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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민

last modified: 2015-04-05 11:15:02 Contributors



송구왕민 송구왕

한화 이글스 No.7
송광민(宋光敏)
생년월일 1983년 6월 24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대전광역시
출신학교 공주고등학교-동국대학교
포지션 유격수, 3루수, 좌익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2년 한화 이글스 2차 10라운드(전체 76순위) 지명[1]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6~현재)
등장곡 리쌍-우리 지금 만나
응원가 Bruno Mars-Just The Way You Are [2]
울랄라세션, 아이유-애타는 마음[3]

한화 이글스 등번호 53번
이범호(2003) 송광민(2006~2007) 김사연(2008)
한화 이글스 등번호 6번
임수민(1999~2004) 송광민(2008) 한윤섭(2009~2010)
한화 이글스 등번호 25번
덕 클락(2008) 송광민(2009) 최진행(2010~ )
한화 이글스 등번호 7번
이범호(2004~2009) 송광민(2010) 강경학(2011)
한화 이글스 등번호 10번
하주석(2013)[4] 송광민(2013) 김태완(2014~현재)
한화 이글스 등번호 7번
이여상(2012~2013) 송광민(2014~ ) 현역

Contents

1. 소개
2. 프로 시절
2.1. 입단(2006년) 후 2010년까지, 그리고..
2.2. 사상 초유의 시즌 경기중 군입대
2.3. 2013 시즌
2.4. 2014 시즌
2.5. 2015 시즌
2.6. 연도별 성적

1. 소개

한화 이글스의 내야수. 포지션은 팀 사정에 따라 유격수와 3루수를 오가고 있다.

한화 이글스의 연고지인 대전광역시 태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빙그레-한화의 팬이었으며, 초등학교 4학년 때 동네 친구 정민혁과 함께 야구를 시작했고, 지역 야구 명문인 공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02년 한화의 2차 10순위 지명을 받았고 동국대학교에 입학하여 야구부 주전으로 활동했다.[5]

2. 프로 시절

2.1. 입단(2006년) 후 2010년까지, 그리고..

2006년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을 지명했던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으며, 2군 남부리그에서 독보적인 3할 타율을 기록한 후, 그 해 8월 1군에 콜업되며 이후 꾸준히 1군에 남아 김민재와 더불어 한화의 유격수 자리를 지켰다.

송광민이 두각을 나타낸 건 2009 시즌. 김태균이범호가 모두 부상으로 부진하였고 마지막 시즌을 소화하던 김민재의 노쇠화가 가시화되는 가운데에서도 이도형과 함께 한화 타선에서 고군분투했으며, 내야 수비를 안정시키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이 때의 활약으로, 소속 팀이 정규 시즌 꼴찌였음에도 2009 시즌 골든글러브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다른 경쟁자들에 비하면 출루율이 부족하고 삼진 비율이 높아 살짝 타격이 부족했으나 타율 0.261에 109안타 14홈런 43타점은 결코 만만치 않은 수준이며, 부족한 정교함을 상당한 장타력과 빼어난 수비로 만회하였다.

2009 시즌이 끝나고 이범호가 팀을 떠나자 3루수의 공백이 생긴 한화 이글스는 그에게 이범호의 등번호 7번을 주었고, 송광민은 이범호의 포지션이었던 3루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동국대학교 시절 은사인 한대화 감독과 재회하게 되었다. 한화 역사상으로도 손꼽히는 암울한 시즌이었던 2010년에도 송광민은 뎁스가 바닥난[6] 한화 타선 속에서 그나마 기본적인 타격과 함께 안정적인 3루 수비로 이범호의 빈 자리를 그럭저럭 메꿔주었다. 한화 팬들은 송광민의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 선발을 기원하며 광저우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2010년 6월부터 갑자기 실수가 잦아지고, 타석에서도 영 힘을 쓰지 못해서 한화 팬들에게 미친 듯이 까였는데 알고 보니….[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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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사상 초유의 시즌 경기중 군입대

한화 이글스는 2010년 6월 27일, 송광민이 경기중에 국방부 퀘스트 2년 계정 무료강제이용권을 받아 7월 13일부터 국방부 퀘스트 서버에 접속하게 되었음을 발표했다. 해당기사 이 기사가 맞다면 송광민 본인의 책임이 크다.물론 그렇다고 선수 말만 믿고 제대로 확인 안 한 프런트가 잘했다는건 아니고

김태완에 이어 송광민까지 빠져버린 한화 타선은 붕괴되다 못해 나락으로 완전히 빠져 버렸다. 그나마 투수진이 여러 젊은 투수들의 합류와 중고참들의 부활 또는 각성으로 조금씩 정상화가 되어가고 있는데 반해, 타선은 점점 심각해지면서 이미 바닥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밑에 더한 바닥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있다. 그나마 2011년은 최진행이 홈런기계로 발전하고 카림 가르시아가 왔고, 한상훈고동진도 각성해서 나은 편이기는 했으나 2012년에는 말짱 도루묵….

그가 복무를 시작하게 된 이후 한화 이글스의 3루는 정말 답이 안 나왔다.

2.3. 2013 시즌

시즌 중 입대라는 초유의 사태의 장본인답게 시즌중 소집해제되어 팀에 복귀했다. 6월 19일 정식으로 선수 등록되어 선수단에 합류.등번호 뺏긴 하주석 지못미 공익 시절 죽어라 몸을 만들고 연습하며, 서산 2군 구장 완공 뒤에는 소속기관인 교육지원청의 배려로 대전에서 서산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까지 열심히 준비했다니 한 번 기대해볼만도……. 사실 한화의 3루수 자원이라는 오선진이여상이 동시에 삽을 거하게 푸는 중이라 열심히만 하면 시즌중 복귀하면서 주전자리를 꿰찰 수도 있다.(…)


29세에 공익으로 가서 28년간 근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복귀
2013년 6월 26부로 27년만에 2군에서 콜업되었다.


6월 20일, LG와의 2군 경기에서 제대 후 처음으로 공식 경기에 투입. 결과는 4타수 3안타 3타점.(…) 3안타도 2점 홈런 1개에 2루타 2개로 다 장타라서 한화 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수비력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최소한 두 경쟁자보다는 낫다는 평가.시즌중 제대 선수가 주전자리 꿰차려는 2013 한화 이글스의 현실 문제는 이 날 경기 한화는 3:2로 이겼다. 송광민 아니었으면 점수도 못냈다는 거.1군이나 2군이나 다른게 없다

곧바로 1군에 콜업되어 유격수나 3루수 포지션에서 뛰었으며 7월 11일에는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복귀후 첫 홈런을 만루홈런으로 쳐냈다. 프로 데뷔 첫 만루홈런.

이후로는 유격수 포지션으로 고정되어, 3루로 옮겨간 이대수, 2루의 한상훈과 함께 한화 내야수비를 급격히 안정화시켰다. 물론 간간히 꼴칰스러운 수비도 나오긴 하지만 말 그대로 간간히. 내야수비가 안정화되면서 루키 투수가 많은 한화 투수진에 보탬이 되고 있다.

또한 장타력을 상실한 김똑딱을 대신하여 한화 중심 타선에서 장타를 날려대고 있다. 홈런수는 5개로, 시즌 초부터 뛴 최진행의 8개, 김태균의 7개의 뒤를 이어 3위다. 6월 말에 복귀한 타자가 팀내 홈런 3위에 1, 2위와 숫자차이도 얼마 안난다.사실 한화 홈런 1위는 23개의 김혁민이라 카더라 때문에 8월 말 김태균이 이탈해도 팬들은 차라리 잘 되었다고 하는 중.

그 기세를 이어 8월 30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4번타자로 선발출장하였다. 성적 또한 기대에 부응하여 투런홈런 하나 포함 4타수 2안타 3타점. 하지만 이날 팀은 6:4로 패배...

이후로도 3번. 4번타자로 출장하고 있으나 타격감이 점점 떨어지는 모습이다. 김태균, 최진행이 다 빠지고 김태완은 여전히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팀 타선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기에 부담이 되는 면도 있을듯.

9월 13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5타수 1안타 1홈런을 기록하며 시즌 7호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중인 6월에 콜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최진행에 이어 김태균과 함께 팀내 홈런 공동 2위를 차지하고 있다. 8홈런의 최진행이 이미 시즌 아웃된 상황이고, 7홈런의 김태균 또한 여전히 부상으로 출장을 하고 있지 못한것을 보면, 시즌 끝날때쯤엔 팀내 최다 홈런선수가 될 것이 유력한듯.했으나 김태균이 10홈런을 침으로써 팀내 홈런 3위(...)에 머물렀다.

시즌 최종 성적은 67경기 .261 64안타 7홈런 33타점 18볼넷 62삼진 6실책 .322 .400 .722를 찍으며 3년만에 그것도 공익으로 시즌 중반에 복귀한 것 치곤 대성공을 거뒀다.태완아 봤냐! 다만 여전히 선구안이 시망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었다(...)[8]

2.4. 2014 시즌


커리어하이
김태균, 펠릭스 피에와 함께 타선을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송광민/2014년 항목으로.

2.5. 2015 시즌

3월 12일 시범경기에서는 무려 좌익수로 출장했다(!). 유격수 수비는 생각보다 별로라는 것이 2014시즌에 입증되었고, 그의 포지션인 3루수에는 거포자원 김회성이 겹치다보니 김성근 감독이 스프링캠프 기간동안 포지션을 전환시켰다고. 생각보다 괜찮은 수비[9]최진행이 까이는 중..

2.6. 연도별 성적

  • 타자 기록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6 한화 이글스 18 20 .350 7 0 0 2 5 4 0 0 .650 .350
2007 30 39 .205 8 1 0 0 2 4 0 1 .231 .220
2008 75 140 .271 38 7 0 7 23 19 0 13 .471 .333
2009 116 417 .261 109 15 1 14 43 50 5 17 .403 .290
2010 77 263 .259 68 11 0 6 34 30 4 23 .369 .316
2011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12
2013 67 245 .261 64 13 0 7 33 33 1 22 .400 .322
2014 103 389 .316 123 22 2 11 58 52 3 26 .468 .357
통산(7시즌) 486 1513 .276 417 69 3 47 198 192 13 102 .418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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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동국대학교 진학으로 실제 입단은 2006년.
  • [2] 한화 송광민~ 이글스의 송광민~ 승리를 위해 워~~~~~
  • [3] 양효진의 14-15시즌 응원가와 같다. 바로 너야! 한화의 카리스마 너야! 한화의 슈퍼파워 너야! 승리를 위하여 송!광!민!
  • [4] 2013 시즌과 함께 등번호를 10번으로 변경했으나, 소집 해제되어 6월에 팀에 합류한 송광민에게 등번호를 내주고 63번으로 등번호를 변경했다.
  • [5] 여담이지만 이 때 감독이 한대화이다.
  • [6] 김태균과 이범호의 이적에 전시즌 맹활약을 펼친 이도형까지 부상으로 아웃되어, 부랴부랴 트레이드해온 정원석이 상위타선의 핵심으로 활약했고, 쎾쓰섹시가이 전근표가 4번으로 출장하기도 한 꿈도 희망도 없는 라인업이었다.
  • [7] 송잉여라고 불리다가 내야를 함께 지키던 대학동기 이여상과 엮여서 송잉여상이라고 주로 불렸다.
  • [8] BB/K비율이 0.29다. 통산 62볼넷에 301삼진인데...통산으로 봐도 0.20언저리다(...)
  • [9] 펜스플레이는 물론에 중계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