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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last modified: 2016-10-13 18:23:13 Contributors

  • 극형으로 검색하면 여기에 리다이렉트 됩니다.
  • 법을 거치지 않고 개인들이 내리는 징벌인 사형(私刑)은 사적제재 항목으로.
  • SeeU의 오리지널 곡은 사형(시유) 항목으로.
  • 사형(師兄)은 한 스승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거나, 배분이 같은 이들 사이에서 후배가 선배를 부르는 호칭.[1]


한자死刑[2][3]
라틴어Poena capitalis
영어Capital punishment[4][5]
독일어Todesstrafe
프랑스어Peine de mort

Contents

1. 개요
2. 찬성과 반대
2.1. 찬성
2.2. 반대
2.3. 참고 영상
3. 세계의 사형제 현황
4. 리그베다 위키에 등재된 사형 방법
5. 관련 작품
6. 관련 항목


1. 개요

이 내릴 수 있는 죽음정의.

수형자의 생명을 박탈하여 그 사회적 존재를 영구적으로 말살하는 형벌. 현대적인 의미로는 법률상 내릴수 있는 법정 최고형이다. 현재 한국의 형법에서 집행할 수 있는 형벌에는 9가지가 있다.[6] 형벌이 침해하는 권리를 기준으로 분류해보면 이는 생명형, 신체형, 자유형, 명예형, 재산형의 5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자유형이하 3개 항목은 일반적인 법치국가라면 대부분 집행된다. 신체형은 일부 동남아시아나 이슬람권등 전근대적인 형법체계를 가진 국가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해당국이 아니면 별 논란이 없다. 가장 논란이 되는것은 역시 인간의 기본권중 가장 근간을 이루는 생명을 박탈하는 생명형, 즉 사형이다. 사형은 범죄자의 생명권을 박탈하여 사망하게 만드는 가장 중한 형벌이다.

사형은 어떤 상황이 되었던 집행하는 측에서는 피집행자가 죽어야 하는 이유를 확실히 하고 공개적인 절차를 밟아서 사망시켜야 한다. 과거에는 권력관계에서의 정치적인 이유의 사형도 있었으나 대부분 율법이라는 것을 덧 씌워야 정당성이 부여되므로 그렇게 하여서 실시하였다. 국내의 경우에도 형법에 명시된 아홉 가지 형벌 중 최고형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범죄는 살인죄, 내란죄, 외환죄 등 몇 가지 범죄로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형법, 특히 군형법에는 사형을 법정형으로 하고 있는 범죄가 꽤 많다. 따라서 그냥 악랄한 놈이라 해서 판사의 마음대로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 포털 사이트 등지에서 맘에 안 든다 싶으면 왜 사형을 안 때리느냐고 진지하게 판사를 욕하는 댓글을 볼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죄형법정주의에 대한 이해의 부재 탓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법정형으로 사형만을 규정하고 있는 범죄도 있다. 여적죄가 바로 그것(형법 제93조). 적국에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抗敵)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범죄이다. 군형법으로 들어가면 전지강간[7], 불법전투개시[8], 적진으로 도주 등 법정형이 사형인 범죄는 더 늘어난다. 다만 이런 범죄들은 법정형이 사형뿐이지만 작량감경이라고 해서 법관이 여러 정황을 보고 형을 감경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무기징역이나 20년이상 50년 이하의 유기징역을 선고할 수도 있어 반드시 사형을 선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18세기 이전까지는 징역형보다 더 일반적인 형법으로, 수직관계가 많았던 사회구조에서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공포로 지배하기 위하여 약간만 무거운 죄상이여도 남발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절도나 기타 가벼운 범죄의 경우는 민중의 반감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사용하지 않는게 일반적이고 주로 반역, 살인, 아동 성범죄 등의 당시 민중들도 이것은 큰 죄이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죄목을 주로 이렇게 다루었다. 특히나 반역의 경우는 남발되기 쉬웠는데 주로 지배층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정치적인 적대세력을 모함하여 제거하는데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 매우 자주 쓰였다. 이런 전근대 사회의 사형은 사회통제의 목적을 가지고 있기에 주로 공개적인 사형방식이며 방법 역시 매우 잔인하였다. 공개성/잔학성 의 둘중 하나의 요소는 대개 포함되며 둘다 포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대표적 예로 화형) 몽골에서는 나무로 된 상자 안에다가 가둬놓고 굶겨 죽이는 무시무시한 방법도 있었다. 실제로 1913년에 여자 사형수가 이 방식으로 처형당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다[9]. 다만 잔학성의 경우 인권 인식의 발달에 따라 교수형의 끊임 없는 개량, 단두대의 발명 등으로 사형이 점차 범법자의 고통을 줄이고 신속하게 사형을 집행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많이 줄어들었다.[10][11] 현재의 일반적인 국가의 사형 방식 대부분은 최대한 범법자의 고통을 줄이고 신속하게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현대 사회의 사형은 어디까지나 피형자의 사회 격리가 목적이므로 비공개적이며 최대한 고통을 안 느끼게 하는 사형 방법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북한, 중국과 같은 사회통제적인 목적으로 사형을 실시하는 나라도 있어서 예전같은 잔인한 사형법을 택하지는 않으나 공개 처형 제도가 아직 남아있다. 북한의 경우 이러한 공개 처형은 주로 총살이다. 몇몇 중동 국가들은 이러한 성향이 매우 강하다. 이란아프가니스탄은 석형(石刑) 또는 투석형(投石刑)이라 하는 사형법을 실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수형자를 반쯤 생매장한 뒤 돌을 던져 처형하는 방법이다. 이에 대한 인권단체들의 비판이 거세다. 특이하게도 혹시나 수형자가 생매장에서 탈출하면 집행을 멈춘다. 다만 남성은 허리까지, 여성은 가슴까지 묻는 차별이 문제이다. 다만 이란의 경우에는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최근에는 교수형으로 대체하는 추세이다.그런데 이것도 앰네스티 등에서 까이기는 매한가지다 실제 앰네스티 인터네셔널에서 만든 사형 반대 자료를 보면 자료 중반에 '이란에서 목매달린 사람들'의 사진이 실려 있다

한편 현대에 와서는 사법체계가 범법자의 처벌에서 계도를 중심으로 바뀌고 인권문제가 부각됨에 따라 찬반양론이 매우 분분하며 지금도 식을 줄 모르는 논란의 중심에 있다. 사형제를 폐지한 나라에서는 부활을,[12]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현재까지 법정 최고형으로 사형을 인정하는 국가는 74개국으로 통념과 달리 사형제 폐지 국가가 130여개 국으로 더욱 많다.[13] 연방제인 미국은 50개 가운데 32개 주는 사형이 존속하고 있고 18개 주는 사형이 폐지되었다. 특이한 경우로 사형제 폐지 국가인 이스라엘이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을 처형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한 경우가 있다. 이는 이스라엘 사법 사상 유일하다. 유대인들한테 나치가 저지른 만행을 보면 이해는 가지만.

여담이지만, 같은 사형이라도 또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여서 어떤 방식으로 죽느냐, 어떤 사람에 의해 죽느냐에 따라 취급이 달랐던 묘사가 세계 곳곳에서 현재까지 발견되고 있다. 우선 조선 시대를 예로 들자면 양반 및 왕족들은 사약으로 사사하고 대역죄인일때만 참형이나 교수형으로 처분하지만 중인 이하는 사약 따윈 없고 참형이나 교수형이 기본이며 대역죄인이면 능지처참이나 거열형으로 가는 등의 차이를 두었고, 유럽쪽의 경우 헤르만 괴링을 예로 들자면 원래는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교수형이 선고되었는데 총살형으로 바꿔달라고 탄원했다가 기각당하자 숨겨둔 독극물로 자살했다. 전자의 경우는 사형 대상자의 사회적 신분차이를 고려하여 사형 수법을 나눈 케이스에 해당되고, 후자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교수형보단 총살형이 훨씬 더 명예롭다 여겨서 그런 경우이다.

2. 찬성과 반대

"종요는 사형에 관한 조항을 가볍게 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되면 월형이 늘어나게 되니, 이는 불구자를 일으켜서 내시로 삼고, 시체를 살려서 사람으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신의 어리석은 생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대체로 오형은 과율에 기록된 것입니다. 사형을 감하는 것을 일등의 법으로 삼게 되면서 죽이지 않고 감형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되었습니다만, 도끼 모양을 한 형구로 육형을 가한 후에 죄에 따라서 처벌을 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전시대에 어진 사람은 육형의 참혹함을 차마 보지 못해 폐지하고 사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용을 하지 않게 된 지는 이미 수 백 년이나 지났습니다. 지금 다시 시행을 하게 되면, 많은 백성들의 눈에 감형에 대한 조항이 오히려 제대로 인식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육형에 대한 소문은 이미 도적들에게나 널리 퍼져 있는 것이지, 옛날 사람들로부터 초래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종요가 사죄를 감해주고자 하는 것은 사형을 감하여 머리카락을 깎는 곤형이나 발을 바르는 월형으로 대신하자는 주장입니다. 죄를 감해주자는 의견을 싫어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범죄가 증가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고 황궁에 있던 모든 대신들은 모두 왕랑이 맞다고 여겼으나 조비 황제 폐하께서는 아직 오와 촉이 평정되지 않았으므로 다시 불문에 붙였다.

무려 1800년 전 시대에 벌어졌던 사형제 폐지론과 유지론. 당시에도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 이하 문단은 사형제 유지에 대한 찬반이지, 폐지론에 대한 찬반이 아니다.

2.1. 찬성

피해자 및 피해자 유족이 가지게 된 원한을 위로해주며, 유족의 개인적인 복수를 차단함으로써 부수적인 범법행위를 예방할 수 있다.[14]

특히 찬성론 중에서는 극형으로 인해 범죄자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어 강력범죄를 예방한다는 주장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미국1972년 사형제도를 폐지했다가 흉악 범죄가 크게 늘어나면서 4년 만에 부활시켜, 현재 38개 주에서 시행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지난 1993년 유보해 온 사형집행을 재개했다. 이럴 때 인용되는 자료가 1981년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701명의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살인율이 가장 높았는데, 1982년에 사형집행을 부활시키고 카운티는 다른 어떠한 도시나 주보다 많은 살인범을 사형 집행한 이래 살인범죄가 가장 격감하여 1981년에 701건이던 살인사건이 1996년에는 261건에 이르러 63%나 감소했다. 한국의 사례로, 서울 광진구 30대 주부 살인사건의 범인은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음에도[15] "교도소 다시 가면 된다"는 심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해 단순히 징역형을 살게 하는 것만으로 재범률을 낮추고 범죄자를 회개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었다. 찬성론자의 대다수도 역시 형벌의 궁극적 목적은 예방과 교화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사형제를 폐지한다 해도 그에 따른 합당한 대안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사형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모든 범죄자를 사형제의 대상으로 삼을 게 아니라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같이 잘못이 명백하고 죄질이 나쁜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에 한해서만이라도 이런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사형제 찬성론자들은 인혁당 사건의 본질은 사형제 그 자체가 아니라 당시 사법부와 행정부의 권력남용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자로 몰아간 시대적 상황에 있다고 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을 아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사형수들이 먹고 자고 입고 하는것 모두 결국 국민이 내는 세금이니 사형수들을 빨리 집행해 버리면 그만큼의 세금을 아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대개 사형제의 대안으로 무기징역이 제시될 때 나오곤 하는 반론이다.[16] 더군다나, 굳이 법정형이 사형이 규정되지 않은 범죄를 저지른 경우라도 목격자나 피해자를 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사형시켜봐야 억제책이 되지 못하니, 차라리 사형시키지 말자.'라는 주장은 사형이 아닌 다른 형벌에 있어서도 동일한 주장을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일관된다. 그럴 거면 뭣하러 범죄자를 처벌하나? 이런 논리로는 처벌 자체가 불필요하다.

또한, 사형제로써 본보기로 삼는다고 해서 사형집행 과정을 생중계하자는 것이 찬성론 측의 주장은 아니다. 국민들에게는 흉악범이 잡혔고, 그에게 합당한 형벌이 부과되었으며, 적법절차에 따라 집행되었다는 사실만 알면 족한 것이다. 이 정도로도 국민들의 사회질서의 견고함에 대한 신뢰는 유지된다. 실제로 한국유영철 등 흉악범죄가 판을 침에 따라 사형 집행에 찬성하는 의견이 계속적으로 우세하고 법무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4%가 '사형제 유지 및 집행'에 찬성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두고 그래도 민주주의 국가인데 국민의 법 감정을 존중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의견도 있다.[17]

헌법재판소2008헌가23 판례에서 사형이 합헌이라고 결론내린 바 있다. 이것에 대해서도 찬성론자들은 헌법이 인정한 사형 선고를 법의 명령으로서 집행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하고 있으나 반대론자들의 반대 여론 역시 만만치 않기에[18] 사형 집행이 아주 쉽지 않다.

판결의 오판으로 인한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어차피 인간이 창조한 모든 문물은 완벽할 수 없다. 그럴 바에야 완벽함을 추구하되 당대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모아 가능한 한도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최대한 공정하게 재판을 이끌어나가려 노력하면 족하다. 사실 사법살인으로 일컫어지는 거의 모든 사건은 수사기관의 실수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형수의 범죄와 관련 없는 별개의[19]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조작된 사건들이거나, 수사기관의 실수가 개입했다 하더라도 실수 그 자체가 크게 작용했다기보다는 그 실수를 은폐 또는 부인하기 위하여 악의적으로 조작된 사건들이다. 순수하게 오로지 인간의 실수로 인하여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왔다고 평가되는 경우도 드물거니와, 전혀 악의가 개입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 한들 그런 경우는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다. 더구나 과학수사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 오판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반면, 범죄의 흉폭성을 억제할 방법은 별 차이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20] 사실 오판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사형 뿐만이 아니라 다른 형벌 또한 마찬가지이다. 징역형을 살게 된 나날 자체는 누가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준단 말인가? 같은 논리로 오판에 대해 부정하려면 사형이 아니라 모든 형벌에 대해 부정하여야 옳은 것이며, 그런 논리라면 국가에게 형벌권을 주는 것, 즉 사법권 자체를 부정하고 사법부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21]

집행인의 양심상의 문제에 대해서도, 전쟁대비집단 군대의 구성원인 군인을 생각해보자. 사형집행인이나 교전 중인 병사나 공무를 집행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양심이란 법관 개인의 주관적 양심이 아니라 법관으로서 가져야 할 객관적 양심을 의미한다. 즉 양심은 주관적 양심과 객관적 양심으로 구분되는데, 국가교정공무원인 사형집행인은 법관이 아니지만, 공직자로서 그의 개인적, 주관적 양심이 어떻든 적법한 절차를 거쳐 사형이 선고된 범죄자의 사형집행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정당성이 담보된 재판의 효력을 근거 없이 거부하는 것이 되고, 형법직무유기가 된다. 사실 이러한 국가 책임설은 반대파들도 부정하지 않는 요소이다.

또한, 국가가 형벌권 행사를 전담, 독점하는 것에 대한 여러 근거 중의 하나가 범죄의 피해자가 사사로이 보복에 나설 경우에 발생할 보복의 악순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즉 범죄자와 피해자가 아닌 객관적인 제3자로서의 입장에서 책임주의에 부합할 정도의 형벌을 부과하기 위해서는, 그나마 국가가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보복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적절한 수준의 위해를 대가로 물리는 것이고, 범죄의 피해자로서는 보복감정으로 인하여 그것이 불가능 혹은 현저히 곤란할 것이므로 자력구제를 금지하는 것이다. 국가는 개인의 보복을 대행해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아야하는 것이다.

한편 형법 제51조는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다음 사항을 참작하여야 한다. 1.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2. 피해자에 대한 관계 3.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4. 범행 후의 정황.'라고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인 형사소송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소송에 관여하는 자의 성실성에 좌우되는 문제이지만, 적어도 법령상으로는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함께 그의 성장환경과 생활환경 등에 대하여 반드시 고려할 것을 명하고 있다. 실무상 형사소송을 담당하는 법관과 검사들도 사형이 가지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 도저히 개전의 정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에만 사형을 구형하고 선고한다. 그러므로 오로지 사형수 개인에게만 극형을 전가한다는 식의 비난은 옳지 않다. 또한 흉악범 발생의 원인을 경제적, 사회적 문제에서 구한다 한들 유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흉악범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면, 흉악범 개인이 자신의 삶을 잘못 경영한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방좌천의 울분이 폭발하여[22] 단시간 내에 수십 명을 살상한 우범곤 순경이나 이혼의 충격으로 연쇄(강도)살인을 벌인 유영철, 쾌락살인마 강호순을 생각해보자.

우발적인 살인으로 인한 사형 판결의 경우도,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살인을 저질렀을 때' [23] 사형이 부과되지 않는다. 반면 '순간적인 충동으로 살인의 고의가 발생하여 죽인 경우' 즉 격정살인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과다하거나 범행수법이 지나치게 잔인한 경우가 아니라면 여간해서는 사형이 선고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경우는 자신이 사형을 받을 것이 두려워서라기보다는, 오로지 범행은폐 자체가 이유인 경우이다. 또한 '막나가는 묻지마 살인범'이야말로 사형을 통한 영구적인 사회격리가 필요한 존재이다. 사형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은 형벌부과의 목적인 범죄인 교화가 애초에 불가능한 존재이다. 사형제 존치론 측에서도 사형집행을 활성화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하게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으니, 폐지하지는 말자는 것이 주류이다.

또한 사형 반대론자인 사람들조차도 삼청교육대를 만드시고, 경우 그 사람에 대해서는 수 많은 사람들을 살상한 사람의 경우에 대해서는 예외로 치는 경우가 매우 많다. 현존하는 최악의 정치인 김정은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일반적인 흉악범에 대해서 사형을 반대하면서, 또한 사형제에 대해 인혁당 사건과 같은 정치적 이유의 사형 반대를 주장하면서도 이런 사람들에 대한 사형은 찬성하게 된다. 이유는 정치를 바탕으로 한 탄압과 살상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가 안될수도 있기 때문에 시행을 할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반대론도 만만치않기에 밑에 반대론을 참고하면 된다.

간혹 반대론자들 중 무죄추정의 원칙 개념과 혼동하여 "누명을 씌워서 사형을 선고하기" 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사형이든 징역형이든 벌금형이든 자격정지형이든 기타 어떤 형벌이든간에 무죄추정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하는 대원칙이며, 이는 사형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그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찬반의견 둘 다 범죄자 처리에 관한 쇼맨쉽/현실적 요소를 반반씩 나누어 가진 데다가, 사형을 예비하는 단계만은 존속시킬 것이냐, 실질적인 사형 절차를 강화하고 빈도도 줄어드는게 맞다는 식으로 흘러가니 '사형에 준하는 형벌 찬성'이 가장 많다.


2.2. 반대

"법이론적으로 보면 사형제도는 정당화될 수 있는 길이 없다. 이것은 단정적으로 말하더라도 큰 잘못이 없다. 지금까지의 학문적 성과에 의하면 사형의 이론적 정당성을 구하는 데 성공한 학자는 한 사람도 없다."
배종대, 『형법총론』, 홍문사, 2008, p.786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가 출연한 사형제 폐지 광고.[24]

사형제는 단회적이고 철저하며 가장 극단적인 신체적 처벌로서, 범죄자가 참회할 기회를 국가의 이름으로 영원히 박탈한다. 사형제를 통해 사형수의 생명권이 일부로서가 아니라 온전하고 완벽하게 제한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령 흉악범이라고 하더라도, 다소 이상적이긴 하지만, 국가는 그가 갱생할 가능성을 부정해선 안 된다. 이것이 현대적 형벌체계의 지향점이다. 사형수가 갱생한다 하더라도 "악어의 눈물"이니 "극도의 불안으로 인한 자기도피"니 하기도 하지만,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 어떤 한 사형수의 갱생이 과연 거짓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지, 그가 사회로 돌아가기 전에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한편 다시 하술되겠지만, 사회 치안의 측면이나 흉악범 격리의 측면에서 사형제의 대안으로는 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거론되고 있다.

먼저, 사형에는 사형 집행으로 인해 생명을 잃은 사람이 후일 무죄임이 밝혀졌을 때 "당사자의 죽음" 이라는 사건을 돌이킬 방법이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25] 멀리 갈 것도 없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생각해 보자. 다른 예로는 사코와 반제티 사건과 같은 사례도 있었다. 또한 타이완에서는 아동 성폭행범으로 사형된 병사가 10년 만에 무죄로 밝혀지는 일도 있었다. 뭐 흔히 사법적 실수에 대한 조치로서 유족들에 대한 보상을 제공하고 한다지만, 아무리 애써봤자 정작 죽은 당사자에게는 보상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죽은 마당에 세상을 다 준다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수사기법 및 사법제도가 허술한 국가일수록 이 단점은 더욱 크게 부각되며 희생자도 늘어난다. 시스템이 탄탄한 국가 역시 실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인간에 의한 사법체계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판사가 아무리 이리저리 따지고 재고 한다 하더라도 판사도 결국 인간이다. 또한, 오판[26]의 가능성은 제도의 완비만으로 줄어들지 않는다. 다양하게 변화하는 사회의 불안정성 속에서도 제도만으로 오판의 가능성이 낮게 유지되리라는 것은 다소 순진한 생각일 수 있다. 아무리 철벽 요새라도 그 요새를 지키는 것은 인간이 듯이 법을 집행하는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결국 인간이다.

대한민국의 형사보상제도[27]벌금형이나 몰수형과 같은 다른 형벌들은 후일 그것이 잘못되었음이 밝혀졌을 때 금전적으로 반환되며,[28] 징역의 경우 피해자가 그 동안 경제활동에 종사하지 못한 경제적 손실의 측면에서도 전부 계산하여 보상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사형제의 경우 다른 이런저런 금전적 보상 외에 당사자의 생명에 대한 보상은 단지 3,000만 원 이하의 금액으로 정해질 뿐이다.[29] 그나마 그것도 고인이 받아야 할 보상일 터이나, 정작 고인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다[30].

거기다 아무리 범죄자들이 천하의 개쌍놈스런 짓을 했다해도 한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죽을 짓을 한 범죄자라 해도 그 범죄자의 목숨을 앗아가야 하는 사형 집행인은 또 뭔 죄란 말인가. 이것은 사형집행인들에게도 또 하나의 폭력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을 집행하는 사람으로서의 '의무'를 들기도 하지만, 의무라고 해서 그로 인한 정신적인 후유증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종교계에서도 기독교[31]불교에서 당연히 소중한 인간의 생명을 거두어가는 비인도적 행위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사형제에 반대한다. 이 경우 상당히 철학적인 관점인데,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을 죽일 권리가 과연 있느냐는 것.

또한 사형제도가 흉악범죄를 억제하는 효용이 부족하다면 "죽일 놈은 죽여라"는 대중의 보복심리가 있다는 말인데 이러한 관점이 공적인 법률집행에서 주류가 되면 곤란하다. 국가는 사적 제재를 대행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 아니며,[32] 국가에게 개인의 보복심리를 대변할 것을 요구할 때 그것은 사법의 탈을 쓴 인민재판이 되어 버린다. 사법부는 법적인 마인드를 갖추고 공평무사한 객관성으로 사건을 심리, 가해자의 기본권의 일부를 일정 부분 제한하는 방법으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며, 피해자의 아픔을 위로하고, 손상을 입은 사회 전체의 질서와 공익을 회복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사법부가 객관성을 갖추고 개입하는 시점에서, 사법부는 이미 "개인의 보복을 대행하고 있다" 는 의미에서 한참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벌 대중주의(Penal Populism)는 다른 한편으로 "국민의 법 감정" 에 기초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 법 감정이라는 것이 그 규모는 커녕 실체조차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형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형집행을 전후하여 몇 차례의 국민의식을 설문조사한 사례는 있으나 이것만으로 법 감정의 실체가 드러났다고 할 수는 없다.[33] 오히려 사형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거의 알기 어려운 일반인들에게 제도의 찬반을 문의할 경우, 대체로 사형제도가 마땅히 구현하고자 하는 의미에 집착하여 이에 찬성하게 된다.[34] 즉 사형제도의 특징과 성격, 그것이 갖는 헌법정신과의 관계 및 형벌로서의 법적 위상 등을 고찰하지 못한 채로 사형제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이상적 목표만을 기준으로 찬성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게다가 그런 설문조사는 평소에는 하지도 않다가 꼭 흉악범 때문에 사회가 뒤숭숭할 때에만 실시하는 바람에 반쯤은 의도적으로 편향(bias)이 발생하게 된다. 물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것이 밝혀진 뒤에 여론조사를 한다면 결과가 달라지겠지만, 보통은 누명이 밝혀지는 것보다 흉악범죄로 인한 감정적인 여론 조성이 빈도상 더 쉬우므로(의도적이건 아니건) 사형제를 찬성하는 이들이 유리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응보의 논리를 살펴보면, 사형제의 시행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 욕구인 보복감정을 충족시켜 해당 범죄자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방식으로 사회의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역시 문제가 있는 주장이다. 보복감정을 충족하는 것이 과연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과 완벽하게 등치되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보정적 차원에서의 시정적 정의(是正的 正義)에 입각할 때 사형은 정의롭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35] 그리고 무엇보다 보복의 대행이 형벌제도의 목적 중 일부임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복수심이라는 사적인 감정을 충족시키켜줘야 한다는 의미가 될 수는 없다. 애초에 감정이란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므로 공적, 객관적이어야 하는 법 집행의 목적이 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처벌이 피해자나 주변인의 감정 충족을 목적으로 한다면, 위에서 거론된 바와 같이 피해자와 유족간의 관계에 따라 비슷한 죄질의 살인범이라도 처벌 수위가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또는, 다소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이런 경우도 가정해 볼 수 있다. 위해의 고의가 전혀 없는 과실로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더 나아가 피해자의 과실이 사고의 원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피해자의 유족은 가해자에게 지극히 큰 분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도 '유족의 감정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해자를 사형에 처해야 하는가? 예를 들어, 단순한 교통사고로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라 하더라도 피해자측 유족들은 가해자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분노할 수 있으며, 이런 감정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설령 피해자(사망자)측에게 상당한 과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유족 입장에서는 당연히 (부분적인)가해자에게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사망자가 발생한 교통사고에 대해서도 사형으로 처벌해야 하는가? 사형의 근거를 유족의 감정에 두는 사고방식에 따르면 '그렇다'는 대답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사형제는 사형수가 어떻게 흉악 범죄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구조적인 고찰이 부족하다. 즉, 악질적인 범죄자를 처형함으로써 국가나 사회가 개입하여 흉악범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미리 방지할 수 있었던 가능성은 쏙 빼고, 흉악범 개인에게 책임을 모두 떠넘기는 국가나 사회가 되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잔혹한 흉악범의 등 뒤에는 그런 흉악범을 잉태하고 막지 않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실제로 1976년 사형된 연쇄 강도살인범 김대두의 사형집행 이후 사형 이전 그의 성장과정과 정신상태에 대한 연구를 마치고 나서 집행하여 추후 있을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다.[36]

어떤 사람의 어떤 행위가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어떠한 관계와 의미를 지니는가? 실제로 사회학에서는 이와 같은 주의깊은 성찰을 가리켜서 "사회학적 상상력"(sociological imagination) 이라고 부른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사형제는 사형에 들어가는 여러 비용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인이 그대로 남아있는 폭력적인 사회적 자위행위에 불과하다는 지적까지 있기도 하다. 그럼 우범곤이나 유영철, 아니면 존 하이 같은 사례는 무엇일까? 해당 항목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런 사람들의 범죄도 사회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범곤은 학창시절부터 이미 열등생이었고 유리조각으로 자해를 할 만큼 사회의 긴급하고 전문적인 계도가 절실했으며, 유영철은 연쇄살인 이전부터 이미 법의 테두리를 제 맘대로 넘나들던 인물이었다. 존 하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일견 유복하고 부족함 없는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하긴 했지만, 잔혹한 살인죄 이전부터 이미 사기죄로 감옥을 숱하게 들락거린 경험이 있었다. 즉, 관계기관의 교육, 범죄예방, 교정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 사람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다면, 문제는 해결되었고 모든 죗값이 치러졌으니 이제 우리는 손 씻고 가면 되는 일일까? "악마" 가 서서히 만들어져 가는 것을 방치한 "우리 사회의 죄" 는 없는 셈이 될까?

또한 사형의 근거를 '유족의 감정'에 둘 경우, 상당한 논리적 모순이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가족 내부의 문제[37]로 인해 보복 범죄가 일어났을 때 유족들이 슬퍼하지 않는다면 가해자는 사형을 받지 않아야 하는가? 2011년 고3 존속살해 사건의 경우를 보면, 범인은 어머니가 자신을 학대해서 이런 사태가 되었다고 증언했었고, 증언에 나선 피해자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로 살인 피해자인 어머니를 비난하고 범인을 옹호했다. 이에 따라 재판관은 3년이라는 지극히 가벼운 형벌을 내렸고, 15년 형으로 항소한 검찰의 시도는 기각당했다. 이 경우 유족이라 할 수 있는 남은 가족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건 가해자인 범인을 옹호하며 피해자를 비난했다. 물론 이 경우 피해자의 유족이 곧 가해자의 가족이기도 한 점에서 이들이 가해자의 편에 서서 반응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항상 사형의 근거를 '유족의 감정'에서 찾을 수는 없다는 예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유족들이 피해자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것이 가해자의 편에 섰기 때문이라는 가정 자체가 편견일 수 있지만. 좀 더 극단적인 사례를 만들어 낸다면, 아들이 살해당했는데 유족이 막장부모라서 그다지 슬퍼하지 않고 가해자에게 거액의 돈을 받은 다음 용서해주겠다고 코스프레 한다 해도, 원칙적으로 '유족의 감정'에 사형의 근거를 둔다면 이렇게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나타나게 된다. 실제로 피해자 가족 중에서도 사형제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의 이름으로 죽이지 말라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어쨌든 참고할 만한 사실.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례에 대해서도, 지난 1996년 사형제를 합헌이라고 판시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다음과 같이 덧붙이면서 장기적으로는 폐지가 더 바람직함을 시사하였다. 이하와 같은 사형제 옹호 논리는 흔히 "시기상조" 라는 네 글자 단어로 잘 축약되며, 사형제에 찬성하는 일부 형법학자들도 대부분 이 입장을 따르고 있다. 즉 헌법재판소 역시 사형제가 문제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부득불 그 필요성이 요청된다는 소극적인 입장만을 견지할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이후의 연이은 판례들에서도 헌재는 단지 과거의 동일한 판례만을 참조하는 방식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점차 전향적으로 폐지 쪽으로 입장을 변경하고 있는 추세이다.[38]

...나라의 문화가 고도로 발전하고 인지가 발달하여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실현되는 등 시대상황이 바뀌어 생명을 빼앗는 사형이 가진 범죄예방의 필요성이 거의 없게 되거나 국민의 법 감정이 사형의 필요성이 없다고 인식하는 시기에 이르게 되면 사형을 곧바로 폐지해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벌로서 사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당연히 헌법에도 위반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ㅡ 헌법재판소. 1996, 11.28.선고., 95헌바1결정 형법 제 250조 등 위헌소원, 판례집 8-2, p.537

한편 유명한 사형 반대론자인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사형을 통해 예비 흉악범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어 범죄 발생률을 낮출 수 있다" 는 주장[39]에 대해, 저서 《단두대에 대한 성찰》에서 대략 다음과 같은 논지로 응수한 바 있다. 사형 폐지운동에 관심이 있는 위키러라면 이 책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사형이 본보기가 되기를 원한다면 더 많은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어야 할 뿐 아니라, 대낮에 콩코드 광장의 처형대 위에 단두대를 설치하고 전 국민을 초대해야 하며, 불참자에게는 사형집행 장면을 TV로 보여주어야 한다. 사형을 집행당한 후의 신체 상태를 묘사하는 증언들과 의학 보고서들을 수천, 수만 부씩 인쇄해서 각 학교대학교에서 읽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든지, 아니면 본보기 운운은 그만두든지, 양자택일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가 그들 자신이 주장하는 것조차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시 이를 권위에 의한 논증이라고 잘못 비판할 수도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유명한 카뮈가 그렇게 말했다더라" 따위의(…) 취약한 주장이 아니라 과연 흉악범들에게 사형제가 실제로 경종을 울리는 방책이 될 수 있느냐에 관련된 문제이다. 또한 이에 대해 "그런 공개처형까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흉악범이 그 응징을 받는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확인시키고자 할 뿐이다" 라고 항변하는 것은, 위하력에 대한 논리가 반박되자 은근슬쩍 응보에 대한 논리로 피해가는 것에 불과하다[40].

그 외에도 사형 집행은 잠재적 범죄자들에 대한 본보기로 기능하기보다 그들이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단지 "들키지 않도록" 애쓰게 하는 유인으로 작용할 위험도 있다. 어차피 계획범죄는 들키지 않을 것을 상정하고 저질러지기 때문에 들킬 경우 피해자를 살해하거나 목격자를 향한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동기가 된다는 것이다.[41] "걸리면 너도 이렇게 된다" 라는 메시지가 말처럼 쉽게 억제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형제 효용성을 옹호하는 주장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발적으로 잔혹한 범죄행각을 벌인 살인범[42]은 사형이 기다린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피해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막나가는 묻지마 살인범은 애시당초 사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제로 사형제도가 존치중이고 집행까지 활발히 이뤄지는 일본에서는 잊을만 하면 묻지마 살인범이 살인을 저지른다. 사실상 사형이 확정된 상태인 아키하바라 묻지마 대량살인범 가토 도모히로만 해도 자신이 저지른 죄가 발각될 경우 사형이라는 것을 몰라서 살인을 한 것은 아니다. 이런 사례들을 보더라도 역시 사형은 범죄율을 낮추는 경종으로서의 억제책이 될 수 없다.

사형제 반대와 별개로 공개처형의 경우 경각심을 일깨우기는커녕 되레 범죄율을 증가하게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여기서는 사람들의 이목이 처형 집행에 쏠려 있는 틈을 타서 손쉽게 소매치기[43], 절도, 주거침입 등을 저지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사형제는 이제 경각심은커녕 거의 일종의 "퍼포먼스" 가 되는 셈이다.

사형제의 위하력 논리의 또 다른 문제점은, 그것이 그저 "사형제 자체의 위하력" 을 입증해 보이려는 데에만 집중할 뿐, 종신형과 같은 다른 형벌들과 비교했을 때의 "보다 현저히 높은 위하력" 을 입증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술하겠지만 이러한 맹점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라는 대안 논리에 의해 가장 크게 공격받게 되는 부분이다. 또한, 위하력 논리는 그 위하력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일례로 20세기 초 영국의 사례를 검토한 연구자 Philips는 자신의 논문에서 "유명한 처형 후 감소되었던 살인사건은 5~6주 후 똑같은 비율로 다시 증가하였다" 고 보고하기도 하였다. 위하력 논리의 문제점을 한 가지 더 들자면,[44] 궁극적으로 사형제는 중형벌에 대한 면역효과와 무감각성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5,000만 원 이상의 뇌물을 수수하면 사형에 처한다고 할 때, 1억 원의 뇌물을 수수한 사람에게 그에 합당한 법적 평가의 차이를 나타내기는 불가능하게 된다. 결국 일정 수준 이상의 범죄에 대해서는 예방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고, 입법자의 일시적 격정은 범죄의 위하력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법에 대한 권위를 실추시키고 법질서의 안정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사형제가 억제책이 되지 못한다고 해서 사형을 폐지해야 한다면, 똑같은 맥락에서 다른 형벌들도 범죄를 일소하지 못하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45] 이것은 상당히 교묘한 반박이다. 반대론자들은 "사형제의 실시와 범죄율 추이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여기에 사형제를 유지해야 하는 근거가 있다" 고 주장하는 찬성론자들의 논리가 제기되었을 때 이에 대한 반박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46][47] 반대론자들은 사형제가 범죄의 억제책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사형을 폐지하자는 게 아니며, 사형제가 범죄의 억제책이 되지 못하며 더불어 사형제를 폐지해야 할 여러 다른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반대론자들의 자료들을 살펴보면 흉악범죄에 대한 위하력과 사형제 존폐의 문제를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찬성론자들에 대해서도 이 문제를 그렇게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사형수에게 들어가는 세금이 아깝다는 주장이 있지만 사형 선고가 있은지 수십년 후 사형이 집행되는 미국에서는[48] 사형수는 일하지 않고 죄질이 가볍고 선처 및 적극적인 교화의 대상이 되는 재소자들일수록 노동 현장에 적극 투입된다. 살아있는 동안 관리비용만 들게 되며 여기에 죽음을 면하기 위해[49] 계속 재심을 청구하면서 엄청난 법정 비용이 소모되므로 실제로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여 생명은 살려 주고 대신 영구 격리시키는 게 사형보다 훨씬 비용절감이 크다고 한다. 어차피 감옥에서 나가지 못하고 회한 속에 살아가야 하는 것 자체가 심각한 고통으로 피해자의 분노를 어느 정도 위로해 줄 수 있는데다가 무엇보다 사형을 시키지 않고도 재범 가능성을 영구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50]

인터넷에서 사형제에 관련하여 논쟁이 일어날 때, 찬성측에서 "당신의 가족이 흉악범죄의 피해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사형제에 반대할 것인가?"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위에서도 보이듯이 피해자 가족 중에서도 비록 다수가 아닐지 몰라도 사형제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형벌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사형은 그렇게 감정적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다. 사형제 존폐에 관한 논의는 철저하게 이성적, 합리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당초 이러한 "당신 가족이 흉악범의 피해자가 된다 하더라도 반대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올바른 질문이 아니다.[51] 이러한 질문은 논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때 "그래도 반대한다"고 대답한다고 해도 과연 이 질문을 한 사람은 그것을 믿을까? 이 질문은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공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니면 논의에는 관심없고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거나. 일례로 미국 대선에서 이걸로 대통령 당선인이 갈리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52]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법이라는 것은 국민의 법 감정과도 연관되어 있어야 하지만, 그 것이 주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만일 국민 개개인의 법 감정이 형벌의 중함에 있어서 근본적인 고려 대상이 된다면, 수 십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도 어려운 가정형편이라는 점 때문에 국민의 동정을 얻어 사형을 면하고, 도리어 우발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재벌에 대해 국민 법 감정에 따라 사형을 내리게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사형제 폐지론자들 중에서도 군형법에서 등장하는 사형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전시와 같이, 사회가 제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존립의 위기에 처해 있다면, 이와 같이 극단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사형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군형법이 꼭 전시에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고, 평시에도 사안에 따라 사형선고가 가능하다는 부분을 고려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형제 존폐논란에서 군형법상의 사형제는 대개 논외로 취급되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사형제가 없더라도 정말 괜찮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사형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의 대안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다. 이미 UN1996년, 1998년 두 차례의 보고서에서 사형제가 종신형보다 더 효과적인 범죄예방 수단임을 증명하는 데 실패했다고 결론내렸다. 사형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막나가는 범죄자들은 사회로부터의 영구적이고 안전한 격리가 필요하다? 사형제 반대측에서도 당연히 동의한다. 문제는 꼭 사형이라는 방법만을 채택해야 할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가이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 하에서도 극악한 범죄자들은 사회로부터 아무 문제없이 격리될 수 있다. 이처럼 사형제가 종신형의 보충성을 갖는 제도로서 이해될 때, 사형제는 그 존재의미를 잃게 된다. 사형제 찬성측이 요청하는 모든 것이 이미 종신형의 시행을 통해 충족될 수 있고, 사형제는 단지 "저 놈은 그 생명을 아예 끊어버려야 한다" 라는 심리만이 더하여졌을 뿐이다. 즉, 현행의 종신형이 무엇인가가 문제가 있거나 부족하기 때문에 사형을 신설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종신형만으로도 사형의 집행을 통해 기대되는 이점들을 이미 얻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만일 대통령특별사면이라도 한다면 어쩌겠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다면 사법부가 지시한 "영구적인 격리" 가 깨진다는 것인데, 그렇게까지 사회 치안을 약화시켜 자기 지지율을 기어코 떨어뜨리려는 행정부 최고 수반이 과연 존재할지는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사형시킬 경우 부담이 따르게 되는 정치적 반대파[53]나 특정 죄수[54]의 경우에는 무작정 죽일 수 없는 까닭에 차라리 엄중한 감시하에 영구히 가둬두는 쪽을 택하는데, 이 경우 다른 일반 사형수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어나기 쉽다. 전자는 '정치적 보복'이니 말할 것도 없고, 후자에 속하는 거대 범죄조직의 죄수의 경우 사형제가 있다면 더더욱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오히려 죽이기 어렵다는 딜레마에 부딪쳐 사형제의 의의가 퇴색되고 만다.

2.3. 참고 영상


사형수와 사회적 책임에 관한 TED 강연. 물론 이 강연에서 발표하는 변호사는 사형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이지만 여기서는 사회가 흉악 범죄자가 만들어지는 것을 예방하는데 관심을 갖자는 주제로 발표를 한다. 사형을 찬성하는 사람이든, 반대하는 사람이든 한 번 볼만한 가치가 있다.

사형제도에 관한 스님의 입장. 역시 위의 동영상과 같이 보면 좋다


사형수들과 사형에 찬성하는 사람들, 반대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형을 집행하는이들과의 인터뷰를 다룬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위의 영상들과 같이 보면 좋다.


3. 세계의 사형제 현황

사형/국가별 현황 항목 참고.

5. 관련 작품

사형제와 관련된 작품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은 죄인 개개인에 대한 동정심이나 또는 반감을 자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요즘의 영화나 드라마같은 등지에서는 억울한 사람이 사형을 당하는 전개가 꽤 많이 등장한다[56]. 예를들어 영화에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나 이비드 게일,7번방의 선물 등이 있다. 물론 집행자교도관 나오키[57] 같이 찬반 양론을 떠나서 사형제 자체에 대한 깊은 고찰을 이끌어내는 만화도 있다. 오노 후유미의 판타지소설 십이국기 낙조의 감옥에서는, 사형제를 부활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류국 관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담으로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 황제의 농간으로 사형 직전까지 갔다온 뒤 사상까지 바뀐다. 그가 그의 형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사형대에 선 죄수가 받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간접적이나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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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가장 맏이는 '대'자를 붙여서 대사형이라고도 부른다. 굳이 따지자면, 남자 선배를 부르는 호칭으로 여자 선배의 경우 사저(師姐)라 한다.
  • [2] 중국어, 일본어도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중국어 한어병음/sǐxíng/, 일본어 가나표기/しけい/)
  • [3] 우리나라일본에서는 가장 무거운 형벌이라는 뜻에서 극형(極刑)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외의 이름으로는 생명형, 대륙(大戮) 등이 있다.
  • [4] 영어 "Capital punishment"의 'Capital'은 라틴어의 'Capitalis'에서 온 것으로, '수도(首都)'라는 뜻의 "Capital" 에서도 볼 수 있듯이 '머리의'라는 뜻이 있다. 그러니 직역하면 '참수형이 되겠으나, 시대가 시대인 만큼 현대에는 참수형을 넘어서 목숨을 끊는 형벌이면 무엇이든 포함된다.
  • [5] 혹은 Death penalty 라고도 한다.
  • [6] 형법 제41조(형의 종류) 형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사형 2.징역 3.금고 4.자격상실 5.자격정지 6.벌금 7.구류 8.과료 9.몰수
  • [7] 적국의 부녀를 강간한 경우. 규정상으로는 무조건 사형만 해당된다.
  • [8] 지휘관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일본으로 쳐들어간다든가 하는 경우.
  • [9] 다만 이 사진에서 자세히 보면 뒤주 밑에 음식 접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 사형이 아니라 단순 형벌로 추측된다. 이 형벌은 고정된 곳에 감옥을 만들 수 없던 유목 민족인 몽골족의 특성이 나타난 형벌로, 여기서 그 유명한 사도세자의 뒤주형이 나왔다는 추측도 있다
  • [10] 놀랍게도 프랑스에서 단두대가 발명되었던 이유는 처형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사형집행인이 도끼 등으로 목을 자르는 경우, 힘이 부족하거나 경험이 적을 경우 목이 반만 잘리는 일처럼 처형자에게 끔찍한 고통만을 주고 정작 죽이지는 못하는,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 [11] 다만 이는 인권존중의 휴머니즘 같은 문제 때문만은 아니고 워낙 사형수가 많아서 신속하게 사형을 집행할 필요성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잔인하게 처형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지켜보는 사람과 집행자에게도 만만찮은 심적 고통을 가져다 주는 경우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사형을 공개 집행하는 경우에는 대중이 사형수가 저지른 범죄의 잔학성에 주목하지 않고 사형수를 동정하거나 정부나 사법부에 반감을 품는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사형을 시행하더라도 가급적이면 덜 잔혹하고 신속하게 집행하고, 외부에 그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다. 물론 일부 이상한 유사 국가 집단들은 예외지만 이쪽은 인간으로서 살기를 포기한 것이니 신경쓰지 말자.
  • [12] 사형제가 폐지된 유럽의 국가 벨기에를 보면 연쇄살인범 마르크 뒤트루가 어린 소녀들을 납치해 잔혹하게 살해한 일이 있었는데 그를 처벌하기 위해 반드시 사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적극적으로 제기되었다. 노동당 캠프에서 청소년들을 무차별적으로 총으로 쏴 죽인 사건이 터진 노르웨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참고로 노르웨이에서 법적 최고형은 징역 21년.
  • [13] 그렇지만 사형제가 존재하는 국가에 사는 사람의 인구가 더 많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10개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일본 가운데는 러시아브라질을 빼고 모두 사형제가 존재한다. 참고로 브라질은 평시에는 사형제 폐지이나 헌법 5-47조에 의거해 전시에 저질러진 심각한 군사적 성격의 범죄에는 사형이 적용될 수 있고, 러시아는 "무기한 연기"라고 하니 엄연히 말해서 "완전한 폐지"와는 다르다. 즉 사형제 허용의 범위를 최대한으로 넓히면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10개 나라에서 모두 사형제가 존속하는 것.
  • [14] 유족의 개인적인 복수를 차단하여, 복수가 또다시 그에 대한 보복을 부르는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굳이 사형뿐만 아니라 모든 형벌에 대한 권한을 국가에게 귀속시키는 여러 근거들 중 하나가 된다.
  • [15] 게다가 그는 성폭행 전과가 3개나 있었다고 한다
  • [16] 다만 사형수를 죽이는 데에도 돈이 적지 않게 들어가긴 한다. 법치국가에서 절차도 밟아야 하고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한편으로 사형을 선고받아 마땅한 인간이라 한들 단순히 비용문제를 들어 그를 사형시켜도 좋다고 하는 주장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들 중 최상위에 놓는 우리 사회질서에 비추어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는 측에서도 섣불리 받아들이기 힘들다.
  • [17] 물론, 정말로 이런 국민감정 설문으로 법을 굴려야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사형 찬성파 환심 좀 사겠다고 헬게이트를 여는 행위 정말로 국민정서에 의한 법 집행을 그대로 법에 편입시켰다간, 직장상사나 정치인에 대한 극형(...)같은 황당한 법 집행도 국민감정 상 합법할 수 있겠냐는 반격도 받을 수 있으니, 어디까지나 참고의견으로만 생각하자. 물론, 위의 행동 같은 건 법 집행이 아니라는 말로도 반격가능하지만...
  • [18] 특히 종교계 및 사회지도층. 의외로 보수층의 높으신 분들도 사형을 싫어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게 대체 국가(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죠? (...)
  • [19] 예컨대 정치적인
  • [20] 하지만, 옛날에 비해서 현대의 범죄가 더욱 엽기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해이니 착각하지 말자. 옛날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던 행동도 현재에 들어서는 범죄로 지정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예전에는 미처 보도되지 못했던 범죄들도 자세히 알려지게 되면서, 현대의 범죄가 예전보다 흉폭해지는 듯한 착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어린애들도 시체를 차면서 놀고 그랬다지. 이것도 현대였으면 고인 모독죄 or 엽기행각으로 보도되었을 거다. 오히려 지금은 범죄에 대한 관측방법만 늘어났을 뿐 실질적인 범죄율 자체는 생산적인 국가일수록 감소거나 주변의 시선 때문에 소극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진화학적으로 올바른 분석이다.
  • [21] 다만, 사법권의 증명=사형이란 논리가 되면 엄청난 비약이니 함부로 말하지 말자. 이 논리를 뒤집으면, 사법부가 국민을 죽이는 권한이야말로 사법의 증명이라는 과격한 논리로도 이어지기 때문에 엄청나게 위험하다. p는 q이다, q는 p이다 애초에 사형찬반은 국가의 사법 권력이 직접적이길 바라는 논리와 간접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논리의 대결일 뿐이다.
  • [22] 또는 동거녀의 생각 없는 파리채질로 인하여
  • [23] 즉 과실치사나 상해치사, 폭행치사
  • [24] 실제로도 제레미 아이언스는 사형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이다.
  • [25] 사형 이외에도 다른 형벌들 역시 "돌이킬 수 없는 결과" 를 가져오는 경우가 간혹 있지 않겠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국내외의 유수의 형법학 저널들과 학회지에서 바로 그와 같은 특수한 사례들을 법리적으로 분석하는 논문들과 판례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 모든 사례들을 검토한 형법학자들의 거의 대다수는 사형제의 "돌이킬 수 없는" 약점에 대해 전적으로 수긍하고 동의하고 있는 형편이다.
  • [26] 사법살인과는 다른 개념이다. 오판은 보통 과실을 상정하지만, 사법살인은 미필을 포함한 고의적인 경우를 상정한다.
  • [27] 출처 《신형사소송법》, 신동운, p.1535.
  • [28] 구금의 경우 1일 5,000원 이상, 미결구금 포함, 기간중 재산상 손실 및 기회비용의 상실, 정신적 및 신체적 고통, 사법부 과실여부 고려. 벌금 및 추징금의 경우 기 징수한 금액에 보상결정일까지의 기간에 따른 법정이율을 가산한 금액 합산. 몰수의 경우 몰수물 반환 또는 보상결정시 시가 보상.
  • [29] 집행전 구금에 대한 보상금에 본인사망에 의한 재산상의 손실액 합산, 이후 다시 3,000만 원 이하의 법원이 인정하는 금액을 합산.
  • [30] 이에 대하여 사형이 아닌 다른 형벌 역시 오판이 있었을 때 피해를 보상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사형제의 "돌이킬 수 없음"을 이유로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것은 모든 형벌권, 또는 사법권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이는 억지에 불과하다. 징역이나 금고 등의 자유형이나 벌금, 몰수같은 재산형의 경우 잘못되었음이 밝혀졌을 때 최소한 가능한 수준까지는 무고한 피해에 대해 보상하려고 노력할 여지가 있는 데 비해, 사형의 경우는 그런 여지조차 없다는 차이를 무시한 것. 피해와 보상의 비례성을 무시하고 어차피 완벽한 보상이나 회복이 불가능하니 다 마찬가지라는 이런 희한한 논법에 따르면, 살인을 다른 강력범죄보다 더 무겁고 엄격하게 처벌할 필요도 없는 셈이다. 단순한 폭행범이 피해자에게 금전적으로 보상하고 감옥에 간다고 해도 억울하게 맞은 사람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31] 특히 천주교가 신학적으로 사형 반대를 강하게 주장한다. 개신교는 분파마다 다르다.
  • [32] 한인섭, 〈사형제도의 문제와 개선방안〉, p.7 이하도 함께 참조.
  • [33] 이덕인, 〈사형제도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적 검토〉, 한국형사정책학회, 2011, p.9
  • [34] 조준현, 〈사형제도 존폐논쟁의 현황과 전망 - 이념논쟁과 국민정서〉, 《형사정책연구》 17권 2호, 2006, p.21
  • [35] 이덕인, 동 논문, p.16, 각주 43.
  • [36] 물론 환경과 관계없이 갑툭튀한 흉악범이 나타날 가능성까지 부정하는 것은 다소 무리지만.
  • [37] 편애라든가 가정폭력
  • [38] 다만 헌법해석에 의한 폐지냐 아니면 입법작용에 의한 폐지냐에 대한 의견의 대립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 [39] 이를 흔히 "사형제의 위하력(威嚇力)" 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시기상조의 논리, 응보의 논리와 함께, 적지 않은 사형 찬성론자들의 주된 논거 중 하나이다.
  • [40] 움베르토 에코가 에세이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에서 이를 보충하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위하력을 위해 (도덕적, 법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형제의 존치를 주장한다면, 그 위하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사형 집행의 공개에도 동의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
  • [41] 실제로 토머스 모어는 저서 《유토피아》에서, 사형을 비롯한 극형을 반대하며 바로 이 논리를 근거로 들었다. 그는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피해자는 물론 목격자까지 모두 살해하려 한다는 심리를 갖게 된다는 점을 경고했다.
  • [42] 이것을 과실치사상죄에 대한 이야기라고 착각하지 말자. 오히려 우범곤 사건과 같은 경우라고 봐야 할 것이다.
  • [43] 우스개소리로 소매치기범에게 본보기를 보이려고 소매치기에도 사형제의 범위를 넓혔더니 공개처형장에 군중이 있는 곳에서도 소매치기가 발생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 [44] 이하 한인섭, 동 논문, p.15
  • [45] 이러한 논자들의 예로는 정웅석&백승민, p.682 등. 다만 이들의 경우도 위하력이나 응보의 논리 대신 주로 시기상조의 논리를 채택하고 있을 따름이다.
  • [46] 만일 찬성론자들이 "사형은 범죄예방이 아닌 사회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 존재한다" 고 하는 중인데 반대론자들이 "사형제는 범죄예방효과가 없으니 폐지되어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면 해당 반박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사형제를 통해 법을 무서워하게 하여 범죄를 잠재울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이 어디 인류 역사에 드문 논리였던가?
  • [47] "...국가가 인간 생명을 말살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윤리적 근거는 그 권리가 타인의 생명을 보호하거나 존립시키기 위해 필요 불가결하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극형이 잠재적 범죄자에게 억지효과를 발휘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위 논리를 증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출처 한인섭, 동 논문, p.8
  • [48] 주마다 다르지만 미국에선 사형 선고를 받더라도 법적으로 구제 절차와 지연 수단이 많아 집행으로 이어지기 전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고도 30, 40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다 자연사하는 경우도 있다.
  • [49] 당연한 일인 것이, 아무리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만 자신의 의지도 아니고 국가의 명령으로 죽음을 당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 [50] 여담이지만 뉴스 링크에서, 캘리포니아주는 일단 사형이 언도되면 사형수가 의무적으로 항소하게 하고, 국선변호사까지 선임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이 모든 비용은 전액 주정부가 부담한다. 왜일까? 바로 사형수의 인권 및 오판의 최소화 필요성 때문이다. 미국의 사형 찬성론자들이 사형수의 인권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 [51] 물론 그래도 반대한다고 대답을 못 한다면 감정적으로 그 사람의 주장에 설득력이 실리기 힘든 것은 맞으나, 이런 질문은 답정너 수준의 감정적인 질문이다.
  • [52] 참고로 이에 대해 "당신의 가족이 사형수라도 사형에 찬성하겠는가?"로 반론을 펼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부적절한 반박인데, 첫째로 똑같이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둘째로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토론 참여자의 일관성 있는 태도가 아니라 개인의 복수심과 분리된 사법부의 공평무사한 객관성이기 때문이다. 이에 관련된 위키방 논의는 다음 링크를 볼 것. # 애초에, 이런 논법 자체가 '당신의 가족이 흉악범죄의 피해자라도 사형에 반대하겠는가?' 라는 논법에 대해 똑같은 수준으로 반론하는 것이니, 둘 다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위 주석에서처럼 '그래도 반대한다고 대답하지 못하면 감정적으로 그 사람의 주장에 설득력이 힘든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면, 그 역으로 그래도 찬성한다고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주장에 감정적으로 설득력이 힘든 것 역시 사실일 것이다. 키배뜰때는 이쪽이 편하다.
  • [53] 지지기반이 작지 않은 정치인이 사형으로 '희생'될 경우 십중팔구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정도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야당 지도자나 전직 독재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나라가 굉장히 혼란스러워진다. 삼청교육대를 만드신 그분이 대표적이며, 피노체트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물며 통일 이후 세계 최악의 지도자로 꼽히는 김정은조차도 쉽지만 않다.
  • [54] 주로 거대 범죄조직이나 또는 광신적인 사상을 추종하는 이들의 우두머리급. 예를 들어 알 카에다옴진리교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부류의 경우에는 사형시킬 경우 그 추종자들에게 '순교'로 비춰져 오히려 그 활동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또한 정치적이거나 군사적인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김신조김현희 등의 경우도 있는데, 이런 부류들은 그들 자체가 악인이라기보다 '비뚤어진 국가가 낳은 비뚤어진 인물'들이며, 또한 많은 기밀들을 얻어야 되는 입장이라서 쉽지가 않다.
  • [55] 전 세계에서 베트남과 태국에서만 시행중인데, 총살형을 집행하는 장소가 부족하고 집행인의 극심한 스트래스로 인해 음독형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 [56] 이런 작품에서 진짜 흉악 범죄자는 법적인 사형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애초에 죄인(혹은 죄인으로 몰린 사람)에게 동정심을 유발하고, 사형제와 그놈의 정의와 관련지어 사법부 등을 까는 전형적인 장치이므로
  • [57] 원제 '숲의 나팔꽃'(モリのアサガ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