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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카

last modified: 2015-02-26 07:15:28 Contributors

Contents

1. 무슬림 여성들의 의복
1.1. 개요
1.2. 논란


1. 무슬림 여성들의 의복

1.1. 개요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천으로 감는, 이슬람의 여성 복장 중에서도 보수적인 복장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선 니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어로는 Burka 또는 Burpa라고 쓴다.

하지만 히잡이나 차도르보단 역사가 그다지 길지 않아서 18세기 이후에나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눈까지 얇은 천으로 가리는 것도 있다. 이거 입으면 도무지 성별을 확인할 수도 없다. 흔히 테러리스트의 복면 대신에 쓰이는 것도 허다하다. 때문에 테러나 치안 문제로 이 옷차림을 아랍권에서도 문제시되기도 한다.

1.2. 논란

사실 이 복장은 히잡과 달리 종교적인 근거도 없는 복장이다. 실제로 부르카를 입는 나라는 딱 한 나라 두 나라(?) 집단(?) 정도밖에 없는데 탈레반이 설치는 아프가니스탄과 2014년 뜬금없이 나타난 이슬람 레반트 이슬람국가, 이른바 IS이다.

최근 2010년 4월 벨기에 하원이 공공장소에서 부르카를 포함, 신원을 확인할 수 없게 하는 옷이나 두건 등의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유럽국가에서의 부르카 착용을 금지에 대한 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같은 해 9월에는 프랑스 상원이 프랑스 전역의 공공장소에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부르카와 함께 눈 부분만을 가리지 않는 부르카/니캅 착용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가결하였고, 이에 따라 2011년 4월 11일부터 부르카 금지법이 발효됐다. 하지만 종교 차별 논리로 온갖 논란이 거세졌다.

여기에는 이슬람 문화권 출신의 여성운동가들의 지지도 한 몫을 했다. 부르카와 히잡이 여성 인권을 억압한다는 것은 서구 여성운동가만의 주장이 아니다. 유럽권의 아랍, 중동계 여성운동가들이 쓴 저서나 책을 읽어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르카 착용금지 법안을 만들지 않으면 이슬람 문화권 출신 여성들이 부르카 착용을 거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중동계 여성운동가들도 많다. 그녀들의 주장은 히잡은 개인의 믿음에 대한 표시이고, 어느 누구도 그것을 강제로 씌우거나 '벗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진보끼리도 종교의 자유와 여성 인권 문제 사이에서 찬반논란인 주제다. 이에 항의하고자 진보적인 아랍 여성 교수들이 프랑스에서 부르카 차림을 하고 돌아다녔다. 모두 정작 아랍에선 부르카를 절대 입지 않던 여성으로 그 중 몇몇 교수는 알 자지라에 나와서 부르카 강요하던 보수파 학자랑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결국 둘 다 욕설까지 벌일 정도로 반대하던 사람도 있었다. 그녀들은 프랑스 언론 인터뷰에서 "아랍에서는 강제로 입으라고 해서 안 입었지만 여기선 강제로 입지말라고 하니 입었던 것 뿐이다. 왜 개인 자유를 여기나 거기나 침해하냐?" 라고 비아냥거렸다. 반대로 해당 법안에 찬성하는 진보적인 아랍 여성들도 많았다. 판단은 각자의 몫.

이에 대해서 일부 개혁적인 성향의 타 종교인들도 이에 동의한다는 점을 들어 히잡 금지법안에 반대근거로 삼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의 히잡 착용금지법안 반대자 중에 무슬림이 아닌 가톨릭 신부개신교 목사, 유대교 랍비도 있어서 일반인들을 어리둥절하게만들기도 한다. 이슬람도 아닌 타 종교인들이 히잡 착용을 지지하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의도가 있다. 프랑스는 교육과정중에 종교적 교육이 엄중히 제한된 나라다. 때문에 타종교인 이슬람의 히잡 착용의 허용을 통해 교육과정중 자기 종교의 개입여지를 확대하려는 것. 따라서 히잡 착용금지법안 반대는 최소한 프랑스 내에서는 종교적 갈등의 심화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

한편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는 프랑스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자신의 정체성과 믿음의 표현으로 베일을 착용하는 무슬림 여성들의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이라고 비판했으며 프랑스의 무슬림 이민자들은 프랑스의 행동에 대해 '사르코지의 독선과 아집'이라며 비꼬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 히잡이 초래하는 많은 논란을 무시하는 것이며 이 때문에 현실에서는 외려 유럽 및 유럽 이주민 중심 사회에서 부르카 금지법이 더욱 많은 지지를 얻고 있으며 계속 퍼져나가고 있다. 프랑스 이외에도 스위스,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호주 등에서도 부르카 금지법이 마련되었으며, 영국도 검토중이고 캐나다에서는 시민권 선서시 부르카를 착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히잡은 얼굴 확인이 가능한지라 큰 문제는 없으나 부르카는 악용될 가능성이 있으며 사회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일단 얼굴을 못 보여주니 신원 확인에 문제가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족인 남자가 신분을 확인해주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어린 애도 아니고 성인여성이 그렇게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할 수는 없다. 범죄에도 악용될 수 있다. 위에 나온 대로 부르카를 덮어쓰고 은행을 습격하는 은행강도들이 나타났고 각종 테러에 쓰일 수도 있다.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부르카 차림으로 다가와 자폭하는 남성들도 있어서 정부요인이 희생됐다.

그리고 웃기게도 이 부르카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인 탈레반에게도 제대로 골치를 썩게하기도한다. 바로 여성들로 조직된 정부군이 부르카 차림으로 훈련받고 활동하는 거다. 탈레반도 당연히 여성들의 부르카 차림을 볼 수가 없다. 무턱대고 외간여성 옷을 들추자면 스스로 말한 가족만이 신분을 확인하면 된다는 걸 뒤엎어버리는 논리이다. 실제로 여성들은 남자 사병의 2배가 넘는 보수를 받기에 제법 지원자가 많고 부르카차림 민간인인지 알았더니만 그 속에 총기를 숨겨둬 탈레반을 사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르카를 금지하지도 못하고 여성 탈레반을 만들 수도 없는 탈레반의 모순이 충돌하는 셈. 그러나 결국 탈레반도 여성 탈레반을 비밀리에 조직하여 자폭테러에 쓰이고 있다. 이 앞뒤 안맞는 모순주의자들

아프간 파병을 다녀온 미군이 부르카를 기념품으로 가져가서 한 유학생이 착용해보니 시야는 생각보다 잘 보이는데 문제가 머리통이 너무 좁게 제작되어 낑겨 넣어 위치 고정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한다. 착용하고 걸어보면 생각보다 목이 아프다고하며 부르카 무게가 생각보다 무겁기때문이다.

사막 기후에선 적절한 옷처럼 보일 수는 있으나 숨구멍 조차 없는 부르카는 사막에서도 별로 적당한 복장이 아니다. 물론 아랍 사막 지역에 불어닥치는 모래폭풍인 할라스 같은 경우에는 입주변까지 막는 것이 좋다. 이런 모래바람이 분다면 부르카가 딱일 듯. 그런데 모래폭풍은 사막에서 매우매우 드물게 일어난다. 전세계를 통틀어 1년에 한 두번 정도. 아예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 해도 많다. 사막같은 지형에서는 체내의 수분방출을 막기위해서는 옷을 입는 편이 벗는 것보다 낫지만, 그렇다고 부르카처럼 전혀 열기를 방출하지 못하는 복장은 더위만 가중시킨다. 입에서 내뿜는 열기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원래 부르카는 여성의 얼굴을 못 알아보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 사막 기후에서 보호를 위해서 만든 복장이 아니다. 여자들이 사막에 나설 일도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만약, 정말로 부르카가 정말로 사막 기후에 적합하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막을 횡단하던 남자들이야 말로 이런 옷을 입어야 할텐데 정작 남자들은 부르카를 입지 않는다. 사막의 행상인들은 터번이나 카피예를 얼굴에 쓰면서 가리기는 하지만 모래폭풍이라도 불지 않는한 부르카처럼 얼굴도 못알아볼 정도로 완전히 뒤덮는 경우는 없다. 부르카를 옹호하는 아랍인들조차 사막에서의 유용성 떄문에 부르카를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편.

건강에도 악영향을 줘서 비타민 D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선 한 중국여성이 치파오 차림으로 중국 식당을 연 적이 있었다. 당연히 여성은 부르카 차림을 하는 게 당연시하던 여기에선 난리가 벌어졌고 아프간 정부 측은 그 여성에게 당신도 이 부르카 차림을 하던지 아니면 식당 문닫고 나가라고 엄중경고했음에도 여성은 씹고 계속 영업했다. 하지만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중국인 노동자들도 가리지않고 폭탄 테러로 죽이던 사건이 터지던 터에 반중분위기를 더 크게 만들까봐 중국 대사관이 계속 압력을 가하여 치파오 차림으로 영업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식당이 돼지고기를 쓰던 게 드러나서 결국 강제로 가게 문 폐쇄당하고 여주인은 3년동안 현지 교도소에서 복역한 다음,영구추방당했다. 탈레반에게 죽을 일 있나 유엔 평화유지군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머무른 한국군 육군 중령 채수문은 이 일을 두고 당시 아프간 남성들에겐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이었다고 회상했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