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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키나파소

last modified: 2018-10-14 00:36:07 Contributors



여행경보 3단계: 적색경보 발령! HE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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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볼타 시절의 국기[1]


Burkina Faso

면적 274,200km²
인구 1732만 2796명(2014년 추정)
수도 와가두구
공용어 프랑스어
국가원수 블레즈 콩파오레 대통령[2]
1인당 GDP 790달러(2014년, 명목)
민족구성 모시족 48%, 풀라니족 10%, 로비족 7%, 구룬시족 5%, 세누포족, 투아레그족
종교구성 이슬람 60.5%, 기독교 23.2%(2006)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자연
4. 사회
5. 문화
5.1. 스포츠
6. 외교 관계
7. 출신 인물


1. 개요

아프리카 대륙, 정확히는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내륙국. 수도는 와가두구(Ouagadougou) 면적은 274,200㎢ 인구는 1732만 2796명(2014년 추정).

2. 역사

기원전 1만 5000년전부터 사람이 살았던걸로 보이며, 일찍부터 농경이 성행했던 니제르의 영향으로 기원전 3600년을 전후해서부터 농경이 이루워졌던걸로 추정된다. 서기 3세기부터 철기가 널리 보급되고 이후에 도시국가가 형성되었던걸로 보이나(부라 문화) 기록의 미비로 고고학적인 유적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후에 말리제국이 일부지역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가, 11~13세기에 걸쳐 모시족들의 국가들이 들어섰고 이들 국가들은 통일된 국가는 아니었지만 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흥망성쇠에도 공동의 조상을 가졌다는 점을 내세워 서로 동맹관게를 맺어 오랜기간 독립을 유지하다가 19세기 말-20세기 초반에 차근차근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어가며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50년대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나 50년대 후반에 자치권을 획득했고, 1960년에 독립하면서 오트볼타(Haute-Volta)라는 국명으로 독립을 하였다. 독립을 하면서 모리스 야메오고가 집권했으나 이후에 경제가 악화되어가고 야메오고의 통치도 독재적으로 변하면서 국민들은 실망을 하였고 1966년에 반정부 시위와 쿠데타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야메오고는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이후의 정부들도 영 신통치는 않고 산적해있는 사회 문제들을 개혁하지도 못하고 경제발전에도 실패하여 몇차레에 걸쳐 쿠데타로 정권이 교체되어나가다가 1984년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토마스 상카라를 위시한 장교들에 의한 국가개혁에 착수해 토마스 상카라가 오트볼타의 대통령직에 올랐다. 토마스 상카라는 '정직한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의 부르키나 파소로 바꿨다. 자주관리정책으로 다양한 부족들을 관리하고 농업진흥정책을 취했다. 이런 상카라의 정책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지만, 필연적으로 기득권층의 반발을 사왔고, 1987년 말 그의 사회주의 개혁정책을 불편하게 여긴 미국과 이웃의 다른 독재정권들의 사주를 받은 개혁세력 내부의 분열로 블라즈 콩파오레가 일으킨 쿠테타에 상카라가 살해되면서 개혁이 중단되었다.

그럼에도 최근 10년간은 초등학교를 300개에서 5,500개로 늘리는 등, 아프리카에서 나름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나라라는 평판. 하지만 대통령인 콩파오레는 1987년부터 2014년까지 27년간 해먹고있는 독재자였다. 여하간 실패국가지수 순위는 꽤 낮은 편이다. 문제는 그 낮은 편이라는 순위가 178개 국 중 35위로 방글라데시보다 겨우 6계단 낮은 거지만...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민주화 바람이 사하라 이남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도리어 이 나라는 일부 군인이 반란(내전)을 일으켜 국토 전역이 혼란에 빠진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국가에서 이 나라를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하기도 했다. 현재는 어느 정도 소강된 상태. 이웃나라 나이지리아에서 득세하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도 정국에 불온한 요소다.

그러나 2014년 블레즈 콩파오레 대통령이 4선을 한 것도 모자라 더 대통령을 하려고 연임 제한 철폐 개헌을 시도하다 반발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의사당과 방송국을 점거했고 결국 군부가 쿠테타를 일으켜 정부와 의회를 해산한 후 과도정부를 선언하였다. 콩파오레는 사임했으며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는 선거는 1년 이내에 실시될 것이라고 한다.##

3. 자연

망간 등 여러 광물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개발권을 두고 여러 나라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국토 모양이 같은 대륙의 중앙아프리카 공화국과 많이 닮았다. (보기)

4. 사회

프랑스 식민지를 겪어서 프랑스어가 많이 통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부르키나베(Burkinabais)라고 한다. 종교적으로는 인구 6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는데,[3]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으며 종교적인 분쟁도 거의 없고, 기독교이슬람교, 토착 신앙을 국민들이 자유롭게 믿는다. 또 특정 종교에 집착하지 않는 성향이 대단히 강하다. 이 나라 국민의 50%는 이슬람교, 50%는 기독교, 100%는 토착 신앙(...)이라는 우스개도 있을 정도이니...

5. 문화

5.1. 스포츠

축구가 인기가 많으며 1998년 자국에서 열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4강(4위)에 진출한 것과 2001년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FIFA U-17 월드컵 4강(3위)에 오르면서 좀 알려졌지만 그 뒤로는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남아공에서 열린 201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강호 가나를 승부차기 끝에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결승에 올랐지만 나이지리아에게 패하면서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최종예선까지는진출했지만 알제리에게 1승 1패 3득점 3실점 타이를 이뤘으나 원정 득점(3:2승, 0:1 패)에서 뒤쳐져 탈락하면서 사상 첫 월드컵 진출은 무산되었다. 이 나라의 축구에 관한 자세한 건 부르키나파소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6. 외교 관계

대만의 얼마 안 되는 수교국가인데, 중국이 대만과 단교를 조건으로 협상을 하고 있기에 단교될 가능성도 꽤 있다.

대한민국과는 오트볼타공화국으로 불렸던 시절인 1962년에 수교하였다. 사진작가 중만이 의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유년시절을 여기서 보냈다.

7. 출신 인물

  • 토마스 상카라 - 부르키나파소의 전 대통령. 여러가지 개혁 정책을 펼치다가 얼마전 퇴임한 대통령인 블레즈 콩파오레의 쿠데타로 인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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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84년 오트볼타에서 부르키나파소로 국명을 바꾸기 전까지 쓰이던 국기는 독일 제국과 거의 똑같이 생긴 국기를 썼다. 당연 독일 제국과는 관련 없고, 국기는 이 나라를 흐르는 세 개의 주요한 강(흑볼타강, 백볼타강, 적볼타강)을 의미한다.
  • [2] 최근 사임했다
  • [3] 독립 이전보다 이슬람 신도가 4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19세기엔 무슬림이 3만 명으로 매우 적었으나 1959년엔 인구의 20%인 80만 명까지 늘었고, 지금은 60%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