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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last modified: 2018-11-03 12:50:03 Contributors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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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석굴암과 불국사 영어 Seokguram Grotto and Bulguksa Temple
프랑스어 Grotte de Seokguram et temple Bulguksa
국가 대한민국 위치 경상북도 경주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95년
등재기준 (i)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iv)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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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창건 당시의 상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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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말기에 폐사지가 된 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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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임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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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복원된 현대의 불국사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특징
4. 기타
5. 교통편


佛國寺

1. 개요

국사책을 불에 태우면 나오는 곳이라 카더라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15-1번지 토함산 기슭에 위치한, 신라 연간을 기원으로 하는 사찰. 1995년 12월에 석굴암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참고

불국정토를 속세에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통일신라의 꿈을 드러내는 건축물으로, 이름인 불국사는 불국정토에서 유래하였다. 황룡사가 거대한 규모로 유명한 절이라면, 불국사는 치밀한 구성의 완성도와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절이다. 대표적인 한국 건축물 중 하나. 경주로 소풍 내지 수학여행을 간다면 꼭 들리는 곳.

2. 역사

정확한 건축 연대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불국사고금창기'라는 기록에 의하면 신라 법흥왕 15년(528)에 법흥왕의 모친인 영제부인(연제부인)이 새 사찰을 짓고 싶은 소원을 가져 불국사를 처음 지었다.

이후 574년에 진흥왕의 모친인 지소부인이 크게 개창했으며, 이 때 아미타여래상과 비로자나불을 조성해 봉안했다. 문무왕 10년(670년)에는 무설전을 건설해 화엄경을 강의하고 경덕왕 10년(751)에 그 유명한 김대성이 크게 중수하면서 청운교, 백운교, 석가탑, 다보탑 등을 건설했다는 것이 '불국사고금창기'의 기록이다.

하지만 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했다고 나온다.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모시기 위해 석불사(석굴암)을 만들었고 현생의 부모를 모시기 위해 불국사를 창건했다는 것. 이 이야기가 유명해서 김대성이 지은 걸로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불국사고금창기의 기록이 더 정확할 거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불국사 자체가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기에 김대성 혼자서 그런 엄청난 건설을 했다기보다는[1] 법흥왕 때부터 국가차원에서 개증축을 했고 결정적인 중수를 김대성이 했다고 보는편이 타당하다. 아무래도 불국사고금창기의 기록이 더 세세하기도 하고, 삼국유사가 설화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러하다. 참고로 삼국사기엔 김대성이라는 이름은 없고 대정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기백 교수 등은 정황으로 보면 동일인물로 추정하고 있다.(김용춘 등 다른 인물을 봐도 ㅊ~ㅈ~ㅅ의 한자 표기가 달라지는 일이 흔한 편.)

어쨌든 중수와 관련한 유명한 설화로 김대성 설화가 유명하다. 김대성이 재상급인 중시로 알려진 것으로 보아 고위귀족이 심혈을 기울여 중수하면서 규모가 상당히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김대성이 중수한 연대는 751년에서 765년 사이로 추정된다.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한 이후에 중수하였기 때문에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는다. 이 때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다보탑 등이 세워졌으며 2탑 1금당의 가람(절의 배치된 모양) 형식이 완성되었다.

이후 역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기 어려우나, 임진왜란이 발생하면서 가토 기요마사의 만행으로 한번 크게 불타 사라졌다. (거기에 가토 기요마사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일본 절이 아니라고 불지르다니 불교 믿는 왜구나 하는 정말 미친 짓이었다.[2]) 조선 영조 41년(1765)에 불국사 대웅전이 다시 세워지는 등 재건하는 노력이 있었으나 결국 조선말을 거치면서 폐사지가 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1918년부터 25년까지 대웅전과 다보탑을 보수하였다. 그러나 다보탑의 석물과 사리함 등이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며, 그 동안에도 여러 건물이 소실되었다. 원래 일제는 불국사 유적을 축소하여 건성으로 복원할려고 하였으나, 무슨 이유인지 계획을 수정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복원계획 수정 비로전 앞에 석등 모양으로 된 사리탑(舍利塔 : 보물 61호)은 한때 일본인이 빼돌렸으나 1934년 반환되어 제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다.

결국 1970년대에 와서야 대규모 복원이 이루어졌다. 1969년부터 1973년까지 복원작업이 이루어졌으며, 그당시 돈으로 약 8억원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 복원되지 않은 부분들이 존재하며, 석축과 기단은 신라시대의 것이나 대웅전은 조선시대의 건물이며, 복원된 목조 건물도 조선시대의 양식을 재현한 것이기에 창건 당시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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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복원된 가람의 전체 모습. 현재의 모습이기도 하다.

3.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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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다 미요지의 평면 분석

불국사의 평면 구성에 있어서 수학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처음 주목한 것은 일제강점기의 요네다 미요시였다. 요네다의 안은 현대에 와서는 실측이 부족하였다는 점 등으로 인해 많이 까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불국사가 석굴암과 같이 수학적 구성을 가졌을 것이라는 것에 주목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다만 이는 서구 건축물들이 즐겨 사용한 방법이므로, 동양 건축물에 이를 적용하는 것은 너무 서구 중심적인 사고라는 비난도 존재한다.

아무튼 불국사는 평면 배치 뿐만이 아니라 형태적, 시각적으로도 상당히 의미있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석탑들의 관계인데, 석가탑은 완벽한 비례[3]와 기하학적인 직선미를 선보이고 있으며, 바로 옆에 있는 화려한 다보탑은 층 구조를 버린 자유롭고도 독특한 형식이어서 석가탑과 짝을 지으면 대칭되면서도 강렬한 대비를 느낄 수 있는 절묘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대비되는 구성은 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금당에서 바라본다면 화려한 다보탑 뒤의 단순한 경루와 단아한 석가탑 뒤의 화려한 종루(수미범종각)를 통해 반복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 경루와 화려한 종루는 제대로 복원되지 않아서 아쉬운 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정확한 양식을 알기 어려움도 있지만, 통일신라시대의 불국사와 조선시대의 불국사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 불국사에는 좌경루와 우경루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복원된 형태는 다보탑쪽이 좌경루, 석가탑 쪽에 범영루가 있고 이것이 우경루가 되고 있다. 그러나 통일신라 시대의 종루(수미범종각)와 우경루가 사실 다른 건물이며, 서쪽의 극락전 쪽에 우경루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범영루는 1612년, 1688년에 중건하고, 1708년에 단청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1973년의 복원 공사 때 다시 중건되었다.

청운교와 백운교 또한 선의 미려함을 느낄 수 있으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는 청운교와 백운교 바로 밑에는 구품연지라는 큰 연못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1970년대의 복원 과정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복원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석가탑에서는 1966년 도굴범에 의한 훼손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로 추정되는 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 도굴범들은 석가탑의 사리구를 도굴하려고 하였으나 찾지 못했고, 수리하다가 다른 층에서 발견되었다. 참고로 이 도굴범들은 검거되었으며, 황룡사지를 털었던 도굴범들이란 점이 수사 중에 밝혀졌다.

이 수리 과정에서 전문가도 아닌 인부들이 나무 전봇대를 기중기 삼아 엉성하게 복원하다가 전봇대가 부러지는 바람에 석가탑의 일부를 깨먹었다. 그 당시 한국의 엉성한 문화재 관리 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국적으로 상당한 비난을 받았던 부분이다. 지금이라고 제대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도 자세하게 나온다.

4. 기타

다음은 불국사와 관련한 기관들의 인증.

불국사가 있는 토암산 근처에는 당시의 기하학을 총동원해 석굴을 지었고, 근엄한 느낌의 부처 조각상을 품은 석굴암도 존재한다.

불국사 대웅전은 2014년 해체복원될 전망이다. 보려면 그 전에 가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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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사진도 있다. 왠지 무서운데, 1960년대로 추정 중. 수많은 여학생이 저런 교복을 입던 시절은 8.15 광복 이후일테고, 70년대에는 불국사가 복원되어 회랑이 생기기 때문.


KOF 2001에서는 한국 스테이지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2013년 5월 17일 석가탄신일 새벽에 불국사 경내 성보박물관 뒤편에 위치한 연리목중 느티나무의 뿌리 밑둥이 잘려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누가 이렇게 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황. 일각에서는 XX의 테러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불국사 밑에는 큰 규모의 여관 및 유스호스텔들이 위치해 있다. 수학여행 등 단체여행객들은 보통 이곳 아니면 보문관광단지의 콘도 등에 숙소를 마련하는 편이다.

여담이지만 경산시불굴사라는 매우 비슷한 이름의 절이 있다. 하지만 인지도에서 넘사벽 이상으로 차이가 난다.

5. 교통편

동해남부선에 이 역의 이름을 딴 철도역이 있다. 불국사역. 단, 불국사역에서 불국사까지는 3.5km로 매우 멀다. 뭥미? 그러므로 불국사역에서 불국사까지 걸어서 가겠다는 생각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다.[5] 불국사역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택시가 있긴 하지만, 큰 길로 나와 시내버스를 타면 금방 도착하기 때문에 굳이 택시를 탈 필요 없다.

불국사로 갈 때 이용할 수 있는 시내버스편
  • 터미널. 경주역, 경주시내
    - 10번, 11번[6]
    - 700번 : 이 노선은 급행이기 때문에 10, 11번보다 소요시간이 적게 걸린다.

  • 신경주역
    - 700번

  • 불국사역
    - 불국사역 → 불국사: 11번
    - 불국사 → 불국사역: 10번[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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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심지어 그가 기록처럼 시중일지라도, 혼자 짓는 건 불가능하다.
  • [2] 단, 불국사 가이드 투어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방화는 처음부터 절을 파괴할 목적으로 방화한 것이 아니라, 당시 경주 일대를 점령한 일본군 병사들이 멋있는 절 있다고 구경왔다가 의병이나 승병을 무장시키기 위해 절에 보관중이던 대량의 무기를 발견하고 본대에 연락해서 공격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영원히 엄청난 비난을 피할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애초에 탐욕 때문에 가만히 있는 이웃나라 조선을 침략하고 불법살인과 약탈에 방화를 한 행위 자체가 완전히 미친 짓이었으니 말이다.
  • [3] 한국 탑의 높이와 폭의 비율 기준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석가탑이다.
  • [4] 126 - 6호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 [5] 걸을 만은 하다. 하지만 중간에 볼 거리가 없기 때문에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까.
  • [6] 순환노선으로, 같은 경로를 다른 방향으로 순환한다. 따라서 어느 노선을 이용해도 상관없다.
  • [7] 이처럼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타야 할 버스가 달라지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해당 노선들이 순환노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