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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츠슈타펠

last modified: 2016-07-11 20:04:10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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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utzstaffel

엠블렘

Contents

1. 개요
2. 창설 및 확장
3. 알게마이네 SS
4. 계급
5. 무장친위대
5.1. 창설
5.2. 확대와 질 저하
5.3. 전쟁범죄
5.4. 환멸과 배신
5.5. 전후의 무장친위대
5.6. 무장친위대 소속 부대들
6. 이야기거리
6.1. 제복
6.2. 참전자들
6.3. 드림매치?
7. SS 소속 주요 인물
8. 창작물에서의 등장

1. 개요

Schutzstaffel

너무 많은 이들이 죽었기 때문에 말하기도 두렵습니다. 그들이 뭘 위해 죽은 겁니까? 가령 영국군은 "우린 유럽의 자유를 위해 싸웠어. 독재와 맞서 싸웠다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린 대체 뭘 위해 싸운 겁니까? 그들에게는 무거운 죄의식이 가득했습니다. 이 대재앙을 부른 죄책감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 유르겐 기르겐쇤, SS 비킹 사단 참전자

나치 독일에 존재했던 아돌프 히틀러친위대이자 독일의 흑역사. 본래 명칭은 흠빠골슈츠슈타펠(Schutzstaffel)이며 보통은 약자 SS로 표기되며 쌍용그룹 SS로 부른다. 이렇게 된 이유는 슈츠슈타펠의 심볼은 룬 문자 ᛋ(시겔, 로마자 S와 동일한 발음)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자로 다른 것을 SS라고 칭하면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주위 사람들이 매우 껄끄러워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1][2] 또한 서양에선 S를 곡선이 아닌 SS 마크(룬 문자 시겔)처럼 각지게 표기하는 것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S는 꼭 곡선으로 표기하도록 하자.

나치라는 단어에서 보통 사람들이 바로 연상하게 되는 검은 제복+ 빨간 완장 찬 패거리가 바로 이들이다. SS대원들의 정복. 물론 밀덕들은 무장SS(Waffen SS)의 위장복을 먼저 생각한다. 참고로 무장SS는 위장복을 세계 최초로 적용한 전투집단이다.

2. 창설 및 확장

SS는 그대로 번역하면 '경호대'라는 뜻이며, 원래는 아돌프 히틀러 개인의 신변 경호 및 총통관저 경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원래 SS는 돌격대(SA)의 하부조직으로 290명이라는 소규모였으며 계급 체계도 돌격대의 그것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러다가 하인리히 히믈러가 SS를 맡으면서 별개의 집단처럼 운용되기 시작하였다.

집권후 히틀러는 집권에 큰 공을 세운 SA를 쓸모 없어진 사냥개 취급하여 토사구팽 해버린다. 그 이유는 돌격대 대장인 에른스트 룀이 공공연히 '내가 없었으면 히틀러도 없었다'라며 떠들고 다닌데다가, 규모가 너무 비대하여(한창 때는 300만명이 넘었다...) 히틀러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SA는 제2의 혁명을 일으켜 귀족-자본가의 재산을 몰수하기를 원했는데, 이 때문에 히틀러를 지지한 보수층은 불안해했고, 히틀러에게 SA를 빨리 해체할 것을 원했다. 게다가 에른스트 룀은 프로이센 귀족출신이 취급하는 독일국방군을 SA에 흡수시켜 진짜 인민군[3]을 창설하려고 했는데, 이는 독일군 지도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히틀러는 있을지도 모르는 SA의 반란을 미연에 방지하고, 보수층과 군부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SA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결국 히틀러는 룀을 죽이기로 결정하고, 히믈러와 하이드리히에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차병 출신이자 폭력배였던 요제프 디트리히에게 SS를 이끌고 가서 해치울 것을 명령한다. 룀이 죽자 SA는 급속히 세력이 줄어들기 시작하고(그 뒤에도 존재는 했지만), 대신 SS의 세력이 급격히 커져, 1933년부터는 경찰권까지 접수하게 되었다(이후부터 종전시까지 모든 독일의 경찰 공무원들은 자신의 경찰 계급과 동급의 SS 계급을 함께 부여받았다. 즉 계급이 두 개.).

한편으로 SS 장관 하인리히 히믈러는 히틀러에게 모든 충성을 다하며 우상숭배를 하듯 받들어 모셨고, 게다가 나치당 초기에는 사무에 능력있던 인텔리[4][5][6]라 히틀러도 그런 히믈러를 좋아하여 독일의 사실상 3인자였다(2인자는 헤르만 괴링).

고대 게르만 전설이나 판타지, 민족주의에 관심이 많던 히믈러는 인종학적으로 우월한 독일민족을 주장하고 체계화시켜 SS 대원은 3대에 걸친 신상증명서와 외모가 우수해야 했으며 온갖 게르만 의식과 고대문자 등을 심벌처럼 사용케 했다. 특히 SS의 본거지인 베벨스부르크 성 곳곳에 새겨진 슈바르체존네가 대표적이다. 게다가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조직에도 뻘짓을 했는데, 당장 총통경호대 아돌프 히틀러 연대 같은 경우는 하나같이 174cm 이상의 장신[7]에다가 충치 하나조차 없을 정도로 완벽한 외모에 군복을 닮은 정복을 입고 소총으로 무장한뒤 사열식을 하는 등 최고의 엘리트로서 선전효과까지 기대하고 만들었다...화랑? 하지만 '진짜' 전쟁이 임무인 군대의 입장에서 보면 어린애들 장난같이 보였을 것이다. 이들을 가리켜 허우대만 멀쩡하다 하여 '아름다운 저능아들'이라고 신랄하게 비꼬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8]

3. 알게마이네 SS

무장친위대가 창설되면서 기존의 '일반' 친위대 조직은 알게마이네 SS(Algemeine SS, 일반 SS)라고 부르게 되었다. 물론 형식상으로 양자가 완전히 독립된 것은 아니지만, 무장친위대가 국방군 총사령부의 지휘하에 들어가는 등 사실상 제 4의 군대가 되면서 알게마이네 SS와는 사실상 별도의 조직처럼 되었다.

더구나 병력 부족에 시달리면서 무장 SS 내에 연합군 포로 중 전향자로 부대를 창설한 것은 물론, 심지어 점령지에서도 현지인 부대를 창설하는 등 '완벽한 게르만 인종'이라는 지원요건까지 유명무실해져 버렸다. 이를 두고 알게마이네 SS는 무장친위대를 '친위대 같지도 않은 놈들'이라고 투덜댔을 정도.

그러나, 이건 친위대 내부의 구분에 불과하며, 연합군 입장에서는 다 똑같은 친위대고, 전쟁범죄와 각종 만행을 저지른 작자라는 점은 똑같이 인정받아서 다 전범으로 처벌받게 된다.
하지만 덕국의 최강 흑간지 패션

4. 계급

5. 무장친위대

5.1. 창설

실제로 전쟁이 다가오자, 히믈러는 군대의 전공에 SS가 참여하게 하려고 SS에 전투부대인 SS 페어퓌궁스트루펜(Verfügungstruppen)을 창설했다. 그리고 1935년부터 도이칠란트/게르마니아/데어 퓌러 연대가 창설되고, SS사관학교가 설립되어 친위대 장교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3개 연대는 다스 라이히의 구성 연대가 된다. 이때부터 이전의 전통적인 친위대들은 알게마이네 SS라고 구분되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무장 친위대(Waffen SS)의 호칭은 1940년 프랑스 침공 이후에 통용되기 시작한 명칭이다.

한 가지 특기할 사실은 친위대 전투부대가 만들어지는 이념적 배경이 독일 좌파지식인들이 찬양하던 "민중을 탄압하는 상비군보다 도덕적으로 더 우월한 시민군"이라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돌격대가 국방군을 흡수하려는 것도 바로 이 시민군 개념에서 나온 것이고, 한때 돌격대에 소속되어 있던 히믈러도 당연히 이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친위대 전투부대를 만든 것. 그리고 친위대 전투부대의 초기 주임무는 바로 국방군의 쿠데타를 진압하는 것이다. 이는 독일전국에서 나치이념에 충실하다고 인정되어 선발된 병사들로 구성된 국방군 내의 나치당 전투부대인 로스도이칠란트 연대도 마찬가지였다.

5.2. 확대와 질 저하

무장 SS 부대는 전쟁이 장기화 됨에 따라 급속도로 확충되었는데, 초창기에는 전투경험이나 육군 같은 훈련교육체계가 잡혀있지 않던 덕분에 전선에서 도망친다든가, 적은 규모의 적과 싸우면서도 심한 뻘짓을 보여 욕을 먹기도 했다[9][10] . 그러나 히믈러의 적극 지원하에 최신장비와 전투경험이 있는 인원들이 계속 배속됨에 따라 점점 전투력이 올라간다. 특히, 초창기 3개 무장 SS 사단인 '총통경호대 아돌프 히틀러(LSSAH)', '다스 라이히', '토텐코프' 사단들은 최고의 인력, 장비 지원과 사망자가 속출하는 혹독한 실전훈련을 거듭하여 막강한 전투력을 쌓은 덕택에 전쟁 중후반쯤 되면 거의 략예비대 성격으로 운용되기도 한다. 또한 이들의 전과를 다른 SS 사단들도 거둔 것으로 판단하기 쉬운데... 문제는 전쟁이 생각보다 대규모로 길어졌다는데 있었다.

병력소모가 급속도로 올라가고, 전장은 날이 갈수록 넓어지자 무장 SS도 꾸준히 확장된다. 그러나 갈수록 병력부족이 심각해져 결국 SS의 인종적 우월성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점령지인 프랑스나 동유럽 등지에서도 독일인이 피가 조금 섞여있으면 징집하고, 일반 육군부대도 전속요청을 통해 SS로 만드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독소전이 개전하자 그마저도 극심하게 소모가 올라가, 나중에는 러시아 포로, 심지어는 아프리카인[11], 게다가 영국군 포로(!)조차(…) 원하는 사람이면 SS로 받아들였다. 게다가 중요한 SS 전투부대 중 하나였던 제12SS기갑사단 '히틀러 유겐트'는 말 그대로 '히틀러 소년단' 출신의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이 중심이 돼 만들어진 전투부대였던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다. 게다가 말로는 사단이나 군단이라고 이름 붙여놓고 실제 규모는 수백명(대전초 프랑스전선에서 잡힌 영국군 포로로만 이루어진 부대, 영국 자유군단의 병력 수는 백여명을 간신히 넘겼다.)인 부대도 많아서 실제로 꾸준히 전투력을 보여준 사단은 초창기의 3개 사단, 잘 봐줘야 제10SS기갑사단까지의 10개 사단 정도다. 독소전 발발 전 지원한 참전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SS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그 잘난 이데올로기조차 버리고 무슬림들까지 받아들였으며, 마침내는 마구 징집을 해서 어중이떠중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전혀 뛰어난 병사들이 아니었던 이들은 정예라는 부심에 가득하던 당시의 SS 병사들을 상당히 빡치게 만든 모양이다.

전쟁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명성과는 달리 막장으로 치닫는다. 또한, 히믈러 자신도 히틀러에 대해서 공공연히 충성을 밝혔지만 사실 전쟁 말기에는 히틀러에게 총통자리를 넘기라고 뒤통수를 치는가 하면 요제프 디트리히가 자신보다 히틀러에 대해서 더 충성함을 알고 멀찌감치 전선으로 쫓아보내기도 했다. 게다가 친위대 사단들은 육군 사단에 비해 사병적인 요소가 강했는데, 당장 최초로 편성되었으며, 최강의 취급을 받던 3대 사단들은 최초 지휘관의 영향력 때문에 각각 자기들을 만든 요제프 디트리히/파울 하우서/오도르 아이케영지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5.3. 전쟁범죄

정작 더 유명해진 이유(악명)는, 이들이 유태인 학살과 점령지에서의 인종청소에 적극 가담했기 때문이다. 특히 아인자츠그루펜(Einsatzgruppen)이라고 불리는 학살부대가 점령지를 순회하며 유태인집시, 공산당 간부 등을 잡아 처형하기도 했고, 유태인 수용소 경비도 이들의 몫이었다. 열성적인 나치당 당원이었던 덕에 포로 학살 같은 잔혹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프랑스 전투 당시에는 이들의 행동을 보다못한 정규군들도 "저 자식들 군법회의에 회부해야 하는데, 히믈러가 가드쳐주고 있어, 짐승만도 못한 놈들!" 하고 그들을 혐오할 정도. 당시 독일군이 선민사상이 가득찬 집단이었고, 동부전선에서 저지른 만행은 이들또한 만만치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SS가 얼마나 막장 집단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전쟁 초반에는 나름대로 육군같은 타군의 눈치를 보던 친위대가 전쟁 말기에 이르면서 제멋대로 행동해서 갈등이 더 깊어졌다. 원래 친위대가 창설된 초창기에는 히틀러가 친위대를 돌격대같이 괴물같은 크기로 만들지 않으려고 했고, 독일군의 반발때문에 각종 중장비 공급에서 친위대가 육군에 우선권이 밀려서 노획장비를 적지 않게 운용해야 했다. 초창기 3개 사단 중에서도 2SS, 3SS기갑사단은 T-34를 1943년 시점에도 20대 이상 운용(2SS기갑사단은 아예 대대급)하고 있었을 정도로 나름대로 처신을 잘 하고 있었다. 그러나 1943년에 이르면 독일 육군의 위상하락과 함께 히틀러의 지원과 히믈러의 빽으로 SS는 최신예 무기를 정규군보다 더 먼저, 더 많이 지급받는데다가 이들이 히틀러를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리면서 이들에 대한 정규군의 평가는 "건방진데다가 인간 같지 않은 양아치들이 총통 빽믿고 잘난체한다"로 굳어졌다. 실제로 전쟁 당시 SS와 정규군 사이에서는 항상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곤 했다고 한다. 그나마 전쟁이 잘 풀리던 초중반에는 조용한 편이지만 서로 상대방을 깔보는 경향은 현저했고, 1945년이 되면 대놓고 서로 욕을 했다.

그런데 웃기게도, 독소전쟁 초기에는 이런 미친 놈들 중에서도 의외로 진짜 전투부대는 다른 친위대에 비하면 인종청소 같은 짓을 상대적으로 덜 했고 군정시의 만행도 정부에서 맡을 때 보다는 의외로 나았다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냐면, 이들은 최소한 최전방 전선에서 함부로 주민들을 건드렸다가는 피 보는건 본인들이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며, 당장 바로 앞에 있는 소련군이랑 싸우는 것도 바쁜데 양민학살 할 시간 따위가 날 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이 계속 승리하면서 이런 부대가 새 전장으로 가고 그 자리를 독일 정부에서 파견나온 사람이 차지하며, 인종청소 전문 부대가 돌아다니기 시작하자 진짜 지옥도를 그렸다.

5.4. 환멸과 배신

이렇게 히틀러를 위해서라면 영혼까지 팔 만큼 충성을 다해서 싸웠지만[12] 전황이 악화되어가자 여기저기서 승산없는 싸움을 하느니 항복하는 지휘관들이 늘어났다. 그런데 이에 대해 히틀러는 "이런 겁쟁이들이, 네놈들은 친위대가 아니다! 커프 타이틀(대원들의 군복 소매 하단에 달린, 사단명이 적힌 띠) 뜯어서 반납해!"라고 질책하는 천하의 배은망덕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런 히틀러의 행동에 격심한 배신감을 느낀 SS 대원들은 커프 타이틀 뿐 아니라 자신들이 받았던 훈장들을 모두 거둬들여서 "지금까지 목숨걸고 싸워온 대가가 고작 이 정도입니까" 하는 편지를 동봉해서 총통 관저로 보냈다고 한다.[13]

요제프 디트리히는 자기 것을 떼어 요강에 넣어 보냈다고 했다는 말이 있으나, 이건 와전된 이야기라 한다. 디트리히에게 이러한 명령이 전해졌을때 '봄의 새싹'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고 사기 저하를 우려해 지휘부 선에서 명령이 전달되지 않았다. 또한 작전이 전쟁 말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위장을 이유로 작전에 투입된 장병들에게 커프 타이틀을 떼라는 지시는 히틀러와 무관하게 내려왔다.

5.5. 전후의 무장친위대

현재 무장친위대는 법률적으로 군대도 의용병도 공무원도 아니고, 순수한 범죄단체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니까 조직폭력배와 똑같이 본다.

독일 국방군과 친위대는 별개이므로, 국제법상으로는 무장친위대는 군대가 아니라 '무장민간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지만 나치 독일의 그 어떤 법률도 나치당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정의해두지 않았으며, 당연히 나치당의 일부인 친위대나 무장친위대도 군대와는 달리 명확한 법률적 지위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법리적으로는) 준군사조직으로 보기에도 부적합하다.

그나마 적당히 체계는 갖추고 있었으니 제네바 협약에 따라 교전권이 있는 의용병 대접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바로 그 제네바 협약에서 규정하는 중대한 위반 행위 (grave breaches)를 횟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자주 위반한 덕분에 제네바 협약상으로도 교전권을 인정받을 가치가 있는 집단이 아니므로 전범으로 인정되었다.

게다가 전쟁에 나선 사유도 방어전이 아니라 타국을 침략하기 위한 것이고, 이들이 한 각종 만행으로 인하여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는 무장친위대를 범죄단체로 정의하여 단죄하였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소련군, 미군과 점령지인들로부터 보복성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SS 포로 수용소에서 테러사보타주가 만연했는데도 연합군은 이걸 무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도 당연한 일인데, 연합군 포로나 민간인을 학살하던 녀석들이 포로 대접을 받는다는 점 자체가 특혜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업자득.

덤으로, 독일 정부로부터도 정규군과 똑같이 군인연금을 납부했지만 친위대에 복무했다는 이유로 전후에 연금수혜를 받지 못하는 등 불이익들을 받았다. 거기에다가 이들이 전쟁 중에 세운 전공은 국방군의 기록과 달리 현재 독일군의 전공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미하엘 비트만의 경우 그의 소속이 SS인 관계로 오토 카리우스의 기록과 달리 그의 전공은 없는 것 취급하고 있다.

따라서 사실상 흑역사 취급. 이런 것을 인정하면 독일 정부도 이들을 군인으로 인정하는 셈이 되므로 당연히 인정할 수 없다.

5.6. 무장친위대 소속 부대들

6. 이야기거리

6.1. 제복

무장 친위대의 군복은 다른 병사들과 차별을 두어
검정색을 메인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사진은 나치 부총통
루돌프 헤스12인치 피규어
무장 친위대 군복의 종류
종류별로 3종이 만들어졌다


악행과로 별개로 제복이 폼나기로 유명한데 이 제복을 디자인한 회사가 슈투트가르트 근교 작은 의류회사였던 '고 보스'[14]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보스와 그의 공장은 단지 제복 생산에 관여하였을 뿐이다.[15] 수십 년이 지난 현재 후고 보스 사장이 제복 생산에 대해서 사과하고 그에 대한 배상금도 기부했다. 이 제복을 디자인한 사람은 카를 디비히로, 1985년에 죽었다.

히틀러는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본받아 군복 코스프레를 좋아했으며, 굳이 군복을 안 입어도 될만한 사람들에게도 모두 군복을 입히기도 했다. 괴벨스는 장애인인데다가 선전장관이었기 때문에 전혀 군복이 어울리지 않지만, 괴벨스조차도 군복을 입고 나온 경우가 많다.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이 양반은 아들도 친위대에 입대시켰다)나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도 군복입고 나온 사진이 많다.

원래 나치의 제복에 쓰는 상징적인 색깔은 SA의 제복에 들어간 갈색이었으나,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독일 재무장에 나선 뒤 SS에는 "남성적이면서 강렬한 이미지"의 군복 제작을 주문했다. 이 군복은 검은색으로 만들어졌고, 히틀러는 이 군복을 통해 친위대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적군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목적을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여기에 프로이센 군복으로부터 내려오는 독일군의 전통에서도 벗어나지 않고…. 나치 당원이자 디자인 전공자였던 칼 디비치 교수에 의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무장 친위대 흑복이 탄생하였다. [16]

설마 그럴사람은 없을거라 믿지만, 유럽에서 이 옷을 입고 돌아다니면 무조건 체포된다. 표현의 자유이건, 코스프레이건 뭐건 얕짤없다. 이 복장을 착용하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나치를 찬양하는 행위이기 때문. 독일이나 프랑스, 폴란드 같은곳은 체포되기 전에 시민들한테 맞아 죽을수도 있다. 유럽에서 혐오의 대상이자 무서울것 없이 망나니짓 하고 돌아다니는 네오나치들 조차 이 제복을 함부로 입고 다니지 않는다.

kor_ss.jpg
[JPG image (Unknown)]

여담이지만 대통령 경호실장이었던 차지철이 경호실의 제복을 SS를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유용원 기자가 취재를 정리해 공개한 위의 사진이 있다. 이 멋있으면 뭐하나? 하는짓이 병크인데...

또한 크게 부각되는 내용은 아니지만, 정규군(슈츠슈타펠은 히틀러의 개인사병이지만, 편제는 정규군에 속한다고 한다.)에서는 최초로 부대단위로 위장복을 채택한 세력이다. 그것도 쓸데없이 4계절에 맞게 4종류가 있으며, 위장기술도 현대에 써도 별 문제가 없을정도. 다만, 위장무늬 전투복이 나치와 그 선봉장인 무장친위대 그 자체를 상징해버린 나머지 [17] 한동안 서독군의 위장복 채택은 늦어지게 되었다. 여담으로, 친위대들이 사용한 스목 패턴 위장무늬는 훗날 러시아 군에서도 사용된다.


6.2. 참전자들

SS 출신 참전자들은 전후 SS가 완전한 범죄 조직이자 흑역사로 거듭난 덕에 일체의 참전군인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거부당하고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기 일쑤였다. 후일 SS출신 군인이 HIAG(SS 참전용사 상조회)를 설립하였지만 이쪽도 극우파, 역사 수정주의자들로 몰려 감시당하다가 해체됐다고.

하지만 SS 참전자들은 나치 이념과 관계없이 '정예'라는 외양에 혹해서 지원했다는 사람도 있고, 강제로 징집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국방군이 무죄고 SS는 유죄라는 식의 논리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짙게 깔려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둘 다 전쟁범죄의 주체이고 SS가 나치즘에 쩔어 있던 것 이상으로 국방군 역시 나치즘에 경도되거나 나치에는 반대하지만 군국주의자였던 사람들 투성이이기 때문에 한 조직만을 흑역사화하는 식의 논리는 상당히 불공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터뷰 영상. 당시의 참전자들에 의하면 SS는 뭔가 새로운 정예병이라는 선망의 시선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지원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실상은 시궁창이었고, 잔인할 정도의 훈련을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탈영하다 죽은 사람도 많다고 한다. 영상에서 SS의 전쟁범죄를 여과 없이 언급하며 군 이외에 SS를 따로 만든 것을 까고 있는 국방군 장교조차도 SS가 병사로서 아주 훌륭한 정예병이었고 장비도 좋았기 때문에 근처에 SS 부대가 있으면 기뻐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할 정도.

하지만 독소전을 전후해서 SS가 포로는 없다, 슬라브인은 인간 이하의 하등인종이다를 거의 반 공식적으로 천명하는 막장 조직임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많은 SS 참전자들이 이런 엄청난 규모의 범죄에 손을 담그지 않았다는 근거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SS의 활동을 정당화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18] 물론 참전자들이 동부전선에 가서 포로들을 학살하게 될 거란 걸 알고 지원한 건 아니며 SS는 규율이 잔혹할 정도로 엄격해서 그런 비인간적 명령을 감히 거부할 수조차 없었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나치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지원했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고, 당장 위의 영상에 나온 참전자들 몇명은 아직도 나치즘이나 당시의 SS적 멘탈리티를 유지하고 있는 병든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진짜 억울한 케이스는 영상의 SS 참전자들이 좋지 않게 언급하는 전쟁 후기에 SS로 강제징집당한 병사들일 것이다. 강제로 끌려가서 범죄자 취급을 당했으니...

물론 위의 영상처럼 정직하게 과거사를 대면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매우 적다. 히틀러의 최후를 지킨 SS장교는 죽을때까지 "나는 볼셰비키에 대항하는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서였다"라고 합리화하기도 했다. #
또 최근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전 SS친위대 중사였던 헤르베르트 브루네거가 쓴 <폭풍속의 씨앗>에선 전쟁범죄자라는 일반의 인식을 부정하며 '민간인과 포로를 학살하면 군사재판에 회부될 수 있었으며 군기는 매우 철저하게 지켜져서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달리 여러 범죄는 절대로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최전방 전투부대들은 실전적인 이유로 민간인 학살을 함부로 저지르는 편은 아니었고[19] 후방부대, 몇몇 또라이 사단[20] 인종청소 전문 부대들이 대부분의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하긴 하나, 사실 국방군을 포함한 대부분의 독일군 참전자들이 이런 식으로 '민간인 학살은 군기위반으로 처벌받았다 + 우리가 한 것은 군인으로서의 임무수행과 공산주의를 막는 전쟁이었을 뿐 나치의 만행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라는 변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냉정하게 바라보면 범죄자의 비겁한 자기변호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별로 신빙성은 없다. 직접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의도적으로 전쟁범죄에 눈을 감았거나 방조, 조장한 사례도 많고, 아예 직접 저질러 놓고도 발뺌을 하는 케이스 투성이인데다 결정적으로 강제징집당한 사례를 빼면 지원병으로 구성된 SS이기 때문에, SS에 들어갈 정도면 나치즘에 열과 성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점엔 변명의 여지가 없는 편이다.

무장친위대와 달리 국방군이 흑역사화되지 않은 것은 국방군 병사들은 강제징집당한 것인데다 장교 및 지휘관들 중에는 (군국주의자라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나치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니 이런 전쟁범죄 연루자의 직접 증언은 교차검증 및 사료 분석을 통해 가려 들을 필요가 있다.

7. SS 소속 주요 인물

  • 하인리히 힘러 - 친위대 최고지도자.
  •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 파울 하우서
  • 요제프 디트리히
  • 오도르 아이케
  • 미하일 비트만
  • 오토 스코르체니
  • 아돌프 아이히만
  • 요제프 멩겔레
  • 몬 괴트
  • 르트 마이어
  • 요아힘 파이퍼
  • 른스트 칼텐브루너
  • 쿠르트 발트하임
    전후 유엔 사무총장, 오스트리아 대통령을 지냈으나 후에 친위대 장교 근무가 들통났다.
  • 귄터 그라스
    전후 독일 최고의 명작의 하나인 양철북의 작가. 일설에는 유겐트에서 친나치 발언만 좀 했다고 하지만, 미국 문서에서도 확인된 마당에...공군에 징집되었다가 친위대에 자원입대했다. 17세 시절에 멋모르고 한 일이라서 1990년대에 사실이 밝혀졌지만, 아주 큰 파장은 없었다. 한국으로 치면 조정래 작가가 어렸을 때 극우조직에 가입했다는 정도? 참고로 SS는 원칙상 자원입대에 복무기간도 국방군보다 배는 더 길지만 예외없는 원칙은 없다고, 친위대도 병력이 부족하면 국방군에게서 병력을 넘겨받기도 했다. 무장친위대 군복의 좌완에서 가끔 보이는 V자가 3개 겹쳐진 표식이 바로 국방군이 친위대에서 근무하게 되었을때 부여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라스가 소속된 부대가 1945년의 심각한 병력부족의 상황하에서도 최우선으로 재편되었던 제10SS기갑사단 프룬츠베르크의 기갑부대인 것 등을 보면, 국방군에서 징집한 인원이 친위대로 넘어가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 헤르베르트 브루네거폭풍속의 씨앗의 저자.무장친위대의 실제모습을 알리는데 노력하고 있다.히틀러와 나치에 대해선 긍정적이진 않지만 부정적이지도 않다.
  • 리츠 크뇌흘라인 : 이놈은 1940년 프랑스전투 중 르 파라디에서 영국 노보크연대 병사 89명에 대한 학살을 주도했으며 학살의 증인인 헤르베르트 브루네거를 죽이려고까지 했으며, 도망치는 여자들까지 조준사격했다. 말하자면 천하의 개쌍놈 종전후 영국에 인도되어 르 파라디 학살의 책임을 지고 1949년 사형당했다.
  • 루돌프 회스 - 그 악명높은 아우슈비츠의 소장으로, 수백만이 죽은 인종청소의 가장 큰 주범이다. 의도적인 살해가 아니라 병과 기아 등 어쩔 수 없는 죽음이 대부분이었다고 되도 않는 변명을 하기도 한 진정한 쌍놈. 죽기 전에 목숨을 구걸할 요량이었는지 자기가 저지른 짓이 인류에 대한 범죄임이 분명하며 사죄한다는 식으로 데꿀멍하는 내용의 서찰을 쓰고 죽었으며, 나치 독일의 범죄자 중에서도 독보적인 악마였기 때문에 목매달린 자리는 현재까지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연합군이 그의 죄악을 응징하는 의미에서 일부러 아우슈비츠 근처까지 끌고 가서 목을 매달았다고 한다.
  • 리츠 크리스텐
  • 요제프 크라머 - 이놈 역시 멩겔레급 인간쓰레기. 안네 프랑크가 있던 수용소[21]의 수용소장. 포로식량비를 착복했으며 수용능력의 8배가 넘는 8만8천여 명을 쑤셔넣은 결과 티푸스가 창궐, 매일 250~300명씩 죽어나갔다[22]. 설상가상으로 제대로 뒷처리를 못 해 쥐가 시체를 먹고 산 사람까지 공격하는 수준까지 갔다. 이렇게 해서 죽은 사람이 3만 7천여 명에 달했다. 당연히 영국군에게 잡힌 후 열나게 두들겨 맞고 총살당한다. 이때는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어버렸다.

8. 창작물에서의 등장

울펜슈타인3D에서는 독일군과 달리 좀 어두운 파란색 제복을 입고 주인공을 발견하면 흠빠골!!(Schutzstaffel의 몬데그린)을 외치며 MP40을 두다다다 발사한다. 그런데 주인공이 습득하게 되는 MP40과는 질적으로 다른건지 텅텅텅거리는 주인공의 MP40보다는 발사음이 묵직하고, 데미지도 상당히 괴악하다. 가까이서 맞을수록 데미지를 더 많이 받게 되는 울펜슈타인 특성상 근거리에서 이런 공격을 연속으로 맞으면 3초도 안 되어서 화면이 시뻘개지고 끔살당하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래서 상당히 주의해야할 적이다. 다행인 것은 총을 꺼내들 때 딜레이가 있고 한번 공격을 맞으면 다시 총 꺼내들 때의 딜레이를 보여주므로 연사되는 무기로 잡으면 무난하다. 여러명을 상대할때는 두들겨 맞는 SS(몸빵?) 뒷쪽에 있는 SS(혹은 다른 적도 마찬가지)가 총을 발사하는 게 고스란히 플레이어를 향한 데미지로 들어가므로(!) 주의할것. 권총으로 잡을 수도 있지만 버튼을 연타하는 감각이 요구되고 위력도 낮기 때문에 비추천. MP40이 없는 상태에서 잡으면 죽을 때 MP40을 드랍한다. 같이 얻게 되는 약간의 탄약수는 랜덤. 버전에 따라서 6발 고정인 경우도 있다.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 에서도 당연히 등장하지만 보통의 병사들보다 좀 더 강한 무기를 들고 나오는 정도에 불과하다. 하긴 실제로도 큰 차인 없긴 했고...

울펜슈타인에서도 특별한 것은 없으나, 이들이 베일의 힘에 노출되면 울펜슈타인판 언데드 '데스포일드(Despoiled)'가 된다. 이 녀석은 꽤 강적으로, 한마디로 은엄폐와 총기 사격, 마법 사용을 하는 언데드라고 보면 된다. 언데드답게 체력이 비상하게 높으며, 사용하는 마법 구체 투척 공격은 꽤 아프다. 일반 국방군 버전은 없는걸 보니 SS만 이렇게 되는 듯.

둠 2: 헬 온 어스에서도 울펜슈타인 SS들이 등장한다. 숨겨진 울펜슈타인 3D 레벨을 패러디한 맵에서 등장하는데, 원작의 레벨에서 적이 등장하는 위치에 따라 난이도에 따라 최대 4명까지 몰려다닌다. 공격은 원작처럼 기관단총을 연사하는데 원작보다 더 어설퍼 보이고 결정적으로 거리에 따른 데미지 차이가 전혀 없어서 화력자체는 형편없다. 물량공세를 논외로 친다면 SS가 차지하는 위치는 타 둠2 몬스터와 비교하면 샷건가이좀비맨 중간 정도의 위치...게다가 공격 받을때의 비명소리도 좀비맨의 그 사운드를 재탕했다. 사망시의 비명은 울펜슈타인의 그것과 흡사하지만 원작 PC판에는 없는 소리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러시아 캠페인이 들어간 게임이라면 거의 반드시 등장한다. 초반에는 독일군이 나오다가 후반 베를린 전투까지 진행하면 등장하는 것이 전통. WAW에서는 국회의사당을 철통같이 방어하고 있는데 머리에 붕대를 감은 부상자까지 총 들고 뛰어나와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표현해준다. 월드 앳워의 SS는 보통 국방군이 회색 제복을 입고있는 것과는 달리 새까만 제복을 입고 있어 쉽게 구분 가능하다. 실제로도 그랬고.

아이언 스카이에서는 월면 나치로 나온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마크와 복장이 딱 친위대.

죠죠의 기묘한 모험 제2부 전투조류에 등장하는 루돌 폰 슈트로하임은 원작에서 슈츠슈타펠 소속으로 등장했으나, 그가 슈츠슈타펠이라는 설정이 역사적으로 민감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죠죠 발매 25주년 기념 애니메이션에서는 독일국방군 소속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가 입고 있는 제복은 여전히 슈츠슈타펠 제복이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의 확장팩 어포징 프론트에서 새로 등장한 진영 판저 엘리트(판자촌전차군단)은 마켓 가든 작전 당시 연합군을 막아낸 SS 부대를 모티브로 했다. 근데 어째서인지 정예인 SS의 장비가 오히려 국방군에 비해 어설프고 전투력도 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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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때문에 스월로우 사이드카 컴패니(Swallow Sidecar Company)는 2 차 대전이 끝나고 지금의 재규어로 사명을 바꾸었다. 독일의 도시통근열차인 SS-Bahn도 당연히 개명, S-Bahn이 되었고 로고도 동글동글한 S자가 되었다.
  • [2] 근데, 미국의 Secret Service도 SS아닌가?
  • [3] 공산주의 군대를 뜻하는 인민군이 아니라, 국민 전체가 참여하는 국민의 군대를 뜻한다. 그 전의 군대는 군의 고위층이 너무 구 프로이센 귀족층에 의해 장악되어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군의 쿠데타 위협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4] 당시 나치당 고위층 중 한명은 히믈러를 교양과 지성이 넘처 흐른다라고 묘사하였다.
  • [5] 그러나 대학은 나오지 않았고 한국으로 말하면 전문대 정도를 졸업했다.
  • [6] 물론 당시의 전문대라고 하더라도 고급교육을 받는 국민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지금 한국의 전문대와 단순비교할 수는 없다. 게다가 나치당의 주요인물이라는 사람들이, 히틀러까지 포함해서 대부분 불만에 가득찬 하층민 출신이거나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장교도 아닌 사병출신들이라, 히믈러 정도면 나치당 안에서는 고급인텔리로 통했다.
  • [7] 2차 대전 당시 독일군 사병의 평균 신장은 163cm였다.
  • [8] 문제는 발언한 사람이 육군에서 친위대로 전속한 펠릭스 슈타이너였다는 것이다!
  • [9] LAH의 경우 많은 피해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졸전에 실망한 히틀러가 베를린으로 돌아와야 할 부대를 프라하로 보내는 바람에 분위기가 좋지 않아져서 1939년 성탄절에는 히틀러가 직접 프라하로 달려가서 성탄절 연회를 베풀어주기도 했다.
  • [10] 친위대 전투부대 시절부터 편성된 고참이자 비킹 사단에서 전설적인 전공을 올리는 게르마니아 연대의 경우 폴란드전 당시 시가전에서 폴란드군의 역습에 밀려나다 못해 연대 전체가 도망치는 추태를 보였다고 한다.
  • [11] 물론 이들은 영국등의 식민지배에 반발하여 참여.
  • [12] 다만 후술할 알베르트 괴링과 그 부하들은 예외다. 그래서 이들은 나중에 잡힐때 포로대접을 제대로 해주었다.
  • [13] 이때 알베르트 괴링은 '역시 그럴줄 알았다...'라며 혀를 끌끌 찼다고 한다.
  • [14]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명품브랜드 맞다.
  • [15] 참고로 당시 휴고 보스는 하청업체 수준의 영세한 회사였다.
  • [16] 국내에선 휴고 보스가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건 아니고, 친위대 제복의 생산을 맡았던 공장이 휴고 보스社였다.
  • [17] 다른 패턴이지만 육군과 공군 지상부대에서도 사용한 바 있다
  • [18] 참전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무슨 당연한 일과를 수행하는 것처럼 포로를 잡으면 옆에 끌어가 쏴버리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처럼 전쟁범죄를 일상적으로 저지르면서도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미치광이 조직이었다는 얘기.
  • [19] 민간인들을 함부로 건드렸다간 적군 + 식별할 수 없는 불특정다수의 적과 부비트랩 및 매복한 게릴라, 파르티잔 투성이인 최악의 전장을 만드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 [20] 사단장이 아동 성범죄자인 걸로 유명한 디를레방어 사단 같은 경우나 아인자츠그루펜 같이 인종청소를 전략목표로 삼고 있던 부대들이 있다.
  • [21] 베르겐 베르젠 여자 수용소
  • [22] 안네 프랑크와 언니 마르고 프랑크도 티푸스가 사망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