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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준

last modified: 2015-03-09 20:32:06 Contributors

의 대도독
주유 노숙 여몽 육손 주연 제갈각 손준 손침 주적 육항

의 승상
손소 고옹 육손 보즐 손준 손침 복양흥 좌:육개 □연 장제
주거 우:만욱

孫峻
(219~256)

삼국시대 나라의 황족으로 자는 자원(子遠)이다. 승상을 역임하고 부춘후에 봉해졌었다. 손견의 아우 손정의 증손자이며 할아버지는 손호, 아버지는 손공이다. 항렬손량의 7촌 조카지만 오히려 24살 더 많다. 이것은 손량이 손권이 말년에 로리에게 빠져 늦게 낳은 막내아들이기 때문이다.[1]

손준은 어려서 궁마에 뛰어났고 예리하고 용감하면서도 과단성이 있었으며, 손권 말년에 무위도위, 시중이 되었다. 손권은 죽기 전에 제갈각을 태자태부, 대장군에 임명하여 10세의 손량을 보좌하게 하고 중서령 손홍을 태자소부, 회계태수 등윤은 태상으로 임명했다.

여범의 차남 장군 여거, 시중 손준을 불러 뒷일을 부탁했는데, 손준은 정치를 보좌하라는 손권의 유조를 받아 무위장군을 겸임하고 숙위가 되어 도향후에 봉해졌다. 이에 손준이 표를 올려 제갈각이 큰 일을 맡을 수 있다고 해 손권은 제갈각이 독단적인 것을 꺼렸지만 제갈각 만한 사람이 없었으므로 결국은 제갈각에게 대임을 맡겼으며, 손권이 죽자 태자소부 손홍이 제갈각과 화합하지 못해 황제의 죽음을 숨기고 제갈각을 제거하려 하자 손준은 이 일을 제갈각에게 알려 제갈각의 목숨을 구했다.

제갈각이 의 합비 정벌에 실패하고 귀환해서는 관리를 많이 바꾸면서 사람들을 꾸짖었으며, 숙위를 바꿔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임용하고 정벌 목표를 청주와 서주로 바꾸려고 해 민심을 잃고 원망을 사자, 손준은 이를 틈타 정변을 꾀해 손량과 상의해 253년 10월에 주연을 열고 제갈각을 불러들였고,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여러 차례 의심하는 제갈각을 안심시켜 내전으로 들어오게 한 다음 칼로 찔러 죽였다.
제갈각의 차남 제갈송은 약을 먹고 자살했고 막내 아들 제갈건은 수레에 모친을 싣고 위나라로 도망갔는데, 이에 손준은 기독 유승을 파견해 제갈건을 잡아 참수하고 제갈각의 삼족을 모두 멸했으며, 이때 제갈근의 막내 아들 제갈융은 약을 먹고 자살하고 그의 세 아들도 살해되어 결과적으로 제갈근의 대도 끊겼다.[2]

제갈각을 제거한 손준은 승상, 대장군으로 승진했으며, 중앙과 외방의 모든 군사를 감독하고 가절을 받았다. 이로써 손준은 오의 집권자가 되었다.

한편, 손준은 등윤과 속으로는 맞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서로 포용했다. 이는 일전에 손준이 제갈각을 주살하려고 손량과 함께 주연을 열어 초대했을 때 등윤이 궁궐에 들어가려다가 나오는 제갈각을 만났고, 손준의 음모는 까맣게 몰랐던 등윤이 다만 예법에 따라 황제를 뵙도록 제갈각에게 권유해 결과적으로 손준의 쿠데타가 성공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3]

여기까지의 내용들을 종합하면 제갈각 주살까지는 그렇게 큰 병크나 욕먹을 짓거리들은 안했고,[4] 오히려 합리적인 결단들을 내렸었다. 서술했지만, 이궁의 변으로 인재들이 갈려나가자 제갈각을 손권에게 추천한것도 손준이였고[5], 막장 손홍의 음모를 제갈각에게 알려 손홍을 간접적으로 죽인것도 손준이였고, 제갈각의 무리수인 합비정벌을 반대한것도 손준이였고, 합비정벌 실패이후 미쳐 돌아가던 제갈각을 별 잡음없이 제거한것도 손준이였다.[6] 어찌 다 제갈각과 관련되어있냐? 아 그래서 말년에 꿈에서 제갈각에게 얻어맞았었지

하지만 무엇에 홀렸는지, 이후부터 손침과 함께 돌아이끼가 각성한다.

제갈각은 자신의 인척인 손권의 삼남 폐태자 손화를 각별히 여겼으므로 민간에서는 제갈각이 손화를 영접하려 한다는 말이 있었으며, 손준은 제갈각을 주살한 후 손화의 인수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손화를 죽이자 사람들은 이에 슬퍼했다.

손준은 중후한 명성이 없고 교만하고 음험해 형벌로 죽인 자가 많았으므로 백성들의 원망을 받았으며, 또 궁중의 사람들과 간음해 공주 손노반[7]과 사통하기까지 했다.

254년 여름에 홍수가 발생했고 가을에는 손권의 장남 손등의 사남 오후 손영이 손준을 주살하려다가 일이 발각되어 손영은 자살했다. 다만 정사 삼국지 주석으로 인용된 오력에서는 이 일을 달리 서술하고 있다. 손준이 손화를 무고히 죽여 사람들이 격분하고 탄식하자 전사마 환려가 이를 이용해 장수와 관리를 모으고 함께 손준을 죽이고 손영을 세우려 했지만 손영은 이를 알지도 못했다.

255년 정월에 위나라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사마사에게 대항해 관구검문흠이 거병해 위의 중앙군과 악가에서 싸웠는데, 손준은 이 소란을 듣고 윤달 정월 9일에 표기장군 여거, 좌장군 유찬과 함께 수춘을 치고자 군사를 일으켰다.
19일에 오군이 탁고에 이르렀을 때 이미 패배한 문흠과 그 잔당 수만 명은 손준에게 투항했으며, 손준은 여세를 몰아 수춘성을 공격하려 했지만 이미 위의 진동대장군 제갈탄이 수춘성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군사를 물렸다.

그러나 제갈탄은 장수 장반에게 오군을 추격하게 했고 2월에 오군은 고파에서 장반에게 패배하여 유찬, 손릉, 장수 등의 장수를 잃었으며, 3월에 손준은 주이에게 안풍을 공격하게 했지만 패배했다. 하지만 문흠과 그 잔당을 얻은 것은 그나마 수확이었다.

그 해 가을 7월, 촉한에서 사자를 보내자 이때 손준의 당숙이자 손교의 아들인 무난독 손이가 장의, 임순, 손소 등과 공모해 손준이 사자를 접견하는 틈을 타서 손준을 죽이려고 했는데, 일이 탄로나 손노육, 손의 등은 자살하고 수십 명이 죽었다.

손준은 위위 풍조로 하여금 광릉에 성을 쌓게 하면서 장군 오양을 광릉태수, 유략을 동해태수로 임명했는데, 조정 신료들은 그 곳에 성을 쌓는 것이 불가한 것을 알았지만 손준을 두려워해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오직 등윤만이 간해 그치게 하려 했지만 손준은 듣지 않았는데, 이 해에 큰 가뭄이 들어 결국 축성은 실패로 돌아갔다.

256년에 손준은 전에 위에서 투항해 온 정북대장군 문흠의 계책을 받아들여 위로 출정하기로 했는데, 8월에 먼저 문흠, 여거, 거기장군 유찬, 진남장군 주이, 전장군 당자의 군사로 강도에서 회수·사수로 들어가 청주와 서주를 취할 계획을 세우게 했다. 등윤과 함께 석두에서 군사를 전별했다가 종자 1백을 거느리고 여거의 군영에 들어갔는데, 여거가 군사를 정돈한 것을 보고 손준은 이를 싫어해 가슴이 아프다 칭탈하고 떠났다.

그리고 마침내 제갈각에게 얻어맞는 꿈을 꾸고 두려워하다 병이 나 죽었는데, 이때가 38세로 자식이 없어서 유언으로 후사는 사촌 동생 손침에게 맡겼다. 그러나 뒷날 손침이 손휴에게 주살당한 후, 손휴는 손준의 관을 꺼내 인수를 빼앗고[8], 손준과 손침의 이름을 황실 족보에서 삭제해 고준(故峻), 고침(故綝)이라 불렀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거의 비슷하지만 손휴가 손침을 죽인 뒤 손준의 무덤을 파헤쳐 부관참시를 해 목을 잘라버린다.

손준.jpg
[JPG image (Unknown)]
삼국지 11 일러스트
손준12.png
[PNG image (Unknown)]
삼국지 12 일러스트

삼국지 시리즈에도 등장하며 통/무/지는 그나마 고만고만한데 정치, 매력은 쓰레기급. 그래도 사촌동생인 손침보다는 낫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58/69/74/19로 영 아니지만 투함을 가지고 있어서 아군 장수로 끌어들이면 해전에 유용하다. 특히 다른 손씨들보다는 충성도가 낮아 아군으로 만들기 좋다. 의리가 0인 게 문제지만 어차피 부장이면 배신해도 부대가 넘어가지는 않으니...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67/72/68/28/10에 오나라 종특 제독 특기를 가지고 있다. 등장하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전장에서 써먹을수는 있으나 주력으론 부족하고, 정치, 매력이 쓰레기라 내정으로는 안습.

결국 삼국지 12에서는 삭제크리를 먹었지만 다행히 PK에서 등장. 흑막답게 엄청난 포스를 뿜어내는 일러스트가 인상적.[9]

4월 2일분4월 3일분삼국전투기에서는 폭주형제 렛츠&고의 세이바 레츠로 패러디되어 나온다.그 때문에 손침은 세이바 고로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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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런데 큰아버지의 맏아들인 손침보다도 열 살 이상 많은 걸 보면 아버지 손공이 어려서 사고를 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큰아버지 손작이 너무 늦게 아들을 보았을 수도 있다.
  • [2] 그러나 제갈근의 차남 제갈교가 제갈량의 양자로 갔다가 요절했지만 외아들 제갈반을 남겼다. 제갈량이 제갈첨을 낳아도 제갈교는 여전히 양자로 남아 있었으며, 손침이 주살되자 제갈반은 오나라로 돌아가 제갈근의 대를 이었다.
  • [3] 심지어 등윤은 제갈각의 아들 제갈송의 장인이기도하다.
  • [4]이궁의 변은 빼고, 손패파였는데 애초에 손화를 지지하는게 상식이였다.
  • [5] 당연히 합비정벌실패 이전, 그러니까 제갈각이 무능력을 보이기 이전
  • [6] 의외로 삼국전투기에서 나름대로 유능한 면들이 표현된다. 당연히 제갈각 주살 이전.
  • [7] 손권의 큰딸로 주유의 아들 주순의 부인이었지만 주순이 요절하자 전종의 부인이 되었다. 그래서 전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 [8] 이것은 승상, 대장군으로 기세등등했던 그의 권력을 없애버리기 위해서였다.
  • [9] 10 때는 그나마 서량 마씨일족을 연상케하는 멀쩡한 일러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