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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민주당

last modified: 2015-03-21 17:06:40 Contributors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정당 중 하나. 정확히 말하자면 열린우리당과 함께 전신인 정당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창당
2.2. 분당과 참패
2.3. 짧은 회광반조
2.4. 민주당으로 합당
3. 역대 선거결과
4. 관련 항목


1. 개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복귀를 한 후 1996년에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를 바탕으로, 2000년 1월 20일 16대 총선에 대비해 세력을 확대 개편해 창당한 정당.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승리로 집권 여당 재집권에 성공하나 2003년 열린우리당과 분열하여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인한 17대 총선에서 크게 패배했다. 이후 2005년 당명을 민주당으로 바꾸었으나 2008년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하여 통합민주당이 되었다.

2. 역사

2.1. 창당

새천년민주당은 기존 '새정치국민회의'의 세력부족을 극복하고자, 기존의 인물들에 더하여 다양한 인사(386 초선 인사들, 지역 정계입문자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을 위시한 전직 유명 정계인사들과 이인제 세력(국민신당 세력), 장태완 전 사령관을 포함한 군인 출신 인사들)들을 영합하여 탄생한 정당이었다. 그만큼 세력 문제에서는 한나라당과 맞먹는 정당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비극의 씨앗을 품고 있었는데…

우선, 16대 총선에서 석패했다. 김 대통령이 직접 총재[1], 국민신당 세력의 이만섭과 이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기를 몰아주었으나 남북정상회담 내용이 일찍 터지면서 되려 정략적이란 반응으로 야당(보수 한나라당) 표가 결집한 것. 선거 출구조사만 해도 민주당은 제1당이 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울진군/영덕군 선거구에서 김중권 후보가 17표 차로 낙선하는 등 접전이 벌어진 선거구 11곳 가운데 10곳에서 패하며 115석에 그쳐, 133석의 한나라당에게 제1당을 내줬다. 한나라당은 이로서 여당의 과반을 저지하고 오히려 원내 과반수에서 4석 모자란 거대야당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이회창의 1인 지배 체제를 확고하게 굳혔다.

중권 - 광옥 - 화갑으로 대표가 돌려 막아질 때는 그나마 김대중이라는 막강한 힘이 있었으므로 괜찮았다. 그러나 2002년 3월 대선 경선에서 계파 갈등이 극심해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결정되자 피닉제이인제 세력들을 위시로 한 당내 갈등이 심각해졌다. 이 당시 2002년 제4회 지방선거에서 수도권에서 참패를 하면서 노무현의 입지는 흔들리고 이에 따라 당내 비주류는 정몽준과 연합, 단일화를 하려고 한 것.[2]

2.2. 분당과 참패

결국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이 당선되자 갈등은 극에 달했다. 처음에는 비주류가 대통령에게 불만이 있다, 소외 받는다 수준이었으나 이후 계속적인 당내 개혁파와 대통령의 드라이브로 당내 쇄신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계파 갈등이 심해졌던 것. 엎친데 덮친 격으로 김대중 정권과 관련된 대북송금 특검이 터지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세력 중 일부까지 지지철회를 하는 상황까지 생겼다. 대표적인 경우가 추미애 의원과 조순형 의원.

새천년민주당은 반수에 달하는 탈당파가 창당한 열린우리당과 기존의 새천년민주당으로 쪼개졌고, 양 세력은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결국 한때 여당이었던 새천년 민주당은 한나라당, 자민련과 연합하여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수를 둔 대가[3]로 2004년 17대 총선때는 겨우 9석 의석을 갖는데 그쳤다. 탄핵도 탄핵이지만, 탄핵 이후 공천권을 갖고 구주류와 신주류가 선관위까지 가서 서로 싸우며 자기가 공천권 행사하는 게 맞다고 징징거리는 등 난리도 아니었으니 9석이나 가진게 용할 지경(…). 결정적으로, 새천년민주당 세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신들을 지지해주리라 믿었지만 김 대통령은 탄핵을 저지른 그들에게 크게 실망하여 오히려 열린우리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였고, 결국 호남에서도 박살이 났던 것이다. 이때의 전설 같이 회자된 이야기가 손석희 아나운서와 연관된 "그러면 (탄핵을) 안 하면 될 것 아닙니까?". 항목 참조.


그 후 소수정당으로 전락해 별볼일 없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정통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2005년 당명을 '민주당'으로 바꿨다. 꼬마민주당 시즌 3 # 당시 사진

2.3. 짧은 회광반조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전남권(광주+전남)에서 광역자치단체장을 두 명 배출하는 등 나름대로 선전했다.[4] 당시에는 한나라당의 창당 사례(신한국당+통합민주당(1995년))처럼 한나라당 + 민주당 가능성도 점쳐지기도 했다. 새누리당?

이후 2007년 재보궐선거에서 호남과 서울지역 재보궐에서 하나하나 의석을 늘리고 열린우리당에서 탈당한 의원 영입 등으로 캐스팅보트를 노렸다. 결국 2007년 열린우리당 분당사태에 따라 열린우리당 내 김한길 중심의 탈당파('중도개혁통합신당')와 합당하며 '중도통합민주당'으로 또 당명 변경.

그러나 김한길파가 또 탈당하여 도로 민주당이 되었고, 이후 대선 독자주행을 감행했으나…. 국민중심당에서 탈당한 냄새를 맡고 온 정당 브레이커 피닉제 이인제가 냉큼 대선후보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당초 경선 승리가 예상되었던 조순형 의원은 금권선거에 반대하며 gg 중도포기.. 결국 2위는 철새라는 소리를 들은 김민석씨였다는게 함정

결과는 1%도 득표 못했다.(…) 경상도 지방에선 허경영보다도 득표율이 밀렸다. 굴욕중의 굴욕(…)

더군다나 이인제의 대통령 출마에 불만을 품은 당 핵심인사 및 조직들이 죄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이탈해서, 이 시기엔 이인제를 제외하면 민주당에 지역구 의원이 남아있질 않은 상태였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탈당하면 의원직 자동상실이라 울며 겨자먹기(…) 이인제도 이런 결과를 알고 정동영과 후보 단일화와 지분 나눠먹기를 협상하였으나 정동영은 (당연히) 7:3을 내세웠고 이인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7:3도 아깝지 않나?

2.4. 민주당으로 합당

결국 이런 내부적 한계로 독자적인 정당으로서의 역할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이제 야당이 된 대통합민주신당이 세력 통합의 필요성+민주당계 정당이라는 공통점 등의 사유로 2008년 '통합민주당'으로 합당하였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 후 그 해 8월 도로 당명이 민주당이 되었다. 한편 이인제는 총선 공천에서 떨어져 또 탈당했다가 지금까지의 화려한 입탈당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면 새천년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통된 코드가 없는 짬뽕인사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강령에는 중도개혁노선이라고 명시되어 있었지만, 앞서 언급했던데로 새로 영입된 인사들만 해도 가지각색의 개성을 가진 인물들인데다가,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급하게 보수성향(혹은 급진 개혁적 성향)의 인물들도 많이 영입된 결과 기존에 가졌던 개혁적 성격이 많이 희석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는 현재의 민주당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되었다.

3. 역대 선거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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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당시엔 대통령이 총재를 맡는 것이 결코 문제가 되지 않았다.
  • [2] 물론 어느정도는 정몽준과 연대하여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청와대의 의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전무후무하게 드라마틱한) 과정에서 감정적 앙금이 더더욱 커진 것이다.
  • [3] 실제로 탄핵 법안 발의 자체는 민주당 측에서 했고 이에 한나라당과 자민련 측이 동조하는 모양새였다.
  • [4]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광역자치단체장에서 전북지사 단 한 곳만(...) 당선되는 등 기록적인 참패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