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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주의

last modified: 2015-02-16 14:53:47 Contributors

事大主義

Contents

1. 개요
2. 내용과 비판
3. 결론
4. 관련 항목

1. 개요

한국사에서, 큰 나라(大, 즉 중국)을 섬기는 것(事)을 중심으로 하는 외교정책.

또한 근대 또는 현대 한국사에서, 발전한 나라(구권 국가)의 문화, 사상과 심하면 사고방식까지 맹목적인 찬양을 넘어 숭배하려는 주의를 말한다.

일본의 오코노기 마사오 이오 대학 교수는 이 단어가 일본 학자들이 한국을 경멸하기 위해 만들어온 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대(事大) 단어 자체는 옛날부터 존재했지만, '사대교린'이란 유교적으로 이상화된 외교 정책의 수사일 뿐이며 특정한 사상이 아니다.

2. 내용과 비판

이 단어는 서구의 식민주의 프레임에 동아시아 외교관계를 꿰어 맞추면서 "한 국가가 자율성을 포기하고 강한 국가에 복종하거나 맹목적으로 추종하려는 사상 또는 외교방침"을 개념화하기 위하여 창안되었다.

본래 국제 관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건 청동기시대에 고대 국가가 등장한 이래로 만고불변의 진리이며, 동서양 어느나라를 막론하고 적용된다.

중국은 진시황 이래로 동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중국이 상대적으로 뒤쳐지게 된 근대를 제외하면 기나긴 역사 동안 중국은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월등히 한반도 국가를 앞서 있었기 때문에, 이들과 교류를 하면서 문화를 발전시키는게 이득이었지, 쓸데없이 적대정책을 취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중국의 한족국가와의 교류는 전통적으로 사대의 형식으로만 가능했으며, 신하를 자처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지 동등한 관계에서의 외교란 불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대"는 외교의 한 형식일 뿐이었고, 한족과 맞짱떴던 무수한 이민족 국가들이 일시적으로 중국을 정복했다가도 대부분 동화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한반도 국가들은 맞짱떠서 중국을 정복한 적도 없고, "사대"의 형식으로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중국은 동아시아의 질서에서 현재의 미국보다도 더 큰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자주성을 지상으로 삼아 중국과 적대를 계속 해왔다면, 현재의 북한과 같이 중2병스러운 국가가 될 뿐이고, 고구려처럼 문화가 사그라들어[1] 결국은 만주처럼 중국의 일개 지방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게다가 지정학적으로도 일본처럼 고립된 섬나라라면 상관없겠지만, 한반도의 경우 몽골고원 등지에서 꼬리를 물고 발흥해온 세계 최강의 전투민족[2]들과 심심치 않게 맞닥뜨려야 했으며, 어쨌건 전통적으로 초강력 패권 국가가 자리잡아온 중국을 국경에 맞대고 있는 국가다.

이런 독보적인 초강대국 중국이나, 혹은 이런 초강대국 중국조차도 떡실신시키던 몽골족이나 만주족과같은 전투민족들이 한반도로 침공해온다는 것은 그야말로 세계가 종말하는 공포스러운 사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사대는 필수적인 전략의 옵션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한반도의 입장에선 차라리 어느 정도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농경 문화권인 중국과 연대하는 것이 여진이나 몽골같은 유목 민족들의 약탈과 전쟁에 대처하는 데 있어 훨씬 나은 선택이었으리라. 게다가 중세 후반 이후로 갑툭튀하여 동아시아 전 해안을 휩쓸었던 왜구에 대한 대처도 그렇고.... 바다 위에서 대륙과 떨어져 있다는 지형적 조건 덕택에 강대국의 침략에서 자유로웠던 섬나라 일본은 이러한 역사를 악의적으로 비틀어 사대주의라는 개념을 만들어 역사를 폄하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식민학자들은 주로 중국-조선사이의 불균형한 역학관계와 조선 중후반기의 찌질한 모습들을 끄집어와 한국사 전반의 특징으로 결부짓고, 이를 총독부 관리들에게 조선통치의 지침서로 제공하기도 하였다. 근대 한국민속학에 상당한 학술적 성과를 쌓은 것으로 평가받는 대표적인 일제 식민사학자인 다카하시 도루는 3.1 운동마저도 중국 사대주의에서 미국 사대주의로 전환한 것이라는 망발을 서슴치 않았는데[3], 그들이 조선멸시의 전제로 삼은 일본의 근대화가 노골적인 아시아 배척과 열성적인 유럽열강 모방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란 말이 딱 맞다.

명청교체기 이후에는 청나라를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조선이 곧 명나라의 정신을 계승했다는 정신승리법적인 소중화사상이 대두되었다. 사대주의는 큰 나라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지만, 명나라가 오랑캐(청나라)에게 멸망하면서 조선이 섬겨야 할 '큰 나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소중화사상의 정서는 명청교체 이후 한국, 일본, 베트남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4] 즉, 사대주의를 따르자면 패권국가인 청에 굴종해야 하지만, 소중화사상에 의하면 청을 배척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사대주의와 소중화사상을 "소중화사상과 사대주의에 빠져서…"하는 식으로 세트로 묶어서 조선을 까는 데 사용하면서도 그 모순을 느끼지 못한다.[5] 한반도의 경우 역사적으로 병자호란 이후 조선 후기까지 소중화주의가 사대주의를 압도하면서 청나라와의 교역, 교류를 방해하였다.

오히려 조선의 사대주의가 약화되고 소중화주의가 득세한 것이 조선의 멸망을 가속시켰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나마 명을 통해 어느 정도는 외부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있던 이전에 비해 후기에 들어서는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단절되었고, 청의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사상(북학파)은 매국노 취급을 받아야 했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뒤떨어진 조선을 발전시킬 방안은 내놓지 않으면서 하는 짓이라는 것은 죽은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지내는 것 뿐이었고, 이것은 1937년(연도의 착오가 아니다!) [6]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조선은 사대주의로 망한 것이 아니라 사대를 제대로 하질 않고 북한과 같이 철저하게 고립을 추구한 결과 나라를 일본에 들어다 바치게 된 것이다.

사대주의에서 가치경도적인 수사를 제외하고 추려 보면, 패권국가와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선진국의 문화를 수입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사대주의는 세계 각국의 국력에 분명한 차이가 있는 국제 현실에서 초강대국이 아닌 이상 모든 국가가 따라야 할 전략이다. 현재의 한국도 미국과의 동맹을 공고히 하고 외국 군대인 주한미군을 주둔시켜 이를 전략적인 지렛대로 활용하기도 하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구하기 위해 국내의 법과 제도를 고치고 선진국의 사례를 본받으려고 노력한다.[7] 실제로 10여 년 전까지도 국내 학계의 대응은 "우리도 자주적 OO가 있었다," 였지만, 근래의 대응은 오히려 "사대주의 그게 무슨 문제임? 당연한 국가전략 아님?"하고 받아치는 추세. 사실 사대주의를 가치중립적으로 재정의한 개념으로 본다면, 너무나 당연해서 특별히 단어를 새로 만들 필요도 없는 개념이다.

3. 결론

별 것 아니다. '외국은 언제나 대단하며 우리나라는 시원찮다'라는 논리로 모든 것을 비난하는 관점이 문제지, 알고보면 당연한 국가전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4.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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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애시당초 고구려도 중국에 대하는 자세 역시 기본적으로 사대였다. 장수왕같이 고구려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도 중국에게 신하를 자처하며 조공을 바쳤다. 물론 기본적인 의도는 조선의 그것과 비슷했다. 명분을 상대방에게 넘기는 대신 실리를 챙기는 그것. 다만 중국에서 다시 통일 왕조가 들어서자 주위에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위험을 제거해서 과거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고구려를 멸망시켰을 뿐이지만. 하지만 결국 발해의 등장으로 그 의도는 실패했지만
  • [2] 흉노, 선비, 거란, 여진, 몽골 등은 모두 당대 최강의 무력집단들이었다. 중국 정도 되니까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 그나마도 몽골이나 만주(여진)족에게는 세 차례나 본토가 털렸었다. 게다가, 이설이 많긴 하지만 수&당도 선비족이 밀고 내려와서 세운 나라나 마찬가지다.
  • [3] 3.1 운동이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발언에 영향받은 것을 이런 식으로 비틀어놓았다.
  • [4] 정효운, 《고대 한·일 국가와 타자인식》, 신라문화 28집, 2006 - 한국과 일본의 소중화사상의 기원 연구
  • [5] 간단히 말해 소중화사상은 나 중심, 사대주의는 남 중심에 해당한다. 어떻게 '나 중심'이면서 동시에 '남 중심'일 수 있는가. 이것은 마치 "보수사상과 진보사상에 빠져서‥"라든지, "개방경제와 보호경제에 빠져서…"라고 하는 말과 같다. 서로 상충되는 정책을 동시에 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서로를 절충하는 식으로는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제 3의 대안이 새로운 사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두 사상의 장점을 조화시키지 못했다'랄지, '어느 쪽에도 충실하지 못했다'는 식의 비판은 가능하겠지만, 무턱대고 세트로 묶어서 소중화사상과 사대주의에 빠졌으니 까야 된다고 하면 개념상 모순이다.
  • [6]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45209&cid=1621&categoryId=1621
  • [7] "한국 발전은 사대주의(事大主義), 즉 글로벌 스탠더드 따른 덕분", 오코노키 마사오, 게이오대 법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