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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게레로

last modified: 2015-01-25 22:45:32 Contributors


이름 Vladimir Alvino Guerrero
생년월일 1975년 2월 9일
국적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지 페라비아주, 니자오
포지션 우익수,지명타자[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3년 몬트리올 엑스포스 자유계약
소속팀 몬트리올 엑스포스(1996 ~ 2003)
애너하임/LA 에인절스(2004 ~ 2009)
텍사스 레인저스(2010)
볼티모어 오리올스(2011)

2004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알렉스 로드리게스
(텍사스 레인저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애너하임 에인절스)
알렉스 로드리게스
(뉴욕 양키스)
2007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 우승자
라이언 하워드
(필라델피아 필리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LA 에인절스)
저스틴 모노
(미네소타 트윈스)

Contents

1. 개요
2. 선수 경력
2.1.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
2.2. LA 에인절스 시절
2.3. LA 에인절스 이후
3. 스타일
4. 이모저모

1. 개요

미국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배드볼 히터. 2000년대 후반들어 지명타자로 전향하기 전까지 지킨 우익수로 활약했다. 뛰어난 툴을 바탕으로 젊은 시절 공격과 수비, 주루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고, 나이가 든 뒤에도 빼어난 활약을 펼친 2000년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 별명은 이름인 "Vladdy"

2. 선수 경력

2.1.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

원래는 LA 다저스 캠프 소속의 선수였다. 형인 윌튼 게레로가 다저스 캠프에서 훈련받을 때, 매일 점심을 나르면서 자신도 언젠가는 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될 거라고 확신했고, 실제로 LA 다저스 훈련 캠프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다저스는 그의 맏형인 엘리시에 게레로의 실패를 보면서 엘리시에와 많이 닮았던 블라디미르를 잡는데 망설였고 도미니카 캠프에서 다리부상을 당한채로 장타를 뻥뻥 날리는 대활약을 하고도 그에게 풀타임 계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30일 계약을 제시하며 체크하겠다는 반응.


화가 난 블라미디르는 1993년 몬트리올 엑스포스[2]에서 테스트를 받고 입단하게 되었다. 테스트 자리에서 블라디미르는 송구와 달리기만 했는데, 몬트리올의 스카우트는 그 툴을 보고 다른 테스트를 생략하고 바로 입단시키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이너리그에서 3할을 넘는 타격을 보이며 뛰는 레벨마다 MVP를 타내면서 마이너리그를 초토화, 일찍부터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것으로 점쳐졌다. 그리고 마침내 1996년 메이저리그에 타석에 섰다. 1997년 부상으로 고전하며 딱 신인선수 정도의 실력을 보였지만 1998년부터 38홈런을 치며 괴수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그 뒤로는 쭉 몬트리올의 주포로 군림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매년 3할, 30홈런 이상, 100타점 이상을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투수들의 공포로 군림했다. 뛰어난 컨택 능력 때문에 온갖 코스의 공을 다 공략하는 신기를 보여주면서 위력을 떨쳤다. 2001년 34홈런만 아니었다면 5년 연속 35홈런 이상이라는 대 기록을 세울 뻔하기도 했다. 다만, 이 시기 몬트리올이 팀 전력이 그리 강하지 않아서 PO과 인연은 한 번도 맺지 못했지만, 게레로의 위력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발도 빨라 2001년에 34홈런 - 37도루, 2002년에 39홈런 - 40도루를 달성한다. 이 때 홈런 한 개가 오심으로 인해 2루타로 판정되어(엄격하게 보자면 2루타가 맞긴 함) 아깝게 40-40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후 주루 능력이 격감했다. 인조잔디구장인 홈구장 스타드 올랭피크에서 오랜 시간 뛰며 무리한 주루플레이를 자주 하다가 척추와 무릎에 무리가 가서 몸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되었고 결국 이 때문에 주루 능력이 급감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거물로 성장한 블라디미르 게레로를 잡을 능력은 몬트리올에게 없었고, 그는 FA가 되는 2004년 초대박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하필이면, FA를 앞둔 2003 시즌 스타드 올랭피크에서 오랫동안 뛰어온 피로누적으로 인한 등 부상으로 인해 고작 112경기에서 25홈런 79타점을 기록하는데 그친 것. 부상을 안고도 이 정도 성적을 낸 것 자체는 놀라웠지만 이때의 부상은 커리어를 위협할 정도로 고질병이 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이런 큰 부상 경력으로 인해 몸 값이 떨어졌고, 공교롭게도 2004년 FA 시장은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의 지나친 연봉 인플레에 대한 조정심리 때문에 시장 자체가 얼어붙었다. 결국 연평균 1,500만 달러 이상 투자해도 아깝지 않았을 것으로 평가와는 달리 계약 말년에나 1,500만 달러를 받았을 정도로 나름 염가 연봉을 받고 LA 에인절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여기에 더 안습이건 딱 한시즌 지나고 나자 조정심리따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 시장은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보다 연봉 인플레가 더 심해졌다.

2.2. LA 에인절스 시절


어쨌거나 2004년 에너하임 에인절스에 입단한 후에도 꾸준한 실력을 발휘하며 건재함을 과시하며 팀의 타선을 이끌어 나간다. 입단 첫 해인 2004년 129득점으로 득점왕에 오름과 동시에 0.337 39홈런 126타점을 기록하며 2003년의 떨어진 성적이 단순히 부상으로 인한 일시적인 것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리고 팀은 2002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찾아온 상승기를 놓치지 않고, 오랜만에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했고[3],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아메리칸리그 MVP 올랐다.

그 뒤로도 LA 에인절스의 주포로서 맹활약했다. 주루 능력은 확실히 쇠퇴했지만, 2005년 32홈런 108타점, 2006년 33홈런 116타점, 2007년 27홈런 125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주포로서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줬고, 팀도 2004, 2005, 2007, 2008, 2009년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하면서 전성시대를 열었다. 다만, 매번 PO에서 물을 먹어서 월드시리즈에 못 간 것이 옥에 티일 뿐.

쇠퇴한 주루 능력으로 인해 기존에 그리 좋은 것은 아니던 수비력까지 겹치면서 결국 2009년부터는 사실상 지명타자로 전업했다. 그리고 나이가 먹으면서 점차 잔부상이 늘면서 2008년 0.303 27홈런 91타점으로 쇠퇴의 기미가 보이더니 결국 2009 시즌 15홈런 50타점에 그치면서 시즌을 망치고 말았다. 물론 점점 하락세를 보이긴 했어도 여전히 위력적인 타자임에는 틀림없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점점 성적이 하락세라는 것과 은근히 잔부상에 시달리고 있는 점이 팀에게 부담이 되었다. 결국 2009년 시즌이 종료된 후 에인절스는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를 영입하였고, 게레로와는 결별했다.

2.3. LA 에인절스 이후


메이저리그의 많은 선수들이 꾸준한 활약을 하거나 FA로이드(…) 등으로 FA 대박을 터뜨리기 일쑤이나, 게선생은 마가 꼈는지 FA를 앞두고 꼭 무슨 일이 터져서 연봉대박을 못쳤다. 첫 FA를 앞두고는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염가에 계약하더니 시즌이 활황세를 타고 있는 2010년에는 본인이 부진하며 돈 복을 차 버렸다. 안습.

결국 2010년 2009년 대비 연봉이 1/3정도 깎이고 1년 500만 달러에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여러모로 후새드. 텍사스도 그리 기대하지 않고 영입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입은 대박이 터졌다. 서서히 기량이 떨어지고 있다는 세간의 평을 비웃듯이 2010년 타율 3할, 출루율 .345, 장타율 .496, 29홈런에 115타점으로 마무리하며 회춘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텍사스 레인저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며 생애 첫 월드시리즈를 밟는데도 성공했다.

여담으로 5월 19일, 친정팀이었던 LA 에인절스제러드 위버를 상대로 원바운드성 투구를 후려쳐 홈런을 때려내 복수혈전을 찍었다.
이건 꿈일거야 아니, 그리고 저 엉성한 타격폼과 대충 휘두른 것 같은 스윙으로 저 볼이 넘어가나?(…)

참고로 이 성적조차 시즌 중반까지는 출루율 4할에 장타율 5할 중반이었던 것이 체력이 고갈되며 끌어내려진 것이다. 연봉 깎이고 잘 하면 어찌합니까 게선생님 그리고 월드시리즈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체력 문제가 확실히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결국 이 문제가 발목을 잡아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지못미. 2010년 겨울에 FA로 풀린 선수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받은 이들 중 한 명이었으나 노쇠화의 우려 때문인지 쉽게 진로를 잡지 못했다.


결국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800만 달러의 1년 계약을 체결하는데는 성공했다. 계약이 성사되면 볼티모어는 일단 2011년 시즌을 앞두고 꽤 위협적인 타선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 아니, 근데 몇년 전부터 이 팀의 문제는 투수진 아니었나? 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볼티모어에서의 활약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수준. 예년만큼의 폭발력은 아니지만, 먹튀라고 불릴 정도도 아니다. 2011년 성적은 .290 .317 .416 13홈런 67타점.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모두 풀시즌을 소화한 98년 이후 가장 낮다. 그래도 기념비적인 시즌이라고 평할 수 있는 것은 11시즌 163안타를 쳐내며 통산 2590안타를 달성, 도미니칸 야구 선수중에서 가장 많은 안타를 친 선수로 등극했다![4]


그러나 2011년 이후 새 팀을 찾지 못하며 백수가 될 위기에 처했고 게레로 본인은 일본행까지 고려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2012년 5월, 토론토 블루제이스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부진을 거듭하더니 방출되고 말았다.
2013년 4월에는 미국 독립리그의 팀인 롱 아일랜드 덕스와 계약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선수생명연장은 더이상 힘든지 은퇴를 선언했다. 게레로의 말에 의하면 가족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두차례 수술받은 무릎때문에 더이상 선수생활 연장은 힘들다고 판단했다.

3. 스타일


게레로는 전형적인 배드볼 히터로 이거다 생각하면 배리 지토의 폭포수 커브라든가 '원바운드'성의 투구도 그냥 후려갈겨 홈런(속칭 골프홈런)을 때려낼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컨택으로 꾸준히 3할을 마크하고 매년 30개 언저리 홈런을 쳐 낼 정도로 펀치력도 수준급. 한국에서는 이런 배팅장면을 "게선생의 골프강좌"라 부르며 업로드를 하기도 한다. 이런 표현은 가끔 메이져리그 현지 중계에서도 강력한 드라이브 샷이라고 종종 사용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타자들은 손의 보호 및 방망이 미끄러짐 방지를 위해 장갑을 끼고 타격하지만 이 분은 맨손타격을 고집한다. 맨손으로 도끼 후려패듯 스윙하는 모습이 그의 야수이미지 구축에 한 몫 단단히 했다.[5] 그리고 워낙 컨택이 좋아서 별 희한한 공도 다 때려내는 재주까지. 대신 이런 타입의 타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볼넷을 많이 얻지는 못한다. 다만 삼진을 많이 당하는 타입도 아니다. 한 마디로 들어오는 공은 일단 다 쳐내고 보는 타입. 그런데도 기막힌 컨택과 파워를 바탕으로 전성기에는 정말 모든 투수들의 공포로 군림했다(박찬호도 신급으로 변신한 본즈보다 게레로가 더 무섭다고 했고... 박찬호의 텍사스 시절에 에인절스전을 본 사람들이라면 오클랜드와 개럿 앤더슨-게레로는 아직도 악몽으로 남아있다).

신인시절에는 전형적인 5툴 플레이어로 불렸다. 장타력과 빠른 발, 강한 어깨는 당시 정평이 났다. 하지만 주루 능력은 인조잔디였던 몬트리올의 홈 구장에서 뛰면서 점차 줄어들었고 수비력의 발전은 없었다. 물론 어차피 코너 외야수는 사실 어깨만 강해도 수비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니까 상관없다고도 하지만. 적어도 송구능력은 스즈키 이치로와 더불어 리그 정상급을 자랑했다. 하지만 송구 빼고는 딱히 수비력이 좋지 못하다. 2011년까지 현역 외야수 중 실책 1위와 보살 2위라는 기록을 동시에 가진 선수였다는 점에서 그의 수비력을 짐작할 수 있다.

4. 이모저모

그의 형 윌튼 게레로도 메이저리거였다. 박찬호 풀타임 초기에 다저스에서 내야 유틸리티로 뛰었던 그 사람 맞다. 다만 형은 동생보다 체격이 작고 신인시절 신인왕 후보에서 코르크뱃 사건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동생에 비해 그저 그런 선수가 됐다.


조카인 가브리엘 게레로 역시 야구선수로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한 유망주인데, 삼촌을 닮아 역시 맨손 타격을 한다고 한다.


2014년 3월 31일, LA 에인절스의 홈에서 열린 개막전 겸 은퇴식에서 시구를 했는데, 안좋은 의미로 역대급의 시구였다(...) 게레로가 던진 공을 에인절스의 타격코치인 돈 베일러[6]가 받아주기로 했는데, 게레로의 바깥쪽 슬라이더 바깥으로 빠지는 공을 베일러가 잡으려고 하다가 그만 베일러의 다리가 꺾이면서 부러져 버린 것. 이후 게레로는 베일러가 장난치는 걸로 알고 해맑게 달려갔다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화면에 잡히지도 못하고 쓸쓸하게 퇴장했다. 켄드리스 모랄레스도 그렇고 이 팀은 홈베이스에 발목지뢰라도 깔린건지...

2015년 1월 13일(한국 시각). 게레로는 만약 자신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경우 소속팀으로 엑스포스를 고르겠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이전에 엑스포스 모자를 쓰고 입성한 게리 카터안드레 도슨과는 달리, 게레로는 스스로 엑스포스 소속으로 들어가길 원함을 대놓고 희망한 것. 첫 번째 시도 만에 입성하는 건 불투명해 보이지만 어쨌든 입성 자체는 할 것으로 보이는 선수라는 점에서,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배출한 최후의 명전 멤버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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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09년 이후 주로 지명타자 출전
  • [2] 지금은 새로운 구단주를 맞이하고 연고지까지 이전하여 워싱턴 내셔널스가 되었다.
  • [3] 2002년은 와일드카드로 PO에 진출해서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 [4] 2위는 삼성에서도 뛰었던 훌리오 프랑코의 2586안타, 3위는 약을 드신 그 분의 2574안타다. 그 분이 약을 안 먹었더라면 1위는 그 분의 것이었겠지만..
  • [5] 한국이나 일본 프로야구에서 맨손 스윙선수는 거의 없지만 메이저리그 에는 꽤 있다. 게레로 이외에는 뉴욕 양키스의 포수였던 호르헤 포사다가 대표적. 참고로 배팅장갑 없이 맨손으로 방망이를 잡고 스윙하다가 공을 잘못 맞출경우 손에 엄청난 통증이 찾아온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맨손 스윙 선수는 박석민이 있으나, 이쪽도 잦은 손가락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다.
  • [6] 콜로라도 로키스와 시카고 컵스의 감독인 그 사람 맞다. 현역시절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서 5시즌 뛰면서 1979년 AL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