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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

last modified: 2015-03-15 01:02:59 Contributors



성주군청사. 주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주로 3200 (舊 경산리 283-1)


마스코트 참돌이. 특산품인 참외를 본딴 캐릭터이다.


성주군
Seongju County / 星州郡
국가 대한민국
면적 616.16㎢
광역시도 경상북도
하위 행정구역 1 9
시간대 UTC+9
인구 46,421명
(2013년 9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 73.34명/㎢
군수 김항곤
재선(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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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관
2. 역사
3. 특산품
4. 관광지
5. 교통
6. 출신 유명 인물
7. 성주군의 행정구역
8. 기타


1. 개관

경상북도 남서부에 있는 군. 경상북도 상주시와는 다르다 상주와는! 인구는 2013년 9월 기준으로 약 4만 6천명.
동쪽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서쪽은 김천시경상남도 거창군, 남쪽은 고령군합천군, 북쪽은 김천시 일부와 칠곡군과 맞닿아 있다.

이곳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정말 아담한 시골. 그래서 이 지역의 청소년들은 주로 인근의 지역인 대구나 칠곡군 왜관읍에 나가서 노는 모양인데, 2000년대 후반 대구쪽으로 가는 새로운 도로가 개통되면서 왜관으로 가는 것보다 시간이 비슷해짐에 따라 대구쪽으로 향하는 비중이 높아진 상태이다.

여담으로 작년 롯데리아배스킨라빈스가 생기고 최근 이디야도 생겼다.발전하는 성주

성주(성산) 이씨와 배씨는 이 지역을 본관으로 하며, 집성촌도 있다. 정도전에 나오는 이인임이 바로 성주 이씨. 실제로 이 지역 출신이기도 하다.

2. 역사

고대 가야연맹중 하나인 산가야(본피/반파국)가 있었으며 후삼국시대에는 여러 호족들이 할거했는데 이 중 벽진의 호족인 이총언이 두각을 나타내어 고려의 개국공신이 되었다.[1]

태종 때 성주목(牧)으로 승격되면서 가리현 · 팔거현 · 화원현을 속현으로 거느리게 되었다. 이때 성주는 경상도에서는 가장 개간된 농토가 넓었고, 이 많아 물이 풍부해 생산량이 많은 풍요로운 곳이었다.

조선 중기에는 남인북인(동인)의 대학자[2]정구(鄭逑)와 우옹과 같은 대학자가 배출되었고, 1558년(명종 13) 천곡서원(川谷書院)이 세워지는 등 영남학파의 한 중요한 근거지 구실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왜군(일본군)이 성주를 점령하자, 임진왜란 3대 의병장 중 하나인 김면과 역시 유명한 의병장인 정인홍 등이 세 차례의 격전 끝에 성주성을 탈환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하였다. 특히 난중에는 일시 경상도 감영이 성주목 팔거(현재 칠곡)에 있었다.

그러나 조선 중기부터는 여러 역모로 오르내리는걸 반복했다. 광해군 7년(1614) 8월에는 주민 이창록(李昌祿)이 왕의 비행과 조정을 비방한 사건으로 경상감사의 장계에 따라 목에서 강등되어 아예 고령현에 합쳐졌고, 주민이 모두 금고형(禁錮刑)에 처해졌다가 2년 뒤인 광해군 9년 1월에 다시 신안현(新安縣)으로 개칭되어 고령현에서 분리되었다.

인조반정 후에 다시 목으로 승격되었으나, 인조 9년 2월에 일어난 권대진(權大進)의 모역사건에 성주인 박소(朴訴)가 연루되어 다시 성주현으로 강등되었다. 10년 후인 인조 18년에 다시 목으로 승격되었으나, 5년 후인 인조 22년에 다시 이권의 모역사건이 일어나 성주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0년 후인 효종 4년에 다시 복구 되었다. 그 후 영조 12년에 관아 소속의 관노(官奴)·관비(官婢)·읍교(邑校)가 목사 이성제를 독살한 사건이 일어나 동 10월에 다시 성주현으로 강등되었고, 10년 후인 동왕 21년(1745)에 목으로 환원되기도 하였다. 또한 그동안 속현이었던 팔거현은 칠곡호부에, 화원현은 대구부(大丘府)에 각각 이속됨으로써 가리현만 거느리게 되었다.

조선후기에도 성주에서는 많은 서원이 설립되고 남학파를 계승한 성리학자들이 다수 배출되었는데, 진상(李震相)은 그 대표적 인물로 손꼽힌다. 조선시대의 중환은 <리지>에서 성주를 "산천이 밝고 수려해 일찍이 문명이 뛰어난 사람들과 이름 높은 선비가 많았다. 논은 영남에서 가장 기름져서 씨를 조금만 뿌려도 수확이 많다.”고 평가했다.

3. 특산품

특산품으로는 참외가 있다. 전국 참외 생산량의 70%이상을 차지한다. 그래서 군 자체에서 참외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4. 관광지

관광지로는 가야산, 문화재로는 회연서원, 세종대왕의 아들들의 태가 묻힌 세종대왕자태실, 성산동고분군, 한개마을, 관왕묘 등이 있다.

5. 교통

주된 교통수단은 버스. 250번 시내버스가 대구광역시칠곡군을 연결하고 그 외에도 인근 시군으로 나가는 시외버스 노선들이 있으며 서울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5번 배차된다. 지하철 타고 싶으면 250번 등을 타고 성주대교를 넘어서 다사읍 문양리의 문양역으로 이동할 것. 대신 무료환승은 안 되고 시계외요금이 붙는다.

철도는 현재 없으나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연장, 남부내륙선 철도가 계획중이므로 철도가 지나지 않는 시와 군에서는 조만간 벗어날 예정.


6. 출신 유명 인물

  • 이총언 : 후삼국시대의 고려의 호족이자 벽진 이씨의 시조.
  • 필암 배극렴 : 고려 말의 무장이자 조선의 개국공신. 조선 최초의 영의정. 성주읍 출신.
  • 이인임 : 고려 말 권문세족이자 권신.
  • 도은 이숭인 : 고려 말 성리학자 겸 문신. 위의 이인임의 먼 친척(7촌 조카)이기도 하다. 신진사대부의 일원으로 이색, 정몽주와 함께 온건개혁파에 속했다. 야은 길재 대신에 여말 3은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 한강 정구 선생
  • 동강 우옹 선생
  • 심산 김창숙 선생[3]
  • 정산 선생[4]
  • 백년설 : 일제강점기 때 유명했던 가수
  • 박철언 : 노태우 정부 때의 실세. 현 변호사
  • 석준 :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5]
    다른 분들은 여기를 참조하면 된다.

7. 성주군의 행정구역

  • 성주읍
    성주군의 중심지로 군청, 경찰서, 소방서가 있다. 또 관우의 위패를를 모셔놓은 사당이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 있는데, 이 사당은 일제시대 이후 버려져 마을 안의 흉물로 자리잡고 있었는데, 1960년대 한 스님이 이 부지를 사들여 사찰로 개수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시외버스터미널 부지는 성주읍성 내 관상용 연못이었으며, 일제강점기 때 메워져 버스터미널로 사용되고 있다.

  • 초전면
    면소재지는 대장리이다. 913번 지방도를 통해 김천시 농소면, 905번 지방도를 통해 김천시 남면과 접한다.

  • 벽진면
    면소재지는 수촌리이다. 별미령을 통해 김천시 농소면과 접한다.

  • 대가면
    면소재지는 옥성리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성주IC가 있다.

  • 금수면
    면소재지는 광산리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회천(대가천)을 막아 건설된 성주댐이 있다. 무흘구곡, 30번 국도를 통해 김천시 증산면, 903번 지방도를 통해 김천시 지례면, 59번 국도를 통해 김천시 조마면과 접한다.

  • 월항면
    면소재지는 안포리이다. 선석사, 세종대왕자태실이 있다. 33번 국도를 통해 칠곡군 기산면과 접한다. 성산이씨 종가가 월항면에 있다.

  • 가천면
    면소재지는 창천리이다. 포천계곡이 있다. 903번 지방도김천시 증산면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막혀 있다.

  • 수륜면
    면소재지는 신파리이다. 회연서원, 대가천계곡, 가야산국립공원이 있다. 33번 국도를 통해 고령군 운수면, 59번 국도를 통해 합천군 가야면과 접한다.

  • 용암면
    면소재지는 용정리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남성주IC가 있다. 905번 지방도를 통해 고령군 다산면, 67번 지방도를 통해 고령군 운수면과 접한다. 참고로 기타 항목에 존재하는 문명리도 해당 면쪽에 붙어있는 것이다.

  • 선남면
    면소재지는 관화리이다. 대구광역시와 직접 접하는 지역으로 성주대교를 건너면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이다.

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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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한국의 네티즌들이 제일 많이 실종된 길이 있다. 믿으면 골룸. 사실 저 길은 보다시피 실제로 있는 길이다. 자매품으로 같은 경상북도의 예천군 '용개로'가 있다. 네이버 지도에서 문명5길 치면 연관검색어로 용개로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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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여담으로 이총언은 KBS 사극 태조 왕건에도 등장했는데, 견훤의 아들 신검이 이총언의 벽진을 공격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 때 신검 역의 광기 씨가 하필이면 벽진 이씨의 시조 이총언의 후손이어서 이 장면이 방영된 후 문중 어른들에게 "어찌 새파란 후손이 시조어른을 공격하느냐!"며 꾸지람을 받았다고.(...) 게다가, 이 에피소드는 역사적 근거가 없다. 신검의 찌질함을 나타내어 견훤이 후계구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데 쓰인 에피소드일 뿐이다.
  • [2] 이황, 조식에게서 모두 수학했다. 그것도 수제자로.
  • [3] 독립운동가, 성균관대학교 설립자·초대 학장. 대가면 출신.
  • [4] 원불교 최고 지도자인 2대 종법사를 지냈다. 초전면 출신.
  • [5]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때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