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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last modified: 2015-08-02 16:24:07 Contributors

佛像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불상 이전
2.2. 불상의 출현
2.3. 간다라 불상과 마투라 불상
2.4. 불상의 전파
3. 동아시아의 불상
4. 서구권에서의 불상
5. 대불

1. 개요

붓다의 모습을 묘사한 조각. 석가모니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 많지만, 아미타불 등 다른 부처를 묘사한 조각도 있으며 보살, 아라한 등의 조각도 불교 관련의 신들이라면 불상으로 포괄해서 부른다. 불교 미술의 핵심.

2. 역사

2.1. 불상 이전

본래 석가모니가 살았던 시대의 인도에서는 제사를 지내기는 했으나 신상을 만드는 관습은 없었다. 바라문교는 물론 육사외도에도 이러한 관습이 없었다. 불상을 만드는 것은 원시 불교의 교리와도 그리 맞지 않았으므로 초기 불교에는 불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불교의 상징은 나타나게 되었는데, 석가모니의 유골을 모신 리탑, 고리의 형태로 불법이 퍼지는 것을 나타내는 , 발자국의 모습을 나타내는 불족석,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리수 등이 상징으로 여겨졌다. 초기 인도의 불교 미술에서 석가의 생애를 나타내는 부조 등은 만들어졌으나, 석가의 모습은 표현되지 않고 발자국, 보리수, 대좌 등으로 그 존재를 암시하는 수법을 썼다.

2.2. 불상의 출현

초기 불교의 금기를 깨고 불상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대승 불교가 출현한 이후부터다. 샨 왕조 시기 간다라(Gandhara) 지역(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동북부, 파키스탄 북서부 지역)과 북인도의 마투라 지역(현재의 파키스탄)에서 불상이 나타나게 된다.

2.3. 간다라 불상과 마투라 불상

간다라 지역은 알렉산드로스 3세의 원정군이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인도 북부까지 공격하고, 박트리아 왕국이 세워지면서 이 지역에 그리스 미술이 전파되었다. 인도문화를 기반으로 레니즘/페르시아 문화가 결합되면서 간다라 문화에서는 불상이 나타나게 된다. 박트리아 계 그리스 인들은 불교를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신상을 인간의 형태로 묘사하는 그리스 문화의 특성과 불교가 결합되어 불교에서 금기시하던 불상 제작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불교에서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으로 우상숭배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간다라의 불상은 그리스 신들의 조각에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석가모니는 젊고 아름다운 아폴로 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또한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아 후광을 묘사하는 가 나타난다. 간다라 시대에 이미 석가모니 이외에도, 미륵불, 아미타불, 관음보살 등의 작례가 나타나고 있다. 육체의 사실성을 추구하던 그리스 미술의 영향으로 석가모니가 금식을 하며 보리수 밑에서 수행하다가 득도하는 불상을 보면 정말 아사 직전의 사람처럼(...) 도드라진 갈비뼈와 푹 꺼진 안구, 나무 뿌리 같이 갈라져 있는 혈관 같은 것들이 눈에 띈다. 또한 간다라 지역에서 산출되는 검푸르고 단단한 편마암 재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체로 무겁고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며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것들이 많다. 더불어 이때 불상이 입고 있는 법의는 두껍고 옷주름이 세세히 묘사되어 있으며 통견 형식으로 두 어깨를 가린 것이 특징이다.

간다라 불상은 그리스 전래의 신들과 습합되기도 했는데 아틀라스가 지구를 받치는 모습이 불교 조각 사이에 끼어들기도 하고, 헤라클레스가 석가모니의 옆에서 수호하는 모습을 묘사하기도 한다. 이 석가모니를 지키는 헤라클레스는 동방으로 전래되면서 변형되어 강역사 으로 변화한다.

간다라 양식 이외에도 인도 북부에서 탄생한 마투라 양식이 있는데 아무래도 석가모니 사후 아직 불상 조성을 금기시하는 지역 전통이 잔재해 있었기 때문에 누가 봐도 불상을 만들어놓고 보살상이라고 우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마투라 지역에서 출토된 불상들을 보면 보살상이라고 이름 붙인 것들이 많다. 또한 인도 고유 미술의 영향을 받아서 양감이 풍부하며 상당히 관능적이다. 검푸른 편마암을 쓴 간다라 불상과는 달리 인도 지역에서 산출되는 적색 사암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온화하고 밝은 이미지를 준다. 그리고 간다라와는 달리 눈을 희번득크게 뜨고 웃고 있는(...) 불두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불상이 입고 있는 법의도 쉬폰처럼 나풀나풀한 인도 고유 복식이며 한 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 형식이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학계에서는 간다라와 마투라 중 어디서 먼저 불상이 발현되었느냐를 두고 의견이 나뉘어지는데 그 이유가 간다라와 마투라 불상을 연대측정을 해봤더니 거의 시간차를 두지 않고 동시대에 출현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간다라에서 불상이 발현되어 인도 본토로 넘어왔다는 주장이 다수다.

2.4. 불상의 전파

이런 불상이 널리 전파된 것은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대 때부터다. 이미 중국에서는 후한 시대 때 불교가 전파되었는데 이 당시만 해도 한 시대에 융성했던 유학의 영향으로 불교 사상은 허무맹랑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대형 불상이 조성되지 못했다. 그러나 위진남북조 시대와 오호십육국 시대를 겪으며 중국 대륙이 쑥대밭이 되면서 민중 사이에서 불교가 크게 전파되었고, 불교 이론을 지지하는 호(湖)족 군주의 영향으로 인해 석굴사원이 조성되면서 대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상의 모양이 가장 많이 변하게 된 것도 아시아로 퍼진 이후인데 불상을 너도 나도 모사하다보니 제작의 간편함을 위해서인지(...) 초반에는 매우 사실적이었던 불상의 도상이 거의 양식화가 되어버린다. 지역적 특색에 따라 바리에이션이 추가되곤 했는데 이렇게 도상을 추가시키면서 석가모니의 영험함과 초월적인 특성이 새롭게 덧붙여지기도 했다.

예를 들면 석조로 조성된 불상의 경우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다 붙어 있는데 이것은 조각상에서 손가락은 가장 파손되기 쉬운 부위였기 때문에 이렇게 손가락 마디를 물갈퀴처럼 붙여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도상을 너도 나도 따라하다보니 아예 나중에는 '석가모니께서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손에 물갈퀴가 있었다!'(...)는 요소가 추가되었고, 심지어 인도인들이 머리를 틀어 올리고 다니던 것을 묘사하다가 나중에는 머리카락을 표현하기가 곤란했는지 아예 머리털을 동글동글한 소라모양처럼 표현하기 시작했고(나발), 상투 머리도 '석가모니께서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정수리에 뼈가 커서 저절로 상투가 틀어져 있었다!'(육계) 등의 요소가 덧붙여지는 통에 나중에는 아예 그런 도상적인 특성들만 모아서 '32상 80종호'라는 불상 조성 방식이 문서화되었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각 종파에서 모시는 부처에 따라 수인이 다르게 정해지기도 했다.

원래 불상은 대부분 마른 몸이었다.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때 불교가 수입될 때 중국의 영향을 받아 호리호리한 불상이 주로 조성되었는데 특히 중생 구제를 대표하는 미륵신앙이 융성했을 때 마른 불상이 많이 출현했다. 대표적으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다. 시대가 변해가면서 부한 불상을 선망하는 경향이 커지면서 마른 불상들이 많이 사라진 덕분에 지금은 대부분 부한 불상만이 남았다.

후대에 여러 가지 요소가 추가되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금동이나 비싼 재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무나 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금전적인 여유가 되는 귀족층이 자신의 돈을 투자하여 사찰에 발원하기도 했다.

미술사학계에서는 불상의 표현으로 시대적인 분위기를 파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불상의 육체가 지나치게 관능적이거나 세속적으로 표현되어서 종교적 경건함과 동떨어져 있을 경우는 그 문화권이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깊은 신심과 종교적인 열망이 합쳐져 탄생한 불상에도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이미 도덕이나 종교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3. 동아시아의 불상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석가불이다. 삼국시대에는 호국불교의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불상들이 대체로 군주의 얼굴을 하고 있거나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다. 석굴암 본존불이 그 예. 이후 통일신라 시대에는 점차 불상이 뚱뚱해지기 시작한다. 급기야 불교 사상이 민간의 생활로 파고든 고려 시대 때는 산에 가서 큰 돌을 깎아다가 대강 깎아놓은(...) 덩어리 같은 불상들이 출현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려시대 불상의 경우는 영험한 부처의 모습 같다기보다는 흡사 민간에서 모시는 신처럼 생겼다. 조선시대에는 억불 정책으로 인해 불상이 조성되는 일은 드물었으나 이 시기에 만들어진 불상들은 대체로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선비들처럼 상체가 구부정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형적 특성상 석불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한국의 화강암은 엄청나게 단단하기 때문에 석굴사원이나 대형 석불은 많이 안 남아있다.[1]군위에 있는 군위삼존석불(국보 109호)이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석굴사원을 따라해보려다가 실패해서 마애불로 남은 케이스다(...)

중국의 불상은 외래 종교에 관대한 이민족 왕조의 영향으로 불상이 많이 조성되었고, 대륙의 기상에 힘입어 대체로 크고 아름답다. 시기에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화대혁명 시기에 구시대의 잔재라고 하여 유명 사찰을 제외하고 홍위병에 의해서 상당수가 부서지고 불태워졌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남아있는게 엄청나다(...)

일본의 불상은 밀교의 영향으로 불상에서 신비주의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천수관음 같이 아스트랄하게 생기거나 일본 민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전체적인 선이 날카로운 불상도 있어서 보는 이에 따라서는 한국, 중국의 불상과는 달리 무서워보일 수도 있다. 또한 나무가 많은 지역 특색으로 인해 목조불상이 많이 조성되었다. 이외에도 비불이라 해서, 한국과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불상도 있다.

4. 서구권에서의 불상

영어권 문화에서는 왠지 달마나 중국에서 묘사되고 있는 모습이 널리 알려졌는지 인자한 표정을 지닌 살찐 대머리 정도로 인지되는 경향이 있다. 이 불상의 정체는 사실 대화상이라는 중국의 도승으로, 중국 후량의 승려였다. 조각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얼굴이 크고 둥글고 배가 두둑한 모습이었으며, 항상 큰 포대자루를 매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점을 쳐주거나 인생/시국상담을 해 주었는데, 사람들이 그를 미륵불의 화신으로 추대하면서 그의 모습을 본딴 불화나 불상을 많이 만들면서 유명해졌다. 다시 말하면 부처의 원 모습하고는 거리가 먼 셈.

5. 대불

고대로부터 불상은 왠지 크게 만드는 것이 전통이었다.(…) 절벽 그 자체를 조각해서 만드는 거대한 마애불이 이미 간다라 시대부터 존재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조각상들은 모두 불상이다. 가장 큰 조각상을 포함해 톱텐 조각상들이 모두 불상 아니면 관음상(...) 자유의 여신상이나 어머니 조국상을 모두 능가한다. 현존하는 가장 큰 조각상인 중국 허난성의 노산 대불(153m)이 대표적인데, 이건 비로자나불이라는게 함정. 부처 상으로 가장 큰건 미얀마에 있다. 116m.

이걸 능가하려는 인도 공화국의 불상도 그렇고, 1989년 당시 가장 큰 조각상이었던 어머니 조국상을 능가했던 녀석도 일본의 불상이었다. # 그 치열한 키재기 허세림픽을 보라! # 부처님이 좋아하실까 그러나 역발상으로, '미묘법당'이라 하면서 반대로 가장 작은 법당을 내세우는 곳도 있다.

여러 민족이 거쳐가서 불교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던 아프가니스탄에도 거대한 석불이 조성되었는데 그중 바미얀 대불은 천하의 개쌍놈들탈레반에 의해 2001년에 완파당했다(...) 이로 인해 탈레반은 국제 사회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으나 정작 이놈들은 돌덩이 부순 것 갖고 왜들 난리임?이라는 반응을 보여 더 욕을 먹었다. 자세한 것은 항목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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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나마 큰 것이 논산에 있는 관촉사 미륵보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