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서울은행

last modified: 2015-04-06 20:20:36 Contributors

조상제한서
조흥은행상업은행제일은행한일은행서울은행

빠른은행 서울은행
서울銀行
Seoul Bank
1959 ~ 2002

1959년에 창립하여 2002년까지 존속했던 대한민국의 시중은행. 과거 조상제한서로 불리던 5대 시중은행 중의 하나였다.


1959년 서울은행이라는 지방은행로 창립되었으며 1962년에 전국은행으로 인가받았다. 1976년 한국신탁은행과 대등합병하여 '서울신탁은행' 으로 변경하였고, 1995년에 다시 서울은행으로 은행명을 변경하였다. 서울신탁은행 시절의 약칭은 조상제한서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탁은. 조상제한? 자매품으로 환은이 있는데 이 은행도 나중에...... 1995년 서울은행으로 행명이 변경된 이후에는 서은이라는 약칭을 사용하였다. 본점은 현재 국민은행 명동영업부 바로 옆에 있는 명동 IBIS(이비스) 호텔 자리이다.

seoul.gif
[GIF image (Unknown)]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제일은행과 함께 급격히 부실화되었고 해외매각 우선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즉 정부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외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IMF에 약속했던 것. 이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1999년 HSBC와의 계약이 꽤 희망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나 서울은행의 자산과 부채를 평가하는 문제에 대해 HSBC 측이 국제 기준으로 평가하겠다고 하자 대한민국 정부 측이 "금융감독원의 기준을 적용하기로 합의했다"면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기어이 판을 엎어 버렸다. 사실상 매각 무산. 더 어이없는 건 15조 원의 공적 자금이 투입된 제일은행을 고작 5천억 원이라는 헐값으로 뉴브리지캐피털에 매각한 것. 이것도 1999년의 일이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는 서울은행에 추가 공적 자금을 투입해 경영을 먼저 정상화시킨 후 해외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으며, 2000년에는 독일 도이체방크에 경영을 위탁하고 도이체방크의 대한민국 대표였던 강정원 씨를 은행장으로 선임하는 등의 개혁을 단행한다.


2001년 서울은행은 CI를 대대적으로 바꾸고 "푸른은행 서울은행"이란 캐치프레이즈로 영업하였으나[1], 2002년 월드컵 직후 뜬금없이 하나은행에 인수합병되면서 간판을 내리게 된다. 당시 김대중 정권은 서울은행의 해외 매각이 여의치 않자 대한민국 국내 우량은행에 인수시켜서 차라리 대형화하겠다는 심산이었고, 마침 제일은행과의 합병이 결렬된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인수한 것.[2]

참고로 서울은행 본점은 한동안 하나은행 명동영업부로 운영되다가 호텔로 리모델링하기 위해 구 하나은행 명동지점 위치로 이전하였다.

1998년부터 대한축구협회를 후원하였으며 이는 합병 후 하나은행에 그대로 인계되었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제일은행과 함께 부실은행의 대명사로 인식되었었는데, 제일은행이 2000년 9월 1일부터 당행간 ATM 수수료를 전격 면제하자 서울은행도 이에 질세라 2001년 3월 19일부터 당행 간 ATM 수수료를 폐지했다. 그러나 1년 9개월 만에 하나은행에 먹히면서 수수료 지옥이 확대되었다. (...)

여자 실업 농구단을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IMF 사건이 터진 이후 1998년 2월에 해체했다. 서울은행 여자농구단 참고. 그 전에는 외환은행이 여자 농구단을 해체했고, 두 은행이 하나은행에 넘어온 후 2012년하나금융지주가 신세계 쿨캣 농구단을 인수하여 부천 하나 외환 여자농구단이 창단됬다. 물론 현재의 부천 하나외환 농구단은 계승한 팀이 다르긴 하지만....
----
  • [1] 이 녹색 CI는 상당한 레어템이다. 대한민국 최단명 은행 CI로 기록에 남을 만하다.
  • [2] 이후로도 똑같은 일이 계속 있었다. 실제로 충분히 독자 생존이 가능했던 조흥은행도 원래는 분할 매각에 의한 점진적 민영화가 추진되고 있었으나 2002년에 갑자기 신한금융지주에 통째로 매각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었고, 2006년에 완전히 합병됬다. 외환은행 역시 해외 금융기관으로의 매각에는 금융 당국이 온갖 딴지를 걸다가 론스타와의 복잡한 사건 이후 기어이 하나금융지주에 인수시켰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