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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

last modified: 2016-04-24 14:20:44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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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성룡(成龍, 청룽), Jackie Chan
본명 방사룡(房仕龍, 팡스룽)
출생 1954년 4월 7일, 중국 홍콩
신체 174cm
학력 홍콩 공연예술학교 드라마학과
데뷔 1962년 영화 '소황천패'
가족 배우자 임봉교, 아들 방조명
딸 우줘린(영화배우 우치리 사이의 사생아)
재키챈닷컴, 트위터

Contents

1. 개요
2. 일대기
2.1. 어린 시절
2.2. 연기자가 되다
2.3. 독립, 그리고 성공
3. 스턴트와 부상
4. 기타 매체와의 관계
5. 한국과의 관계
6. 외국에서의 활동
7. 생활
8. 기타
9. 성가반
10. 영화 목록
11. 성룡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

1. 개요

成龍. 홍콩 출신의 영화배우이자 액션 영화의 살아있는 전설. 실제 홍콩 액션 영화는 이소룡-성룡-이연걸-견자단 계보로 이어진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이후가 안나와서 문제지 표준중국어로는 청룽, 광동어로는 싱룽, 서양에서는 Jackie Chan이라고 부른다.한국 기자들이 이 발음으로 이름을 주로 쓰는데, 성룡 본인은 그냥 재키 챈으로 불러달라든지 아니면 한국 발음인 성룡으로 써달라고 한 바 있다. 그럼에도 청룽만 고집하여 쓰는 이유는 외래어 표기법 때문. 신해혁명 이후의 중국인은 모두 표준중국어 발음을 따라 쓰도록 되어 있다.성룡을 성룡이라 부르지 못하고 서양식 성 Chan은 후술할 진항생에서 陳씨의 광동어 발음. 재미있는 사실은 버파잭키 브라이언트의 초기 이름이 jackie였다.

본명은 천강성(陳港生, 광둥어로 찬공쌍)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사실은 '방사룡(房仕龍)'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국민당군스파이(!)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명을 숨기고 '진' 씨로 가장했다고.아들은 공산당에 협조적인데 아이러니 그래서 성룡의 아들은 본명인 '방조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담으로 한국에선 90년대 추석, 설날 명절 때마다 만나는 반가운 스타이기도 했다. 명절 특선영화 단골손님이었기 때문.[1] 같은 사정의 외국인 배우로는 미스터 빈을 연기한 로완 앳킨슨이 있지만, 이쪽은 성룡과 달리 배우보다 캐릭터 자체가 더 유명한 편.

2. 일대기

2.1. 어린 시절

파란만장한 유년기를 보낸 인물로, 집안이 가난해서 정규교육도 받지 못해 문맹이 되었고, 그로 인해 성룡은 대본을 읽지 못하여 동료가 대신 읽어주는 대사를 외워 연기를 하는 등 많은 고난을 겪었다. 80년대 성룡이 대스타가 된 이후에도 이것이 걸림돌이 되어 자신은 사인회에서 팬의 이름을 써주지 못하는 것을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고백하였다. 부인인 임봉교는 그에게 대본을 읽어주다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물론 후에 문맹에서 벗어났다. 그러니까 트위터도 하겠지 매니저가 대신해주는거면 어쩌려고

이런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로 용의 흔적:성룡과 그의 잊혀진 가족이 있다.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인데 웬만한 성룡 팬들도 이 영화의 존재를 모른다.

2.2. 연기자가 되다

부모님이 오스트레일리아로 모두 돈을 벌러 떠나고 혼자 남겨진 성룡은 간점원 희극학교(경극 학교)에 들어가 10년 동안 연기와 무술 훈련을 받았는데, 이때 훈련이 어찌나 혹독했던지 성룡은 고문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패왕별희를 보면 경극학교가 얼마나 혹독한지 알 수 있다. 구타는 기본이고, 고문에 가까운 벌도 많다. 희극학교 4년 선배가 홍금보고 4년 후배가 원표로, 이들은 훗날 '칠소복'으로 이름을 떨친다. 1988년에 나온 유가위가 감독하고 홍금보가 주연한 영화 칠소복이 바로 이 시절을 그린 영화이다.

여길 나온 뒤로 여러 영화에서 온갖 엑스트라 및 조연을 맡았는데 1974년에는 에로틱 영화인 금병매에서 조연으로 나온 걸 비롯하여 이 시절 별별 영화에서도 엑스트라 및 악역까지도 맡았다. 이 가운데 영 타이거 같은 경우는 국내 비디오로 성룡이 주연인양 나왔다. 멋모르고 빌려보던 이들이 얼굴에 점을 붙이고 찌질이 악당 졸개로 나와 주인공인 택시기사에게 맞아 뻗는 모습에 놀란 추억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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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이 찌질이 악당 졸개로 나오는 영 타이거(1973) 국내 비디오 표지. 엉뚱한 사진을 박아놓아 이것만 보면 전혀 예측을 할 수 없다. 그나마 엑스트라치곤 좀 비중이 높긴 하지만, 주인공에게 맞다가 애원하며 빌고 주인공이 그냥 가자 뒤에서 비겁하게 반격하다가 맞아 나가떨어지며 퇴장한다. 물론 국내외 포스터들이 유명 배우가 이름 없던 시절에 나온 영화도 주연인 양 크게 쓰는 게 흔하기에 이것도 같은 경우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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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타이거 장면.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왼쪽 턱 근처에 큼직한 점을 붙이고 나오는데 정말 악당 그 자체로서 나와 여자도 가차없이 죽인다. 밑 사진은 주인공에게 맞아 뻗고 빌면서 애원하던 장면.

그 밖에도 당시 한국을 오고가면서 한국 영화 및 한국과 홍콩 합작 영화에서도 엑스트라를 연기했으며, 이소룡 영화 2편에서도 스턴트맨으로 활약했다. 정무문에서 이소룡에 맞고 날아가 죽는 일본인 관장의 스턴트를 했었는데, 당시 한 사람이 장비 없이 날아간 거리로는 최고였다고 한다. 용쟁호투에선 이소룡에게 너무 세게 맞아서 이소룡이 사과의 의미로 다음 영화에선 성룡을 조연으로 시켜주겠다고 약속했으나 그만 이소룡이 사망했다. 안습.(다만 성룡 본인은 이때 이소룡에게 진심으로 감동받았는지 이후에도 한번씩 이 일화를 회상하곤 한다.) 이후 인터뷰 자리나 사석에서 맞은 부위가 하필이면 코라서 지금 코가 이렇게 크다며 본인도 우스갯소리로 그때의 일을 가끔씩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 영화계에서 스턴트로는 알아주는 실력이었지만 스스로도 배우로서 성공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성룡은 1975년 불투명한 장래를 비관하여 일을 접고 부모님이 살고있는 오스트레일리아로 갔다.그러다 1년이 채 안 된 무렵 포스트 이소룡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홍콩영화계에서 나유(羅維, 로웨이) 감독의 스턴트맨이 아닌 주연으로 쓴다는 연락을 받고 홍콩으로 돌아온다. 성룡이란 예명도 새끼 용(소룡)을 뛰어넘는 어른 용(성룡)이 되라는 뜻으로 나유가 지어줬다.

그리고 나유 감독과 함께 신정무문을 비롯하여 이소룡 영화 모방작에 줄기차게 출연하면서 쌍꺼풀 수술도 하고 외모도 배우로서 손색이 없이 호남형으로 바뀌어 1976년작 성검의 대결 때부터 우리가 기억하는 달라진 모습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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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꺼풀 수술전 신정무문에서의 성룡 추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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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꺼풀 수술후 유성검의 대결에서의 달라진 모습의 성룡

하지만 당시 쿵후영화는 그야말로 '마구 찍어낸 쌈마이 영화'였고 나유 감독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예계약에 가까운 조건으로 고만고만한 영화를 찍던 성룡은 회의를 품게 되고 점차 나유와 사이가 벌어진다.

나유는 오사원이 설립한 사원영화사에 잠시 성룡을 대여(…)해줬는데, 이때 원화평과 찍은 사형도수(1978)와 취권(1978)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성룡은 흥행의 보증수표로 떠오른다.

2.3. 독립, 그리고 성공

한편 성룡은 나유와 계속 영화를 찍다간 평생 소모품으로 살다 끝나리란 절망감에 빠졌다. 이소룡 사망후 나유는 그를 대체할 만한 배우를 찾고 있었고 주로 전형적인 이소룡식 비장함과 천편일률적인 내용의 작품을 연출해 성룡으로썬 회의감이 드는게 당연. 그래서 야반도주를 하려다가 나유 부인에게 들켰다. 자초지종을 들은 나유 부인은 '그럼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냐?'고 묻고, 성룡이 '직접 감독하고 싶다.'고 요청하자 흔쾌히 허락한다. 이렇게 탄생한 소권괴초(1979)에서 성룡은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코믹함을 가미한 액션을 내세우며, 독자적인 영화세계를 정립한다. 소권괴초 또한 괜찮은 흥행성적을 올리면서 마침내 성룡은 골든하베스트로 이적한다. 여기서 내놓은 첫 작품이 제출마(1980)다.

코믹한 무술인 기믹으로 잘 나오지만 취권으로 뜨기 전에는 진지한 역 쪽이었다. 코믹 이미지로 성공한 다음에도 중안조로 진지한 분위기로 가 보거나 화소도처럼 홍콩 느와르 스타일의 영화에 출연한 일도 있는데, 그다지 좋은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와 신주쿠 사건으로 다시 느와르 스타일에 도전했다.

3. 스턴트와 부상

버스터 키튼의 영향을 받은 아크로바틱 묘기와 좋은 유머 감각을 바탕으로 영화를 재밌게 만드는 남자. 과격한 스턴트 액션 때문에 몇번 죽을 뻔했고, 온몸에 부상을 입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한 예로 폴리스 스토리 한 편 찍으며 입은 부상이 척추 골절, 무릎 부상, 고관절 탈구다. 현재 성룡의 스턴트팀 성가반은 홍금보의 홍가반, 원화평의 원가반과 함께 홍콩에서 손꼽히는 스턴트 그룹이다. 딴지일보에서는 그의 이러한 대인배 기질을 "내 몸이 특수효과" 정신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보험회사에서는 아직도 그를 요주의 인물로서 기피하며 블랙리스트 1순위라고 한다. 이 기록은 기네스북에도 현재 살아있는 연기자 중 가장 스턴트 액션을 많이 한 사람(Most stunts by a living actor)라는 제목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토록 몸이 성할 날이 없었기에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이 붙을정도로 몸이 만신창이였는데, 가장 위험했던 사고로 1985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용형호제'를 촬영하다가 잡았던 나무가지가 부러지면서 머리부터 추락, 두개골이 함몰된 적이 있었다. 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오른쪽 청력을 잃었고 머리를 35바늘이나 꿰메고 흉터가 생겼다 한다. 이 사고 장면은 용형호제의 엔딩 크레딧에서 여과없이 나온다. 1986년 초반, 한국일보라든지 국내 신문 광고로 당시 성룡이 용형호제를 찍다가 몇 바늘을 꿰멨을까요? (1).33바늘 (2).34바늘… 이렇게 퀴즈행사를 열었다(…). 함몰된 흉터를 마개 같은 걸로 막았으며 이것을 긴머리로 가린다는 말도 있다. 성룡이 장발을 고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용형호제 영화 초반부에 스포츠 머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장발로 변하는 게 이것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예전처럼 장발보다는 단정한 커트 스타일을 유지 중.

1994년 '홍번구'를 촬영할 때 다리에서 호버크래프트로 뛰어내리는 장면에서 착지를 잘못해 오른쪽 발목이 90도로 꺾이며 골절됐다. 자국을 가려야 했기에 운동화모양을 본떠서 만든 특수 양말을 신고 촬영을 마쳤다. 이 역시 엔딩 크레딧에서 확인 가능.

흔히 성룡은 와이어나 대역을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영화 마케팅 측면에서 과장한 수사일 뿐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영화 비룡맹장(1988)에선 극장에서 본 관객도 식겁할 정도로 대역이 티가 확 났다. 대역은 전가락이 했다. 그는 전소호의 동생이며 홍가반의 스턴트맨이자 액션배우다. 홍금보, 성룡, 원표가 서로 두들겨 패고 싸운 다음에 나오는 술집에서 엑스트라로도 나왔다.

성룡의 독창적인 액션 시퀀스를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신종 스포츠 파쿠르를 창시자보다 먼저 시작했다고 평가하는 팬들도 있다. 물론 파쿠르에는 성룡식 액션스턴트 외에도 다양한 움직임이 있으므로 그가 파쿠르의 원조라고 누가 공인한것도 아니지만 파쿠르를 창시한 인물들에게 영향을 준건 사실이다. 이건 파쿠르의 창시자인 바스찬 푸캉, 다비드 벨 등이 인터뷰에서 밝힌바 있다.

홍콩에서 만든 영화에서는 악동부터 열혈남아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맡았지만, 할리우드 진출 작품에서는 캐릭터가 '웃기는 동양인 꼰대'로 굳어버렸다. 근래 들어서 나이 탓인지 젊을 때의 그 아크로바틱함이 줄어들어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여전히 실력은 좋다. 그의 영화에는 스턴트 중 사고, NG 등을 총집해서 올리는 전통이 있다. 이는 서구권에서 촬영된 영화에도 남아 있다. NG장면이 흥미롭게 보이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만은 없는데 영화가 끝난 뒤에 나오는 NG 장면에는 그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위험하니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을 함부로 따라하지 말라는 내용의 메시지 이다. 엔딩 크레딧 NG 영상을 보면 성룡이 NG를 내면서 촬영 스태프들과 성룡이 웃는 화기애애한 장면이 나오다가 성룡이 스턴트를 하다가 다쳐서 고통스러워 하거나 촬영 스태프가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실려가는 아찔한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것을 보고 메시지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NG장면을 다시보게 될것이다. 스태프 중 한명이 죽어서 실려가는 장면은 영화 폴리스 스토리4 간단임무 엔딩 크레딧에서 나온다. 용형호제1편 엔딩 크레딧의 경우 성룡이 얼마나 위험한 부상을 당했는지를 보여준다.

4. 기타 매체와의 관계

인기를 반영하는 듯 서구에서도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나왔다. 바로 '재키 찬 어드벤쳐' 시리즈. KBS에서 방영했다. 오프닝을 보아도 성룡이 나오며 마지막에 진짜 성룡이 나와 몇 마디 하는 씬도 있고, 주인공 성우가 진짜 성룡이라는 뜬소문이 있지만 사실 James Sie와 Paul Robert Langdon이 나눠서 했다. 뒤의 진짜 성룡 목소리와 확연히 다르다. 국내 더빙판에선 성룡의 전담성우중 한명인 김일이 맡았다.

철권레이 우롱 등 여타 캐릭터에도 영향(4편부터 성룡의 느낌이 강하다.)을 끼쳤다.

성룡을 주인공으로 한 게임도 가끔 나온다. 2013년 하드코어게이밍 101에서 성룡 특집 기사를 냈으니 여기 언급된 게임 외에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 링크(英)를 보자.
몇 개 꼽자면 PC 엔진으로 발매된 '성룡' 플랫폼 액션게임, 성룡이 직접 모션캡처를 담당한 PS1로 나온 재키찬 스턴트 마스터가 있고, 제작과정과 인터뷰 영상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스파르탄 X도 실은 성룡 주연의 쾌찬차가 모티브인 게임이다. 정작 분위기는 원작과 거리가 먼 오히려 사망유희류의 이소룡 영화스럽게 나왔지만…. 그리고 비공식 해적 게임이기는 하지만, 홍콩97에서도 얼굴을 비춘다(…).

그러나 흑역사가 있었으니 바로 카네코에서 발매된 '재키 찬 - 쿵푸 마스터'라는 실사 격투게임이다. 비슷한 게임으로 모탈 컴뱃이 있다. 잔혹한 피니쉬까지 비슷하다. 이 게임에서는 성룡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만약에 그런다면… '재키 찬 - 쿵푸 마스터'는 카네코에서 제안해서 나온 것으로 성룡의 썬더볼트에서 자세히 보면 경주차와 유니폼에 회사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이 게임은 성룡 자신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였다고 인정한 흑역사다. 마메 롬도 풀려서 직접 해볼 수도 있는데 뭐라 말조차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묻어나온다. 이 게임에서 성룡은 직접 플레이어블로 고를 수는 없고 중간보스최종보스로 등장(후속작에서는 셀렉트가 가능하다), 3가지 배리에이션이 나오며 코스츔과 무술이 달라진다. (동물의 움직임을 흉내 낸)오형권, 취권, 팔괘장. 코스튬에서 취권은 취권2 때의 복장이고 팔괘장은 프로젝트A 때의 복장이다. 근데 성룡 외에는 그렇다 할 임팩트가 없다. 나머지 플레이어 캐릭터를 담당한 배우나 전체적인 게임 분위기가 너무 싼티 나 보여서... 캐릭터의 네임도 담당한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썼다. 장발의 격투가인 남성캐릭터는 성룡의 썬더볼트에서 나온 악당역의 배우이고, 레슬링을 하는 금발 여성은 폴리스 스토리 3에 나오며 쿵푸보이와 사자탈 캐릭터를 맡은 배우는 성가반의 스턴트팀 리더이다. 정작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는데, 이 게임에 유덕화도 직접 참여했다!

그런데 이 게임후에 '재키 찬 - 성룡전설'이라는 후속작이 있다. 캐릭터나 그래픽은 그대로지만 의외로 놀랍게 게임성이 엄청나다. 지금 나오는 격투게임 못지않다. 정말이다. 대회 영상

철권레이 우롱은 특별한 언급은 없지만 아무리 봐도 성룡을 오마주한 캐릭터. 현재는 성우 현지화(?)를 추구하는 철권 시리즈답게 레이도 영어를 사용하지만 전 캐릭터를 일본 성우가 담당했던 3편까지의 레이의 성우는 성룡 전담 성우였던 이시마루 히로야였다.

5. 한국과의 관계

예전에는 추석, 설날 등 가족이 모이는 명절 때만 되면 성룡 영화를 하나씩은 개봉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명절마다 얼굴뵙는 집안어른 -.- TV에서도 성룡 영화 하나씩은 틀어줬다. 1980년대 방영판에서는 주로 배한성이 성룡을 더빙했는데, 유성검의 대결( 주연에 성룡 악역. 재미있게도 더빙이 배한성-양지운 컴비였다)이나 권정, 소권괴초, 사제출마 같은 방영판에서 연기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중반부턴 장세준이 주로 연기하면서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나 미라클, 용적심, 쾌찬차, 용형호제 같은 영화에서 연기했다. 장세준1997년 8월에 불의의 여객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후에는 홍시호(SBS, MBC), 김일(KBS)을 주축으로 권혁수, 이재용, 박지훈 등 여러 성우가 번갈아 맡기도 했다. 그리고 취권은 거의 필수요소 수준으로 꼭 집어넣었다.

무명이었던 젊은 시절에 대한민국에서 머물며 한국 홍콩 합작영화를 여럿 찍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밑바닥 생활을 하며 고생을 많이 했으며 그 덕에 한국어가 아주 유창해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진짜 한국인인 줄 오해할 정도이다. 홍콩 구룡반도에 있는 스타의 거리에 있는 그의 동판을 보면 핸드프린팅과 함께 그의 사인이 본인이 직접 쓴 4개국어로 적혀있는데, 이중 하나가 한글.

MBC의 '영원한 따거 성룡'이란 프로에서 그의 여러가지 면모를 보여줬다.

대한민국에는 불국사창덕궁 등에서 로케 촬영을 하게 되면서 지내게 되었고, 이 당시 한국 음식과 문화를 익혔다고 한다. 방송 중 식사로 육개장을 먹는데, 정말 빨리 먹는다. 그리고 안 남기고 다 먹는다! 먹고 나선 휴지로 자리를 깨끗이 닦는다…! 이 장면 후에 고아원 어린이들과 축구를 하고 짜장면을 먹는데 김치를 달라고 귀여운 투정도 부린다. 근데 배추김치가 아니라 열무김치가 나오자 잠깐 시무룩해하지만 싫은 내색없이 맛있게 먹는다.(성룡은 배추김치를 좋아했다. 그런데 생소한 열무김치가 나와서 그랬던 것. 근데 다 먹고 난뒤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가 뒤에 배추김치가 나오자 급시무룩하는 성룡의 얼굴이 나름 귀엽다.따거! 한그릇 더드세요.)

이 당시 대한민국 여자를 사귀어 8년간 장거리 연애를 했다고 밝혔다. 이때 정윤희와 열애설이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사실무근으로 판명. 후에 폐간된 영화 잡지 로드쇼와 인터뷰에서는 그 여자를 정말 사랑했었지만 그녀 집안 반대로 결국 헤어졌단다. 그리고 1984년 이젠 대스타가 되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몰래 그녀를 다시 만났다고 했다. 이미 그녀는 유부녀가 되었지만 서로 오래전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고. 무릎팍도사에서도 이때 그 여인에 대해 언급했는데 만약 그시절에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계속 연락했을것이고, 아마도 결혼까지 했을꺼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어도 이 장거리 연애덕에 배웠다고 하는데, 장발 단속에 걸렸다가 한국어가 능숙해 도리어 중국인 흉내를 내는 게 아니냐며 경찰서로 끌려간 적도 있었다고. 과거 하루 하루 먹을 것을 걱정할 정도의 시절을 겪어서 그런지 여러 근검한 생활 태도를 보여줬다. 또한 이 방송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콜렉션을 공개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취권은 코믹한 무술을 만들려던 성룡이 에 취한 권법을 만들면 어떨까하며 궁리하다가 동작 하나하나를 만들다가 탄생한 무술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미 중국 공권 계열 무술들 중에 팔선권이 존재한다. 시조가 수호전의 노지심. 거기에 다른 유파로는 이태백류가 있다는 말까지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이야기. 물론 우리가 영화를 통해 본 취권의 동작과는 많이 다르다. 취팔선에서 '술'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어 독자적 개량한 것으로 보는게 맞을듯.
한편 신인 시절에 최무룡과 합작영화에서 대결을 펼친 적 있는데, 훗날 신화에서 최민수와 대결, 보기 드물게 부자 2세대와 맞겨뤄본 사나이가 되었다. 그 밖에도 한국에서 촬영하거나 한홍합작영화에서 여럿 나왔는데 이 시절 악당 1, 2, 3으로 나오던 배우 가운데 조춘도 나와서 성룡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

한국에 처음 방문했을 때, 당시 대한민국 톱 개그맨이자 무술인이경규와 만나서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다시 방한했을 때, 이경규가 그때완 다르게 너무 늙어서 못알아봤다며 놀랐지만 다시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포즈로 같이 사진을 찍었다.

1989년 영화 미라클 홍보를 하러 한국에 왔는데 당시 한국민속촌을 한복을 입고 다니다가 때마침 수학여행온 일본 여학생들과 만나 사인받느냐 난리법석이 일어난 적도 있다. 이 당시에 KBS2 방송에 나와 유쾌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내가 한국말 많이 잊어서 많이는 못해요."라고 웃으며 인터뷰를 했었다.[2]

2011년 런닝맨에서 한 번 영상을 통해서(홍콩 특집) 출연한 적이 있었다. 미션 지령자로서 출연하여 유재석을 메뚜기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2013년 3월 2일 녹화본에서는 실제로 출연한다! 슈퍼주니어 시원과 함께. 그리고 해당 화에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귀요미스러움과 입담, 예능감으로 대호평을 받으며 폭풍웃음을 선사했다. 나이도 어리고 말도 잘 안통하는 멤버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토크에서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으며, 주변 촬영장 정리를 하고 스태프, 출연진을 챙기는 겸손하고 스타의식없는 모습에 매우 칭찬받았다.

의외로 유창한 한국어 발음을 과시하기도 했는데 어려보인다는 말에 자신이 40세(!)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멤버들이 항의하자 "그럼 41?" 하는 모습이 압권. 결국 45살로 합의를 봤다 거기다 하하의 폰번호 요청에 "닌 여자아님!! 여자만 됨!"이라고 하며 송지효를 보다가 월요남친의 견제에 한판붙자며 결투자세를 취하는 등 출중한 예능감을 뽐내셨다. 은근히 욱하는 기질도 있어 유재석이 실수를 하자 괴성을 지르며 퍽하고 한대 치다가 다음턴에서 본인이 실수를 하자 "어 미안^^"이라고 사과를 하며 유재석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다. 동네 친한 옆집형님같은 딱거… 알람토크때에는 덩실덩실 춤을 추거나 불리한 질문을 하며 상대팀들을 탈락시키는 등 종횡무진 활약. 막판에 한국의 팬들에게 인사를 해달라는 말에 사랑해요 쪽쪽쪽쪽쪽!! 하며 키스를 날리는 모습이 연세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귀요미하다.

한때 한국에선 대박 배우였고 1979년에 개봉한 취권만 해도 무려 서울관객 89만 관객이라는 엄청난 대박(당시에는 서울관객 20만도 대박이던 시절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1000만 관객을 훨씬 넘어선거라고 볼 수 있다.)을 거둬들이면서 흥행 보증수표였다. 90년대 후반까지도 기본은 하던 흥행세를 이어나갔으나 2000년대와선 한국에서도 한풀 흥행이 꺾이면서 신해혁명처럼 개봉도 못하는 일도 벌어졌다. 2013년 권상우가 나오면서 화제가 된 차이니스 조디악 개봉전에 한국 방문 및 한국 공중파 방송에 나와 열심히 얼굴을 드러냈지만 전국관객 27만에 그치는 기대 이하 흥행을 기록했다.

최근에 결혼한 이병헌의 결혼식에서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했는데. 그 때도 유창한 한국어를 선보였다.

그리고 2014년 1월 23일 목요일, 해피투게더에도 성룡 나르샤 최시원과 같이 출연하여 야간매점 메뉴 등극까지 성공했다. 클로징 멘트로 함께해서 즐거웠고, 유재석을 다시 만날수있게 되서 고마웠다는 말을 한거보니 유재석이 꽤 마음에 들었나보다.

성룡의 친한파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예로 홍콩에 가면 헐리우드처럼 명예의 거리가 있는데, 거기에 있는 성룡의 핸드프린팅과 사인에는 한글로 '성룡'이라고 함께 적어 놓고 있다. 그리고 2014년 1월에는 '폴리스 스토리 2014'의 내한 레드카펫 행사에서 스스로를 半한국인으로 말하기도.#

6. 외국에서의 활동

80년대 초반에 할리우드 진출을 노렸으나, 할리우드에서 골든 하베스트가 제작하여 나온 캐논볼 1, 2에선 엑스트라를 벗어난 수준에 불과했다. 프로텍터는 홍콩 자본으로 만들고 미국인 때부자 제임스 글릭켄하우스가 감독한 작품인데 이 사람은 1950년생으로 1975년부터 영화 제작, 각본, 감독을 맡아 20년동안 활약하던 미국 영화인이다. 그런데 집이 엄청난 때부자라서 눈치안보고 마음껏 제작하던 인물...이지만 B급 액션물 솔져라든지 엑스터미네이터(제목보면 터미네이터 아류같지만 완전히 다르고 화염방사기를 주무기로 싸우는 액션영웅을 다룬 작품) 같은 액션물은 흥행에 꽤 성공했다. 프로텍터를 망쳐놓아서 듣보잡 감독으로 아는 이들도 있지만 아들인 카메론 미셸 글릭켄하우스가 주연을 맡은 스릴러 지옥의 슬로터나 모험물 타임마스터까지 감독하고 1995년 이후로 영화 관련일을 안하고 있다. 더불어...세계적으로 페라리 광으로 유명하며 무려 80대가 넘는 페라리, 그것도 개인 디자인 주문한 세계에서 1대뿐인 페라리가 수두룩하다. 2010년대에도 여전히 때부자로 페라리 수집광으로 활약... 하지만 이 작품을 미국인들이 편집하면서 참패했고 이 편집판을 보고 경악하게된다. 성룡이 매우 싫어할만한게 역동적이지 못한 액션에 선정적인 장면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극장개봉한게 이 미국 편집판이었는데 여성의 나체가 등장하는 부분은 잘린채 개봉되었다. 다행히도 1989년에 세경문화영상에서 출시된 비디오판은 성룡이 편집한 홍콩판으로 출시되었다. 국내 개봉 및 비디오판에선 NG장면이 안 나오는데 일본개봉판 및 나중에 재편집판에선 나온다. 유튜브를 찾으면 볼 수 있다. 그리고 성룡이 편집한 홍콩판 버전이 뒤에 나오게 된다. 이 재편집판 평이 압도적으로 좋은 편인데 엔딩이나 주요 액션장면은 재촬영되어 추가되었고 적절히 편집되면서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이 무렵, 미국에서 찍은 배틀크리크도 참패하면서 미국 버라이어티 지로부터 아시아의 듣보잡 D급 배우라며 비웃는 기사로 매도당한 적도 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1996년 홍번구가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뒤늦게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재진출하면서 버라이어티 지는 12년전의 그 D급 배우가 이젠 A급으로 할리우드에 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찍은 러시아워 시리즈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할리우드에서 찍은 시도나 상하이눈같은 작품은 그냥 그런 흥행을 거둬들인다.

7. 생활

한국의 기부천사 김장훈씨에게 직접 한국어로 편지를 보내(쓴 사람은 스티브 유) 그의 기부활동을 응원하고 자신도 4,0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4,0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는 건 사실이 아닌 듯하다. 김장훈은 남에게 돈을 받아 기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 김장훈 측에서 안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2009년에는 전 재산에 대해 기부 의사를 밝혔다. 이때 기자가 "아들도 있으면서 왜 물려주지 않고 기부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했었는데 "내 자식이 능력이 있으면 내가 물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많이 벌 것이고, 내 자식이 능력이 없다면 물려줘봤자 탕진할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오오. 공식적으로도 자주 내한을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도 수시로 내한하여 고아원에 기부를 하고 가기도 했다고 한다. 아래에 기술된 스티브 유를 밀어주는 일만 제외하면 기성 세대들에게 성룡의 이미지는 상당히 좋다.

그러나 뒷세계에 연루된 사생활 및 난잡한 여성 문제로 인해 홍콩 내에서의 평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도 한다. 삼합회와 관련된 루머를 홍콩인들은 거의 정설로 받아들일 정도. 알다시피 성룡은 홍콩 영화계에서도 감독이 함부로 터치 못하는 배우 중 하나로 파워가 강했고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의 완벽주의를 갖고있다. 한장면을 무려 1,000번을 반복하여 찍은 적도 있다. 폴리스 스토리 3를 찍을 당시 갈등이 많아서 당계레 감독은 당시 인터뷰로 영화 3편을 찍으며 받는 스트레스를 이거 하나로 받는다고 투덜거렸을 정도이다.

실베스타 스탤론만큼이나 각본 수정과 제작 과정에 개입을 많이 하는 편이다. 다작에 대충 찍어대는 왕정과 완벽주의의 성룡과는 애초에 상성이 안맞을 수밖에…. 게다가 성룡의 시티헌터로 만난 이들의 결과가 가히 안습이라…. 근데 재미있게도 둘이 람보 4에 같이 나올뻔 했다. 하지만 역시나 둘은 각본 문제로 엄청 다투고 결국 성룡이 나오길 거부했다. 원래 각본대로라면 성룡이 악당으로 나와서 람보 덕에 갱생하여 돕는다는 줄거리인데 성룡은 이 각본을 보고 악역 아시아인이 백인 덕분에 갱생한다니 이건 아시아에 대한 모독이 아니냐며 격분했다고. 그런데 어차피 각본을 바꿨어도 둘이 엄청 각본이나 여러 제작을 두고 서로 충돌했으리라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성룡과 감독간의 트러블은 꾸준히 있었는데 중안조를 찍을때는 황지강(黃志強) 감독과 의견충돌이 있었고 취권2를 찍을때는 무술연출씬에 관해 의견이 갈려 유가량(劉家良) 감독과 대놓고 싸웠다. 유가량은 홍콩 유명 무술가로 아버지인 유심(劉湛)은 황비홍의 제자였던 임세영(林世榮)의 제자였다고 한다. 거기에 의형제인 유가휘(劉家輝, 본명 승금희(冼錦熙))와 유가영(劉家榮)도 무술가로 유명하다. 성룡은 촬영중 이 유가량 감독과 싸웠고 감독이 빡쳐서 초반부 격투씬만 완성시키고 이후 메가폰을 놔버렸다고 한다. 유가량은 이 취권2의 흥행에 고춧가루를 뿌리고자 유덕화를 기용해 취권3를 찍어 동시기에 같은 제목의 영화가 나오게 된다. 그러나 되려 취권3가 발렸다.

때문에 성룡이 출연한 영화의 도입부분에 成龍作品이란 자막이 뜨면 감독들이 성룡과의 불화나 여러 사정으로 도중하차해 성룡이 이어서 연출한 작품이라 보면 된다.

왕정은 "성룡의 시티헌터" 이후로 소심한 복수를 하게 되는데 이연걸 주연의 탈출(1995)이란 영화에서 장학우가 맡은 역할인 룡위란 인물의 기믹을 외모는 이소룡 짝퉁이지만 성격이나 사생활(주색잡기와 실제 무술실력이 별로라는 설정), 그리고 아버지와 매니저 진자강까지 모습을 흡사하게 설정해 누가 봐도 성룡임을 알게끔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깠다. 한술 더떠서 아예 스턴트를 직접 한다고 구라치고 대역을 쓰는 장면까지 있다. 그러나 이 룡위가 극중 후반에 아버지가 구타당하는걸 보고 분노하여 멋지게 테러리스트를 때려잡는 장면을 집어넣은걸 보면 소송 방지용인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무슨 바람이 분 것이지 스티브 유를 밀어주기 시작하면서, 2010년 개봉한 '대병소장'(大兵小將: Little Big Soldier)이라는 영화에 같이 출연하기도 했다.

2009년 4월에는 중국인은 강력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지나친 자유는 대만처럼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망언을 해 큰 비난을 받았다. 홍콩이나 대만 등 선진의식이 높은 지역으로부터는 더 강력하게 비난을 받았다.

또한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때 티베트 사태로 프랑스 등에서 봉송되는 성화를 끄려고 덤벼든 사람이 있는 등 크고 작은 시위가 생기자 "성화봉송을 막으려하는 자는 따끔한 쿵후의 맛을 보여주겠다"라고 말했다 각종 시사평론가들의 풍자만평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연걸이나 다른 홍콩 배우들처럼 그냥 입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될거 가지고 왜 그렇게 나서야했는가 하는 의문도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들에 대해서, 성룡 본인이 중국 본토에도 진출하여 연예활동하는 입장이라 중국 정부에 밉보이는 발언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란 것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연걸과 달리 성룡은 작품을 많이 찍는 편으로, 중국 내수용 작품도 만만찮게 다작하므로 어쩌면 이러한 정치 행보는 영화를 위한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깟 돈 덜 벌면 그만이지라고 쿨하게 발언한 주윤발 따거와 비교되는건 사실 어쩔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상업적인 성격과 달리 성룡의 보수적인 정치 행보가 설명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부모랑 떨어져서 좀 불우한 시절을 보낸 데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시대적 상황이 관련되어 있으며, 성룡 본인이 중국인, 그것도 한족이기 때문에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어긋나는 상황을 용납하지 못하는 게 한족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또한 홍콩의 중국 반환 전까지만 해도 본토에 다소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보수적인 성향으로 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다. 전인대의 정협 의원으로까지 활동하는 걸 보면 정치적으로는 확실히 베이징 정부인사들과 뜻을 같이 하는 듯.

2014년 8월 22일엔 아들 방조명이 성룡의 호화빌라에서 대만배우 진동과 함께 대마초를 피우다 걸려 세간에 큰 충격을 줬다. 성룡도 상심이 큰 듯 추측성 기사 보도를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기사 마약류에 엄격한 중국인만큼 사형설부터 온갖 루머가 다 떠돌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해서도 시위대의 자제를 촉구하는 등 친정부적인건 확실해보인다. 시위대를 지지한 주윤발과도 여러모로 비교되고 있다.12

8. 기타

위의 레이 우롱 관련 이야기에서도 적었지만 일본에서 전담 성우는 카부토 코우지 이시마루 히로야. 성룡 본인이 직접 그 실력을 인정할 정도로 맘에 들어했다고 한다.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성룡은 사실 성형미남이다. 특히 쌍꺼풀 수술이 정말 잘 된 케이스. 홍금보가 방한했을 당시 기자들이 성룡이 성형한 것이 맞는지 물어보자, 성형한 것이 맞다고 확인해주기도...성형 전 사진이 궁금하다면 눌러보자. 아니, 이미 저 위에 있지 않은가

탈모가 있다. M자 탈모인데, 장발은 가발을 쓰고 다니는 듯하다. 지금껏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지만, 영화 대병소장의 NG영상에서 공개되었다. 진행 정도로 보아 상당히 오랫동안 탈모가 있었던 듯. 홍콩에는 성룡이 모델로 나온 발모제가 있다.

자신의 개인 경호원이기도 했던 노혜광과 사이가 틀어지자 퇴직금도 주지 않고 내쫓아서, 의리없는 스타로 뽑히기도 했다.#

통영시 명예시민 겸 홍보대사다. 해저터널이나 미륵산 이블 카에 성룡이 직접 쓰레기를 들고 있는 사진과 함께 쓰레기 좀 버리지 말라는 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코믹 무술 이미지가 커서인지, 진지하게 나온 영화들은 해외 흥행이 신통치 않다. 중안조(1993)라든지, 뉴 폴리스 스토리, 신주쿠 사건같은 영화들은 평은 괜찮을지언정, 해외 흥행은 참혹했다. 홍콩 흥행도 마찬가지로 그다지 안 좋았다. 중안조로 대만 금마장 영화제 및 홍콩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수상한 거와 대조적이다. 더불어 90년대만 해도 한국 극장가에선 흥행 성공을 대표하는 이름이기도 했으나…. 2000년대 와서는 많이 잊혀지고 있다. 2010년에 영화 베스트 키드에 출연했는데, 이 영화는 비든 킹덤과 더불어 그동안 제자로만 출연했던 성룡이 으로 출연하는 이색작.

한때 소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사망설이 떠돌았으나 곧 루머로 밝혀졌다. 현재 성룡은 2011년 9월에 개봉한(해외) 영화 '신해혁명' 제작, 공동 감독 겸 주연으로 참여했는데 로튼토마토 점수가 20점도 안되는 악평에 시달리고 흥행도 참패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100번째 영화라서 이 영화의 악평이 가슴아플 듯. 한국에선 2012년 3월 15일 개봉했으나 시사회도 없이 잠깐 개봉한 탓에 관객 수치도 집계되지 않았는데 전국 5만도 안된다고 한다. 그리곤 DVD로 나왔다.

다른 액션배우들에 비해 연기력이 상당히 출중한 편이다. 슬픔에 괴로워하는 연기에 특히나 강한데, 그런 성룡의 연기력을 제대로 맛 볼 수 있는 영화가 홍금보가 바보 형으로, 성룡이 경찰 동생으로 나오는 적심과, 부하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에 빠진 진국영 반장 역을 맡았던 뉴 폴리스 스토리이다. 그 외에도, 러시아워 3편의 마지막 에펠탑 결투 등, 눈물을 머금고 소리치는 장면은 성룡만의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겠다.

2012년 말에는 무려 22년만에 나오는 용형호제 3편인 차이니즈 조디악(중국명은 십이생초)에 나왔다. 왜 용형호제 3가 아닌가 하면 1, 2 제작판권을 가진 골든 하베스트 영화사가 문을 닫고 이 영화 판권이 미국 워너브라더스로 갔기 때문에 제목을 이렇게 지을 수가 없었다. 참고로 권상우가 조연으로 같이 나왔다. 가발을 쓰고 나온 이 영화에서 나이 예순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무척 힘들어하는데 이것이 거의 사실상 액션 코미디물로선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사실 이 말은 스케일이 큰 '초대형' 액션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얘기였고, 액션은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고 본인이 직접 해명하였다. 현재 폴리스 스토리 후속작과 익스펜더블 속편도 찍는 중이라 한다. 더불어 러시아워 4라든지 여러 후속도 기획 중이라고 한다. 2013년 2월에 개봉한 영화 이니즈 조디악의 프로모션을 위해 한국을 찿아 릎팍 도사런닝맨에 출연해서 아직 녹슬지 않은 그만의 재치와 인생이야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무릎팍도사에서 강호동이 "왜 그렇게까지 몸을 사리지 않고 연기하느냐"고 질문하자 성룡의 답변이 예술이였다. 다른 말은 다 중국어로 했는데 굵은 글씨는 일부러 한국어로 답변했다.

"돈이 없어서 몸으로 때우려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런 위험한 연기를 해야만 했었지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팬들을 즐겁게 해주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죽는게 무서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냥 한다. 팬들이 즐거워하면 되니까."

또한 잘 알려진 사실로는 성룡은 골수 폴더폰 마니아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폴더형 스마트폰인 삼성 심계천하 시리즈 SCH-W213, SM-W2014의 광고 모델을 자청했다고 한다.

영화 포비든 킹덤 홍보당시 국내 개봉을 맞이하여 이연걸과 함께 연예가중계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리포터가 "두 분다 무술 배우로써 최고로 쳐주는 분들인데 실제로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것 같냐?" 라는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에 잠시 서로 눈치를 보다가 이연걸이 재빨리 "성룡 형님이 형님이니 아마 저한테 양보해서 져주실 것 같다." 라며 농담하며 선수를 쳐버렸다. 그리고는 특유의 순진무구 소년미소로 헤헤헤거리며 씨익 '이 형님이 대인배셔서 져주실꺼임' 이라면서 치켜세워 주며 한 말이다 보니 성룡은 뭐라고 대꾸할 거리도 생각이 안나고 해서 그냥 같이 웃으면서 화기애애하게 넘어갔다. 성룡 : '마.. 맞받아 칠 드립이 생각이 안나...' 이연걸 : '계획대로...헤헤헤'

9. 성가반

성룡이 만든 스턴트맨들과 같이 작업했던 무술가들의 집단. 홍금보의 홍가반과 함께 홍콩 영화에서 고난도의 스턴트들을 작업한다. 개개인이 자신의 무술을 선보이는 홍가반과 달리, 이 쪽은 모두가 하나되어 큰 그림을 그리는 무술을 시도하고 있다.

일원들은 다음과 같다. 다만, 위키백과의 정보를 가져온 것이라 영어 이름이기도 하지만, 중국이름을 알더라도 얼굴이 안 알려진 사람이 많고(…), 한국인도 있다.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바람.
※ 이전 멤버와 현재 멤버 모두 포함되어 있다.

  • Michael Tse(마이클 체, 謝天華) - 前 홍콩 TVB 소속 배우로, TVB 연예인 훈련반 출신으로, 곽부성, 등췌문, 여미한 등과 동기. 대표작은 잠행저격(潛行狙擊).
  • Colin Flora
  • Brad Allan (브래드 앨런, 풀네임은 브래들리 제임스 앨런(Bradley James Allan)) - 스턴트팀 리더. 성가반에서 최초로 아시아인이 아닌 사람. 빅타임(Gorgeous)에서 성룡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싸움을 한 사람. 이 영화엔 아래에서 설명할 노혜광도 나오는데, 그냥 앨런의 고용주 역할. 두 번째 싸움 중간에 앨런에게 "괜찮지?(Are you Okay?)"라고 물었다가 앨런이 노려보자 "괜찮대, 괜찮대!"라며 좋아하는 모습이 압권.
  • Paul Andreovski - "나이스 가이"를 비롯한 여러 영화에 출연. 성룡의 개인 복싱 코치.
  • Anthony Carpio
  • Chris Chan (Chan Sai-Tang)
  • Chan Man-ching
  • Chan Tat-kwong (Chan Daat-Gong)
  • Andy Cheng (Cheng Kai-Chung)
  • Johnny Cheung (Cheung Yiu-Wah)
  • Danny Chow (Chow Yun-kin)
  • Joe Eigo
  • Fung Hak-on (Fung Hark-On)
  • Hon Chun
  • Dani Hu(Fok Chan Keung)
  • Louis Keung (Mak Wai-Cheung)
  • Benny Lai (베니 라이, 중국식 이름은 여강권.(Lai Keung-Kuen)) - 폴리스 스토리2-구룡의 눈에서 폭탄테러범 3인방 중 한 명인 벙어리로 출연했으며, 공중 3연각을 날리는 등 성룡을 압도적으로 누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폴리스 스토리, 로젝트 A 2, 라클에도 출연하였다. 국내에도 출시된 폴리스 스토리 2 DVD 서플먼트에 이 사람의 최근 인터뷰가 실려있다.촬영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Rocky Lai (Lai Keung) - 록키 라이, 중국식 이름은 여강근. 여강권의 동생. 국내 출시된 로젝트 A 2 DVD 서플먼트로 수록된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실려있고, 성룡의 시티헌터 DVD 서플먼트에는 최근 인터뷰가 실려있다.
  • Sam Wong (Lai Sing-kwong / Wong Ming-Sing) - 스턴트팀 리더. 폴리스 스토리3-초급경찰에서 성룡과 함께 연습대련을 하는 공안 대원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성룡이 등장하는 격투게임인 '재키 찬 - 쿵푸 마스터'에도 플레이어 캐릭터로 등장한다. (사자탈의 캐릭터도 그가 연기했다.)
  • Ben Lam (Lam Kwok-Bun)
  • Chris Li (Li Kin Sang)
  • Lee Chun-kit – Project A Part II, Police Story 2, Miracles
  • Nicky Li (니키 리, 본명은 이충지(Li Chung-Chi)) - 스턴트팀 리더.
  • Ken Lo (켄 로, 본명은 노혜광(Lo Wai-Kwong)) - 성룡의 개인 경호원. 로젝트 A 2초반부의 성룡과 호텔에서 싸우는 범죄자, 권2의 마지막 싸움에서 발차기를 보여준 사람. 이연걸의 영화에도 종종 등장한다. 한국영화 조폭마누라3에도 출연. 초급학교패왕에서 바이슨 장군역을 맡은 그 사람이다.
  • Mars (화성. 본명은 Chiang Wing-fat / Feng Sing) - 성룡의 최고 대역배우. 성룡 초기작인 용소야에서는 준주인공 급으로 등장했다. 그 밖에도 초기작 여러편에서 조연급으로 자주 나온다. 못생기기로(...) 잘 알려져 있지만 스턴트 실력만큼은 뛰어나서 성룡과 오랫동안 작업했다. 최근에는 젊은날에 했던 수많은 스턴트의 후유증으로 스턴트맨을 그만둔 것으로 알려져있다. 최근에는 간간이 무술감독으로는 활약하고 있다. 참고로 프로젝트A의 시계탑 추락씬은 테이크를 세 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많이 찍었다. 그 대역은 이 사람이 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장철 감독의 <독비도>에서 왕우의 아역으로 출연하기도 했었고 <금연자>에서도 아역으로 출연하였었던 아역배우 출신이다.
  • Frankie Poon (Poon Bin-chung)
  • Pang Hiu Sang
  • William Tuen (Tuan Wai-Lun)
  • Wan Faat
  • Paul Wong (Wong Kwan)
  • Jon Foo (Jonathan Patrick Foo) - 중국계와 아일랜드계의 혼혈인 배우. 니 쟈의 '옹박:두번째 미션'에서 그를 상대로 화려한 검무를 보여주었다. 철권의 실사판에서 카자마 진으로 출연했다. 프로모션 영상 토니 쟈와의 대결
  • He Jun (Hoh Gwan)
  • Ng Kong (Wu Gang)
  • Park Hyun Jin - 성가반에 소속된 한국인. 'BB 프로젝트'에 출연했다.
  • Lee In Seob
  • Han Kwan Hua
  • Ron Smoorenburg - 성룡의 CIA(Who Am I?)에서 노혜광과 함께 1대2 옥상 결투를 벌인 사람. 위키백과쪽 명단에는 없다. 본인 사이트에 의하면 성룡을 비롯한 홍콩영화인들이 자신을 노동력 착취 내지 과소평가했다고 징징대고 있다. 생긴 건 이 분 닮았더만
  • Eddy - 성룡이 특별하게 키워서 아이돌로 만들어낸 가수. 성룡이 키운 아이돌 JJCC의 멤버이다. 한국인이다.

10. 영화 목록

※ 출처 - Daum 영화. 각 정보에 대해 추가바람수정바람.

1971 협녀, 광동소로호
1972 정무문, 흑연비수(합기도)
1973 용쟁호투
1974 사왕일후
1976 소림문, 소림목인항, 신정무문, 유성검의 대결
1977 이소룡 일대기 생과 사, 신 당산대형
1978 소권, 오룡대협, 사학비권, 비도권운산, 취권, 사형도수, 금강혈인
1979 당산비권, 소권괴초, 용권, 조수괴초
1980 사제출마, 배틀 크리크
1981 캐논볼
1982 용소야
1983 용등호약, 오복성, 프로젝트A
1984 캐논볼2, 대복성, 쾌찬차
1985 프로텍터[3] 폴리스 스토리[4], 복성고조[5], 복성고조2, 용적심
1986 용형호제
1987 프로젝트A 2
1988 비룡맹장[이], 리스 스토리2-구룡의 눈
1989 미라클
1990 액션 진기명기, 용형호제2, 화소도
1992 폴리스 스토리3-초급경찰[7], 쌍룡회[8], 성룡의 시티헌터
1993 프로젝트 S, 중안조
1994 취권2
1995 성룡의 썬더볼트
1996 폴리스 스토리4, 홍번구
1997 나이스 가이
1998 러시아워, 성룡의 CIA
1999 젠 엑스 캅, 희극지왕[9], 빅타임
2000 이소룡-전사의 여행, 엑시덴탈 스파이, 상하이 눈
2001 러시아워2
2002 아트 오브 액션, 시도
2003 트윈 이펙트, 메달리온, 상하이 나이츠
2004 트윈 이펙트2, 뉴 폴리스 스토리, 80일간의 세계일주
2005 신화-진시황릉의 비밀
2006 사대천왕, BB프로젝트
2007 러시아워3
2008 쿵푸팬더(목소리), 포비든 킹덤-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
2009 건국대업, 성룡의 쿵푸 마스터, 신주쿠 사건
2010 대병소장, 쿵푸팬더 홀리데이 스페셜, 스파이 넥스트 도어, 베스트 키드
2011 쿵푸팬더 2(목소리), 신해혁명, 샤오린 : 최후의 결전
2013 이니스 조디악
2014 폴리스 스토리 2014[10]
2015 드래곤 블레이드[11]
2016 스킵트레이스[12]

11. 성룡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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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요즘에는 케이블에서 방송한다.
  • [2] 왜 일본 여학생들이 난리가 나는가 의아할 수도 있지만, 성룡의 한국에서의 인기와 일본에서의 인기 차이는 조세호의 인기와 유재석의 인기 차이에 버금갈 정도로 갭이 크다. 일본에서 성룡은 거의 국빈 수준.
  • [3] 촬영은 1984년 개봉은 1985년
  • [4] 이 영화야말로 성룡 본인과 성룡 팬들이 수작으로 꼽는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에 숨은 비화가 있는데 이는 바로 한국 개봉 문제다. 1985년 12월 홍콩에서 개봉한 후 예정대로라면 1986년 새해나 설 연휴에 개봉했어야했는데 당시 5공 정부 심의에 걸려서 1988년 7월이 되어서야 개봉했다. 이유는 사실적인 폭력(격투)장면과 비리경찰이란 주제를 들어서 개봉을 미루다 정권이 6공으로 바뀌고 나서야 겨우 개봉했다. 한국 개봉일이 7월 23일인데 하필 하루 전날 개봉한 영웅본색2에 밀려서 흥행성적은 서울관객 19만명으로 끝났다. 영웅본색2는 서울관객 26만명
  • [5] 폴리스 스토리 촬영 중 입은 부상으로 인해 성룡이 출연한 영화 중 유독 대역 장면이 많은 작품. 여기서 흥미로운 장면이 있는데 영화 마지막 장면은 놀이공원과 놀이공원 유령의 집 내부에 있는 악당들의 아지트에서 펼쳐진다. 홍금보(극 중 자고채 역)가 칠복성 형제들과 원표를 구하기 위해 성룡(철력위/계골초, 2가지 이름으로 나옴)의 지시에 따라 악당들과 접선하게 되는데 악당이 접선하면서 성룡의 사진을 보여주는데 이 모습이 폴리스스토리 극 중에 경찰 복장으로 분한 성룡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복성고조의 개봉일은 1985년 2월이었고 폴리스스토리의 개봉일은 1985년 12월이라 두 작품의 제작기간이 서로 겹쳤던 것. 그래서 폴리스스토리를 촬영하던 성룡의 모습이 복성고조에 일부 나오게 된 것이다. 영화를 보시면서 확인하시길 바란다
  • [이] 영화 마지막 장면인 마약공장 격투씬에서 성룡의 대역장면이 떡하니 나온다. 베니 유키데즈와 1대1 격투씬에서 성룡이 사이클론킥으로 베니를 무력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누가 봐도 성룡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극 중반부 온미령과 유람선 선상 데이트 장면에서도 격투씬이 나오는데 유람선 야외 계단에서 몸을 뒤로 돌려 뒷발차기하는 씬 역시 성룡이 아닌 대역이다.
  • [7] 촬영은 1991년 개봉은 1992년
  • [8] 홍콩 영화감독협회 기금마련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으로 서극과 임영동이 공동감독했다. 서극은 후반부 자동차검사장 격투씬에서 카드놀이를 하는 회사원으로 나오는데 중간에 수염나고 마른 사람이 바로 서극 감독이다. 이외에도 여러 감독들이 카메오로 나오는데 왕정,오우삼,유가량이 나오니 잘 찾아보는 것이 좋다
  • [9] 카메오 출연.
  • [10] 원제는 폴리스 스토리 2013이고 원래 2013년 개봉 예정이었지만 연기.
  • [11] 로마 병사들이 중국에 오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로마 황제 역은 자그마치 애드리언 브로디에, 로마 병사 역은 쿠삭. 최시원도 출연한다! (해피투게더에서의 약속을 지킨 모양.)
  • [12] 잭애스의 쟈니 낙스빌과 판빙빙과 함께 하기로 한 작품. 연정훈도 출연한다고 한다. 원래는 2014년 말이 목표였으나 한참 연기되었고 2014년 11월 28일 현재 홍콩 촬영을 마치고 마카오에서 촬영 중이다.
  • [13] 애니메이션 오리지널 캐릭터.
  • [14] 레이 우롱과 마찬가지로 성룡의 전담 성우인 이시마루 히로야가 목소리를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