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irected from page "센가쿠 열도"

E,AHRSS

센카쿠 열도

last modified: 2015-02-15 11:47:22 Contributors

위 항목은 조어도, 댜오위다오로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비회원 기여자는 이 문서를 수정할 수 없습니다. HELP!

이 문서는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까지 위키 회원으로 등록한 기여자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http]위키워크샵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Contents

1. 개요
2. 관련항목


1. 개요



센카쿠 열도의 위치


센카쿠 열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우오쓰리 섬(중국명 댜오위 섬)

일본어: 尖閣諸島(せんかくしょとう; 센카쿠 쇼토, 첨각제도)/尖閣列島 (せんかくれっとう; 센카쿠 렛토, 첨각열도)
중국어:[1]
  • 중화인민공화국 - 钓鱼岛及其附属岛屿(Diàoyúdǎo jíqí fùshǔdǎoyǔ; 댜오위다오 지 치 푸수다오위; 조어도 급 기 부속도서)[2]
  • 중화민국 - 釣魚臺列嶼[3][4](Diàoyútái Lièyǔ; 댜오위타이 례위; 조어대열서)

대만오키나와 제도 사이에 동중국해 남서쪽의 무인도와 암초로 이루어진 제도를 말한다. 현재는 일본 오키나와이시가키[5] 소속으로 일본이 실효지배를 하고 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이 각각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영유권 분쟁 지역이다.

원래 섬 일대는 일본 사이타마 현에 사는 한 남성의 사유지였으나, 일본 정부가 권리자에게 20억 5천만엔을 주고 구입하여, 2012년 9월 11일부로 국유화한 상태다.[6]

중국은 댜오위다오가 대만의 부속도서로서 1403년 명나라 영락제 시기의 문헌을 근거로 중국이 댜오위다오를 가장 먼저 발견했으며, 댜오위다오라는 이름을 붙이고 섬을 이용해왔다고 주장한다.[7] 아울러, 이 때부터 계속해서 중국이 관할권을 행사해왔으며, 여러 고지도들도 댜오위다오를 중국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일본은 류큐왕국을 오키나와현으로 편입한 후 인근의 무인도였던 센카쿠 열도 또한 오키나와현으로 편입시켰으며, 1971년 미일 오키나와 반환협정에 따라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이 일본에 반환되었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청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종전 이후 영토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중일간에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와 인근 해역은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영토로 귀속됐다가 1951년 9월 미일강화조약 체결 시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양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동 도서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제기되지 않았으나, 1968∼1969년 유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의 아시아 연안지역 광물자원 공동개발조정위원회(CCOP)가 동중국해 일대의 해저조사를 실시하여 석유매장 가능성을 확인한 시점부터 중국-대만의 영유권 논쟁이 활발해졌다.

1895년 청일전쟁 와중에 일본 제국은 이 군도를 무주지라며 자국 영토로 편입시켰다. 1905년 러일전쟁 와중에 독도를 다케시마로 바꾸고 시마네현에 편입한 것을 생각하면 참 비슷하다.

2010년 9월, 일본이 이 섬 주변에서 조업을 하던 중국인 어부를 체포했다. 여기에 중화인민공화국은 맹렬하게 항의했다. 중국 정부에서 일본 관광을 금지하고 희토류 금속 수출을 중지하겠다는 격렬한 압박을 벌인 끝에 결국 일본은 중국인 어부들을 무조건 석방하는 굴욕을 보인다. 중국은 이번 기회에 본 때를 보여주려는 심산인지 정부 차원에서의 사과와 배상을 하라고 으름장을 놓았으며 일본 정부는 그것만은 못하겠다라고 대립하면서 양국의 국민감정은 극히 나빠졌다. 이 사건으로 민주당과 간 나오토는 지지율이 폭락했고, 반대로 자민당은 반사이익을 얻었다.

그러나 중국이 이겼다 보기에도 볼 수도 없는 것이, 그 후 일본은 바로 도서지역 방어를 명분으로 글로벌 호크를 도입하려고 하고, 군비증강과 요나구니 섬에 병력을 배치[8]하고 있어 자위대의 활동범위까지 늘려주고 말았다. 일본의 군비증강에 대해 비판하던 중국으로선 구실을 만들어준 꼴이 되었다.

2012년 4월 이시하라 신타로가 이곳을 자신이 도지사로 있는 도쿄에서 사겠다는 성명을 밝혔다. 물론 중국측에게 돈을 지불해서 구입하겠다는게 아니라, 현재 개인 소유로 되어있는 센카쿠 열도의 섬 일부를 해당 개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도쿄로 편입시키겠다는 소리. 그러니까 이게 성공한다면 이후 중국측에서 센카쿠 열도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형식상으로 일본의 수도인 도쿄에 대한 간섭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은 감정 대립에 있어서는 몰라도, 법리적으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개인의 부동산 소유권과 영토에 미치는 국가의 주권은 완전히 분리된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인이 일본에서 부동산을 산다고 그 부동산이 '한국의 영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설사 중국인이 센카쿠 열도의 섬을 개인적으로 구입하여 가지고 있다고 해도, 부동산을 소유하려면 일본의 관청에 등기를 해서 일본 정부에 부동산 관련 세금을 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부동산을 구입하여 소유한 중국인은 일본의 영토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이처럼 영토에 관한 주권 대립의 문제에서 해당 부동산 소유자의 국적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결국 이 활동은 이시하라 신타로의 유치한 선동질이며, 그나마도 결국에는 섬주인이 도쿄가 아닌 일본 정부에 팔면서 일본은 센카쿠 열도를 공식적으로 국유화 하였다.

그리고 2012년 8월 15일, 일본 정치인들이 태평양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센카쿠에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은 홍콩 소속의 시민단체 댜오위다오보호행동위원회가 상륙을 감행했고 일본 측에서 시민운동가 5명을 체포해 버렸다. 비록 중국인은 아니지만 중국 주권의 홍콩인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어떻게 처리를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여담으로 참여자 중에 대만 사람과 중화민국을 지지하는 홍콩 사람들도 있어서,[9] 오성홍기 2개 외에 청천백일만지홍기 1개가 함께 상륙했고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와 중화민국 국가 모두 불렀다고 한다. 하나의 중국 결국 일본은 이들을 체포하긴 했으나 재판없이 바로 추방을 해버렸다. 자칫 이들을 기소라도 했다간 간 나오토 총리 시절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이 반발하기 때문에 독도 문제에만 집중을 하자는 판단 때문인듯.

그리고 일본이 2012년 9월 11일, 센카쿠 열도의 3개 섬을 개인 소유자에게 20억 5천만엔을 주고 구입하여 정식으로 국유화 한 것이 반일의 불씨에 기름을 끼얹는 결정타가 되었다. 이윽고 중국 전역에서 본격적인 반일시위가 시작되었다. 반일시위가 절정에 달한 것은 9월 18일 전후로, 이날은 류탸오후 사건을 조작하여 일본군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날이라서 원래부터 중국에서 반일감정이 알게 모르게 끓어오르는 시기인데, 센카쿠 열도를 일본이 국유화 한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 두 사항이 합쳐져 반일감정을 엄청나게 끓어올렸다.

중국다운 대륙의 스케일에 걸맞게 해군 군함을 붙인 어선 군단으로 센카쿠 열도 바로 옆에서 대놓고 조업싹쓸이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시위로 인해 중국에 진출해있던 일본 대다수 메이커들이 파괴, 약탈등의 초월적인 데미지를 입어버렸고 시위대와 정부 단위로 내뿜어대는 무지막지한 패기로 인해 가뜩이나 안좋았던 중일관계는 삽시간에 막장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중국은 미국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에 "댜오위다오는 중국 땅"이란 내용의 대형 광고를 실으면서 일본을 골머리 앓게하고 있다.

더불어 미국도 센카쿠에 대한 일본의 시정권은 인정해도 영유권은 인정한 적이 없다라고 일본 편을 들어주지 않고 물러섰다.

8~9월 중일간의 충돌의 여파로 일본의 대중국수출이 크게 감소했다.

2013년 8월 중국 해경선 4척이 이틀동안 센카쿠 해역에서 일본 어선과 순시선들을 쫓아버리며 시위를 벌였고# 이에 맞서 일본도 중국의 센카쿠 상륙에 대비해 대규모 탈환 훈련을 벌였다.##

----
  • [1] 옛날 언론기사를 찾고 싶을 땐 조어도, 조어대로 검색하는게 편하다.
  • [2] 직역하면 '댜오위다오 및 그 부속 도서'라는 뜻이다.
  • [3] 중국어 번체 문서 중에 臺 대신에 臺의 약자로도 쓰이는 台를 쓰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정식으로는 臺를 쓰는 것이 권장된다. 중국어 간체에서는 臺가 폐지되고 台로 통합됐으므로 무조건 台로 써야겠지만...
  • [4] 댜오위타이(釣魚臺/钓鱼台)는 베이징에 있는 유적지 이름과 같아서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 베이징에 있는 댜오위타이는 현재 주로 중국을 방문한 국빈을 영접하는 곳으로 쓰이고 있다.
  • [5] 이시가키 시 소속이지만 이시가키 섬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다. 도쿄오가사와라 제도만큼은 아니지만.
  • [6] 단, 부동산 소유자가 누구인가와 어느 나라의 영토이냐는 다른 문제이고, 또 한 나라 안에서 어느 행정구역에 속하느냐도 다른 문제이니 주의. 예를 들어 부산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땅을 사도 계속 서울의 관할 지역에 속하고, 한국인이 미국 내 땅을 사도 미국 영토인 것과 마찬가지다.
  • [7] 단 최근에는 중국에서 댜오위다오가 대만 소속이 아니라 오키나와 소속임은 인정하되 훨씬 공격적인 주장이 나왔다고 한다. 댜오위다오가 류큐(오키나와 현, 때에 따라서는 가고시마 현의 아마미 군도도 포함) 소속인 건 맞지만 류큐는 중국의 속국(...)이었으니 지금 일본은 오키나와 현을 불법 점령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댜오위다오를 포함한 오키나와 현을 통째로 중국에 '반환'해야 한다는 논리(...). 물론 아직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닌 듯하지만 2006년부터 갑자기 이런 주장을 펴는 중국 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고로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미국이 중화민국에 대만과 함께 류큐 일대를 '반환'하는 것을 제안했으나 장제스가 거부했다고 한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굳이 추정을 해보자면, 그때 장제스가 류큐를 받았을 경우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영토 분쟁은 없었을 수도 있다. 어차피 이 섬들은 대만 아니면 류큐 소속이니깐. 물론 중화인민공화국이 이 곳을 실질 통치하겠다고 나섰다면 일본이 개입하지 않은 채 두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사이에 분쟁이 생겼겠지만... 참고로 현재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분쟁에서 두 중국은 일본의 실효 지배를 무력화시켜야 하는 입장이라 일단은 협력 관계에 있다.
  • [8] 요나구니 섬은 센카쿠 근처에 위치한 곳으로 이곳을 통해 센카쿠 열도의 수비를 강화하고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 [9] 같은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자라도 중국 본토 주민이 저런 일을 했다간 코렁탕 먹기 십상이지만 홍콩과 마카오 주민은 일국양제(1국가 2체제)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을 거부·부정하는 정치 활동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 그래서 홍콩에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독립해서 홍콩을 독립국으로 만들어 영연방 회원국이 되자고 주장하거나, 중화민국을 정통 중국으로 간주하고 홍콩의 중화민국 편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중국 정부가 몰래 감시를 하거나 와해 공작을 벌일 가능성은 있다 홍콩과 마카오에 대한 일국양제는 각각 반환한 날짜부터 최소 50년은 보장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 동안은 합법이다. 물론 이 50년이 지난 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일국양제를 연장시킬지 폐지할지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