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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영등포

last modified: 2015-04-09 22:30:53 Contributors

서울특별시의 지역 구분
강북 영등포 강남
강서 강동 영동

서울특별시한강 이남 지역 중 영등포구와 과거 영등포구에 속했던 7개 자치구(강서구, 양천구, 구로구, 금천구, 동작구, 관악구, 서초구)를 이르는 총칭. 관련 항목은 대한민국/지명.

Contents

1. 개요
2. 다양한 의미의 영등포
3. 산업과 시설, 교통
4. 영등포 권역에 있는 서울특별시 8개 자치구의 일람
5. 네임드 동네
6. 관련 항목

1. 개요

'강서'라고도 불리며[1], 서울시내 교통의 최요충지이다. 경부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경부선, 경인선, 경인고속도로, 김포국제공항,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등이 모두 이 지역에 있다. 교통의 요충지로서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되었다. 다만 과거에 만들어진 만큼 지금의 엄청난 인구밀도와 교통량을 감당하지 못해 등포라는 불명예로운 별칭을 얻기도.(...)

'영등포'란 지명의 유래에는 정설이 없지만, 다음과 같은 설이 유력하다. 무속 신앙으로 음력 2월 초하루를 영등날이라 하여 무당이 보름동안 영등굿을 했는데, 지금의 영등포구 신길동 50번지 일대 방아곶이 나루터부근에 성황당이 있었고 이 곳에서 영등굿을 하였기 때문에 영등포라는 명칭이 나왔다고 한다.

서울이 확장되기 이전에는 경기도 시흥군(현 시흥시)[2]과 부천군(현 부천시)[3], 김포군(현 김포시)[4]에 포함된 지역으로, 일찍이 일제강점기 때부터 한강 이남 지역 중 가장 먼저 서울에 편입되기 시작하여 현재의 지역이 완성되었다.

한강 이남 지역 중에 가장 먼저 서울로 편입된 곳이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는 서울과 구분하려는 독자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서울의 팽창으로 그 이후로는 영등포 권역 출신자들은 영등포를 그냥 서울의 일부로 생각할 정도로 영등포는 서울에 완전 융화되었다. 이는 생활권, 정서상으로 지금도 인천에 완전히 융화되지 못한 인천광역시의 부평권과 다른 케이스.

2. 다양한 의미의 영등포

좁은 의미로는 안양천 이동(以東)~동작대로 이서(以西) 지역, 또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의 시흥군(금천현) 지역[5]을 가리키기도 하며, 이 경우 안양천 이서의 강서구, 양천구, (구로구 서부)만 '강서'로 불리기도 한다. 간혹 동일 생활권이자 옛 금천현의 일부였던 경기도 광명시도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6] 이와 비슷한 식으로 서울/강남의 범주에 과천시성남시 분당구가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따진다면 고려시대 금주 → 조선시대 금천/시흥 → 일제강점기 이후 영등포로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더 좁은 의미로는 영등포구 또는 '영등포역 주변 일대'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특히 후자는 많이 쓰이는 용법이다. (예: "영등포는 항상 교통이 헬이야." → 영등포역 주변은 항상 도로 정체야.) 넓은 범주에서의 영등포(가령 서울을 강북, 영등포, 강남으로 3등분 한다든지)와 다르게 좁은 범주에서의 '영등포'라 하면 사람들은 보통 영등포역 일대를 연상한다.

이렇게 영등포의 다양한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영등포역 및 그 주변.(가장 좁은 의미) 영등포역 상권과의 동의어로 봐도 무관하다.
2. 영등포동 일대.
3. 영등포동 + 양평동 + 문래동 + 당산동 일대. 이들 지역은 일제시대부터 시가지화 되어온 곳이다. 여기에 신길동이 추가될 수도 있다.
4. 영등포구여의도를 제외한 지역.[7]
5. 영등포역 주변과 여의도
6. 여의도까지 포함한 영등포구 전역.
7. 1936년 경성부로 편입된 한강 이남 지역. 영등포구(대림동 제외)와 동작구(신대방동, 사당동 제외) 일대.
8. 6에 1949년에 서울시로 편입된 신도림동, 대림동, 신대방동, 구로동 추가. 영등포로서의 독자적인 지역정체감을 가졌던 지역의 최대 범위가 이쪽이다.[8][9]
9. 안양천 이동~동작대로 이서 전역(영등포구, 구로구 동부, 금천구, 동작구, 관악구).
10. 9에서 안양천 이서(강서구, 양천구, 구로구 서부, 추가로 동일생활권광명시도 포함시킬 수도 있다.)를 포함한 영역. 서울특별시를 강북, 강남, 영등포 등 3권역으로 구분할 때[10] 쓰이는 영등포의 가장 일반적인 범위.
11. 10에서 서초구(단, 염곡동, 내곡동, 신원동은 제외하기도 한다.)까지 포함한 영역.(가장 넓은 의미이자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영등포의 범위.)

3. 산업과 시설, 교통

1970~1980년대에 만들어진 서울 최후의 공업 지대인 구로공단(현 구로디지털단지, 가산디지털단지)과 여러 경공업체 공장들이 버티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동쪽의 강남보다도 (현대적인) 발전이 늦었다.

목동, 여의도, 서울대학교, 대법원 등이 이 권역에 있다. 1970년대까지 김포공항에서 양재역에 이르는 서울 서남부의 광활한 영역이 모두 영등포구 관할이었으나, 인구 증가와 지속적인 개발로 분구가 계속 이루어져 현재는 8개 자치구로 나뉘어 있다.
(1973년 방배동 동쪽 지역(현 서초구)을 강남구로 이관→1973년 시흥대로여의대방로(당시 명칭 대방로) 이동 지역을 관악구로 분리→1977년 안양천 이서 지역을 강서구로 분리→1980년 도림천 이서 지역을 구로구로 분리. 이후 관악구는 1980년 동작구 분리 및 방배동을 강남구로 이관, 강남구는 1988년 서초구 분리, 구로구는 1995년 금천구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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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1963년~1972년까지의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상황. 영등포구성동구가 정말 크고 아름답다.[11]

참고로 영등포는 산 구경하기 힘든 드넓은 평야지대인 서부와, 산투성이(...)인 동부로 나뉜다. 안양천을 기준으로 서부와 중부를 다시 구분하기도 한다.

이렇다 할 부촌[12]이나 문화 시설 등이 다른 지역보다 많지 않다는 게 지역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하며, 오세훈 시장 당시 '서남권 르네상스'를 발표하기도 했다.

4. 영등포 권역에 있는 서울특별시 8개 자치구의 일람


5. 네임드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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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서울의 경우 '강서'라는 단어는 강서구+양천구 일대를 가리키는 뉘앙스가 강하다.
  • [2] 1914년 이후 통합 시흥군 기준. 1914년 이전에는 시흥군+과천군.
  • [3] 1914년 기준으로 구로구 서부 및 강서구 일부 지역. 1914년 이전에는 부평군 지역.
  • [4] 1914년 기준으로 현 강서구, 양천구 일대. 1914년 이전에는 양천군 지역.
  • [5] 동작구 노량진동~관악구 남현동부터 강남대로에 이르는 지역까지는 1914년 이전까지 과천군 지역이었다.
  • [6] 만일 광명시가 서울로 편입하게 되면 '서울특별시 광명구' 또한 '영등포'의 범위에 들어간다. 어차피 생활권부터 그쪽이어서... 광명이 서울로 편입되면 성인이 된 막내가 뒤늦게 서울이라는 족보에 편입하는 셈 사실 행정구역만 다르지(즉, 1963년 서울 대확장때 서울에 편입되지 못했을 뿐이지), 역사, 문화, 생활권 측면에서 서울 영등포권과 뿌리가 같다. 그리고 광명시 중 철산동, 광명동, 하안동이 과거 서울시 도시계획구역에 포함되었으며 장기적인 편입 예정지이기도 했다. 1979년 영등포구 분구안에 지금의 철산동, 광명동을 서울로 편입시키는 안이 고려되기도 했었다.
  • [7] 실제로 여의도에서 '영등포'라 하면 '샛강 너머 있는 동네(또는 영등포역 일대)'라는 인식이 강하다. 여의도 자체가 영등포구 관할인데도.
  • [8] 영등포구에 속했던 지역 중 1963년에 서울로 편입된 지역들(강서구, 양천구, 금천구 등)은 영등포로서의 독자적인 정서를 가졌던 곳이라고 보기 힘들고, 서울과 관련된 지역정체성은 여타 1963년 서울 신규편입지와 비슷하다.
  • [9] 다만 여기서 말하는 '영등포'로서의 정체감이라는 것은 오리지널 옛 시흥군의 지역정체성과 별 관련 없이, 일제에 의해 조성된 공업도시로서의 영등포를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영등포'으로서의 지역정체감과 오리지널 옛 시흥군으로서의 지역정체성은 그 범위와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참고로 오리지널 옛 시흥군으로서의 지역정체성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 지역적 범위는 지금의 경기도 광명시 일대까지 포함한다.
  • [10] 이 경우에는 광명시가 포함되는 경우는 없다. 행정구역을 넘어서서 실질적인 생활권역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 [11] 당시에는 현재 강남대로를 기준으로 영등포구와 성동구가 갈렸으나. 현재 영등포구청 - 성동구청간 거리는 17km으로 꽤 떨어져 있다.
  • [12] 그나마 여의도목동, 서초구(특히 반포동, 잠원동 일대) 정도가 있다.
  • [13] 버스 권역 기준 6권역.
  • [14] 버스 권역 기준 5권역(단, 서초구는 4권역.).
  • [15] 사실 역사적으로 서초구 중 내곡동, 신원동, 염곡동 일대를 제외한 전역은 영등포권이었다. 이 지역은 1914년 당시 기준으로 시흥군 영역이며, 더 이전에는 과천군 영역이었다. 당연히 서초구 일대는 1963년 서울에 편입될 때에도 성동구(현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에 해당되는 광주군 일부를 편입)가 아닌 영등포구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영등포구가 현 서초구 영역을 성동구에 넘겨준 것이 1973년이다. 즉 서초구와 강남구는 1973년 이전까지 지리, 역사, 문화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즉 서로 남남이나 다름없는 지역이었다.
  • [16] 애초에 강남구가 속했던 광주는 수도권 남동부 내륙, 서초구가 속했던 시흥은 수도권 남서부 해안 지역으로 서로 완전히 상반된 특성을 지닌 곳들임은 물론이고 이질감도 꽤나 크다. 이렇게 서로 다른 지역이었던 곳들을 하나로 묶어서 취급하는 것은 어찌 보면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 [17] 다만 지리적으로는 시흥군 신동면(구한말까지 과천현 동면, 상북면)과 광주군 언주면 사이에 큰 강이나 산맥과 같은 지리적인 장애물이 없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때 언주면을 신동면에 통폐합하는 문제를 두고 주민 소집 회의가 실시된 적이 있었다.# 생활권 측면에서는 서로 상관없는 동네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현대에는 강남 개발 사업을 통해 완벽한 동일 생활권이 되었긴 하나 중간에 산으로 가로막혀 있어 방배동(특히 이수역,사당역 인근)과 서초구 타 지역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다. 해당 지역은 강남 3구가 8학군일 시절 동작구와 함께 9학군인 시절도 있었다. 또한 서초구가 영등포구 소속이었던 흔적은 서울시의 하수처리장 관할구역에도 남아있다. 서초구 대부분의 지역은 강남권인 탄천하수처리장이 아닌, 영등포권인 가양하수처리장(서남물재생센터)이 관할하고 있다.
  • [18] 고려때까지만 해도 줄곧 지금의 영등포권과 마찬가지로 잉벌노-곡양-금주현 소속이었으나, 조선 건국으로 한성부 성저십리에 편입되었다. 1914년 고양군 용강면에 편제되었다가 1936년 경성부 편입 이후 영등포구에 편제되면서 원래대로 환원되었다고 볼 수 있다.
  • [19] 이쪽은 대부분 지역이 강남구 소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초구 내 타 지역보다 영등포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주로 빌라와 다가구 주택 위주의 서민층 지역인데다 과천과 맞닿아 있기 때문인듯.
  • [20] 위의 서초구 각주에도 설명되어 있듯이 지리, 역사, 문화적으로는 영등포에 속하지만, 지금은 거의 확실히 강남으로 취급되는 곳이다.
  • [21] 지리적인 이유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광명시다. 그래도 생활권은 같으니 취소선 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