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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last modified: 2015-04-14 10:26:05 Contributors

< 2005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
2004 - 조지 워커 부시 착한 사마리아인 2006 - 당신

모두가 잘 아는 그의 리즈시절 사진 2013년 만 58세의 모습.
빌 형도 세월은 못 이겼구나
젊은시절 교통법규 위반으로 찍힌 머그샷.
유재석? 왜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똑바로 안서?![1]

Contents

1. 개요
2. 경력
3. 생애
4. 은퇴
5. 기부와 선행
6. 복귀
7. 여담
7.1. 농담거리
8. 어록
9. 관련 사이트
10. 관련 항목


1. 개요

William Henry Gates III KBE[2]

이름 William Henry "Bill" Gates III
생년월일 1955년 10월 28일
출생 미국 워싱턴 시애틀
신장 178cm
학력 하버드 대학교 중퇴
데뷔작 The Thundering Herd / Wild Horse Mesa
배우자 멀린다 게이츠
자녀 슬하 1남 2녀
부모 父 윌리엄 H 게이츠(1925년생), 母 메리 맥스웰 게이츠(1929-1994년)
자산 2015년 1월 기준 811억$ - 한화기준 90조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겸 전 CEO 현 기술자문 및 이사회 의장직
버크셔 해서웨이 이사회
캐스케이드 인베스트먼트 CEO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 창업주 겸 공동회장
세계 최고 부자하면 떠오르는 형
2015년 현재 재산순위 1위

어쩌면 세계를 뒤에서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대빵이던 횽. 별명으로는 어둠의 군주, 빌형(또는 빌횽), 빌대인, 빌본좌. 좀 특이한 별명은 게이(...) 백괴사전의 빌 게이츠 항목도 이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3]

Nerd황제로 꼽히는 인물이다. 프로그래머 시절에 베이직 프로그래밍 언어를 불과 몇 킬로바이트 용량으로 압축시키는 일을 해내는 덕분에 코드압축의 황제로 불렸다고 한다. MS에서 근무한 적 있었던 엘 스폴스키의 평에 따르면 그는 MS의 소프트웨어에 대해 그걸 직접 만드는 사람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 개발자로서도 굉장히 탁월했던 셈.

2. 경력


컴덕후계의 신화, 컴덕질의 최종보스, 덕후질로 성공한 남자,

세계정복을 꿈꾸는 독점왕

실제 그는 사회에 모난 것 없이 무난하게 지나가는 모범생 스타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젊은 시절 하버드 대학교를 중퇴하고 맨손으로 컴퓨터 사업에 뛰어들 정도로 야심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한창 고생하던 시절에는 '그냥 의사나 할까' 라고 생각도 했었다고.

근데 아래 서술한 것이나 실제 행보들을 보면 은근히 펑크끼가 있다. 대학생 때 음주운전으로 잡혀 들어가기도 했다. 컴퓨터 제조사들에게 경쟁사 제품을 쓰면 윈도우를 납품하지 않겠다고 협박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래선 반드시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에, 복돌이 대책 겸 해서 "OS 없는 PC의 출시를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신들이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건 그건 당신들 자유지만 MS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된다"라고 한다거나, OS 내에 경쟁사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하는 코드를 몰래 집어넣는 일을 하기도 했다. 사실 이 정도는 웬만한 대기업들도 많이 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 사람이 정직하고 깨끗하게 부를 축적했다고 하는 말은 맞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


이 사람의 희대의 흑역사 명언은 하드 25MB 컴퓨터를 출시하면서 했던 여러분 이 컴퓨터 하나면 펴어엉~생 쓰실 수 있습니다.

다만 당시는 게이츠는 물론 그 누구도 무어의 법칙을 실감하지 못했던 시절이고, 황의 법칙은 있을 턱이 없던 시절이었다. DOS를 깔고 DOS용 게임만 한다면 평생 쓸 수도 있겠다. 애초에 그 당시 한국은 영…

이것 말고도 640kb이면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메모리 용량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강한 어조로 부정했을까 기본 메모리 문제 문서를 살펴보자.

2000년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스티브 발머에게 넘겨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이후 회장직과 더불어 최고 소프트웨어 아키텍트(Chief Software Architect) 직책을 신설하여 맡았다. 2006년 최고소프트웨어 아키텍처(CSA) 직책을 레이 오지에게 넘겨주면서 사실상 은퇴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2008년 6월 27일부로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직에서 은퇴했다. 이것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래도 이사회 의장직은 그대로 유지한다고 한다. 즉 회장 연봉은 안 받지만 앞으로도 마이크로소프트 덕분에 왕창 벌 거라는 이야기이다.

2007년까지 600억 달러의 개인재산을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의 부자였다. 허나 최근 주식 가치 등의 변화로 빌 게이츠의 '세계 최고의 부자' 타이틀이 위협받았다. 멕시코의 통신재벌인 카를로스 슬림에게 '세계 최고의 부자' 타이틀을 넘겨주고 자신은 '미국 최고의 부자'로 남는 듯 했다.

그러나 2013년 5월을 기점으로 블룸버그에서 집계하는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카를로스 슬림을 제치고 다시 1위로 등극했다. 이후 다시 Forbes에서 2위로 떨어졌다가 2015년엔 다시 1위로 등극하면서 계속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중. 어쨌든 순위가 계속 바뀌어도 빌 게이츠라는 이름은 갑부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근데 슬림은 기부를 거의 안하니 사실상 압도적이다.

3. 생애


그의 가정은 상류층으로, 아버지는 저명한 변호사였으며 어머니는 미국의 은행인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뱅크시스템과 비영리 단체 유나이티드 웨이의 이사회 임원이었다. 또한 외할아버지인 J.W. 맥스웰은 미국 시애틀의 전국 도시은행의 부은행장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라이벌이었던 스티브 잡스가 입양아, 서민층, 문제아 였던것과는 달리 그는 태어날때부터 만렙이었다.

어릴 적부터 신동 기질을 타고나서, 교회 목사가 박람회에 데려가는 조건으로 내건 성경의 산상수훈(마태복음 5장에서 7장에 해당하는 내용이다)을 완벽하게 외운다던지 수학적으로 재능을 보여 일찍이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에 다닐때부터 컴퓨터에 두각을 나타냈는데, 학교 컴퓨터의 반 편성 프로그램을 조작하여 예쁜 여학생들과 같은 반이 되도록 하는가 하면, 언젠가는 폴 앨런과 함께 학교단말기에 연결되어 있던 중앙컴퓨터를 해킹, 학교가 지고있던 빚을 회계장부에서 지워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기도 했다고. 참고로 폴 앨런은 게이츠의 친구이자, 마이크로소프트를 차릴 때의 동업자이기도 하다. 우리도 친구를 잘 두도록 하자 엔론 뺨치는 아주 창의적인 회계이다

어떻게 위기를 넘기고 나서 하버드에 들어간 이후엔 수학적 재능이 더욱 개화,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모아 악동 짓을 하거나 프로그램 개발을 하거나 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알고리즘 논문을 하나 써서 이산수학 학술지에 실었다. 내용은 팬케이크 소팅#이라는 문제에 대한 알고리즘을 제시한 것으로, 더 좋은 알고리즘은 30년 뒤에야 나왔다.

흔히 IT분야에 젊은 사업가가 나타나면 제2의 빌 게이츠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중에 게이츠처럼 학문적인 성취를 이룬 사례는 거의 없다. 대학원에 진학해도 게이츠의 논문만큼 중요한 논문을 못 쓰고 박사를 받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박사를 받을 정도면 다른 연구 업적을 쌓았겠지만.

학술지에 논문을 실은 이후 더 배울 것이 없다면서 하버드 대학을 자퇴했다. 나중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명예 졸업증을 주긴 했다. 하지만 그가 다니던 학과와 관련없는 법학학위였다(...). 이유는 게이츠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변호사로 키우고 싶어했던 꿈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란다… 효자잖어!!

언젠가 한 회사가 게이츠의 소문을 듣고 회사 컴퓨터를 맡겼는데, 암호표도 주지않곤 암호 걸린 회사기밀문서를 읽으라고 시키자 그 자리에서 문서의 암호를 깨버려 위험인물로 낙인찍혀 강제 퇴직당했다. 암호를 안 알려준게 문제지 암호를 푼게 무슨 잘못이야 게이츠는 그 퇴직금으로 앨런과 함께 회사, 즉 마이크로소프트를 차렸다. 초기 마이크로소프트는 알테어용 베이직 인터프리터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몇 년 뒤, IBM 사에서 처음으로 PC를 출시할 때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IBM에 PC용 운영체제를 공급하기로 계약한다. 그래서 시애틀 컴퓨터의 Q-DOS를 사서 이름만 MS-DOS로 바꾼 뒤 팔아 떼돈을 벌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은 Q-DOS와 MS-DOS와 CP/M 은 소스코드가 모두 다르다는게 밝혀졌다. 자세한 내용은 MS-DOS 항목으로.

어쨌거나 그가 IBM과 맺은 계약은 컴퓨터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계약이라고 불린다. 결국 IBM은 마소에게 돈만 퍼준 꼴이 되고 만다. 이후 윈도우즈 시리즈를 통해 완전히 OS시장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만약 빌 게이츠가 그 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대로 다녔다면 우리는 리눅스를 썼을지도 모른다 아니 모든 가정에 아이맥이 있을지도 몰라

  • IBM과의 IBM-PC 운영체제 계약도 매우 운이 따랐는데, IBM에서 최초로 계약을 하려 한 곳은 MS였지만, 당시 MS는 자체 운영체제가 없었다. 그래서 게이츠는 당시 많이 쓰이던 CP/M을 만들던 게리 킬달의 디지털 리서치를 소개해 주었다. 하지만 그 쪽은 왠지 IBM과의 계약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에 게이츠는 다시 한 번 양 쪽을 중재해 보았지만, 그 때도 디지털 리서치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고 계약은 결렬되었다. 그래서 PC 출시가 늦어질까 걱정한 IBM과 PC가 안 나와서 베이식이 안 팔릴까 걱정한 MS의 계약이 이루어졌다.

  • 이 때 게리 킬달이 바로 정신을 차렸으면 MS가 지금처럼 성공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MS-DOS를 살펴본 킬달은 MS-DOS가 자사의 CP/M-86과 외형이나 기술적으로나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IBM을 위협하여 자사의 운영체제도 공식 운영체제로 만들었다. 그래서 IBM PC에는 운영체제가 포함되지 않은 채로 판매되었고, 운영체제는 시장에서 자유롭게 선택하여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디지털 리서치는 CP/M-86의 기술적 우수성을 과신한 나머지 무려 240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았다. 반면 MS-DOS는 약 40달러에 판매되었다. 결국 CP/M-86은 곧 망하고 말았다. 나중에는 정신을 차려서 DR-DOS도 내놓기도 했지만 시장은 이미 MS에게 완전히 넘어간 이후였다. 그리고 이미 윈도우즈로 넘어가는 중이기도 했다. 결국 디지털 리서치는 서서히 망하게 되었고, 이들이 PC 초기에 보여준 일련의 바보짓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단 킬달은 자서전에서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위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빌 게이츠를 아주 싫어했다고 킬달의 빌게이츠에 대한 평가는 "" He is divisive. He is manipulative. He is a user. He has taken much from me and the industry." 그냥 간단하게 "빌게이츠는 컴퓨터 업계의 볼트모어다"라고 해도 되는데..

  • 원래 세계 최초의 GUI방식 OS는 1981년에 탄생한 제록스 스타 워크스테이션(Xerox Star Workstation)이다. 여기서의 제록스는 그 복사기 제조업체로 유명한 록스 맞다. 이 연구소에서는 태블릿 PC,내부 네트워크를 이용한 이메일 등 시대를 수십년 앞질러가는 기술들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 OS에 크나큰 감명을 받았고, 이 스타 워크스테이션을 개발했음에도 사내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PARC팀을 스카웃해 1984년 그 이름도 유명한 세계 최초의 GUI방식 PC '애플 리사(Lisa)'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하지만 1만 달러에 달하는 가격 책정 때문에 팔리질 않았다. 현재 1만 달러라 해도 1천만원. 당시 물가를 고려해보면 엄청난 금액이다.정 궁금하다면 다나와에 가서 최고가 견적을 내봐라 결국 잡스는 짤리게 된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윈도우즈 1.0은 1985년 탄생했고, 이 1.0은 Mdir만도 못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엄연히 윈도우에게는 GUI방식 컴퓨팅을 전세계로 확장시킨 공로가 있다. 아무리 혁신적이라도 대중적이지 않다면 그건 쓸모 없는 것. 특히 윈도우즈는 인간이 아닌 물건이 TIME 지의 1면을 장식하게 한 첫 타자이기도 하다.

위에서 알 수 있듯 프로그래머로서의 재능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업가로서의 재능까지 탁월히 갖추고 있었던 것이 성공의 원인으로 꼽히는 인물. 사실 MS의 경쟁자들은 왠지 삽질을 저질러서 망한 경우가 많지만… 실수를 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원래 전쟁은 잘 싸우는 쪽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덜 하는 쪽이 이기게 마련이다.

4. 은퇴


2008년 CES 마지막기조연설을 했다. 기조연설 중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출근 마지막날이라는 비디오를 틀어줘,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 비디오는 당시 미국에서 방영 중인 인기 시트콤 오피스와 클린턴 대통령 임기 종료 파티에서 상영된 코미디 영상을 패러디한 것이다. 클린턴 항목에 해당 영상의 링크가 있으니 비교해서 보면 좋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인터뷰로 뒷담화 까는게 똑같다.

내용은 대략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 퇴사 후 할 일을 찾는것인데, 그 중 빌 게이츠가 차기 대통령 민주당 후보로 유력했던 2명 중 한 명이었던 힐러리 로댐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부통령감으로 좋은사람이 있는데, 내가 해먹으면 안될까?" 힐러리 왈 "당신이 정치에 어울릴지 모르겠군요"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그 다음 장면에는 버락 오바마앨 고어도 나온다 ㅎㄷㄷ

그 밖에도 U2보노Jay-Z, 조지 클루니, 스티븐 스필버그, 존 스튜어트 등 유명인들이 기꺼이 출연하여 여러모로 대박이다. 유머도 있고, 센스도 있는 사람. 특히 본인의 nerdy한 면모를 철저히 반영하여 사람을 웃긴다.



GNR 밴드의 기타리스트 슬래시의 기타 연주와 함께 무대에서 퇴장했다.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거장의 멋진 마지막.

5. 기부와 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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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그의 기부 규모에 대한 빠르고 쉬운 이해.jpg

저 자막이 잘못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 바로 계산기로 계산해보자.원이 아니다 원이!!!!

전성기 악착같이 돈을 벌어 실리콘밸리악마라는 표현까지 들었던 그가 은퇴후 보여준 행보를 보면 마치 기부를 위해 돈을 악착같이 벌었던게 아닌가 싶을정도.. 아프리카나 저개발국가를 위한 그의 노력을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매번 노벨상의 유력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김용환 과거에는 '독과점' 같은 다소 좋지않은 이미지가 강했으나, 시간이 지날 수록 안티가 상당 수 떨어져나갔다. 자유소프트웨어 진영은 그나마 빌 게이츠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 안좋은 편이지만, 사실 게이츠 본인은 "불법복제를 하지 맙시다"였지 자유소프트웨어에 대한 반대성향은 아니였다.[4] 그마저도 최근에는 "마소가 나름 괜찮은 회사지. 나도 빌형 좋아해"라는 여론이 대세.

  • 독과점으로 인한 비난을 희석함과 동시에, 아내가 자선활동을 자주하는 편이라 결혼 후 대부분의 기부금을 아내를 통하여 기부하였다. 자기 재산의 90%는 죽기전에 기부하겠다고 선언, 워런 버핏도 그것에 동참했다. 부인과 자신의 이름을 딴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에이즈 치료제 개발등에 돈을 기부하고 있다.

    기부하는 금액부터가 보통 군상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사실상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를 막고 있는 방파제는 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거의 전담하고 있다. 만의 하나 얘네가 아프리카를 뜨면 책이 없다. 아프리카의 수호자. 또 기부금 운용이 투명해서 신뢰할 만한 기부 재단으로 꼽힌다. 버핏도 이 점을 보고 기부를 했을 정도. 여러모로 귀감이 될 만한 일이다.

  • 그리고 자기가 죽은 뒤에는 현재 3명 있는 자식 제니퍼, 로리, 피비에게 유산의 0.02%만 물려주겠다 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 재산의 0.02%가 무려 1000만$. 이걸 가지고 죽은 후에 기부하는 게 뭐 대단한 거냐고 까는 찌질이들도 있었지만 사실 반론할 가치도 없다. 2011년 6월경 자식들에게 주는 재산이 현 재산의 0.018%로 줄었다. 하지만 금액은 동일. 천재답게 성격도 가히 천재적이다. 기부는 하되 자식들이 가난에 허덕이지 않도록 이런 부분까지 신경썼다. 실제로 민법에는 누군가가 죽어서 유언으로 전 재산을 기부해도 자식이나 후손에게 전 재산 중일부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규정한 유류분 제도가 있다.

  •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2007년 이후 그의 기부액은 280억 달러에 달하고, 블룸버그에서 억만장자 조사를 했을 때 그의 재산이 2012년 기준으로 70억 달러가 늘었다라고. 즉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마를 리 없는 샘인 셈. 이걸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한숨 놓인다

    게다가 지금 있는 자선재단의 현재액도 362억 달러이므로, 이 정도면 아프리카 질병-개발 관련 자선사업에 충분히 남는 정도이다. 그리고 이것은 빌이 직접 투자한 물론 버핏의 도움을 받아서 회사들에서 나온 주식 차액에서 나온 돈으로 기부하는 것이라고 한다. MS사가 게이츠 재단에 보탤 것이라곤 헤일로 4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윈도우는... 말을 말자 발머를 짤라야지 뭐[5]

  • 또한 게이츠는 테라파워라는 벤처기업의 주요 투자자인데, 이 회사는 작고 안전하고 깨끗한 고속증식로를 개발하고 있다(...). 일단 개발목적은 증식로의 좋은 목적을 다 적고 있다지만...

  • 사장 시절 철천지 원수였던 스티브 잡스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위로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고 잡스는 그 편지를 곁에 두고 시간날 때마다 보았다고 한다.

  • 핵 폐기물을 써서 핵미사일을 만들 수 없으면서 발전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원자로를 개발하여 환경보전과 전쟁억지를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모기로 고생하는 저개발국가에 레이저를 이용해 초당 100마리 이상의 모기를 죽이는 시스템을 개발해서 지원한다든지. 실제로 TED에 시연 영상이 올라와 있다.http://www.youtube.com/watch?v=OM6E3f2lT14

  • 너무 비싸서 일반인은 보지도 못하는 다빈치의 노트, 파인만의 강의를 사서 주석을 달아 일반에 공개했다.

  • 대학생인 골프장 캐디에게 팁을 안주고 대신 그의 신상을 샅샅이 캐물어 나중에 그의 대학 학자금 융자를 갚아줬다.

  • 에이즈예방을 위해 섹스를 할때 쾌락을 느끼는 만족감이 큰[6] 콘돔을 개발하는 연구비에 거금을 내놓았다.

  • news|ITScience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하수 정화 장치를 이용하여 정화한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지구촌 물부족 문제의 원인 중 하나가 이런 물에 대한 나쁜 인식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차세대 화장실 개발에 투자를 하는 중인데, 이 화장실은 현대의 수세식 화장실에 대한 대안으로 개발 중이다. 수세식 화장실은 배설물을 하수로 보내기 위하여 대량의 물을 낭비하게 되는데, 이는 가난하거나 물이 부족한 나라에는 적합하지 않다. 차세대 화장실은 이렇게 낭비되는 물을 줄이고, 대신 배설물은 '버리는 것'이 아닌 퇴비나 에너지로 재활용하는 방안을 연구중이라고 한다.

6. 복귀

#

미국 현지 시간으로 2014년 2월 4일 사티아 나델라 신임 최고경영자의 취임을 발표하는 동시에 33년간 재직해 오던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 '창립자 겸 기술을 알어냐기 위한 외계인 고문'이라는 새 직책을 이때까지의 온갖 삽질로 생긴 것들을 치우기 위해맡게 된다고 한다. 이는 은퇴 5년 만에 현역으로 복귀하는 것.윈도우8을 써보시고는 마음에 안들어서 다시 복귀하셨다 카더라.

7. 여담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에서 한창 소송을 할 무렵인 1997년에 법정 합의 결과로 애플 주식을 많이 사긴 했는데 의결권은 없어서 대주주라고 하기엔 무리. 이걸 2001년에 거의 팔아서 예전도 지금도 대주주 같은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런데 애플 주식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10배 정도 오른 건... 아이고... #

사실 THE 빌 게이츠가 그깟 애플 주식 열배 뛰었다고 아쉬워했을진 의문이다. 애플 주식을 사는 것으로 합의해 애플을 살렸고, 그것으로 MS가 반독점법으로 박살날 위기를 면했으니 고작 현 애플 주식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애플이 포, 포풍 폭풍성장을 하는 게 달갑지많은 않은 모양이다. 자식들이 애플 제품을 원하면 어떻게 할 꺼냐는 질문에 우리 마이크로소프트사도 같은 물건이 있다고 대답한 바 있다.

정치 성향은 민주당 쪽으로 부자 감세를 반대한다. 그리고 결국 2013년 1월 2일부로 그가 워런 버핏과 같이 주장한 대로, 재정 절벽 방지를 위한 부자 증세안이 상-하원에 동시 통과되었다. 은퇴 영상에는 아예 민주당쪽 대선 후보들이 나온다. 그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MSNBC는 미국에서도 유명한 친 민주당 성향의 언론사 이기도 하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안철수 연구소의 전 사장 안철수가 자선단체 설립을 조언받기 위해 미국으로 간 적도 있다.

하버드 대학에 재학할 당시, 들어야 하는 필수 과목은 등록만 하고 출석을 안 하고 다른 과목 수업을 청강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 수학과 신입생들이 약 80명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1등은 딱 1명일테고 자신은 그 1명이 아니란 것을 직감하고 아예 안 가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수학과보다 응용수학과 학생들이 더 재밌는 교양과목을 많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바로 응용수학과로 전공을 바꿨다고 한다.

자퇴할 때 그의 부모님은 사업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1~2년 뒤에 복학해서 졸업하겠거니 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어차피 1년만 더 있으면 졸업가능했기 때문에 말리지도 않았던 것 같다. 사실은 부모님의 선견지명

오픈소스를 신나게 까대면서, 독점소프트웨어의 시대를 만든 주역이다. 뭐 프로그래머로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자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이분 덕에 저렴했던 유닉스도 겁나 비싸지기 시작하면서, 지금 같은 폐쇄적인 운영체제가 되었다. 그에 빡친 리처드 스톨먼은 GNU 재단을 만들었다. 빌게이츠 개객끼!!! 빌게이츠의 노력 덕분에 오픈소스가 상당히 줄었들었지만, 리처드 스톨먼, 그리고 리눅스 커널 최초 배포자 리누스 토발즈 덕분에 오픈소스는 살아남았다.

아내 멀린다 게이츠는 결혼 이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선임 프로그래머 중 하나였다(비서였다고 흔히 알고 있는데, 이 아주머니는 한때 Microsoft Publisher 프로그램 개발 책임자기도 했다). 누가 세계 최강 프로그래머 중 하나 아니랄까봐, 프러포즈 방법이 대박이었던 걸로 유명하다. 당시 선임 프로그래머였던 멀린다에게 "이 게임 재미있는데 한번 해보지 그래"라면서 게임을 던져줬는데,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고 또 사장이 직접 던져준 거라 열심히 해서 클리어했다. 그런데 클리어 화면에 "결혼해줘요. 빌"이라 떴었다나 뭐라나.

결혼식에 몰려드는 취재인파를 피하기 위해 호텔 하나를 통째로 빌려버리기까지 한다. 빌 게이츠는 결혼 전에는 전형적인 사업밖에 모르는 비지니스맨이어서 지금의 기부천사로 바뀌게 된 건 멜린다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빌 본인으로써도 잘한 결혼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퍼즐 등의 게임을 좋아했으며 1995년에 전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PC게임 『미스트』의 열렬한 팬인 것도 유명한 사실, 그의 큰딸은 제니퍼 『비바 피냐타』를 즐겨하지만 1시간 이상 못하게 하는 것도 유명하다.(2011년 기준 12살로 자식을 늦게 얻은 편이다.) 소문엔 그의 AV 기기들은 모두 도금처리하여 화이트 노이즈가 없다는 말도 있다.

1976년 베이식 인터프리터를 마구잡이로 복제해서 돌려쓰던 복돌이들을 겨냥해서 쓴 '취미가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이라는 편지가 유명하다. '님들이 계속 불법복제하면 우리 같이 소프트웨어 만드는 사람은 다 거지가 될 거고 그럼 좋은 소프트웨어도 못 나올 거에요.'라는 내용으로, 저작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쯤 생각했을만한 울분을 시원하게 터트려줘 많은 사람이 찬양하나 반대로 자유 소프트웨어 진영에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마이클 샌델이, 빌 게이츠는 하루 16시간을 일했다고 쳐도 업계의 현실상 은근히 현실적인 근무시간 초당 140불을 벌었기 때문에, 길거리에 100불 지폐가 떨어져 있어도 허리 굽히느라 멈춰서는 시간이 아까워서 줍지 않고 지나갈 것이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어느 연설회장에서 질문 시간에 누가 정말 그럴 거냐고 물어 본 적이 있는데, 빌이 우물쭈물 하자 진짜 고민하는 대재벌의 위엄 옆에 있던 워런 버핏이, "빌은 모르겠지만, 나는 빌보다 가난하기 때문에 줍겠다"라고 답해 청중을 웃긴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2014년에 복귀하고 나서 다시 한번 이 질문을 받았으니 이번에는 줍겠다고 하였다.#

이래서 언제나 프리메이슨이나 백신 등과 엮여서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는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빌 게이츠의 족보를 보나 종교를 보나 유대인이 아닌데 미국 경제지에도 종종 유대인이라고 나온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독일-영국계 핏줄이 약간 섞인 전형적인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스코틀랜드-아일랜드계이며 빌 게이츠의 가족은 개신교 집안이었으므로 유대인과는 상관이 없다. 록펠러의 경우와 같은 케이스로 말도 안 되는 음모론.

하지만 게이츠 집에 피자를 배달했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의외로 은 딱 20% 정도만 줬었다고 한다. 미국에서의 예의라고 하는 15% 보다는 많지만 이것으로 그의 씀씀이를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 애초에 부자라고 팁을 디립다 퍼줘야 한다는 시각이 더 편파적인 것.저택에 피자 요리사를 고용 안하고 시켜 먹은 것 자체가 검박함의 극치

스팸메일이나 악성코드에 대한 증오심이 남다르다. 요즘 윈도우에 내장되는 악성코드 제거 프로그램 초기작은 그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그 프로그램이 계속 발전한 것이 바로 MSE다.) 늘어나는 스팸메일과 악성코드에 견디다 못하여 직접 나섰고 은근히 효과가 있자 아예 개발부서를 두고 만들었다고 한다. 하루에 오는 스팸메일이 수십만 통에 달하다 보니 아예 스팸메일을 처리하는 부서가 있었다고...

2010년 경에는 기어코 한국에 위인전까지 출시되었다. 물론 유아용 위인전은 그 전에도 셀 수 없이 많아 나왔지만.

173cm인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172cm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 신장은 175cm 정도로 추정된다. 젊었을 때 쓴 이력서 기준으로 5피트 10인치, 177.8cm이다. 유명한 그 악수 비교 사진과 달리 어느 쪽이든 한 손으로 편한 자세로 악수를 했다.

자동차를 굉장히 좋아하는 듯하다. 포르쉐의 광팬이며 특히 포르쉐 959를 상당히 좋아하는 듯. 유명한 이야기로 포르쉐 959미국배기가스 기준을 통과시키지 못해 정식 인증이 나오지 않자 뒷마당에 수영장을 엎고 전용 서킷을(...) 지으려고 했다가 아내의 극렬한 반대로 포기하기도 했었다. 얼마나 극렬했냐하면, 이혼도 불사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역시 집안의 왕은 마누라

일본의 성인용 게임 제작사 앨리스 소프트에서는 《GALZOO 아일랜드》를 비롯한 여러 게임에서 그를 풍자한 게이츠란 남자 몬스터를 등장시키곤 한다. 그리고 엑스오퍼레이션의 캐릭터 중에도 게이츠가 있다! 생긴 것도 똑같이 생겼고, 모델 파일 이름도 Gates이다. 초차원게임 넵튠에서 빌 츠이게로 성전환해서 단역으로 등장했다.##

워렌 버핏의 영향을 받았는지 1995년에 'Cascade Investment'란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IT의 대가인 그는 투자에 대해서는 버핏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농기계 회사, 철도회사, 카펫회사, 코카콜라-멕시코, 자동차 소매, 조선소, 제약사, 호텔, 광산, 발전소, 제철, 쓰레기 처리 회사, 멕시코 언론사 같은 따분한 업종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4월 4일 오전 9시 38분 MBC를 시작으로 YTN, SBS등의 방송 채널에서 빌 게이츠 사망 오보를 내는 사고가 있었다. 관련 기사

빌 게이츠가 1995년 본인의 저서 '미래로 가는 길'에서 21세기의 생활에 대해서 예언했는데 영화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볼 수 있다던가, TV 프로그램을 보고 싶은 때에 다시 볼 수 있게 되고 디지털 화폐가 들어있는 PC지갑 등을 예언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소름 끼치게 높은 적중률을 보여주고 있다. #


여담으로 사우스 파크 시즌 17 에피소드 08~09에 등장하는데 엑박파인 에릭 카트먼에 비협조적인 스티브 발머암살(..)하고 카트먼에게 무기들을 제공(..)하고 소니의 CEO[7]일기토를 떠서 머리를 박살내서 끔살내신다.(..)

7.1. 농담거리

마법사라는 농담도 있다.

떠도는 농담이 여러 개 있다.

1. "Micro, Soft."

빌 게이츠가 국제적인 관심을 집중시키며 멀린다 게이츠와 결혼을 했는데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모여 있었다. 마침내 빌 게이츠와 멀린다가 기자들 앞에 나타났다. 한 기자가 멀린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엄청나게 큰 재산을 가진 남편의 날 밤이 어떠셨습니까?

멀린다는 한숨을 내쉬며 귀찮은 듯 짧게 대답하고 들어가버렸다.

Micro, Soft. (작고 말랑말랑 했어요) 역시 신은 공평하다.

다른 기자가 빌에게도 첫날밤이 어땠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빌은 즐겁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Micro, Soft.

2. 빌 게이츠와 별명

학창시절 빌 게이츠는 항상 몇 권의 책을 갖고 다녔고, 적어도 1년에 300권 이상의 책을 읽는 책벌레였다. 그 때문에 학교의 친구들에게「prn(인쇄물을 의미하는 print에서 따온 호칭->DOS/Unix콘솔창에서는 프린터를 의미한다)」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당했다. 이제는 어른이 된 게이츠지만 지금도 당시의 별명을 아주 싫어하는 듯, 그는 windows에서 새 폴더를 만들 때 prn이라는 이름은 붙일 수 없게 했다. # 믿으면 골룸[8]


3. 동창 엿먹이기
학창시절 빌 게이츠는 늘 반에서 꼴찌였다.[9] 그와 같은 반이었던 탐(Tom)은 늘 반에서 1등이었다. 세월이 흘러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워서 부자가 되고 탐은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이에 샘이 난 탐은 빌 게이츠가 예전에는 공부를 엄청 못했다고 사람들에게 까발렸다. 빌 게이츠는 탐에게 복수하고자 Windows 한국판에 슬쩍 탐의 욕을 집어넣었다.

Windows 탐색기


8. 어록

나를 키운건 동네 도서관이었다.

소프트웨어 개발비용은 비쌉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돈을 주지 않는다면, 뛰어난 소프트웨어는 결코 개발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결정하시죠. 소프트웨어를 쓰실 겁니까, 아닙니까(돈을 주시렵니까)? -1980년에 데니스 배터리키츠와의 인터뷰에서.

위 이야기는 불법복제가 횡행하던 당시의 이야기였다. 현재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게 씁쓸하지만….

저희는 경쟁자들처럼 비행기를 사서 노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일을 회사에 처박혀서 진행했습니다. -1981년, IBM PC 발표회 당시 기자들에게 게리 킬달을 은근히 까면서.

킬달이 비행기 타고 노느라 IBM과의 계약을 놓치자(…) 그 기회가 게이츠 일행에게 굴러들어온 상황이었다.

새로운 기준을 만들기 위해선 약간 다른 것 이상의 무언가, 즉 새로우면서도 사람들의 상상을 정말로 사로잡는 것이 필요합니다. 매킨토시야말로 제가 이제껏 본 컴퓨터들 중 유일하게 그 기준을 만든 제품입니다. -1984년, 매킨토시 시연회에서

참고로 당시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아니라 애플 리사를 밀었다가 대차게 말아먹었다. 그 후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로, 빌 게이츠는 자사의 윈도우로 지지 방향을 잡는다.

9. 관련 사이트

10.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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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면허 없이 과속으로 포르셰를 몰다가 체포되어서 기록사진이 남았다. 이 에피소드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경쟁을 주제로 한 영화 리콘 밸리의 해적들에도 나온다.
  • [2] KBE가 붙은 이유는 2005년 명예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기 때문.
  • [3] 이 문서를 구글 크롬에서 보면 탭에 '츠'가 짤려서 '빌 게이'로 나오는 불상사가 생긴다.
  • [4] 엄밀히 말하면 마이크로소프트가 '비협조적'이었던 것일뿐, 자유소프트웨어 진영 자체를 작정하고 엿먹이려고 한 적은 없다.
  • [5] 하지만 MS의 B2B 부문은 매우 건실하면서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시가총액 또한 구글을 2014년에 제쳤으며 한때는 엑슨모빌을 넘어가기도 했다. 2014년 11월에 빌 게이츠는 2억 9,800만 주의 MS 주식 중에서 2,000만 주를 매각했으나 주식가치는 7억 달러 증가했다.(...)
  • [6] 쓸데없이 고퀄리티냐며 웃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임신이 목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콘돔을 못챙겨서'를 능가하는 미사용 이유가 '느낌이 안좋아서'다. 그게 해결되면 에이즈 전파 경로중 하나인 성적 전달이 억제되는 것.
  • [7] 히라이 가즈오 CEO로 추정.
  • [8] 사실 당연히 농담이다. prn 은 도스 시절부터 시스템 예약어였기 때문.
  • [9] 당연히 믿으면 골룸. 위의 생애 문단에도 나오지만 그는 빼어난 우등생이었고 하버드에도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