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봉건제도

last modified: 2015-12-11 09:45:23 Contributors

封建制度, feudalism.


Contents

1. 설명
2. 특징
2.1. 장점
2.1.1. 군사의 정예화
2.1.2. 사회의 다양화
2.1.3. 빠른 문명 혁신
2.2. 단점
2.2.1. 내전 유발
2.2.2. 동원력의 악화
3. 종류
3.1. 일반 봉건제도
3.2. 유사 봉건제도
4. 평가
4.1. 봉건제와 현대 지방자치제
5. 현대의 봉건제

1. 설명

토지를 매개로 형성되는 정치적 관계를 말한다. 한자 봉건은 봉토건국(封土建國)의 약자로 천하의 주인인 천자가 중앙의 직할지(왕기, 기내, 중국)만 직접통치하고 나머지 땅은 제후에게 나눠주어 제후국으로서 다스리도록 한다는 뜻.

왕이나 황제가 공훈을 세운 자, 지방의 세력가/유력자, 대규모 씨족의 장, 왕족 등에게 토지의 지배권을 인정하고 대신 충성 및 군사적인 조력, 또는 일정한 세금을 상납 받는 제도를 말하며, 이렇게 형성된 대귀족 또는 지방 유력자가 해당 지역의 조세권과 지배권을 다시 실질적인 토착 군소 세력가에게 위임하는 방식으로, 결과적으로는 자기 세력안에서의 독자적인 권리를 인정하는 지배 시스템이다. 세력권 안에 거주하는 사람은 세력가와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주종 관계가 형성된다.

2. 특징

설명이야 이렇게 하지만 위에서 아래로 권력이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아래에서 위로 모아 올라간 군사력과 정치제도가 완전하게 결합한 형태로써 소규모 무장집단에 의한 힘의 균형상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출현하는 제도이다. 정 이해가 안간다면 군벌집단을 떠올리면 된다.

더 쉽게 이해해보자면 일종의 '무협지 사회'라고 보면 된다. 각 파벌(문파, 귀족)이 각자의 세력, 땅, 세금징수권 등을 인정받으면서 그 파벌들이 각자 따르는 윗선(무림맹, 마교, )에 무슨 일이 생겼을 시에 한해서만 윗선의 명령에 따라 전쟁(정사대전, 백년전쟁) 등을 하는 것이다.

생산력이 극히 부족한 상황이므로 잉여산물로 기능하는 관료제도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 봉건제도 이후 또는 그 이전에 출현한 왕과 왕의 이름으로 기능하는 관료집단이 통치하는 제도가 아닌, , 귀족, 기사라고 불리는 무장집단들 간에 형성된 어정쩡한 계약을 통해 만들어진 정치적 관계로써, 단적으로 말하면 왕은 각 영지들의 대표인 동시에 좀 큰 영지를 가진 영주 정도의 위상 정도이다. 즉 1:1로는 다른 영지를 발라버릴 수 있겠지만 좀 힘센 영주 서넛이 뭉치면 힘든 수준. 그리고 1:1 뜨고나면 이미 만신창이라서 다른 대영주한테 발린다. 그 예로 중세 초기의 프랑스 국왕은 어지간한 대영주들에게도 쳐발리는 안습행로를 겪기도 했다.

그리고 생산력 자체가 낮기 때문에 함부로 무력을 소모했다가는 그걸 보충하는데 십수년씩 걸리기 때문에 전쟁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점이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주었다. 그러다보니 중세 유럽의 전투는 일대일 결투나 소규모 인원의 전투로 끝나는게 많았다.

관료제도가 약화되는 대신에 종교 집단이 그 틈새를 파고 들어서 행정 관료의 역할을 대행하기도 한다. 종교 단체는 상대적으로 봉건 영주들의 종교적 신앙심 때문에 보호를 받으므로 봉건제 하의 내전 상황에서도 비교적 '안전'[1]하며, 인간의 '생사'와 연관이 깊다보니 종교 단체가 인구 집계, 교육 등 필수적인 행정 능력을 어느 정도 대행하게 된다.

2.1. 장점

2.1.1. 군사의 정예화

봉건제도는 봉토를 받은 전사가 알아서 해당 지역을 관리하고, 생산물로 스스로 무장을 마련하는 시스템이다. 자신의 영지에서 직접 수취하여 자신이 직접 사용하게 되므로, 거대한 관료제를 갖춘 통합 제국과 비교하자면 전근대 관료제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지나치게 많은 행정 비용, 수취 체계 비리, 부의 집중으로 벌어지는 지도층의 불필요한 낭비가 크게 줄어든다. 그렇게 잉여적으로 소모될 수도 있는 사회적인 부(富)가 모조리 봉건 영주들 각자가 자율적으로 시도하는 무장의 정예화에 몰빵된다. 실제로 임진왜란 시절 일본으로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온 강항은 이를 근거로 봉건제를 바탕으로 한 군사 제도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 [2]

2.1.2. 사회의 다양화

문명권 전체로 보자면 사법권이 갈가리 쪼개져서 분할되므로, 다양하게 혁신적인 사상가가 활약할 만한 공간이 나타나게 된다. 거대한 통합 문명에서 주류 사회에 이단적인 사상은 박해받으면서 생존 공간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리기 쉽지만, 봉건제도 하에서는 제후의 보호를 받으면서 육성될 수 있다. 제후들은 새로운 사상을 이용하여 자신의 영지를 발전시키고, 자신이 새로운 종교 사상의 후원자로서 권위를 얻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러한 발전에 힘을 쏟게 된다.

예를 들어서, 중국 춘추전국시대제자백가, 독일에서 종교개혁 시기 개신교가 봉건 영주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한 사례, 일본에서 전국시대 까지 몇몇 가톨릭 영주들이 존재했던 사례 등에서 알 수 있다.

2.1.3. 빠른 문명 혁신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제후국의 영주들은 역시 일단 다른 영주들을 압도해야 하는 동인이 크므로 구태는 쉽게 버리고 개혁을 하고 문명 혁신을 하는데 많은 자원이 집중된다. 맨날 전쟁하느라 당시 사람들은 무지 고생하지만, 나중에 역사가들이 살펴보면 테크트리가 쭉쭉 올라가있다.(…)

2.2. 단점

2.2.1. 내전 유발

칼 쥐어주고 땅 주고 자율권도 줬으니 이제는 서로 땅 뺏으려고 싸운다.(…) 중세 유럽 영주들간의 싸움과 일본의 전국 시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삼국시대, 오대십국시대, 한국의 삼국시대, 후삼국시대가 바로 그 예.

이러다보니 이건 황제건 중앙정부의 직속 군사력이 약하기만 하면 털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며, 잘 해야 일본 덴노처럼 껍질만 남고 유지되는 형국이 된다.[3] 오초칠국의 난처럼 중앙을 들어엎으려고 집단으로 짜고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2.2.2. 동원력의 악화

개개의 병력은 정예화 되는데, 봉건 제도의 한계 때문에 중앙의 동원능력은 많이 뒤떨어지게 된다. 국왕의 친위대를 제외하곤 다른 부대들이 모두 영주들의 군대이다 보니 국왕의 말을 안듣는다. 협조도 안해주고 틈만나면 뒤치기 하는 것도 다반사. 이러니 동원능력이 뒤떨어진다.

중세 유럽에서 대규모 전투가 드물었던 중요한 원인이 이것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앙 정부에서는 친위대를 운영하거나, 다른 방법을 강구해봐야 한다. 프랑스의 재상이자 추기경이었던 리슐리외가 독일을 봉건체제로 유지시키려 한 이유도 이 때문.[4]

3. 종류

3.1. 일반 봉건제도

대표적으로 중국 왕조, 중세 유럽 각국, 일본 막부 체제 하의 다이묘들[5] 오스만 제국에서 마르(봉토)를 누리던 시파히 등이 대표적인 봉건제도사로 꼽힌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 파르티아, 인도 등지에도 비슷한 형태의 정치 체제가 있었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 때 주의할 부분이, 중국 제도에서 따온 이름인 '봉건제도'와 중세 유럽 제도인 'Feudalism', 그리고 일본의 막부 정권과 오스만의 티마르 제도는 그 사회 체계에 맞게 운영 방식이 각각 거리가 있고,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이전 버전에는 '실질적으로 많이 유사' 하다고 되어 있었지만, 조금 심하게 말해서 일본 우익에서 얼씨구나 할 소리. 유럽과 중국, 일본의 봉건제는 '많이 유사' 한 게 아니라 '기본적인 틀만 같은 것' 이고, 엄밀히 말하자면 그 틀마저도 제각각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동시에 여러 명의 주군을 섬길 수 없지만, 유럽에서는 한번에 수십 명의 주군을 섬기는 봉신도 있었을 정도. 아예, 두명 이상의 주군이 동시에 군사적 봉사(군사 지원)를 요청할 경우 이쪽 주군한테 먼저 간다는 내용의 '특정 영주에 대한 충성 서약'(liege homage)이라는 게 도입될 정도였다. 이런 것을 놓고 '많이 유사' 하다고 한다면, 사람과 원숭이도 '많이 유사' 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봉건제라는 이름이 같다고 서로 비슷한 것으로 보면 곤란하다. 가장 대표적인 구분이 바로 중국의 주나라가 혈연 관계, 중세 유럽은 계약 관계에 입각해 주종구도가 짜여졌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를 절충해 수도 에도에서 가까운 지역엔 쇼군의 종친과 직속 부하들을(신반다이묘), 먼 지역엔 과거 적대세력이었거나 단순한 현지 토호를(도자마다이묘) 영주로 세우는 군국제 비슷한 방식을 썼고, 오스만의 티마르 제도는 제국의 외곽 영지를 군사령관인 시파히들이 주둔 방어하는 동시에 경영하는 일종의 절도사 같은 제도였다. 지방 영주가 자신 영지에서 왕 못잖은 킹왕짱이었다는 공통분모는 있지만.

3.2. 유사 봉건제도

의외로 봉건제도와 유사한 형태는 고도의 관료제가 발달한 중국을 제외하고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춘추전국시대랑 오초칠국의 난을 통해 봉건제의 해악을 누구보다 잘 겪은 중국이기에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발달시키려 노력한 것이다.[6]

특히 근세 이전 가장 강력한 병과였던 중장기병을 굴리는 국가들은 대개 봉건제와 유사한 형태가 나타나는데, 그 비싼 중장기병을 모두 국가가 관리하면서 양성하기는 매우 어렵고, 덕분에 대충 땅을 나눠주고 자율적으로 무장을 갖추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매우 정교한 관료제도를 완비했던 비잔티움 제국 역시 중무장한 카타프락토이들에게는 기존 기병의 3~4배가 되는 땅을 제공했는데, 이는 어지간한 소영주에 맞먹는 땅이다. 다만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니케포로스 2세 포카스는 카타프락토이들에게 기존 테마 병사의 4배에 해당하는 토지가 제공하였다고 하나, 현실적으로는 3~4명의 기병이 공통으로 무장을 마련하고 번갈아가며 복무하였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고려에서도 군인들은 국가의 토지를 지급받고 실질적으로 군역을 세습하면서 군인전의 수입을 통해 복무 경비를 마련했다.

그래도 중국이나 동로마 제국의 관료제는 이런 무력집단의 통제가 가능했다. 물론 반란은 종종 일어났다. 그래도 아예 못하는 타국보다는 나았지만... 그런데 중세의 서유럽이나 이슬람권, 파르티아[7], 인도는 그 정도 수준에는 달하지 못했고, 동남아(베트남 제외)는 15세기까지 아예 개인의 친분에 따른 봉건제가 시행되기도 했다.(…) 안시성의 사례로 미루어보건데, 고구려의 중장기병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되었을 것이다.[8] 다층 구조로 이루어지고 마지막에 무사 계급이 위치한 고구려의 계급제도나, 벼슬을 세습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기록 등에서 봉건제를 유추해볼 수 있다. 물론 중세 초기 유럽처럼 콩가루는 아니었지만 유사시에 중앙정부에 개길 수 있는 수준은 된 듯하다.

또한, 양판소의 판타지 국가들도 이러한 봉건제를 통해 국가를 유지...하고 있나? 양판소에서 괴이하게 열렬히 선망하는 제도인 것 같다. 아무래도 멋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편리하고 간단한 구조 덕분인 것 같긴 한데, 역시나 양판소답게 봉건제를 충실하게 고증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4. 평가

근대에 인류 최악의 경제/사회 체제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현대에는 이러한 주장이 상당히 부정당하고 있다. 일단 중세 유럽의 것들을 모두 나쁘게 본 근대의 체제들이 현대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나쁜 점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고, 의외로 중세 농노의 삶이 19세기 영국등 산업혁명기 유럽의 도시 노동 빈민보다 오히려 더 적은 노동시간, 더 많은 휴식, 더 많은 사회적 보호 장치를 누렸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는 등 중세의 여러 단면들에 대한 평가가 중세=암흑시대라는 인식이 걷혀지면서 수정되어 가고 있으며, 당시 유럽의 산업 구조와 생산력, 전반적인 기술력으로는 이 이상의 체제를 만들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유럽 쪽 역사학자들의) 중론이다.

4.1. 봉건제와 현대 지방자치제

동양에선 근현대 이후 한국, 중국처럼 중앙집권적 관료제가 발달한 나라들은 오히려 중앙과 지방간 불균형과 이로 인한 갈등으로 골머리를 썩히는 데 비해 유럽, 일본의 지방분권 성향은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의견이 있으나 실상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전근대 시절 봉건제는 현대의 지방 자치와 달리 무력을 갖춘 지방 토호들의 폭력적인 통치로 인해 오히려 시민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방해하고 억압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9] 물론 그것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 근대화가 가정 먼저 시작된 곳이 가장 봉건제적 요소가 많이 남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혹은 동유럽이 아닌 봉건제를 극복하고 절대왕정을 이룩한 영국과 프랑스이긴 하나 그 반대로 스페인, 러시아, 포르투갈처럼 절대왕정은 수립했지만 그로 인해 근대화가 더 늦어진 경우도 있다. 또한 독일과 이탈리아가 봉건제때문에 근대화가 늦어졌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데 독일과 이탈리아는 통일이 늦어진 것이지, 봉건제가 계속된 것은 아니다. 근대가 되면 독일과 이탈리아의 소국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국이 된 것이며 정치체제로서의 봉건제는 남지 않는다. 또한 통일되면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봉건제는 완벽하게 소멸된다.

일본같은 경우도 오히려 봉건제를 극복한 메이지 유신 이후에야 세력을 떨칠 수 있게 되었는데 제국주의적 팽창에 중앙집권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에 의한 주도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오히려 봉건제의 제후라고 할 수 있는 다이묘들이 (구)화족이 되었고 2차대전 종전 이후에도 여전히 지역 유지로 남아 지역구 세습같은 폐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이는 봉건제 탓이라기보다는 일본 사회의 민주화가 늦기 때문이다.[10] 유럽의 지방분권 국가들이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울 공화국에 대해 말하자면, 특히 한국이 중앙집권의 폐단이 심한 건 사실이다. 비슷하게 전근대적 중앙 집권 국가를 형성한 중국의 현재 모습을 보면, 한국과 달리 정치적 중심지인 베이징이 경제적 중심지까지 맡는 게 아니고 상하이나 광저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중앙 집권이라고 다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단, 중국은 국토와 인구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지방분권의 전통이 강한 나라들의 수위도시 집중이 중앙집권 전통 국가들보다 약한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5. 현대의 봉건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오지를 중심으로 현재도 봉건제가 사실상 유지 중인 국가가 없지 않다. 물론 중세 유럽과는 많이 다른 형태이지만 각 지역의 군벌화 라던가, 관료제도의 붕괴[11], 주민을 수탈하여 유지되는 전문적인 전사단 일부[12]와 이를 뒷받침하는 다수의 소년과 징집병으로 구성된 잡병으로 구성된 무력집단 등이 대표적인 봉건제의 양상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유명한 소말리아나 콩고민주공화국, 아프간, 리비아를 보면

  • 각 지역별로 군벌들이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세 영주들이 농업으로 소득을 올렸다면 이들은 국제 원조 물자를 가로채는 한편 주민들을 쥐어짜는 것으로 군비를 유지한다.[13]
  • 중세의 군대가 일부 기사단과 용병. 이를 뒷받침하는 농민 징집병으로 구성되었다면 군벌군은 장기간에 걸친 내전에서 정예화된 전사단과 국제 용병이 중세의 기사단과 같은 역할을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농민병은 소년병으로 대신한다. 다만 무장 자체가 차이가 있던 중세와 달리 현대 봉건제의 병력은 소년병이건 정예병이건 다 AKM을 쓰는 식으로 어느 정도는 무장이 통일되어 있다.[14]
  • 관료제도는 진작에 붕괴되었고 모든 법은 군벌마마의 위대하신 어명에 따라서만 제정 및 집행된다. 즉 군벌이 원하기만 한다면 초야권도 도입 가능하다. 이러다보니 수도의 중앙정부는 있으나 마나다.
  • 시도 때도 없이 싸움을 벌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자기 구역 수비를 우선적으로 하지 싸움을 잘 벌이지 않는다. 당장 소말리아에서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격화된 시기는 군벌들이 나라를 갈라먹던 때가 아니라 오히려 이슬람법정연대가 급부상하던 시기, 그리고 뒤이어 알 샤바브가 대규모 군대를 몰아 소말리아 통일과 이슬람 극단주의화의 기치를 내세우던 시기였다.

물론 차이도 있긴 하다. 중세 영주들은 군비에 모든 걸 몰빵한 관계로 대체로 검소한 편이었다. 유럽 귀족들 중에 그나마 사치를 부리는 게 가능했던 건 왕과 대영주 정도였다. 일반 귀족들까지도 위세를 부리고 엄청난 호화 사치를 누리기 시작한 건 경제가 발달하기 시작한 근세 이후의 일이다. 반면 현대의 이들은 피의 다이아몬드를 이용하는 관계로 상당한 사치를 부릴 수 있다는 것. 또한 군대 자체도 중세에는 소수의 기사가 주축이었던 반면 현대 봉건제의 군대는 AKM 등 각종 개인화기의 보급으로 인해 다수의 경보병으로 구성된 용병단이나 친위대가 주축이 됨으로써 그 비중이 다소 커졌다. 즉 체제는 중세 봉건제와 똑같지만 운용 방식은 근세와도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이 부분은 조심해야 할 것이... 아프리카나 아시아 오지의 군벌국가=봉건제라고 보는 관점은 틀렸다. 단순히 힘 센놈, 무기든 놈이 내가 법이다!라고 외치면서 한 지역을 지배하는 것은 그냥 전제정치지, 봉건제가 아니다. 봉건제는 그것이 왕이나 황제의 권위에 의거한 분봉이던, 각각의 영주가 모여 왕을 추대하는 것이던 나름의 질서와 법을 갖춘 제도다. 중국이나 동로마의 봉건제는 (황제의 통치력이 미치지 않는 지방을 반독립적인 통치자가 전적으로 지배하고, 종종 반란을 일으킬지언정) 봉건 통치자들은 황제의 신하이고, 봉건 영토는 제국의 일부임을 명확히 하는 제도였고, 유럽의 봉건영주들 역시 (그 권위란 것이 현대 한국인의 기준으로는 우스꽝스럽고 허술했을지언정) 봉신계약의 형태로 왕의 권위 아래 묶여있었다. 살리카법이 그 상징이다.

결국, 봉건제란 각각의 영토를 독립적인 군벌이나 다름없는 통치자들이 독립적으로 지배할 지언정 (허술하기는 해도) 그들을 묶어주는 상위의 규범이나 질서, 법이 있는 제도였던 셈. 덮어놓고 군벌들이 난립한다고 그게 봉건제인 것은 아니다.

참고로 북한이 붕괴될 경우 휴전선 위에 가장 중무장한 군벌집단들이 탄생하게 된다. 물론 주변 국가들이 가만놔둘 리가 없어 오래 유지는 못하겠지만.
----
  • [1] 물론 눈 뒤집어지면 종교고 뭐고 없지만.
  • [2] 하지만 근본적으로 중앙집권제를 추구하는 조선이 받아들일 리가 없고 이런 방식은 반란의 위험이 가장 크기 때문에 결코 현명한 군사 제도가 아니다. 그 예로 신라가 있고, 또한 조선도 그러한 군사 쿠데타로 일어선 나라이다.
  • [3] 쇼군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랑 도쿠가와 가문이 중앙집권제를 실시할때까지 덴노랑 비슷한 처지였다.
  • [4] 독일도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가 통일할때까지 분열되어 유럽에서 제대로 힘을 못쓰고 살았다.
  • [5] 가마쿠라 체제의 초창기 다이묘들도, 무로마치 체제의 슈고 다이묘들도, 에도 체제의 신반~도자마 다이묘들도 모두 막부라는 구심점 하에 자신의 영지를 인정받고 협력하며 세습하는 봉건적 성격을 갖고 있다. 무로마치와 에도 시대 사이 전국 다이묘 정도가 예외적.
  • [6] 사실 중국의 경우도 봉건적인 통치제도를 완전히 탈피한 것은 송나라 이후의 일이다.(당나라까지만 해도 반독립적인 통치권을 행사하는 절도사들이 있었다. 나중엔 이 절도사들이 군벌이 된다.) 그나마 송나라조차 봉건제를 철폐한 덕분에 중국의 통일제국치고는 군사력이 엄청 약했다.(송나라가 약소국이었던 것은 절대 아니지만, 통일 중국치고는 늘상 주변국가에 얻어맞고 지냈다. 무엇보다 군사 정책을 잘못한게 큰 문제.) 이후 봉건제냐 관료제냐를 따지기도 힘든 원나라 시대를 거쳐, 명나라 시대쯤 와야 황제의 권위 앞에 완전히 복종하는 관료적 지방관 제도가 완전히 정착됨을 생각해 보자.
  • [7] 파르티아가 강대국임에도 불구하고 로마한테 털리고 살았던 것이 봉건제도라서 단합이 안되기 때문이다.
  • [8] 고구려 뿐만 아니라 신라와 백제도 사실상 봉건제인지라 국왕의 권력이 약해 귀족들한테 폐위되거나 죽은 왕이 많다.
  • [9] 자유주의자들한테서 절대군주만큼 타도대상이 지방토호들이다.
  • [10] 또 하나 중요하게 따져봐야 할 점은, 일본의 경우 경제적 수준이나 제도적 민주화 수준에 비해 지역 단위의 작은 사회 문제와 돈으로 세습권력화된 토호의 문제가 꽤 심각한 편이라는 점이다.
  • [11] 국가재정이 파산한 상태라 관료제도가 붕괴될수밖에 없다.
  • [12] 주로 해외 전쟁 등에서 뛴 경력이 있거나 내전을 장기간 치른 베테랑인 경우가 대다수.
  • [13] 근대의 중국 군벌들도 이런 방식으로 군비를 유지했다.
  • [14] 다만 정상적인 관료제도랑 행정체계를 유지하는 국가의 정규군들보다는 무장수준이 떨어진다. 특히 돈이 많이 드는 항공기는 전무하여 공군이 부재한 상황. 그 예로 시에라리온의 반군이자 군벌인 RUF는 전투헬기 같은 공군으로 무장한 남아공 용병회사 EO한테 아작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