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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last modified: 2015-12-20 10:53:18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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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새정치민주연합(새政治民主聯合)
영문 명칭 The New Politics Alliance for Democracy[1]
창당일 2014년 3월 26일
주소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68길 14
(신동해빌딩 11층)
대표 문재인 (초선, 19대)
원내 대표 이종걸 (4선, 16대 ~ 19대)
국회 의석 수 130석 / 300석
('14. 7. 31. 기준)
공식 사이트 링크

Contents

1. 개요
2. 당명 논란
3. 정책
4. 역사
4.1. 김한길-안철수 공동 지도부
4.1.1.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초선거 무공천 논란
4.1.2.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4.2.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4.3. 문재인 지도부 (2015년 2월 8일 ~)
4.3.1. 전당대회
4.3.2. 당선 이후
4.3.3. 당권재민혁신위원회
4.3.4. 잇따르는 탈당
5. 역대 지도부
5.1. 초대 지도부 (2014년 3월 26일 ~ 2014년 7월 31일)
5.2. 국민공감혁신위원회 (2014년 8월 1일 ~ 2014년 9월 17일)
5.3. 비상대책위원회 (2014년 9월 17일 ~ 2015년 2월 8일)
5.4. 2대 지도부 (2015년 2월 8일 ~ )
6. 역대 원내 대표
7. 역대 선거 결과

1. 개요

2014년 3월 26일에 창당한 대한민국정당이다. 전신은 김한길 대표가 이끄던 민주당안철수 중앙위원장이 만든 새정치연합이다. 약칭은 새정치연합, 당색은 바다파랑[2]이다.

2. 당명 논란

창당 당시에 안철수 의원은 구태의연하게 보였던 민주를 뺀 당명을 선호했으나, 전통적으로 민주당계 정당에는 당명에 반드시 '민주'를 붙였기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당명으로 창당했다. 대신 약칭에는 민주가 빠져 안철수의 의사를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 유력한 후보였던 '새정치국민연합'[3] 은 군소정당인 새정치국민의당이 창당되어 무산되었다.

약칭이 많은 걸로 유명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에서는 정식 약칭을 새정치연합으로 등록했고, 3글자로 줄일 때는 새정치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한대로 약칭을 부르지 않았다. 처음에 새누리당자민련처럼 새민련이라고 불렀지만, 자민련과 이미지가 겹칠까봐 우려한 새정치연합 측이 항의해 새정연으로 부르게 되었다. 언론에서는 새정치연합, 새정치, 새민련, 새정연을 섞어 쓴다. 심지어 민주당계 정당에 오래 몸 담은 당원이나 국회의원은 '민주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되다보니 처음에는 공식 약칭을 써달라고 열심히 홍보했지만, 지금은 반쯤 포기한 상태다.

이렇게 약칭이 많게 된 원인은 당명이 다소 길기 때문이다.[4] 당 안팎에서 이름이 부르기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았고, 결국 2016년 1월에 정당명을 개정할 예정이다. 1년 10개월만에 정당 이름이 또 바뀌게 되는 것이다(...)

3. 정책

새정치민주연합은 정강정책 전문을 통해 '대한민국이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고 중산층과 서민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이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도록 ‘정의, 통합, 번영, 평화’를 새정치의 시대적 가치로 삼는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살펴본다면 정책은 기존의 민주당보다 이념적으로 보수 쪽으로 이동했다.[5] 우선 정강정책 전문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강조하였다. 그리고 경제에 있어서 번영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복지에 있어서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조화를 외교에 있어서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하였다.

무엇보다도 통일에 있어서 1,2차 남북정상회담6.15 공동선언, 10.4 선언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보수정권 시절에 있었던 7.4 남북공동성명북기본합의서도 명기하였는데 이는 민주당계 정당의 정강정책에서 처음으로 명기되는 사안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새정치연합 출신 금태섭 대변인이 4.19 혁명5.18 민주항쟁을 뺀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4. 역사

4.1. 김한길-안철수 공동 지도부

2014년 3월 26일, 중앙당 창당 대회를 열어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위원장이 단독 대표가 되었다가 3월 27일 민주당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합당을 하게 되면 김한길 대표가 공동 대표가 되는 통합 창당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창당 당시 국회 의석수는 130석으로 민주당의 126석과 새정치연합 2석, 그리고 무소속의 박주선, 강동원 의원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거대 여당이자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과 쌍벽을 이루는 거대 제 1야당이 되었다.

4.1.1.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초선거 무공천 논란

안철수와 김한길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초선거의 무공천을 합당 명분으로 정했으나, 기존의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모두가 당론으로 무공천을 확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당내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야권 후보 난립과 사칭으로 기초선거에서 전패할 것이며, 심지어 새누리당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지원하기로한 무소속 후보와 동명이인을 출마시켜서 혼란을 유발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진행상황/기초자치단체 참고.

결국 여론조사와 당원투표를 50:50으로 반영하고, 권리당원 전체에 대한 전화투표와 무당파 및 지지층 2000명에 대한 여론조사로 결정하기로 했다. 조사 결과 당원투표에서 57.14%가 공천 찬성, 여론조사에서 49.75%이 공천 찬성하여 무공천이 철회되었다. 2000명은 두 조사기관에서 1000명씩 나누어 실시하였으며 각 기관별로 새누리당 등 타정당의 지지자와 "잘 모르겠다"를 제외하고 찬반률을 구한뒤 두 기관을 평균했다. A기관은 공천/무공천/잘모름이 362/383/255명씩, 420/405/175명으로 나와서 도합 782/788로 거의 박빙으로 나왔다.

4.1.2.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공천과 갑작스러운 야권 단일화, 신선한 선거 전략 부재로 사상 최대 재보궐선거에서 사상 최대 참패를 겪었다. 광주 광산을에 은희 수서경찰서장을, 서울시 동작을에 기동민을 전략공천하고, 순천 곡성에서는 서갑원을 공천했다. 권은희와 기동민의 공천은 여러 잡음이 많았으나 결국 지도부는 강행.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은 야권 우세 지역인 순천곡성, 권선구에서 패배했으며 동작을을 새누리당에 내주게 되었다. 그리고 김포시에 연고가 없는 두관[6]을 공천했다 참패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에 야권연대를 제안했지만 김한길-안철수 지도부가 야권연대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진전이 없자 여섯개의 지역구에 후보들을 독자적으로 출마시키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정의당 측은 단일화 요구를 의식하고 있었는지 야권연대에 대한 문은 선거 직전까지 열어 두겠다고 했지만 투표용지 인쇄일인 21일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이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자 야권연대 제안을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그러나 회찬 후보가 "사전투표 첫째날인 7월 25일 전까지 단일화에 진전이 없을 시 사퇴하고 기동민 후보를 지지하겠다"며 초강수를 내세운 것이 시발점이 되어 7월 24일 하루만에 무려 세 곳의 지역구에서 새정연-정의당 간의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지역구는 노회찬 후보, 경기도 수원시 정 지역구는 새정연 박광온 후보, 수원시 병 지역구는 새정연 손학규 후보가 각각 해당 지역의 새정연-정의당 단일후보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 단일화가 당대당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7] 후보 개개인이 성사시킨 것이라 당 차원의 협력은 어려울 것으로 보였으나,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및 문재인 의원 등이 동작을 노회찬 후보의 지원유세에 참여했고, 수원정에 출마했다가 단일화로 사퇴한 천호선 정의당 대표 또한 새정치민주연합 박광온 후보의 지원유세에 참여했다.

그러나 노회찬 후보는 새누리당의 나경원 후보에게 석패하고 말았다. 뒤늦은 단일화와 노동당 표 분산 효과라는 평[8] 다른 지역 무효표와 비교할때 대략 1200표가 사퇴한 기동민 후보를 찍은 표로 추정된다. 이는 단일화가 늦게 이뤄져 투표 용지에 기동민 후보가 그대로 인쇄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순천곡성의 경우 지도부가 서갑원 후보를 쳐내지 않음으로서 문제를 자초했다. 비록 경선을 통해 선출된 후보라고는 하지만 부정경선 논란 및 부패전력을 지닌 후보를 쳐내지 않은 것은 큰 잘못이다. 물론 이 경우 서갑원 후보 측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을 것이고, 잇따른 공천 논란으로 당 내부가 시끄러워진 상태에서 또 다른 공천 논란이 나오는 것은 당 지도부에게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여론조사 경선을 통해 선출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여러 논란[9]으로 인해 부적격하다 판단, 후보에서 배제한 걸 보면...

세월호 참사와 유병언의 검거 실패 등의 유리한 이슈가 있음에도, 수도권은 물론 텃밭조차 지켜내지 못한 것에 비판이 많다. 선거 패배의 원인으로 공천 논란(낙하산 공천 등), 대안 정당으로서의 비전 및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 점, 세월호 정국에 과도하게 의존한 점, 지역 현안에 무심해 지역 민심을 얻지 못한 점 등이 거론된다.

결국 2014년 7월 31일,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전날 있었던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도부 전원과 함께 동반 사퇴 했다.

4.2.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2014년 8월 4일, 의원총회를 통해 2015년 1~3월에 있을 전당대회까지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기로 결정했다. 당헌 당규상 대표와 최고위원이 사퇴하면 원내대표가 이를 이어받는다는 규정에 따라 박영선 원내대표가 대표대행과 비상대책위원장을 겸임했다. 이름은 국민공감혁신위원회로 이름을 정했다. 그러나 당소속 신계륜, 김재윤, 신학용 의원이 입법로비 스캔들에 휘말려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고, 눈물로 비대위원장을 맡았다던 박영선 위원장은 논산훈련소에 가서 왜 카투사에 안갔냐는 개드립이나 치는가 하면,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말싸움하더니 결국 세월호 특별법에서 새누리당에게 유리한 안에 합의를 해주는등 헛발질을 연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국민들은 짜증나니 새정치민주연합을 없애버려라라는 극언까지 나오는 상황.계속 저러면 없어지겠지 이 와중에 야권 승리를 위해 정의당과 합당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새누리당과 다시 특별법 재협상에 나섰지만 유가족들은 여야합의를 거부하고 원안 고수의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재재협상이 불가능한 만큼 합의안 처리를 강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지만 유가족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재재협상을 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실정. 그러나 어느쪽이든 박영선 대표의 리더십은 무너진 상황이며 도리어 유가족과 단식에 동참중인 문재인 의원에게 시선이 더 집중되는 형국.

결국 9월 11일, 박영선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 겸임을 내려놓고 외부인사를 위원장으로 영입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비대위원장 사퇴 수순을 밟고있다.

그러나 영입대상이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새누리당 당원전력이 걸림돌이 되면서 외부인사 위원장 추대는 물 건너가버렸고 여기에 원내대표직 사퇴까지 압박을 가해오자 박영선 위원장이 돌연 탈당을 거론하면서 그야말로 격랑에 휩쓸리고 말았다. 거기다 문재인 의원의 이상돈 교수 영입에 있어서의 애매한 스탠스도 역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특별법에 마지노선을 그어버리자 결국 박영선 원내대표는 탈당을 철회하고 당무에 복귀했다. 비대위원장직은 분리하기로해 결국 문희상 의원이 1년 4개월만에 또다시 비대위원장이 되었다.만만한게 문희상인가 박영선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별법을 처리한후 사퇴하기로 했지만 이미 리더십이 끌어내려진데다 박근혜 대통령이 초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김현 의원과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이 폭행사건에 휘말리는등으로 인해 갈수록 첩첩산중인 상황.이건 마치 8런 홈런을 쳐내라는것과 뭐가 다름?

문희상 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 박지원, 정세균, 문재인, 인재근, 박영선 의원을 위촉하는 이른바 초강수를 띄우며 당 혁신작업에 나섰다. 새롭게 위촉된 비대위원은 거의 다가 이른바 새정치민주연합 내 계파를 대표한다는 보스급 의원들이다. 이른바 비대위원회 체제에서 당 내 실세들이 비대위원으로 대거 참가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참고로 민주당에서는 2010년 경선을 통해 손학규 대표체제가 출범했을 때 정동영, 정세균 등 당 내 계파실세들이 최고위원으로 함께 지도부를 이끌던 경험은 있다.

경선시즌을 앞두고 통합진보당이 해산되었고, 이후 통합진보당 세력을 배제한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 움직임이 일면서 국민모임 신당에 원외 비주류 인사들의 합류설이 돌고 있으며, 정동영은 달탕했다.

4.3. 문재인 지도부 (2015년 2월 8일 ~)

4.3.1. 전당대회

그리고 2015년 2월 8일에 전당대회를 열기로 결정한다. 1월 7일 컷오프를 통해 문재인, 박지원, 이인영 의원이 당 대표 본경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컷오프 이후 여론조사 반영비율 규정 해석 문제로 박지원과 문재인간에 갈등이 있었고 이로 인한 대립양상이 심하게 전개가 되었다.

문재인 대표는 유력한 대선주자였기 때문에 경선 레이스 초반 대세론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박지원 의원의 당권대권 분리론과 경선 레이스 막판에 터진 여론조사 룰 변경논란으로 인해 박지원 의원의 추격이 거세게 전개가 되었다. 2월 8일 결선투표에서 당일 결집한 대의원과 여론조사의 압도적인 우세에 힘입어 문재인 의원이 간발의 차이로 당선이 되었다.

당장 대표 수락연설에서 박근혜정부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는 등 대여 대정부 강경모드로의 전환을 시사했으나 동시에 2월 9일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 묘소에 참배하는 행보를 밝혀 중도층 끌어안기에도 나서는 모양새를 보였다.[10]

최고위원에는 주승용, 정청래, 전병헌, 오영식, 유승희 의원이 당선이 되었고, 추미애 의원과,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명되었다.

4.3.2. 당선 이후

2015년 2월 16일에 있었던 이완구 총리후보 인준 동의안 표결에 우여곡절 끝에 참가하였는데 비록 이완구 총리의 통과를 막지는 못했지만 반대표가 참석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수보다 더 많이 나옴에 따라 문재인 대표 체제의 지도력이 입증되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

4.3.3. 당권재민혁신위원회


4.3.4. 잇따르는 탈당


5. 역대 지도부

5.1. 초대 지도부 (2014년 3월 26일 ~ 2014년 7월 31일)

  • 대표 : 김한길, 안철수
  • 최고위원 : 신경민, 조경태, 양승조, 우원식, 이계안, 이용경, 정연호, 김삼화, 표철수[11], 이용득, 박혜자, 정균환, 김효석, 김근, 오홍근

5.2. 국민공감혁신위원회 (2014년 8월 1일 ~ 2014년 9월 17일)

  • 국민공감혁신위원장 : 박영선

5.3. 비상대책위원회 (2014년 9월 17일 ~ 2015년 2월 8일)

  • 비상대책위원장 : 문희상
  • 비상대책위원 : 박지원, 정세균, 문재인[12], 이석현, 김성곤, 원혜영[13], 인재근

5.4. 2대 지도부 (2015년 2월 8일 ~ )

  • 대표 : 문재인
  • 최고위원 : 주승용, 정청래, 전병헌, 오영식, 유승희[14], 추미애, 이용득[15]

6. 역대 원내 대표

  • 전병헌 (2015년 3월 26일 ~ 2014년 5월 8일)
  • 박영선 (2014년 5월 8일 ~ 2014년 10월 2일)
  • 김영록 (대행) (2014년 10월 2일 ~ 2014년 10월 8일)
  • 우윤근 (2014년 10월 9일 ~ )

7. 역대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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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식 약칭은 NPAD
  • [2] 두 정당(민주당-태극파랑/새정치연합-하늘파랑) 색깔의 중간이다.
  • [3] 1995년 김대중 대통령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와 많이 비슷하다.
  • [4] 참고로 7글자가 넘는 원내 정당은 새정치민주연합과 새정치국민회의, 대통합민주신당이며 모두 민주당계 정당이다(...)
  • [5] 민주당계 정당의 이념은 개혁적 자유주의(리버럴)이며, 현재 새정치민주연합도 이에 해당한다.
  • [6] 다만 김포의 경우 지역 연고가 있으면서도 경쟁력 있는 인물이 없긴 했다.
  • [7] 물론 정의당은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단일화에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 [8] 그런데 이번 보궐선거에서의 노회찬 후보가 처했던 상황은 2010년 노회찬이 출마했던 서울시장 선거와 그 양상이 똑같다. 노회찬은 노동당 김종철 후보(출마한 후보 중 유일한 동작구 기반 정치인이다.)에게 단일화를 제안하지 않았고, 무려 통진당 후보가 힘을 실어준(통진당은 노동당과 정치적 노선도 다르지만 일련의 사태로 인해 앙숙과 다름없는 사이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지만 매우 이례적인 경우.) 김종철 후보는 그대로 선거를 강행해 1000표 가까이를 얻었다. 2010년 서울 시장 선거에서 한명숙 당시 후보가 노회찬 후보의 독자 출마로 인해 패했다는 의견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 [9] 비리 의혹,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과 관련된)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
  • [10] 꽤 호평을 받은 행보였으나, 당내 온도차가 극명하다. 찬성하는 축이 있는가하면,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목소리도 아직 강하기 때문. 특히 강경파로 잘 알려진 정청래 의원은 문재인을 '히틀러에 참배한 유대인'으로 비유, 그를 강하게 성토했다.
  • [11] 이상 상임 최고위원
  • [12] 이상 2014년 12월 17일 동반 사퇴
  • [13] 이상 2014년 12월 18일 임명
  • [14] 이상 선출직
  • [15] 이상 지명직
  • [16] 정의당 노회찬 후보와 단일화하여 사퇴.
  • [17] 새정치민주연합-정의당 단일후보.
  • [18] 새정치민주연합-정의당 단일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