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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청

last modified: 2015-04-09 20:54:24 Contributors

서울特別市廳 / Seoul City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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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건물은 2012년 1926년에 지어진[1] 구청사(현 서울도서관)이고 뒤의 복합기건물이 2012년 8월 27일 완공된 신청사이다.

Contents

1. 개요
2. 본관
2.1. 시계
2.2. 본관 철거,그리고 부활(?)
3. 신관
3.1. 5번의 설계
3.2. 외관 공개
4. 서소문별관
5. 을지로별관
6. 남산별관
7. 그 외 갖가지 신청사 계획

1. 개요

서울특별시의 행정을 총괄하는 기관이자 그 기관이 입주한 건물. 즉, 서울 공화국의 보스급 던전
대한민국에서 시청 앞 광장을 말하면 보통 이 곳 앞에 있는 서울광장을 가리킨다.

흔히 서울시청하면 그 서울광장 앞에 있는 일제 때부터 있던 본관 그리고 최근에 지어진 신관만을 생각하는데 인구 천만의 거대도시 서울특별시의 조직을 신관만으로 수용 가능할 리는 당연히 없고, 덕수궁 남쪽에 서소문 별관, 을지로 별관, 남산 별관 등이 있다. 이 중 서소문 별관의 규모가 상당하여서 서울시청 복원 및 신청사 건설 기간 동안에는 시장실 등의 기관이 입주하여 본관 역할을 하였다. 처음에 시청을 새로 짓는 떡밥 중에 하나가 분산된 청사로 인해 업무효율성이 떨어지고 시청을 찾는 민원인 불편도 불편하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현재의 부지에 걸린 각종 제한요소들 때문에 높고 넓은 빌딩 설계해 갈 때마다 문화재청 등에서 딱지먹어서 점점 높이를 줄이고, 시민들을 위한 공간을 추가한다며 이런 저런 시설을 넣고, 구 청사는 전체를 도서관으로 활용하다 보니 현재의 청사와 같은 설계가 나왔고, 통합청사 떡밥은 철저히 묻혔다. 결국 신청사에 입주할 수 있는 직원들은 30% 정도였고, 결국 시장실과 업무상의 밀접한 관련을 갖는 부서들만 들어갔고 나머지 대부분의 기관들은 서소문별관에 위치하게 되었다. 따라서 민원인의 입장에서 서울시청에 방문하게 된다면 해당 부서의 위치를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2. 본관

서울특별시청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조선 한성부 청사는 지역별로 서부, 동부, 남부, 북부, 중부 청사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이중 중부 청사는세종로의 미국 대사관 인근에 있었다. 이후 고종 대에 경희궁 인근으로 이전하였다가 여러 장소를 전전하였고 일제강점기를 맞아 경성부청으로 바뀌었다.

경술국치 직후엔 현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과 한국SC은행 제일지점을 합친 부지에 있던 일본영사관 건물에 경성부청이 입주했었다. 이후 현 서울시청 본관 부지에 있던 매일신보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경성부청을 지은 것. 일단 건축 설계 총책임은 일본인 3명으로 이와이(경성부 간부), 사사, 이와츠키로 되어 있는데 조선인 장연채도 참여했다고 되어 있다.

일단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만큼 근대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건축미학적 면에서 따지면 딱히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식민지 시스템의 일부였다는 점에서는 조선총독부와 유사한 사례. 다만 평가절하되는 원인 중 하나가 보통 "위압감"인데, 이와츠키가 한 "관청건물이 추구하는 위엄성을 배제하여"란 말로 볼 때 일본인 건축가들은 의외로 건물이 주는 위압감을 낮춰보려고 했던 모양이다. #[2]

또한 시청에 가야 하는데로 대표되는 민주화의 성지라는 상징성이 더해지면서 서울시청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랜드마크로 인정되게 되었다.

2.1. 시계



시계가 나름 유명하다. 1975년에 처음 디지털 시계로 설치되었고, 1999년 유사한 디지털 시계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몇 년 안 지난 2003년, 시청 건축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날로그 시계로 교체되었다. 이 2003년의 시계에는 이름이 붙었는데 옛날 보신각종에 있던 이름인 "바라"이고, 한상공회의소스와치의 기부를 받아 설치되었으며 GPS 신호를 받아 정밀하게 시간을 맞춘다.

그러나 시계는 또 몇 년 후 본관이 철거되면서 떼어지게 된다. 뭐 몇 년 후 없어질 물건을 뭣하러 달았냐고 뭐라 할 수 없는 게, 후임자 오세훈이 무슨 짓을 할지 알 리가 없잖아? 그래도 본관을 부수기리모델링하기 위해 세운 가리개 조형물에 시계가 있어서 모양새는 갖추었다.

시청이 지어지는 사이 박원순 시장으로 바뀌었고, 또 시계는 바뀌었다.(...) 어쩔 수가 없었던 게, 이명박이 설치한 스와치 시계를 어딘가 보관은 하고 있었으나 수리가 어려울 정도로 고장나서 새 시계를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중소기업 활성화 차원에서 국내기업 로만손이 만든 시계로 바꿨다고.#

2.2. 본관 철거,그리고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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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을 거쳐서



그야말로 파사드만 남겨두고 새 건물을 짓고 있다. 이제 근대 건축이 아니라 현대 건축이다 (...)

이 철거 과정은 오세훈 시장이 두고두고 까이는 이유 중 하나로,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시청 본관은 2003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를 무시하고 아주 없애버리려고 했다.[3] 물론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건물 역시 1920년대에 지어진 대법원 건물을 입면만 살려서 다시 짓는 식으로 복원하는 등 이런 식으로 문화재 복원한 전례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만, 까는 사람들은 이런 것도 파사디즘이라고 까는 현실이라 논란이 될 법한 방식임은 여전하다.

그리고 귀신 같은 기습 철거를 시도했는데[4],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문화재청의 반대로 그나마 다시 짓겠다고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시청의 뒷부분을 지하로 수직이전 시켰고 정문을 아예 뚫어버려서 시청이 아닌 신청사 출입문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옛날의 그 건축과는 동떨어져버렸다.

시 측에서 내놓은 이유로는 건물의 안전 문제가 있었다. 일단 건물을 복원(혹은 리모델링)하는 방법 중에는 철거 후 재사용 가능한 자재들을 이용하여 다시 짓는 해체복원도 존재하긴 하다. (심슨 기념관이라든지..) 그런데 이 건물은 해체복원이 필요할 정도로 원형 훼손이 심한 건물은 아니었고, 시청 본관은 1996년에 이미 안전하다고 판정되었고 그 후 잘 관리되어 왔다. 더군다나 돈 주면 원하는 대로 낮출 수 있는 게 안전 진단 등급이고

보통은 시청을 부순 오세훈 시정(市政)과 뒷북이나 친 문화재청을 까는 경우가 많고 물론 이들에게 쉴드를 칠 필요는 전혀 없으나, 깔 존재가 하나 더 있다. 신관을 설계한 건축가 유걸. 이 사람은 본관을 부수고 신관의 일부로 만드는 전제하에 신관을 설계했고, 본관은 부수는 편이 낫다고 혹평했다. 그런데 이 분은 막상 조선총독부 건물은 아름답고 가치가 있으니 헐지 말자고 했었다... 언급 자체는 개인의 예술관이니 상관할 부분이 아니지만 시청은 이 사람이 내놓은 건축을 좋다고 선정했다.

몇 년 뒤, 신청사 (신관) 완공 후 공개된 모습은 일단 태평홀이 지하로 이전 (...) 된 걸 빼면 시장실 등등이 보존되어있어 너무 좌절할만한 수준은 아닌 모양이다. 자세한건 2012년 10월 26일에 일반 공개가 되어야 알겠지만... 덧붙여, 태평홀이 수직 이전 된 것에 나름 변명을 하자면 신청사와 본관 사이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어서,보존하려면 할 수 없이 택해야 했던 것 같다.

옛 시청 상당수 공간에 서울 도서관이 입주하였고, 현재 옛 시청은 이 서울 도서관 현판을 달고 있다.

3. 신관

3.1. 5번의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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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5번이나 설계를 해서 만든 건물이다. (...)

문화재법상 덕수궁의 경관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어려운 조건이 붙었다.
문화재 근처의 고층건물은 법적으로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허가를 얻으려면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삼우 건축설계의 5개 안이 모두 덕수궁의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으며 서울시에서는 이에따라 명망있는 건축가들의 디자인설계를 공모해서 컨센서스를 이끌어내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공모에서 선정된 것이 건축가 유걸의 작품.

1과 2는 같은 설계자가 했다. 참고로 두 설계 모두 던 시청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위치도 위치고 건물의 상징성도 있어서 둥글둥글 항아리나 저고리 모양 등에서 가져온 곡선을 써봤으나 거대한 건물이 주는 위압감이 덕수궁의 경관을 해친다고 해서 딱지를 먹고 이번에는 태극모양을 가져왔으나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딱지
그래서 3번째가 나왔는데 거대한 매스가 주는 위압감을 줄여보기 위해 매스를 분절시켜보았으나 대중들의 반응은 po성냥갑wer 크리 (...) 문화재청에서 디자인 자체는 그럭저럭 승인하였으나(응???) 문화재 양각 규정 등으로 높이나 형태 등에 일부 수정을 요구하였고 이렇게 4번째 안이 나왔으나 이번에는 너무 단순무식해서서 서울시청의 위치나 역사적인 면에서 상징성이 부족하여 서울시쪽에서 딱지(...).. 결국에는 높이가 대폭 낮춰지고 한옥의 처마선을 딴 형태가 나오게 되었다. 문화재청에서 항아리나 태극은 덕수궁의 경관을 해친다면서 처마선은 괜찮아 보였는지 이번에는 통과... 그냥 지하로 묻어버리거나 덕수궁을 밀어버리는게 빠른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해서 유리궁전 양식 그 자체가 문제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일단 서울시 청사의 경우 대지에 걸린 제약 자체가 엄청난 난제였다. 모든 설계안이 전체적으로 동고서저의 형태를 띄는데 이는 덕수궁 담장에서 27의 각도로 올려다 볼 때 이 높이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문화재 양각 규정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건축적으로 보았을 때는 그냥 시청 이전이 더 간단한 해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때부터 전체적인 연면적이 축소 되고 시민들을 위한 각종 시설들이 들어오면서 통합청사 떡밥은 거의 묻히게 되었다.

3.2. 외관 공개


5월 24일에 가림막이 완전히 철거되면서 외관이 완전히 공개되었다. 그런데 막상 외관이 드러나자 구청사와의 언밸런스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일단 외벽이 유리로 된 것부터가 구시대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특별한 유리를 사용해서 에너지 효율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게다가 너무 튀는 외관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인근의 건축물들과 조화를 생각해야 되는데 지나치게 화려한 디자인으로 마치 천상천하 유아독존 나만 잘났다는듯이 서있는 건물은 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현재의 건축 트렌드의 반영이라는 옹호도 있다.

그 위압적인 광경은 보통 파도, 쓰나미를 연상시킨다며 까인다. 한옥 처마를 재해석해 디자인해서 그렇게 생긴 건데, 건축가는 이 까는 소리를 듣고 파워풀하다며 좋게 받아들였다.# 유리궁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모양 자체는 정말 취향 문제니 그렇다 치자. 하지만 시청이 지어지는 사이 대중들은 해운대토호쿠 대지진을 겪었지

서울시 내부에서는 디자인만 화려하고 정작 실용적이지는 않은것 같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디자인 드립의 오세훈의 유산 유리궁전 골조 때문에 시장실조차도 광장 조망이 영 좋지 않으니 호불호를 뛰어넘어 자타공인 시망 건물이 될 것 같다.#박원순 현 시장도 내부 마감재 공사기간에 신청사를 둘러보고 3000억이나 들인 건물이 이렇게 비실용적인가라고 한탄했다 (...)는 보도도 있었다. 조망 부문의 경우 일반인들도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시청사 8~9층에 '하늘광장'이란 이름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공간이 있는데 건물 골조 때문에 조망이 매우 힘들다.

또한 건축 과정을 턴키 방식으로 했다는 것도 문제다.# 이는 건설회사가 건물 지어지는 모든 것을 다 해먹기 때문에 건축주한테는 편해도 건축가의 디자인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방식이다. 실제로 서울 신청사도 건축가 유걸은 좀더 나은 디자인을 원했는데 턴키의 문제 때문에 건물이 절반쯤 지어진 다음에야 자기 의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 더,광복 이후 경성부가 서울특별시로 바뀐 직후부터 사용한(것으로 추정되는)현판이 사라지고 그 위에는 '서울도서관'이라 쓰인 현판이 등장했다. 옛 현판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 중이라고 한다.

매끈한 곡선 스타일의 건물 구조상 겨울철에 위험하다고 한다. 물이나 얼음이 흘러내릴 길이나 완충되는 턱이 없어서 그대로 흘러내리다보니 얼음이 얼었다가 살짝 녹으면 얼음폭탄같이 떨어진다고.## 결국 완공이후 첫 겨울부터 눈 한번 오자 바로 시청 뒷길이 통제되었다. 문제는 이 길이 단순 뒷길이 아니라 서울광장 조성을 위해 교통체계를 바꾼 이후로는 남산 3호 터널 방면에서 세종대로 쪽으로 빠지는 주 통로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 때문에 건물 외벽에 열신을 추가해서 얼음이 얼지 않게 하려는 계획이 있지만 잘 되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말에 따르면 원래 디자인 과정에서는 그러한 계획이 있었는데 실시설계 단계부터 턴키 방식으로 인해 모든 권한이 넘어가버려서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게 된 이후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고 한다.

2013년 동아일보와 건축전문잡지 SPACE가 건축가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해방이후 최악의 건물들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 건축가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일제도 공을 들인 서울의 심장부에 우리 스스로가 가장 큰 실수를 했다" (...)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외계에서 온 건물 같다" (...) 그리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들어서자 둘이 서로 악평을 비교당하는 신세가 됐다. [5]

하지만 서울 건축의 맥락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일 된 의견이 없어서 문제다. 새로 건물으 올라갈 때마다 서울의 맥락에 맞지 않는다고 하지만 도대체 서울의 맥락이 무엇인지 제시하는 사람이 없다. 따라갈 맥락이 없으니 새로 올리는 건축물이 중구난방인건 어쩔 수 없는 결과인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청을 한국 최악의 건축물로 선정한 건축전문잡지 SPACE와 잡지의 전신인 건축사무소 공간의 아버지인 김수근부터가 건축물 외견에 전혀 한옥 양식을 체택하지 않았다. 김수근이 설계한 공간사무소만 보아도 크기만 작을 뿐 딱히 한옥처럼 생기진 않았다. 건축물 자체가 벽돌+한옥+유리궁궐 건축으로 근대건축+한옥+유리궁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서울 시청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서울 시청과 광장은 덕수궁+서울시청(근대건축)+신청사(유리궁전)으로 이루어지는데 어떻게 보면 공간 사옥, 지금의 아라리오 갤러리의 건축적 맥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신청사 혼자서 튀는 건축을 올린게 하니라 한국 건축의 맥이 원래부터 여러 양식이 혼성되는 맥을 형성해 왔던 것이다.

여름에는 이 건물의 특별한 유리골조로 인해 여름에 찜통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나름 이 문제를 막기 위해서 적은 에너지로도 효율적인 냉난방이 되도록 신경써서 공조설계를 하였고 더더욱 친환경적인 건물이 될 것이라고 하였으나, 2013년 전력대란으로 인하여 나온 절전 정책은 관공서의 모든 냉방 및 공조장치를 아예 끄도록 하였고, 에어컨을 껐더니 순식간에 내부 온도가 35도 이상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결국 엄청난 폭염의 찜질방내지는 거대한 닐하우스(...)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4. 서소문별관

시청역 인근 덕수궁길 15(중구 서소문동 37번지)에 위치해 있다. 본래 대한제국탁지부 청사와 일제 시대의 중추원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1975년에 대검찰청 청사로 준공되었으며, 검찰이 서초구 서초동 법조타운에 1989년 크고 아름다운 청사를 신축하여 이사를 가면서 서울특별시청에서 사용하고 있다. 서소문별관 안에는 정동전망대와 서울시립미술관이 있으며, 시립미술관 및 서소문별관 2동과 5동 사이에 서울시청CNG충전소가 있다. 서소문별관 가스 충전소에서는 서울특별시 내 일부 지역 마을버스[6]와 시내버스 중 502번이 충전을 위해 잠시 들어오므로 밤낮 가리지 않고 바쁘게 돌아가는 충전소다.[7] 가스 충전기는 1대 설치되어 있고, 차량 2대를 동시에 충전할 수 있다. 차량이 진입하려면 서소문고가 쪽으로 들어갈 때 고가차도 못 가서 있는 KAL빌딩 근처에 충전소 입구가 있다.

5. 을지로별관

시청역 인근 을지로 23(을지로1가 63번지)에 위치해 있다. 1938년에 신축되어 1948년부터 미국문화원으로 활용되었다. 80년대에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을 겪는 등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보내다가 서울시에 양도되어, 현재는 몇몇 과 및 시청 상조회 등이 입주해 있다. 등록문화재 제238호.

6. 남산별관

중구 삼일대로 231(예장동 산5-85)에 제1청사 및 남산 기슭 곳곳에 제2, 제3청사가 있다. 신 청사가 완공된 2012년 이후에는 별다른 용도가 없는지 비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교통방송이 예장동 남산별관 2청사에 있다.

7. 그 외 갖가지 신청사 계획

여의도를 개발하면서 김수근 같은 사람이 여의도 도시계획을 했는데 원래 서쪽에는 국회 동쪽에는 시청이 올 예정이었다 한다.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도 이것과 관련된다. 녹사평역 인근(?) 현 용산구청 부지가 원래 서울시청 신청사 부지였는데, 이 때문에 새로운 시청역이 될 녹사평역은 상당히 건축에 힘을 들였고 3기 지하철 계획의 서울 지하철 11호선 건설에 대비 환승통로를 최적화시키기도 하였다. 다만 역시나 시청은 말아먹고 3기 지하철 계획도 외환위기로 말아먹었기에 현재와 같은 상황이 되었다. 참고로 용산구청은 설계변경을 밥먹듯 하다가 건축가가 자기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단도 있었다. 서울시청도 이렇게 될 뻔했으나 이거보다는 1mg 정도 부드럽게 상황이 끝났고, 이 두 건물은 사이좋게 해방이후 최악의 건물들 목록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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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구청사는 허물고 다시 지었으므로 2012년이 맞긴 맞다(…)
  • [2] 단 本 드립은 걸러듣자. 일제풍수모략설 항목 참고.
  • [3] 참고로 외국에도 이와 비슷한 새로 지으면서 기존 건물이 부분만 남아있는 예가 하나 있다. 일본 도쿄역 앞에 있는 도쿄중앙우체국이 바로 그것. 여기 같은 경우 일본우정이 민영화되면서 먹고사는 주요 수단 (...) 으로 도쿄중앙우체국 자리에 고층건물을 세워 부동산 장사하는 계획이 있어서 역시 건물을 해체했는데, 건물이 해체되기 시작되니 부랴부랴 중요문화재 지정 시도한 점도 그렇고 사건이 일어난 시기도 비슷하여 그야말로 일본판 시청 사건이다.#
  • [4] 등록문화재 항목에서도 나와있듯, 지정되었다고 해서 보존, 관리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그 점을 노리고 문제를 제기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기습 철거에 들어간 것.
  • [5] 근데 서울시청 근처가 애초에 조화와는 거리가 먼 건축군이 들어서 있는지라... 일단 덕수궁과 황궁우는 조선시대~ 대한제국의 건축이고 서울시청과 서울시 의회는 일제의 건축인데다가 근처에 들어서 있는 호텔들이나 국가인권위 건물은 현대 한국의 건축물들이다. 딱히 통일성이랄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런 식의 관점은 어차피 망한 것 계속 망하면 어때(...) 수준에 불과한 안이한 사고방식일 뿐이다.
  • [6] 대문11번 등. 서대문구 홍제동 내에서만 도는 노선이라 수색동이나 진관동으로 충전하러 가기에는 대단히 애매하다. 영천시장에서는 서소문별관으로 충전하러 공차로 이동하는 서대문11번이 가끔 보이며, 서소문별관에서 충전을 마치고 독립문극동아파트로 돌아와 운행을 재개한다.
  • [7] 의왕시에는 CNG충전소가 없다. 우신버스의 고천동 영업소에서 지지대고개 남쪽으로 2km 이동하면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이다. 이목동 공영차고지가 고천동에서 그나마 가까워 441번수원시로 넘어가서 가스를 충전한 후 고천동으로 다시 이동한다.(영업운전이 아니긴 하지만, 수원시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서울 버스라는 것....) 그러나 502번은 이목동 충전소의 사용 허가를 받지 못해 소공동주민센터에서 승객들을 모두 하차시킨 후 세종대로네거리에서 U턴하여 서소문별관으로 이동, 충전한다.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