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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셀틱스

last modified: 2015-04-14 22:24:02 Contributors


보스턴 셀틱스
Boston Celtics
창단년도1946년
연고지매사추세츠보스턴
컨퍼런스동부 컨퍼런스
디비전애틀랜틱
연고지 변천보스턴 (1946~)
구단명 변천보스턴 셀틱스 (1946~)
구단주보스턴 배스킷볼 파트너스 (Boston Basketball Partners)
사장 겸 단장대니 에인지 (Danny Ainge)
감독브래드 스티븐스 (Brad Stevens)
통합 우승
(17회)
1957, 1959,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1968, 1969, 1974,
1976, 1981, 1984, 1986, 2008
컨퍼런스 우승
(21회)
1957, 1958, 1959,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1968, 1969,
1974, 1976, 1981, 1984, 1985, 1986, 1987, 2008, 2010
디비전 우승
(30회)
1957, 1958, 1959,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72, 1973, 1974,
1975, 1976, 1980, 1981, 1982, 1984, 1985, 1986, 1987, 1988, 1991, 1992,
2005, 2008, 2009, 2010, 2011, 2012
홈구장TD 가든(1995년 건립)
홈페이지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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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얼터네이트

Contents

1. 소개
2. 라이벌
3. 2000년대 이후
4. 2013-14 시즌
5. 2014-15 시즌
6. 영구결번
7. 2014-15 시즌 선수단

1. 소개

NBA의 프로농구팀. 동부 컨퍼런스 애틀랜틱 디비전 소속.

NBA의 전통적인 강팀. 셀틱스라는 팀 이름의 유래는 켈트 족을 말하는 것으로, 보스턴에 아일랜드 계통 이민자가 많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17회라는 우승 횟수로 16회의 로스엔젤레스 레이커스에 근소한 차이로 앞서 여전히 최다 우승 횟수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80년대 후반과 2000년도에 우승 횟수가 훨씬 많은 만큼, '실제로는 레이커스가 더 대세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런다고 숫자가 변하지는 않는다.[1]

우승 연도는 1957, 1959,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1968, 1969, 1974, 1976, 1981, 1984, 1986, 2008년으로, 확실히 최전성기는 60년대였다.

전성기는 크게 네 번으로 볼 수 있는데, 첫 전성기가 레드 아워백 - 빌 러셀의 시대, 러셀의 은퇴 이후 데이비드 코웬스와 조조 화이트를 앞세워 리그 우승 두 번을 차지한 70년대,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의 래리 버드 시대, 그리고 가장 최근인 빅 3 시대 정도로 볼 수 있다. 다만 네 번째 전성기는 우승 횟수 1회에 케빈 가넷의 나이까지 고려하면 앞선 전성 시대만큼의 위용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특히 1959년부터 1966년까지 기록한 8년 연속 우승 기록은 프로 스포츠 리그만 따질 경우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 레인저스 F.C.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9년 연속 우승에 이은 2위 기록일 정도로 압도적.

무려 21개의 영구 결번이 있고, 우승 배너가 17개나 걸려 있기 때문에 일단 물량 면에서 품격이 다른 게 보스턴의 홈 코트 분위기다. 전통적으로 화려한 플레이보다는 수비 위주의 블루 컬러 팀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런 건 선수들의 프로 의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2. 라이벌

가장 유명한 라이벌리는 로스엔젤레스 레이커스로 결승에서만 12회 만났다. 전적은 9승 3패. 이중 7번이 빌 러셀이 있을때 거둔 승리이며 그 이후에는 2승 3패. 그런 만큼 2008년에 셀틱스-레이커스로 결승전이 결정됐을때 팬들과 NBA사무국의 대환호는 필수. 보스턴의 동부 우승으로 셀틱스-레이커스가 결정났을 때에는 보스턴 관중 모두가 'Beat LA (엘에이를 이겨라)'를 외쳤을 정도.

1년에 2번, 그리고 파이널에서만 붙을 수 있는 레이커스와 달리 같은 동부에서 가장 처절하게 치고받았던 라이벌리는 바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필라델피아와 보스턴이라는 동부지역 최고의 전통을 가진 대도시[2]간 자부심 경쟁도 있었는가 하면, 빌 러셀 vs 윌트 체임벌린, 데이브 코웬스 vs 줄리어스 어빙, 래리 버드 vs 줄리어스 어빙등 선수들 입장에서도 매년 처절하게 파이널 진출을 위해 치고받았던 그런 사이다.

그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의 보스턴은 매년 플레이오프 자체가 도시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이었다. 그러다보니 1982년 동부 파이널에서 이 두팀이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치뤘으나 결국 보스턴의 패색이 짙어지자 홈에서 팀의 탈락을 지켜볼수 밖에 없었던 보스턴 홈구장의 팬들이 지금은 우리가 졌지만 레이커스에게는 절대 지지 말아달라라는 뜻으로 'Beat LA'라는 구호를 합창했을 정도.

이 당시에는 팀 간의 라이벌 의식을 넘어 동서부 컨퍼런스 간에도 라이벌 의식이 샘솟았다. 유사한 이유로 올스타전도 단순 쇼를 넘어서 피 튀는 혈전이 벌어졌었고... 여하튼 이런 연유로 보스턴팬들은 어차피 우리가 못 가질 거 동부의 자존심이라도 세워라!라는 까닭으로 Beat LA를 외쳐댄 것. 그런데 필라델피아는 보스턴 팬들의 이런 열화와 같은 성원을 저버리고 결국 LA 레이커스에 4:2로 패하고 만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 필라델피아는 다시 파이널에서 레이커스를 만나 4:0으로 완승하며 보스턴 팬들의 소망(?)을 대신 이뤄준다.

3.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생각외로 낮은 편인데, 국내에서의 NBA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90년대 중후반이 이 팀의 암흑시대였기 때문이다.(...) 래리 버드의 은퇴 이후 1995년부터 2001년까지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못했을 정도니. 이는 사실 래리 버드의 전성기 시절때부터 조금씩 조짐이 보였었다. 1980년 케빈 맥헤일을 드래프트로 뽑은뒤 계속 팀이 최상위권에서 놀다보니 드래프트 픽이 낮아 신인 수급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오랫만에 상위픽을 잡은 절호의 찬스였던 1986년 전체 2번픽으로 뽑은 메릴랜드 대학교의 포워드 렌 바이어스가 리그 데뷔도 하기전에 약물중독 쇼크로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으며, 그 다음해 전체 22번픽으로 뽑아 셀틱스의 차세대 기둥으로 성장하던 스윙맨 레지 루이스는 6년차이던 1993년 7월 심장마비로 2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렇게 세대교체의 구심점이 될 젊은 인재를 허무하게 잃고 버드,맥헤일,패리쉬 3인방이 30대가 넘어가면서 체력과 힘이 떨어지기 시작한 보스턴 셀틱스는 아이재아 토마스디트로이트 피스톤즈마이클 조던시카고 불스에 헤게모니를 완전히 빼앗긴 1라운드 팀으로 뚝 떨어졌으며, 버드의 은퇴 이후에는 위에 언급한대로 플레이오프에도 못나가는 안습팀이 되었다.

1998년 폴 피어스를 드래프트 10번으로 지명한 이후 조금 성적이 오르기 시작, 2002년에 오랜만에 5할 승률을 넘기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고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올라가는 성과를 거둔다. 그러나 그 이후, 폴 피어스와 함께 팀을 이끌어 줄 거라고 믿었던 포워드 앤트완 워커가 전격 댈러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 되고 나서 다시 성적이 떨어졌고 2004년에 닥 리버스 감독이 부임해 그 시즌에는 디비전 1위를 하기도 했으나 다음 2년동안 또다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2007-08 시즌이 시작되기 전 새로 취임한 과거 버드-맥헤일-패리쉬 시대의 조연이었던 대니 에인지 단장이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 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 개고생만 하고 있던 케빈 가넷레이 알렌을 영입하는데 성공, 셀틱스를 외롭게 지키고 있던 피어스와 가넷, 알렌이 만나 빅3를 구축한다. 여기에 인성문제가 있었지만 가능성은 확실했던 켄터키 대학교의 포인트가드 라존 론도가 빅3의 시너지효과를 입어 크게 성장하면서 2008년에 전통의 라이벌 LA 레이커스를 꺾으면서 바로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애틀랜틱 디비전에서는 꾸준히 1위를 하는 동부의 강팀으로 다시 자리잡게 되나 2009년에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올랜도 매직에게 걸리고[3], 그다음해에는 파이널에서 레이커스에게 패배해 왕조라고 부르기엔 뭔가 모자란 성적을 거둔데다 2010년부터는 마이애미 히트르브론 제임스크리스 보쉬를 불러 신흥 빅3를 만드는 바람에 NBA우승과는 갈수록 멀어졌다. 빅3의 구성원들은 늙어가고 있었고 급기야 레이 알렌이 론도와의 불화로 히트에 합류하면서 해체된다.

4. 2013-14 시즌

2012-13 시즌이 끝나고 닥 리버스 감독과 가넷의 트레이드 루머가 나왔다. 그 루머란 리버스 감독과 가넷이 LA 클리퍼스로 가고, 저베일 맥기와 더불어 축복받은 몸을 병신같은 EQ로 말아먹는 디안드레 조던과 드래프트 픽이 셀틱스로 간다는 것. 하지만 감독과 선수가 함께 트레이드 될 수는 없다는 사무국의 입장에 결국 리버스 감독만이 드래프트 픽을 대가로 LA 클리퍼스로 떠났고, 빅3의 남은 일원인 케빈 가넷폴 피어스마저 제이슨 테리와 묶어 브루클린 네츠로 보내고 본격 리빌딩에 들어갔다. 셀틱스가 받아오는 것은 크리스 험프리스, 제럴드 월러스, 키스 보건스(사인앤 트레이드), 마션 브룩스, 크리스 조셉, 네츠의 1라운드 픽 3장(2014, 2016, 2018)이다.

라존 론도도 부상에서 뒤늦게야 돌아왔고, 에이버리 브래들리, 자레드 설린저가 조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분전했지만 그 외에는 경쟁력 없는 선수단에 힘입어 라이벌 레이커스와 함께 3할 승률대로 사이좋게 플레이오프 탈락. 최종 성적은 유타 재즈와 동률인 25승 57패(.302) 동률인 재즈와 뒤에서 공동 4위의 승률이며, 드래프트 픽 순위를 위한 동전 던지기에서는 패배함으로서, 순위대로라면 전체 5위의 드래프트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의 가드 마커스 스마트를 뽑으면서 론도를 트레이드 시킬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5. 2014-15 시즌

시즌 1/4을 보낸 시점에서 동부 중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브래들리, 설린저, 올리닉 등 유망주들을 육성중이고 좋은 조직력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승부처에서 득점을 해줄 에이스가 없다 보니 4쿼터에 털리는 경기들이 많다. 리더인 론도는 루키시즌 이래 처음으로 평균득점이 한자리대로 떨어지는 등 위력이 감소한 상태.

2014년 12월 19일 론도가 댈러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셀틱스는 라존론도와 드와이트 파월을 보내고 자미어 넬슨, 브랜든 라이트, 제이 크라우더와 추가로 2015 드래프트 1라운드 티켓, 2016 드래프트 2라운드 티켓, 그리고 1290만 달러에 달하는 트레이드익셉션도 받았다.

후반기가 시작되는 트레이드 데드라인 기간에 피닉스 선즈아이재아 토마스를 영입하며 플레이오프 진출 욕심을 보여줬다. 그리고 피닉스전 승리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 유타와 함께 리빌딩 속도가 ㅎㄷㄷ

6. 영구결번

  • 00번(로버트 패리시)

  • 1번(월터 브라운) - 보스턴 셀틱스의 초대 구단주이며 보스턴 셀틱스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사람이다. 구단 창단된 46년부터 63년까지 보스턴은 6번의 우승을 했다.

  • 2번(레드 아워백) - 보스턴 셀틱스의 전설 그 자체. 그는 1950년부터 2006년 사망시까지 감독(1966년까지), 단장(1954~1984), 사장(1970~1997/2001~2006), 부회장(1984~2001)으로 종횡무진 활동하면서 총 17개의 우승 반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 3번(데니스 존슨)

  • 6번(빌 러셀)

  • 10번(조조 화이트)

  • 14번(밥 쿠지)

  • 15번(톰 하인슨) - 보스턴 셀틱스의 선수(1956~1965)와 감독(1969~1978)으로써 총 10개의 우승 반지를 가진 '셀틱스 맨'.

  • 16번(톰 샌더스)

  • 17번(존 하블리첵)

  • 18번(데이브 코웬스)

  • 19번(돈 넬슨) - 2010년까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닥치고 공격농구를 하던 바로 그 양반이다.

  • 21번(빌 셔먼)

  • 22번(에드 매카울리)

  • 23번(프랭크 램지)

  • 24번(샘 존스) - 뱅크샷의 달인으로 유명했던 슈터. 커리어 우승 횟수 10회로 역대 선수 중 빌 러셀의 11회 다음 2위이다.

  • 25번(K.C 존스)

  • 31번(세드릭 맥스웰)

  • 32번(케빈 맥헤일)

  • 33번(래리 버드)

  • 35번(레지 루이스) - 당시 래리 버드를 비롯한 주축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한 노쇠화로 몰락해가던 보스턴의 희망이었던 선수였다. 왜냐면 그가 한창 전성기를 달려가던 시절에 셀틱스는 비록 파이널은 못가도 플레이오프 단골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91-92시즌 올스타에 뽑힐 정도로 셀틱스의 미래를 책임질 기대주였으나, 루이스는 93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샬럿 호네츠와 경기도중 갑자기 심장발작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회복되는듯 보였지만 같은해 7월 27일 2차 발작을 일으켜 다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그의 사망후 보스턴은 2001년까지 플레이오프에 딱 한번 진출했고, 아예 00-01시즌까지 5할이상의 승률도 챙기기 못했다. 그의 사망은 레드 아워벡의 시대(감독으로서가 아닌 유능한 구단 행정가로써)도 끝났음을 뜻했다.

여기에 영구 결번은 아니나 1953년부터 1990년까지 보스턴 셀틱스의 경기를 중계한 케스터인 조니 모스트,[4] 그리고 짐 로스컷오프 등이 특별 영구 결번식으로 대접받고 있다.[5]

LA 레이커스와 더불어 NBA 에서 최대 명문팀이기에 당연히 영구결번이 많을 수 밖에 없으나, 단지 오래 활동했을뿐 큰 활약이 없었던 선수나 시즌 중 갑자기 사망한 선수들까지 애도 차원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는 바람에 영구결번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사실이다. 라이벌인 LA 레이커스만 해도 영구결번 선정에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10명이 채 되질 않는다. 같은 지역 야구팀인 보스턴 레드삭스과는 정반대.

여기에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폴 피어스의 경우는 은퇴시 99% 영구결번 확정이라고 여겨진다. 우승도 했고, 선수로써도 더할나위없는 커리어를 보냈으며, 말년에 타의로 브루클린 네츠로 떠났지만 보스턴에서만 15년을 뛰며 헌신했다. 명감독 레드 아워백의 9회 우승 회수는 한동안 안깨지다가 2010년 LA레이커스의 파이널 우승으로 필 잭슨이 깼다. 빌 러셀은 11회 우승의 명 센터로 레드 아워백의 은퇴 후 선수 겸 감독으로 최초의 흑인 감독이기도 했다. 레드 아워백 밑에서 9회 우승, 선수 겸 감독으로 2회 우승으로 개인으로서는 최다 우승 회수를 자랑한다.

7. 2014-15 시즌 선수단

2014-15 시즌 보스턴 셀틱스 선수단
감독 브래드 스티븐스
코치 제이미 영, 제이 라라냐가, 월터 맥카티, 마이카 슈루스베리
가드 0.에이브리 브래들리 4.아이재아 토마스 26.필 프레시 36.마커스 스마트
포워드 7.자레드 설린저 8.요나스 예레브코 30.브랜든 배스 42.샤블릭 랜돌프 45.제랄드 월러스 70.루이지 다토메 99.재 크라우더
포워드-센터 41.켈리 올리닉 44.타일러 젤러
가드-포워드 11.에반 터너 13.제임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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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준우승까지 합해 '결승 진출 횟수'를 따지면 레이커스가 확실히 우위에 있기 때문에 레이커스가 더 대세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 [2] 뉴욕이 미국을 대표하는 대도시긴 하지만, 보스턴은 식민지 시절부터 생겨난 미국 최고(最古)의 도시중 하나고, 필라델피아는 독립 미국의 수도가 됐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도시다. 그러니 이 두 도시 시민들간 자존심 대결이 장난 아니다. 당연하겠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뉴욕에게도 자부심으로는 안진다.
  • [3] 케빈 가넷의 부상으로 인한 시즌아웃이 결정적이었다.
  • [4] 저 유명한 Havlicek steals it!의 주인공이시다. 2차 세계대전에서 공군으로 참전해서 B-24사수를 해서 훈장도 여럿타셨다.
  • [5] 이 선수는 원래 선수시절 18번을 달았고, 데이브 코웬스와 공동 영구 결번이었다. 하지만 후에 보스턴은 로스컷오프의 별명인 Loscy가 새겨진 유니폼을 걸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