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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

last modified: 2015-03-29 22:04:57 Contributors

Contents

1. 성인(聖人)이나 임금의 화상(畫像)이나 초상(肖像) 또는 그리스도나 성모의 상(像).
1.1. 개요
1.2. 성상 파괴 운동
1.2.1. 동서교회 분열 시기
1.2.2. 종교개혁 시기
1.3. 기준
2. 군주를 부르는 이름
3. 후한 말의 인물

1. 성인(聖人)이나 임금의 화상(畫像)이나 초상(肖像) 또는 그리스도나 성모의 상(像).

한자: 聖像
영어: icon

영어로 icon 자체는 성화나 성상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지만, 한국에서 이콘이라 함은 성화 혹은 작은 지물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진 경향이 있다.

1.1. 개요

예수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 그 외의 성인들의 모습을 조각하거나 그린 것을 말한다. 성상은 천주교정교회에서 공경한다. 다만 정교회는 예전 성상파괴파에 대한 양보로 조각은 잘 사용하지 않고 성화를 주로 사용한다. (성공회의 경우 추가바람)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 미켈란젤로천지창조 등이 대표적인 성상이다.

성상숭배인지 성상공경인지는 상당한 어감의 차이가 있으므로, 본 항목에서는 숭배나 공경 등의 표현을 최대한 피하여 중립적으로 서술한다.

1.2. 성상 파괴 운동

1.2.1. 동서교회 분열 시기

성상을 이야기할 때 역사적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서방 교회에서 성상이 보편화된 결정적인 계기는 게르만족의 대이동이었다. 4세기 후반 훈족에 의해 밀려난 게르만족이 로마 사회로 흘러들어오자, 이교도를 교화시키기 위해 많은 교보재(...)가 필요했고, 이때 선교사들의 SOS로 교회가 성상을 장려했다.

하지만 문제는 시대가 흐른 뒤, 이슬람교의 등장과 함께 발생했다. 이슬람교는 이슬람교의 관점에서 기독교의 성상은 우상숭배라고 주장했고, 동로마제국 동부 속주들에서는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아 성상파괴운동이 발생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소수의 이단운동에 불과했겠지만, 이슬람 세력에 맞서 제국 동부를 군사적으로 수호하던 황제들이 이들의 입장에 동정적이었던 것이 문제였다. 더군다나 황제들은 시민에 대한 영향력의 측면에서 교회와 경쟁하였으므로, 성상파괴론을 장려하는 것은 매력적인 정치적 도구일 수 있었다.

성상파괴론의 논리는 '하느님이신 그리스도를 완벽하게 그림으로 그릴 수가 없다'면서 결국 그림은 불완전한 인성만을 그리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성화상 옹호론자들을 죄다 신성과 인성을 분리하는 네스토리우스주의자로 비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스토리우스주의자들은 성상을 인정하지 않는 교파였다.(항목 참조)

하지만 교회에서는 카타콤 벽에 그림 그리던 시절부터 내려온 성상을, 더군다나 (서방교회의 입장에서는) 이교 감화에 더할 나위 없는 효과를 가진 성상을 포기할 수 없었다.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 성 스테파노 등 수도원 등에서 활동하던 성화상 옹호 교부들도 지속적으로 성화상에 대해 그 정당성을 설득하였다.

성 요한은 "유다인들에게는 우상 숭배의 경향이 심하므로 이런 명령이 있었으나, 우리는 신학적으로 말하면 이미 미신의 오류를 면하고 진리를 알게 되어 하느님을 모시고 오직 그분께 흠숭지례를 드릴 줄 알며, 하느님께 대한 지식을 더 완전히 더 풍부히 가졌으므로 어린 시대를 지나 장성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아이가 아니며 하느님께로부터 식별 능력을 받아, 형상 표시의 가능 불가능도 알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하였다. 즉 모세에게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우상숭배의 위험에 빠지기 쉬운 당시 히브리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명령이였다는 것. 실제로 출애굽기 25장에서는 하느님이 모세에게 '거룹의 형상'을 만들도록 시킨다(...) 즉 '형상을 만드는 것 자체'가 죄라서 금지시켰다기 보다는, 우상숭배의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금지시켰다는게 주장의 골자이다. 물론 '거룹의 상'은 하느님이 직접 모세에게 시킨 것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성 스테파노는 황제 콘스탄티노스 5세의 초상이 새겨진 동전 한 닢을 황제에게 내밀며 "폐하, 이것은 누구의 초상입니까?"라고 묻자 황제는 "짐의 초상이다"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스테파노는 동전을 내던지고 그것을 짓밟았다. 당연히 사형선고가 떨어졌고, 형장에서 그는 "아, 내가 한 국왕의 모습을 모욕하여 사형을 당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성상을 태워 없앤 악당들은 어떠한 형벌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냐!"하고 말하였다.

성화상을 기본적으로 초월적 신성을 가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창문으로 생각한 이들은,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으며 신성과 인성은 언제나 같이 붙어다니므로 그림을 그려도 신성과 인성은 언제나 함께 한다고 주장하면서 성상파괴론자들을 당시 치명적인 이단의 낙인이었던 단성론자로 몰아 반박한다. 이후 동로마 제국 내에서의 정치 지형 변화에 따라 성상 허용과 금지가 번갈아 벌어지면서 애꿎은 인류의 문화유산들만이 수난을 당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서방교회에서는 동방교회와는 달리 딱히 성상파괴론을 자극할만한 떡밥이 없었으므로, 서방교회 입장에서는 동방에서 갑툭튀한 성상파괴론에 뜨악해서 동서 교회의 사이가 벌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시기에 성상파괴론의 탄압을 받은 많은 이콘제작자들이 서방교회의 영역으로 망명함에 따라 서유럽의 성미술의 발전을 촉진하기도 하였다.

동방교회에서는 결국 여황제 이레네에 의해 소집된 제7차 공의회(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상에 대한 공경은 성화를 통해 표현된 교리와 성인의 행적에 대한 공경이지, 성상 그 자체에 대한 공경이 아니므로 우상숭배가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동방교회는 다시 과거의 성상 사용 전통으로 복귀하였다. 이후로 정교회는 매년 사순기간의 첫째주일을 정교주일로 지정하고 전세계의 정교회에서 성화(이콘)을 들고 행렬의식을 거행하면서 성상논쟁에서 정통교리가 승리한것을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1.2.2. 종교개혁 시기

교회 외벽의 움푹 들어간 부분이 바로 성상이 있었던 흔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바로 그 게르만족 국가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성상파괴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가장 유명한것은 누가 뭐래도 네덜란드의 '베일덴스토름'이라 불리우는 성상파괴 사건으로 이는 당시 상전국이었던 스페인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겸하기도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는 검소하고 문자주의적인 생활을 강조했던 장 칼뱅의 영향으로 당시는 상당한 사치품이었던 성상을 꺼리는 성향이 이어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일단 소재부터 대리석에, 교회의 권위를 보여야 하는 만큼 보석이나 금은으로 치장하는 경우가 많고 2차원 성화의 경우 거진 계란 노른자를 쓰는 템페라화가 대부분이라 식량 낭비 문제[1]도 있었다. 거기다 인부의 품삯까지 합하면 그야말로 돈지랄이 따로 없는 것. 게다가 출애굽기에서도 실제로 우상을 훼파하고 없애버려라라는 구절이 있고 구약시대에도 헤즈키야나 요시아 왕처럼 닥치는 대로 우상을 모두 가루가 될때까지 남김없이 없애버린 사례[2]가 실제로 있었으므로 이를 근거로 당시 칼뱅파들은 성상파괴를 정당하다고 여겼다. 이후로 지금까지 대다수의 영미권/네덜란드 계통 개신교도들은 오로지 글자로 된 성경책만을 유일한 권위로 삼는 기준을 마련하게 되었다.

1.3. 기준

우상숭배라고 공격받기 쉬운 부분이기 때문에, 천주교에서도 나름의 기준이 존재한다.

  • 인간의 육신을 지닌 적이 없거나, 그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내지 않은 존재는 성상으로 만들 수 없다.
    • 그래서 야훼(성부) 자체의 성상이나[3] 성령의 성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성령은 성경에 나타난 예표에 따라 이나 비둘기로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존재하지만, 따로 성상을 만들지는 않는다.
    • 예수 그리스도(성자)는 성삼위이지만 인간의 육신을 지녔으므로 가능하다.
    • 천사는 영적인 존재이지만 성경에 나타나는 천사들이 종종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남이 드러나고, 또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천사의 형상(날개 달린 인간)에 대한 믿음이 전해지므로 성상을 만드는 것이 허용된다.
    • 사실 미켈란젤로천지창조사초 삼위일체 같은 예외도 있긴 하다.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렇습니다. 마음과 마음... 그게 제일 중요한 거죠.

  • 공경을 표하는 것은 오로지 축복받은 성상에 한한다.
    • 축복받지 않은 것은 교회법상 신앙의 도구로 활용할 수 없다. 거꾸로 말하면 성상은 하나의 도구라는 뜻이다. 개인이 만든 단순한 형상이나 그림에 함부로 공경을 표해서는 안 된다. 안 그럼 주일학교 포스터에도 공경을 표해야 할 판이다.

  • 특정한 성상이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 예를 들어 발등 위에 장미꽃이 얹혀 있는 루르드의 성모 성상이라면 루르드의 성모가 의미하는 은총을, 어디서 누가 만든 성상이든, 해당 성인을 의미하는 지물 등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고 사제에 의해 적법하게 축복받았다면 모두 신앙의 도구로서 똑같이 드러낸다는 것이 교회법으로 제정되어 있다.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 이단나주 성모동산(마리아의 구원방주)는 이 기준을 위반했다.

2. 군주를 부르는 이름

聖上.
왕조시대에 집권 중인 황제천자를 높여 부르는 이름.

3. 후한 말의 인물

盛翔

생몰년도 미상. 건위군 사람으로 성도조원강의 아들.

남양과 삼보 일대에서 유민들이 익주로 유입되자 유장이 이들을 구성으로 한 동주병을 창설했는데, 유장이 이들을 제어하지 못하고 동주병들이 약탈을 자행해 유장이 민심을 잃게 되자 파중에서 민심을 얻던 조위가 유장으로부터 권한을 받아 위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위는 대성의 씨족들과 결탁해서 반란을 일으키면서 익주가 더욱 혼란하게 되었는데, 이 때 성상은 다섯 살로 아버지 성도가 군사를 일으켰다가 실패해서 성도와 어머니 조원강과 함께 붙잡히게 되었다가 조원강이 자신 혼자만 남는 것으로 희생해 성도와 함께 달아났으며, 이로 인해 조원강이 사망했다.

그 뒤에 대사면이 시행되자 성도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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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종교개혁가들과 성상파괴론자들 눈에 템페라화는 먹을것 갖고 장난치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것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 [2] 뱀발로 불지옥을 뜻하는 게헨나(=게힌놈)가 이 사건에서 유래한 말이다. 항목 참조
  • [3] 그러나 성부를 삼각형, 눈, 빛, 축복하는 손, 길고 흰 수염을 가진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간혹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