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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닌

last modified: 2014-12-12 22:51:25 Contributors


본명 : 성선임(成膳任)/ソニン(Sonim)
생년월일 : 1983년 3월 10일
데뷔 : "그룹" 2000년 EE JUMP 싱글 LOVE IS ENERGY!
"솔로" 2002년 싱글 카레라이스의 여자
국적 : 대한민국
출신지 : 일본 고치

Contents

1. 소개
2. 슬픔의 데뷔와 가수활동

1. 소개

일본대한민국가수이며 재일교포 3세이다. 소닌이라는 이름은 본명인 성선임을 가타카나로 표기한것이며 선임이라는 이름은 부모님이 밥 잘하는 여자(...)로 크라는 의미에서 지어준 거라고 한다.[1] 여자 치고는 어깨가 넒은 편이고 건강미[2]가 넘친다. '카레라이스의 여자' PV의 알몸 앞치마를 보자[3] 다만 2010년대 들어서는 뮤지컬 배역을 위한 다이어트로[4] 약 10킬로그램 정도 살이 빠진 덕분에 상당히 몸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머리스타일에서도 짧게 자름으로써 이미지 변신을 시도 하였다. 앙대!
정변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선임의 건강미를 좋아했던 팬들은 많이 아쉬워 하기도 한다.

이후 체형도 변하게 되어서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5] 을 하게 되었는데, 이후엔 그 부분에 흥미도 느끼면서도 건강도 되찾게 되어 이후로 블로깅을 자주 하면서 전도사로 나서고 있다.

특기는 기타와 사진. 기타는 가수로서 성선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물건으로, 기타반주가 들어간 곡을 공연할 때엔 반드시 직접 기타연주를 한다. 지금도 기타연주를 위해 손톱을 기르지 않을 정도. 사진실력도 상당한 수준인데, 집에 온 출장 마사지사에게 "사진가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다. 그리고 더불어 특기랄 수 있는 것은 바로 언어능력인데, 일본어는 물론이거니와 영어[6], 그리고 한국어까지 무려 3개 국어에 능통하다.

현재는 탤런트[7]로써 뮤지컬배우, 버라이어티쇼 진행자등 광범위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는 드라마 천국의 나무에 출연한적이 있으며 데뷔싱글 카레라이스의 여자를 리메이크한 후애란 노래를 디지털 싱글로 발매한적이 있다. 그리고 연수 가기전까지는 하트를 잇자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 프로그램에서 성소수자등의 약자들을 주제로 다루면서 선임은 그런 부분에서도 관심을 가지며 관련 이벤트에 참여하는등 여러가지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최근 일본 내에서는 주로 뮤지컬 배우 이미지가 강한 듯 하다. 아무래도 방송활동보다는 뮤지컬에 올인하다시피 한 상황이고 나이도 나이인지라 아이돌 시절처럼 활동하기도 애매해서인 듯 하다.

한국에 대한 애국심이 상당히 깊다. 어느 정도냐면, 영화 촬영을 위한 판문점 세트장을 보고 괴롭다고 울어버릴 정도로. 그것도 일본 방송 중에. 당연 다른 출연자들은 왜 우는지 모르고 '왜 또 우는거야?'라고. 최홍만의 일본 경기때 관객석에서 울음을 터트려 '최홍만의 여자친구가 아니냐?'는 스캔들이 터진 적도 있다.[8]

가수로서 성량이나 음역대로 승부하는 타입은 아니다. 발성도 비음이 섞여서 조금 갑갑한 느낌이 남아있고 음역대도 폭발적으로 넓지는 못하다. 한국이었다면 대중적으로 높은 평가는 받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9]. 하지만 그런 단점들을 전부 다 씹어먹는 무기가 바로 표현력과 감정선[10]. 때문에 중저음역대로 진행되는 발라드나 락발라드에서 진가가 발휘된다.

한국 내한 당시 '후애' 공연영상. 이런 사람을 아티스트가 아니라 아이돌로 팔았으니…역시 층쿠를 까야 한다.

2. 슬픔의 데뷔와 가수활동

어릴 때부터 음악과 노래를 엄청 좋아하였고, 스피드의 콘서트를 본걸 계기로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다. 친구의 추천으로 모닝구무스메 오디션에 본명으로 응모하였지만 떨어졌는데 당시 심사위원이자 전 매니저였던 다 카오루가 독립해 새 레이블을 세우면서 그녀를 발탁, 고토 마키의 남동생인 고토 유우키와 혼성그룹을 짜 EE JUMP로 데뷔를 한다.[11][12]

EE JUMP로서 활동은 소닌이 열심히 활동을 해서 음반이 오리콘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등 인기를 얻게되는데 고토 유우키가 소속사와 트러블을 일으켜서 쉬게 된다.[13] 그래서 유우키가 없는 동안 그녀가 "EE JUMP feauturing Sonim"라는 이름으로 대신 활동을 했다. 2002년에 고토 유우키가 컴백을 해 다시 결성되고 첫번째 앨범이 나올 예정이였지만 유우키가 캬바쿠라에 출입하는걸 어떤 파파라치가 찍은 덕분에 EE JUMP의 이름은 땅바닥에 곤두박질을 치게된다. 물론 당시 유우키는 미성년자였기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했고 그는 소속사와 강제계약해지를 당한다.

유우키가 강제은퇴를 당하면서 EE JUMP는 해체되고 첫번째 앨범은 발매중지에 싱글들은 폐기처분 되는 등 소닌은 충격때문에 코피까지 흘렸다고 한다.[14]

이미지가 곤두박질 친 상태에서 가수활동하기에는 어려운 시기였으나, 매니저가 전국을 마라톤으로 달려서 열정을 보이라는 제시를 한다. 하지만 소닌은 상당히 어려운 조건을 다는데,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시코쿠의 고치 현에서 할아버지의 고향인 한국 경상남도 거창까지 달리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쉬지 않고 달려 마라톤에 성공을 하여 재기하게 된다. 이 기획은 TBS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우타방'[15]을 통해 일본 전국에 방영되었고 이 때 소닌의 팬이 많이 생겼다. 특히나 막판에는 태풍 루사가 몰아치는 거창의 산길을 맨몸으로 달리는데 자세히 보면 농수로가 역류하고 있는 좀 위험한 상황에서 끝내 역주에 성공.

2002년에 소닌으로 솔로활동을 시작하는데 첫싱글인 카레라이스의 여자는 노출도 높은 자켓으로 화제가 되었고 그녀의 노력으로 싱글들은 오리콘 차트 5위~9위를 유지하게된다[16]. 이후 이 컨셉을 그대로 이어서 '츠가루해협의 여자'를 발표하고, 첫 메이저 앨범인 "하나"를 발매하지만 판매량이 너무 처참했다. 이 때문에 음반사에서 재계약 없이 방출 당하면서 가수생명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 상태에 이르렀다. 노래를 포기하지 않은 그녀는 소속사이름의 레이블로 디즈싱글을 내게 된다. 그리고 와다 매니저가 한 번 더 발로 뛰어서 TBS 우타방 연중기획으로 '일본 전국 100개소 라이브'를 진행하게 된다. 노래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소닌이였지만 제대로 된 반응이나 응원도 없이 전국을 도는 강행군에 지치고, 자신이 왜 노래를 부르는지 모른다며 편의점 아저씨에게 혹평을 받는 등 괴로워하지만 마지막 라이브 장인 중학교에 마지막 게릴라 콘서트를 하면서 다시 노래를 부르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TBS, 특히 우타방은 소닌에게는 매우 고마운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이 프로그램의 기획인 '한일 마라톤', '전국 100개소 라이브', 그리고 '5박 6일 1천개 도미노'는 소닌에게 "근성으로 노력하여 위기를 극복하는 가수"란 캐릭터를 안겨주었고 충성도 높은 팬들을 확보하는 계기가 된다. 사실 이런 캐릭터를 일본 사람들이 유독 좋아한다. 와다 매니저의 신의 한 수

이후 인디즈 싱글 소퍼즐이 인디즈 여가수 중 최고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오리콘 9위에 올라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인디즈 싱글이었지만 인디즈가 아닌것 같다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후에는 가수로서 활동보다는 버라이어티, 연기, 뮤지컬 쪽에 비중이 실리는 활동을 해 왔다. 2006년에는 영화 댄서즈!에서 주인공 4명중 하나로 열연, 오랜만에 안무실력을 드러냈고, 2007년「스위니 토드」와「피의혼례」주조연을 맡으면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매스컴에 무대 연기자로서 확실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같은 해 사와 아카네(大沢あかね)[17]와 스페셜유닛「Tomboy」결성, 한국그룹 쥬얼리의「SuperStar」를 커버한 싱글을 발표했으나 대단한 인기는 얻지 못했다.

이후 2009년에는 와다와 헤어지고 NASA ENTERTAINMENT로 이적하였고, 메인 연예인 격으로 활동하게 되었다.[18] 현재는 사실상 뮤지컬 배우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뮤지컬 시장이 큰 일본이니만큼, 한국에서보다는 좋은 대우를 받고 있으며, 젊은 주연급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미스 사이공, 헨리8세, 렌트 등 굵직굵직한 대작에서 여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 2013년도 쯤 나사와의 계약도 끝나고 같이 일하고 있던 스탭이 세운 새로운 소속사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사실 소닌의 목소리 톤은 유키노 사츠키를 연상시키는 메조소프라노의 카랑카랑한 허스키 보이스인데 가수로서의 창법은 뽕끼가 작렬하는 가늘고 흐느끼는 톤이 주류를 이룬다. 창법을 개발하기보다 원 목소리 톤을 중시하는 JPOP 씬에서는 외려 특이한 케이스인데, 원 목소리 톤을 살리는 락 창법으로 갔으면 가수로서 좀 더 성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화위복으로 목소리와 노래가 시너지를 일으켜 뮤지컬 무대에서는 매우 강력한 툴을 가진 배우로 자기매김했다.

2012년 12월부터 '일본 문화청 신진 예술가 해외 연수 제도의 연수원'으로 미국에서 유학을 하였다. 일본인도 아니고 재일교포인 그녀가 선발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일 듯. 규정상 연수기간동안 일본에는 귀국할 수 없다고 한다. 그때 당시엔 연예활동은 없지만 트위터를 통한 근황은 꾸준히 전하고 있었고, 2014년 4월달쯤 일본으로 복귀하였다. 복귀방송으로 Woman On The Planet을 선택하였고, 이후 모차르트에 출연을 확정하면서 배우로써의 시동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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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로 숙소의 냉장고를 보면 요리솜씨가 뛰어나다는 스멜을 팍팍 풍긴다.
  • [2] 근육이 발달한 탄탄한 체구로, 여성치고는 근육성장률이 뛰어나 소속사에서 근육트레이닝을 금지시켰을 정도. 저 근육과 볼륨감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바람에….
  • [3] 실제로 가수 휴업하고 있을 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헬스클럽에 열심히 다녔는데, 그 근육(…)과 운동하는 모습을 본 헬스클럽 관장이 트레이너로 스카웃 하려 했다는 일화도 있다.
  • [4] 미스 사이공까지는 괜찮았으나, RENT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배역을 위해 체중을 감량했다.
  • [5] 다만 빵을 너무 좋아하는 선임은 왠만하면 밀로 안만드는 빵집을 찾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말 안될경우에는 먹는 편이다. 그런면에서 팬들한테도 질문이 오는데, 거기에 대해선 블로그에서 다른 음식을 먹고 싶을때는 먹는다고 답하였다. 그러면서 부분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말라고 코멘트.
  • [6] 학생시절 영어 말하기 전국대회 수상경력 + 교육방송 영어프로그램 진행
  • [7] 일본에서는 엔터테이너의 의미로 이 단어를 쓴다
  • [8] 다만 애국심과는 별개로 감수성이 풍부해서인지 블로그 글을 보면 잘 감동하고 잘 우는 편인 것 같기는 하다...
  • [9] 물론 가창력 중심인 솔로여가수 기준으로, 아이돌들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 [10] 비록 아이돌 시절에는 층쿠의 해괘망측한 가사들 때문에 뭍힌 감이 있으나, 인디즈를 거치면서 '사실은요.'나 'I love you'같은 제대로 된(?) 발라드곡들을 통해 애절함을, 직소퍼즐같은 락을 통해서 무대 장악력을 증명했다.
  • [11] 고토 유우키 외에도 KEN이라는 남성 멤버가 있었으나 갑자기 축구가 하고 싶다는 이유로 데뷔 전에 탈퇴를 했다.
  • [12]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고 데뷔한 첫 사례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당시엔 한류 붐이라던지, 2002 월드컵 같은 행사도 치르기 전이었으므로, 공개적으로 제일교포를 어필하는것은 단 1%도 득이 될만한 점은 아니었다. 다만 후에 이 점을 이용해서 소닌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 옷을 입고, 그룹 멤버 고토 유우키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 옷을 입혀 2002 월드컵에 맞춘 쟈켓 사진을 찍기도 했었다. 다만 그 싱글 활동당시에 유우키가 잠적 사고를 터트리면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 [13] 그런데 이게 갑작스런 일이 아니었다. 유우키는 원래 문제가 많은 놈이었는데, 콘서트 직전 유우키가 어디론가 사라져서, 소닌 혼자 열심히 콘서트를 한적도 있다.
  • [14] 그리고 유우키는 몇년이 지나 2008년에 공사장에서 구리선 절도 및 강도상해 혐의로 징역 5년 6개월 형을 받는 등 엄청난 사고를 쳤다. 이 일로 누나인 고토 마키는 소속사에서 자진 사퇴를 하게 된다. 그룹활동 당시 사건부터 시작해서 이 징역 사건까지, 소닌은 물론 친누나인 고토 마키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끼친 덕에 양 팬들은 유우키라면 이를 간다.
  • [15] 음악 방송이란 훼이크(..)를 통해 주로 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SMAP의 나가이와 톤네루즈의 이시바시가 토크쇼를 벌이는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와 '무한도전'의 원조 컨셉으로 이해하면 편하다.
  • [16] 당시 약 7~8만장 정도 되는 판매량을 유지했다. 당시엔 그냥저냥 수준이었지만 지금이라면 탑 아이돌 레벨.
  • [17] 게키단 히토리의 배우자
  • [18] 팬들 사이에선 회사간 협업이라는 말도 있지만, 당시의 기록에도 협업이라는 표기는 안되어있었고, 이후 와다의 소속 연예인들이 줄어듬에 따라 정리하는 과정에서 선임은 소속사 계약을 안한것으로 추정된다. 두가지 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실제 이유는 안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