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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구

last modified: 2015-04-13 23:48:13 Contributors

택뱅리쌍
송병구 김택용 이제동 이영호

現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
現 스타크래프트 2 코치
stork_1.jpg
[JPG image (Unknown)]
프로필 성동일 닮았다
성명 송병구
한자 이름 宋炳具
로마자 이름 Song Byung Goo
생년월일 1988년 8월 4일
국적/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북도 포항시
키/몸무게 179㎝·75㎏
혈액형 A형
가족관계 2남 중 둘째
現 소속 삼성 갤럭시 칸
ID Stork
종족 프로토스
2013 WCS 순위/점수 권외
2014 WCS 순위/점수 66위/300점
SNS 트위터 페이스북
미니홈피
팬카페 Stork 송병구 선수 카페
방송국 트위치TV[1]
소속 기록
삼성 갤럭시 칸[2] 2004 ~ 현재


대한민국 e스포츠 명예의 전당 헌액자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Starcraft:Brood War
강민
Nal_rA
홍진호
YellOw
기욤 패트리
Grrrr...
김동수
GARIMTO
김택용
Bisu
박성준
July
박용욱
Kingdom
박정석
Reach
박태민
GoRush
서지훈
XellOs
송병구
Stork
오영종
AnyTime
이영호
FlaSh
이윤열
NaDa
이제동
Jaedong
임요환
BoxeR
정명훈
FanTaSy
조용호
ChoJJa
최연성
iloveOov
허영무
JangBi


Contents

1. 경력
1.1.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 개인리그
1.2.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 팀 리그
1.3. 스타크래프트 2: 군단의 심장 개인리그
2. 소개
2.1. 테란전
2.2. 저그전
2.3. 토스전
2.4. 김택용과의 관계
3. 콩라인과의 인연과 탈출기
4. 콩라인 탈출 이후
4.1. 2009년
4.2. 2010년
4.3. 2011년
4.4. 2012년
4.5. 2013년
4.6. 2014년
4.7. 2015년
5. 송병구의 콩라인 탈출 전까지의 프로게이머 역정
6. 그 외
7. 그의 별명들


1. 경력

우승 기록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우승자
EVER 스타리그 2008
박성준
송병구 바투 스타리그
이제동
WCG 2007 스타크래프트 부분 금메달
최연성 송병구 박찬수
이제동

1.1.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 개인리그

2004년 CYON 챌린지리그 우승
2005년 제7회 커리지 매치 입상
2005년 EVER 스타리그 2005 16강
2005년 2005 So1 스타리그 16강
2005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16강
2006년 프링글스 MSL 시즌1 16강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Season 1 24강
2007년 2007 다음 스타리그 3위
2007년 곰TV MSL 시즌2 준우승[3](2:3 김택용)
2007년 WCG 2007 그랜드 파이널 스타크래프트 부문 금메달(2:0 샤쥔춘)
2007년 EVER 스타리그 2007 준우승(1:3 이제동)
2007년 곰TV MSL 시즌3 16강
2008년 곰TV 스타 인비테이셔널 준우승(2:3 이영호)
2008년 박카스 스타리그 2008 준우승(0:3 이영호)
2008년 EVER 스타리그 2008 16강
2008년 인크루트 스타리그 2008 우승(3:2 정명훈)
2008년 클럽데이 온라인 MSL 2008 8강
2008년 WCG 2008 그랜드 파이널 스타크래프트 부문 은메달(0:2 박찬수)
2009년 BATOO 스타리그 08~09 16강
2009년 로스트사가 MSL 2009 3위
2009년 박카스 스타리그 2009 16강
2009년 아발론 MSL 2009 32강
2009년 EVER 스타리그 2009 8강
2009년 WCG 2009 그랜드 파이널 스타크래프트 부문 은메달(1:2 이제동)
2009년 NATE MSL 2009 32강
2010년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Season 1 16강
2010년 하나대투증권 MSL 2010 32강
2010년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Season 2 3위
2010년 박카스 스타리그 2010 준우승(0:3 정명훈)
2010년 피디팝 MSL 2010 8강
2011년 ABC마트 MSL 2011 16강
2011년 진에어 스타리그 2011 16강
2012년 Tving 스타리그 2012 16강 (스타리그 13회 연속 진출 및 통산 17회 진출로 두 분야 모두 최다 기록)
2012년 e스포츠 명예의 전당 헌액
2012년 스타리그 통산 100승 달성(vs 이경민전. 임요환, 홍진호에 이어 세번째)

1.2.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 팀 리그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개인전 다승왕 (공동)
2007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MVP
2007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우승 (삼성전자 칸)
2007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리그 결승전 MVP
2008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그랜드 파이널 준우승 (삼성전자 칸)
2008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우승 (삼성전자 칸)

1.3. 스타크래프트 2: 군단의 심장 개인리그

2. 소개

사실상 스타리그에서는 김동수도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스타리그 최다 진출, 연속 진출 이런 여러 가지를 종합해 놓고 봤을 때는 송병구가 스타리그 역사상 최고의 프로토스 레전드입니다. -스타리그 100승 달성 직전 엄재경 해설위원의 평가

무결점의 총사령관
온게임넷 스타리그 프로토스 7대 우승자, WCG 7대 우승자.
2015년 1월 현재 스타판에 남아있는 마지막 육룡[5]
스타크래프트 올드 프로토스 팬들의 최후의 보루[6]
프로토스의 살아있는 전설[7]

2007년부터 스타크래프트 1 말기까지 스타판을 접수한 4대천왕 택뱅리쌍의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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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송병구의 리즈 시절


티빙 스타리그 16강 이경민전에서 스타 리그 100승을 기록한 후 핸드프린팅 세레머니를 하고 있는 송병구. 참고로 이 기록은 임요환홍진호에 이어 역대 세번째이자, 스타크래프트 1에서는 마지막으로 달성한 것이다.

프로토스 육룡이라 불리는 좋은 기량을 보이는 프로토스 프로게이머들 중의 한 명으로, 육룡에서의 별칭도 공룡이지만 그 육룡 중에서도 '택뱅'이라 불리며 김택용과 함께 최고의 프로토스라고 평가받고 있다.[8]

택뱅리쌍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실은 2004년에 데뷔한 살아있는 전설이며,[9] 방송경기 데뷔이자 스타리그 데뷔는 다름아닌 스타리그 4번시드 직행의 권리가 주어지던 스타 챌린지 리그의 마지막 우승[10]이다. 이 우승으로 EVER 스타 리그 2005에 직행하고 동반 진출한 박지호,오영종과 함께 신 3대 토스라는 해설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택리쌍과 커리어 차이가 많이 난다. 이 때문에 종종 툭하면 까들에게 뱅을 택리쌍이랑 같은 위치로 두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까인다. 사실 김택용과 같은 번뜩이는 선천적 재능도 없고, 리쌍처럼 개인 리그 커리어가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것도 아닌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표적 분위기파 선수[11]이기 때문에 다른 멤버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멘탈이 강한 편이 아니라 우승컵을 들어올릴 여러번의 기회를 날려먹었고, 기복도 심해 안정감도 떨어지는 편. 게다가 핑계질로 긁어모은 안티여론과 개그기믹, 또 한창 커리어를 쌓아야 할 전성기 시절에 한눈을 판 것도 있고[12] 택뱅리쌍 개념이 잡힌 이후로는 해마다 한두 번씩은 스타 팬덤 내에서 저평가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송병구는 이들보다 이른 시기에 데뷔해서 훨씬 더 이른 시간에 명성을 얻었던, 대략 세 세대에 걸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이며, 택리쌍과 달리 게이머로서 최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나이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 보낸 선수다. 게다가 한때 4대 본좌가 무너지고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이후 택뱅리쌍 개념이 만들어 진 후의 명예와 성적에 대한 괴리감은 오래 전부터 본 사람도 잘 느끼지 못한다.

이토록 오랜 기간 동안, 대략 세 세대를 걸쳐 활약한 선수들 중에서 세월이 흘러도 큰 차이 없이 최정상급 게이머로 군림한 선수는 거의 없다. 더군다나 하등 종족 프로토스 유저들만 간추려보면 유례를 쉽게 찾아볼 수 없을 정도.[13] 송병구와 같이 신 3대 토스로 꼽힐 당시 다른 두 선수를 비롯해서 전성기를 보내며 경쟁했던 라이벌들이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생각해보라. 기억이 안나면 당시 개인 리그 조 지명식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14] 게이머로서는 황혼기라는 나이에도 여전히 최정상급 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역대급 게이머라는 평가를 내려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그가 이토록 정상급 게이머로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플레이 특징이 엄청난 컨트롤과 토스유저로서의 넘사벽급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운영능력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컨트롤면에서는 단연 프로토스 최강급으로서, 프로토스의 각각 모든 유닛의 컨트롤이 최고의 수준이다.[15] 빌드와 운영으로 이겨놓고 싸우는 타입이지만, 그 뛰어난 전투 능력 때문에 위기 순간도 쉽게 넘기고, 질 것같은 싸움도 이기는 경우가 많다. 전투 말아 먹어서 지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 다 이긴 경기를 발컨으로 말아먹는 경우가 자주 나오는 김택용과 비교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손 자체는 느린 편이다. 상대적으로 APM이 덜 중시되는 프로토스 게이머 중에서도 손이 꽤 느린 편. 그의 리플레이를 보고 있자면 마우스 움직임이 참으로 느긋하다. 그러면서도 헛손질이 거의 없이 컨트롤이 좋은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 부지런한 손 움직임으로 많은 양의 멀티 태스킹을 해 내며, 특유의 화려한 견제를 일구어 내는 김택용과 정반대의 요소.

다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그 운영 능력은 전투에서 결코 패하는 일이 없으며 한번 적진 근처까지 도달하면 끝내는 적진을 뚫어 버리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또한 항상 하이 템플러 다수를 운영하며, 작열하는 사이오닉 스톰의 정확도는 가히 완벽하다.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인지 딱히 무언가를 시도해서 플레이하기 보다는 정도만을 걸어서 운영으로 승부를 본다. 이 때문에 정 반대의 플레이어인 김택용과 종종 비교당한다. 김택용의 변칙 플레이와 그의 정석 플레이를 비교하여 정파와 사파로 분류하기도 한다.[16] 패배에서도 항상 자신에게서 부족한 요인으로부터 찾기 때문에,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음에도 패했을 때 종종 핑계성 발언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도 맵징징은 한다

이 때문에 고전 토스빠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게이머이기도 하다. 오히려 혁명가 김택용은 이전의 토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스타일탓인지 타 종족빠들 중에 팬이 많을 정도.[17] 애초에 신인 시절부터 컨트롤과 운영 모두 잠재성이 보이는 프로토스의 기대주이기도 했고, 현대 프로토스들 대부분이 아비터를 사용하는데 반해 가능하면 피니쉬기로 캐리어를 선호하는 스타일이라든가, 저그전에서 이따금 들고 나오는 1게이트 운영, 화려하진 않으나 정확한 손놀림으로 인내심 있게 포인트를 따가는 스타일 등이 올드 토스 유저들의 향수를 자극할만한 타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SK 플래닛 프로리그 시즌 1에서 플레잉 코치로 전향한 주영달을 대신해 팀의 주장을 맡게 되었으며, 결국 2014년 11월 13일부로 개인 사정으로 팀을 나간 오상택 코치를 대신하여 새로이 플레잉코치가 되었다. 정말로 삼성 갤럭시 칸을 이끄는 총사령관이 된 것.

프로리그 소개 BGM은 2012년 2월 4일까지는 김건모의 핑계, 2월 5일서부터는 Motorhead의 The game[18].

SK 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5에서의 BGM은 카니발의 거위의꿈.

2.1. 테란전

테란을 상대할 때 발휘되는 뛰어난 전투 능력 때문에 테란전 최강의 토스 유저라고 불리고 있다. 박정석의 테란전과 유사하다는 사람도 있는데, 빌드 싸움에서 무조건 지고 전투에서 극복하는 박정석과는 달리 송병구는 일단 빌드에서 먹고 들어가는 타입이다. 뛰어난 전투 능력을 바탕으로 역전하는 경기도 많지만 대부분은 싸우기 전에 이기고 들어가는 타입이라는 점에서 강민과도 유사하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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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초부터 돌풍을 일으킨 리버 캐리어는 송병구의 대 테란전 연승의 기반이었는데, 뛰어난 리버컨을 바탕으로 시간을 끌고 트리플과 동시에 투 스타게이트에서 뽑아져 나오는 캐리어는 송병구에게 전성기 시절 강민을 방불케 하는 테란전 승률을 선사했다.

송병구에게 강한 면모를 보이는 테란은 변형태, 전상욱, 구성훈 정도가 있는데, 변형태와의 상대 전적은 공식전만으로는 8대 7, 비공식전까지 합쳐선 13대 8로 역전이 된 상태였지만, 전상욱은 2008 시즌 초반에도 프로 리그에서 송병구를 이긴 적이 있을 정도였으며, 아직까지도 송병구와 상대 전적에서 앞서있었다. 그래도 2010년 5월 25일 프로리그에서 몇 년만에 설욕해서 한판 따라잡았다. 전적이 벌어진 것은 주로 전상욱의 전성기 시절이고, 이후로는 그다지 맞붙은 적은 없다. 그리고 전상욱이 신한은행 프로 리그 10-11을 끝으로 팀의 해체와 함께 은퇴하면서 상대 전적은 3대 7로 굳혀졌다. 구성훈과의 전적은 3대 5로 밀려 있는데, 구성훈의 사실상 은퇴로 이 전적 역시 그대로 굳혀진다.

이영호와의 관계는 좀 특이한 편인데, 초기에는 다 진 경기를 송병구가 역전하는 경기가 많았다. 특히 Daum 스타 리그 3, 4위전의 1, 2경기는 둘 다 플레이어 본인조차 졌다고 생각할 정도(…) 송순신의 263킬 캐리어[20] 둘이 맞붙으면 명경기는 많았는데 결국엔 송병구가 이겼다. 하지만 결승전곰 TV 스타 인비테이셔널과 박카스 결승에서 만나는데…

먼저 펼쳐진 곰 TV 스타 인비테이셔널에서는 송병구 우승 축하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일단 천적으로 평가받는 이영호(당시 상대전적 6:1)인데다가 5경기 중에 맵 조합이 카트리나, 백마고지가 3경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이영호의 업테란 빌드에 그 동안 자신에게 절대적인 테란전 승률을 안겨준 리버 캐리어를 무리하게 고집하다가 깡통 캐리어 관광을 당하며 2:3으로 패했다.[21] 그러자 절치부심한 송병구는 업테란을 상대할 빌드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박카스 스타 리그 결승전에서는 모든 이들의 관심이 송병구가 업테란을 뚫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영호조차 뚫을테면 뚫어보시고요하면서 도발을 날렸으니…

하지만 결과는 3연꼼(…). 이영호는 업테란은 다섯 경기 중에 단 한 경기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며 확인사살했다. 트라우마가 컸는지 WCG 구국모드 발동 전까지 송병구는 5할대 승률에 개인 리그는 16강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엄밀히 말하면 송병구가 박카스 스타 리그 2008 결승전에서 대비한 것은 '업테란'이 아니라 '안티 캐리어'이다. 심시티를 통한 수비와 빠른 업그레이드를 통해서 업그레이드가 가장 빛을 발하는 메카닉 병력을 운용하는게 업테란이고 빠른 골리앗으로 셔틀리버를 막고 빠른 업그레이드로 캐리어의 인터셉터를 녹이는 것이 바로 그당시의 가장 큰 이슈였던 '안티 캐리어'

비슷한 커리어에 각각 테프전의 강자에 콩라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정명훈과도 자주 부딪히며 라이벌 관계를 가진 편이다. 인쿠르트 스타리그에서는 송병구가 혈전 끝에 3대2로 정명훈을 제압하면서 콩라인 탈출과 동시에 정명훈에게 콩라인 가입을 성사시켰으나, 이후 박카스 스타리그에서 정명훈이 완벽한 판짜기로 송병구를 제압하면서 자신을 콩라인에 가입시켰던 선수를 잡고 콩라인 탈출(...) 상대전적은 8대 7로 거의 동률이다.


2.2. 저그전

본격적인 전성기가 시작되기 이전인 2007년 초까지만 해도 저그전에서는 상당히 약한 면모를 보였다. 공식전 저그전 승률이 5할 중반. 하지만 당시에 양민 프로토스들의 저그전 승률은 대부분 5할 내외였다.[22] 그리고 송병구는 개인 리그에서 주요 저그와 많이 맞붙어 왔기 때문에 저그전이 중간은 갔다고 볼 수 있다.[23]

팀단위 리그에서는 중요 고비마다 꺼내든 커세어 리버 체제로 장기전 끝에 승리를 거둬왔다. 강민을 제외하고 수비형을 제대로 구사한 몇 안되는 프로토스. 2005 스카이 프로 리그 후기 준플레이 오프 때는 마재윤을, 결승에서는 박태민을 잡은 적이 있으며(승리의 주역은 캐리어), 신한은행 프로 리그 2008 결승전에서는 찬레기를 잡았던 점을 감안한다면 의외로 큰 경기에서는 저그를 잘 잡는 편이다.

하지만 전성기의 마레기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고, Daum 스타 리그 2007 우승자인 김준영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이 둘을 제외한 타 저그와의 전적이 나쁜 편은 아니며 승률도 높은 편이지만, 중요한 길목마다 저그을 만나 허무하게 지는 경우가 많았고, 라이벌이라 불리는 김택용의 저그전과 항상 비교당하기에 저막이라는 평을 듣게 되는 듯하다.[24]

07, 08년도즈음의 이영호와도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2007년 이후로) 주요 무대에서 저그에게 발목을 많이 잡힌다는 점이 저막 이미지 형성에 결정타가 되고 말았다. 2007 시즌의 공식전 저그전 성적을 보면 14승 11패인데, 이 중에 Vs 마재윤 1승 4패, Vs 김준영 3패, 이제동을 상대로 3승 3패를 했다. 즉 이 셋과의 전적을 빼면 10승 1패[25]이다. 즉 양민 학살은 잘했다는 것.

이전 항목에는 적혀있지 않았던 것이지만 이때 송병구는 저그전에서는 저그를 양민학살은 잘해서 에버 결승에 올라 그것도 상성인 테란도 아니고 역상성인 저그 상대로 가을의 전설을 이룰 수 있냐 없냐로 화제가 모아지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토스전이 안좋다고 평가받던 저그 이제동.
실제로도 1경기를 가져가고 2경기도 중반까지는 좋은 분위기면서 결국 저그를 상대로의 가을의 전설이라는 가히 오영종의 So1스타리그이상의 가을의 전설을 만드는거 아니냐는 설레발까지 이어졌는데,, 커세어 조공에 캐논 캔슬로 2경기를 그냥 헌납, 그이후 멘탈공황상태로 3경기와 4경기를 그냥 옛날토스를 제대로 작렬시키며 끝까지 리버안뽑으면서 게임을 패배하고 만다. 이 결승은 토스빠들에게 있어서는 흑역사 오브 흑역사, 잊고싶은 결승전으로 길이길이 기억에 남게된다. 말그대로 김캐리말대로 스웜뿌리고 달겨드는 울트라상대로 리버만 생산했어도, 테란전에서 리버를 사랑하는 그답게 저그전에서도 사용하면 되는데 리버하나를 뽑지를 않아서 게임을 져버리는, 토스입장에선 다 이긴경기를 져버린 말그대로 이해가 안되는 경기력이었다. 결국 송병구의 역대급 흑역사 확정..

그리고 07년 이후론 반대로 오히려 S급 저그들을 잘 잡아냄에도 불구하고 양민 저그들에게 자주 당하는 모습을 보여줘 예전과는 정반대로 양민 학살을 못하는 게 문제가 되었다.S급한테 지고 그 이하는 다 잡는 김택용의 테란전과 S급과 대등하나 그 이하한테 지는 송병구의 저그전

준동에 대한 트라우마는 08년도 시기에 완전히 날려보내게 된다.특히 김준영을 프로 리그에서 잡고 바로 다음 경기에서 마레기를 2:1로 잡아내며 연속으로 마준을 격파하고 이후 마레기는 IEF에서 다시 3:0으로 셧아웃시킨다.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준동의 이제동과는 이시기에 wcg에서 송병구가 격파한 이후로 개인 리그에서는 이제동이 강세, 프로 리그에서는 송병구가 강세를 보인다. 특히나 각팀의 에결로 나와서 맞붙은 프로브 릴레이로 처절하게 이긴 저프전의 경기는 송병구토스빠팬으로서는 필관.

예외적으로 토스의 재앙이라 불리는 박성준을 상대로는 은근히 강하다. 풋사과던 시절에는 박성준에게 여타 프로토스와 다를 바 없이 수없이 패하며 승률 셔틀 노릇을 톡톡히 했으나 비수류가 정립되고 나서 2007년 중반부터는 상당히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특히나 마준동에게 승수셔틀을 하던 2007년에도 박성준에겐 강했다. 둘이 맞붙으면 언제나 미칠듯한 힘싸움이 벌어지는데 그때마다 작렬하는 사이오닉 스톰은 경기의 백미. 신인시절 워낙 박성준에게 많이 져서 전체 전적은 호각세지만, 후반부에 많이 따라잡았기에 박성준에게 다소 강하다고 해석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26]

시즌이 거듭되어도 본래의 한방병력 굴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플레이를 보여주지만 상황에 따라 견제,반땅을 유도하여 승리를 거두는 등 유연한 플레이를 보여주기 때문에 매경기마다 다른 저그전을 볼수있다.

또한 원게이트 운영의 달인으로 꼽힌다. 유닛 한기한기 컨트롤이 최강급이기에 사장된 것이나 다름 없는 원게이트를 아직도 종종 써먹고 있다. 해처리 3개 펴기전까지 SDSD만 연타하는 최근 등장한 저그 게이머들은 송병구의 원게이트 찌르기에 관광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원게이트 운영이 가능한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송병구의 컨트롤 능력이 극강이기 때문이다.

2.3. 토스전

박정석 이후로 대 프로토스전 최강자로 인정받았었는데, 이것에는 뛰어난 컨트롤 능력이 뒷받침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데뷔 이래로(심지어 슬럼프인 2006년에도) 2007년까지만 해도 6할은 기본적으로 먹고 들어갔으나, 08년도 즈음 해서는 점차 승률이 하락했다. 하지만 인크루트 스타 리그에서는 13연승을 달리던 도재욱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며 자신이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해보이기도 했다. 지금 와서는 오히려 토막 취급을 받고 있을 정도…. 타 프로토스 게이머도 그렇듯 스타일 간파로 인한 성적 하락에 영향을 주었으며, 기본기가 충분한만큼 백병전에서 대승을 하여 경기를 잡는 경우가 많다.

2.4. 김택용과의 관계

두명 모두 프로토스이고 육룡의 일원이며 정상이다 보니 여러모로 비교가 되는데...(스갤에서 그대로 컨트롤CV)
  • 커세어 다크 vs 리버 캐리어
  • MSL 3회 우승 1회 준우승 vs 스타 리그 1회 우승 3회 준우승
  • 마재윤 3:0, 허영무 3:1, 송병구 3:2로 사이클링 우승 vs 이영호 0:3, 이제동 1:3, 김택용 2:3으로 사이클링 준우승
  • 온겜 와카천운으로 기적의 연명 vs 엠겜 와카천운 후 기적의 변명
  • 기적의 웃음소리 vs 무결점의 노랫소리
  • 기적의 2억관중 vs 무결점의 하이파이브
  • 송병구가 있는 삼성 소속에 콩라인인 허영무 잡고 엠겜 우승 vs 김택용이 있는 티원소속에 콩라인인 정명훈 잡고 온겜 우승 시기마저 비슷함
  • 같은 팀인 콩라인 정명훈에게 스타 리그 4강에서 3:0 관광 vs 같은 팀인 콩라인 허영무에게 MSL 4강에서 3:0 관광[27]
  • 빵삼이 vs 완병구[28]
  • 온게임넷 0회 우승 vs MSL 0회 우승
  • 07년 팀 좆망의 주역 vs 07년 팀 우승의 주역
  • 08-09시즌 팀 우승의 주역 vs 08-09시즌 팀 좆망의 주역
  • 결승 이외의 다전제에서 패배 vs 결승에서 패배

그리고 이건 2011년 5월 기준의 비교 송병구 vs 김택용 (이것도 스갤에서 그대로 Ctrl CV).

남자 좆리건 vs 여자 코딱지
오프물량 원탑 vs 온라인팬 원탑
리버 캐리어 vs 커세어 다크
온겜결승 4회진출 vs 엠겜결승 4회진출
온겜결승 1회우승 3회준우승 vs 엠겜결승 3회우승 1회준우승
토스최초 2회연속 준우승 vs 토스 최초 2회연속 우승
와카로 준우승후 핑계 vs 와카로 4강진출후 떡실신
상대적으로 개인 리그에 강하고 프로 리그에 약함 vs 상대적으로 프로 리그에 강하고 개인 리그에 약함
5전제를 잘 올라가나 5전제에서 거의 털림 vs 5전제 자체를 못 올라감
상대적으로 강한 테란전 vs 상대적으로 강한 저그전
테란전 3번 셧아웃 패배 vs 저그 이영한에게 2번 36강 탈락
결승만 아닌곳에서 택 압살 vs 결승전에서 뱅 압살
엠겜리그 4강이상 2번 vs 온겜리그 4강이상3번
온겜리그 11회연속 16강진출 vs 엠겜리그 12회 연속 32강진출
엠겜리그 본선에서 9연패 vs 온겜리그 4강 전적 1승9패
커세어로 저그 본진 훑어도 모름 vs 옵저버로 테란 본진 훑어도 모름
1월 오본왕후 2월 오막왕 차지 vs 3연올킬후 3연 노킬 원다이


김택용과는 라이벌 관계. 둘이 비상하던 2007년에는 묶어서 '택뱅'이라고 불렀을 정도이다.

  • 김택용과 송병구가 5전제에서 맞붙은 건 곰 티비 시즌 2 결승과 에버 2007 4강 2번밖에 없다. 2011년 2월 기준으로 비공식 포함 14:16로 송병구가 약간 앞선다.[29]

처음 맞붙은 것은 07 전기시즌 프로 리그였는데 김씨 셔틀을 작렬한 김택용을 상대로 송병구가 무난히 발라버렸다.

이후에 MSL 결승에서 맞붙게 되었는데, 다수 감독들은 송병구의 우위를 점쳤다. 송병구의 대 토스전 승률이 절륜했다는 점[30] 때문. 5경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결국 통한의 사업 실패로 GG를 선언, 이때 핑계 발언으로 욕을 먹기도 했다[31]. 하지만 본인은 패했지만, 지금 더 불타고 있고 열심히 하겠다는 발언을 했고 이후에 이영호를 상대로 완승, WCG 2007 금메달 획득으로 그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다시 만난 EVER 스타 리그 2007 준결승에서 그야말로 완벽한 시합을 벌여서 3:0으로 김택용을 발라 버렸다. 이 시합에서 김택용이 시도하는 모든 공격을 완벽하게 대처하며, 단지 우직하기만 한 플레이어가 아니라 보다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어라는 점을 증명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또 준우승(…).

3연꼼의 악몽을 극복하고 다시 진출한 인크루트 스타 리그 8강에서 송병구는 다시 김택용을 만나는데, 3경기 추풍령에서 벌어진 혈전 끝에 결국 송병구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경기는 곰 TV MSL 시즌 2 결승전 5경기와 맞먹을 정도의 명경기로 꼽히는데, 당시 경기가 하이테크와 200, 333업까지 동원한 대규모 전투였다면 이 경기는 넥서스 하나 지을 돈이 아까워서 프로브 일부를 멀티 지역으로 릴레이 시킬 정도로 처절한 경기였다.

그 후 열린 IEF 2008에선 결승전에서 만나 김택용이 2:1로 승리.

08-09 프로 리그에서 네오 레퀴엠에서 만나 김택용이 이때 1승을 거두었고, 단장의 능선에선 송병구가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에 만난 건 WCG 2009 국가대표 선발전 결승전, 김택용이 2:0으로 승리를 거둠으로서 현재의 상대전적은 12:10으로 열세다. 단 WCG 본선에서 김택용은 이제동에게 2:0으로 완파당하며 3·4위전으로 추락, 동메달에 그쳤으나 송병구는 결승에서 이제동에게 아쉽게 석패하며 은메달을 땄다는 게 특이점. 역시 WCG 송병구의 저주…

그리고 2009년 12월 14일자 프로 리그 2R에서 송병구가 다시 한 번 김택용을 잡음으로서 상대 전적 11대 12로 따라 잡는 모습이었으나…

2010년 10월 30일, IEF2010 결승전에서 1:2로 석패하며 상대 전적 12:14로 벌어졌다.

2011년 1월 13일 피디팝 MSL 16강전에서 송병구가 2:0으로 승리, 상대 전적이 다시 동률이 되었다.

2011년 1월 30일, 프로 리그 3R에서 김택용을 잡으면서 상대전적 14:15로 송병구가 한경기 앞서나가게 되었다.

이후 프로 리그 4R에서 다시 송병구가 김택용을 잡으면서 14:16으로 앞서나간다.

IEF에서 같은 A조로 속하였으나 김택용을 이기고 조 1위로 진출하며 14:17로 비공식 포함 6연승을 달리게 되었으나...
2011년 10월 9일 IEF 2011 결승에서 3:2로 지면서 17:19로 좁혀졌다.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왠지 김택용이 기복이 심해 강자에 강하고 약자에 관대하며, 송병구는 안정적이긴 하지만 강자들에게 살짝 밀린다는 편견이 있다[32].

3. 콩라인과의 인연과 탈출기

홍진호와의 최초의 인연은 첫 진출한 대회부터 시작됐는데, 당시 챌린지 우승으로 4번 시드를 부여받은 송병구는 우승자를 뽑겠다는 발언을 했다. 때문에 다들 긴장타고 있었는데 정작 뽑은건 홍진호(…) 참고로 레퀴엠에서 맞붙은 경기에서는 황신의 가디언에 농락당하며(!) 아직까지 풋사과임을 증명하고야 말았다.[33]

그러던 중 모 잡지의 화보에 실린 공변뱅이 대두되자 스갤러들은 콩변뱅이 입에 착착 감긴다며 곰 TV MSL 시즌 2의 준우승을 기원했고,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고작해야 1회 준우승이었기에 그리 대두되지 못했는데…

EVER 스타 리그 2007 결승전에서 당시 '토스전 막장'이라고 불리던 이제동에게 3:1로 거의 완벽에 가깝게 발리며 자신은 저그전이 약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34]() 동시에 양대리그 준우승을 석권한다.

2008년 3월 15일, 박카스 스타 리그 결승전에서 이영호에게 0:3 떡실신을 당해 완벽한 콩라인이 되었다. 2차전 카트리나에서는 이영호가 전진배럭을 시도했는데, 두번째 배럭을 올리는 절묘한타이밍에 송병구가 뒷마당에 더블넥서스를 올리러 프로브를 보냈다... 양아버지는 "더블넥서스 가면 망하거든요!!"라는 비명에 가까운 절규로 많은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심지어 경기가 끝나고 팀 동료 이성은이 한숨을 쉬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8 블리자드 WWI에서 우승함으로서 WCG 우승과 묶여 이벤트전에는 강하다는 콩라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사실 그날은 콩의 오오라가 전세계로 뻗어나간 날로, 유로 2008에서 독일이 준우승하면서 콩락전설도 여전히 이어져가고 있다.)

2008년 10월 인크루트 스타 리그에서 8강에서 라이벌인 김택용을 사투끝에 간신히 물리치고 승승장구하며 올라가 준결승에서 도재욱을 3:1로 꺾고 결승에 진출하며 이번 시즌에도 최강의 프로토스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참고로 도재욱은 이날 송병구에게 3패 하기 직전까지 대 프로토스전 13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이 결승진출에는 그런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가을의 전설 vs 콩라인 숙명이었다. 가을에는 프로토스가 강하다는 스타계의 전설과 콩라인은 죽어도 콩라인이라는 거의 신앙 레벨의 믿음이 부딪히는 역사적인 결승전이 펼쳐졌다. 상대는 당시 듣보 신인이던 정명훈. 송병구는 여기서 이겨도 져도 전설을 쓰게 된 판이었다. 그리고 김태형조차 조지명식때 그에게 저주를 내렸는데…[35]

드디어 송병구가 정명훈을 격파하고 스코어 3:2로 개인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그것도 2:0 까지 밀어붙였다가 2:2로 따라잡히고 마지막 5 세트에서 승리. 농담으로 팬서비스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생방송으로 보던 사람들은 전부 긴장 빨고 있었다. 5경기에서 몰래멀티를 끝끝내 발견하지 못했으니… 하여튼 이 우승은 정말 눈물겨운 노력의 결실이다.

이로서 콩라인 탈퇴라는 숙원을 이뤄낸 송병구는 가을이 프로토스에게 미소짓는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강적들이 많았던 대진표와 콩라인의 비극, 그 모든 것을 이겨낸 송병구의 인간승리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 다만 콩라인의 지속을 바라고 있던 팬들은 다소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 송병구가 콩라인 수장인 홍진호도 해내지 못한 모든 종족 상대, 모든 스코어로(3:0, 3:1, 3:2) 준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루어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떤 면에서 송병구는 홍진호보다 더욱 완벽한 콩라인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팬들이 그의 우승을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워했던 큰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 상대들도 김택용, 이영호, 이제동. 즉, 택리쌍. 우승한 이번 인크루트 스타 리그에서 리그 내내 단 한번도 저그를 만나지 않은 다소의 운도 적용하며 콩라인 탈퇴를 했다. 결국 될 사람은 되는 거다.

2008년 11월 9일 WCG 2008 결승에서 찬레기에게 완패를 당해서 은메달을 땄다. 이것은 송병구가 콩라인에서 완전히 탈퇴했음을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사건으로서, 더 이상 이벤트전 최강의 가호가 그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의 증명이다. 그는 이제 더이상 콩라인이 아니다.

더구나 2008년 12월 7일 IEF 2008 결승에서 김택용에게 1:2로 패하면서 콩라인 탈퇴에 대못을 박아버리는(?)행위를 해 완벽하게 콩라인 탈퇴를 이루어 냈다.

이제 모두가 콩라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2010년에도 불구, IEF 2010 결승에서 다시 한번 김택용에게 패배함으로써 이벤트전 최강의 가호가 사라졌음을 만 천하에 다시 알렸다.

4. 콩라인 탈출 이후

4.1. 2009년

4.2. 2010년

4.3. 2011년

4.4. 2012년

4.5. 2013년

4.6. 2014년

4.7. 2015년


5. 송병구의 콩라인 탈출 전까지의 프로게이머 역정

송병구의 정확한 프로게이머 인생역정은 다음과 같다. 결승을 5번이나 갔던 프로게이머 치곤 굉장히 우여곡절이 많은 선수

스타판은 보통 데뷔하고 1년 이내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클래스가 결정된다. 단적인 예로 임이최 광돈택동 8명이 전부 로얄로더 출신(마레기의 경우 데뷔 초창기에 로열로더가 된 건 아니지만 대신 데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리그에서 KTF 올킬로 주목받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주닷컴 MSL에서 우승한다). 송병구처럼 데뷔한지 2년이 지난 뒤에 첫 결승에 진출한 뒤 그 이후로 결승을 2번 이상 간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케이스.

신 3대 프로토스 중에서 챌린지 우승으로 가장 화려하게 데뷔했음에도[36] 16강을 뚫지 못했고, 팀에 변변찮은 프로토스 선배 하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자수성가하였고, 온갖 고난과 역경 끝에 우승을 차지하여 지금은 어느덧 팀의 대들보가 되었다.

  • 챌린지 우승으로 화려하게 데뷔하여 박지호, 오영종과 함께 신 3대 프로토스로 주목받음. 당시로선 최연소 본선 무대 진출자였다.
  • 박지호오영종만 개인 리그에서 성적을 내고 자신은 별 활약을 못한 채로 묻힘.[37]
  • 2006년 한 해를 와우로 방황. 노트북까지 구입해서 미친 듯이 열심히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 그렇게 미완의 기대주로 잊혀지나 싶었지만 2007년 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강자로 성장.
  • 다음 스타 리그 4강에서 변형태의 3연 2팩에 무너졌지만 3,4위전에서 이영호를 상대로 다 져가는 경기를 우주모함, 정찰기 등을 활용해 역전승을 거듭하며 셧아웃 승리. 그리고 동 시즌에 진행된 곰TV MSL 시즌 2에서 16강에서 마레기를 만나 패배했으나 이주영의 입대 덕분에 와일드카드를 통해 결승 진출, 상대는 김택용
  • 택뱅 결승에서 많은 이들이 송병구의 우세를 점쳤으나 김택용에게 3:2로 패배
  • 다음 시즌의 에버 스타 리그 2007 4강에서 다시 만난 김택용에게 3:0으로 리벤지 성공, 결승 상대는 토막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제동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송병구의 우승을 점쳤음
  • 1, 5경기 맵이 저그맵 페르소나였지만 1경기 승리, 2경기 카트리나토스맵이었고 3경기 몽환 2와 4경기 블루스톰 또한 프로토스가 충분히 할만한 맵이었기 때문에 송병구의 우승이 기정사실이 되는 분위기
  • 카트리나에서 다 이긴 게임을 커세어 안뽑다가 역뮤탈에 허무하게 패하고 그 여파로 인해 3경기도 패배
  • 그래도 블루스톰에서 이제동이 정직하게 반땅싸움을 해주는 바람에 아직 희망이 있던 상황이었으나 옛날토스를 시전하면서 김캐리버의 절규와 함께 3:1로 무너지고 콩라인 가입
  •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다음 시즌의 박카스 스타 리그 결승 진출. 상대는 다음 스타 리그 3,4위전에서 핑북선을 앞세워 3:0으로 일축했던 이영호
  • 하지만 이영호의 압도적인 기세에 밀려 3연준 달성
  • 3연준의 여파로 에버 스타 리그 2008은 조기탈락
  • 부진은 오래가지 않고 인크루트 스타 리그에서 다시 결승에 진출, 상대는 당시 테테전만 좀 하는 듣보잡으로 취급받던 정명훈
  • 2:0으로 리드하다가 2경기를 연달아 내주며 2:2 동률 상황
  • 추풍령에서 벌어진 5경기에서 승리, 우승
  • 그리고 그 날 Stork(송병구의 게임아이디)가 새겨진 손수건을 들고 그를 응원하던 모든 팬들과 송병구는 눈물을 흘렸다. 선수도 힘들었는데 그 선수를 몇년간 응원하던 팬들은 오죽하겠는가…
  • 그리고 3년 뒤에 똑같은 상대에게 셧아웃 당하면서 또다시 준우승

6. 그 외

2005년의 활약에 비해 2006년에 원인 모를 부진에 빠지게 되었다. 바로 WOW를 시작하면서 거기에 집중하느라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개인이나 에게는 흑역사인 시절.

그 외에도 예나 지금이나 다른 게임을 자주 하는 걸로 유명한데 한다고 알려진 게임만 해도 WOW, 카오스, 디아블로3, 등이 있다. 병행 전부터 스타 2도 했었다(...).

한 번은 배틀넷에서 주종족인 프로토스로 테란 유저에게 지기도 했다. 상대 분의 이름이 김한조였는데, 이를 따서 한 때 스타 팬들 사이에서 은둔 테란 고수 게이머 한조킴이라는 게이머가 있다는 농담이 떠돌았다. 상대는 일반 공방유저가 아닌 준프로였으며 옆에서 TV를 보고 훈수 두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차게 까일 듯 했으나 이후 프로게이머들도 종종 지는 경우가 나와 지금은 많이 묻혔다.

과거 프로게이머 시절 이전에 게임을 시작할 때는 테란 유저였다고. 그 APM으로? 하지만 유리한 상황에서 캐리어만 뜨면 져서 프로토스로 전향했다고 한다. 그래서 테란을 상대로 캐리어를 그렇게 잘 쓰는 건가(…)

공변뱅, 공룡이라는 별명은 주간 잡지 esforce의 커버스토리[38]에 녹색 공룡 옷을 입고 나온 데에서 유래[39]. 송병구 본인공룡 관련 별명을 마음에 들어하는 듯 하다(하긴 콩라인 관련 별명이나 와우 관련 별명보다야 낫다.).

아동용 도서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곳을 참조. 어린이들에게 직업을 소개해주는 책에 프로게이머로 소개된다고 한다. 사실 송병구만큼 인생의 굴곡(?)이 많았던 프로게이머가 드물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름대로 괜찮은 결정이라고 판단된다.

삼성전자의 모니터 사진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본인이 밝힌 것으로 인해 대식가(…)로 유명했으나 다이어트를 위해 소식을 한다고 한다. 정확하게는 한 끼에 밥 세 그릇 먹던 걸 한 그릇으로 줄였다. 그러면서 인터뷰에 밥 못 먹는 고통을 알겠느니 마느니 하면서 스덕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그런데 살이 빠지긴 했는지 요즘 얼굴선이 완전히 바뀌어서 다른 사람 같다(…).

덧붙여 다이어트에 식이요법 말고 운동도 겸했는지, WCG 2009 때 찍은 화보에서는 제법 괜찮은 몸을 보여주신다(…). 지난 워크샵 송어푸가 고작 2달 전이라는 게 레알? 이건 뭐 프린스 메이커

스무도에 나온 적이 있는데, 괜히 주종이 아닌 테란을 골라서 박상현에게 개털렸다. 지못미.

팬들이 오프 관중들 중 가장 함성이 큰 것으로 유명하다. 일명 뱅리건이라고 불리며, 송병구가 화면에 잡힐 때마다 TV 스피커가 울릴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자 팬이 가장 많은 선수 중 한 명일 것이다. 지금은 많이 희미해졌지만 프로토스의 정파 사파 구분이 뚜렷했던 시절부터 정파의 후예로 그 묵직한 힘을 보여준 플레이가 인기의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여성 팬은 어떤 잘생긴 코 큰 프로토스가 가져갔겠지 심지어 송병구의 경기에서 부부젤라를 불어댄 팬마저 등장했다. 해외에서도 팬이 굉장히 많은데 경기장까지 찾는 해외 원정 팬들도 있다. 당연하지만 거의 다 남자다(...).

케스파의 진기록/명기록 기록실에도 5개 부문에 이름이 올라 있다. 프테전 최다연승 기록은 공동 1위이고, 테란전 최고승률, 저그전 최다전, 저그전 최다패(...), 토스전 최다전, 최장 경기 기록에는 2위에 올라 있다.

프로리그 부문에서는 프저전 연승 공동 1위, 에결 최다 출전 2위, 에결 최다패(...) 기록에 이름이 올라 있다.

참고로 임요환의 온게임넷 통산 100승의 희생자였다.[40]

원피스를 즐겨본다고 스스로 말했다. 경기 후 인터뷰(주로 스토브리그 직전에)를 보면 원피스를 받아놨는데, 앞으로 봐야 할 게 산더미 같다든지, 드디어 다 봤다든지 하는 발언을 하고 다닌다...

신애와 밤샐기세에 출연해서 1:1 유저도전장에서 재야고수에게 털리는 위엄을 선보이기도.

스타크래프트 게이머 중에서도 거짓보탬 없는 솔직한 발언들을 서슴없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데뷔 초부터 그런 성향을 띄고 있었는데[41][42] 송병구 본인이 이러한 행동을 의식하고 즐기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이후인것 같다. 예전엔 그냥 바른생활에 경기 내용 혹은 빌드 그리고 사적인 인터뷰가 무난하다고만 생각되던 송병구였는데 공식맵에 대한 문제라든지 조작사건 이후 경기장 MP3 반입 금지 문제[43]라든지 기타 여러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과 소신을 거침없이 피력하는 걸로 유명하다. 스타판에서 선수들은 나름 튄다 싶은 선수들도 좀 빡센 규정과 분위기 때문에 튀는 행동을 자제하는 편이라 본인도 말을 꺼낼 땐 조심스럽게 하지만 떡밥을 쉽게 놓치지 않는 기자들 덕에 피해를 보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피해 사례는 쇼핑록.

송병구의 이런 거침없는 발언과 행동들이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는데 비판하는 들은 너무 발언을 생각없이 하고 감정대로 행동한다고 하며 적어도 공인의 입장이라면 자신의 생각이 있어도 논란이 될 들은 자제하는 미덕도 있어야 한다는 쪽이다. 반면 옹호하는 쪽은 너무 예의 위주의 스타판에서 상대를 도발도 할 줄 알고 튀는 면이 있는 선수가 있으면 그것도 충분한 흥행 요소이며 KESPA의 규정이나 맵퍼에 대해서 잘못된 점을 두려움 없이 디스하는 등 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면이 있다고 해서 호감을 가지는 팬들도 많다. 그러나 KESPA쪽 공식맵퍼나 규정에 관련된 디스가 가끔 위험 수위까지 가는 수가 있어서 (본인이 그렇게 의도 안해도) 조심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 징계 크리를 먹을수도 있으니 말이다.[44]

팀 동료인 허영무가 잘나가는 시기엔 허영무를 의식하는 모습을 은근히 드러낸다. 조지명식을 앞두고 허영무에게 "너를 찍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고, 손빠르기를 질투하는 듯한 발언도 여러 번 했다. 무엇보다 상대전적이 0:5이니... 라이벌인 김택용에 대한 의식과는 느낌이 좀 다른 듯.

10-11시즌 이전 라섹을 하여 11년 4월 스토브 시즌 이후 안경을 벗고 나왔다. 데뷔 때부터 안경을 쓰다가 벗고 나오니 적응이 안된다는게 대다수의 반응. 팬과 지인들에게 다시 안경을 쓰라는 권유를 받았는지 10-11시즌 마지막 경기인 7월 5일 공군전에서 안경을 쓰고 경기에 임해 승리. 시력이 다시 나빠지는지 앞으로도 경기 중엔 쓰겠다고 했지만, 진에어 스타 리그 16강에서 태풍에 휩쓸리고, 신의 분노를 맛보더니, 다시 안경을 벗었다고(...)
한편 안경을 안 썼을 때 하락세를 겪다가 안경을 쓰고 나오면서 다시 기량이 회복되기 시작하자, 스갤러들은 안경업이 안 돼서 성적이 안 나왔구나!라며 신명나게 깠다.

11년 8월 6일에 베넷어택에 출연했는데, "4년 전 김택용을 저그로 잡았다", "시간만 더 주면 이길 수 있다", "이건 이미 끝난 경기다" 등 갖가지 허세와 핑계질을 시전하고도 여러 번 패배하며 굴욕감을 맛봤다. Again 김한조 하지만 그럴수록 들은 더 재밌는 법. 이승원 해설위원은 쓰러져 아예 방송 진행이 힘들 정도였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입방정이 압권인 방송이니 송병구의 이라면 꼭 보자.

스토브 기간에 유저의 취향 시즌 2에 나왔는데, 원조 예능왕이었던 홍진호를 가뿐히 누르는 예능감을 선보였다. 입에서 나오는 게 핑계가 기본이요, 구구단을 못하는 굴욕을 보이는 가 하면, 상당히 민망한(...) 드라군 흉내를 보여주기도 했다. 뒤에 있던 유대현박상현도 둘 다 민망해 했다(...).
그리고 2011년 9월 6일 5회까지 전 회에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이대로 고정 프로그램 생기나...

관할 경찰서에 악플러들을 고소했으나 되레 면박만 들었다고 한다.
이 때 유명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는데, 그래서인지 이후로 행사나 CF에 자주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정변의 아이콘이었는데 2013년 중반 들어 갑자기 역변해버려서 팬들이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송병구에게서 주영달이 보인다. 다행히 다시 원상복구되었지만.
단 이 역변의 이유는 개인적인 정신과 약물치료 때문이었다고.스타 2와 은퇴 그리고 현실, 송병구와의 취중진담

2014년 반전의 신호탄이 되었던 estv 대회 우승상금 200만원을 받지 못하였다고 전해진다.[45]인간쓰레기 ㅇㅈㅇ...

7. 그의 별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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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가끔 악질까들이 난입해서 채팅창을 도배하는 경우도 있다
  • [2] 이 과정에서 FA를 두 번 거침.
  • [3] 16강에서 마모씨 에게 패배했으나 이주영공군 ACE 입대로 인한 와일드카드전을 승리하고 올라갔다.
  • [4] 스타 1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 가운데 최초로 스타 2 국내대회에서 우승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프리미어 대회나 WCS 글로벌 대회는 아니라는 점. 그래도 코드 S 우승자 이승현, WCS America 준우승자 김학수 등을 꺾기도 하였으므로 무작정 폄하할 이유도 없다.
  • [5] 프로리그 2014시즌에 김구현의 복귀로 혼자가 아니였지만 김구현이 2라운드 종료 후 은퇴하면서 다시 혼자 남았다.
  • [6] 스타1 시절 개인리그 우승을 차지한 프로토스 게이머 중 현재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수는 송병구가 유일하다.
  • [7] 역대 프로토스 게이머 통산 승수 1위, 대 테란전 통산 승률 1위, 스타리그 프로토스 통산 승수 1위(100승)
  • [8] 두 선수는 구 3대 토스(강민 박정석 박용욱) 의 뒤를 이어 3.3 혁명 으로 인한 프로토스의 대재앙 마모씨의 몰락 이후 나머지 육룡 멤버들과 프로토스의 부흥을 이끌은 선수이다.
  • [9] 2014년 시점에서 송병구를 제외한 88년생 현역은 최성훈, 문성원, 최지성, 양준식(87년생)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들 중 협회 출신으로만 활동한 선수는 오직 송병구뿐. 리그 오브 레전드 쪽까지 봐도 이재민, 장누리(87년생)밖에 없을정도로 흔치않다.
  • [10] 이후 스타 챌린지 리그는 듀얼 토너먼트와 통합하여 1차 듀얼 토너먼트가 되었지만, 송병구 이후에도 1차 듀얼 토너먼트의 우승자가 스타 리그 4번 시드 직행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염보성,전상욱,오영종이 이 제도를 통해 4번시드를 받았다.
  • [11] 특히 과거 잘나가다가 불가사의하게 성적을 꼬라박을땐 열에 7, 8은 여자친구과의 트러블(...) 때문이었으며 한번 자신감을 잃으면 회복되는데도 시간이 꽤 걸리는 성격. 실제로 송병구와 여자친구가 처음 헤어졌던날 송병구는 프로 리그에서 부스에 불을 끈채로 게임을 하는 기묘한 행동을 보였고 그 경기를 졌다(...)
  • [12] 이때 생긴 별명이 송와우 이다.
  • [13] 있다면 송병구와 같이 딱히 특정 종족전 막장 모습을 보인 적 없었던 강민 정도뿐이다.
  • [14] 심지어 송병구보다 뒤에 데뷔해서 임팩트를 남기고 사라진 선수를 꼽으라고 해도 쟁쟁한 선수들이 나온다. 김준영이나 찬주작같은 선수들이 송병구와 거의 비슷한 수준에 약간은 후대 게이머이고, 더 아래로 내려가면 박지수박성균같은 선수는 정말 송병구 기준에선 루키.
  • [15] 아쉽게도 커세어는 다른 유닛에 비해 잘 살리는 편은 아니다.
  • [16] 하지만 최근 몇년동안의 김택용은 프로 리그에 적응하면서 거의 정석적인 빌드만 선택하게 되었다. 애초에 김택용이 초반에 사파로 불리게 된 것은 그가 정립한, 3.3 혁명 전에는 볼 수 없던 전략인 비수류를 구사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그 비수류가 지금은 정석 빌드가 되었다.
  • [17] 물론 토스빠들 중에 김택용 좋아하는 사람 많고 타종족빠중에 송병구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 [18] [[WWE].]의 트리플 H의 테마곡
  • [19] 강민만큼의 창조성은 없지만 강민이 기본기 부족 등으로 사용하지 못했던 전술이나 전략 등을 구사할 수 있는 프로토스이다.
  • [20] 이른바 신에게는 아직 6척의 캐리어가 남아있습니다. 경기
  • [21] 바로 며칠 전에 이영호는 4강에서 김택용과 맞붙었는데, 이때도 이영호는 업테란을 사용했다. 빌드에 대응하는 자세에는 김택용이 더 나았지만 중후반 운영에서 패했고, 송병구는 너무 바보같이 한 빌드만 고집했다.
  • [22] 현재도 별 다를건 없다. 저그전 50전 이상의 프로토스 게이머 중 6할은 없고;; 7할(!!)은 숙명의 라이벌 김택용 혼자다.
  • [23] 공식전 저그전 승률 52%. 2005년부터 저그들과 사투를 벌였다는것을 생각하면 준수한 성적이다.
  • [24] 사실 김택용이 모든 프로토스 통틀어 저그전 최강이기에 더 비교를 당했다. 이는 김택용의 테란전 승률이 6할 초반대임에도 테막이라고 까이는것과 일맥상통.
  • [25] 1패는 찬레기의 저글링 올인에 패배.
  • [26]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송병구는 2007 WCG 국가대표 선발경기 예선 16강전에서 박성준을 만나 2:1로 승리한 적이 있다. 비공식전이긴 하지만 박성준을 다전제에서 이긴 유일한 프로토스
  • [27] 시기마저 비슷하다.
  • [28] 두 선수의 빠인 스갤러. 000은 김택용의, 완병구는 송병구의 팬인데 현재는 둘 다 생업으로 돌아간 상태이다. 그러나 이번 피디팝 MSL 16강전 택뱅록에서 택이 패한 뒤 빵삼이가 잠깐 돌아왔다(?!).
  • [29] 공식전 성적으로는 김택용이 약간 밀리나,곰 TV 시즌 2 결승, ief 두번의 결승, wcg 국대 결승 등 상금이 많거나 명예가 뒤따르는 지점에서는 김택용이 거의 다 승리해서 실리는 김택용이 가져갔다는 평가가 많다.
  • [30] 박정석 이후로 프로토스전 최강자로 평가받고 있었다.
  • [31] 이후 '송핑계'는 송병구를 깔 때 빠지지 않는 떡밥이 되었고, 스갤문학에서는 '사업에 실패한 송병구' 또한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 [32] 실제로는 오히려 그 반대. 김택용이 송병구, 이영호에게 전적이 밀리는 반면 송병구는 택리쌍 누구에게도 전적이 밀리지 않으며, 반대로 김택용은 자기 저격하려고 나온 듣보에게 지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송병구는 의외로 이런 저격수들에게 종종 당하는 경우가 있다.
  • [33] 원래 송병구가 뽑으려 했던 우승자는 임요환이었다. 조지명식에서 원래 뽑으려했던 우승자가 떨어져서 다른 우승자를 뽑겠다라고 했는데 그 때 듀얼토너먼트에서 떨어진 우승자는 임요환 뿐이다. 한 큐에 임과 콩을 동시에 깠다!
  • [34] 8강 마재윤 vs 김택용이 결승전이라고 주장하며 결승전의 수준이 낮았다고 폄하하는 의견들이 있었으나, 이후 이제동은 윤용태, 김구현 등 내로라하는 저그전 강자들을 발라버리며 자신이 토막에서 탈출했음을 보였다.
  • [35] 김캐리의 양아들이어서 저주가 안 통한 듯.
  • [36] 첫 챌린지 리그 진출에 바로 챌린지 리그 우승으로 스타 리그 4번 시드를 가져갔다. 이 때 쓰러뜨린 상태가 04년 당시 WCG 2004 금메달리스트 서지훈과 WCG 2005 금메달리스트 이재훈이었다. 이 정도였으니 주목도가 엄청났다. 그리고, 챌린지 리그라는 이름으로 스타 리그 4번 시드 직행 제도를 실시했던 시즌 동안, 챌린지 리그 역대 우승자 중 양대 개인 리그 우승을 못해본 선수는 주진철 딱 한명이다. 역대 우승자는 서지훈, 박용욱, 주진철, 박태민, 변길섭, 임요환, 조용호, 오영종, 송병구. 이들 중 가장 늦게 개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 [37] 프로게이머에게 거품이란 별명을 붙이는 데에 있어 최초의 사례는 장육오영종도 아닌 송병구다. 2005 EVER 스타리그에서 재경기 끝에 조별리그 탈락에 그친 후 정신 차리자는 의미에서 스스로 MSN메신저의 대화명을 '안녕하세요 거품토스 송병구입니다'로 한 것이 그 시작이다. 송병구는 이 때 '맵에 대한 연구가 선행 됐어야 하는데, 상대 선수들(홍진호, 서지훈)의 플레이 스타일에 집착한 것이 화근이었다'고 말했다.
  • [38] 아쉽게도 현재 사진이 보이지 않는 상태다. 대신 여기서 볼 수 있다.
  • [39] 다른 프로게이머들은 화보처럼 도 차려입고 찍었으나 본인만(…)
  • [40] 토막 임요환답게(?) 전적은 4:1로 앞서고는 있지만 진 1경기가...
  • [41] 스타리그 첫 진출에 홍진호를 찍는 등...
  • [42] 헌데 이것은 성향이 그렇다기 보다는 레전드에게 도전하겠다는 게이머로써의 근성이라고 보는 쪽이 맞을 듯.
  • [43] 이후로 규정이 바뀌었는지 MP3나 전자기기 사용이 허가되었다. 다만 부스 입장 시에 소지품 검사를 한다.
  • [44] 사실 KESPA가 너무 선수들의 세레모니나 자잘한 걸 너무 심하게 규제하는 건 사실이다. 경기 때 무조건 악수시키고 인사시키는 것도 선수들을 무조건 바른생활 사나이 만들기를 강요하는 면도 많은 게 사실이다. 이게 다 이성은 때문이다
  • [45]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e_sports&ctg=news&mod=read&office_id=236&article_id=0000112452&date=20141119&page=1
  • [46] 줄여서 총사령관. 가장 많이 불리는 별명이며, 본인도 되게 마음에 든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 [47] 공룡으로 변한 뱅구
  • [48] 못할때
  • [49] 결국 12월 16일 프로 리그에서 김건모의 핑계가 테마송으로 흘러나와서 큰웃음을 선사했다
  • [50] 와우에 빠져서 성적이 안 나올때 나온 별명. 이성은 말에 따르면 자신이 송병구에게 와우를 추천했는데 자신과 달리 송병구는 한동안 빠져 있었다고... 이때 와우만 안 했어도
  • [51] 역사상 최강의 2인자가 되어가고 있는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의 퓨전. 송병구의 개인 리그 1회 우승 4회 준우승이 호날두의 발롱도르 1회 수상, 4회 2등과 동일하다. 게다가 호날두의 발롱도르 수상은 2008년인데 송병구가 우승한 인크루트 스타 리그 역시 2008년. 하지만 이는 호날두가 2013년 발롱도르 수상자로 확정되면서 모두 옛말이 되었다!
  • [52] 그의 화려한 준우승 업적을 어느 스갤러가 계산해보았더니 택리쌍에게만 이벤트전 포함 약 2억 넘는 금액을 손해본것으로 알려져 붙은 별명.
  • [53] 2010년 01월 09일 경기 부스에서 갑자기 불을 끄고 경기를 했다하여 붙여진 별명. 근데 이경기 상당히 아스트랄하게 졌다.
  • [54] 박카스 스타 리그 2010에서 정명훈이 결승전에 코멘트를 날리는 부분에서 병구형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습니다라고 말한 뒤에 송병구를 너무나 간단하게 셧아웃시켜서 붙여진 별명...
  • [55] 서경종이 말실수로 송병구를 송방구로 말함... 택방리쌍...
  • [56] 송방구와 같은 이유 + 송와우.
  • [57] 스타 리그 준우승 후 활약이 우스우리만큼 미미하여 생긴 별명...
  • [58] 스갤 오늘의 본좌/막장 투표에서 오늘의 본좌와 더불어서 오늘의 막장을 수여받는 횟수가 최다 획득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어서 생긴 호칭. 스갤에서는 이를 두고 다승왕과 다패왕을 동시에 처먹는 자의 위엄이라고 깐다... 송병구 특유의 기복을 알 수 있는 대목.
  • [59] 2011 스타 리그에서 나온 오타 때문에. 스갤에서는 송명구를 기존의 송병구를 대체하는 택뱅리쌍급 삼성의 신인 토스로 치켜세우고 있다. 일반적인 용법은 대박 신인 송명구. 오오 로열 로더 후보 오오
  • [60] 프로 리그에서 하필 자신의 밥이었던 dlwogh한테 바이오닉 테란+클로킹 레이스(둘다 주로 대 저그전용 에서 쓰인다.)로 깡통캐리어 관광당해서. 그 경기에서 심지어 3연벙으로 앞마당까지 먹히는 굴욕도 보여준다.
  • [61] Stork는 황새란 뜻이다. 카리스마 대빵큰오리와 같은 황새목
  • [62] 원본은 송X구 라는식으로 송병구를 욕하던 용어였지만, 어떤 스갤러가 이걸 변형시키면서 인기를 얻었고 송병구의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널리 사용되는 중. 원본과 달리 꽤나 어감이 귀엽다는게 특징. 그냥 조꾸라고 불리기도한다.
  • [63] 포모스 기사에 실린 ATV를 타는 짤방에서 유래.# 참고로 2011 스갤 어워드 '올해의 별명'.
  • [64] 최근 삼성전자의 노트북 광고의 모델로 등장했다. 잡지에도 실린다는듯하는데 cf에서도 핑계를 댄다. '컴퓨터 성능 때문에 그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진다면 눈물나죠'라고 핑계를...
  • [65] 스토브 시즌에 삼성 계열 회사가 주최하는 행사에 많이 불려 나간다고 해서.
  • [66] SK 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 리그 결승전 이후 올라온 포모스 평점에서 김택용과 이영호의 에이스 결정전이 난데없이 김대엽 송병구의 플레이오프 에결 내용으로 바뀌어 올라오는 실수가 있었다. 여기에서 송병구가 완파되었다고 나왔기에 그대로 숙소에서 자고있다 완파당한 송병구라는 관용어구(?) 가 생겼다.
  • [67] 포모스 기사중 스타 말고도 여러 게임에 재능을 보인 송병구라는 대목이 올라와서 스 1, 스 2, 디아 3 등을 병행하는 병행왕 송병행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세월이 흘러 2014년 11월 13일부로 개인 사정으로 팀을 나간 오상택 코치를 대신하여 플레잉코치(라지만 사실상 플레잉 감독)로 승격하면서, 감독+코치+선수+예능(현재 스타행쇼 시즌5 고정 출연진)을 병행하는 진정한 병행왕이라는 드립이 등장했다.
  • [68] 한 스갤러가 송병구의 부진함을 까는 과정에서 '숙변같은 존재'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이게 컬트적인 인기를 끌면서 별명으로 정착되었다. 뱅리건들은 매우 싫어하니 주의
  • [69] 송판을 격파당하듯이 격파당해서 패왕급의 별명으로 붙여졌다.
  • [70] 배출해내지 못하고 쌓여있던 변(11연패)을, IEM 예선에서 정윤종을 제압하더니, WCS 예선에선 과거 자신을 제압했던 임진묵에게 복수하며 코드 A에 진출하였기에 붙어진 별명. 스갤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숙변구가 드디어 일을 보는데 성공해 쾌변구가 되었다고 일컫는다.
  • [71] 2013 시즌 3 WCS 코드 A 1 라운드에서 최병현에게 패하고 다시 예선으로 떨어지며 붙은 별명.
  • [72] 프로리그 13연패로 얻은 별명.
  • [73] 병구형, 보통 스갤에서 역시 병구형이라는 의미로 ㅇㅅㅂㄱㅎ으로 많이 쓴다
  • [74] 스2에 눈을 뜬 송병구, 코드S 진출과 ESTV컵 우승으로 2014년 뱅리쌍 중에서 제일 돋보이는 성적을 내고 있다
  • [75] 데뷔 11년차, 이제는 스타크래프트 그 자체가 된 송병구를 기리는 칭호.
  • [76] 스타 뒷담화에서 송병구에게 롤을 물어보고 하냐는 질문에 당시는 안한다고 하였는데 다음 프로리그에서 팬이 송병구의 그림과 롤병구라는 별명을 지은데서 유래
  • [77] 병행왕의 연장선상에 있는 별명, 오상택 수석코치가 팀을 떠나면서 플레잉코치로 승격, 선수+코치+감독의 일을 맡게 되었는데, 여기에다 스타행쇼 시즌 5 고정멤버로 예능을 뛰는 상황에다, 이미 하는 게임인 와우, 디아3, 하스스톤, 히오스, LOL. 이렇게 총 9가지를 병행한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