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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영

last modified: 2015-11-30 01:39:18 Contributors

모두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던, 그러나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넥센 히어로즈 시절. 그런데…[1]

흑역사가 된 2012년 한화 이글스 시절.
입칰 효과 파이어

NC 다이노스 시절. 2013년 4월 18일부로 넥센에 복귀하면서 이 사진은 단 5개월짜리 사진이 되었다.2013시즌 중 단 20일 뛰다 간 꼴코치 연수

628일만에 다시 넥센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선 모습. 그 순간 전 넥센팬이 울었다.

넥센 히어로즈 No.19
송신영(宋臣永)
생년월일 1977년 3월 1일[2]
출신학교 중앙고 - 고려대학교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9년 드래프트 2차 88번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1999~2007)
넥센 히어로즈(2008~2011.7)
LG 트윈스 (2011.8~2011.11)
한화 이글스(2012)
NC 다이노스(2012.11.15~2013.4.17)
넥센 히어로즈(2013.4.18~2015)
한화 이글스(2016~)
등장곡 Side-B - 《Bom-Ba-Ye》[3]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14번(1999)
갑중(1994~1998) 송신영(1999) 심재학 (2000)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19번(2000~2007)
김병철(1996) 송신영(2000~2007) 팀 해체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19번(2008~2011)
팀 창단 송신영(2008~2011) 장효훈(2011~2012)
LG 트윈스 등번호 36번(2011)
오상민(2008 ~ 2011)[4] 송신영(2011) 호영(2012~ )
한화 이글스 등번호 19번(2012)
정민혁(2011) 송신영(2012) 정대훈(2013)
NC 다이노스 등번호 19번(2013)
김기현(2012) 송신영(2013) 박정준[5](2013 ~ )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19번(2013~ )
한현희(2013)[6] 송신영(2013~ ) 현역

Contents

1. 소개
2. 프로 생활
2.1. 1999년~2011년 LG 트윈스로의 트레이드 이전까지
2.2. LG 트윈스 시절
2.3. 한화 이글스 시절
2.4. NC 다이노스 시절
2.5. 친정팀으로의 귀환
2.6. 다시 한화 이글스 시절
3. 기타
4. 연도별 성적

1. 소개

넥센 히어로즈의 우완 불펜 요원. 현대 유니콘스-넥센 히어로즈 프랜차이즈였지만 트레이드를 통해 2011년 시즌 중 유니폼을 갈아입었고, 바로 FA로 풀리면서 유니폼을 또 갈아입었다. 그리고 1년만에 NC 다이노스에 지명되어 한 번 더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프랜차이즈였던 선수가 순식간에 저니맨이 된 것인데, 2013년 4월 18일에 3:2 트레이드로 결국 친정 팀인 넥센 히어로즈로 돌아왔으나 2015년 시즌 종료 후 한화 이글스 소속이 되었다. 속된 말로 '투수계의 저니맨'이란 소리도 나올 정도.

소속 팀을 옮기기 전인 넥센 시절에는 김수경 선수와 같이 이름이 여자같기 때문에 신영언니라고 불렸으며 그의 응원가인 봄바예는 그의 트레이드마크.

2. 프로 생활

2.1. 1999년~2011년 LG 트윈스로의 트레이드 이전까지

어떻게 보면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다. 드래프트 지명 순위를 보면, 2차 88번(11라운드)이인데 이 얘기는 그의 앞에 87명이 불려 나갔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 시절에는 1차 지명과 고졸우선지명도 있었다. 더군다나 송신영은 대학 졸업반으로 나왔을 때 이 순위로 지명되었다. 즉, 정말 아무도 그의 가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뜻이다.[7] 그런데 고려대 95학번 중에서 프로 무대에서 지금까지 롱런하는 선수도 송신영 뿐이다.[8] 다만, 앞 뒤의 선후배들이 너무 쟁쟁해서 좀 이 학번이 약간 묻히는 감도 있다. 94학번이 김동주손인호[9], 96학번이 김선우, 김상훈, 강봉규, 강병식 [10]등으로 화려했다.

물론 송신영은 중앙고 시절 홍성흔과 배터리를 이루었고 고2 때까지는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초특급 유망주[11]였으나 고3 때 팔꿈치에 뼛조각이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였고, 수술이 두려워 재활로 해결을 하려다 결국 뼈가 기형으로 자라 제대로 된 피칭을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후 고려대에 진학해서도 제대로 마운드에 선 적이 거의 없었기에 낮은 순번이라고는 해도 그의 지명은 그 자체로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999년 입단한 선수가 1군 무대에 데뷔한 것이 2001년의 일이다. 2년간 2군에서 짱박혀 구른 후에 기어이 살아남아 1군에 등장했다. [12]그리고 이 때 이후로 그는 내내 1군 주전 멤버로 살아남았다. 첫 해 무려 115⅓ 이닝, 이듬해인 2002년에 104⅔이닝을 던졌고 2003년 68이닝을 던졌다.그리고 2004년부터 2011년까지 8년동안 단 한 번도 70이닝 밑으로 던져 본 적이 없다. 물론 성적이 초특급 불펜의 그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70이닝 정도를 먹어줄 만큼 건실한 스태미너는 높이 평가해줄 만하다.

김시진넥센 히어로즈 감독이 현대 시절 투수코치로 있을 때부터 김수경 선수와 함께 제일 아끼던 애제자였다. 다만 쉽게 갈 수 있는 걸 어렵게 가는 단점이 있었다고. 이 점을 좀 고치라고 매번 충고했지만 본인은 위험상황이 더 좋다고 해서 김시진 감독을 당황스럽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007년에는 팀 마무리 투수 박준수가 부진한 사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까지 맡았다. 이를 도하 참사때문에 스트라이크존을 좁힌 것이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박준수한테 불리하게, 거꾸로 커브가 주무기인 송신영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연장전에서도 많이 나왔다. 캘러웨이의 이탈을 메우느라 팀 투수진에 완전히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이다.

팀의 재창단이후 2008년에 새로 부임한 감독 이광환이 제대로 망가뜨려놨다. 그리고 곧 다시 롱 릴리프 보직으로 돌아왔으나, 혹사의 영향으로 2008년과 2009년에 크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10년 부활, 꾸준히 롱 릴리프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계속 자신의 야구 인생을 펼쳐 나갔다.

넥센의 손승락이 2010년 마무리로 자리잡기 전까지 넥센 불펜의 핵으로 자리매김하여 중요한 상황마다 등판하였다. 거기다 과거에도 너무 많은 이닝을 소화했기 때문에 팬들은 걱정이 태산.

2010년 6월 기아 타이거즈와의 경기중에 무등야구장에서 벽돌을 출토에 발이 걸려 제대로 투구를 못한적이 있다. # 무등야구장 양대사건인 벽돌출토 사건의 주인공인 셈(나머지 하나는 그 유명한 무등경기장 물방개 사건).

2010년 이후로도 넥센 히어로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줬다. FA를 포기한 대가로 2억이 넘는 연봉 계약을 확정, 낮은 지명 순위에서 출발해도 노력 여하에 따라 프로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남았다.

그리고 2011년 4월, 그 2억 몸값이 전혀 아깝지 않은 무시무시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4월 28일 기준으로 초반 7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세이브 순위 1위까지 치고나간 것. 방어율은 0점대에다 승률까지 무려 10할이다. 같은 페이스로 잘 하고 있는 오승환보다 나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넥센의 철벽 불펜의 핵심으로 이대로면, 부상으로 빠진 손승락이 돌아와도 손승락을 중간계투로 밀어낼 기세다.[13]

5월 3일에는 프로 통산 500경기 출장을 달성했으며 5월 5일 목동 홈경기에서 KIA 상대로 시즌 9세이브 달성. 5월 19일 대구 원정경기에서는 발빠른 강명구이영욱을 출루시킨 뒤 1사 2, 3루 상황까지 가며 흔들리다가 결국 박석민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면서 시즌 첫 패전+블론세이브를 기록하였다….

2.2. LG 트윈스 시절

2011년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3시간도 안남긴 상황에서 극적으로 LG 트윈스박병호, 심수창를 상대로 당시 팀메이트였던 김모씨와 같이 2:2 맞트레이드되었다…. 불펜진의 부실로 고역을 치르고 있는 LG의 의도는 마운드 강화 차원인 것으로 보이는데, 장돌뱅이가 뒷구멍으로 또 한 건 했다는 의혹이 짙다. 야구팬들에게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14] 그리고 이는 이후 1년 8개월간의 저니맨 생활의 시초가 되었다.

그리고 8월 2일 SK 와이번스와의 문학 원정경기에 등판했는데….

모든 야구팬이 한마음으로 울었다.(…) 넥센 여성팬분들 지못미 는 이사진은 3년후 재평가 된다

5대1로 LG가 리드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윤진호의 무뇌수비와 이상열 & 김선규의 장작질이 더해지면서 5대4 까지 쫒기는 위기를 맞았으나 송신영이 8회 2사 후부터 등판하여 1⅓이닝 1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이적 후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네이버 중계창의 LG팬들은 기존 LG 불펜들의 동태눈빛에 불안해보이는 모습과 달리 등장시 눈빛부터가 남다르고 포스가 풍겨진다며 대찬양. 반면 넥센 히어로즈 팬들은 그저 눈물만….

경기후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이적 후 잠도 제대로 못자고 긴장했다. 위가 아파서 트레이너로부터 약을 타서 먹었다. 이런 긴장감은 2004년 한국시리즈 이후 처음이다"라고 털어놓았고 이에 캐스터가 "오늘 이겼으니 긴장 풀고 잠 좀 푹 자길"이라고 훈훈한 한마디를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이틑날인 8월 3일 경기에서 똑같은 상황에 등판, 8회 위기는 잘 막았으나 9회 이호준에게 끝내기 투런을 맞고 말았다. 로또를 두번이나 터뜨리다니

8월 21일 삼성전에서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8회부터 등판, 삼성의 중심타선을 막아내며 호투, 세이브를 올렸다. 선발승은 넥센에서 같이 이적한 김모씨.

8월23일 넥센전에서 등판. 1⅓이닝 1자책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오오 그것은 친정팀 사랑 1이닝은 완벽하게 틀어막았지만 1977년생 노장투수를 2이닝 던지게 하고 하루 쉬고 또 2이닝을 굴린 野石의 병크가 돋보이는 상황이기도 했다. ㅉㅉ 그러게 왜 그랬어요??

9월 1일 SK전에서 등판하여 ⅔이닝 2실점 2자책점 불질로 블론세이브를 기록했지만 LG 팬들은 오히려 쉴드 쳐주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게 1977년생 노장 투수를 3일 연투시키는 감독놈부터 까는 게 이치상 맞는데다 4강을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 9회말 2아웃 실점 위기 상황에서 경기 보며 덕아웃에서 쳐웃고 있는 선수놈들까지 나온 터라…. 애라이 이 망할 새끼들아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에서 LG 프런트를 가루가 되도록 까는 가운데 나온 말이 모 선수는 100억을 주더라도 이 팀에선 못 뛰겠다더라고 해서 그 말을 한 선수가 누구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일었다. FA 자격을 얻는 이택근이라는 설이 돌았으나 이택근은 LG에 남아서 4강에 가고 싶다고 공언해서 송신영이 이 발언의 주인공이라는 설이 거의 굳어진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송신영은 "인터넷 상으로 '100억 줘도 LG에 못 있겠다'고 말한 선수가 나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그리고 "서울 태생이라 MBC 청룡 팬에 어린이 회원이었다"며 "어릴 때부터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LG에서 꼭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꿈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립서비스?

11월 14일 이택근이 1차 협상에서 구단 제시액에 실망을 넘어 창피함을 느꼈다며 더 이상 우선협상은 없을 것이라 발언해서 100억 드립의 범인은 이택근으로 거의 굳혀졌다 기사 빵 사건처럼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알고보니 2012년 일본 오릭스로 건너간 4번타자 어떤 돼지가 그랬다는 발언이었다. 이것도 드립인가?
그러나 11월 19일 송신영도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진실은 어디에… LG팬들은 반 시즌 쓸려고 그 난리를 치고 데려온 거냐며 프런트를 까고 있다. 그리고 송신영이 다시 넥센으로 돌아오면 빌리장석머니볼의 신으로 추앙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카더라.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3. 한화 이글스 시절

2011년 11월 20일, 한화 이글스와 3년 13억원[email protected]에 계약에 합의했다. [email protected] 옵션이 비공개이긴 하나 전체적으로 그리 큰 액수가 아닌 걸 보고, LG 트윈스에서 어떤 금액을 부렀기에 파토가 났느냐며 성토하는 여론이 많다. 2년에 7억 불렀단다. 그러면서 김기태 감독은 2012시즌 마무리로 낙점했었다고 하니 이뭐병…. 금액도 금액이지만, 한화는 20일 0시가 되자마자 이상군 운영팀장이 전화를 걸어 위치를 파악한 후 직접 차를 몰고 새벽에 강원도 산골짜기까지 달려갔다고 하니 선수를 대하는 마인드 자체가 다르다고 밖에….##[15] 결국 송신영은 한화로 이적하고, LG는 보상선수로 포수 나성용을 지명했다.

그 와중에 이런 기사가 발굴되었다.

12월 26일 한화 이글스 구단 사무실에서 입단식을 가졌다. 배번은 19번. #

그러나... 어째서인지 한화로 간 후 분식의 달인이 되어 버렸다. 박찬호가 한화에서 선발로 처음 등판한 날 2점을 분식회계하는 바람에 엄청나게 까였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이후로도 주자 있을 때 등판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분식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FA로이드?! 놀랍게도 5월 14일까지 기준으로 피안타율이 .360인데 득점권 피안타율은 .250. 스탯관리 쩌네여

5월 14일까지 전 경기 승계주자 실점률은 83%(5/6)였지만 자신의 평균자책점은 3.18로 준수하게 기록하며 분식왕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탯관리 쩌네여2

5월 17일엔 8회 3점차에 간만에 주자없이 등판하여 2타자를 정리하고 박정진에게 마운드를 넘겼으나, 1이닝이 아닌 ⅔이닝을 막았기때문에 홀드는 기록하지 못했다.

이때까지의 모습을 보면 일단 볼넷은 별로 없지만 안타를 너무 많이 맞는게 문제. 거기에 실책이라도 나와서 비자책상황이 되면 또 여지없이 얻어맞는다. 그나마 줄 점수 다 주면 급호투로 방어율 관리중.... 많은 한화팬들은 송신영을 주자 없을 때 올려야된다고 아우성치는중. 사실 송신영은 이전부터 터프세이브 상황에서 올라가는 스타일의 투수가 아니었다. 결국 한 박자 늦은 투수 교체가 송신영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 것.

5월 20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7회초에 등판해 최정을 상대로 빈볼성 투구를 해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시즌 1호 퇴장 선수가 되는 불명예를 안았다.[16] 이미 초구부터 타자의 몸 뒤쪽으로 빠지는 폭투를 범해 심판으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은 상황에서 3구째에 다시 다리를 맞춘 것.

퇴장 명령을 받은 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글러브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17][18]

이후 KBO는 송신영에게 벌금 200만원 + 5경기 출전 정지의 징계를 내렸다. 5경기 출전 정지 징계는 가중처벌[19]이라고. 이 때문에 안 그래도 빈약한 한화의 불펜에 크디큰 구멍이 뚫려버렸고, 뒤이은 KIA 타이거즈와의 주중 3연전 스윕의 빌미를 제공한 꼴이 되어버렸다. 송신영이 특히 SK를 싫어하는 듯.. 09년때랑 같은 느낌?

이후 5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전에 등판했으나 올라오자마자 이승엽에게 홈런을 맞았다. 이쯤되면 거의 뭐 FA잔혹사라고 불릴만 하다. 먹튀라고 해도 할말없는 상황....

6월 1일 LG 트윈스전에서 7회 말 윤근영이 주자를 내보내고 강판을 당해 송신영이 등판을 했는데... 우려와는 달리 7회를 잘 막았다. 뒤이어 8회에서도 볼넷 2개를 내주었지만 실점 없이 막아내었다. 분식점 개점휴ㅋ업ㅋ

한화 이적 이후 팔의 각도가 완전히 사이드암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떨어져버린 상태다. 작년의 혹사와, 본인이 몇 번 투구폼 변경을 생각해본다고 사이드암으로 던진 것이 안 좋은 영향을 미친 셈. 이걸 잡아줘야할 정민철 투수코치는...

결국 6월 7일 자로 2군행... 이후 한달여간의 조정기간을 거쳐 7월 10일 1군에 콜업되었다. 이 기간동안 퓨처스리그 13경기에 출전하여 1승 2홀드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했다. 특히 최근 경기에서의 피안타와 볼넷 허용이 크게 줄어들어 다시금 팬들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근데 왠지 FA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입칰효과가 걸린 듯하다. 역시 LG는 또 하나의 삽을 퍼다 주었습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4경기 23 ⅔이닝 1승 3패 2홀드, 평균자책점 4.94. 경기당 1이닝도 채 소화해내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명백한 FA로이드 부작용. 사실 12시즌 동안 방어율 3점대를 기록한 것이 단 네 시즌에 불과했던 투수가 2011 시즌 갑자기 2점대 방어율을 보인 건 반드시 플루크를 의심해봐야 했다. 그리고 2011년 후반기, 아웃카운트를 플라이볼로 많이 잡는 송신영의 투구 패턴이 잠실구장과 LG 외야진의 넓은 수비범위에 도움을 받아 방어율 플루크에 명백히 도움이 되었는데, 이것이 대전구장과 한화 외야진과의 결합을 만나...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4. NC 다이노스 시절

결국 2012년 11월 15일, NC 다이노스의 20인 보호선수 외 지명을 통해 이적하게 되었다. 한화는 정말 모처럼만에 FA 시장에서 돈을 풀어 송신영을 영입했지만... 망했어요

2013년 4월 13일 마산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홈 경기에 구원 등판하여 1이닝 1삼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이적 후 첫 홀드를 챙겼다.

다음날 4월 14일 SK전에 2:2로 동점인 9회초 구원 등판하여 1이닝 동안 2개의 볼넷과 3루수의 실책으로 인한 1실점을 하였으나, 9회말 이호준의 적시타와 박으뜸의 결승 스퀴즈 번트로 인하여 4:3으로 역전승을 거두며 시즌 첫 승을 올렸다. 그리고 이 승리는 NC 다이노스의 창단 1호 구원승으로 기록되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NC 다이노스에서는 상당히 잘 지냈고, 팀의 젊은 투수들이 많이 따랐다고 한다. NC의 특성상 어린 선수들이 많은데 그 선수들에게 의지가 되었다고. NC의 젊은 투수들이 인터뷰를 할 때 송신영의 이름을 꽤 언급하고, 노성호는 그 중에서도 제일가는 송신영 사랑을 보여주어 송성애자, 송퀴벌레, 송리타 등의 별명을 획득했다.

2.5. 친정팀으로의 귀환

2013년 4월 18일, NC와 넥센 간 트레이드로 친정팀인 넥센 히어로즈에 트레이드되었다. # 이택근에 이어 또 한명의 프랜차이즈급 스타가 돌아왔다! 참고로 이 트레이드에 대한 비화가 있는데 2013 시즌 전, 스프링 캠프에서 넥센과 NC의 시범경기를 가졌을때 송신영이 넥센 덕아웃에 죽치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본 김경문 감독이 염경엽 감독에게 "저놈 넥센으로 보내야겠네"라고 우스개 소리를 던졌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후 발 빠르게 등번호 19번이었던 한현희를 63번으로 돌린 후 송신영에게 19번을 준 다음 공홈에는 이택근의 나이트 찌라시와는 비교되는 노란 손수건 환영인사를 올렸다.

다음 날, 바로 경기에 출전에 8회를 1삼진등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잘 막고 자신의 귀환을 화려하게 알렸다.

5월 3일 KIA 타이거즈와 경기에서 1⅓이닝을 틀어막고 2011년 5월 5일 이후 2년만에 넥센 유니폼을 입고 세이브를 올렸다.

넥센의 불펜에서 스윙맨으로 자리를 잡았다. 승리조-추격조-대패조로 나눠지는 넥센 불펜에서 2이닝을 먹어줄 수 있는 송신영은 귀중한 승리조. 61이닝을 던지며 방어율 3.21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다만 10월 5일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한화 이글스에게 2점을 허용, 경기가 2:1로 끝나면서 플레이오프 직행 실패의 대역적이 되고 말았다. 물론 안타를 1개밖에 치지 못한 깝깝한 타선이 더 문제이기는 했다. 시즌 최종성적은 61경기 61 2/3이닝 방어율 3.21로 이정훈과 함께 불펜 베테랑으로서 활약을 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1⅓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2014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상태가 영 좋지 않은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특히 5월 4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말도 안 되는 실책을 하면서 난타당해 주자를 쌓고 내려와 손승락의 블론세이브의 빌미를 제공해 손승락과 함께 까였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좋지 않은 투구 내용을 보이면서 넥센 히어로즈 팬들의 비난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만 송신영이 마흔을 앞에 둔 노장투수라는 걸 감안하면, 은퇴할 시기가 얼마 안 남았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

시즌 최종성적은 41경기 42.2이닝 2승 1패 2홀드 평균자책점 6.59로 타고투저 시즌이라지만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고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피안타율 .331, WHIP 1.72로 계투로써의 안정감은 전혀 보이지 못했다. 무엇보다 피OPS가 2013년보다 2할 7푼 정도 높아진 편이라, 팬들은 2015년에도 이러면 어쩌나 하며 걱정하였다.

결국 연봉이 3억원에서 1억5천만원으로 삭감되었다. 다만 지난시즌 연봉은 FA로 받을 3년치 연봉의 마지막해인지라 어느정도 소폭의 삭감이 있을수도 있다는것이 중론. 또한 2014시즌의 방화가 어느정도 삭감폭이 큰 것에 영향을 미친듯 하다.

2015년 3월 1일 송신영의 17년 야구 인생을 돌아보는 기사가 실렸다. 14년에 147km/h까지 나왔다고.그 난타당했던 걸 생각하면 진짜 의외다

2015 시즌에는 선발로 전환. 그런데 팀 타선의 화력 지원을 받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생각보다 준수하게 넥센 선발진의 구멍을 메워주었다. 6월 20일 어깨 통증으로 강판 후 1군 말소가 될 때까지 6승 1패에 평균자책점 3.62를 기록.

2.6. 다시 한화 이글스 시절

뜬금없게도 시즌 종료 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다시 한화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넥센과 한화 양쪽 팬덤 모두 불만이 많은데, 넥센의 경우에는 현대 시절부터의 프랜차이즈를 또 다른 팀에다 내다버렸다는 실망감이 있고, 한화의 경우에는 과거 한화 시절의 연쇄방화(...) 전력이라던가 나이 문제 등으로 인해 또 영감님이 삽질했다고 보기 때문.

3. 기타

  • 공이 한가운데로 꽂혀도 혼이 담기지 않으면 스트라이크가 아니다의 피해자로 유명하다. 그 유명한 회전(!) 오망성 존! [20]

  • 언니라는 별명이 가지는 부드러운 인상[21]에, 다른 성깔 레전드들(?)과 비교해 전과(?)가 없고 임팩트가 부족한 면이 있어서 부각이 잘 되지 않는데, 굉장히 한 성깔 한다고 한다. 여러 카더라에 의하면 現 KBO 투수들 중에서 제일이라는 말까지 있다. 홍성흔의 인터뷰에 의하면 중앙고 배터리 시절에 서로 한 번 다툰 적이 있었는데, 말싸움 끝에 송신영이 날린 펀치에 홍성흔이 한 방에 나가떨어진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 절정은 2009년에 나타나는데, 7월 30일 SK 와이번스와의 목동 홈경기에서[22] 6회 초 송신영은 박재상의 몸에 공을 맞췄다. 6회 말 고효준황재균을 맞추자[23], 7회 초 송신영은 다시 나주환을 맞췄다. 나주환도 달려드는 모션을 취했고, 송신영은 똑같이 싸울 기세로 달려갔다. 결국 이는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졌고, 송신영은 퇴장당했다. 그리고 그 성깔은 짧았던 LG 시절, 2011년 10월 2일 7회말에 이택근이 일으킨 벤치 클리어링 사건에서 증명되었다[24]
    2014년 4월 8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13:8로 지던 9회초에 등판한 손승락이 1사 1루 상황에서 김주찬을 상대하던 중 손승락의 투구에 김주찬이 맞았는데, 김주찬이 순간 욱하며 마운드를 향하자[25]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손승락이 고의가 아니라며 사과를 했는데도 송신영 본인이 더 과하게 반응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26] 손승락이 2014년 개막 후 블론세이브를 두 개 기록하는 등 부진했기 때문에 손승락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던 듯하다. 그리고 시비건 것이 잘한 것은 아니지만 김주찬도 배트를 놓지 않고 마운드를 향하는 상황이었기에[27] 송신영이 과하게 반응할 법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양 팀이 서로 오해를 풀면서 4월 8일의 일은 어느 정도 무마되었다.

  • 한화 이글스에 있었을 시 많이 힘들었는지 한화를 다음과 같은 식으로 선수들의 얼굴을 가지고(…) 디스했다. 이 와중에 끼인 KIA 타이거즈 지못미 그래도 KIA, 한화보단 낫잖아

  • 본인의 말에 따르면, 히어로즈 이외의 팀의 유니폼을 입고 목동구장에서 출장한 적이 없다고 한다. 출장대기하면서 몸은 푼적이 있어도 마운드에 오른 적은 없는 듯.[28]

  • 그의 2012년 한화 시절 대먹튀 흑역사 때문에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 류현진이 마운드를 내려간 뒤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귀신처럼 분식회계를 하는[29] 로날드 벨리사리오에게 벨신영이란 별명이 붙어버렸다. 넥센팬들 중에는 왜 신영언니 이름을 방화범에게 붙이냐며 발끈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화팬들이나 그 외 야구팬들에게는 이미 벨신영은 방화범의 상징적 별명으로 낙인됐다. 그리고 넥센팬들도 이제 벨신영이라고 부른다.

  • 자신의 별명 '신영언니'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한다. 다만 팬들끼리 부르는건 괜찮지만 본인을 별명으로 부르는건 자제해달라고. 그러면서 강정호의 별명을 예로 들었다

  • 넥센의 어린 투수가 어디서 보도못한 구종을 들고 나왔을 때, 출처를 물어보면 대부분 그의 작품이다. 플레잉 코치 구종계의 도라에몽

  • 엘넥한 세팀에서 전부 뛴 선수이기도 하다.

4. 연도별 성적

  • 투수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평균자책 세이브 홀드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2001 현대 유니콘스 47 115⅓ 4.21 4 2 3 2 113 9 51 80
2002 42 104⅔ 4.39 6 2 0 4 109 14 37 67
2003 25 68 4.63 5 4 0 0 76 8 30 39
2004 59 81⅔ 3.53 8 0 1 6 85 9 35 64
2005 40 74⅔ 3.74 1 4 0 5 71 2 40 53
2006 43 95⅓ 4.53 6 5 0 1 95 8 43 60
2007 55 77⅔ 3.01 3 3 14 4 67 5 32 56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평균자책 세이브 홀드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2008 우리 히어로즈 53 72⅓ 5.23 2 8 4 9 82 6 42 63
2009 히어로즈 58 75⅔ 5.23 3 3 4 6 84 13 41 68
2010 넥센 히어로즈 65 77 4.21 5 5 1 14 75 5 43 63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평균자책 세이브 홀드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2011 넥센 / LG[30] 62 72⅓ 2.24 3 3 19
(3위)
7 67 4 25 57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평균자책 세이브 홀드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2012 한화 이글스 24 23⅔ 4.94 1 3 0 2 37 3 12 17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평균자책 세이브 홀드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2013 NC/넥센[31] 61 61⅔ 3.21 4 3 1 15 52 1 42 43
2014 넥센 히어로즈 41 42⅓ 6.59 2 1 0 2 57 7 20 28
통산 16시즌 675 1042⅓ 4.17 53 46 47 77 1070 94 489 758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6년 1완투
(7위)
1완봉
(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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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모자위에 있는 숫자는 각각 이숭용, 정수성, 송지만 등 히어로즈 배테랑들의 등번호이다.
  • [2] 실제로는 1976년생이라고 한다.
  • [3] 안토니오 이노키의 그 봄바예 맞다(...) 과거에 사이드비란 그룹이 샘플링한 곡의 도입부를 사용중.
  • [4] 시즌초반에 불미스러운 일로 웨이버공시.
  • [5] 송신영의 트레이드상대이자, 전 넥센선수.
  • [6] 2013년부터 19번을 달았으나, 송신영이 넥센으로 돌아오자 등번호를 내주고 데뷔 때의 63번으로 등번호를 변경했다.
  • [7] 흔히 프로 지명 말번은 그냥 로또 식으로 뽑는 경우가 많다. 예외도 있겠지만.. 참고로 이 해 현대의 말번 지명자는 당시 대졸이었던 윤상원 현 KBO 심판이다.
  • [8] 전체 95학번(편의상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에 진출한 선수도 학번으로 지칭) 출신 중에서도 그나마 프로에서 성과를 보인 선수는 이승엽, 임창용, 홍성흔, 박정진, 황두성, 조성환,정수근 뿐인 수준이다. 이승엽, 임창용,홍성흔의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전체적으로는 다른 연도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 [9] 손인호는 프로와서 별 활약을 못해서 그렇지, 고교와 대학 시절에는 최고 스타였다.
  • [10] 사실 강병식도 고교,대학시절엔 기대주였다. 프로와서 백업대타정도로 전락해서 그렇지.
  • [11] 이승엽의 절친이었던 고교 유망주 김건덕의 인터뷰에도 나온다.
  • [12] 당시 현대의 1군 계투진이 신철인,마일영,전준호 등의 준수한 불펜이 많았다는걸 생각해보면 송신영이 대단하다고도 볼 수 있다.
  • [13] 부상에서 복귀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잠시 동안은 불펜 생활이 필수겠지만.
  • [14] 트레이드 기사가 어느 언론매체에서도 나오지 않은 시점에 LG 프런트 관계자 지인이 정확하게 심수창+박병호[email protected]김모씨+송신영의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는 글을 썼다. 이후 [email protected]의 정체는 15억인 것으로 밝혀졌다. article|default #
  • [15] 심지어 모 야구 팬사이트에 올라온 카더라에 따르면, 한 팬이 한화 2군 경기 직관을 갔다가 송신영에게 싸인을 받으며 "왜 LG를 떠났나요"라고 물어보니 LG 프런트가 그에게 욕을 했다고 송신영이 대답했다 한다. 팀을 위해 뼈빠지게 던졌는데 프런트란 놈들은 욕이나 하니 누가 그 팀에 남고 싶었을까? 게다가 돈도 후려치는데?
  • [16] 사실 2012시즌 1호 퇴장의 주인공은 한대화 감독이다. 유헤드빙빙
  • [17] 퇴장 명령에 불복하여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공을 던지지 못한 자신에게 화를 냈다고 변명을했다. 하지만 시즌 초 한화의 팀 사정, 그리고 팀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홈팬들 앞에서 글러브를 내던진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 행동이 빌미가 되어 구단 자체 징계는 물론 후술하는 KBO의 징계 또한 받게 되었다.
  • [18] 이때 심판이 송신영을 퇴장시킨 이유가 압권인데 송신영의 제구력이면 고의가 아닌이상 저런 빈볼이 나올수가 없으므로 퇴장을 결정했다고 한다.
  • [19] 이미 2006년 현대 시절, 2009년 히어로즈 시절에 빈볼을 던져 비슷한 수준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었다.
  • [20] 근데 이 짤의 심판은 강광회다. 현대-넥센에 악의적으로 심판하기로(?) 유명하다.
  • [21] 이름은 그렇긴 하지만 실제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듯 눈매가 날카롭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인상이라 사람에 따라 무섭게 보일 수도 있는 얼굴이다. 사인요청 했다가 눈빛이 지려 도망간 사람도 있을정도이다. 권혁과 비슷한 느낌. 이것 때문에 얼굴로 보는 야구선수 직업 짤방으로 결혼 사기꾼(…)과 닮았다는 농담이 돌아 스타일을 좀 구긴 적도 있다.
  • [22] 7회까지만 8:14라는 엄청난 난타전을 벌이고 있었고, 몸에 맞는 공이 난무한 경기였다.
  • [23] 황재균도 고효준에게 항의를 하며 달려드는 모션을 보여주었다.
  • [24] 벤치 클리어링에서 탱커이자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김동주를 상대로 기죽지 않고 맞섰다.
  • [25] 공이 팔 쪽으로 붙었던 데다, 김주찬은 이미 2013년 초에 손목에 공을 맞고 부상으로 고생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발끈할 만했다.
  • [26] 여기에 같은 투수조 고참이었던 서재응도 맞서서 눈을 부릅떴다. 한편 이 때 송신영이 검은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이것 또한 주목을 받았다 (흥미로운건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서재응과 정근우의 다툼때 흥분해서 정근우에게 달려들던 김종국도 점퍼를 입었다는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동네에서 흔히 주정부리는 아저씨처럼 쌩뚱 맞았다
  • [27] 설령 항의하기 위해 마운드로 향하더라도 배트는 두고가는게 불문율이다. 배트는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물건이다.
  • [28] 2013년 5월 15일자 베이스볼 워너비 방송에서 담벼락 토크 인터뷰 중에 직접 말한 내용.
  • [29] 멀리 갈 것도 없이 2012년 한화 개막전 경기를 보면 된다.(...)
  • [30] 2011년 7월 31일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다.
  • [31] 2013년 4월 16일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