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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저십리

last modified: 2015-10-27 15:39:25 Contributors


조선말기한성부-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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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도는 조선말기 당시의 일반적인 경계 추정치대로 그린 것.


조선전기추정치-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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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도는 조선전기 당시의 경계 추정치. 이를 "성저오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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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당시 경성부 경계(빨간색). 근대적 측량으로 마련된 가장 최후의 성저십리 경계라고 보면 될 것이다.

한양
대문안 사대문 성저십리


Contents

1. 개관
2. 이모저모
2.1. 오늘날 부동산과의 연관성 (?)
2.2. 인서울 대학교
2.3. 서울토박이 거주지
2.4. 서울시 분할론(?)의 경우?
2.5. 기타
2.6. 자료마다 제각각인 경계 (...)
3. 당시 산하 행정구역
3.1. 조선말기
3.2. 구한말
4. 한양 성저십리에 해당했던 현 서울특별시 지역
5. 한양 성저십리에 포함되지 않았던 현 서울특별시 지역
6. 옛 성저십리 지역내 주요 동네
7. 관련항목


1. 개관

한양 사대문 주변 10(약 4km) 이내 지역을 말한다. 성외(城外) 지역이라고도 한다. 사대문안인 성내 지역과 다르게 상주 인구가 상당히 적은 편이었으며, 매장과 벌목 등이 금지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당시에는 왕릉(성북구 정릉 제외)이나 공동묘지가 성저십리 바로 코앞인 파발이나 등에 있었거나 강남, 남양주 등 주변 지역에 있었던 이유다. 이와 같은 이유로 6대 이상 서울토박이들의 선산(가족묘지)은 고양시, 양주시, 남양주시, 용인시 등지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성저십리를 조선시대의 그린벨트로 일컫는 사람도 있다. 성저십리와 사대문안을 합치면 그 면적이 현 서울특별시 강북 지역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노원, 중랑, 광진, 도봉 등 강북 일부만 제외. 조선 당시에는 농촌 지대로, 사대문안 거주자들에게 식량 제공처와 같은 역할을 했다.

뒤에 또 나오지만, 사대문안이 진정한 서울이고, 성저십리 지역을 비롯한 당시 외곽지역(현 서울특별시에 속한)은 서울이 아닌 경기도였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성저십리도 조선시대때부터 엄연히 서울이다. 또한 '서울이 아닌 경기도'는 현 행정구역으로 옳지만 역사적으론 틀린 말이다. 애초부터 서울(한성부)은 경기도의 일부였고 그것도 그냥 일부가 아니라 아예 경기도 감영(근대에는 경기도청) 소재지였다. 그러다 광복 후 경기도에서 서울특별시가 분리되고 나서도 경기도청은 한 동안 서울에 있었다가 수원으로 옮겼다. 애초에 경기도라는 이름 자체가 경(京 서울)과 기(畿 도성의 주변 지역)를 합친 말이다.

물론 여의도를 제외한 영등포, 강남을 포함한 한강 너머 전 지역은 저 때도 경기도 시흥군, 광주군, 과천군, 양천군, 부평부에 속했다. 다만 일본놈들 때문에 잠시 고양군에 편입되어야 했던 흑역사가 있긴 했지만

고려 초기에는 양주의 일부였다가 현 서울 도심일대가 남경으로 승격되면서 서대문구 일부와 용산구 일대가 그쪽으로 편입되었고, 나머지 지역은 양주의 일부로 남았다. 이성계가 도읍을 정할 때 지금의 종로 일대를 수도를 잡고, 1395년 한성부 행정구역이 획정되면서 곁다리로 이 지역도 서울로 편입되었다.

조선 조정에서는 한양(서울)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한양 외곽에 금표(禁票)를 여러 개 설치하였으며, 성저십리의 경계이기도 하다. 현재로 치면 한강(용산포구)--광동-북한산-이천-아리-중랑천을 잇는다고 한다. 그런데 자료마다 성저십리의 경계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서, 그 정확한 경계는 알기가 쉽지 않다. 다만 성저십리의 경계를 갈랐던 자연하천은 우이천, 중랑천, 한강, 제천으로 꼽을 수 있다.

조선전기때 성저십리의 범위와 조선말기의 성저십리 범위, 그리고 구한말의 성저십리의 범위는 각기 다르다. 조선전기 기준으로 마포-부암동--종암동-청량리-십리-한남동이 경계. 혹은 이들 지역을 성저오리(城底五里)라 칭하기도 하였다. 그러고보니 내부순환로와 비슷한 것 같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성저오리 경계표는 원래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있었다가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 성저오리는 현재 서울 도심인접생활권에 해당한다.

이 문서에서는 조선초기나 구한말이 아닌, 조선말기를 기준으로 작성한다.

동부 경계는 우이천과 중랑천이라는 확실한 자연경계로 나뉘어져 있어서 자료마다 별 차이가 없지만 서부 경계는 자료마다 제각기 다르다. 보통은 홍제천과 서대문-불광동 사이에 있는 작은 산맥(?)으로 보기는 하지만, 심지어 1949년 당시 서울시 서부 경계 혹은 1911년 당시 경성부 서부 경계를 성저십리 서부 경계로 보기도 한다. 이 경우 수색동과 상암동도 성저십리 추정지역 안에 들어가게 된다고... 네이버 지명사전에 수록된 동(洞) 역사 내용은 이 기준을 따른 듯 하다. 그런데 1911년 당시 경성부 경계는 일제에 의해 근대적인 방법으로 정밀하게 측량된 것이라서 오히려 이쪽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조선말기에 김정호가 발행한 <청구요람>에 따르면 한성부 서부 경계가 진관동 편입 이전의 서울시 서부 경계와 대체로 일치한 것으로 보인다.# 최완기 저 <한양>(교학사, 1997)에 따르면 영조 때 주민들의 요구로 성저십리 서부 경계가 서대문구에 있는 산맥(연희동 근방)에서 홍제천으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연은방, 연희방, 상평방이 신설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의 성저십리 서부 경계는 반송방까지였던 셈. 왜 이리 자료마다 제각각인지

1910년(1914년x) 당시 경성부 지도를 참조하면 구한말까지의 한성부 경계의 보다 정확한 윤곽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구한말 갑오개혁 이후 지금의 중곡동 등 일부 지역이 추가로 한성부에 편입되는 등 변동 사항이 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조선말기의 경계로 추정할 수만은 없는 측면은 있다.

조선후기 식량난으로 지방출신 이주민들이 한양으로 모여들자 사대문안 지역의 인구수용능력에 한계에 도달하여 현 서울역 주변지역과 현 창신동, 숭인동 일대부터 민락이 빽빽하게 들어서기 시작하였고, 이에 따라 성저십리 지역 인구 수도 증가하게 되었다. 이 시절은 물론 이후 일제강점기에도 이러한 무허가 민락의 증가로 주거환경이 악화되자 1930년대부터 성저십리 일부지역에서 오늘날의 신도시개발과 비슷한 형태의 계획적 도시개발이 진행되었다. 대표적인 곳이 현재 삼선교(동소문동)-돈암동(동선동)-보문동 지역과 이대 후문 일대 및 영등포역 인근(이곳은 공업지역으로 개발). 총 10여개가 넘는 지역이 개발예정이였으나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물자부족으로 위에서 언급한 돈암,대현,영등포지구만 완료되고 타 지구는 개발 도중 개발중단, 혹은 아예 첫 삽도 뜨지 못했다.

갑오개혁으로 인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주군 고양주면 일부가 한성부에 편입되었다 (지금의 광진구 중곡동 등).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용산 일부(서울역 인근 포함)와 현 창신동, 숭인동 일대를 제외한 성저십리 전 지역은 경기도 고양에 모조리 편입되었지만, 1936년1949년에 차례로 서울(경성부)에 다시 흡수되었다.

사람들은 보통 조선시대 서울(한양)이라 하면, 대개 사대문안으로 국한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분명한 것은 인근 외곽지역이었던 성저십리 지역도 분명히 서울(한성부)의 일부였다는 사실이다. 1994년 서울600주년 행사로 정부가 서울토박이를 물색하면서 내세운 지역적 조건에는 한양 사대문안 지역 뿐만 아니라 성저십리 지역도 포함되었다. 기사

2. 이모저모

2.1. 오늘날 부동산과의 연관성 (?)

옛 성저십리는 오늘날 서울 도심지와 접근성, 근접성이 좋기에 몇몇 지역은 강북치고는 집값이 높은 편이다. 대표적인 지역으로 여의도, 마포(, 용강), 용산(특히 이촌1동), 수동 등이 있다. 물론 대표적인 부촌인 평창동, 성북동, 한남동 모두 성저십리 지역에 있다. 하지만 은평이나 성북구 장위동과 같은 비교적 외곽지역은 집값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

2.2. 인서울 대학교

인서울 주요 대학들이 성저십리 지역에 몰려있는 편이다. 신학문이 도입되던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사이에 건립된 고등교육기관의 전신이 대부분 한성부 사대문 안이나 성저십리 일대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아래의 대학 중 굵은 글씨는 광복 이전부터 현재 위치에 자리잡고 있던 학교들이다.


이 있다. 배재학당의 경우 정동에 있었으나 배재고등학교로 바뀌면서 강동구로 이전했다.

그리고 성저십리 바깥, 즉 당시에는 서울이 아니었던 곳에 위치한 인서울 대학으로는 서울대학교[8], 중앙대학교, 숭실대학교, 총신대학교, 서울교육대학교, 건국대학교, 세종대학교[9], 광운대학교[10], 상명대학교 [11],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삼육대학교 등이 있다.[12]

2.3. 서울토박이 거주지

서울토박이 상당수가 종로구 뿐만 아니라 성북구, 용산구, 서대문구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강남, 분당 등지로 이주한 서울토박이도 드물지 않다는 점은 유의해둘 것.

2.4. 서울시 분할론(?)의 경우?

만일 서울시가 분할/축소된다면 서울시의 범위가 이 성저십리까지 축소될 개연성은 있다. 이렇게 되면 기존 서울 강북 상당부분은 서울직할시로 남게되고[13], 한강이남은 영등포광역시[14]강남광역시[15]로 분할될지도. 서울에서 떨어져나간 강남광역시가 서울직할시를 역관광시킬지도 모르는 우려의 소리도 있다? 꿈도 크다[16]

2.5. 기타

성저십리 지역의 명칭들은 현재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용산방은 오늘날 "용산(구)"으로, 두모방은 두모교(교량)으로, 숭신방과 인창방은 "숭인동"과 "창신동", "숭인초등학교"으로, 연희방은 "연희동", 서강방은 "서강대교"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상공에 지정된 비행금지공역(RK P73)이 성저십리와 유사하다.

2.6. 자료마다 제각각인 경계 (...)

성저십리 또는 옛 한성부에 대한 구체적인 경계는 자료마다 제각각이다(...).

서울역사박물관지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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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역사박물관에 걸려있는 지도. 참고로 이 문서 상단에 있는 지도는 이 지도를 많이 참조하였다. 그런데 여의도가 빠져있다는 점이 다른 점.

강남변천사책지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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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에서 발간한 강남 변천사 관련 단행본에 실린 지도. 은평구 일부와 마포구 일부 일대가 1911년에 경성부로 편입되었다고 나와있는데, 그 이전에 갑오개혁 이후 현재의 광진구 일부가 한성부 두모방에 편입된 내용이 누락된 오류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강북구 북서부 지역에 대한 해명이 보이지 않는다.

구한말한성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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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당시 한성부 지도. 출처 불명. 지금의 광진구 일부가 두모방에 편입되어있는 상태이다. 여의도가 빠져있다.

경성부초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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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대개편 이전의 초기 경성부 지도로, 출처 불명.

앞서 살폈다시피 상당수 자료에서 여의도가 빠져있는데 '여의도'란 명칭에 걸맞게 사실상 무인지대나 다름없는 곳으로 신경안썼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네이버 지명사전에 인용된 자료에 따르면 여의도도 한성부의 일부로서 관리되었다는 내용이 언급되어있지, 시흥군이나 양천군에서 관리했다는 내용은 나와있지 않다.

구한말부터 1914년 이전까지 강북구 북서부, 은평구 서부, 마포구 서부(상암동 등), 광진구 일부가 한성부에 추가 편입되었을 정황이 보인다. 하지만 광진구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추가 편입에 대한 내용이 거의 언급이 안된 상태이다.

관련 전공자들의 적극적인 수정바람, 추가바람

3. 당시 산하 행정구역

조선 초기에는 사대문안, 성저십리 막론하고 방(坊)이 수십 개 있었으며, 사대문안에 있는 방들은 각 방의 면적이 오늘날의 동과 맞먹을 정도. 성저십리 지역은 방이 6~8개 정도 있었다. 아래는 조선 후기 기준으로 한다. 오류가 있으면 적극 수정바람.

3.1. 조선말기

영조때 기준으로 한다
  • 숭신방: 현 서울특별시 성북구 서부[17], 강북구 일부
  • 인창방: 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일대, 성북구 동부[18]
  • 두모방: 현 서울특별시 성동구 일부
  • 용산방: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상당부분
  • 한강방: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부 일부
  • 서강방: 현 서울특별시 마포구 일부
  • 상평방: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외 북부지역, 은평구 일부
  • 연희방: 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일대, 마포구 일부, 은평구 일부, 영등포구 여의도
  • 연은방: 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일부, 은평구 일부
  • 반송방[19]: 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일부, 마포구 일부

수정바람

3.2. 구한말

굵은 글씨 처리된 곳은 1895년에 한성부에 편입된 곳
  • 숭신방: 현 서울특별시 성북구 서부, 강북구 일대
  • 인창방: 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대부분, 성북구 동부
  • 두모방: 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일부, 성동구 일부(중랑천 이동지역), 광진구 일부(중곡동, 군자동, 능동, 화양동), 중랑구 면목동[20]
  • 용산방: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일부, 여의도
  • 서강방: 현 서울특별시 마포구 남부 일부
  • 상평방: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성외 북부지역, 은평구 일부, 고양시 효자동 및 북한동
  • 연희방: 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대부분, 마포구 서부
  • 연은방: 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일부, 은평구 일대 (진관동 제외)
  • 한강방: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대부분
  • 둔지방: 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일부, 성동구 일부(중랑천 이서지역)

4. 한양 성저십리에 해당했던 현 서울특별시 지역

(조선말기 기준)

5. 한양 성저십리에 포함되지 않았던[25] 현 서울특별시 지역

여기서 행정구역 명칭은 조선 후기가 기준. 목, 부, 군, 현은 1896년(구한말) 행정구역 대개편으로 전부 '군'으로 치환.

6. 옛 성저십리 지역내 주요 동네

7.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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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전신 중 하나인 연희전문이 현재 위치에 그대로 있었다. 세브란스 의대는 서울역 앞에 위치.
  • [2] 1886년 설립 당시에는 정동에 위치하였고, 1935년 현재의 신촌 캠퍼스로 이전했다.
  • [3] 전신인 보성전문은 사대문 안인 수송동에 건립되었다. 현재 위치인 안암동으로 이전한 시기는 김성수가 재단을 인수한 후인 1934년.
  • [4] 1918년에 전신인 경성공립농업학교가 세워졌고, 1937년에 현재 서울시립대학교의 경농관, 박물관, 자작마루가 세워졌다.
  • [5] 순헌황귀비가 1906년에 전신인 명신여학교를 세울 당시에는 사대문 안 정동에 있었고, 현재 위치로 이전한 것은 1938년.
  • [6] 지금의 한남더힐 자리에 1957년부터 있었으나, 다른 이유도 아니고 자리가 좁다는 이유로 용인시 수지구 죽전으로 이전한 상태. 1947년 개교 당시에는 낙원동에 소재했었는데 당시 소재했던 건물은 지금 건국대학교 상허기념관으로 이전 복원되었다.
  • [7] 화양동, 능동 일대가 원래는 양주군 고양주면 지역이었으나 갑오개혁으로 두모방 편입
  • [8] 본디는 지금의 의대/치대/간호대 자리에 경성제대시절부터 상당수 모여있었다. 괜히 대학로가 아니다.
  • [9] 화양동, 능동 일대가 원래는 양주군 고양주면 지역이었으나 갑오개혁으로 두모방 편입
  • [10] 광운대의 경우 간반의 차이로 성저십리 지역에 포함되지 않은 케이스. 광운대 코앞 우이천만 건너가면 성북구 장위동, 옛 한성부 인창방 장위리다.
  • [11] 단, 상명대학교의 전신인 상명여자고등기예학교는 종로구 중학동에 위치했었고, 상명실천여학교 또한 종로구 사직동에 자리잡았다.
  • [12] 중앙대, 숭실대 자리는 1936년 경성부 편입, 건국대, 세종대 자리는 1949년 서울시 편입, 나머지 인서울 대학들 자리는 1963년 서울시 편입.
  • [13] 노원/도봉/강북은 의정부시 편입, 중랑/광진은 구리시 편입 본격 구 양주군 부활, 은평은 고양시 편입.
  • [14] 이 경우 기존의 경기 광명은 신설 영등포시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본격 구 시흥군 부활 그리고 강서구 일부는 김포시에 편입.
  • [15] 다만 강동구와 송파구 남부(거여,마천)은 하남시와 성남시에 편입될 수도 있다. 본격 구 광주군 부활
  • [16] 부촌 중의 부촌인 한남동, 성북동, 평창동은 성저십리에 몰려있을 뿐더러 경제적 중심지와 주요 명문 대학들도 서울대학교를 제외하면 성저십리 내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도 본래 혜화동에 있었고 바로 옆이 창경궁이였다. 의대와 병원은 아직도 연건동에 있고..
  • [17] 지금의 성북(갑) 선거구 지역과 얼추 일치한다.
  • [18] 지금의 성북(을) 선거구 지역과 얼추 일치한다.
  • [19] 면적이 상당히 좁았다. 그런데 반송방은 특이하게도 사대문안 일부 지역또한 포함되었다. 사대문안 지역까지 포함하자면 지금의 충정로 일대까지. 아까 그 경성부 초기 지도에서 도성내 5부 중 서부 관할지역이 반송방 지역이라고 보면 될 듯.
  • [20] 양주군 고양주면이 1914년 대개편때 고양군에 편입된 이유로는, 원래의 고양주면 영역의 상당부분이 이미 한성부 두모방에 편입된 상태인데, 옛 성저십리 지역이 고양군에 편입되면서 곁따라 넘어간 것이다.
  • [21] 상암동은 성저십리가 아니었다.
  • [22] 아래 송파구 항목과 비슷하게 조선 초기에는 여의도지역이 한강 남쪽보다는 북쪽에 더 가까왔다. 이후 물길의 변화로 지금과 같이 된 것.
  • [23] 하지만 조선 건국 이전 여의도는 잉벌노→곡양→금주로 이어지는 영등포, 금천, 광명 일대와 동일한 행정구역이었다. 여의도의 옛 이름인 '잉화도'의 명칭 자체가 잉벌노에서 유래되었다.
  • [24] 1973년에 서울 편입된 현 진관동(옛 진관내동, 진관외동, 구파발동) 제외. 1394년에는 녹번동, 불광동, 응암동만 성저십리였고 1895년 확장 당시 은평구 전역이 성저십리로 편입된다.
  • [25] 사대문안 지역인 종로구, 중구 대부분 지역은 제외
  • [26] 1914년에 한성부 성저십리 지역 대부분이 고양군에 편입.
  • [27] 위 지도에서도 보다시피 잠실 일대는 원래 본류였던 송파강(1970년대 잠실 개발로 매립되고 일부 흔적이 석촌호수가 됨)의 북쪽에 있던 강북이었다. 그러던 것이 대홍수로 신천강(지금의 본류)이라는 지류에 둘러싸인 잠실섬이 된 것.
  • [28] 구한말까지는 신혈면이 양주에 속했으나 1906년에 고양군으로 이관되었다.
  • [29] 1914년에 시흥군에 통폐합
  • [30] 1914년에 부천군으로 개편
  • [31] 1914년에 김포군에 통폐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