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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last modified: 2017-03-27 06:30:50 Contributors



스니아어: Bosna i Hercegovina
크로아티아어: Bosna i Hercegovina
세르비아어: Босна и Херцеговина[2]
영어: Bosnia and Herzegovina

면적 51,197km²
인구 3,791,622명 (2013년 통계)
수도 사라예보
민족구성 보스니아인 48%, 세르비아인 37%, 크로아티아인 14%
공용어 스니아어, 크로아티아어, 세르비아어[3]
국가원수 대통령 (바키르 이제트베고비치, 믈라덴 이바니치, 드라간 코비치[4])
정부수반 총리 (볘코슬라브 베반다)
1인당 GDP 명목 4,865$, PPP 8,406$ (2013년 통계)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국기
4. 경제
5. 정치
5.1. 분리 독립
6. 문화
6.1. 스포츠
7. 창작물에서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1. 개요

남유럽 발칸 반도에 위치한 국가. 내륙국으로도 생각하기 쉽지만 네움 시를 통해 아주 짧은 거리지만 해안과 맞닿아 있다. 북부의 '보스니아(Bosnia)'와 남부의 '헤르체고비나(Herzegovina)'라는 두 지역의 지명을 합쳐서 국명이 되는 셈인데, 우리식으로 경주상주를 통칭하여 경상도라 하는 식이다. 흔히 보스니아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라 자체는 이 두 지역에 걸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스르프스카 공화국으로 또다시 나뉜다.[5]

유고슬라비아 연방 시절부터 수도는 사라예보(Sarajevo)였으며, 무엇보다도 제1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알린 '사라예보 사건'(1914.6.28)으로 아마도 영원히 기록에 남을 것이다[6]. 국토면적은 약 51,000㎢, 인구는 2010년 기준 약 384만 명, 1인당 국민소득은 2010년 기준 4,275$이다. 인구구성은 무슬림계 슬라브인인 보스니아인 48% + 세르비아인 37% + 크로아티아인 14%[7]. 화폐는 예전에 디나르계열이나 크로아티아 쿠나가 혼용되다가 지금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태환 마르카(약칭 KM)라는 독일 마르크계열의 통화로 쓰인다.

3. 국기

1992년 독립 당시에는 하얀색 바탕에 푸른 방패 그리고 거기에 백합꽃 무늬가 그려진 국기였다가 1998년에 현재의 국기로 변경하였다. 이 국기 변경문제 때문에 보스니아계, 세르비아계, 이슬람계가 반발하여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현재의 국기는 파란색 바탕에 하얀 오각별무늬 그리고 삼각의 노란색으로 구성된 국기로 바탕이 하얀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5. 정치


'한 지붕 두 가족' - 분홍색은 "스릅스카 공화국"(세르비아계), 하늘색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무슬림+크로아티아계).

아직도 온전한 국가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세르비아계, 보스니아계, 크로아티아계가 따로 대통령을 뽑고 있으며, 이들이 대통령 위원회를 구성해 국가를 대표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입법권 및 인사해임권은 대통령과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스니아 평화협정이행 국제사회 고위 대표부'(OHR)에 있다. 즉, 온전한 주권국가로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빨리 발 빼려고 각 자치정부에 부여한 권한을 통합된 연방정부 형태로 이양하는 것을 추구하지만, 2010년에 열린 총선에서도 또 독자주의를 추구하는 쪽이 되면서 통합으로 가는 길은 멀다. 특히 이슬람 쪽보다는 오히려 세르비아계 쪽에서 결사반대하는 양상이다. 이들이 주가 된 스르프스카 공화국은 분리독립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하고 있다. 현재는 각 자치정부에 과도한 권한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통합된 국가로서 무언가를 실행하기 쉽지 않은 상태.

2014년 2월에는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에 높은 실업률이 겹쳐 대규모 시위가 터져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2014년 5월, 지역 기상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폭우가 쏟아져 수재(水災)가 발생했다. 3개월 동안 내릴 비가 단 사흘 만에 쏟아져 사상 초유의 물난리가 난 것. 이 폭우로 보스니아와 인근 세르비아에서 최소 20명이 숨졌고, 보스니아의 경우 인구의 25%인 1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한, 전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겼다고 한다.#

5.1. 분리 독립

코소보의 독립선언 이후, 독립에 대한 이야기가 점차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코소보도 했는데, 왜 우리라고 못 하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당장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총리 역시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독립선언을 하면 또 다시 내전이 터질까봐 감히 적극적으로 나서진 못하고 서로 잠잠한 상황이다.

이미 크로아티아는 스르프스카 공화국이 독립하면 군대를 파견해서 저지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고[8][9], 세르비아도 크로아티아가 그러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을것이라고 공언하는 마당이다.

미국은 데이턴 협정의 개정을 통해 통합 연방국가로 가는 것이 최선이기는 하나, 그러면 또 내전이 재발할까봐 협정의 개정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입장도 일단 현상 유지. 어차피 밀로셰비치도 죽었고[10] 크로아티아도 그렇게 선량한 피해자만은 아닌지라 세르비아를 무작정 몰아 치기 힘든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6. 문화

6.1. 스포츠

축구가 인기가 많다. 약체이긴 하지만, 2010 월드컵 예선에서 터키벨기에를 제치고 스페인에 이어 조 2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나가기도 했다. 비록 포르투갈에게 2패로 밀려 월드컵엔 나가지 못했지만... 박지성의 유럽 입성 이후 기준으로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선수로는 분데스리가 득점왕 에딘 제코가 있지만,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기만 해도 제코 이상 가는 선수를 찾아볼 수 있다. 분데스리가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롱런했던 산 살리하미지치가 있고, 더 과거로 돌아가면 유고슬라비아가 분리되기 전 1980년대 유고를 대표했던 천재 미드필더 페트 수시치가 있다. 또 스웨덴 국적으로 알려져있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사실 아버지가 보스니아계 스웨덴 이민자이다.

그러나 유로 2012 대회 참가 박탈 및 FIFA와 유럽축구연맹(UEFA)에서 내쫓기게 생겼다. 이슬람계, 크로아티아계, 세르비아계가 각자 축구협회 인맥을 갖추면서 3국 체제로 축구협회장까지도 3명을 두고 있을 지경이기에 1명으로 통일하지 않으면 모든 국제 축구대회 참가불가에 유럽축구연맹에서 쫓겨나면 선수들의 유럽무대 활동(여러 유럽 리그에서 유럽축구연맹 소속 나라가 아닌 선수들을 제한하기 때문)도 제약이 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인구수가 서로 비슷해서 과반수가 이뤄지지도 못하는게 문제라..자칫하면 에딘 제코나 여러 선수들을 못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유로 2012 예선에는 나가서 프랑스와 각축 끝에 승점 1점 차이로 아쉬운 2위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포르투갈과 2년만에 국제대회 플레이오프에서 또 만났다. 에딘 제코가 이번에는 지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는데 일단 안방에서 0:0으로 비기면서 희망을 가지는가 했더니 원정에선 2:6 대패를 당하면서 결국 또 포르투갈에게 덜미를 잡혀 탈락했다.

하지만 이 성장세를 놓치지 않고 꾸준히 발전을 거듭한 결과, 2년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예선에서는 그리스, 슬로바키아 등을 제치고 G조 1위를 거머쥐며 당당하게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출전의 영광을 거머쥐었지만,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도 아쉽게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래도 마지막 이란전에서 에딘 제코가 월드컵 데뷔 첫 골을 넣어서 다행.

7. 창작물에서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커맨드 앤 컨커 타이베리안 던에서 GDI측이 공략하는 Nod 최후의 사원이 사라예보에 위치해 있었다. 템플 프라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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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사용한 국기. 현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의 국기는 없다.
  • [2] 세 언어 모두 '보스나 이 헤르체고비나'로 발음된다. 애초에 세 언어 모두 서로 별 차이가 없다. 약칭으로는 'BiH(БиХ)'라고 한다.
  • [3] 사실상 셋 다 같은 언어이다(...).
  • [4] 보스니아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순으로 작성. 이 세 명이 모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대통령이다(...)
  • [5]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는 지방의 개념이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스르프스카 공화국은 민족이라 대강 생각하면 편하다.
  • [6]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 부인이 세르비아 출신 "검은 손" 소속의 청년에게 암살 당한 사건.
  • [7] 크로아티아인은 주로 스르프스카 공화국에 속하지 않은 헤르체고비나 지역에 몰려있다.
  • [8] 크로아티아는 이미 1995년 미국의 용병업체인 MPRI의 조언하에 '플래시' 작전과 '폭풍' 작전을 통해서 크로아티아내의 세르비아계 자치공화국을 싹 쓸어버리고 자국내에서 세르비아계를 축출한 경력이 있다.
  • [9] 다만 이 경우는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계가 숫자도 적고 영향력도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오히려 이런 세르비아계의 약한 군대를 수년간이나 축출 못하고 4년 가까이 질질 끈 데서 크로아티아군의 무능함을 확인할 수 있다.
  • [10] 밀로셰비치는 2006년 3월 향년 64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