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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마사요시

last modified: 2019-08-21 23:33:29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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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손 마사요시(孫正義, Masayoshi Son)
한국명 손정의
생년월일 1957년 8월 11일
학력 UC Berkeley 경제학과 학사
국적 일본 [1]
트위터, 페이스북

Contents

1. 소개
2. 생애
3. 소프트뱅크의 창업주가 되다
4. 한국과의 관계
5. 기타
5.1. 야빠

소프트뱅크 그룹의 창업자로서 소프트뱅크 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 소프트뱅크 텔레콤 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 소프트뱅크 모바일 주식회사 대표 집행역 사장 겸 CEO,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오너등을 맡고 있다. 겅호엔테테인먼트의 대표이사 겸 아시안 그루브 주식회사 대표이사이자 사장인 손태장은 막내동생.

1. 소개

인생 50년 계획
- 20대에 이름을 날린다.
- 30대에 최소한 1천억 엔의 군자금을 마련한다.
- 40대에 사업에 승부를 건다.
- 50대에 연 1조엔 매출의 사업을 완성한다.
- 60대에 다음 세대에게 사업을 물려준다.

손 마사요시의 어록 중 가장 유명한 '인생 50년 계획'은 그가 19세가 되던 해에 세운 것이다. 경이로운 것은 지금까지 그의 인생이 그가 세운 인생 계획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먼치킨

2. 생애

한국계 일본인 사업가로 재일동포 3세이다. 손 회장의 아버지 손삼헌(78) 씨는 대구 동구 입석동 128번지(동구지역엔 손회장 친인척들이 살고있으면 일직손씨 집성촌도 형성되어 있다)에서 태어났다. 당시 할아버지 손종경(1899~1968년) 씨는 벼농사를 짓는 가난한 농민이었다. 1930년대 일본군이 비행장을 만들면서 농사지을 토지를 잃었다.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자 돈벌이를 위해 가족을 이끌고 일본으로 향했다. 해방 이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먹고살길이 막막해 1년가량 머물다 다시 일본으로가 규슈에 정착했다.할아버지는 일본에서 광산노동자로 살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리어카에 음식물쓰레기를 담아 가축사료로 쓰곤 했는데, 손정의는 그러한 할머니의 고생 이야기를 하며 공석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손정의 일가가 재산을 불린 것은 그의 아버지 대에서였다. 손정의의 아버지는 소액 대출업을 했고, 파친코 사업으로 재산을 불렸다. 부친은 사업 감각이 매우 뛰어났다. 파친코 주차장에 유료 낚시터를 만들어 '붉은 잉어 낚으면 보너스 만엔'이라며 호객했다. 파친코로 잃은 손님은 낚시에서 따려 했고 보너스를 딴 손님은 다시 파친코로 갔다.

어머니 이옥자씨[2]는 한국에서 이주했으며 근래엔 저명한 나전칠기작가인 길정본 선생의 전문 통역사를 하고 계신다고 한다.#

어릴적부터 아버지의 입버릇은 '너는 천재다' 였다고 한다. 하도 그런 소리를 듣다보니 '정말 내가 천재인가'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훗날 자신감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사업 제휴를 맺고자 하는 상대방에게 '저는 천재입니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하도 그러니까 상대방 역시 손정의에게 천재 같은 면이 있어보이는 인상을 받았다고. (출처: 손정의-인터넷 제국의 지배자)

어릴적 꿈은 교사, 화가, 정치인이었지만 일본 내에서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직업이기에 상대적으로 차별이 덜한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는 그가 한국에서 대통령이 되기를 원했다고. 여담으로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어린시절 아이들이 던진 돌을 머리에 맞은 적이 있다고 한다.

3. 소프트뱅크의 창업주가 되다

일본 벤처기업의 선구자 중 한명으로 파소나의 남부 야스유키, H·I·S의 사와다 히데오와 함께 벤처 삼총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또, 이전에는,「PC계의 천재」라고 불린 아스키의 니시 카즈히코[3]과 대비되어,「PC계의 신동」이라고 불리던 시기도 있었다. 80년대에는 니시 카즈히코가 아시아의 빌 게이츠라고 불렸지만 90년대 이후에는 이 호칭이 손정의에게 넘어간다.

2014년 기준으로 소프트뱅크의 주식 19.26%를 보유해 최대주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일본내에서도 손꼽히는 자산가로 알려져있다. 포브스에서 조사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 따르면 2014년에는 일본 2위, 전 세계 45위. 참고로 IT버블때 자산이 100억 달러에 달했지만 붕괴후 11억달러까지 줄어들었고 후에 19억달러로 늘어났다. 시가총액의 90%이상이 증발했다.... 이는 일년만에 세계 갑부 7위에서 100위권으로 떨어진 브라질의 에이케 바티스타 다음으로 재산이 줄어든것이다. 이 쪽은 무려 99.5%다.

도호쿠 대지진의 피해복구를 위해 일본 적십자사에 100억엔을 기부했다. 일본 적십자사가 모은 지진구호기금이 700억엔 정도라고 하는데 손 마사요시 혼자서 7분의 1를 책임진 셈이다.

2011년 5월 31일 KT 이석채 회장과 함께 일본기업 전산 데이터들을 부산 근교로 옮긴다고 발표했다. 정확히는 김해시 구산동의 KT 연수원. 김해공항 등 교통시설에 주목한 듯하다. 2011년 6월 15일, 소프트뱅크 30주년을 맞는 주주총회에서 '소프트뱅크 향후 30주년 비전 발표회'가 있었다. 손정의의 철학과 소프트뱅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뿐만 아니라 손 마사요시가 지금까지 살아온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발표이었기에 관심있는 위키니트에게 일독을 권한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이후로 일본에서 원전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아진 가운데 탈 원전 구상을 내놓고 양광 발전연에너지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공익과 부합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손 마사요시의 무서움을 느낄수 있는 대목이다. 간 나오토 총리가 탈 원전 선언을 하면서 마사요시의 탈 원전 구상도 더 탄력을 받을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9월 15일부터 중앙일보에서 창간 46주년을 기념하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삶과 경영
이라는 제목으로 손 마사요시의 삶과 소프트뱅크의 성장기에 대하여 연재를 하고 있다.

2011년 11월 20일 일본시리즈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우승했다. 회장님이 맥주를 온몸으로 받아낸 것은 탈모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고.

한국에선 아이폰은 원래 손 마사요시의 아이디어라는 기사가 떠서 수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는데, 일단 해당 기사의 경우 단순한 대화 내용을 전한 것인데다가 출처가 불분명하다는건 감안해야 할 듯 하다. 그리고 기사의 대화 내용을 보면 스티브 잡스도 "외부에서 그런 얘기를 한 것은 마사(손 마사요시)가 처음이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지금 여러 방면으로 생각 중이다."라고 했다고 하니 이미 애플도 내부에선 그런 식의 아이디어가 나와 있었다는 게 된다. 게다가 아이폰 발표에선 iPhone OS 개발에만 수년을 투자했다고 하니 사실 손정의가 아이폰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건 억지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IT 전문 블로거들조차 "아이폰은 손 마사요시의 아이디어"라고 뭐 대단한 비밀이라도 알고 있는 것처럼 써놓을 때가 있다. 낚이지 말자.[4][5]

2014년 9월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19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돌풍을 일으키며 데뷔하면서 일본 최고 갑부의 자리(약 17조 2천억)에 올랐다. 2000년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과 만난 후 소프트뱅크가 2000만 달러(약 207억원)를 알리바바에 투자하도록 결정했는데 14년만에 엄청난 수익을 올린 셈이다. 항간에는 마윈 회장은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지인의 추천에 의해 만났으며, 수많은 벤처 사업가들이 몰린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업 계획을 이야기한지 6분 만에 손 회장이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고 한다.

2014년에 34억달러를 들여 드림웍스를 매입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했고 대신 레전더리 픽처스에 2억5천만달러를 투자했다.[6]

4. 한국과의 관계

  • 1972년 가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할머니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하고서 미국 유학 전 할머니에게 아버지 고향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손 회장은 마을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당시 낙후된 한국의 기억을 2010년 6월 소프트뱅크 '신 30년 비전 발표회'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할머니가 일본에서 모아온 헌옷을 마을 아이들에게 선물로 나눠준 것을 생생히 기억했다. "신 30년 비전발표회"영상중 한부분

  • 손 회장은 한국방문 이후 1974년 자신의 성을 '야스모토'(安本)에서 '손'(孫)으로 바꿨다. 야스모토라는 성을 쓰던 어린 시절에는 뭔가 죄짓는 느낌이 들었으면 더한 콤플렉스를 느꼈다고 한다. 미국유학시절 어학원과 UC버클리를 같이 다닌 2살 연상의 오노 마사미 씨와 결혼. 두 딸을 낳았다.1990년부터는 일본으로 귀화한 상태이므로,한국계 일본인이라 불린다.[7]

  • 아무래도 재일교포 중 제일 대성한 사람이다 보니 자연히 우리말을 잘 하느냐 또한 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는데[8], 결론부터 말하자면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도 상대방이 말하면 어느정도 알아듣는다고. 어릴적 재일교포로써 당한 차별 때문인지 본인 스스로도 한국출신에 대한것을 철저히 숨기고 일본인으로써 살아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미워하거나 그러지 않으며, 그가 성씨를 한국성인 "손"으로 한건 할아버지,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으며 대한민국에 이런조언을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1998년 IMF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게이츠와 함께[9] 초고속 인터넷과 브로드밴드의 중요성을 말해줘서 오늘날 대한민국 인터넷 망 구축의 영향을 미쳤다.

  • 2011년 1월 카라 사태에 관련해서 트위터에 카라가 좋다. 카라의 해체를 반대한다는 글을 올려 잠시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당시 카라는 소프트뱅크의 경쟁회사 au의 모델. 이에 대해선 "그런 작은거에 신경 쓸 필요없다."라는 답변을 남겼다.(...) 패기

  • 2011년부터 벌써 4년째 대구 동구청장과 공무원들이 무료로 손정의의 조상묘를 벌초해주고있다. 구청은 손정의의 고향이 대구라고 생각하고있으며 주변에서는 딱봐도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보고있다. 2010년에는 초청장도 보내보고, 2012년에는 벌초장면을 촬영한 DVD까지 선물로 보냈지만 아무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5. 기타

  • 소프트뱅크를 창립하고 얼마지나지 않은 1983년에 간염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이를 이겨낸 적도 있다.

  • 트위터에서 대머리인 모습을 두고 '머리카락의 후퇴가 심각하다'고 놀리는 트윗에 대해 '머리카락이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전진하는 것이다'[10]는 비범한 리트윗을 올렸다. 탈모갤러들이 듣기좋은 명언 엇 나도 이는 4만건의 리트윗을 기록했다. 참고로 손 마사요시는 자신의 트위터 어카운트에 자사에 대한 소식들, 소프트뱅크와 관련된 여러 트윗들에 대한 리트윗들, 그리고 명대사급이거나 상당히 비범한 트윗들을 자주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올린다. 트윗이 올라갈때마다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건 물론, 일본 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어서 무려 2백만(!)의 팔로워들이 있으니 한번 방문해보자. 손 마사요시의 트위터
  • "정의는 나의 것"의 스미코가 존경하는 인물, 스미코 曰 "내가 존경할만한사람은 손마사요시 뿐이야"

5.1. 야빠

야구에 대한 애정이 정말 크다. 그덕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일본프로야구의 큰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현질 능력을 자랑한다. 참고로 비싼돈 주고 용병 데려왔는데 성적이 시원찮으면 계약기간 연봉 보장을 하더라도 방출크리를 시전는 기본이다.[11]

한때 카더라현대 유니콘스의 매각 당시 농협-STX-KT에게 모두 거절당하고 손정의 회장과 접촉하려 했으나 당시 기업 매각건으로 정신이 없었던 지라 무산되었다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다. 만약 성사됐다면 소프트뱅크 유니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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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90년에 귀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해외출장이 불편해서
  • [2] 일본명 : 쿠니모토 타마코
  • [3] 아스키출판사의 설립자로 빌 게이츠와 제휴하여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독점적으로 판매하였다. MS-DOS 이전 BASIC이 주력상품일때 일본시장을 개척하였다. 당시 마이크로 소프트 매출의 매출의 60%정도가 일본시장에서 나왔다고한다. 빌게이츠는 자서전에서 그를 K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각별하게 대하지만 이후 사치스러운 개인 생활로 몰락하고 만다. MSX 규격을 제창한 주도자이기도 하다. 현재는 교육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 [4] 그 이전에도 한국에선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은 삼성 MITS이고, 앱스토어 모델의 수익 구조도 삼성의 모 부회장이 먼저 생각해두었던 것인데 구글과 애플에게 뺏겼다는 식의 기사가 올라와 삼성빠들을 감동먹인 적이 있었다. 저걸 지금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
  • [5] 사실 대단할 것이 없는게, 아이팟과 휴대전화의 결합 아이디어는 공공연한 것이었다. MP3플레이어와 휴대전화 두개를 같이 들고 다니기 불편했던 구매자의 필연적인 '니즈'였던 것. 이 시기에도 휴대전화의 작은 용량에 음악파일을 넣어서 재생은 가능했기에 이미 순수MP3플레이어에서 통합기기로 세대교체가 되는 중이었다.
  • [6] 인터스텔라를 만든 곳.
  • [7] 범주:한국계동포 韓國系 同胞,코리안 디아스포라 Korean diaspora
  • [8] 네이버 검색창에 '손정의'라고 치면 관련 검색어로 '손정의 한국말'이 나올 정도.
  • [9] 손정의와 빌게이츠는 친구이며 함께 논의하기 위해 데려갔다고 한다.
  • [10] 하지만 이는 손정의가 처음으로 한 말은 아니다. 이미 손정의가 해당 트윗을 하기 약 1년 전쯤인 2012년 3월에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한차례 유행했었다고 한다.'1' '2'
  • [11] 이범호의 경우에도 3년 계약이었는데 1년 부진하자 방출시켰는데 잔여연봉은 모두 챙겨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