일본어로 고ご, 그리고 1은 이치いち라는 말에서 그의 등번호가 유래됐다. 또는 이치로가 신인 시절 동경했던 타자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다 토모노리의 등번호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24]

성격은 일본 내에서조차 전부터 말이 많다. 일단 일단 이미지와는 달리 절대 과묵한 남자가 아니다. 선수이면서 파벌을 만들려 한다던가 대표팀내에서도 독불장군이라 선수들 사이에서도 평은 안 좋은 편. 심지어는 감독조차 제어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한국에선 일본팀의 리더 정도로 인식하지만 리더로서의 자질은 같은 일본 선수들조차도 평가가 제각각. 워낙에 인기가 많아 묻히곤 하지만 일본 야구팬들 사이에선 오히려 자주 까이는 선수다. 하지만 연이은 WBC 참가와 애국심을 고취하는 듯한 발언, 그리고 2009년 WBC의 활약으로 인해 안티는 많이 줄어든 상태.
어디까지나 일본 국내에서의 안티가 많이 줄은 거지 오히려 한국에서는 늘었다. 특히 30년간 이기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겠다란 발언때문에 안티 대폭발. 그 전에 한국에서의 이미지는 천재+과묵한 남자 정도였다. 하지만 이 발언은 위에도 나와있다시피 언론의 왜곡이다. 물론 그런 늬앙스가 아예 없다고 하긴 뭐하지만.


2006년 WBC 1회 대회 때 3월 5일 한일전에서 배영수 선수가 던진 데드볼을 엉덩이에 맞고 크고 아름다운 검열삭제를 가졌던 일이 있었다. 이로 인해 Dcinside필수요소로 인정되었다.# 일명 이치로의 굴욕

2ch니코니코 동화 쪽에서는 킹왕짱 내지는 인간병기 정도로 취급되는 듯하다. 일본이 핵병기를 소유하지 않는 것은 이치로가 있기 때문이라고도(…).#
또한 기자와 인터뷰했을때 그가 "텐션이 올라온다"라고 말하는순간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게 캡쳐되었는데 그 잔상이 남는게 필수요소화 되어서 보통 2ch나 니코동에서 "テンション上がってきた"의 설명이나 태그가 붙은건 머리를 흔드는 잔상이 남는 그림을 의미한다.



위는 '이치로의 레이저 빔으로 인류멸망'이라는 동영상(…)
2001년 4월 13일 오클랜드 애슬래틱스과의 경기에서 라이트 타구를 3루에 광속으로 뿌리는 장면을 이용한 영상이다. 그냥 재미있는 영상으로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이치로는 저 한해동안 무서운 활약을 선보이며 메이져 리그 데뷔 첫 해에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MVP, 수위타자, 도루왕, 실버 슬러거, 골드 글러브를 싹쓸이 해버린다(…).(※ 일본 야구계에서는 외야에서 내야로의 빨랫줄같이 빠르고 정확한 송구를 흔히 '레이저 빔'이라고 표현한다. 레이저 빔을 소유한 대표적 선수로 스즈키 이치로, 신죠 츠요시 등이 있다.)

여담이지만, 원빈 덕에 굴욕적인 경험(?)을 한 일도 있다고 한다. 영상 대충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일본에 와서 호텔로 가던 중인 이치로가 원빈을 보기 위해 몰려있는 팬들을 보고 장난기가 발동해서 타고있던 차의 창문을 열고 얼굴을 보였는데, 고급차가 지나가니까 원빈이겠거니 하고 몰려들었던 팬들의 반응은...

"뭐야. 이치로잖아.."

그리고 우르르 이치로의 차에서 떠나버렸다(...).
영상에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시애틀에서 마무리를 맡기도 했던 사사키 카즈히로.

사실 저 이야기는 농담으로 생각해도 되고, 이치로 전성기 시절, 일본에서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해서 이치로에 관한 안드로메다급 농담도 굉장히 유행했었다.

2011년 2월, 니코니코 동화에 다음과 같은 VOCALOID 오리지널 곡이 업로드되었다.


【第6回MMD杯本選】#51#

MMDVOCALOID 오리지널 곡 분야에서 나름 알려져 있는 스트리크P(ストリークP)[25] 作. 제목도 #51이고 영상이나 가사 자체가 이치로 응원가 내지 찬양가(…). 상기 설명된 바 있는 필수요소 및 경기영상을 MMD로 완벽하게 재현한, 그야말로 재능의 낭비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PV이다.

2012년 일본에 진출한 이대호가 팀의 제2홈구장 홋토모토 필드에서 이치로를 만났는데, 이치로의 예상치않은 환대에 놀랐다고 한다. 이때 이치로가 "한국팬들이 나를 미워하지 않느냐"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에 실제로 이치로의 플레이를 접했고 일본프로야구 시절엔 그냥 이치로라는 엄청 잘하는 선수가 있다더라.....수준으로만 알았던터라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엄청난 바람둥이다. 상술한대로 일본에 있을때 7년 연속 수위타자를 차지하는 등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은 너끈한 수준이다 보니 야구에 대한 동기를 잃고 여자 꼬시는데 몰두했다고. 여자에게 헤어져도 그 어떤 뒷얘기가 나오지 않게 한다는 각서도 쓰게하고 그 각서가 법적 효력을 갖게 하기 위해 변호사와 상담하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 단 이것은 2000년 이전의 일로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엔 이렇게 여자나 후리면서 성적을 낼 수 없다는 걸 물론 여자 잘 후리고 성적도 잘 내는 괴물 메이저리거도 있는 것 같지만 일단 무시하자 뼈저리게 깨닫고[26]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익히 아는 야구를 향한 구도자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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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어떻게해도 계속 타격 1위를 유지하자 모티베이션 자체를 잃어버렸다고 인정했다. 첫풀타임인 1994년부터 일본리그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00시즌까지 7년 연속 타격왕. 그것도 2위와 현격한 격차를 보이는 타격왕이었다. 이상태에서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주는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 [2] 시애틀 매리너스의 타격 기록은 사실상 에드가 마르티네즈, 켄 그리피 주니어, 스즈키 이치로 이 세 명이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 [3] 특히 "공의 빠르기는 예상했던 정도인데, 볼의 무브먼트가 차원이 다르다"라는 말을 했다. 이는 그 이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일본의 대타자 마쓰이 히데키 또한 공감했던 부분이었다.
  • [4] 당시 이치로는 51번을 달기 위해 전임 51번이자 매리너스의 준 영구결번자인 랜디 존슨에게 51번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2012년에는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하며 뉴욕 양키스(양키스 51번은 프랜차이즈의 레전드 중견수 버니 윌리엄스다.)의 31번 저지를 입게 되지만...
  • [5] 도루왕 타이틀은 55도루의 로저 세데뇨(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1개 차이로 누르고 차지했는데, 이 세데뇨가 시즌 막판 구단과의 갈등으로 출장정지를 받고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는 사이 이치로가 따라붙어 결국 시즌 막판에 역전시켰다.
  • [6] 1975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프레드 린 이후에 두번째. 하지만 이치로와 바로 전해 신인상을 수상한 사사키 카즈히로의 경우에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다가 온 선수를 과연 신인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기자단 사이에 나왔고, 결국 2003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마쓰이 히데키는 신인상을 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 [7] 참고로 켄 그리피 주니어의 커리어 최다 안타는 185개(1997년), 장훈은 182개(1976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8] 수상식에 정장을 입고 나온 것으로도 화제가 되었는데 일부에서는 '상받는다고 제대로 차려입었네'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사실은 경기 끝나고 부인이랑 식사할 예정이어서 교체된 이후에 옷 갈아입고 밥먹으러 갈려는데 직원이 자꾸 가지 말라고 말렸다고 한다. 왜 가지 말라고 하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상 받을때야 알았다고...
  • [9] 메이저리그 진출 후에는 타율과 출루율에 비해 장타율이 확 떨어진 것이 눈에 보인다. 컨택을 위해 장타율을 포기했다고 말하지만 타율까지 떨어졌다는 것은...이것이 MLB의 위엄 대신 도루개수는 상승.
  • [10] 안타의 경우 주자가 투베이스이상도 노려볼만 하지만, 볼넷은 무조건적으로 원베이스. 혹은 고의사구로 병살을 당할수도 있다. 예로 2루에 주자가 있을때 안타일 경우 어지간하면 1점추가이지만, 볼넷일 경우에는 그냥 1, 2루다. 그리고 까딱하면 병살의 위기. 실제로 많이 사용되는 작전이다.
  • [11] 머니볼의 요점은 '돈을 적게 들이고 성적높이기'이다. 결국 안타를 많이쳐서 출루율을 높이는 케이스는 득점생산력이 더 높아 연봉이 비싸기때문에, 차선책으로 선택되는것이 타율대비 출루율. 그런데 이점이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이상하게 변형되었다.
  • [12] 이런 경우라면 신인이 수비 위치를 옮기는게 당연한 일이며, 결국 추신수는 중견수로의 컨버전에 실패했기에 트레이드 된 것. 물론 찾아보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지구 라이벌 LA 에인절스의 경우 토리 헌터가 스스로 중견수자리를 넘긴 케이스도 있다. 단 본인의 의사가 우선이므로 이치로가 우익수를 원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13] 우연의 일치인지 2001년 함께 빅리그에 데뷔하여 양대리그의 발전 없는 잉여로 군림하던 푸잉여도 전반기 삽질로 올스타 출전이 좌절되더니 10년 연속 3할-30홈런-100타점 기록이 .299-30홈런-99타점 기록으로 낮아졌다(…).
  • [14] 비슷한 예로 웨이드 보그스의 경우 경기 전에 무조건 닭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그 덕에 보그스의 부인은 닭고기 요리에는 반쯤 전문가가 되어 요리책을 출판할 정도였다고. (...) 그런데 웨이드 보그스는 단순히 '비슷한 예' 라고만 하기에는 이런 징크스를 통한 일상 생활의 변수 통제를 거의 80 개 가까이 만들어 놓은 선수라서 이치로보다 훨씬 지독한 경우였다.
  • [15] 실제로 NYY 중계진은 역대 3번째 프로기록이라고 코멘터리를 달았다.
  • [16] 알폰소 소리아노래디 앤더슨이 100타점을 넘긴적이 있으나 순수 1번타석이 아닌 중심타석에서도 올린 성적이 포함되어 있기때문에 해당사항이 없다.
  • [17] 베이브 루스 등이 있었기 때문에 배리 본즈약을 빨고 신이 된 후에도 본즈의 충격은 예전에 겪어본 충격이 너무나 강해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치로의 경우에는 150년 MLB 역사상 이치로에 비견할만한 전례가 없었다.
  • [18] 올타임 고의사구에서는 약을 빨고 야구의 신이 된 자가 이 모든 것을 뒤집어 엎는 688개를 기록 중이다. 사실 역대 선수 중 고의사구 300개를 기록한 선수는 본즈 외엔 한명도 없다(...).
  • [19] 극우 성향 언론사로 일본 내에서도 유명하다.
  • [20] 2009년에 방영된 무릎팍도사 허구연 편에서 허구연이 밝혔다. 당시 이치로는 허구연에게 '정말 한국야구 무섭다. 겁난다. 자신이 없다.' '봉중근은 스니키 패스트볼이라서 공을 알고도 못 치겠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치로 본인도 한국야구를 상당히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
  • [21] 침착하게, 동요하지 않고라는 뜻도 있다.
  • [22] 참고로 반박기사를 올린 사람은 한화 이글스류현진을 담당하는 이상학기자로 다른 기자들과 달리 개념있는 기사를 쓰는걸로 유명한 기자다.
  • [23] 형의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일반적인 일본인 형제의 명명과는 달리 이 형제는 하나 일(一)자를 돌림자 처럼 쓰는 형제이다.
  • [24] 마에다는 2013년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 [25] 오늘도 졌다를 제작한 사람이다. 야빠.
  • [26] 2002시즌 전반기에 아주 잘나가다가 후반기에 성적이 떨어지면서 지구 1위를 달리던 팀이 그해 20연승의 오클랜드와 랠리몽키 엔젤스에 밀려 결국 지구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이치로가 여자를 만난다는 스캔들이 터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