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삼성 라이온즈

last modified: 2019-06-10 11:46:19 Contributors

KBO 리그 구단
samsung_lions_s.png
[PNG image (Unknown)]
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kiwoom_s.png
[PNG image (Unknown)]
키움 히어로즈
(Kiwoom Heroes)
nc_dinos_s.png
[PNG image (Unknown)]
NC 다이노스
(NC Dinos)
lg_new.png
[PNG image (Unknown)]
LG 트윈스
(LG Twins)
sk_wyverns_s.png
[PNG image (Unknown)]
SK 와이번스
(SK Wyverns)
doosan_bears_s.png
[PNG image (Unknown)]
두산 베어스
(Doosan Bears)
lotte_new.png
[PNG image (Unknown)]
롯데 자이언츠
(Lotte Giants)
kia_new.png
[PNG image (Unknown)]
KIA 타이거즈
(KIA Tigers)
hanwha_eagles_s.png
[PNG image (Unknown)]
한화 이글스
(Hanwha Eagles)
KT_Wiz_s.png
[PNG image (Unknown)]
kt 위즈
(kt wiz)
과거에 참가했던 구단 보기 ▶

samsung_lions.png
[PNG image (Unknown)]
lionslogo.png
[PNG image (Unknown)]
엠블럼[1] 마스코트
블레오
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창단 1982년 2월 3일
구단 법인명 ㈜삼성라이온즈
영문명칭 Samsung Lions Co., Ltd
업종명 스포츠 클럽 운영업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연고지 대구광역시[2]
구단 연고지 변천 대구광역시 (1982~)
구단명 변천 삼성 라이온즈[3] (1982~)
구단주 이수빈[4]
사장 김인
단장 홍준학
감독 김한수
홈 구장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10,000석)[5]
포항 야구장[6]
(12,000석)
2군 구장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워드 마크
킷 스폰서 빈폴
공식 사이트 공식 페이스북 공식 트위터

최종 우승
8회
1985[7],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 2014
역대 우승 엠블럼
samsunglionsks1985.png
[PNG image (Unknown)]
sl2002.png
[PNG image (Unknown)]
samsunglionsks2005.png
[PNG image (Unknown)]
samsunglionsks2006.png
[PNG image (Unknown)]
samsunglionsks2011.png
[PNG image (Unknown)]
1985년 2002년 2005년 2006년 2011년
samsunglionsks2012.png
[PNG image (Unknown)]
samsunglionsks2013.png
[PNG image (Unknown)]
samsunglionsks2014.png
[PNG image (Unknown)]
2012년 2013년 2014년

1985년 한국프로야구 우승 팀[8]
롯데 자이언츠(1984) 삼성 라이온즈 해태 타이거즈(1986)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두산 베어스(2001) 삼성 라이온즈 현대 유니콘스(2003)
2005년, 2006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현대 유니콘스(2004)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2007)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SK 와이번스(2010)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2015)
2011년 아시아 시리즈 우승 팀[9][10]
세이부 라이온즈(2008) 삼성 라이온즈 요미우리 자이언츠(2012)

Contents

1. 개요
2. 팀 이미지
3. 팀 운영 방식
3.1. 막대한 투자
3.2. 거지성?
3.3. 우수한 선수 육성 및 재활 체계
3.4. 선수 대우
3.4.1. 은퇴식
3.5. 왼손잡이
3.6. 아마야구 지원과 리틀야구단
4. 야구장
5. 삼성 라이온즈의 팬
5.1. 팬 숫자
5.2. 팬 성향
5.3. 4대 약점
5.3.1. 홈 구장
5.3.2. 용병, 혹은 용병 스카우터
5.3.3. 치어리더
5.3.4. 응원가
6. 팀의 역사
6.1. 성적
6.2. 연표
6.2.1. 1980년대
6.2.2. 1990년대
6.2.3. 2000년대
6.2.4. 2010년대
6.3. 관련 기록들
6.3.1. 역대 감독
6.3.2. 역대 성적
6.3.3. 유니폼 변천사
6.3.4. 역대 선수 명단
7. 선수단, 등번호
8. 사건 사고
9. 영구결번
10. 지역 연고 학교
10.1. 과거 지역 연고 학교
11. 특기 사항
12. 관련 항목


삼성스포츠
삼성 라이온즈
(야구)
수원 삼성 블루윙즈
(축구)
서울 삼성 썬더스
(남자 농구)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배구)
용인 삼성 블루밍스
(여자 농구)
삼성 갤럭시
(E스포츠)
삼성생명 레슬링단 삼성생명 탁구단 삼성증권 테니스단 삼성중공업 럭비단
삼성전기 배드민턴단 에스원 태권도단 삼성전자 육상단 삼성전자 승마단

1. 개요

KBO 리그의 프로야구[11]. 연고지는 대구광역시.

팀의 상징색은 파란색 & 빨강색 흑역사-하늘색(연파란색, 1984년부터 1994년까지)[12]-파란색(1995년부터).[13] 팀의 마스코트는 블레오.

모기업이 삼성그룹인 팀답게 긍정적인 의미이든 부정적인 의미이든 KBO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00년도부터 KBO에서 메인 스폰서를 도입했는데,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삼성증권,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삼성전자에서 메인 스폰서를 맡아왔다.

삼성스포츠단 중 유일한 독립 법인으로서, 다른 스포츠 팀들이 그룹 계열사의 자회사 형태이지만 삼성 라이온즈는 삼성그룹 계열사의 위치를 가지고 있으며 창업주 이병철의 말대로 특정한 계열사가 독점하지 않고 지분을 각각 나눠 가지고 있다.[14] CJ, 신세계까지 포함한 범 삼성가가 모두 지분을 가지고 있다.[15] 그리고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성 레포츠 센터"라는 자회사도 운영하고 있다.[16]

2016년 부터는 제일기획이 삼성 라이온즈를 완전히 인수하게 되었다. 2016년 1월 11일 제일기획이 삼성 라이온즈 주식 12만 9천 주를 6억 7천 596만원에 취득하여,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제일기획의 지분 비율이 67.5%로 늘었다. 제일기획은 2015년 4월 이후 부터 삼성그룹 내의 축구, 농구단, 배구단 등을 인수하였는데, 이건희 회장의 둘째 사위가 되는 김재열 사장이 스포츠사업을 총괄하고 있다.(뉴스데일리)

알게 모르게 묻히는 사실이 있는데, 월드컵이 개최되는 해에 성적이 가장 좋은 팀이다. 어느 구단 항목에도 월드컵에 성적이 좋다고 쓰여 있지만, 이 팀 앞에서는 명함도 못내민다(...)[17] 당장 1982년부터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했고, 이후 1986, 1990, 2010년도 마찬가지로 준우승을 거둔 바 있다. 하지만 우승도 2002년, 2006년, 2014년 총 3번이나 달성하였다. 1998년에도 한국시리즈는 진출 못했으나 플레이오프 직행까지는 했다. 월드컵 열리는 해에 가을야구 못한건 1994년 한 번 뿐이다.그때야 얼마 없는 삼성의 암흑기였으니까...

2. 팀 이미지


전통적인 팀 컬러는 백수의 왕 사자라는 이미지답게 공격적이고 힘이 넘치는, 화려한 야수진을 앞세운 공격 야구로 이에 비해 아쉬운 투수진[18]이라는 색채를 띄고 있었다. 그치만 이건 1990년대 후반의 삼성 모습이고, 그 이전에는 강력한 타선과 강건한 수비력 그리고 강속구를 던지는 에이스 투수, 이것이 과거의 삼성 라이온즈의 이미지였다.

2005~2010년 선동열 감독 시절에는 강력한 불펜과 마무리 투수를 통해 승리하는 팀이 되었다. 대신 타선은 전체적인 리빌딩이 가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타선으로 이기는 경우도 종종 있긴 했지만. 몇몇 삼성 올드 팬들은 선동열 감독 부임 이후 예전부터 고수해 왔던 뻥 야구 스타일에서 벗어나 뻥 야구도 철벽 투수진도 아닌 어정쩡한 팀이 되었다며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투수진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KBO 최고 수준이고, 야수들 수비력도 수준급이다. 다만 윤성환이나 장원삼 등 준수한 1선발급 선수들도 있긴 했지만, 류현진같이 리그를 씹어먹는 이미지는 아니었다. 둘 모두 기복 없이 꾸준히 성적을 올리는 스타일.

이후 2011년 유격수 출신 류중일 감독이 취임하면서 배영섭이나 정형식같은 유망주가 발굴되고 최형우, 박석민 등 새로운 주포들의 등장으로 공격 야구가 다시 살아나며 2011년 정규 시즌, 한국 시리즈, 아시아 시리즈를 모두 우승, 국내 최초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였다. 2012년에는 이승엽까지 일본에서 복귀하며 타선이 더욱 강화되었고, 2014년에는 비록 역대급의 타고투저의 흐름을 타긴 했으나 1987년에 삼성이 세운 팀타율 0.300을 뛰어넘는 0.301의 팀타율 신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여전히 투수진이 강한 팀이다. 2013 시즌 윤성환, 배영수, 장원삼, 차우찬이라는 토종 10승 투수 4명을 배출하였고, 외국인 투수들이 부상에 시달리지 않고 좀 더 분발했다면 5명의 10승 투수를 배출하는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외국인 선발까지 포함해 2014 시즌은 준수한 선발자원인 차우찬이 본의 아니게 롱 릴리프로 전업을 하게 되었을 정도, 그리고 불펜진은 KBO 최강이다. 홀드왕 한현희와 구원왕 손승락이 있는 넥센도 볼 만하지만(넥센은 선발진이 안좋다.) 2012년 5월 24일 대구 롯데전부터 7회까지 리드한 경기서 단 1패도 없이 무려 130연승을 내달렸다. 2012년 58경기, 2013년 62경기, 그리고 2014년 10경기를 더해 ‘130연승’을 채웠다. 안정권KO라 불리는 전통의 불펜진에, 정현욱과 오승환이 떠나고 2014년 팀 투수진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와중에도 9개 구단 중 유일하게 5선발 전원이 100이닝을 소화했으며, 그 부진하다던 투수들의 호투로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제패했다. 이 정도면 삼성 라이온즈는 원조 투수왕국을 넘어선 新 투수왕국이라 할 수 있을 정도.

전체적으로 부유한 이미지의 팀이다. 전력 자체는 좋지만 구단 운영은 그룹 고위층의 생각에 의해 좌우되는 팀이다. 2002년도까지는 한국 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어서 팬이나 구단이나 우승 강박증에 시달리고 선수들은 새가슴 성향을 보였으나, 2000년대 우승을 여러 번 하면서 이런 점은 고쳤다. 하지만 김응용, 선동열로 대표되는 해태 출신 감독들의 영향으로 골수 팬들이 떨어져나가며 오히려 인기는 떨어졌다. 게다가 2002년 월드컵 여파와 이를 잇는 한국 최초의 시민 프로 구단인 대구 FC에 관심이 더 집중된 것도 이 상황에 한 몫 했다.

지금은 팬들의 힘이 세진 데다 프런트 내부의 지속적인 반성을 통해 선수들에게 연봉 높고 대우 잘해 주는 대인배 이미지의 좋은 팀이 됐지만 옛날엔 비싸게 사와서 쓰다 버리는 전형적인 삼성식 운영으로 악명이 높았다. 대표적인 예로 이만수, 김시진, 장효조 등 한국 야구의 전설이자 팀 프랜차이저들을 매몰차게 내친 것은 유명하며 원년부터 활동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공식 은퇴식을 치뤄 준 선수가 류중일, 김현욱, 김한수, 전병호, 김재걸, 양준혁 여섯밖에 없다는 것 자체가 선수들을 어떻게 생각해 왔었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19] 한화 이글스가 2군에 대한 투자를 거의 안 해준 데다 병X짓을 많이 하는 바람에 사실상 대인배 프런트라고 볼 수 있을지도 였으나 배영수 FA 이적 관련과 정현석을 다시 한화로 보내버리는 관련으로 인해 이미지가 다시 깎아 먹고 있다.. 그나마 한화도 프런트를 물갈이한 뒤에 다시 개념 프런트로 자리잡고 있다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갔다가 2014년 김성근 영입을 기점으로 다시 개념 프런트로 자리 잡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점은 한때 숙적이라 할 수 있던 해태에서 온 김응용 감독이 선수 대우를 개선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는 것이다.[20][21]는 것이다. 또한 일부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제외하고는 타 팀과 마찬가지로 은퇴한 삼성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위주로 코치로 전향시키면서도 높게 대우해 주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류중일, 김현욱, 김한수, 전병호, 김재걸은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면서 은퇴식까지 치른 후 현재 삼성의 감독이나 코치직을 역임하고 있었거나 역임하고 있다.

김응용 감독 시절까지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선수 영입으로 한국 야구계의 뉴욕 양키스 같은 올스타 팀 이미지였는데, 선동열 감독 부임 이후 선수 영입을 자제하여 그 이미지가 희석되었다. 가장 큰 계기는 전년도 우승 팀 현대에서 FA로 풀린 심정수와 박진만을 각각 4년 최대 60억, 4년 최대 39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돈[22]으로 영입하여 05년 우승을 이룬 이후, '그렇게 돈 써서 우승 못하는 팀이 어디 있냐'는 말에 기분 상한 선동열 감독이 FA 영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장원삼 사 올 때까지 445 크리 작렬

삼성에서는 개념이었던 감독이 타 팀에 가서는 역대급 막장이 되거나, 그 반대로 딴 팀에서는 명장인데 삼성에서는 도무지 적응 못하고 말아먹는 사례가 종종 보인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백인천. 김응룡도 한화에 가서는 막장 운영을 보여주며 커리어의 마지막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반대로 21세기 들어 야신으로 추앙받는 김성근은 삼성에서는 흑역사급 추태만 보여준 희한한 경우.

3. 팀 운영 방식

3.1. 막대한 투자

2002년 전까지 계속된 한국 시리즈 우승 실패로 인해, 외환 위기 이후에는 타 구단들의 경영난을 틈타 무지막지한 자금력으로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현대 유니콘스와 함께 야구계를 돈으로 양분하기도 했었다.

현금 트레이드로 데려온 임창용조계현(해태), 김기태김현욱(쌍방울)을 비롯해 2000년 FA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강철(해태)과 김동수(LG)를 영입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에는 박종호(현대)를, 2005년에는 가장 임팩트가 큰 박진만심정수(현대)를 FA로 영입했다. 이외에 해태에서 방출된 이순철을 영입하거나 선수협 파동으로 소속 팀과 갈등을 빚은 마해영을 트레이드해 데려오는 등, 한동안은 우승만을 위해서 외부 자원들을 마구 영입하기도 했다.

이렇듯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팀임에도 불구하고 2002년 전까지는 임팩트가 있는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세기 콩라인. [23] 분명 삼성의 공식 첫 우승은 1985년임에도, 삼성이 콩라인을 탈출한 건 김응용 감독과 김용일이 온 후 2002년 한국 시리즈 우승으로 알고 있는 야구 팬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삼성 구단과 선수, 팬들조차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한국시리즈 우승 뒤에야 85년 우승 기록도 자신있게 우승 기록으로 얘기하게 된다. 또한 다른 팀이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투자를 많이 하는 탓에 돈성, 돈성 타이콘츠[24]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나마 삼성이 돈성의 오명을 벗은 것은 김재박 당시 LG 트윈스의 감독이 '돈으로 누가 우승 못 해'라고 디스를 걸어[25] 빡돈 선동열 감독이 FA 영입을 자제한 이후부터이다.[26] 물론 삼성의 입맛에 맞는 FA가 별로 나오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이 부분은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지우지 않고 둔다. 저 때가 삼성이 돈성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시기이고, 그걸 극복해 나간 과정을 다룬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기실 박진만과 심정수 영입 후, 2009 시즌 개막 전 장원삼(히어로즈) 30억 현금 트레이드설 전이나 그 이후 타 팀에서 큰 돈을 들여가며 데려온 선수는 없다. 트레이드로 데려온 KIA의 손지환, 한화의 심광호 정도. 김재박 감독의 발언 후 2009년에도 처음으로 데려온 선수가 트레이드로 영입한 두산 베어스채상병. 이 경우는 좌완 투수 지승민과의 1:1 트레이드였으니 돈과는 상관없다. 그리고 진갑용현재윤의 부상만 아니었으면 당연히 하지 않았을 트레이드였다.[27]

김재박 감독의 발언 후 자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투타 라인을 리빌딩하면서 돈성 오명에서 벗어난 상태였으나 2008년 11월 14일, 히어로즈장원삼을 30억에 지르며 돈성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후 다른 6개 구단의 반발로 인해 트레이드 승인 불가를 받아 장원삼을 돌려보냈지만, 1년 후에 결국 영입했다.

선동열 감독도 FA 영입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었다. 2010년 거포 FA 김태균도 영입하려 했으나 엔화에 밀려 실패했다.

하여간 이런 인터뷰가 개그 소재가 될 정도로 삼성의 머니 파워는 대단했다.


2005년 KBS '미디어 포커스'에서의 전화 인터뷰 장면 캡쳐. 여담이지만 이 당시 프로그램에서는 케이블스포츠 채널 3사에서 삼성 경기의 중복 중계가 심각함을 제시했고, 스포츠 방송사들은 삼성 구단과의 계약(= 몇 경기 이상 중계하는 조건으로 돈 얼마를 받는 조건) 때문이라 주장했다. 이 장면은 그에 대한 반박[28]. 이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중복 중계는 심각한 수준이어서, 지금처럼 4개 채널이 확보되지도 않은 환경이었고 당시 신생 채널이었던 엑스포츠는 MLB만 중계하던 상황에서 삼성 경기 중계율은 100%를 초과했고 다른 팀들이 피해를 입었다. 특히 상대적 비인기 구단인 현대, SK(당시 중계율 7, 8위)가 많이 중계되지 못했다. 그러나 SK는 이 보도 이후 후반기 상승세로 결국 중계율 2위에 오른다. 응?

여기서 하면 돈질이지만 진짜 가난한 데서 하면 개국공신이다.[29]

우스갯소리로 돈이 없다, 없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 소유 토지 500억 매각 같은 기사를 보면 뭐...

3.2. 거지성?

류중일 감독 시절에는 정말로 외부 FA 영입에 돈을 거의 쓰지 않아서 팬들이 이제 돈성 소리 들어도 좋으니 제발 돈 좀 쓰라고 하는 지경에 다다랐다. 사실 2013년 기준으로 외부 FA를 9년째 잡지 않고 있는 팀이다. 특히 2013년 우승 이후엔 단장 송삼봉이 '50억이면 2군에 투자할 수 있는데 외부 FA를 왜 영입함?', '그 돈이면 특급 외국인 하나 데려오고 FA 하나 나가면 젊은 애들 1군에서 육성할 수 있음'이라는 개드립(...)을 친 덕에[30] 팬들마저 '우리는 더 이상 돈성이 아니라 거지성이다'라고 자조할 지경. 뭐 사실 이렇게 엄살(?)을 부려도 내부 FA는 잘 잡았다. 장원삼을 4년 60억 원에 잡았고 박한이를 4년 28억 원에 잡았으니... 볼드모트그 선수가 떠나긴 했지만, 이 경우에는 떠나기 전후의 성적으로 미뤄봤을 때 아시다시피 돈이 없는 구단인 삼성이 놓쳤다기보다 오버페이하기 싫어 놔준 것에 가깝다. 반드시 잡아야 하는 집토끼는 모두 단속해냈다는 이야기.

사실 프로야구 구단은 만년 적자 사업이기 때문에 윗선의 눈치를 봐야하고, 편성된 예산을 넘겨서 쓰기가 어려운데 FA에다 돈을 쓰면 기존 선수들에게 돌아갈 자금이 줄어들어 연봉이 깎이거나 하기 십상이기에 삼성의 선택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내부 FA를 놓치면서 육성 드립을 쳤다면 문제가 되었겠지만 잡을 FA는 다 잡았고, 외부 영입 없이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기에 겆성이라는 얘기는 좀더 전력 보강을 원하는 팬들의 아쉬움이 섞인 한탄이다.[31] 류현진의 포스팅비로 지갑이 두둑했던 한화 이글스나 신생팀인 NC 다이노스는 그렇다 치고, 2013년 FA 대란 때 외부 FA를 영입한 구단은 연봉 협상이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굳이 외부 FA에 휘말리지 않고 내부 FA를 알뜰하게 잘 잡는 삼성이 진정한 승리자일지도 모른다.

3.3. 우수한 선수 육성 및 재활 체계

삼성 라이온즈는 타 팀에서 가장 부러워할 만한 선수 육성 체계와 재활 시설을 갖추고 있다. 1군 경기장보다 더 좋은 경기장경산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와 용인에 있는 삼성 트레이닝 센터[32]가 그것.

1984년 삼성 라이온즈는 신인 육성 및 원활한 선수 수급을 위해, OB 베어스에 이어 두 번째로 2군을 창설했다. 고졸 연습생들을 영입해 2군을 만든 OB와 달리, 삼성은 코칭 스태프까지 따로 영입하며 2군 체제를 확립시켰다. 1987년에는 현재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경산 볼파크)의 모태인 경산 훈련장이 완공되었고, 1990년대에는 2군 선수들을 일본 추계 훈련이나 미국 교육 리그에 보내는 등 선수 육성에 힘써 왔다. 특히 1995년 시즌 후에는 2군 선수단 전원이 미국 교육 리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투자로 2군 리그에서 남부 리그 5년 연속(1994~1998)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환 위기2군 투자가 줄었고 결정적으로 매년 한국 시리즈 우승에 실패하면서, 성공 여부가 미지수인 신인 육성보다는 성적이 보장된 외부 선수 영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돈성'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외부 선수 영입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면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삼성이 오랜 기간 2군에 투자해 왔다는 사실은 묻혔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한국 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고, 선수 발굴과 육성 필요성을 느끼면서 다시 2군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이후 배영섭이나 최형우 등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우수한 활약을 펼쳐 주면서[33] 화수분 야구라 불리는 두산 베어스와 함께 우수한 선수 육성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에서도 김해에 상동 야구장을 짓는 등 2군 육성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 사례로 꼽힌다.

2011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계기로 3군을 신설하여 무한 경쟁 체제를 갖추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2012년 8월 포항 야구장의 완공 이후 향후 2군 선수단 이름 자체를 포항 삼성 라이온즈로 명명하며 모든 2군 경기를 포항에서 가질 계획을 세웠다. 이리하여 1군(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2군(포항 야구장) - 3군 및 잔류·재활군(경산 야구장)으로 이어지는 육성 체계를 구축하게 된 셈. 다만 계획대로 진행되면 1군 선수단이 2군이나 3군 육성군보다 더 안 좋은 구장에서 뛴다는 것이 유일한 오점이다 하지만 새로운 1군 전용 구장을 짓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신인 선수들에 대한 계약금과 연봉에도 후한 편이다. 매년 팀 성적이 상위권이다 보니 뛰어난 선수를 뽑기 어려워 상위 라운드 지명자의 계약금은 타 팀과 비슷하거나 적을 때도 있지만, 4 라운드부터는 타 팀 지명자보다 계약금을 좀 더 주는 편이다. 2010년 선수들 최저 연봉이 2천만 원에서 2천 4백만 원으로 오르자, 신고선수들 연봉도 똑같이 2천 4백만 원으로 올렸다. 타 팀의 경우엔 신고 선수라고 그들의 연봉을 최저 연봉보다 더 적게 주는 경우가 제법 된다.

3.4. 선수 대우

원년부터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그만큼 레전드 급의 선수들도 많이 나왔다. 이 부분은 아래 삼성 라이온즈/역대 선수와 같이 보면 좋다.

삼성답게 선수들을 대하는 방식이 직원들과 유사하다. 선수들의 평균 연봉이 높고[34] 제대로 된 2군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국내 구단 중 대우가 가장 좋은 곳이지만, 필요가 없어지면 칼같이 정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만수, 김시진, 장효조. 팬들의 목소리와 참여도가 커진 2000년 이후엔 많이 좋아졌지만 옛날 삼성은 그 어떤 프랜차이즈 스타라도 필요없다고 생각되면 가차없이 내치기로 유명했다. 또한 선수협 창단 때는 김기태를 앞세워 선수단 전원을 불참시켰고, 2009년 선수 노조 창단 때에도 삼성 그룹의 무노조 원칙 때문인지 선수들을 전원 불참시켰다. 이와 같은 현상은 LG 트윈스도 마찬가지였지만.

원년부터 출발하여 샛별 같은 대 스타들을 보유했지만 은퇴식을 치뤄 준 선수는 류중일, 김현욱, 김한수, 전병호, 김재걸, 양준혁 여섯 명뿐. 은퇴 경기는 2010년 9월 19일 양준혁이 최초로 은퇴 경기를 가졌다.

3.4.1. 은퇴식

특이하게도, 통산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닌 선수들의 은퇴식을 치러 주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병호김재걸. 하지만 이 둘의 활약상을 모르는 삼성 팬은 거의 없다. 특히 김재걸이 2005년 한국시리즈에서 한 일을 본다면…….

3.5. 왼손잡이

LG 트윈스 못지 않게 뛰어난 왼손잡이 선수들을 많이 배출했다. 특히 왼손잡이 타자의 경우 독보적이다.

당장 1983년에 입단하여 삼성 초창기 최고의 교타자로 활약했던 장효조를 시작으로 1993년에 입단하여 은퇴까지 삼성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양준혁, 그리고 좌완 투수로 입단했다가 타자로 전향한 뒤 현역 최고의 좌완 슬러거가 된 이승엽이 있다.본격 좌타대두본좌라인 그 외에 입단 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활약하여 외야 한 자리를 지키는 박한이좌타대두라인의 후예최형우, 비교적 늦게 각성한 채태인 등이 현재까지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반대로 초창기에는 이만수, 김성래, 강기웅으로 이어지는 뛰어난 오른손잡이 타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현재 주전으로 뛰고 있는 진퉁 우타거포는 박석민 정도 밖에 없다시피하다.[36]게다가 박석민도 해마다 잔부상으로 누적 스탯에 손해를 보는 편.

왼손잡이 투수의 경우는 좀 다르다. 오히려 창단 초창기에 비운의 만루홈런 사나이이선희와 프로 최초 100세이브를 달성한 권영호 등 뛰어난 좌완들이 많았던 편이지만 성준 이래로 삼성은 왼손투수 갈증에 늘 시달렸다. ??: 뭐요? 성준이 삼성 역대 좌완투수 중 가장 많은 승수(97승)를 올렸지만 구위보다는 제구 위주의 기교파 투수였고, 그나마 성준 이후 장원삼이 삼성으로 트레이드로 오기 전까지는 김태한, 전병호 정도가 활약한 것이 유일했다. 그나마 1990년대 삼성 투수 트리오 중에 김태한이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해보면 썩 좋은 편은 아니었으며, 그나마도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마구 굴린 탓에 조로한 경향이 있으며, 롱런한 전병호도 흑마구로 대표되는 기교파 투수였다. 지금은 넥센에서 트레이드가 한번 성사되었다가 무산된 뒤 다시 성사장원삼이 삼성의 전통인 좌완 기교파 선발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고보면 삼성의 경우 유독 좌완 스터프형 투수보다는 좌완 기교파 투수들로 계보가 이어져 왔는데, 2014년 시점에서 좌완 스터프형 투수로는 차우찬백정현 정도다.권혁도 있었지만 2014 시즌 이후 FA로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다.

3.6. 아마야구 지원과 리틀야구단

대체적으로 암울했던 2000년대 대구·경북 팜에 대해 삼성 구단이 아마야구 지원에 인색했던 것이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도 그럴 것이 김응용이 삼성 사장으로 있는 동안 모교 개성고 야구부 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침체에 빠진 모교 지원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사이 연고지의 경주고 야구부와 구미전자공고 야구부가 해체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연고지 야구부의 해체를 온전히 삼성 측의 잘못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것이, 구단의 지원 못지 않게 학교 차원에서의 야구부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경주고나 구미전자공고는 타 학교에 비해 학교 차원의 지원이 부족했었다[37]. 어쨌든 연고지 고교야구부 해체에 후술할 삼성기 대회 폐지나 리틀야구단 해체 등이 연달아 벌어지면서 아마야구 지원에 대해 소홀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모 감독 재임 시기랑 겹친다[38]

삼성이 그 이전에도 아마야구 지원에 손을 놓고 있었던 아니고 실제로 1990년대에는 아마야구 지원을 했었다. 1992년부터 유소년 및 고교야구 활성화를 목적으로 대구·경북 지역 초중교를 대상으로 한 삼성기 대회를 열었다. 삼성기는 1993년에는 고교까지 참가하는 대회로 확장했다가 IMF 사태로 축소됐다. 그 여파로 2000년에는 대회를 열지 않았고, 2005년을 끝으로 폐지됐다가 2011년부터 초중교를 대상으로 다시 부활했다. 2014년부터는 삼성의 1차 지명 대상지로 확장된 강원 영동 지역 초중교도 참가한다. 2011년 별세한 장효조 2군 감독을 기리기 위해 2012년 대회부터 타격 1,2위 선수들에게 주는 상을 '장효조 타격상'으로 명명했다.

1990년에는 프로구단으로는 최초로 구단에서 운영하는 리틀야구단을 만들었다.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이전부터 진행해 온 어린이 여름야구교실이 큰 인기를 끌어 아예 리틀야구단을 만들어 야구에 소질이 있으나 소속 학교에 야구부가 없어 선수가 될 기회가 없는 유소년 유망주들을 조기에 발굴·육성해 야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보내든지, 중학교로 진학시켜 야구선수로 육성하기 위해서였다. 삼성이 리틀야구단을 만들기 전에는 대구 지역에는 리틀야구단이 없었지만 이를 계기로 대구 지역에도 하나둘 리틀야구단이 생겨났다. 당시 스카우트를 맡으며 현장에서 멀어졌던 장효조가 명예 감독으로 있었고, 이밖에도 선수 출신 구단 직원들이 코치로 선수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선수들의 정신적인 성장을 목표로 두고 성적에 연연하지 않아 전국 규모의 큰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둔 적은 없지만 현재 리그베다 위키에 등록된 전현직 프로선수 중 강영식, 김인태, 손형준, 용덕한, 우동균, 유선정, 이상민, 이상호, 이정호, 임현준, 정병곤 등 11명이 삼성 리틀야구단 출신이다. 이밖에 과거 고양 원더스 소속으로 청각장애인 프로야구선수를 꿈꿨던 박병우도 삼성 리틀 출신.

이렇듯 리틀야구단을 통해 프로선수가 된 사례도 여럿 있었으나, 리틀야구단이 활성화되면서 다른 리틀야구단과의 지원에 대한 형평성을 두고 학부모들간 갈등이 조장되자 2008년을 끝으로 구단이 리틀야구단 운영을 포기했고, 2009년부터는 라이온즈 이름을 계승한 리틀야구단이 단독으로 운영하고 있다.

4. 야구장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을 메인 홈으로 쓰고 있다가 2012년부터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청을 겸하는 포항 야구장을 제 2 홈 구장으로 쓰고 있다. 향후 2군의 모든 경기는 포항 야구장에서만 치루어지며 1군 경기의 경우 30% 정도가 포항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런데 당초 계획과 달리 2013년에는 9경기만 포항에서 열렸다. 2015년에는 10경기가 포항에서 열릴 예정이다.

포항 야구장이야 신축 야구장이라지만, 어쨌든 KBO에서 최악의 홈 경기장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의 H 빔이 겉으로 드러나 있어 선수단 통로가 기울어져 있을 정도. 딱 하나 칭찬할 것이 있다면 대구역에서 엄청 가까운 위치 정도. 삼성이 한국 시리즈 V 1을 한 2002년부터 계속 새 구장 건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국 성사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대구광역시 쪽에서 돈이 없다는 이유로 계속 거절해 온 것이 가장 큰 이유.(돔구장 욕심도 있었지만)

그러다 2010년 대공원역 근처에 새 야구장을 건축하기로 했다. 2012년 5월에 새 구장 건축에 대한 입찰을 시도했지만 아무도 입찰을 하지 않아서 유찰되었다. 결국 대구시에서 시설 일부를 축소하여 재입찰하였고 7월에 이루어진 2차 입찰에서는 두 개의 업체가 참여하였다고 한다. 어쨌든 2012년 12월에 착공식을 가졌고 2013년 3월부터 대공원역 주차장으로 사용된 공터를 폐쇄하면서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자세한 내용은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항목을 참조할 것.

또한 넥센 히어로즈목동야구장과 함께 3루 측이 홈이다. 구장이 북서향이라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면 3루 쪽부터 그늘이 지고 1루 쪽으로 오랜 시간 햇빛이 쏟아지는 관계[39]로 보다 시원한 3루 쪽을 홈 팀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인조 잔디라 열기가 위에서 솟아오르고 대구 특유의 극악무도한 더위로 인해 몇 년간 삼성 라이온즈의 관중 동원력이 떨어진 데는 요 놈의 구장도 한몫했다. 낮에 경기할 땐 지옥이 따로 없다. 경기하다가 실신한 선수들도 부지기수. 2009년 5월 10일 LG와의 경기에서는 정성훈이 더위 먹고 쓰러진 적이 있다.

다만, 그에 비해 이전부터 2군 경기장으로 사용되던 경산시 진량읍 선화리의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는 메이저 리그 레벨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2군 구장은 천연 잔디에 환상적인 시설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1군 구장은…….

5. 삼성 라이온즈의 팬

5.1. 팬 숫자

원년 멤버가 전원 국가대표 출신인 전통적인 강팀이며 타격의 팀이었기에 야구 초창기에는 해태와 더불어 전국구 인기 구단이었으나 [40][41], 김응룡 감독 부임 당시 팀컬러가 라이벌 해태의 색으로 많이 흐려지며 연고지 내의 팬들이 떠나고, 또한 동시에 돈으로 우승을 샀다는 이미지가 생겨 전국적인 인기도 많이 감소하였다. 그래도 이승엽의 전성기였던 2003년도에 사상 처음으로 올스타에 9명의 선수를 보내는 기록을 세우며 인기를 자랑하기도 하였다.
이후 이승엽의 일본 진출과 삼성 구단+선동열 감독의 프랜차이즈 홀대가 어우러져 인기가 감소하였으나, 류중일 감독이 부임하고, 프랜차이즈 대우를 직접적으로 하기 시작한[42] 2011년 이후부터는 인기를 회복 중에 있다.

주로 나이 많은 팬들이 많아, 인터넷 상에서는 다른 팬덤에 밀리는 편이나, 2011년 부터 삼성 왕조가 시작되면서, 젊은 팬들의 유입도 많아져,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좌석 점유율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대구 시민 운동장이다.

하지만, 구장 자체가 너무 작아서 많은 누적 홈 관중 수를 기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대구 구장의 상태는 최악이다 보니 그 때문에 관람을 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설문에서 40%를 넘었을 정도다. # 또한 신규 구장이 건설될 경우 관람을 가겠다는 의견 또한 예측 수요는 거의 현재의 2배 수준. #

1990년대만 하더라도 해태 타이거즈에 맞먹는 인기를 자랑했다.# 당시 관중 수가 그 열악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임에도 불구하고 60만 명을 넘어선 적이 있을 정도.[43] 프로야구 인기가 절정이었던 2012년이지만 이 기록은 깨지 못한다고 한다. 90년대 13,000석이었던 관중석이 고급화로 인해 10,000석으로 줄어들었기 때문. 관련기사.

하지만 IMF가 터지고 축구가 급등하면서 프로야구의 인기가 전반적으로 떨어진 데다 2003년에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국민 타자인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나가면서 침체기를 겪게 된다. 이승엽이 떠나자 관중 수가 거의 반토막이 날 정도였다.
그 후에 프로야구의 인기가 다시 부흥했지만 선동열식 불펜 야구에 대한 재미의 반감과,[44] 대구의 청년층 대거 유출 등으로 인해 두산 베어스롯데 자이언츠등 타 구단들에 비해 팬 숫자 증가가 상당히 더디었다.

하지만 2011년 프랜차이즈 스타인 류중일 감독이 취임하고 불펜 야구뿐 아니라 과거의 공격력 회복을 선언했으며 또 좋은 성적을 냄에 따라 과거 라이온즈 팬들을 되돌리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국민 타자 이승엽이 복귀함에 따라 과거 인기를 점차 회복하고 있다.

삼성의 팬 숫자를 어림할 때 참고하는 자료로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팬 선호도 조사가 많이 거론된다. 조사 결과. 물론 통계를 맹신해서는 안 되지만 적어도 비인기 팀은 아니라는 데 반박하는 자료로 많이 쓰인다.80년대 한국프로야구 인기도 조사90년대 한국프로야구 인기도 조사

그리고 인기 없는 팀이라고 얘기가 나오는 것과는 다르게 한번도 관중 동원에서 꼴지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각 팀의 역대 최소 관중 기록을 보면 삼성이 177,774명(1988년, 경기당 평균 3,292명)인데 이는 LG와 넥센을 제외하곤 어떤 팀보다도 많다.'''.한국야구위원회~

즉 한번도 꼴지는 아니었고, 최고였던 적은 한번밖에 없어도(프로야구 원년에 330,467명 동원으로 1위) 인기 없는 구단 얘기를 듣기에는 무리라는 이야기이다.

2012년 관중 동원 순위도 4강(100만 이상) 4약(60만 이하) 형태인데 롯데 - 두산 - LG - SK - 넥센 - 삼성 - 한화 - KIA 순. 낙후된 홈 구장 상태를 생각하면 신 구장에 들어가면 반등의 여지가 충분하다.

매년 있는 갤럽 조사 외에도 2012년 시청률 순위를 참고해도 투표하고 경기장에 매일 가는 헤비 팬이 적을 뿐 실제 경기를 보고 응원하는 팬들은 많음을 알 수 있다. TV만 많이 봐도 문제긴 하지만

2013년, 2014년 상반기 야구경기 시청률 순위에서는 2위를 기록하며 예전 인기를 회복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4년 시청률 순위 결국 시즌말엔 1,2위인 KIA-롯데와 큰 격차 없는 시청률 3위를 했다.(4위인 LG와는 차이가 꽤 있다.)

5.2. 팬 성향

프로야구 원년부터 함께 한 전통있는 강호를 응원하는 팬들답게 '명문 구단 팬'이라는 자부심이 은근히 강하다. 다른 구단을 응원하는 팬들과 키배를 뜨거나 말다툼을 할 때 요긴하게 팀 성적을 써먹는다. 특징 중 하나를 들자면 구단 프런트와의 관계가 매우 좋은 편에 속한다는 점. 심지어는 선수협 문제라든가 9, 10 구단 문제 등에서도 구단을 옹호하는 팬들이 많다.

또한 같은 영남 구단 아니랄까봐 이따금 롯데 팬과 비슷할 수준의 성깔과 대범함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서는 대구아재 항목 참조. 물론 그 시절 전반적인 관중문화가 저런 성향이었던 것도 있지만 저런 단어가 나올 정도면 그 중에서도 만만치 않았던 걸 알 수 있다. 그나마 2000년대엔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해서 그런지 많이 누그러진 편인데 예전, 특히 전통적으로 콩을 많이 찍은 구단의 특성상 유독 포스트 시즌만 되면 경기마다 팬들이 민감해지고 평소엔 어차피 포스트 시즌은 나가니까 조용하던 이웃이 가을이 되니까 훌리건으로 변해 버리는 경우가 타 지역에 비해 자주 일어나는 편이다.

5.3. 4대 약점

삼성팬들 사이에서 흔히들 4대악 혹은 4대약점이라고 한다. 이 중 응원가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2014년을 기점으로 과거형이 되었다.[45]

5.3.1. 홈 구장

전국에서 제일 오래된 구장. 심지어 6.25를 겪고도 살아남은 구장. 대한민국 현대 건축 고고학의 성지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오래된 대구시민야구장을 아직도 홈으로 쓰고있다.
한때 포스코에서 무상으로 야구장심지어 그것도 돔구장으로 지어서 기부하려 했으나 그 조건 때문에(전 제일모직 부지에 업무단지 및 문화시설 건설허가 요구) 무산되었으며 그렇게 약 10년 가량 희망고문으로 지내야 했다.만약 대구에 최초의 돔구장이 건설되었으면 허구연 해설위원은 안티삼성이 아닌 삼성의 열혈지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참조.

현재 대구광역시 수성구 연호동에 신구장을 짓고있다. 2015년 가을에 완공될 예정이다. 해당 구장에 대해서는 대구야구장 항목 참조.

5.3.2. 용병, 혹은 용병 스카우터

갈베스로 시작해서 카리대로 끝나는 최악의 용병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삼성 못지않게 용병 잔혹사로 유명했던 한화엔 한때 제이 데이비스라는 최고의 용병이라도 있었지만...
다음은 그 역사를 써내려간 용병들의 간략한 설명이다.

1. 살로몬 토레스(2001)
2001 8이닝 20.25 2패 10K
당신이 아는 축구선수 그 토레스가 골을 잘 넣는 선수라면 삼성의 그 토레스는 팬들의 골을 앓게하고 감.
삼성 용병 잔혹사의 시초.
2. 발비노 갈베스(2001)
2001 116.2이닝 2.47 10승 4패 85K
요약하자면
출국해놓고 안돌아온다
코시직전에 돌아왔다
KS 망쳤다
콩성부활.
삼성팬이 기억하는 최악의 용병 중 하나.
3. 매트 루크(2002)
기록없음
그 이유는 4번타자감으로 기대했다가 시범경기에서 부상당하고 퇴출. LG의 아이바와 같은 케이스.
4. 브론스웰 패트릭(2002)
2002 77이닝 5.26 5승 7패 45K
5. 라이언 글린(2003)
2003 57.1이닝 5.02 1승 3패 1세이브 28K
삼성때의 따뜻한 추억을 잊지 못했던지 2011년 아시아시리즈 예선에서 퉁이 라이온즈 소속으로 최형우에게 투런포를 선물로 주셨다.
6. 트로이 오리어리(2004)
2004 0.265 10홈런 28타점
오리어리가 홈런을 치면 삼성팬들이 "오 리어리?"라고 했다
7. 맨디 로페스(2004)
2004 0.162 3홈런 8타점
오리어리 대신에 영입한 타자지만 한국에서 맨날 불만만 하던 오리어리보다도 못한 성적.
포스트시즌에서 0.462 2홈런 6타점기록했지만 정작 코시에서 망침
8. 루터 해크먼(2005)
2005 80.2이닝 4.80 3승 6패 57K
경기도중 선동열감독에게 공던지는 법좀 가르쳐달라고 요청한 일화가 있다.
9. 마틴 바르가스(2005)
2005 128이닝 5.06 10승 8패 66K
정말 선동열 스타일에 딱 맞는 불펜야구를 구사시켜준 투수, 그러니까 5이닝짜리 투수였다.
10. 브라이언 매존
2007 125이닝 4.18 7승 11패
Q : 오늘 선발이었던 LG 봉중근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나?
A: 전혀 알지 못했다. 미국에서 뛰는 미미한 모든 선수들에 대해서까지 알 수는 없다.
봉미미 드립의 시초. 그리고 정작 그는 미미한 활약을 하며 떠났다.
11. 제이콥 크루즈(2008)
2008 0.282 2홈런 1도루 21타점
당초 양준혁-심정수-크루즈로 이어지는 클린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한화에서 0.321 22홈런을 기록했던 외야수였으나 시즌 초반 나란히 부상을 당하면서 퇴출.
12. 탐 션(2008)
2008 26이닝 10.73 0승 6패 12K WHIP 2.31
"난 다양한 구종을 던질 수 있다. 그리고 빠른 템포의 경기 운영과 타자와의 승부를 즐기는 편이다."
탐 션하게 말아먹고 가셨다.
13. 오빠몰라(2008)
2008 82이닝 5.82 6승 8패 49K
탐 션하게 말아먹은 분 때문에 이분의 활약이 묻혔지만 무려 17경기나 선발충장한 선발투수라는 점.
탐 션과 손잡고 나란히 퇴출되었다.
14. 존 에니스(2008)
2008 29.2이닝 3.03 1승 3패 1홀드 20K
시즌 막판 부상당하고...중요한건 포시에도 망치고...그렇게 그도 같이 갔습니다.
15. 프란시스코 크루세타(2009~2010)
2009 157이닝 4.36 9승 10패 127K
2010 97.2이닝 5.25 6승 10패 78K
파워피처였으나 제구는 꽝. 재계약했으나 결과도 꽝. 하지만 인성만큼은 최고였다고...
16. 루넬비스 에르난데스(2009)
2009 57이닝 5.70 2승 3패 24K
부진. 부상 그리고 퇴출. 전형적인 삼성스러운 용병이었다.
하지만 방출 후 도핑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보임. 약을 빨고도 그 성적이라니
이 선수의 별명은 흑콜돼였는데 프로필 사진과 다르게 정말 브로콜리 돼지를 닮았다.
17. 브랜든 나이트(2009~2010)
2009 60이닝 3.56 6승 2패
2010 83이닝 4.54 6승 5패
에르난데스의 대체용병으로 좋은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2010년 식당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무릎을 크게 다쳤고,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어 임의탈퇴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듬해 넥센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삼성 킬러가 된다.
18. 팀 레딩(2010)
2010 35.1이닝 5.09 1승 3패 1홀드 19K
메이저 '한시즌' 10승투수였다. 하지만...
19. 라이언 가코(2011)
2011 0.243 1홈런 28타점
나믿가믿이란 말을 만들어낸 장본인.
20. 아네우리 로드리게스(2013)
2013 57.1이닝 4.40 3승 5패
'직구로 드리겠스' 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직구만큼은 위력적이었으나, 변화구만 던졌다 하면 끝없이 얻어맞았다.
그리고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간 뒤 퇴출당하고 교체용병이 오는데...
21. 에스마일린 카리대(2013)
2013 2이닝 27.00 1패
더이상 설명이 必要韓紙?

수년동안 철밥통이라고 욕을 먹던 용병 스카우터 이충무가 kt 위즈로 가게 되고, 그 잔혹사는 끝이 났다. 적어도 지금은.

5.3.3. 치어리더

배영수와 입단동기프랜차이즈 스타인 치어리더 노숙희가 2013년까지 활동했을 정도로우승반지만 6개![46] 구단에서는 치어리더 교체에 큰 관심이 없었다. 90년대 후반에는 박채경과 김순희라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치어리더도 있었으나 몇년 후 한명은 결혼을, 한명은 유학을 떠나며 치어리더에서 은퇴하게 된다.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 LG 트윈스의 강윤이, NC 다이노스의 김연정, 심지어 두산 베어스 서현숙과 넥센 배트걸 민수진, 그리고 롯데 배트걸 신소정도 전국적으로 인기몰이를 했지만 삼성 치어리더는 그렇지 못했다까이기 바빴다. 그래서 한 때 삼성 치어리더는 SSAT 성적순으로 뽑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2014년 이수진을 비롯한 새로운 치어리더들의 등장으로 삼성팬들은 드디어 흑역사가 끝났다며 기뻐하고 있다.

5.3.4. 응원가

위 세가지는 신구장 건설, 용병 스카우터 KT로 방출, 치어리더 교체로 끝이 났다. 오히려 현재는 내세울 만한 것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응원가는 김용일이 응원단장에서 물러난 후에도 스포츠쟈키라는 직함을 스스로 만들어 여전히 현 응원단장바지단장 옆에서 활동하며 희망이 보이질 않고 있다.응원단장을 바꿨는데 왜 응원가를 고치질 못하니

1990년대까지는 김한수 등의 괜찮은 응원가도 있었으나, 응원단장 김용일의 장기집권으로 흑역사가 되었다.
팀 응원가에 대해서는 다른 구단에 비해서도 괜찮다는 평이 있으나, 선수 응원가가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정도로 충격과 공포의 수준이다.

현역 선수중에는 대표적으로 채상병, 정형식, 강명구, 이흥련, 김헌곤 등이 있다.
상대편 덕아웃과 응원석에 디버프를 걸어서 정신공격을 한다는 말도 있다. 삼성 팬들과 선수들은 매일 듣다보니 이제는 단련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삼성 팬들은 선수 응원가는 쪽팔려서 부르는둥 마는둥 하지만 팀 응원가나 양준혁이나 이승엽의 응원구호 만큼은응원가가 아니니까 목이 터져라 부른다고 한다.내가 입을 다문 것은 응원구호를 외칠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자세한 것은 김용일 항목 참조.

6. 팀의 역사

6.1. 성적

통산 승리 1위(2011년 9월 11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KBO 구단 중 최초로 통산 2000승 달성), 통산 승률 1위, 통산 팀 홈런 1위, 특정 팀 상대 최다 승리,[47] 통산 팀 타율 1위, 단일 시즌 팀 승률 1위(1985년 0.706), 단일 시즌 팀 안타 공동 1위(1345개 2014년)[48], 단일 시즌 팀 홈런 1위(2003년 213개), 단일 시즌 팀 타율 1, 2위(2014년 0.301, 1987년 .300[49])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시리즈에 가장 많이 가 본 팀이며[50] KIA 타이거즈와 함께 KBO의 전통적인 강호로 손꼽히는 팀이다. 다만 두 팀의 강력함은 느낌이 조금 다른데, 타이거즈는 전성기 때의 무지막지한 강함으로 프로야구를 지배하였고, 외환위기로 잠시 주춤했다가 2009년 우승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 등 강약의 차이가 극명한 기복이 심한 이미지라면, 라이온즈는 소수의 예외 시즌을 제외하면 언제나 변함없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꾸준히 강력한 실력을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1990년대 두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였던 타이거즈의 이종범과 라이온즈의 양준혁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삼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우승하면 '음, 이번 시즌 좀 잘했구나'라는 분위기[51]이고, 4위 턱걸이로 플레이 오프 진출하면 굴욕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만약 5위 이하로 시즌을 마치면? 바로 흑역사로 기록된다. 11년을 참고 나서야 가을 야구를 한 모 구단팬들이 들으면 부러워할 소리. 실제로 삼성이 5위 이하로 내려간 시즌은 30시즌 동안 단 4회(나름대로 암흑기로 불리는 1994~1996년과, 5위를 기록한 2009년)뿐이다. [52] 또한 삼성은 최하위는 고사하고 가장 낮았던 순위가 1996년 6위(.448)로, 한번도 7위 밑으로나 3할 승률로 떨어져 본 경험이 없는데 일본프로야구요미우리 자이언츠메이저리그뉴욕 양키스조차도 최하위 경험이 한 번씩은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최훈이런 카툰을 그렸을 정도이니...[53]

1970년대 대구, 경북 야구가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 그 전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1980년대에는 한국시리즈 우승만 못했을 뿐 명실상부한 최강팀으로 군림했고, 1990년대 중반기에 잠시 침체기가 있었으나 후반기부터 부활하여 다시 리그를 주름잡는 강호로 군림하고 있다. 통산 최다 준우승팀으로 2002년 첫 한국시리즈 우승 전에는 라이벌 해태 타이거즈에 비해 큰 경기에 약한 팀으로 인식된 적도 있었다. 현재 한국 시리즈 준우승 9회로 최다이다. 한번만 더 한국 시리즈 준우승을 하게 되면, 전성기 타이거즈도 달성하지 못했다는 V 10(준우승)의 위엄을 달성하게 된다. V 10이 아니라 B 10이다.

통산 우승 횟수는 1985년 전·후기 리그 시절의 통합 우승 1회 + 2002년 첫 한국 시리즈 우승, 2005~2006년 2연패 이후로 2014년까지 총 8회로 2위.[54] 일부[55]에서는 1985년 우승을 계산에서 빼기도 하지만, 1985년 삼성이 전·후기 모두 가장 잘해서 한국 시리즈 자체가 열리지 않게 된 것이며, 사실 KBO의 인증으로 봐도 무엇으로 봐도 엄연한 우승이다.[56][57]

2002년 한국 시리즈는 한국 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명품 시리즈로 회자되는데,[58] 상대는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LG 트윈스였다. 1, 3, 4차전을 이기고 2, 5차전을 내준 상태에서 홈구장인 대구에 돌아와서 6차전을 치렀는데, 9회말까지 9-6으로 뒤지고 있었고 그대로 7차전까지 갈 가능성이 컸었다. 그러나 시리즈 내내 헛스윙만 하던 이승엽동점 3점 홈런을 쳐내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고, 다음 타자 마해영끝내기 홈런을 쳐서 결국 삼성은 한국 시리즈 한정 콩라인 탈퇴라는 숙원을 달성하고 한국 시리즈를 우승하였다.

일부 팬들이 콩성이라고 부르듯 지금의 영광스런 날이 있기까지에는 많은 곡절이 있었다. 준우승만 9회로 이 부문 1위인 비운(?)의 팀.[59] 2002년까지는 삼성도 콩라인에 있긴 있었다.[60] 그리고 준 플레이 오프에도 자주 진출했으나, 한국 시리즈 진출이 좌절되는 악몽도 여러 차례 겪었다(특히 역전패. 1999년 롯데 자이언츠에게 당한 대역전패는 아직도 명승부로 회자된다. 두산 베어스에 당한 2001 한국시리즈도 역시 마찬가지지만, 이때는 양준혁이 삼성에 없고 해태, LG에 있었다). 또한 원년에 한국 야구를 먹여 살린 두 개의 만루 홈런의 주인공이 된 허무한 팀.[61]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2년 연속 플레이 오프 진출 기록을 세운 팀으로,[62] 삼성이 플레이 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때는 1994~1996년과 2009년 단 네 번. 이는 1990년 플레이 오프가 도입된 이래 최소 기록이다. 사실 2000년에 드림 리그 3위로 떨어지며 연속 플레이 오프 진출 행진이 3연속에서 멈출 뻔 하다가 '드림 리그는 1부, 매직 리그는 2부' 라고 해도 믿을 만큼 성적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통에 매직 리그 2위였던 롯데 자이언츠보다도 승률이 더 높은 괴이한 현상이 발생하자 억지로 진출했다. 이 때문에 2000년 포스트 시즌에 5팀(!)이나 진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63]

11년 연속 플레이 오프에 진출한 2008년 7월 4강권에 조금 처진 5위에 머물러 이 기록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삽질만 하던 외국인선수 2명을 퇴출시킨 이후로 연승 행진, 2008년 전반기를 롯데와 반 게임차 뒤진 5위로 마감했고, 한화의 난조를 틈타 4위를 탈환했다.
그리고 마침내 9월 28일 경기에서 두산에 10-9로 승리, 12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을 이뤄냈다. 선수들의 줄 부상으로 라인업 대다수가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초중반의 어려움을 딛고 4위로 진출한 것 자체가 기적이다. 포스트 시즌 진출 이후 인터뷰에서 선동렬 감독은 외국인선수를 퇴출하고 연승을 거두기 직전까지 사실상 시즌을 포기했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시인했다.

2009년 롯데 자이언츠와의 플레이 오프 티켓 싸움에서 밀려 5위로 떨어져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기록은 12에서 멈추게 되었다.[64] 2010년 SK 와이번스에 이어 정규 시즌 2위를 차지하여, 1년 만에 플레이 오프에 복귀하게 된다.[65]

참고로 12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기록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장 기록. 2위 기록 역시 삼성의 1984~1993년의 10년(1985년 통합 우승 포함). 3위까지 와서야 KIA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의 1986~1994년의 9년의 기록이 나온다. 게다가 최근에는 삼성 라이온즈 스스로 5년 연속 진출에 성공하면서 다시 기록을 세우는 중이니 이제 7년 남았다.[66]

2014년 정규시즌 우승을 거두게 되면서 사상 처음 정규시즌 4연속 우승을 달성하였다. 정규시즌 연속 우승은 1996~1997년 해태 타이거즈, 2001~2002년 삼성 라이온즈, 2005~2006년 삼성 라이온즈, 2007~2008년 SK 와이번스 등의 2회 연속 우승 기록이 있는데 삼성이 처음으로 4연패를 달성한 것이다. 여기에 한국시리즈에서도 넥센 히어로즈를 4승 2패로 꺾고 통산 8번째 우승을 달성하면서 해태 타이거즈가 1986년~1989년에 기록한 4연패 기록과 타이 기록을 이루게 되었다. 무엇보다 해태 타이거즈는 그 기간 정규 시즌 우승을 1회(1988년)만 달성하였으므로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 기록은 2013년에 삼성이 기록한 3연패가 유일했으며,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통해 기록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2015 시즌에는 패넌트레이스 1위를 기록함에도 불구하고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서부터 올라온 두산 베어스에게 패배하고 우승을 놓치고 만다.

6.2. 연표

6.3. 관련 기록들

6.3.1. 역대 감독

이름 재임 기간 성적(승률)
1 서영무 1982~1983년 5월 27일 69승 40패 1무(63.3)
2 이충남[67] 1983년 5월 27일~1983년 10월 31승 36패 3무(46.2)
3 김영덕 1984~1986 197승 109패 2무(64.3)
정동진(감독 대행)[68] 1986년 4월 25일~1986년 5월 9일 5승 5패(50.0)
4 박영길 1987~1988 120승 94패 2무(56.0)
5 정동진 1989~1990 123승 110패 7무(52.7)
6 김성근 1991~1992 137승 112패 3무(55.0)
7 우용득 1993~1995 193승 172패 13무(52.8)
8 백인천 1996~1997 98승 103패 10무(48.7)
조창수(감독 대행)[69] 1997년 6월 24일~1997년 7월 31일
1997년 9월 4일~1997년 10월
22승 17패 2무(56.4)
9 서정환 1998~1999 139승 115패 4무(54.7)
10 김용희 2000 69승 59패 5무(53.9)
11 김응용 2001~2004 312승 204패 16무(60.4)
12 선동열 2005~2010 454승 380패 13무(54.4)
13 류중일 2011~2016 312승 199패 11무(61.1)
14 김한수 2017~

그 유명한 백인천 감독이 개념 있게 감독직에 충실했던 팀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백골퍼 소리는 들었지만(물론 강기웅, 김성래, 이종두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타 팀으로 보낸 것이 흠인 것은 사실이다.) 이승엽을 발견한 것[70]김태균, 김한수, 신동주, 정경배, 최익성으로 타선의 세대 교체를 한 것만으로도 그가 삼성에서 한 일은 대단하다.[71] 또한 백인천 감독 체제에서 주축 선수는 아니었지만 도중에 트레이드되어 꾸준히 백업 멤버로 활약했던 김종훈도 있었다.

이 멤버를 데리고 1997년 5월 초, 대구에서 정경배의 역사적인 연타석 만루 홈런을 포함해서 3일 동안 LG 트윈스를 상대로 17홈런을 때리며 49점을 내며 발라버리자 천보성 당시 LG 감독이 배트를 검사하라고 하는 바람에 이른바 부정 배트 의심 사건을 겪기도 했다(…). 이때부터 2003년까지 삼성 타선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승엽도 이 시즌부터 홈런왕의 기질을 보인다.

다만 백인천 본인이 포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포수 육성에는 실패했다는 것이 옥의 티.[72] 뇌출혈로 쓰러진 적도 있고 전병호의 뺨을 때린 사건도 있어 재계약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타자들을 키운 공 때문에 나중에 삼성의 타격 인스트럭터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롯데에 가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선동열 감독 체제에서, 숙원이던 한국 시리즈 우승을 2회(2005, 2006)나 해내 '공공의 적'으로 불렸다. 단 공공의 적임에도 불구하고 욕 먹은 것은 주로 야구 외적인 일이었고[73] 더티 플레이나 빈 볼 시비와 같은 야구 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깨끗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 특유의 무리한 계투진 운용과 타선의 리빌딩 지연, 선수들의 줄 부상으로 2008 시즌에서는 어려움을 겪었다. 더군다나 원년부터 이어져 온 골수 삼성 팬들은 전통적인 강타자 중심의 팀 컬러에 대한 향수와 함께 삼성 프랜차이즈 강타자이자 당시 SK 와이번스 수석 코치로 있던 이만수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74]

멍게강점기 선동열의 임기 6년 동안 삼성 팬덤의 단결력은 올드 팬 vs 2천년대부터 유입된 신규 팬, 연고지 팬 vs 타 지역 팬, 프랜차이즈 팬 vs 감독 팬 등의 대립으로 박살나다시피 했다. MLB 파크, 디씨 삼갤, 구단 공홈은 특정 세력이 완전히 장악하다시피 하고 다른 의견은 키배 끝에 잠수타고 있는 것이 현실. 그리고 서로 다른 커뮤니티를 까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선동열을 옹호하는 팬들은 기아 팬으로 의심 받는 현상 있었다. 특히 팀이 아무리 잘해도 안나타 나다가, 선동열 감독만 비난받으면 갑자기 삼성 팬임을 주장하면서 글을 적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이유없는 의심도 아니였다. 선동열 감독이 물러난 이후 실제로 기아를 응원하는 팬들도 다수 있어서 완전히 틀린 추측도 아니었다고.

2009년 5위로 마감하면서 12년간 이어오던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행진을 중단되면서 못해도 가을야구는 가던 삼성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고 2010 시즌 더 경기를 소화할 수 있는 양준혁을 사실상 강제 은퇴시키면서 일부 팬들의 반감을 샀다. 추가적으로 일본에서 부진하던 이승엽이 삼성 복귀를 얘기했을 때 "와도 자리가 없다"며 이를 거부함으로써[75] 삼성의 레전드들을 부정한 선 감독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악화되었고, 그해 한국 시리즈에서 SK를 상대로 4전 전패로 참담하게 패배하면서 선동열에 우호적이었던 많은 삼성 팬들은 급격하게 선 감독의 안티 팬으로 돌아섰다. 게다가 2011년 류중일 신임 감독이 선동열과 전혀 다른 투수 운용으로 놀라운 성적을 내는 바람에[76] 선수를 다루는 방식에서 더욱 대비되었고, 부임 후 4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 3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성적을 내며 삼성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류중일 감독의 도움으로 이승엽은 8년만에 고향 팀 삼성에 복귀하여 팀의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기에 선동열 감독의 "와도 자리 없다" 라는 말을 무색하게 했다. 거기다 2014년에 선동열과 마찰을 일으켰던 임창용이 삼성에 다시 복귀하여 마무리를 맡아 불펜의 중심 축 역할을 하고 팀 통합 4연패의 주역이 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 많은 삼성 팬들에게 선동열금지어가 되어 버렸다.

한때 기아 팬들은 선동열이 삼성을 두 번이나 우승시켜 줬는데도 싫어한다고 삼성 팬을 깠다. 기아 팬들이 2009년 정규리그 우승과 2009년 한국 시리즈 우승을 시켜준 조범현을 깐 건 비밀 그러나 기아팬들 역시 처음에는 해태 프랜차이즈 선수출신 선동열 감독 부임을 열렬히 환영했지만[77] 우승은 커녕 몇년간 성적이 바닥을 보이자 이제는 기아 팬들도 대부분 선동열을 깐다. 그리고 하위권을 맴돌던 기아 타이거즈 성적으로 인해 선동열이 삼성을 우승시킨 게 아니라 삼성이 선동열에게 우승을 안겨 주었다는 것이 이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2015시즌에서 우승을 놓친 류중일도 비슷한 의혹을 받고 있다

6.3.2. 역대 성적

­ 우승
­ 준우승
­ 포스트시즌 진출 시즌
­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연도 페넌트레이스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 승률
1982 2위/6팀[78] 준우승 삼성 라이온즈 80 54 0 26 0.675
1983 4위/6팀[79] 4위 100 46 4 50 0.479
1984 2위/6팀[80] 준우승 100 55 0 45 0.550
1985 1위/6팀[81] 우승 110 77 1 32 0.706
1986 1위/7팀[82] 준우승 108 70 1 37 0.654
1987 1위/7팀[83] 준우승 108 64 0 44 0.593
1988 4위/7팀[84] 3위 108 56 2 50 0.528
1989 4위/7팀 4위 120 57 5 58 0.496
1990 4위/7팀 준우승 120 66 2 52 0.558
1991 3위/8팀 3위 126 70 1 55 0.560
1992 4위/8팀 4위 126 67 2 57 0.540
1993 2위/8팀 준우승 126 73 5 48 0.599
1994 5위/8팀 5위 126 60 2 64 0.484
1995 5위/8팀 5위 126 60 6 60 0.500
1996 6위/8팀 6위 126 54 5 67 0.448
1997 4위/8팀 4위 126 66 7 53 0.552
1998 2위/8팀 3위 126 66 2 58 0.532
1999 매직 1위/4팀 3위 132 73 2 57 0.562
2000 드림 3위/4팀 3위 133 69 5 59 0.539
2001 1위/8팀 준우승 133 81 0 52 0.609
2002 1위/8팀 우승 133 82 4 47 0.636
2003 3위/8팀 4위 133 76 4 53 0.589
2004 2위/8팀 준우승 133 73 8 52 0.584
2005 1위/8팀 우승 126 74 4 48 0.607
2006 1위/8팀 우승 126 73 3 50 0.593
2007 4위/8팀 4위 126 62 4 60 0.508
2008 4위/8팀 4위 126 65 0 61 0.516
2009 5/8팀 5위 133 64 0 69 0.481
2010 2위/8팀 준우승 133 79 2 52 0.594
2011 1위/8팀 우승 133 79 4 50 0.612
2012 1위/8팀 우승 133 80 2 51 0.611
2013 1위/9팀 우승 128 75 2 51 0.595
2014 1위/9팀[85] 우승 128 78 3 47 0.624
2015 1위/10팀 준우승 144 88 0 56 0.611
2016 9위/10팀 9위 144 65 1 78 0.455
2017 9위/10팀 9위 144 55 5 84 0.396
2018 6위/10팀 6위 144 68 4 72 0.486
2019 -위/10팀 -위 144 - - - -
KBO 통산 V8 4627 2520 102 2005 0.557

다른 팀에게는 중박이라 평가받는 성적이 삼성에게는 흑역사라는 불편한 진실
포스트시즌 진출한 해 보다 실패한 해를 하이라이트 하는게 더 빠르다. 우승한 해보다 가을야구 못한 해가 더 적다!

그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항목 참조.

9. 영구결번

현재 2개의 번호가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
No.10

장효조양준혁이 달았지만, 양준혁의 번호로 처리되었다. 장효조가 선수협 파동에 연루되어 롯데로 이적해 삼성 소속으로서의 성적이 다소 모자라며, 통산 기록에서도 타율과 출루율을 제외하면 양준혁이 장효조를 월등히 앞서기 때문. 타율은 장효조가 1푼 5리 앞서고 출루율도 1푼 앞선다.

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
No.22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선수였던 포수 이만수의 번호이며 2003년에 지정되었다. 다만 은퇴식은 치르지 않았다. 구단과 모양새가 좋지 않게 헤어졌기 때문.

이외에도 이승엽의 36번은 이승엽 은퇴 후 영구결번이 예정되어 있고[86] 오승환의 21번은 현재 준 영구결번 상태로 이후 영구결번 가능성이 있다.

10.1. 과거 지역 연고 학교

이하는 과거에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연고 대상 학교였으나 폐부된 학교들이다.
  • 경주상업고등학교 : 1983년 창설, 1985년에 해체되었으며, 지명 대상이긴 했지만 해당 야구부에서 프로 야구단에 입단한 사례는 없다.
  •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 2003년 창설, 2009년 해체되었다. 홍효의, 추승민 정도가 있지만 프로야구에서 눈에 띄게 활동한 사례는 없다.
  • 대건고등학교 : 1970년 창설, 1977년 해체되었다. 대건고 출신 선수로는 권영호, 박승호, 허규옥, 장태수가 있으며, 해체 당시 선수들은 모두 충암고등학교로 전학가 충암고의 우승멤버가 되었다. 이 때 충암고의 우승 멤버가 된 대건고의 마지막 멤버가 조범현이다.
  • 성광고등학교 : 1981년 창설, 1989년 해체되었다. 유명 선수로는 이상목이 있다.
  • 영남고등학교 : 1968년 창설, 1974년 해체되었다. 실업 야구에서 활동하던 선수들은 있었으나, 삼성 창단 시에는 아무도 창단 멤버로 지목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프로 야구단에 입단한 사례는 없다.
  •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 2013년 같은 재단의 포항제철고등학교로 야구부가 이관됨. 포철공고의 역사는 포철고에 이관되어 있으므로, 위의 해당 항목 참조.

11. 특기 사항

sl110.jpg
[JPG image (Unknown)]

sl111.png
[PNG image (Unknown)]

  • 2002년 우승 엠블럼이 무려 6개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6개의 엠블럼이 섞여서 사용 중이며, 특히 마스코트가 들어간 엠블럼이 널리 퍼졌다. 하지만 2002년 우승 당시 선수들이 입은 우승 티셔츠와 역대 우승 엠블럼을 장식한 구단 버스를 보면 알수있듯이, 6개의 엠블럼 중 대표 엠블럼은 마스코트가 아니라 구단명이 들어간 엠블럼이다.

  • 타 팀에는 없는, 이만수-양준혁-이승엽이라는 본좌 라인 계보를 만든 팀이다. 자세한 쪽은 본좌쪽을 참조.

  • 그리고 포스트 시즌 한정 전승준포스트 시즌 한정 전패준이라는 흠좀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포스트 시즌 한정 전승준은 1990년, 포스트 시즌 한정 전패준은 1987년).[88]

  • 소속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에 남을 대기록을 세우면 팀이 지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 단, 예외적으로 양준혁이 2000안타를 기록 했을 때에는 팀이 이겼다.(6대1로 승리 상대는 두산 베어스) 물론, 기록의 성립 조건 중 하나가 팀의 승리일 때도 예외이다. 권영호의 프로 통산 첫 100세이브, 오승환의 최소경기 100세이브, 김시진이상목의 개인 통산 100승 등, 공교롭게도 100승을 올린 두 명의 투수가 등 번호 29번이라는 게 흠좀무.

  •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쌍두 마차 라인도 있다. 여기서 쌍두 마차 라인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 장효조-김시진(1983~1988) : 역대 최강의 투타 쌍두 마차. 그러나 큰 경기에서는…….
    • 류중일-강기웅(1989~1996) : 말이 필요 없는 KBO 사상 역대 최고의 키스톤 콤비.
    • 김재걸-전병호(1996~1998, 2001~2008) : 김시진-장효조의 완벽한 리버스 버젼. 얼핏 보기엔 각각 우투우타-좌투좌타로 투타도 정반대고, 김시진-장효조에 비하기도 민망한 초라한 정규시즌 성적을 가졌지만 이 두선수는 전형적인 가을에 미치는 선수였다. 이 두선수는 특히나 2002년 한국시리즈2005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있어 시리즈의 분위기를 삼성 쪽으로 가져오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었다. 과장 약간 덧붙히자면 이 두선수가 없었다면 각각 마해영과 오승환에게 활약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양준혁-이승엽(1997~1998, 2002~2003) : 말이 필요없는 프랜차이즈 거포 쌍두 마차.
    • 강봉규-김창희(2006~2008) : 두산 시절부터 이어진 외야수의 쌍두 마차.
    • 강동우-박한이(2001~2005) : 삼성의 외야를 책임진 "수비되는 외야수" 라인. 농담이 아니라 당시 삼성은 전임 서정환의 뻘짓과 김응용의 좌타자 사랑(...) 때문에 김기태-마해영이 외야수비를 보는 등 그야말로 외야 코너에 헬게이트가 열린 상태였다. 이 후 2002년 시즌 전 트레이드로 외야 자리가 정리 될때까지 두 선수가 고생해야 했으며, 이승엽과 마해영이 이적한 2004년 이 후에는 박한이는 상위 타순에서, 강동우는 하위타순에서 활약하며 팀의 물타선을 간신히 지지했으며 양준혁이 1루수로 전업하면서 다시 구멍이 생길뻔한 외야라인을 잘 메꾸는 역할을 했다.
    • 박진만-박종호(2005~2006) : 현대 시절부터 이어온 키스톤 콤비, 그러나 신명철의 합류와 박종호의 부상, 뒤이은 박진만의 노쇠화 등으로 인해 활약 기간이 길지는 않았던 콤비.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삼성 팬들 간에도 심정수와 함께 최악의 듀오로 뽑는 사람과 삼성의 2회 우승을 시켜준 수훈갑으로 손꼽는 사람, 그저 현대의 전력 약화 외에는 큰 의의가 없다는 사람 등등 팬들의 의견과 평가가 많이 엇갈리는 콤비이다.
    • 권혁-권오준(2005~2012) : 권오준이 계투가 되면서 탄생한 그 유명한 쌍권총 조합. 둘 중 한명이 부상당하면 권오원이 대신 들어가기도 했다. 2013년엔 권오준은 수술, 권혁은 부진으로 임시해체 되었으며 권오준의 복귀가 미루어 지는 바람에 사실상 2015년 이후를 기약해야 했으나 FA로 권혁이 팀을 떠나게 되면서 재결성은 불가능해졌다.
    • 권오준-오승환(2005~2012) : 안정권KO 항목 참조.
    • 박진만-신명철(2007~2010 초) : 수비 한정으로 생각보다 궁합이 잘 어울렸던 키스톤 콤비. 하지만 박진만이 글러브 모드가 된데다 김상수가 치고 올라오면서 해체되었다. 이 두선수다 타율은 이 시기에 어마무시하게 낮았지만 수비 능력 만큼은 리그 탑을 다퉜으며 특히 2008년 플레이오프에서는 타격이나 투수의 구위가 아닌 야수의 수비만으로도 야구를 지배할 수 있다는걸 보여줬다.
    • 강봉규-신명철(2009 한정) : 단기 임펙트는 최고였던 라인. 이 해 두 선수의 활약은 다른 년도와 비교해 볼 때 신기할 정도였다.
    • 김상수-김상수(2009)
    • 김상수-신명철(2009~2011) : 상당히 미묘한 콤비. 09년에 당시엔 2루 유망주였던 김상수가 주전을 위협하자 신명철이 무려 20-20을 달성해 버렸다. 이때 김상수에게 붙은 별명이 신명철 부스터. 이 후 신명철이 10년에 준수한 활약을 했을 땐 김상수가 부상 휴우증으로 부진했고, 김상수가 활약한 11년엔 신명철이 본인 커리어 평균인 2할 초반 타율을 기록하며 부진하기 시작해 12년 부턴 1군은 고사하고 3군으로 분류되는 지경에 이르다 KT로 이적하며 해체되었다. 김상수는 각성의 계기를, 신명철은 수비 노하우를 서로에게 주었으나 정작 동시엔 안 터진 엇박자 콤비.
    • 박석민-최형우(2008~) : 박석민은 우타, 최형우는 좌타라 삼성의 좌우 쌍포라는 이미지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채태인도 성적이 좋으면 여기 끼기도 한다. 2014 시즌에는 아예 이 두명이 특정선수 최다 백투백 홈런 크보 신기록을 아예 갈아치워 버렸다.
    • 차우찬-장원삼(2010~) : 삼성의 2010년대를 책임지는 좌완 듀오. 10년엔 이 두 명이 원투 펀치였다.
    • 윤성환-장원삼(2010~) : 마찬가지로 2010년대의 삼성을 책임지는 좌우 선발 듀오. 둘 다 구속보다는 제구 위주의 피칭을 하는 선발들이다. 그리고 둘 다 격년제 징크스가 있는 것도 똑같다(...)[89]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이 두 선발이 4승을 하드캐리했다.
    • 안지만-오승환(2011~2013) : 역대 최고 수준의 우완 계투 듀오. 13년엔 살짝 흔들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계투진의 쌍두 마차다. 지금은 오승환의 한신 타이거즈행이 확정 되면서 해산.
    • 오승환-진갑용(2005~2013) : 2005년 이후 우승 5회를 이 배터리가 매듭지었다. 경기 후 특유의 세레모니가 트레이드 마크인 최고의 콤비. 역시 오승환이 2013년을 끝으로 한신에 입단하면서 해산.
    • 잉영욱-잉여욱(2014~)
    • 야마이코 나바로-이승엽(2014) : 이 두선수는 얼핏보기엔 연관점이 없어 보이지만 댓글 창에서는 항상 묶여서 언급된다. 그 이유인 즉슨 두 선수다 클린업 트리오에 속하지도 못하는데 팀내 홈런 1, 2위를 다투고 있기 때문. 그래서인지 삼성의 타선을 칭찬하는 댓글에는 높은 확률로 1번과 6번이 30홈런 치는 무서운 팀이라는 소리가 언급되곤 한다.

  • 1995년부터 사용된 그림판 마스코트는 예나 지금이나 상당히 잘 나온 디자인이다. 물론 여러 스포츠에서 우려먹긴 했지만(농구, 배드민턴, 럭비단, 배구단) 사실 이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농구대잔치에서의 마스코트부터였다고 2008년부터 팀 로고와 색상이 바꿨어도 디자인은 그대로인 듯. 가히 본좌급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마스코트를 디자인하던 분이 나중에 현대 유니콘스의 마스코트의 디자인도 하셨다. 구 버전(1995년~2007년)과 신 버전(2008년부터)의 색상 차이는 다르지만 캐릭터 디자인 자체는 같은 편인데 구 버전 마스코트의 경우 파란색의 색상을 띄며 유니폼의 색상에 알맞게 하는 반면에 신 버전은 짙은 하늘색의 색상을 띄게 한 점이다. 참고로 구 버전의 파란색과 신 버전의 짙은 하늘색. 각각 우승 경력이 3회씩이나 있다(구 버전 파란색 마스코트는 2002년, 2005년, 2006년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신 버전 짙은 하늘색 마스코트는 통합 4연패 기간 동안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 1995년 시즌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5회와 6회의 대량득점으로 역전하다가 대량실점을 하는 바람에 재역전패를 거둔 바 있다. 그 당시 7회에 11점이나 실점했는데, 이닝 점수를 두 자리로 찍을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11 대신 B라는 글자가 찍혔었다. 16진법 2008 시즌에도 SK 와이번스한테 0-18로 처참하게 패배했는데, 8회에 11점을 실점하는 바람에 전광판에 B가 찍히는 진풍경을 13년만에 다시 볼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로 삼성 라이온즈는 B성 라이온즈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2001년 한국 시리즈 4차전이 나선다면 어떨까?[90] 2013년 6월 6일에는 이닝별 점수는 아니고 총 사사구 수 11개를 기록하며[91] 또 전광판에 B를 띄웠다.

  • 선수단 홈피는 삼성 홈피 쪽이 KBO 홈피 쪽에 비해 더 깔끔하다. 2011년 6월에 새로 홈페이지를 단장했다. 팬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자기 소개 영상으로, 코칭 스태프부터 신고 선수까지 자기 소개 영상이 있다. 단점이라면 피드백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업데이트도 상당히 늦다.

  • 선수들이 전부 개그 본능이 충만하다. 대표적인 개그맨 박석민을 시작으로 채태인, 정인욱, 안지만, 진갑용 등 거의 모든 선수들이 입담이 좋고 성격이 밝다. 외모에서도 날카롭거나 잘생긴 선수들은 딱히 없고 개구장이 같이 정감 가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는 외국인 투수들과 외부 영입 선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덕분에(?) 8개 구단 팀들 중 가장 팀 분위기와 팀워크가 좋은 팀들 중 하나로 뽑힌다. 이 때문에 생긴 별명이 개그 라이온즈(...).

  •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선수들의 외모가 역변하는 것을 삼적화라고 한다. 항목 참조.

  • 한때 마스코트인 사돌이와 사순이(블레오)의 엽기 행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최근 몇 년 동안에는 거의 없었지만, 옛날에는 빈볼 시비가 여러 차례 있긴 있었다.(배영수-펠릭스 호세, 이승엽-서승화)

  • 2008년 7월 19일 토요일, 삼성은 1985년 통합 우승 기념 올드 유니폼을 입었는데 초반에는 한화가 2-1로 승기를 잡을 듯했으나 실책과 투수의 폭투로 인해 2-2 동점, 박한이의 역전타로 4-3으로 승리했다. 올드 유니폼은 의외로 예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이후로 올드 유니폼 데이를 한번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미스터리.[92]

  • 전 응원단장인 김용일이 안 좋은 의미로(…) 유명하다. 자세한 사항은 김용일 항목 참조.

  • 오래된 종특 특징으로 유독 외국인 투수와 신인 투수에게 약하다. 외국인 투수에게 약했던 역사는 꽤 오래되어서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후 부터 내내 약했으며[93] 소위 말하는 먹튀급 선수를 제외하고는 삼성 상대로 성적이 안 좋았던 투수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 거기에 어느 순간부터 신인이나 1군 등판 경력이 거의 없어 처음 만나는 투수들에게도 약점을 잡히는 경우가 많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이승우, 강철민, 송창식, 유희관 등. 특히 강철민은 사이버 투수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며 송창식도 버거씨병 이후 복귀해서 첫 승리를 삼성에게 따냈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좀 심각한 수준. 하지만 두 번째로 만나면 얄짤없다. 그래서 감독들이 삼성 상대 첫경기를 치룬 투수들을 다시 올리면서 "저번에 잘 던졌으니 삼나쌩이겠지"라며 방심하다가 역관광당하는 사례도 많다.[94] 팬들 중에서는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같은 에이스 투수에게도 물론 약하다면서 종특으로 꼽는 사람도 있는데 [95] 그리고 애초에 잘하니까 에이스인 것이고 특정팀에 유독 털리면 에이스 소리 못 듣는다. 류현진이 특정팀에 특별히 약했던가? 다시 말해 에이스니까 강한 거지 삼성이라서 에이스가 이긴 게 아니란 소리. 그러니 에이스 선수를 빨자

  • 외국인 선수를 잘 뽑지 못한다는 특징이 존재한다. 자체 밸런스 패치 모두들 삼성에서 왜 외국인 스카우트를 해고하지 않는지 궁금해할 정도. 여기서 설명하는 선수들 외에도 너무나도 많은 외국인 선수가 망했지만 대표적으로 온갖 말썽을 일으켰던 발비노 갈베스트로이 오리어리, 톰 션, 라이언 가코, 에스마일린 카리대 등이 있다. 그래도 스캇 베이커, 찰스 스미스, 매니 마르티네스, 나르시소 엘비라, 팀 하리칼라, 제이미 브라운, 브라이언 고든, 미치 탈보트, 덕 매티스, 저스틴 저마노 등 무난한 케이스도 없지는 않은데, 워낙 대차게 말아먹은 저들의 임팩트가 커서(...)

    정확하게 외국인 선수들을 잘 뽑지 못했던 것은 외국인 스카우트를 맡았던 이문한이 2008년 즈음에 그만두면서 외국인 선수 통역을 맡았던 이충무가 대신 외국인 스카우트를 맡게 된 후부터다. 이충무는 미국의 한 에이전트 사에서 한국과 일본 프로구단의 외국인 선수 계약 및 스카우트 업무를 맡아왔고, 추신수의 에이전트로도 일하기도 했다. 그러한 이충무의 경력 탓에 삼성이 그에게 외국인 스카우트를 맡였으나 이충무는 원래 스포츠 마케팅이 전공이라 현장과는 거리가 있어 스카우트로서 적합한 인물은 아니었다. 어쨌든 삼성에 외국인 흑역사만 선사한 이충무는 2013년 중반 KT 위즈로 옮겨갔다. 그리고 2014년 용병은 대박이 터졌다

  • 대구 지역을 연고로 써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독 여름에 승률이 좋다. 다른팀은 퍼질 때 "대구에 비하면 이 정도쯤이야"라는 듯 선수들이 체력 저하 없이 멀쩡하게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오죽하면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다 죽었다"는 구단 관계자의 농담까지 나올 정도이며, 이를 빗대서 봄데, 여름성, 가을슼, 겨울쥐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 법칙은 2013년에는 지구온난화깨졌다.[96]

----
  • [1] 2008년부터 사용 중인 로고.
  • [2] 도시연고는 대구광역시지만 광역연고로 보게된다면 경상북도 전역과 강원도 영동 지역을 아우른다.
  • [3] 롯데 자이언츠와 함께 원년부터 지금까지 스폰서 기업명과 팀명이 모두 동일한 유이한 팀.
  • [4] 이재용이 아니다! 삼성생명의 회장.
  • [5] 2016년부터 대구야구장으로 옮길 예정이다. 그때까지 완공된다면 말이지...
  • [6] 제 2구장.
  • [7] 전후기 통합우승
  • [8]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전후기 통합 우승. 이 때문에 1985년에는 한국 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다.
  • [9] 한국프로야구 첫 우승팀이자 유일한 우승팀. 삼성 말고는 아시아시리즈를 우승한 한국프로야구 팀은 아직도 없다.
  • [10] 2011년은 한국프로야구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달성했고, 아시아시리즈 우승까지 가져가면서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트리플크라운(정규리그+한국시리즈+아시아시리즈)을 달성한 유일한 팀이 되었으며, 삼성의 역대 최고의 한 시즌이 되었다.
  • [11] 2010년대 한국프로야구 최강의 왕조, 롯데 자이언츠와 함께 원년부터 연고지와 이름 변경없이 KBO 리그를 지켜온 두 팀중 하나이자,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다승 기록을 가진 한국프로야구의 명문 구단이다. 여기서 '팀 이름'을 '라이온즈' 같은 고유명으로 한정하면 2000년대부터 야구 본 사람들은 '그럼 두산과 KIA도 있지 않느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두산은 대전에서 서울로의 연고 이전이 있고, KIA는 해태에서 구단을 인수해온 것이니 정말로 엄밀히 말하면 삼성과 롯데만이 원년부터 변하지 않은 구단인 것이다.
  • [12] 롯데 자이언츠보다 약간 진한 색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주리 블루에 더 가까운 색.
  • [13] 로열 블루나 코발트 블루 중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 [14] 삼성전자 27.5% + 삼성SDI 15% + CJ제일제당 15% + 신세계 14.5% + 삼성전기 12.5% + 삼성물산 7.5% + 제일기획 3.0% + 이건희 2.5% + 제일모직(구 삼성에버랜드) 2.0%. 삼성 라이온즈는 나눠갖지말고 다 같이 공동 운영 하게 하려 했다고..
  • [15] 참고로 기사에 따르면 2015년 이후로 삼성 라이온즈도 제일기획 산하 구단으로 변경 된다는 말이 있다. 제일기획에서는 부인했다 기사.
  • [16] 이건희 회장이 도쿄돔을 방문하고 나서 돔구장+스포츠 레져센터로 수익사업을 내려고 했었으나 돔구장이 나가리 되면서 레져센터만이 남은 것(...). 의외로 수입이 짭잘하다고 한다.
  • [17] 무엇보다 LG 트윈스는 월드컵이 열린 2006년, 2010년에 각각 최하위, 6위라는 안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거만 빼면 월드컵이 열리는 해의 성적은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한국시리즈 4번 진출하여 우승 2번(1990년, 1994년)하고, 준우승도 2번 했다(1998년, 2002년). 1982년, 1986년에도 3위를 했지만 그때는 전후기 우승팀끼리 한국시리즈 진출했던 시절이라 빛이 바랠 수 밖에 없다.
  • [18] 어디까지나 '야수진에 비해서'이다. 실제로 1980~1990년대 리그를 대표할만한 특급 투수들도 상당수 있었고, 2000년대에도 생각보다 투수력은 준수한 편이었다. 팀 평균 자책점 또한 상위권.
  • [19] 김재걸, 양준혁은 사실상 최근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20] 김응룡 감독은 구단 측에서 별로 불러오고 싶지 않아 했던 양준혁을 다시 삼성으로 불러들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 [21] 예외야 있겠지만 대부분의 삼성 팬들은 김응룡 감독이 처음 삼성에 부임했을 때는 크게 반발했지만 첫 한국 시리즈 우승 이후에는 그러한 여론은 수그러들었고 선동열 감독과는 다르게 싫어하지 않는다. 일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던 2002년 한국 시리즈의 이미지가 워낙 좋고 이후에도 부임하고 있는 동안 포스트시즌은 꾸준히 진출한 데다 팀 정체성을 딱히 바꾼것도 아니라 삼성 팬들의 김응룡 감독에 대한 이미지는 나쁘지 않다.
  • [22] 심지어 심정수의 4년 60억 FA 기록은 2013년에 와서야 깨졌다.
  • [23] 물론 1985년 통합 우승이 있고, 1987년 통합 1위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인정하는 우승 팀은 한국 시리즈 우승 팀이었다. 1985년 한국 시리즈는 열리지 않았고, 1986년부터 바뀐 룰에 의해 전후반기를 휩쓴 팀도 2위 팀과 한국 시리즈를 치르게 되었는데 1987년 한국 시리즈가 그러했다. 전후반기 1위 팀이라는 위치에 맞지 않게 2위였던 해태 타이거즈한테 0-4 셧아웃(...)을 당하면서 한국 시리즈 우승은 무산되었다.
  • [24] 타이거즈 출신의 감독(김응용, 선동열) & 코치진(김평호, 정회열, 조계현 등) + 유니콘스의 FA 선수(박종호, 박진만, 심정수)
  • [25] 물론 디스 건 그 감독은 돈으로도 우승 못했다. 현대 시절엔 했지만.
  • [26] 그리고는 445 를 찍고 다시 30억 현찰 박치기로 장원삼을 사서 겨우 2위로 올라섰다.
  • [27] 당시 부상으로 재활 중이었지만 두산에 부족한 좌완 계투를 내주면서 두산 포수 중 서열이 떨어지는 채상병을 데려온 것에 분노하는 삼성 팬들도 많았지만, 두산 이적 후 지승민의 행보를 생각하면 어딜 봐도 삼성이 남는 장사를 했다.
  • [28] 화면에 나온 '구단이 돈이 없다'는 말은 '프로야구단이 적자 법인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의미
  • [29] 왜인지는 대구 FC 항목의 '기타' 소목차 참고.
  • [30]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삼성은 2010년대 들어 외국인 영입은 폭망했다.
  • [31] 사실 냉정하게 보면 2013 FA에서 삼성에게 필요한 것은 삼성 취약 포지션인 2루수 정근우 정도밖에 없었고, 이마저도 충분히 대체 선수가 있는만큼 딱히 필요없다는 얘기가 중론이었다. 당장 정근우의 나이를 봐도 현 삼성 2루를 맡고 있는 조동찬김태완과 별 차이도 없고, 도리어 내줘야하는 보상선수로 인한 출혈을 더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실제로 정근우가 70억이라는 거금을 받자 정근우에 대한 토론은 모조리 종료되었다. 심지어 이후 2014 시즌이 시작되자 2루수 자리에 일찍이 인터뷰를 했던 대로 특급 외국인을 데려오며 종지부를 찍었다.
  • [32] 삼성 트레이닝 센터의 경우에는 삼성 그룹 소속의 스포츠 구단뿐 아니라 삼성에서 후원하는 기타 스포츠 종목의 선수들도 이 곳에서 훈련과 재활을 한다. 국내에서는 가장 체계적인 최첨단 훈련 시설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 [33] 엄밀히 말하면 배영섭은 지명 후 부상으로 한 시즌을 날렸고 최형우는 경찰청 입대 후 방출당하고 제대 후 재영입한 케이스라 삼성 2군에서 성장한 경우라고 보기는 힘들다.
  • [34] 한 예로 모 선수는 연봉 협상 전 전년도에 4000만원을 받았으니 올해는 4500만원을 받자고 생각했었는데 협상 과정에서 프런트가 처음부터 "연봉은 5500만원으로 합시다."라 말해 선수는 당황했다. 그러자 선수는 "6000만원 주세요."라고 찔러봤는데 프런트가 "그렇게 하죠"라고 말해 놀랐다는 말이 있다.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수정 바람.
  • [35] 정확히는 삼성에 입단한 후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되었다가 다시 삼성으로 트레이드되었다.
  • [36] 사실 크보에서도 현재 뛰어난 우타거포는 많이 희귀한 편이다. 리그 정상급 우타거포는 박병호강정호정도다.
  • [37] 비단 두 학교 뿐만 아니라 대구·경북 고교야구부에 대한 학교 차원의 지원이 점점 줄어 가면서, 이에 대구·경북 중학야구 유망주들 중 몇몇 선수는 지원이 후한 타 지역 고교로 진학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삼성 리틀야구단 출신임에도 천안 북일고로 진학한 김인태가 있다.
  • [38] 2008년 1차 지명 폐지와 전면드래프트 도입을 두고 당시 삼성 감독이던 선동열은 연고지역에서 유망주가 안 나온다면서 1차 지명 폐지에 적극 찬성했다. 연고 지역 학교에 지원도 잘 안 했으면서 유망주가 나오기만을 바라니 될 리가 없지 참고로 당시 구단 고위층도 선동열의 입장에 동조해 1차 지명 폐지에 적극적이었으나, 정작 삼성 스카우트들은 1차 지명 폐지에 반대했다.
  • [39]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여름에는 거의 해질 때까지 1루측에 햇빛이 들어온다.
  • [40] 당시 야구 국가대표의 70% 이상이 대구,경북 출신이었다
  • [41] 대구,경북 지역 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을 실패해서 타지역 고교에 간 일이 비일비재했을 정도
  • [42] 사실 프랜차이즈 스타 대우의 시작은 김응룡 감독이 먼저 시작하였으나, 본격적으로 임원, 코치진 및 선수에 대한 프랜차이즈 대우는 류중일 감독 때 부터이다.
  • [43] 2011년 관중 수보다 무려 10만 명(20%)이나 많은 수치이다!
  • [44] 과거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 이-마-양으로 대표되는 화끈한 공격력을 자랑했는데, 선동열식 야구는 말 그대로 정반대인 만큼 기존 팬들의 반감을 샀고, 재미있는 야구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신규 팬 유입도 적었다.
  • [45] 신구장은 2015년 가을에 완공예정이지만 10년 이상 건설계획희망고문만 있었다가 2012년 겨울부터 건설이 추진되면서 과거형이라고 분류된다. 10년 동안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아래의 구장 항목 참조바람.
  • [46] 2000년부터 2013년까지 14년 동안 활동하면서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년까지 총 6번의 우승을 이끌었다함께했다. 현재는 현역에서 은퇴하여 치어리더 팀장으로 있다.
  • [47] 2003년 롯데 자이언츠 전 18승 1패. 그래서 롯까들은 꼴리건에게 맞아 죽기 딱 좋은 시나리오로 산 구장에서 롯데가 졌거나 홈런 맞았을 때, 상대가 삼성인 경우를 꼽았는데 꽤 많은 공감을 얻었다. 단, 특정 팀 상대 최고 승률은 1982년의 OB 베어스삼미 슈퍼스타즈 상대로 전승을 해서 10할의 승률을 찍었으나, 당시엔 팀간 16경기씩만 했다.
  • [48] 나머지 1팀은 2010년 롯데
  • [49] 이 두가지가 유이한 KBO 팀 타율 3할 기록이다.
  • [50] 16회로 리그 최다. 프로야구가 2014년 기준 출범 33년이니까 2년에 1번 꼴로 한국시리즈에 오른 셈이다.
  • [51] 실제로 대구와 경북 지방의 '야구 팬은 아니지만 굳이 응원하라면 고향 팀인 삼성을 응원하는 사람' 중에서는 매년 10월 말에 공중파에서 삼성 경기를 중계하니까 원래 야구는 10월 말부터 하는 스포츠라고 아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흠좀무
  • [52] 전·후기 리그로 치러졌던 때에도 한국 시리즈 탈락은 1983년 단 한번뿐이다. 즉 프로야구 33년 역사상 삼성의 포스트시즌 탈락은 단 5회 뿐.
  • [53] 위에서 아래 순으로 카툰에 나와 있는 컷에 대한 배경 및 부연 설명을 하자면, 각각 1982년 한국시리즈(석기시대), 1983년 한국시리즈(고대 이집트), 1984년 한국시리즈(고대 그리스), 1986년, 1987년 한국시리즈(로마 제국), 1990년 한국시리즈(포에니 전쟁 시기의 로마 제국으로 추정), 1993년 한국시리즈(삼국지, 사자 앞에 서 있는 호랑이의 모델은 관우), 2004년 한국시리즈(중세 유럽. 사자 앞에 서 있는 중세 기사의 얼굴 위에 뿔이 나온 걸로 보아 현대 유니콘스의 상징인 유니콘이 확실하다), 2006년 한국시리즈(십자군 전쟁), 2005년, 2006년 한국시리즈 2연패(나폴레옹 시기의 군복), 2010년 한국시리즈(제2차 세계대전), 2011년, 2012년 한국시리즈 2연패(현대 군복).
  • [54] 코시 기준으로만 따져도 7번으로 역시 2위다.
  • [55] 당시 삼성 구단에서도 85년 전·후기 선수권 대회 통합 우승을 한국 시리즈 우승으로 여기지 않아 선수단에 대한 포상이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계속된 채찍질이 2002년 한국 시리즈 우승 이전까지 지나친 부담감으로 구단을 짓누르게 되었다. 물론 이후 2005년 우승 당시 사용한 V3란 구호에서 알 수 있듯 삼성 구단에서도 85년 통합 우승을 정식 우승의 역사로 여기고 있다.
  • [56] 단 한국 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던 탓에 코시 기준으로는 첫 우승이 아니다.
  • [57]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한국 시리즈 3연패를 달성하면서 몇몇 분탕꾼들이 V 7 대신 V 6(+1)이라는 문구로 85년 통합 우승을 평가절하하지만 KBO에서는 정식 우승으로 인정하므로 V 7이 맞다. 몇몇 언론들이 이런 기사들로 오보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 [58] 보통 최고의 한국 시리즈로는 진 참치무쌍 1984년, 역전 백투백 2002년, 수중 혈투 2004년을 꼽는다. 참고로 3시리즈 모두 삼성이 출전.
  • [59] 그 다음은 한화 이글스 로 5회.
  • [60]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이 있긴 했지만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한 게 아니라서.
  • [61] 개막전과 한국 시리즈 만루 홈런을 모두, 그것도 이선희라는 투수가 둘 다 당했다. 안습 아닌 안습.
  • [62] 이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기록을 깬 감독이 2009년 선동열. 그래서 더 까이기도 한다. 포스트시즌 진출해도 등수에 따라 올해 삼성은 안된다고 까는 삼성 팬들에게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을지도. 별 의미없는 계산이지만 2009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지 않았으면 그 기록은 지금까지 써내려가고 있을 상황이라 팀 기록에는 엄청난 데미지라 볼 수 있다.
  • [63] 물론 KBO에서 유일한 사례. 반대로 1995년에는 해태 타이거즈가 정규 시즌 4위에 올랐지만 3위인 롯데 자이언츠와 4.5게임차로, 4위와 3위의 승차가 3.5게임 이상 벌어지면 준 플레이 오프를 하지 않는다는 당시 KBO 규정에 따라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1995년 포스트 시즌은 3팀으로 치러졌으며 단일 리그(1989~1998, 2001~) 기준으로는 이 또한 KBO에서 유일한 사례.
  • [64] 당시의 감독은 선동열. 이 결과로 인해 선동열의 이미지가 상당히 추락했다.
  • [65]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SK에 시리즈 전적 0:4로 광탈.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선동열 감독의 무기력한 경기운용 때문에 그 해 한국시리즈는 취소되었다라는 드립을 친다
  • [66] 포스트 시즌 최장 진출 기록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2000년대 후반에 강호로 도약한 SK 와이번스가 2007~2012년 6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과 동시에 한국 시리즈 최장 연속 진출까지 기록하고 있었으나 2013년에 귀신같이 몰락하면서 포스트 시즌 진출이 좌절된 사례와, 암흑기를 벗어나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포스트 시즌 단골이 된 롯데 자이언츠도 5년 연속이 전부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롯데 자체적으로는 최다 연속 가을 야구 진출이지만, 대신 1999년 이후로 한국 시리즈 진출은 신생 구단 NC를 제외하고 가장 오래 진출을 못하고 있다.(...)
  • [67] 공식적으로는 감독 대행이었지만 삼성 구단 홈 페이지의 역대 감독란에서는 정식 감독으로 인정하고 있다.
  • [68] 당시 김영덕 감독은 요로결석 증세로 입원했었다.
  • [69] 당시 백인천 감독은 6월 뇌출혈로 입원했고, 복귀 1달만에 다시 요양차 팀을 떠났다. 실제로는 9월 4일 LG와의 더블 헤더 1차전 때 전병호의 뺨을 때리고 귀가하면서, 이를 빌미로 구단에서 재계약 포기 수순을 밟은 것으로 보인다.
  • [70] 사실 이승엽을 발견한 건 우용득 감독이었고, 그런 이승엽을 최정상급 타자로 발전시킨 것도 박흥식 코치와의 합작품.
  • [71] 이때 이승엽-정경배-김태균-김한수의 내야 라인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72]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백인천의 커리어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백인천의 주 포지션은 외야수(중견수)다. 포수로 뛴 시기는 고등학교 때와 실업 야구 농협 시절, 그리고 도에이 플라이어즈 입단 초창기 때였다.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한 이후에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외야수로 활약했다.
  • [73] 외국인 선수 한 명만 잘 뽑아도 팀 순위가 두세 계단씩 오르내릴 만큼 규모가 작은 한국 야구계에서 막강한 자금력으로 자기 팀의 주축 선수를 빼가는 삼성이 다른 팀 팬들의 입장에서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 [74] ...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만수의 팬들은 대부분 4~50대의 아저씨들이 많고 신세대 삼성 팬들은 이만수에 대해 특별한 감정은 없다. 오히려 2012년 이후 SK에서의 삽질 때문에 이만수를 꺼리는 삼성 팬들이 늘고 있다. 선수 이만수는 전설이지만 감독 이만수는 글쎄올시다
  • [75] 2011 시즌 삼성의 1루수는 채태인, 조영훈, 모상기 정도인데 셋의 평균 타율은 2할 2푼 정도, 그들의 홈런 개수를 모두 더한 것이 2011 시즌 일본 퍼시픽 리그의 이승엽의 홈런 개수와 같을 정도로 막장이었다.
  • [76] 소위 '믿음의 야구'라 하는데, 5회 정도면 선발을 내려 버리는 선 감독과 달리 선발을 최대한 믿고 길게 쓰는 투수 운용으로 인해 불펜의 과부하를 최대한 방지하고 선발들의 책임감을 강화시켜 2011 시즌 삼성의 선발, 불펜의 성적을 모두 크게 향상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 [77] 일부 팬들은 종신감독 시켜야 한다고까지 했다. 만약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다른 팀 팬일 것이다.
  • [78] 전기 2위, 후기 1위
  • [79] 전기 5위, 후기 2위
  • [80] 전기 1위, 후기 5위
  • [81] 전후기 통합 우승
  • [82] 전기 1위, 후기 4위
  • [83] 전기 1위, 후기 1위. 1985년에 이어 2번째 정규시즌 통합우승. 해태와 승차가 6.5경기나 났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지는 바람에 2위를 기록. 한편, 이 해는 처음으로 팀 타율 3할을 기록한 해이기도 하다.
  • [84] 전기 5위, 후기 2위
  • [85] 2번째로 '팀 타율 3할'을 기록(0.301)한 해이기도 하다.
  • [86] 2004년 일본 진출이 확정되면서 동시에 영구결번도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승엽이 2012년 국내에 복귀함에 따라 다시 사용중
  • [87] 영동 지역만. 영서 지역은 한화 이글스의 연고다.
  • [88] 전승준의 경우 2003년 SK 와이번스도 기록한 바 있다. 반면 전패준은 1987년 삼성이 기록한 게 유일하다.
  • [89] 윤성환은 짝수해-장원삼은 홀수해 징크스가 있다.
  • [90] 2001년 한국 시리즈 4차전에서, 삼성은 두산 베어스에게 3회말에 발비노 갈베스, 김진웅, 박동희 가 줄줄이 두들겨 맞으면서 무려 12점을 내줬다. C성 라이온즈
  • [91] 단, 이건 삼성이 기록한 게 아니고 상대팀인 넥센 히어로즈의 기록. 즉 삼성 타자가 사사구로 출루한 게 11번이라는 뜻. 이때의 B성을 아는 사람들은 여기서도 B성을 떠올렸다 카더라.
  • [92] 현재 올드 유니폼 데이를 가장 많이 하는 롯데 자이언츠를 비롯하여 두산으로 간판 바꾼 두산 베어스도 올드 유니폼 행사를 자주 하고 있고, 그리고 여태껏 해태의 무게에 짓눌리던 KIA 타이거즈도 최근에 한 차례 열었던 바 있다. 어른의 사정에 의해 올드 유니폼 데이 따위는 꿈도 못 꾸는 한화 이글스조차 2012년 들어 올드 유니폼 데이를 열었다. 그런데 여태껏 한번도 모기업이 바뀐 적도 없고 어른의 사정 따위는 없는 삼성이 왜 올드 유니폼 데이를 열지 않는 것인지는 의문. 올드 팬들을 생각해서라도 한번쯤은 더 해도 되지 않을까? 잘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구단이 돈이 없잖아요
  • [93] 이 역사의 종결자는 2005~2006 시즌 현대 유니콘스 소속이었던 미키 캘러웨이가 있다. 2005년 대 삼성전 4승 0패 방어율 1.73/06년 대 삼성전 3승 0패 방어율 1.19. 삼성을 상대로 단 한번도 진적이 없으며 이 시절을 기억하는 삼성 팬들은 캘러웨이를 금지어 취급할 정도다.
  • [94] 이게 삼성의 전력 분석 시스템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분석외에도 자신의 팀 선수에 맞춰 상대방 선수의 공략점을 분석을 하는 것의 비중이 큰데 그 때문에 맞춤데이터가 적은 선수의 경우 쉽게 공략하지 못한다는 것. 그동안의 결과를 보면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는 아닌 모양
  • [95] 물론 에이스들도 날 잡으면 털긴했다. 에이스도 사람이다.
  • [96] 이해에 롯데는 봄에도 죽을 쒔고, 삼성은 여름에 삽질...까지는 아니지만 1위를 몇번 뺏기는 등 다소 부진했으며, SK는 가을에 야구를 하지도 못했고, LG는 가을야구를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