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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last modified: 2014-10-24 19:05:43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1.1. 광복 이전
1.2. 광복 이후
1.3. 잔디광장 조성


2002 한일 월드컵 당시의 서울광장.

1. 개요

http://plaza.seoul.go.kr/
서울특별시청 앞에 있는 광장으로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5번 출입구가 가장 가깝다. 2호선 역과는 약간 먼 편이고, 이보다는 멀지만 을지로입구역광화문역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 구 시청앞 광장.

1.1. 광복 이전

원래 이 광장은 대한제국 성립 직전, 고종경운궁(덕수궁)을 국가 통치의 중점으로 삼고, 그에 따른 도시 계획의 일환으로 경운궁과 그 주변 도로를 정비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조금 흐트러져 있긴 하지만 현재 서울광장의 주변 도로는 방사형 6거리의 골격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도로 구조는 동양에서는 보기 힘든 근대적 방식었다고 한다. 미국워싱턴 DC를 벤치마킹했다고.

이후 여기를 지나가서 대한제국의 황제 즉위식이 거행되었고, 경술국치 이후 1919년 고종이 의문사하면서 장례 절차 당시 이곳에 군중들이 모였으며, 이후 3.1 운동 때도 군중들은 여기에 모였다.

근데 명동에 있었던 경성부청[1]이 현재의 서울시청 자리에 거기 있던 경성일보[2]까지 이전해 가면서 크고 아름답게 지어지면서, 경운궁/덕수궁 앞 광장은 일제가 지은 건물에게 이름을 빼앗기게 된다.(…)

이곳의 1/3 가량이 덕수궁 권역이었다. 1912년에 태평로를 직선화한다는 구실로 일제는 동쪽 궐내각사의 절반을 날려 버렸다.

1.2. 광복 이후

광복 후에도 1968년에는 태평로가 확장되어 덕수궁 권역을 잘라먹었다. 도로공사로 1970년 원래의 위치로부터 20m 가량 서쪽으로 대한문이 밀려 났다. 문화재 보호에 엄격한 지금 관점으로는 기겁할 일이지만 당시 먹고 사는 산업화가 우선 순위였기에 가능한 일.[3] 결국 현재 덕수궁 권역은 원래 크기의 3분의 1정도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광복 이후에 이 광장이 4.19 혁명, 6월 항쟁 등의 쟁쟁한 역사를 맞이한 근현대사의 광장이 되면서, 서울시청 건물은 까임방지권을 얻게 된다.

1987년 6월 9일, 6월 항쟁 당시 사망한 고 이한열 열사의 유언도 "내일 시청에 나가야 하는데..." 라고 한다.

까임방지권 때문인지 새로운 시청 예상도에는 구 시청을 보존한다는 전제하에 지어진 설계라서 새로운 시청 이후에도 건물은 남아 있긴 하다. 원래는 구 시청사를 전체 보존하여 하였으나 실력행사(…)로 본관 전면부인 파사드(Facade)와 중앙돔 원형 보존 및 태평홀 이전 복원으로 쉽게 말하면 건물 전면부 껍데기(…)만 보존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서울특별시청 항목 참고.

그러나 서울에 자동차가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연히 시청 앞 길도 아스팔트로 포장되었고, 2002 한일월드컵 때 길거리 응원을 할 때까지 시청앞 광장에서 이루어진 모든 역사는, 이렇다 할 광장 없이 아스팔트 길을 광장 삼아 자동차 도로를 무단점거하여 이루어진 역사였다.(…)

1.3. 잔디광장 조성

결국 이명박 서울특별시장이 재임할 때인 2004년 5월 1일, '시청앞 광장'에서 '서울광장'으로 이름을 바꿈과 동시에 제대로 된 광장이 완공되었다. 문제는 디자인 공모전까지 했는데도 당선작을 뒤엎고(...) 현재의 잔디광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게다가 잔디가 다친다고 기껏 만든 광장을 통제한 적도 있다. 이뭐병. 이걸 공모전에 당선되었던 작가가 깐 바 있다. 다만 아스팔트로 인한 열섬 현상 해소를 위해 잔디를 깔았다고 하니 까기만 할 것은 아닌 듯하다. 물론 '단지 핑계일 뿐이다!'라고 까면 모를까.

참고로 기존 당선작은 '빛의 광장'이란 이름으로 바닥이 수천, 수만개의 작은 TV 화면으로 도배되어 있다. 다만, 컨셉은 좋을지 몰라도 지금 잔디광장의 상태를 보자하니 만약 이런 식으로 만들었다면 그 많은 화면 관리하는 것도 일일 듯... 당시 컨셉은 LCD 화면을 바닥에 깔아 '빛의 광장'을 구현하는 것이었으나 LCD가 충격에 약하여 광장을 사람들이 밟고 다니면 보수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포기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현재의 잔디광장 또한 각종 행사를 치루고 나면 잔디의 상태가 엉망이 되어서 일부 구간을 지정해 출입을 통제하고 잔디를 교체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실정이다. 워낙 대형 행사들이 많이 열리다 보니 어쩔 수없이 생기는 현상이다.

그 외에도 겨울이 되면, 계절 한정으로 스케이트장을 운영하고 있었으나[4], 타이밍을 잘못 잡으면 엄청나게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좌절하게 될 것이다. 서울특별시 정권이 교체된 이후 다시 개장할 지를 재검토 예정이긴 한데, 업체하고 계약이 되어 있는지라 일단 2013년 2월까지는 운영한다.

보조 광장(?)으로 덕수궁 대한문 앞 광장이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서울 도심에서 집회나 시위가 일어났다 하면 경찰들이 이 곳을 출입 못하게 하기 때문에 이 때만 되면 안습 신세를 면치 못하는 광장이 되었다. 더불어 서울광장에 행사가 있던 서울시 측도 안습(...). 2009년 봄에는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하이서울페스티벌 오프닝 행사가 시위대가 몰려들면서 취소된 적이 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시 의회가 물갈이되면서 광장 사용문제가 다시 불거졌고 결국 서울광장 출입이 허용되기 시작했으며,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때 서울시 정권까지 교체되고 나서는 대한문에서 할 집회를 서울광장에서 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그 외 서울의 대표적인 광장으로 서울역 광장, 광화문, 청계광장, 한국은행 앞 사거리 등이 있다.

나름대로 명소이고 시위 등의 일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때를 제외하면 시간을 보내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이 주변은 한국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장소 중 하나로, 여기서 너무 오래 놀면 배기가스를 신나게 들이 마시게 된다. 너무 오래 있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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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시 부지가 현 신세계 본점 본관(당시 미쓰코시 경성점)과 한국SC은행 제일지점(당시 조선저축은행 본점)을 합친 정도였다. 참고로 명동은 원래 일본인이 세운 마을이었으며, 그 중심가였던 조선은행 앞은 현재까지 중요 광장 중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 [2] 통감부/조선총독부 기관지로서 친일 신문이었다. 또한 한일 합방 직후 총독부는 반일 민족 신문이었던 대한매일신보를 인수하여 매일신보로 이름을 바꾸고, 경성일보의 자매지, 총독부의 기관지로 삼아, 친일 신문으로 만들어버린다. 광복 이후 경성일보는 폐간되고, 매일신보는 이름을 바꾸어 살아남았는데, 현재의 서울신문 되겠다. 어째 경성일보 옛날 자리 근처에 있다?
  • [3] 독립문 역시 고가도로 바로 밑에 걸치게 되어 고가도로를 옮기는 대신 위치를 옮겨야 했다. 특히 독립문의 경우 본래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지은 것이라 위치 자체가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도 얄짤없었다.
  • [4] 단 2009년에는 광화문광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