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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삼성 라이온즈 감독

last modified: 2015-04-05 00:24:40 Contributors


2004년 당시의 모습. 누군가에게서 많이 보던 포즈 같다면 그건 기분 탓[2]

삼성 라이온즈 No.90
선동열(宣銅烈)

Contents

1. 부임 성적
2. 스타일
2.1. 투수 기용
2.2. 타자 기용
2.3. 사단 구축
2.4. 포스트시즌 운용
2.5. 최종 평가
3. 선수기용 논란
3.1. 양준혁 은퇴 관련
3.2. 외국인 선수 기용 관련
4. 사임
5. 평가
6. 고향 팀으로

1. 부임 성적

은퇴 후 KBO 홍보위원으로 활동했다가 2004년 삼성의 수석코치에 취임하고 그 다음해 김응용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 사장으로 영전하자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2005년, 2006년 2년 연속으로 정규시즌 1위를 기록하고 한국시리즈도 2연속 우승. 그러나 2007년, 2008년에는 4위에 그쳤고 2009년에는 5위에 그치면서 1996년 이후 처음으로 4강에서 탈락하였다. 2010년 SK에 이어 2위로 페넌트레이스를 마쳤으며, 플레이오프에서 시즌 3위 두산에 3승 2패로 승리, 한국 시리즈에서 SK에게 4연패하여 2010 시즌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6년 재임기간동안 우승 2회, 꼴찌2위 1회, 4위 2회, 5위 1회.

일반적인 팀이었다면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삼성의 통산 성적과 비교해 본다면 4-4-5라는 성적은 결코 좋은 성적이라 평가받기 어렵다. 더욱이 2009년을 5위로 마쳐 1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좌절 시켜버렸다. (그 이후로 계속 진출중임을 생각하면, 09년에 명맥이 끊겨버린게 더 아쉬운 상황) 허나 구단 역사상 첫 2회 연속 우승을 기록한 감독도 선동열 감독.[3]

팬들과의 관계에서 논란이 많았던 감독으로 대구 지역 골수팬들은 한국시리즈 2연패 당시에도 선동열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삼성 특유의 선굵은 공격야구 대신 투수 중심 스몰볼을 추구했기 때문에 화끈한 공격 야구를 20년 했던 팬들과의 상성도 맞지 않았고, 더군다나 선동열에게 한국시리즈의 좌절을 맛본 기억이 대다수 있기 때문에 올드팬일수록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다.

다만 2회 연속 우승이라는 기록 역시 어쨌거나 의미 있는 기록이었기에, 지지하는 팬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또한, 해태의 전설적인 레전드 선수출신이다보니 2004년 이후 성적이 시원찮던 기아를 뒤로하고 선동열을 따라서 삼성을 응원하던 감독의 개인팬들도 상당수 존재했다.[4] 하지만 이런 팬들도 팀이 좋은 성적을 뽑으며 잘 나갈 때에나 목소리가 컸고, 이후 성적이 곤두박질 치고 각종 프렌차이즈 스타에 대한 홀대가 불거지면서, 삼성 팬들의 다수는 선동열 감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돌아섰다.

우승 시기 이후 삼성은 선동열 감독을 놓고 수많은 논란이 양산 되었으며, 선동열을 옹호하는 팬들은 선수시절 선동열을 좋아하던 선동열 개인팬들이 삼성팬 위장전입해서 자기 레전드가 욕먹는걸 쉴드 치는 경우가 다수였다.[5] 이로 인해 당시 삼성은 논란이 벌어지기만 하면 겉보기에는 내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삼성팬 vs 기아팬 + 소수의 삼성팬의 싸움이 되기 일쑤였다고. 실제로 삼성 라이온즈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몇몇 선동열을 옹호하는 기아팬들이 가입하여 여론몰이를 하다가 관리자로부터 적발(?)되어 차단당하기도 하였으며, 모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선동열 경질과 기아 감독 부임 무렵 슬그머니 응원팀을 바꾸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5위로 가을 야구를 탈락하고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인 양준혁이 강제 은퇴 당한 이후에는 소수의 선동열 옹호파 삼성팬들도 등을 돌렸기 때문에, 선동열의 임기 말기에는 그를 옹호하는 이는 기아팬, 혹은 선동열 개인 팬이 대부분이였던 정도였다.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스윕패를 앞두고 실실 쪼개는 선동열과 썩은 표정인 류중일 코치의 대비된 모습을 보여 준다.

그 외에도 2010년 한국 시리즈에서 우리는 우승할 시기가 아니라는 드립과 함께 3-0으로 무기력하기 지는 운영을 펼쳐 큰 비판을 받았으며, 특히 한국 시리즈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SK는 선발의 의미가 전혀 없는 팀 같다. 이렇게 되면 야구가 이상해지고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어떤 식의 야구인지 알 수가 없다. 한국식인지. 미국식인지, 일본식인지... 물론 졌으니 할 말은 없다"라고 말해 졸렬함을 드러냈다. 정반대의 스타일인 로이스터라면 모를까 김성근 감독과 가장 스타일이 비슷한 불팬중심의 야구를 하는 선동열 감독이 할 소리는 아니다. 실제로 10시즌 한국시리즈 동안 SK와 삼성 양팀 선발 중 5이닝을 채운 선발은 2차전에 나와서 5.1이닝 3자책을 기록한 차우찬 밖에 없다. 정규시즌 기록을 봐도 선발 평균 이닝이 SK 5.01, 삼성이 5이닝으로 동일한 수준. 추가로 한국시리즈 동안 출장한 투수 숫자도 같다.

2. 스타일

2.1. 투수 기용

공식적으로는 수석코치로 입단 뒤 1년만에 감독으로 승격했기 때문에 코치경력이 짧아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2004년 수석코치 입단때 팀은 사실상 그를 투수코치로써 영입했고 투수코치로 활동한 뒤 감독으로 승격된 케이스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짧은 경력이지만 투수코치로서의 능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김시진 감독과 동급. 그래서 2006년 WBC에서도 투수코치로 활약했다.

투수코치 출신 감독답게 투수를 중심으로 하는 지키는 야구를 한다. 그 결정판은 "KO펀치"라 불리던 권오준 - 오승환[6]의 필승 계투진. 그와 더불어 권오준 - 권혁의 "쌍권총" 라인 또한 유명하다. 외에도 정현욱, 안지만 등을 기용하여 계투진의 강력함을 유지했다. 이렇게 완성된 게 이른바 안정권KO 라인.

다만 윤성환, 차우찬 등의 투수들이 불분명한 보직에서 방황하다 뒤늦게 선발로 정착해서 성공하는 걸 보면 지나치게 조급증을 갖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견해도 많다. 또한, 선발에서 잘 던지거나 선발로 정착해야할 유망주들을 빼서 불펜에 넣었던 점에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권오준은 원래 선발이었지만 2004년 시즌 중 혈행장애 드립[7]을 치면서 기어이 불펜으로 전향시키고, 굴린 결과 권오준은 인생의 토미존 서저리 3회 중 2회를 선 감독 아래서 받게 되었다. 권혁 또한 좌완 파이어볼러 선발 유망주였지만, 토미존 서저리에서 복귀한 직후인 2007년 불펜에서 마구 구른 결과[8] 결국 평범한 좌완 계투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만 정현욱의 경우에는 선발로만 가면 난조에 시달리는 것을 봤고, 안지만 또한 선발로서는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기에 반대가 없다[9].

그리고 "투수가 자기 공을 제대로 뿌리려면 일단 많이 던져봐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어서인지[10], 스프링캠프에서 투수들에게 많은 공을 던지는 훈련(소위 3000투구 훈련)을 요구하기도 한다. 다만 이에는 체계적인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력을 탄탄히 해놓아야 한다는 선제조건이 있기 때문에[11], 초보 코치 시절에는 이 조건을 간과하고 그냥 무작정 많이 던지라는 식으로 주문했다가 몇몇 투수들이 이 강도 높은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부상으로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드러눕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12] 본인이 3000투구로 부활했던 건 그냥 본인의 신체조건이 사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라는 사실을 잊었던 듯. 이후로는 좀 나아져서 공을 던지기 전에 일단 몸을 만들 것을 주문하고 있다.

투수 운용 능력도 수준급이어서 2010년에는 "5회 이후 리드시 승리"라는 무시무시한 진기록을 이어가기도 하였다. 이 기록은 9월 4일 롯데에게 패하면서 52연승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허나 이 투수 운용은 불펜에 무리를 많이 가해 후에 많은 부상선수들을 유발하게 된다. 게다가 사실 저 2010년엔 선동렬이 2이닝 이상 등판하면 3일 이상 쉬게 한다는 등 언론플레이 혹사를 안하는 감독으로 비추어 졌지만 실제로 2009년까지 선동렬의 투수 기용을 보면 이 때까지 투수들 다 혹사시켜서 말아먹다가 2009년에 단체 시즌 아웃을 겪고 나서야 정신차렸다라고 봐야 한다. 또한 이만수, 양준혁, 이승엽 시절부터 홈런을 뻥뻥 쳐대는 것에 익숙하던 삼성팬들은 매번 1점차, 2점차로 쥐어짜내 이기는 야구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이것도 인기가 없던 요인 중 하나. 후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인 류중일이 선동열과 반대로 선발을 길게 가져가고 연속 우승을 차지하게 되면서 삼성 라이온즈의 팬들은 선동열의 이러한 스타일을 더욱 비판하고 있다.

투수 출신 감독이어서 그런지 투수에 대한 애정이 넘쳐흐르며 투수오타쿠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 신인선수가 오면 닥치고 투수부터 만들고 보려는 경향이 크다. 팀내 타자가 모자른 탓에 타자로 갈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라고 예상됐던 2008 지명 신인 최원제조차도 투수로 낙점지었다. 거기에 이상목, 구자운 등 타 팀에서 방출된 투수들을 1억씩 쥐어주고 컬렉션으로 만들었으니(…). 이 양반 투수오타쿠 맞다. 2008 시즌이 끝난후 스토브 리그에서는 히어로즈장원삼을 자기 콜렉션으로 만들려다가 타 구단과 KBO의 제재로 실패. 그러나 2009 시즌 이후 히어로즈 가입금 완납 이후 기어코 장원삼 영입에 성공. 이는 이미 작년부터 계속 진행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8 시즌 후 장원삼은 30억+박성훈의 조건으로 트레이드 되었었으나 이때 지불한 30억원을 2009 시즌 후까지도 히어로즈가 반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언론에 발표한 20억+김상수+박성훈의 딜은 김상수에게 10억의 가치를 인정해서가 아닌 단순히 김상수를 끼워준 명목상의 트레이드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투수오타쿠라기보다는 불펜오타쿠에 가깝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선발로 10승 투수가 된 권오준의 불펜 전향과 권혁의 불펜 강제 전향. 그나마 이 불펜 오타쿠 질 속에서도 윤성환차우찬을 선발투수로 키운 부분만큼은 몇 안되는 업적이라 봐야 할 듯.

또한 투수혹사도 종종 논란에 오른다. 단적인 예로 주전투수 배영수, 권혁, 권오준, 오승환 등 수많은 투수가 혹사의 결과 재활해야 했다. 그나마 삼성 라이온즈의 돈빨로 선수들이 그럭저럭 복귀할 수 있던 것이 다행일까. 특히 배영수같은 경우는 종래의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구위회복이 문제가 아니라 에이스가 완전 망한 선수가 된 판. 삼성 팬들은 배영수의 어깨를 우승과 바꿔왔으므로 못해도 아무도 안 깐다. 선동열이 배영수에게 영구 까임방지권을 줬다는 어두운 우스갯소리까지 있다.

이러한 투수 혹사 문제는 선동열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늘어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팀 간판 에이스초특급 불펜을 부상시켰으니 좋아할 리가 있나. 사실 선동열의 투수 운용은 투수가 넘쳐나지 않는 이상 불펜에 심하게 무리를 줘서 부상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2.2. 타자 기용

그러나 타선은 몇 년간 발전이 더디게 가는 바람에 삼성은 삼점 라이온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아무리 쉴드를 쳐준다 해도 2005 시즌 득점 2위이던 타선이 부임 3년만인 2007 시즌에 득점 8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낸 것은 선동렬의 타자 발굴 능력이 아주 형편없다는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13] 야구란 스포츠는 원래 투수가 제 아무리 퍼펙트로 막아준다 해도 타자들이 점수를 내지 못하면 질 수밖에 없는 스포츠가 아니겠는가? 물론 반대로 생각하면 10점 20점을 내도 투수들이 못 지키면 지는게 야구다. 최강 화력이라고 일컬어지는 2010 시즌 롯데가 고작 4위인 것을 생각하자. 이후로 박석민, 최형우 등이 타선의 주축으로 자리잡으면서 좀 나아졌다. 하지만 류중일 감독의 삼성라이온즈가 이승엽, 배영섭, 정형식 외에는 선동렬 시절과 딱히 달라진 부분이 없는 타자라인업으로 2년 만에 공격야구의 팀으로 바뀐 것을 볼 때 결코 높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는 부분이다. 거기다 배영섭이승엽은 각각 2012년과 2013년에 커리어 로우를 찍었었다.

2.3. 사단 구축

선수 시절에는 야구계 내외적으로 호인이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코치와 감독직을 수행하면서부터 많이 까칠해졌다고 한다. 삼성 내에 자기 라인을 구축하려 한다는 음모론도 나올 정도. 삼성의 주요 코치진이었던 선동열-한대화-조계현 라인은 모두 해태 출신이고, 이 라인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삼성 출신인 양일환 투수코치가 내쳐졌다. 오히려 자신에 맞는 코치 라인을 이제야 완성시켰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여러모로 뒷말이 좋지 않았다. 2009 시즌이 끝난 이후 조계현을 내치고 한대화는 한화 감독으로 나갔으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셈이 되었지만. 임기 중 김현욱, 전병호, 김한수, 김재걸 등을 코치로 임용하면서 코칭스태프는 선동열 시절 인선된 코치들로 구성되었다.

2.4. 포스트시즌 운용

감독으로서의 그의 단기전 능력에 대해서도 논란거리가 많다. 코시 2연패를 달성한 감독[14] 중의 한 명이기에 단기전 능력이 나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그저 전력이 우세할 때만 이길 뿐 비등하거나 뒤질 때는 맥을 못추며, 특히 넘어간 흐름을 다시 잡아오는 능력이 형편없다는 평가 또한 있다. 이는 그의 장기전 능력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기는 경기를 잡는 데는 능하지만 지고 있는 경기는 거의 포기해 버린다는 것이다. 2009 시즌, 2010 시즌. 삼성은 5회까지 리드시엔 압도적인 승률을 보였지만, 그 승률의 이면에는 반대로 5회까지 못 이기고 있을 시 매우 낮은 승률이라는 그늘이 존재한다. 심지어 10시즌은 포스트시즌에서도 경기를 리드하지 못하면 그 경기를 포기했을 정도니...한 경기 한 경기가 페넌트레이스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중요함에도 경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다. 반면 삼성은 전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해도 준우승한 적이 부지기수니...단기전을 아예 못 한다고 보기도 뭐하다.[15] 애초에 "전력이 약한데 우승" "전력이 강한데 준우승"이란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전력이 곧 성적이고, 성적이 곧 전력이기 때문이다. 강한 녀석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긴 녀석이 강한거다...라고는 하지만 분명히 보유한 선수층의 뎁스라는건 존재한다. 2002년의 LG와 2006년의 현대가 아직도 용병술의 승리로 회자되는 이유는 명백히 얇은 선수층을 가지고도 파이팅과 적재적소에 터지는 작전으로 선두권 싸움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력이라는 개념은 이 용병술까지도 포괄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2.5. 최종 평가

이러한 점들 때문에 감독으로서의 선동렬은 그가 이룬 두 번의 우승이라는 결과물에 비해 삼성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삼성팬들 사이에서는 2번의 우승도 감독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라 전임 감독이었던 김응용의 유산 내지 선수들이 잘해서 그랬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뭐, 잘하면 선수탓 못하면 감독탓은 이 바닥의 영원한 떡밥이긴 하지만. 근데 김응룡이 만들어 놓은 타선이 폭발하고, 권오준-오승환으로 이어지는 KO펀치의 위력, 거기에 박진만, 심정수까지 빼와 주었는데[16] 우승 못하면 그게 감독인가?[17] 그리고 그 때도 2위팀과의 승차가 별로 크지 않았는데, 2004년까지는 삼성과 대등한 전력을 갖춘 팀이 현대 유니콘스 밖에 없었다. 2001년에 두산이 반짝 우승을 한걸 제외하고는 1998년부터 삼성과 현대가 우승과 준우승을 도맡아 했으며 2005년 시즌 전에도 다른팀에서 눈에 띄는 전력보강이나 신인수급이 없었는데도 가장 큰 라이벌인 현대의 주전력을 빼오고도 2등과 큰 차이가 없는 아슬아슬한 패넌트레이스 우승했다는 부분은 실드가 전혀 불가능하다. 거기에 덧붙히자면 키운 선수보다 부상시킨 선수가 더 많다.[18]

실제로 팬들마다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감독. 삼성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라고 부르는 팬들도 많지만, 인간적인 평판은 둘째치고서라도 그 능력 자체는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위장삼성팬들도 많다.[19]

3. 선수기용 논란

선동열의 선수 기용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일고 있다. 물론 어느 감독이나 총애하는 선수가 있고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기는 선수가 있지만 선동열은 그 정도가 심하다는게 대부분.

대체로 그가 아끼는 선수와 아끼지 않는 선수는 크게 그가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부터 잘했던 팀 프랜차이즈 선수와 그가 부임한 뒤부터 잘했든가, 그전부터 잘하긴 했지만 원래 삼성 선수가 아닌 경우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좋은 대접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후자는 총애하는 경우가 많다. 전자에는 박한이, 양준혁 등이 있으며, 후자에는 박진만, 신명철, 강봉규, 최형우, 박석민 등이 있다. 진갑용은 앞의 조건은 충족하지만 OB에서 건너온 이적생.

삼성 라이온즈의 대표 타자이자 국민타자인 이승엽 역시 "우리 팀 온다 해도 뛸 자리 없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당연히 채태인, 최형우, 박석민의 클린업이 삽질을 하면 할 수록 더욱 더 욕을 먹는다. 그리고 2011 시즌, 삼성의 1루수 3명(채태인, 모상기, 조영훈) 세 명의 홈런개수를 모두 합한 것 = 2011 시즌 이승엽의 일본리그 홈런 개수라는 충공깽스러운 기록 달성. 당연히 선동렬은 미친듯이 까였다.

다만 투수의 경우에는 그가 투수코치 시절부터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차별이 거의 없다. 다만 한국시리즈에서 배영수의 팔굼치가 이상 증세를 보임에도 팀의 우승을 위하여 재활의 나락에 빠질 때 까지 쓴걸로 봐서는 실제로 선수를 배려하는지는 의문이다. 또 대놓고 홀대한 선수가 한 명 있는데 바로 임창용. 해태시절 차기 마무리를 꼽는 과정에서 모두가 임창용을 골랐지만 선동열은 김정수를 지목하는 등, 해태 시절부터 사이가 안 좋았고, 그 이후 삼성에서 뛸 때야 뭐 성적이 시망. 악연은 임창용이 삼성을 떠난 뒤까지 이어져,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전 당시 임창용의 스즈키 이치로에 대한 정면 승부건에 대해 김응용과 함께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선동열과 임창용을 엮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애초에 선동열의 재임기간 내내 임창용은 그야말로 망했어요였기 때문이다. 2005년 선동열이 부임할 당시 FA 계약을 체결했다가 갑자기 취소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팀 분위기를 박살내버렸고, 사장으로 막 취임한 임창용의 은사 김응용은 격분, 임창용이 당장 복귀하지 않으면 임의탈퇴시키겠다고 길길이 뛰었다. 결국 임창용이 백기투항하면서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이후 3년간 임창용의 성적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방어율이 2005년 6.50, 2006년 4.50, 2007년 4.90[20] 이 정도 성적이면 감독과 사이가 좋건 말건 써먹을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2007년의 저 성적은 임창용의 태업이라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뭐, 정말 태업했다면 그게 더 문제지만.

게다가 임창용은 고마웠던 사람 세 명으로 가족, 김성근, 선동열을 꼽았지만 선동열에 대해서는 은인이라는 뜻이 아닌, 자신의 야구 인생에 변화를 준 사람으로 말했다. 근데 링크한 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질문 내용도 은인이 아니라 질문 내용도 "야구선수 임창용을 만든 세 사람"이며, 선동열 감독에게 뭔가 직접적인 도움을 받았다기 보다는 그의 채찍질까댐이 재활에 도움됐다는 이야기다. 선감독은 임창용에게 제구와 변화구를 주문했지만, 그는 직구와 구위 회복에 더 매달렸다고.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파워 피처에서 피네스 피처로 변화를 강요하는 감독을 엿먹이기 위해 재활에 매달렸다고 볼 수 있겠다.

관련 이야기는 임창용이 삼성 복귀한 뒤 마해영과의 인터뷰에서 좀 더 명확하게 밝혀진다. 자신에게 자극을 준 사람으로 이야기하며 코치시절(2004)과 감독시절(2005 이후)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에 대해서 대놓고 말하는 걸 보면 위에서 말한 별 의미가 없다는게 의미가 없는거 같진 않아보인다. 단적으로 선동열이 여전히 삼성감독이던 2010년즈음에는 기아가고싶다고 했다가 선동열이 기아가고난이후에는 자신은 어쨋든 삼성선수라는 인터뷰만 봐도...

3.1. 양준혁 은퇴 관련

2010년에 삼성의 프랜차이즈 선수이자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양준혁의 기용문제 및 그의 은퇴와 관련하여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이미 2009 시즌 부터 양준혁이 2008 시즌의 부진을 뛰어 넘는 활약을 보여주었음에도 무참히 플래툰으로 돌려버려 총 82경기에 밖에 못 나오게 하여 은퇴의 포석을 깔았다는 비판이 있다. 82경기에 나온 양준혁의 성적은 안타82, 타점48, 타율.329, 출루율.464 장타율 .526 이었다. 후반기에는 부상이 있었다고는 하나, 정말 잘 나가던 전반기에서조차 플래툰으로 돌려버렸다.

2010년 시즌 들어선 아예 대타요원으로 돌려버렸고 결국 한국 프로야구계의 타격관련 대다수의 통산 기록 보유자였던 양준혁은 은퇴를 선언할 수 밖에 없었다. 양준혁이나, 다른 팀 감독들, 동료 선수들의 인터뷰를 볼 때, 기량으로 봐서는 절대 은퇴할 상황이 아니었다. 특히 1위팀인 SK 김성근 감독은 양준혁에게 왜 SK에 오지 않고 은퇴하느냐라고까지 하였다.

물론 2010년 시즌 초반에는 양준혁에게 얼마간의 기회가 간 것은 사실이고, 그 때 양준혁의 성적이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땐 계속 선발로 보내더니, 타격 타이밍을 잡아가고 4월부터 맹타를 휘두르며 성적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대타요원으로 돌려버린 것이 문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양준혁은 5월 말까지 주전으로 뛰었고, 아예 대타로 내려간 것은 6월부터다.[21]

양준혁이 2010년에 기록은 타율 .252/ 출루율 .387/ 장타율 .319로 그로서는 안 좋은 기록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장타율 .319은 심각했다. 허나 양준혁의 BABIP는 통산기록에 한참 뒤떨어진 수준이었으며(= 타구의 운이 없었으며)[22] 노장선수의 건재함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인 출루율은 3할8푼 이상으로 타율보다 1할3푼 가량이나 높았다. 당시 삼성 선수들 가운데 양준혁보다 출루율이 높은 선수는 박한이, 박석민 둘 뿐. 한 마디로 장타력을 제외한 양준혁의 기량은 살아있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특히나 전해 OPS 1.0에 가까운 타자는 리바운드만 한다면, 리그에서 5손가락 안에 드는 생산력을 발휘한다는 이야기지만 불과 2개월도 지켜보지 않고, 무엇보다 맹타를 휘두르기 시작할 무렵에 주전에서 제외한 것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따라서 팀 승리를 추구하고 전력을 극대화 해야 하는 감독이 은퇴를 종용한 것은 비상식적인 행위임에 틀림없다. (특히 양준혁을 은퇴 시키고, 그자리에 고용한 강봉규의 2010년 기록을 보면.. 이게 무슨 미친짓이냐 싶다.)

마찬가지로 또다른 프랜차이즈 스타인 박한이의 경우에도 2009 시즌 후반기부터 이어진 맹활약에도 FA 계약부터해서 2010 시즌 구상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팀의 주력으로 쓰지 않을 것 처럼 이야기하며 홀대하다가, 박한이가 2010 시즌 매우 뛰어난 활약을 보이자 어쩔 수 없이(?) 주전으로 계속 쓰는 모양새를 보여 삼성팬들에게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

반면에 강봉규, 최형우와 같은 선수들은 부진할 때도 계속해서 많은 기회를 주었기에 논란을 더욱 증폭시켰다. 최형우의 경우에는 차세대 4번타자를 육성한다는 의미라도 있었으나, 강봉규의 경우엔 젊은 나이도 아니었기에 특히나 많은 비판을 받았다.

결국 2010년 7월 양준혁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강제은퇴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이른바 "선졸렬"이라 불리며 줄기차게 까이는 중. 올드팬들이 많은 엠엘비파크 등에서는 反선동열 움직임이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원래 엠엘비파크는 친 선동열 측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 건이 터진 순간 선동열은 동네북이 되었으니 이 건의 파장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2010년 9월 19일 양준혁 은퇴 경기 후 감독의 코멘트는 다음과 같다.

"이런 은퇴식(경기)은 복 받은 거다. 나도 일본에서 은퇴경기를 했지만 이렇게 화려하게 선수생활의 끝을 마무리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 부럽다. 양준혁은 아주 열심히 했고 볼을 잘 맞혔던 선수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프로선수로서 자기 할 일을 다 했던 선수로 기억될 거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고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한국 프로야구의 타자 관련 대부분의 통산 기록을 갈아치운 그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영욕의 세월과 그에 대한 투쟁을 고작 방망이질이나 잘 했던 선수라고 뭉뚱그려버리는 만행이라 해석할 수 있겠으나 그러한 코멘트의 뉘앙스에 대해선 각자 판단하길 바란다.

2007년에 양준혁이 2000안타 달성했을 때 응했던 감독 인터뷰와 비교하면 정말 애매한 답변이다. 게다가 당시 축하해주던 선동열의 표정도 2010년 올스타전에 비하면 정말 해맑다 [23]

2011년 시즌 초에 유행했던 류중일 감독의 부도수표 '나믿가믿' 발언 뒤에 양준혁은 "나도 믿어주는 감독님 밑에서 야구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3.2. 외국인 선수 기용 관련

2008년 5월, 제이콥 크루즈가 방출되면서 박동희가 올린 기사 중 선동열 감독 부임 후 외국인 선수들이 성적에 대한 중압감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려 불만이 심했다고 언급되었다. 팀 하리칼라는 삼성을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언급했고, 제이미 브라운은 삼성 시절 하루하루가 악몽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둘 다 당시 팀내에서 1, 2선발을 맡아 하리칼라는 2006년 팀내 다승 1위였고 브라운은 2007년 팀내 다승 1위를 했음에도 선동열은 둘에게 더 뛰어난 성적을 요구했었다. 게다가 선동열은 하리칼라와 브라운을 5이닝에서 길게는 6이닝만 던지게 하고 교체시켰으면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선수 요청이나 선수 능력 부족 등으로 교체했다고 말하는 등, 외국인 선수들이 자신의 기대만큼 성적을 못 올린다고 평가절하 하기도 했다.

이렇게 외국인 선수들에게 성적에 대한 중압감을 안기는 선동열의 방식은 에이전트들을 통해 다른 외국인 선수들에게까지 퍼지면서 삼성은 한동안 외국인 선수들이 가장 기피하는 팀이 되었다. 그리고 2008년에는 삼성 외국인 선수들은 그야말로 최악을 달렸다. 부진한 제이콥 크루즈 대신 데려온 톰 션은 실제로는 메이저리그 등판 경력이 7경기 뿐인 만년 마이너리거였고, 웨스 오버뮬러와 톰 션을 방출하고 데려온 존 에니스는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강판되면서 그동안 기용법에 대해 쌓인 불만이 터져 중도 귀국했다#.

최악을 겪은 2008년 이후로는 삼성의 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고 선동열도 외국인 선수들에 대해 부드럽게 대하면서 외국인 선수들의 불만이 대외적으로 표출된 적은 없었다.

4. 사임

2010년 12월 30일 갑작스럽게 감독직에서 용퇴, 후임으로 류중일 작전코치가 내정되었다.

삼성 단장은 본인이 용퇴를 말하고 후임으로 젊은 류중일 코치를 추천했다고 말했지만 이는 언플일 뿐이다. 왜냐면 선동열은 1963년 1월 10일생, 류중일은 1963년 4월 28일생. 류중일이 딱 108일 젊다. 또한 류중일 코치를 2군으로 쫓아 보낸 적도 있던게 선동열이였으니. 결국 5위를 하여 12년 연속 가을잔치가 끊어진 2009 시즌중에 5년 재계약을 했고, 얼마전까지 외국인 투수 선발에 참여했던 걸 생각하면 사실상 해고다. 서울 삼성생명 본사에 호출해서 가봤더니 구단주-단장-사장이 참석해서 퇴진을 통보했다고 하니. 구단 운영위원이란 자리를 준다곤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자리. 은사인 김응용 사장이 전격은퇴하고[24] 김응룡, 선동열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김재하 단장이 교체되는 등 그룹 인사 개편의 영향으로 보인다. 정작 자신은 짤릴 거란 사실을 몰랐다고 하는데 용퇴 발표 하루 전날에 선수들에게 발표할 신년사를 작성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로 보면 그런 듯하다.

소문으로는 삼성그룹 수뇌부가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SK에게 4전 전패 광탈, 그것도 4차전을 보고서 격분했고 그것이 용퇴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25] 한편으론 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이재용이 삼성전자 사장으로 올라온 것이 야구단에게까지 영향이 미쳤다는 견해도 있다. 이 무렵 삼성그룹에서는 오랫동안 이건희 회장 밑에서 2인자 역할을 하였던 이학수를 모두로 하는 친 이건희 그룹이 대거 은퇴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는데, 대체로 언론에선 후계자 이재용을 위해서 이건희 회장이 껄끄러운 인사들을 모두 정리하고 이재용 친위 체제를 구축해 준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김용철 변호사가 언급한 인물들은 이 시기 다 물러났다고 보면 된다. 아무튼 이학수에게 김응용은 부산상고 선배, 선동열은 고려대 후배, 김재하는 제일모직에서 함께 일한 관계다.[26]

5.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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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요약 jpg[27]

평가야 어쨌건 2회 우승의 성적이 무색하지는 않았는지, 선감독이 FA로 풀린 후 당장 다른 팀들에서도 선감독 영입을 놓고 신경전을 벌일 기미가 보이기도 했다. 서울 팀들과 고향 팀이라고 할수 있는 KIA 타이거즈, 창원에 신설될 예정인 NC소프트의 제9구단 중 한 팀이 선감독이 커리어를 이어나갈 팀들로 거론되었다고 한다. 두산과 LG는 2011년 10월 기준으로 신임 감독을 정하였다.

야구계에서는 실적과 명망이 있었고, 4년의 임기가 남아있던 선동열 감독이 이렇게 잘려나간 것에 대해 경악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선감독이 이렇게 잘릴 정도면 우승 감독인 김성근 감독 정도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구단 맘대로 쳐낼 수 있다는 거라...라고 여겼으나 2011년 김성근 감독이 경질되어 4년간 세번 우승시키고도 잘릴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짤린 건 재미없는 야구를 했기 때문이라고. 데자뷰

구단에서 경질한 것이 아니라 용퇴한 것이기 때문에 남은 계약기간의 금액도 받을 수 없다. 단, 관례상 챙겨주기는 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감독 사퇴후에 선수단 운영위원이란 직함을 부여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는 일 없는 그냥 명예직으로 잔여연봉을 챙겨주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2011년말 기아 감독 선임시에 나온 기사에 따르면 연봉 3억 8천을 그동안 월급형식으로 지급해왔다고 한다. 기아 감독 선임으로 이제 운영위원 자리는 계약해지 예정.

왠지 2002년 LG 트윈스의 재림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2011 시즌 삼성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일단 그 의견은 틀렸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을 두둔하는 삼성 팬은 전혀 없다. 원래부터 선동열은 삼성 팬덤 내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감독이었고, 양준혁 은퇴와 박한이 기용 문제로 그나마 남은 선감독 지지파도 온라인에서 잠수탔기 때문에[28] 선 감독 용퇴를 공개적으로 걱정하는 의견은 이대호 도루, 이대형 홈런만큼이나 보기 힘들 정도. 대충 "조금 불안하기는 한데 일단 부왘을 울려라" 정도의 분위기. 침소봉대하기로 유명한 한국 언론에서조차 선감독 퇴진에 팬들이 반발했다는 기사는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다. 선동렬 감독시절에 유입된 신규팬들은 반발했지만 순식간에 묻혀버렸다.

오히려 현장 관계자, 기자, 타팀 팬들이 대동단결, 준우승 감독을 자르다니 미쳤나며 신나게 삼성을 까고 있는 중(...). 사실 현장 관계자들, 특히 감독들은 이런 반발이 나올 수 밖에 없는게 결국 자신들도 언제 퇴진을 강요당할지 모르는 선례가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는 아무리 잘나가는 한국 프로야구의 감독이라도 이런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위협의 유일한 예외로 평가받던 감독이 있었으나, 그 김성근이 2011년 8월 SK에서 짤리면서 만고불변의 법칙이 되어버렸다.(...) 사실 김성근은 이전에 이미 2002 트윈스에서 짤린 적이 있었기에 전부터 예외 따윈 없었다.

여담으로 2012년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이길 때마다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선동열이 전 소속팀에게 승리를 헌납한다는 뜻에서 푸른 피의 멍게(줄여서 푸피멍)라는 드립을 친다. 덤으로 류중일 감독 체제에서 우승까지 하게 되면서 선동열 감독은 라이온즈의 흑역사라는 식으로 멍게강점기라고 부르는 중.

6. 고향 팀으로

KIA 타이거즈 팬들이 선동열 전 삼성감독의 KIA 감독 영입을 가장 간절이 원하는 분위기였다. 지역주의 의식이라면 삼성 못지않게 강한 광주 연고의 팀이라 대구 출신 조범현감독보다 프랜차이즈 스타 선동열이 더 매력적인 것이 당연하다. 2010 시즌 기록적인 연패와 부진으로 2011 시즌에 결과가 안 좋을경우 가장 경질될 가능성이 높은 감독 1순위로 조범현이 꼽힐 정도다. 그리고 기아는 2011년 페넌트레이스를 4위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2011년 10월 18일, KIA 팬들이 원하던 대로 선동열 감독은 KIA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감독들의 행보를 살펴보면, 일단 김성근 감독은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김경문 감독은 사퇴한 후 NC 다이노스로 직을 옮겼다. LG는 박종훈 감독이 사퇴하자 김기태 수석코치를 감독으로 올렸고, 두산도 1군 투수코치 김진욱을 감독으로 올렸다. SK는 뻔한 계획대로 이만수를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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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류중일이 삼성감독이 된 이후 삼성팬들은 선동렬의 감독시절을 흑역사 취급한다.
  • [2] 그분(...)과 선동열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감독 생활 중에 처음 감독을 맡았던 팀에서 몇 차례의 포스트 시즌 진출과 우승을 거두었던 바 있다. 물론 둘 다 팀을 옮기고 나서는...
  • [3] 하지만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3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한 류중일에게 완전히 묻혀버렸다... 게다가 선동열은 이 시기에 타어강 발동...
  • [4] 2015년 현재 한화 이글스의 유입팬들 중 상당수가 SK시절 김성근 감독 개인의 팬인 것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 [5] 선동열 감독이 퇴임한 이후로도 꾸준히 선동열 쉴드글이 올라왔으나, 이종범 은퇴와 선동열호 기아의 부진으로 자팀팬에게도 외면 받으면서, 오히려 선동열호 삼성 시절에 대해서 태클을 거는 삼성팬(?)들은 거의 종적을 감쳤다.
  • [6] 단, 오승환은 스카우트 당시 선동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카우트진의 판단으로 뽑았으며, 데뷔와 동시에 놀라운 활약을 보였기 때문에 선동열이 키웠다고 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 [7] 이는 아직도 사실로 믿는 사람이 많다. 권오준이 불펜으로 전향하기 전인 2003년에는 153⅓이닝을 소화했는데, 실제로 혈행장애가 있었다면 이만큼 많은 이닝을 소화할 수가 없다.
  • [8] 2007년 권혁의 9이닝당 탈삼진 수는 11.64개로 엄청난 구위를 자랑했었다. 게다가 이때 권혁은 등판하면 거의 1이닝 이상씩 던졌는데, 결국 부상으로 8월달에 3주 가량을 쉬었다.
  • [9] 다만 안지만의 경우엔 2007년에 5이닝 동안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교체된 적이 있었다.
  • [10] 보통 일본 야구계나 이에 영향을 받은 지도자들이 동의하는 편이며,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논란이 있다. 이와 반대되는 지론이 "투수의 어깨나 팔은 지우개같은 소모품이다".
  • [11] 일본이나 미국 투수들은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미리 몸을 만들어놓아 스프링캠프에서 많은 공을 던져도 무리가 없는 반면, 한국은 중-고교 야구시절부터 성적에 매달려 몸을 만들 시간도 제대로 가지지 못하고 혹사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국내 투수들은 피지컬에 비해 근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많다.
  • [12] 실제로 2004년 삼성 스프링캠프에서 3000투구 훈련을 소화한 15명의 투수들은 이후 많은 후유증을 겪었는데, 아무래도 체계적으로 몸을 만들지 않고 무작정 공을 던지기만 하다보니 애초에 의도했던 근력 강화와 투구기술 제고는커녕 부상에 시달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 대부분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거나 타팀으로 트레이드되었고, 결국 수술대에 오른 선수도 3명이나 된다.
  • [13] 실제로 이 기간 동안 선동렬 감독이 밀어준 타자들은 1군에서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하고 실망스런 성적을 뒤로 한 채 쫓겨났다.
  • [14] 먼저 달성한 순서대로 김응룡, 김재박, 선동열, 김성근, 류중일.
  • [15] 허나 이것도 선동열이 삼성에 있었기에 이런 말이 나오지, 해태나 현대에 있었다면 단기전에서의 그에 대한 평가는 훨씬 박해졌을 것이다.
  • [16] 이때 김재박 감독은 "돈으로 선수 사모으면 우승 못할 팀이 어딨냐"며 비판했다.
  • [17] 이 당시의 박진만과 심정수는 2015년 현재 강정호와 박병호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안그래도 전력이 상위권인 삼성에서 코시2위팀 넥센의 핵심선수인 강정호 박병호를 돈으로 사왔는데 우승못하면 그건 감독깜냥도 없는 사람이다. 더군다나 이 경우는 삼성의 전력만 강해진 것이 아니라 삼성의 가장 유력한 대항마 팀의 전력약세도 포함되니 더더욱 우승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 [18] 4월 한 달 미친 듯이 굴려대다가 부상으로 커리어 아웃된 권오원, 토미존 3회에 빛나는 권오준, 마찬가지로 화려한 수술 경력을 자랑하는 권혁 등이 있다. 오승환도 신인시즌에 미친듯이 굴리다가 뒤늦게서야 마무리로 정착시키며 관리를 시작한거다. 이미 대학교때 팔꿈치 수술을 한 선수를 99이닝이나 굴려대며 망가뜨렸으니 뒤늦게 관리한다고 나아질리는 없었고 결국 이는 2009년 시즌 아웃으로 이어진다.
  • [19] 다만 팀 프랜차이즈 출신인 류중일 감독이 4년 연속 통합 우승이라는 아주 좋은 성적을 내면서 삼성 팬덤 내부에서는 선동열 감독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사실상 조롱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되었다.
  • [20] 게다가 2006년은 고작 2이닝 던졌다.
  • [21] 양준혁은 4월에 18경기 54타석, 5월에 18경기 58타석에 나섰다. 그리고 5월 기록은 타율 .217/ 출루율 0.379/ 장타율 0.239 /OPS 0.618. 라이언 가코의 2011년 타율과 OPS가 더 높다 차라리 부진하기를 기다려 냉큼 뺐다고 하면 모를까 잘하니까 일부러 뺐다기에는 어폐가 있다. 관련글 링크
  • [22] 타자의 BABIP은 투수의 BABIP과는 달리 타자의 기량에 탄력적으로 반응하는 편이다. 더군다나 양준혁과 같이 라인드라이브 히터의 경우에는 이러한 낙폭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편. 좀 더 정확히는 라인드라이브 타구의 비율을 살펴봐야 단정지어 말할 수 있는 문제다. 다만 타자의 라인드라이브 비율을 제공해주던 스탯티즈가 닫혔기 때문에... 물론 간접적으로 추론하자면 장타율의 급감을 라인드라이브 비율의 급감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는 있다. 본 각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BABIP 항목 참조.
  • [23] 당시 인터뷰: 부상없이 자기 몸관리에 철두철미했기 때문에 이런 대기록을 세우지 않았나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프로야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뭔가 심플해보이긴 하지만 2010년과 비교한다면야
  • [24] 이것도 사실상 경질로 보는 시각이 많다.
  • [25] 한국시리즈 졸전이 감독 교체의 이유라면 한국시리즈 직후에 바꿨어야 하는데 거의 두달이 흐른뒤에 교체되었다. 실상은 이승엽 와도 자리없다 발언으로 이승엽빠돌이인 이재용 부회장의 심기를 건드려서 짤린거다.
  • [26] 김응용 영입을 추진했던 것도 이학수로 알려져 있으며, 김재하는 제일모직 경리과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학수의 직계 후임이다.
  • [27] 물론 첫 두해동안 우승했지만 남은 해에는 선두경쟁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우승하던 해에도 딱히 리그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던지라...
  • [28] 양준혁 은퇴 당시에는 선동열을 까지 않으면 해태팬 취급당할 정도로 살기등등한 분위기였다. 아니 실제로도 이때 삼성팬을 위장한 해태-기아팬들이 가장 많이 까발려졌던 때이기도 했다. 조금 부연설명을 하자면, 사실 2010년은 어지간한 선까들도 어라?라는 반응을 보일만큼 이전의 운영과는 확연히 (긍정적인 방향으로)차별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때문에 삼성 팬덤도 점점 호의적인 반응으로 변해가던게 2010년이었다. 그러나 양준혁 은퇴 단 한방으로 이 모든것은 핫케익보다도 더 쉽게 뒤집혀버렸고, 이후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경기를 포기하는 모습으로 선동열 지지는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