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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last modified: 2019-02-24 18:14:11 Contributors


부여군
扶餘郡 / Buyeo County
국가 대한민국
면적 624.18㎢
광역시도 충청남도
하위 행정구역 1 15
시간대 UTC+9
인구 67,979 명
(2019년 1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 108.91 명/㎢
군수 박정현(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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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관
2. 역사
3. 교통
4. 정치
5. 특산품
6. 관광
7. 문화
8. 언어
9. 음식
10. 출신 인물
11. 하위 행정구역
12. 경제
13. 행정구역 통합 문제
14. 기타


1. 개관


▲ 부여군청사.[1]

▲ 부여군 공동브랜드

▲ 부여군 마스코트 '금동이'.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있었기에, 백제문화단지, 한국전통문화대학교[2]가 이 지역에 있으며, 공주시(백제 때의 웅진성)와 함께 제문화제를 1년마다 번갈아가며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2010년)에 전군수의 노력으로 공주와 합쳐져서 요즘 광고를 마구 하는 계대백제전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위치는 부여 중에서도 상시골. 이 상시골에 부여지역 유일의[3]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이 있다. 이유는 학교 앞의 롯데리조트 때문. 대백제전 때문에 반짝 특수를 타기는 했으나, 곧 전국 최하위 매출매장 중 하나로 등록되지 않을까 싶다. 주 고객은 문화학교의 학생[4]과 리조트 이용자들. 부여 군민들은 커피 마시자고 거기까지 안간다. 시내에서 차로 15~20분 정도 가야하는 거리에 있는데 커피 마시러 차타고 거기까지 갈 이유가 없다. 2013년 9월 기준으로는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2. 역사

백제 성왕 때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면서 웅진성(오늘날의 공주시)에서 나와 새 도읍으로 사비성을 지었다.
서기 660년 의자왕 때 백제가 망해 궁성을 비롯한 많은 문물이 소실되었지만, 신라 때 도독부가 설치되고 고려(후고려) 때 감무가 설치되었고 조선 때는 임천군의 부여현으로 재편되는 등 나름대로의 위상이 있었다. 그 무렵에 이미 '부여'로 불리게 되었다.

1914년 조선총독부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석성군 일부, 홍산군, 임천군을 흡수하여 현재의 부여군 영역이 되었다. 1960년 부여면이 부여읍으로 승격하였다.

1960~70년대까지 금강 내륙수운이 원활히 돌아갈 때 인근의 강경과 더불어 상당한 발전을 구가하였으나, 철도 및 고속도로로 대표되는 육상 운송수단의 발달[5]과 1990년 금강하구둑의 완공으로 금강 내륙수운이 완전히 정지됨에 따라, 부여의 발전 역시 정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3. 교통

교통을 살펴보면, 철도는 없다.[6] 도로는 서천공주고속도로, 4번 국도, 29번 국도, 39번 국도, 40번 국도가 있다.

수도권에서 부여를 방문하려면 서천공주고속도로의 부여IC를 이용하는 것보다 논산천안고속도로의 남공주IC-> 40번 국도의 루트를 이용하거나 좀더 일찍 정안IC에서 빠져나와 금강을 따라가는 백제옛길을 거쳐 부여로 진입하는 것이 가깝다. 다만 후자의 경로는 공주시내에서 신호를 조금 받아야 한다.

4. 정치

정치적으로는 90년대 후반까지 JP라고 불리는 김종필의 텃밭. 한때 김종필이 총재로 있던 자유민주연합의 최후의 보루라고도 불린 적도 있다. 하지만 김종필이 은퇴한 이후 현재는 그 영향력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2010년 지방선거로 군수가 교체되기 전까지 8년간 한나라당이 집권하기도 했다.

지난 6월 2일 지방선거때 참 재미있는 일이 많았던 동네인데, 3선 확실시 되던 전 군수가 과로로 인해 쓰러져서 선거에 불출마 하게되고 당연히 뽑힐 줄 알았던 후보가 사라지자 갑자기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기도 하였다.

2013년에 실시된 재보선에서 전직 충남지사 이완구가 출마해 화제가 되었고 예상대로 80%에 가까운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7]

5. 특산품

수박, 멜론, , 방울토마토등. 농산물이 대부분이다.

6. 관광

유명 관광지로는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림사지[8], 화암이 있는 부소산, 연꽃축제로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 남지, 국립부여박물관, 백제관광단지, 무량사, 대조사,구드래 등이 있다. 거의 하루만에 구경이다가능하다 .
2013년에 신동엽 생가 옆에 신동엽문학관이 생겼다.

7. 문화

1967년에는 농민 올림픽이라는 행사가 이 곳에서 열린 적이 있었다. 올림픽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그냥 충남 지역의 16개 면에서 온 농민들이 선수로 참가해 심플하게 하루만에 끝낸 행사였다. 농촌의 번영을 위한 취지로 열렸으며 종목으로는 손수레 빨리 끌기, 쟁기질 빨리 하기, 감자 빨리 까기, 경운기 빨리 몰기 등 농촌 생활을 스포츠화한 종목들이 있었다. 우승 상품으로는 비료가 주어졌으며 대회가 폐막된 후에는 참가상격으로 술과 음식을 나눠주며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농민 올림픽은 1회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2000년대 초에 들어서 롯데리아가 들어올 만큼 열악한 곳이다. 레스토랑의 경우 브랜드 레스토랑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으며, 대부분이 개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분식집 같은 경우도 바로 그집 역시 2000년 초반에 생겼으며, 그전까지 이름 있는 분식집은 신포우리만두 정도였다. 편의점은 96~7년도 경에 들어왔는데, 역시나 브랜드 편의점은 아니었다. 24시를 운영하는 편의점도 역시 2000년 초반에 들어왔다.

그러나 반드시 프랜차이즈가 들어와있는 것이 그 도시의 면모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엔 웬만한 업종의 상점, 요식점이 들어서 있으며 이러한 곳에서 판매되는 재화나 서비스의 질은 프랜차이즈 계열보다 훨씬 좋다. 실제로도 부여시민들은 프랜차이즈 제과점에 가지 않는다. 이건 옛날 이야기. 뚜레쥬르,파리바게뜨,던킨도너츠,배스킨라빈스,미스터피자 등이 부여 시내에 입점해 있다.

이런 도시지만, 그래도 극장은 있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하며 지하에 주차장도 있다. 다만, 2관까지 있고 1층은 은행이다. 덕분에 영화를 개봉하면 기간 동안 2개 또는 요상한 시간대에 끼워넣어서3개나 4개의 작품만을 상영한다. 술집 같은 경우는 딱히 밀집지역 같은게 없다. 대부분이 동네술집. 술자리 게임 같은거 하기도 힘들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대학생은 어디에?시내까지 언제나가요?음식점 같은 경우는 의외로 괜찮은 편. 처음부터 관광도시여서인지 몇몇 유명한 음식점들이 포진해있다. 다만, 대백제전 이후로 맛이 옛날에 비해서 떨어지지 않았나 하는 감들이 있다.

2013년 9월 8일 규암면에 롯데 아울렛이 새로 생겼다. 롯데 아울렛을 유치하기 위해 부지 땅값을 무료로 해줬다는 카더라가 있다. 꽤 많은 브랜드가 들어왔으며 뷔페식 샐러드 바도 입점하였다. 이제 유명 브랜드를 사러 타지로 나가지 않게 된 일반 시민들은 환영이지만 부여 읍내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반대 운동도 벌였었다....만 오픈빨인지 매우 성업중에 있다.

8. 언어

지역 특성상 바로 아래에 익산과 붙어 있어서 그런지, 익산쪽에서 유입되어 오던 사람들이 있으며, 과거에 충남에서 가장 발전한 동네였던 강경과 맞붙어 있어서 전북에서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어있다. 사투리는 충청도 사투리 약간에 전북 사투리가 섞여서, 종잡을 수 없는 사투리를 쓰는 경우가 있다.충청도 토박이가 전북 사투리

단, 충청도의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살다가 다른 지역으로 가서 살면, 그 지역 사투리를 사용하게 되는 친화력을 보인다. 지역색이 얇은탓인듯.

9. 음식

대표적으로는 구드래 돌쌈밥이라는 곳이 있는데 구드래에 위치하고 20년이 넘게 성업중이다. 돌솥밥에 여러가지 쌈들이 같이 나오는데 반찬들이 대부분 괜찮은편이다. 전라북도와 가까운 탓에 전라도와 충청도가 혼합해 있는 듯한 음식들이 대부분. 이외에도 구드레 쪽에 역시 장원막국수라는 막국수집이 있는데, 족발을 시키면 나오는 막국수가 아니라 물막국수로, 냉면과 비슷한다. 여름에 가면 자리가 없을 지경. 냉면의 경우는 구드레 입구 쪽에 함흥냉면이 유명하다. 다만 가서 말을 하지 않으면 물 대신 육수를 주기 때문에 물은 따로 달라고 할 것. 부소산 입구 쪽에 있는 고참반점이라는 중국집은 약 6월부터 9월까지만 장사를 하는 곳으로 콩국수와 짜장면, 만두만을 판다. 물론 사람들은 대부분 콩국수를 먹으러 온다.

중국집의 경우는, 부여 사람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만다린이라는 중국집이 가장 오래되고 성업중이며 부소산 입구 옆에 위치해있는 상하이도 가볼만하다. 분식집으로는 진미당이라는 집이 있다. 대체적으로 일반 분식집과 별다른 특이한 건 넣지 않고, 평범하고 깔끔한 칼국수와 손으로 빚은 만두가 일품이다. 공장제 만두가 아니라 직접 손으로 빚은 만두로 매우 훌륭한 퀄리티의 군만두를 맛볼 수 있다.

10. 출신 인물

11. 하위 행정구역

부여군/행정 항목으로.

12. 경제

주민들의 애향심이 매우 높은 동네긴 하지만, 까놓고 얘기해서 느긋한 시골동네답지 않게 인심이 그리 좋은 편은 못된다. 대백제전 반짝특수를 틈타 캔커피 하나에 1,300원, 작은 생수 한 병에 1,000원에 팔아제끼는 판매하는 등,[9] 폭주하는 바가지 요금 때문에 뉴스 한 토막을 장식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관광객들이 1,300원 주고 캔커피 사먹느니 좀 더 주고 프렌차이즈 커피 사먹겠다고 부여에 하나뿐인 프렌차이즈 커피 전문점에 몰리는 바람에 커피가 떨어져 일찌감치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카더라.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사람들은 '주민'이라기 보다는 '한 몫 잡아보자'는 장사꾼 마인드다. 시골바닥일수록 후안무치한 장사꾼들이 많은데 그렇고 그런 인물들일 뿐이니 이런 부분을 가지고 지역 전체의 인심을 운운하는 것은 성급하다.

관광도시로 밀고나가는 이유 때문인지 시내에 모텔이 많다.

다른 곳에 비해 물가도 비싼 동네. 여기보다 대전등이 훨씬 싸다.

13. 행정구역 통합 문제

한창 행정구역 통합 떡밥이 유행할 때 부여군에서 공주시에 합쳐서 '백제시'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공주에서 시크하게 '즐' 날리는 바람에 시도도 못해보고 무산되었다(...). 여러모로 공주 손해인데다가, 부여에서 공주는 의외로 멀다. 오히려 청양군이나 논산시와 합치는게 적절할 정도. 백제를 의식한다면 익산시도 괜찮은 선택이겠지만...그러면 도가 달라진다.

14. 기타

백제의 고도가 마케팅의 중심. 큰 돈을 들여 백제문화단지를 짓기도 했고 그 말처럼 이 동네 땅은 개발을 하려고 파다보면 유물이 나와서 개발이 중지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다 부여읍에는 고도제한도 있어서 일정층 이상 높이(부소산 높이)의 건물은 짓지도 못하는 등, 발전하기 힘든 동네다. 진짜 농담이 아니라 집을 지으려고 토대 공사를 하면 유물이 나와서 보상금 받고 터를 옮겨야 하는 수준. [10]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의 숨결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유적지가 매우 빈약한 것이 문제. 부여 읍내에는 고작해야 정림사지 5층석탑 정도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11] 같은 삼국시대의 고도를 주장하는 경주와 비교해 봤을 때 매우 안습하기 그지없다. 거기다 토대 공사를 하면 유물이 튀어나온다고도 하지만 도시화 역시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지층교란이 심하다. 실제 부여 문화재연구소 바로 앞의 관북리 백제왕궁터 발굴조사당시 백제시대 추정 지층 하부에서 언제 공사됐는지도 모르는 콘크리트 기초부가 튀어나오는 아스트랄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물론 지표면에 건물의 흔적 따위는 없었다.본격 백제시대 오버테크놀러지) 이러다보니 백제의 고도라고 광고하면서 관광객 유치에 안간힘을 쓰지만 실제 와서 볼 만한 것이 없고 그나마도 하루 정도면 전부 둘러볼 수 있는 만큼, 관광객이 숙박하면서 장기적으로 돈을 쓰게 만들기도 어려운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다.

일제시대 말엽인 1939년에, 일본이 '내선일체' 프로파간다를 퍼뜨리기 위한 일환으로 부여 부소산 일대(지금의 삼충사 위치)에 일본의 메이지신궁과 동급인 신토 '신궁'을 세우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완공되기 전에 일본이 패전하고 해방이 되어 부여청년동맹원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 신궁 건설 여파로 부여 내의 시가지 정비가 대대적으로 이뤄진 영향이 지금도 남아있다. 당시 인구 920명에 불과했던 부여에 거대한 규모의 신궁[12]을 지으려 했던 것은 놀라운 일이어서, 당시 신궁에 모시려던 이가 '임나일본부 설'에도 나오는 진구 황후 등이었던 점과 부여가 옛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란 점 등을 드는 얘기가 있다.

종북라는 이름의 도로가 존재한다. # 그 근처엔 종북 마을도 있다. 혹시라도 마을 이름 가지고 개드립치는 일은 없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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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주소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사비로 33 (舊 동남리 725)
  • [2] 김대중 정부 당시 공동 집권 세력이었던 김종필의 입김이 들어가 부여로 오게 되었다는 썰이 있다. 과거 정부대전청사나 대덕연구단지 조성과 관련해서도 역시 비슷한 썰이 있다. 물론 당시 박 대통령 고향엔 공단 조성과 금오공과대라는 버프가 있었고 김 대통령 고향엔 무안국제공항이 들어서는데..
  • [3] 카페베네가 구드래 인근에 생겨서 유일의 지위를 빼앗겼다.
  • [4] 정작 학생들은 학생회관 내부의 그라지에를 이용한다.
  • [5] 부여에는 꽤 오랫동안 철도는 물론이거니와 고속도로도 없었다.
  • [6] 공주에 철도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인 듯
  • [7] 한때 김종필이 이곳에서 81%의 득표율을 기록한 적이 있다.
  • [8] 후기 백제의 대표적인 석탑 정림사지 5층석탑이 여기에 있다. 다만 정림사지 5층 석탑 외에는 허허벌판에 가까우니 기대하고 찾아가면 금물...이었지만 2008년경 정림사지박물관이 생겼다.
  • [9] 물론 관광지 주변 노점상 한정이다. 축제특수 받아서 팔아보려고 여러곳에서 온 사람들.
  • [10] 게다가 부여여자고등학교 아래에서 유적이 발견되 학교 이전 준비중이다.
  • [11] 낙화암을 포함한 부소산성이나 궁남지에서 백제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뭐가 남아 있어야 말이지...
  • [12] 그 몇해 전 충남도청 이전에 든 비용이 당시 돈으로 16만원이었는데, 부여신궁의 총 공사비는 24만원이었다. 더군다나 덴노가 직접 공사 계획을 발표했다. ('충청남도 인터넷 신문'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