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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비사라

last modified: 2015-12-23 16:52:26 Contributors


Bimbisara

Contents

1. 소개
2. 생애
2.1. 통치
2.2. 종교 정책
3. 죽음
4. 여담

1. 소개

고대 베다 시대, 인도 16대국의 하나인 가다의 왕. 재위기간은 기원전 545년에서 494년 무렵. 마가다를 부흥시킨 명군이며, 불교를 받아들인 호법 군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들에게 반역당하여 감옥에서 굶주리다 죽었으니 그 최후는 비참하였다.

2. 생애

2.1. 통치

빔비사라가 아직 태자이던 시절, 마가다는 8백년의 역사를 지녔으나 강국은 아니었고, 이웃 앙가의 속국이었다. 앙가에서 무거운 세금을 징수하러 오자 빔비사라는 앙가의 관원을 쫓아냈고, 마가다와 앙가의 전쟁을 이끌어 동쪽의 앙가를 병합하였다. 참고로 빔비사라는 15세에 왕위에 올랐으니 기껏 초등학교 고학년-중학생 시절에 이런 공적을 이뤘다는 것이다.

왕위에 오르고 강과 구릉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 왕사성[1]을 수도로 삼았으며, 이웃한 코살라와 바이샬리에서 왕비를 맞아들여 결혼동맹을 맺었다. 이로서 그는 코살라 왕 파세다니의 사위가 된다. 파세다니의 공주로부터 카시 국을 지참금으로 받기도 했다.

백성들에게도 자비 깊고 현명하여 선정을 베풀던 성군(聖君)이었다고 한다.

2.2. 종교 정책

빔비사라는 불교를 받아들인 왕이었는데, 15세에 왕위에 오른 빔비사라는 석가모니와 친하였으며, 즉위 16년 무렵에 불법에 귀의하여 37년간 석가모니와 친구처럼 지내며 승가를 비호하였다고 한다. 보시를 하여 죽림정사(竹林精舍) 등의 유명한 사원을 짓기도 했다. 마가다의 왕사성은 역시 석가모니를 비호한 파세다니 왕의 코살라 국 사위성과 함께 초기 불경에서 주요한 일화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불교 이외에 자이나교에서도 그가 자이나교에 귀의하였다는 설이 실려있어, 여러 신흥 종교를 대우한 것으로 보인다.

3. 죽음

명군이었던 빔비사라 왕의 최후는 불행하였는데, 아들 아자타삿투의 반란으로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아자타삿투는 왕이 굶어 죽으라고 음식을 제대로 감옥에 넣어주지 않았는데, 왕비 위제히(Vedehī)는 남편이 굶어 죽을 것을 염려하여 몸을 깨끗하게 씻고 몸에 꽃과 밀가루를 반죽하여 바르고 포도줍을 조그만 병에 넣고 머리카락 속에 숨겨서 빔비사라를 면회했다. 빔비사라는 왕비가 숨겨 가져오는 음식을 먹으면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며 감옥에 갇혀 있었다.

아자타삿투는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하여 어머니인 웨제히 왕비를 감옥에 가뒀는데, 《관무량수경》에서는 감옥에 갇힌 위제히 왕비가 영취산에 계신 석가모니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도와줄 것을 기원하여, 석가모니는 옥중에 나타나 위제히를 위하여 설법하였는데 그 내용이 관무량수경이라고 한다.

나중에 아자타삿투는 후에 크게 상심하였을 때, 마침내 후회하며 아버지를 찾아갔으나 옥중에서 기력이 다한 빔비사라는 발자국 소리에 두려워하며 떨다가 67세로 숨이 끊어졌다고 한다. 이 죽음에 충격을 받은 아자타삿투는 이전까지 지원해 주었던 데바닷타와 손을 끊고 석가모니에게 귀의한다.

4. 여담

명군이었지만 치질에 걸린 적이 있는데, 항문에서 피가 줄줄 흘러서 궁녀들이 임금님이 우리처럼 생리를 하니까 이제 곧 애도 낳을 거라며 놀려서 굴욕과 수치를 느꼈다고 한다.흑흑 그러다가 명의 지바카가 치질 수술을 해서 고쳤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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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코살라 국의 사위성과 함께 초창기 불경의 양대 주요 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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