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빙그레 이글스

last modified: 2015-04-06 08:36:51 Contributors

Binggrae_Eagles.png
[PNG image (Unknown)]
빙그레 이글스
Binggrae Eagles
창단년도 1986년 3월 8일
명칭 변경년도 1993년 11월 1일
모기업 (주)빙그레
연고지 대전광역시(1986~1993)
홈구장 한밭 종합운동장 야구장(1986~1993)[1]
구단명 변천사 빙그레 이글스(1986~1993)
한화 이글스(1994~)

Contents

1. 소개
2. 강력했던 팀
3. 매각

91빙그레전화카드.png
[PNG image (Unknown)]

1991년 출시된 빙그레 전화카드

1. 소개

한화 이글스가 1993년까지 사용한 팀명이자 7구단 시대를 연 구단이다. 1986년에 대전, 충청권을 연고로 하는 7번째 구단으로 창단되었다. 사실 빙그레 이글스는 처음부터 한화그룹 소속의 프로 야구단으로서 창단되었으나 당시까지만 해도 한화그룹이 대중에 잘 알려져있지 않고, 아는 사람에게도 화약 제조 혹은 방위산업체 이미지가 강했으므로 일반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그룹 계열사 중 유일한 소비재(식품) 업체인 빙그레의 이름을 빌려 온 것이다. 1993년 오너 형제의 재산 분할로 빙그레가 계열 분리되면서, 한화그룹 내에 남게 된 야구단은 1994년 그룹명을 따라 한화 이글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2. 강력했던 팀

초창기의 6개 구단에 비해 늦게 창단된 구단임에도 불구하고 신인 선수들이나 타 팀에서 전력보강 차원으로 영입한 선수들의 포텐셜이 폭발[2], 김영덕 감독의 지휘 아래 창단 2년 뒤인 1988년부터 1992년까지 한국시리즈2X2=4번 진출하였으며 정규시즌 1위도 2번이나 차지했다. 허나 맞붙었던 상대가 의외로 강했기 때문에 결실은 맺지 못했다. 해태의 한국시리즈 우승 중 3번이 빙그레 상대였으며, 1992년에는 염종석이 있던 롯데에 농락당했다.[3][4] 그리고 빙그레 자신도 페넌트레이스 때와는 다르게 플레이오프에서는 약한 면모를 보였으며, 중요한 고비에서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졌다.[5] 그리고 2연준[6]을 2번이나 달성한 팀이다. 그래서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한화 이글스로 바뀐 후 1999년에 이루게 된다.

이강돈, 장종훈, 이정훈을 중심으로 하는 공격 야구를 펼쳤으며, 이는 한화그룹의 화약 제조업을 본뜬 다이너마이트 타선이라 불리며 빙그레 이글스의 상징이 된다. 또한 이상군, 한용덕, 한희민, 송진우, 안승민[7] 등이 중심을 이루었던 투수진도 리그 상위권이었다. 우승만 못했지 사실상 이글스의 리즈 시절이다.

3. 매각

그러나 투수진이 1992년 정민철을 배출해내고 한용덕, 송진우의 기존 선수도 꿋꿋이 버티면서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타선이 이렇다할 신인을 배출해내지 못하고 노쇠화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1993년, 결국 몰락하게 된다.[8]

그리고 몰락과 동시에 모기업인 한화그룹이 2세 오너 체제로 재편되면서[9] 상속 분쟁으로 인해 빙그레한화그룹에서 이탈하여 자연스럽게 야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게 되었고[10] 이후 1993년 시즌 종료 직후 11월 1일에 한화 이글스로 구단명이 변경되어 1994 시즌부터 한화 이글스라는 이름으로 리그에 참가하게 된다. 그 때 김영덕 감독도 물러나 강병철 감독으로 새롭게 출발하였다.

이후 모든 역사에 대해서는 한화 이글스쪽을 참고할 것.

----
  • [1] 이후 한화 이글스로 역사가 이어진다.
  • [2] 빙그레는 창단 당시 6개 구단 보호선수 외 선수들 중 삼성 라이온즈 출신의 선수들을 많이 지명했다. 경북고, 대구상고를 중심으로 한 대구 팜은 1970~1980년대에 고교대회에서 엄청난 성과를 냈었고, 그에 비례하여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많았다. 그리고 삼성에 워낙 선수들이 많다 보니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린 선수들이 빙그레에 왔던 거지. 빙그레 초창기에 대구 출신 선수들이 많았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창단 감독도 그쪽 동네 사람이라....
  • [3] 사실 1992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염종석보다 박동희의 활약이 더 컸었다. 염종석은 장어먹고 탈이나 4차전에서 강판당하기도 했다.
  • [4] 참고로 1992년 정규시즌의 81승(42패 2무, 팀승률 0.651)은 당시 정규시즌 최다승 신기록이었으며(現 시즌 최다승 기록은 2000년 현대 유니콘스의 91승), 당해 정규시즌 2위 이었던 해태 타이거즈(71승 54패 1무)와의 게임차는 10.5 경기였다. '92년 정규시즌 최종 순위표(출처: 위키백과 한국어판)또는 한국프로야구/1992년의 정규시즌 최종순위 참조.
  • [5] 1989년 2차전의 장종훈의 에러 같은 게 대표적.
  • [6] 2연속 준우승을 의미한다.
  • [7] 그렇게 치면 99안승민도 있다. 이쪽은 팀명이 한화 이글스로 바뀌고도 한참 뒤인 2010년에 데뷔했다!! 물론 개그.가아니라 이때는 미국에서 뛰었다 카더라
  • [8] 이후 이글스는 개명후로도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인 1996년 신인 4인방이 등장때까지 이렇다할 선수를 배출해내지 못했다.
  • [9] 사실 2세 오너의 경영은 1980년대부터 이미 하고 있었다. 창업주 김종희 회장이 1981년에 갑작스럽게 타계했었기 때문. 이 시기의 재편은 그룹 구조의 재편이었다.
  • [10] 형제간의 재산분할로 인해 그룹인 한화는 장남 김승연에게, 빙그레는 차남 김호연에게, 그리고 제일화재는 장녀 김영혜 쪽으로 넘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