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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토마스

last modified: 2014-08-22 19:55:52 Contributors


슝디 엘리펀츠 No.36
브래들리 리차드 토머스(Bradley Richard Thomas)
생년월일 1977년 10월 22일
국적 호주
출신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 시드니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소속팀 미네소타 트윈스(2001년,2003년~2004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2005년~2006년)
한화 이글스(2008년~2009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2010년~2011년)
슝디 엘리펀츠(2012년~)
시드니 블루삭스 (2013년~ )[1]

Contents

1. 개요
2. 경력
3. 이야깃거리


1. 개요

오스트레일리아야구 선수. 2008~2009년 한국프로야구한화 이글스마무리 투수로 활약했었다.

LG 트윈스에서 뛰었던 외국인 투수 크리스 옥스프링, 넥센 히어로즈에서 뛰었던 애드리안 번사이드와 같이 2004 아테네 올림픽에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호주에 은메달을 안겨준 멤버이다.

영어권 인명인 Thomas는 외국어 표기법상 토머스로 쓰는 것이 옳으나 KBO 진출시 등록명이 토마스였다.

2. 경력

1995년 LA 다저스와 계약을 맺었으나 1997년 5월 9일 계약이 해지되었고, 5월 12일 유계약선수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하였다. 주로 마이너리그에서 활동하다가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일본프로야구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를 거쳐 2008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였다. 당시 한화 이글스는 기존의 마무리 투수였던 구대성의 무릎 수술로 인한 마무리 부재를 고민하고 있었고, 결국 2007시즌에 11승 13패라는 호성적을 보여준 용병 선발 투수 세드릭 바워스를 포기하는 용단을 내려가며 토마스를 영입한다.[2]

시즌 초기에는 한국의 일교차 심한 봄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여 첫 등판을 블론세이브로 맞이하는 등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이 시기 야구팬들 사이에서 '또맞스', '불마스'로 불렸다. 과거 한화에서 뛰었던 용병 마무리 레닌 피코타의 악몽을 재현하나 우려했을 정도. 그러나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기량도 회복되어 '토마신', '또막스' 등으로 별명이 변하며 한화의 초중반 상승세에 일조하였고, 어느새 삼성 라이온즈오승환세이브왕을 놓고 경쟁할 정도에 이르게 된다. 비록 시즌 후반기에 팀이 몰락하여 경쟁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지만, 그래도 시즌 3승 6패 31세이브에 평균자책점 2.84를 거두어 2008년 세이브 순위 2위에다 KBO 사상 최초의 30세이브 용병 투수가 되었다.

구종은 150Km대의 강속구와 슬라이더, 체인지업. 구위는 위력적이지만 추위에 약한 모습과 2이닝 이상 투구하면 구위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3]

2008시즌 종료 후 일본프로야구 구단에서도 영입 제의가 들어왔으나, 이런저런 물밑 협상 끝에 직전 시즌 연봉보다 25% 인상된 계약금 5만 6천 달러, 연봉 30만달러 등 총액 35만 6천 달러에 재계약하였다. 소문에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오퍼가 들어왔으나 딸 시에나가 한국이 좋다고 해서 가족회의 끝에 한국에 남았다고 한다. 대인배.

하지만 정작 한화는 2009시즌을 완전히 죽을 쒀서 토마스는 마무리 투수로서 할 일도 없었고, 본인의 성적까지 신통치 않아 한화의 상승세를 잡고 늘어지는 일까지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덕분에 폭주기관차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

2009시즌 부진의 이유는 아내의 결핵 투병 때문이었다고 하며, 2군에 내려갔던 이유도 간병하느라 컨디션도 그리 좋지 않은데 잠시 쉬다 오라는 식으로 보냈다는 것이 거의 정설. 후반기 들어 구위를 조금씩 회복하면서 다시 호투를 거듭하였으나 이미 바닥까지 떨어진 팀에서 마무리 투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2009년 2회 WBC 호주 대표팀으로 불려가서 쿠바전에 마무리 등판. 순식간에 쿠바 타선을 잠재워 버리는 엄청난 포스를 보여줬다. 그러나 팀은 타선의 힘이 약간 모자라서 1점 차로 패배했다.

2010시즌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 입단해, 4월 29일(한국 기준) 미네소타전에 구원 투수로 나와 2.1이닝 2탈삼진. 승리투수가 되었다.[4] 2010시즌 디트로이트의 선발이 무너지고 시즌 중반 주마야의 시즌아웃, 돈트렐 윌리스먹트레인와 니푸더의 부진으로 상대적으로 많은 기회를 잡았는데, 주로 롱 릴리프 역할을 수행하며 땜빵 선발로 출전하기도 했다. 시즌 성적은 49경기 출장 6승 2패 69.1이닝 평균자책점 3.89로 얼핏 보면 준수한 성적이지만 승계주자 실점률이 49%에 달할 정도로 분식회계가 잦았다.

시즌이 끝난 후에는 구대성, 옥스프링과 같이 호주 프로야구 리그의 시드니 블루삭스 로스터에 포함되었고, 2011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시즌을 보내지 못하고 나오면 엄청나게 얻어맞았다.

2012년 대만프로야구 슝디 엘리펀츠에 월 1만 5천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입단했다.

2013년 제 3회 WBC 호주 대표팀에 뽑혔으며 1라운드 B조에서 맞붙은 한국과 호주의 경기에 등판하였다. 이 때 해설을 맡았던 박찬호는 친정팀에서 마무리를 맡았던 투수인데 아느냐는 질문에 미국에 있었던 때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불평 불만이 많았다더라. 마무리이면서도 6, 7회와 같이 이른 시점에 등판하는 데 불평을 했다고 들었다.고 언급했다. (본문만으로는 어디서 어떻게 들은 평인지는 알 수 없다.)

2014년 3월 20일에 벌어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호주 리그 올스타 팀 친선경기에도 참가, 8회에 팀이 화염방사를 거하게 한 직후(...)에 등판해 1실점(이전 투수 승계주자 실점)으로 틀어막고 내려갔다.

3. 이야깃거리

아이러니하게도 본인보다 딸인 시에나 토마스가 더 인기가 있다. 2008년 4월 27일, 대전 경기에서 KBO 최연소 시타자로 등장하여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그 날 1루에서 시에나와 하이파이브했던 김태균이 9회 끝내기 역전 투런을 쳐 '김로리'란 별명이 추가됐다.(…) 그 이후로도 카메라에 간간히 비칠 때마다 애교 만점의 모습을 보여주어 팬들 사이에서 제법 유명세를 탔다. 거리에 나가면 아버지보다 시에나를 더 많이 알아봤단다. 안습.

신경현에 의하면, 실력있는 투수이긴 했지만 중요한 경기에선 옵션을 이유로 등판을 거부하는 등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 선수들 사이에선 평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마이너리거였던 2001년,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충돌한 아메리칸항공 AA11기에 탑승할 뻔했는데 팀이 극적으로 플레이오프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면서 예약을 취소했다고 한다.

영화 머니볼에서 빌리 빈이 선수 목록을 살펴보는 장면에서 잠시 등장한다.
토마스.png
[PNG image (Unkn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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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윈터 리그로 활동
  • [2] 다만, 상황에 따라 선발도 겸직할 수 있는 용도로 영입. 본인도 인터뷰에서 처음엔 선발 투수로 영입된 줄 알았다가 마무리를 맡게 됐다고 술회했다.
  • [3] 그 때문에 연장전에 돌입할 때는 토마스의 뒤를 받쳐줄 또다른 구원투수가 필요했고, 그 와중에 발굴된 것이 2년차 투수였던 김혁민.
  • [4] 참고로 이 때 미네소타의 인기 스타 조 마우어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