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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발

last modified: 2015-03-08 22:36:25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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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히 알려진 나라 후기에 유행한 변발. 음양두라고 한다.


위 사진보다 좀 더 원초적(?)인 변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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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족의 변발 벌칙같다


프로이센군의 변발(?). 뒤로 길게 땋은 머리는 18세기 유럽 군인들에게 규정된 헤어스타일이었다.

Contents

1. 개요
2. 상세
3. 그 외
4. 이 속성을 가진 캐릭터


1. 개요

동아시아 북방 목 민족의 유서깊은 헤어스타일. 만주어로는 손초호(soncoho), 몽골어로는 캐쿨(kekul) 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황비홍 머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몇몇 아메리카 원주민들이나 고대 이집트인들도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했다.

2. 상세

앞머리는 깎고 뒷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헤어스타일이다. 거란족은 위의 그림과 같이 양 옆 조금만 남기고 다 밀어버렸으며, 몽골족은 앞머리와 좌우 양쪽의 머리를 조금 남긴 후 귀 뒤 2갈래로 길어 늘어놓았다. 여진족, 만주족은 뒷머리의 일부만 남기고 죄다 깎아버린 후 남은 뒷머리를 땋아 길게 늘어놓았다. 굳이 머리를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전쟁시에 편하라고 이렇게 했다는 의견이 대세다. 과거 냉병기 시절 전투는 두꺼운 옷 위에 쇠로된 갑옷을 입고 역시 쇠로 된 투구까지 쓰고 격렬하게 움직이는데, 이때 체온이 급격하게 상승하게 되어 열을 빨리 식히기 위해 머리를 밀었던것. 아무래도 다른 부위에 비해 뇌가 열받으면 훨씬 후유증이 크다는 점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잦았던 유목민족들에게도 마찬가지. 사실 변발이 유행했던 지역은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물을 아끼기 위한 측면도 컸다. 사실 지금도 위구르같은 경우는 모든 남자들이 아예 스킨헤드를 기본 스타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을 정복한 유목민족들은 이 머리를 한족들에게도 강요했는데, 특히 이는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시대에 심했다. 1644년, 순치제는 치발령을 내려 이 머리를 모든 한족들에게 강요했으며 이는 청 대를 이어가며 중국의 풍속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치발령이 떨어질 당시에는 아직 남명과 같은 명나라의 잔존 세력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자존심 강한 한족들은 야만족의 풍습을 따를 수 없다면서 전국 각지에서 엄청난 반발을 일으켰다. 게다가 머리를 한 가닥만 남긴다는 자체가 조선의 유생들이 단발령에 반발한 것 처럼 유교의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에 완전히 대치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특히 보수적 경향이 강했던 양쯔강 이남에서 가장 극심하게 반발했는데, 이 때문에 본보기로 성 하나를 전부 도륙한다는 도성(屠城)을 시행해 양주 대학살과 가정삼도가 일어났다.

청나라는 산해관 입관 후 이듬 해 남명 정권을 붕괴시키고 명나라 영토 대부분을 석권하자 전국에 변발령을 내리면서 "머리를 남기려면 머리털을 남기지 말고(留頭不留髮), 머리털을 남기면 머리를 남겨 두지 않겠다(留髮不留頭)"고 선언하였는데, 이는 단순한 엄포가 아닌, 말 그대로 '천명'이었으며, 이에 불응하는 것은 천명에 거스르는 반역 행위로 간주되었다. 청나라는 변발령을 결연한 의지로 밀어부쳐 체발(剃髮)에 불응하는 자가 새벽에 잡혀 오면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저녁에 잡혀 오면 저녁 해가 지기 전에 가차없이 처단하였고, 변발령에 저항하여 일어난 봉기들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무자비하게 진압하였다. 한편 변발령을 집행하는 관리가 마을을 방문할 때 체발 도구와 함께 먼저 거쳐 온 마을에서 체발에 저항하다 참수된 자들의 수급을 다발로 엮어서 가지고 왔다고도 하며, 고을 안에 변발을 하지 않은 자가 하나라도 있으면 그 고을의 관원들도 한 묶음으로 처벌되었다고 한다.

또한 비록 체발을 했더라도 규정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면 역시 처벌되었는데, 위의 사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앞머리를 체발하고 뒷머리를 남겨 놓은 소위 음양두(陰陽頭)는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서야 등장한 것으로서, 원래 변발은 동전 크기만한 면적의 머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체발하는 소위 금전서미(金錢鼠尾)로 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머리는 동전 크기만 남기고 모두 체발하며, 남겨 놓은 머리를 땋았을 때 그 굵기가 동전을 꿰는 구멍을 통과할 수 있을 만큼 되어야 했다.


이렇게 해야 한다.

오늘날 중국에서 제작된 청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보면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시절 남자들의 머리 모양이 당시의 금전서미가 아닌 청 말기에 나타난 음양두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만일 진짜로 그들 시대에 음양두를 하고 있었다면 당장에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차라리 강철의 연금술사에 등장하는 버커니어의 머리 스타일이 원래의 변발에 가깝다. 한편 이러한 변발령에서 예외인 자들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들은 다름아닌 '승려'들이었다. 때문에 변발을 피해 승려가 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변발보다는 삭발이다 비교적 종교에는 관대한 유목민 왕조의 특징인지 일부 도사들도 제외되었다고 한다. 만약 청나라 시대, 그것도 한창 변발 보급하던 초창기가 아니라 변발이 정착된 시기가 배경인 사극에서 예전 한족 옷을 입고 속발을 한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은 무조건 도사다.[1]

대머리의 경우 가짜 변발이라도 붙여야 했다.


전투적인 머리모양이지만 후기에 유행한 음양두는 오히려 약점이 되기도 한 듯. 룩을 우선시한거다 '변발을 잡히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이래서 군인같은 경우 초~중기의 변발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에는 이렇듯 엄청난 반발이 있었는데, 점차 '역시 남자라면 변발이 멋져야 함'같은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래서 변발을 전문으로 가꿔주는 직업이 등장하는 등 한족들, 특히 화북 지역 중국인들의 경우 만주족들의 풍습처럼 중히 여기게 된다. 그래서 신해혁명을 전후로 혁명의 의미로 변발을 자르고 민간에도 '변발금지령'을 내렸는데 여기에 대해서 다시 저항이 있어 가위를 들고 변발을 잘라가는 광경이 연출되었다고 한다(...). 북방민족에 동화된 일부 지식인들은 '변발은 우리의 조상이 물려준 소중한 것이므로 자를 수 없다.'같은 주장으로 반발했다고... 사실 이런식으로 변발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거의 현대 초기에까지 내려오다 보니 변발이 폐지된 뒤에도 아예 머리를 그냥 밀어버리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지금도 중국에서 나이 드신 분들은 거의 스킨헤드(...)이신 분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현 중국 정부의 제재 탓도 있긴 하지만 중국에서 장발을 자주 볼 수 없고 오히려 천진반들을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만들어진 전통(?)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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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청나라 사람들의 미국 이주가 활발해졌는데, 미국인들은 중국인의 변발을 보고 돼지 꼬리(pig tail)라며 조롱했다..능지처참과 마찬가지로 이런 머리를 하는 중국인은 야만적이므로 우리가 개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널리 이용되기도 했다. 손문 등의 혁명가들은 외국인 친구들에게 변발은 원래 중국의 풍습이 아니라고 설명하며 오해를 풀고 다녔다고 한다. 극단적인 경우 원래 한족의 상투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현재 중국에서는 과거 한족이 어떻게 머리를 묶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변발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완전히 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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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에서는 아무래도 전통 한족의 문화는 아닌데다가 비주얼적(...)으로 좀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에서도 변발을 비난하는 중국인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얼른 변발같은 유목민족의 풍습이 아니라 전통 한족의 모습으로 중국의 이미지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고...어찌보면 한족민족주의 지식인들 입장에선 정말 흑역사다. 자기들 풍습이 아닌 걸로 외국에 그런 이미지가..

3. 그 외


중국에서 청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찍을 때 어설프게 대머리 가발을 씌우지 않고 진짜로 머리를 삭발한 다음 그 위에 변발을 씌운다. 황제의 딸을 보면 얼마나 빡빡 밀었는지 머리에서 광이 날 정도.(...) 최근에는 분장기술이 발달해서 머리를 박박밀지 않고도 변발효과를 내는 특수가발이 개발되었다. 최근에 나오는 중국드라마를 보면 이런 가발을 쓰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중국 남자배우들은 청나라 시대 사극을 찍는걸 꺼려할 정도로 변발이 중국 남자 배우들에게 주는 마음의 상처는 크다(...) 이례적으로 이연걸처럼 변발이 잘 어울리는 배우들이 있기는 하지만 비주얼의 50% 정도를 날려버리기 때문에 젊은 남자 배우들이라면 청대 사극 찍기 전에 고민 좀 한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중국, 일본[2]과 달리 한국의 경우 스님 역할을 제외하면 삭발할 일이 없다.


왼쪽이 이소룡의 연갱요 스틸컷, 오른쪽이 자마

장철 감독의 영화 자마<<刺馬>>[3] 에서는 머리를 밀지 않고 그냥 땋은 정도로 우리의 댕기머리와 상당히 비슷한 변발을 등장시키는 상당한 혁명(?)을 했다. 사실, 그 당시까지는 만주인의 나라 자체가 재평가받기 전이라 부정적인 이미지인데다 비주얼(...)도 좀 그런 탓에 아예 변발이 등장하는 자체가 선호받지 못했다. 등장하더라도 악당의 상징. 시간적으로는 청나라일 작품을 보면 변발을 있던듯 없던듯 왠지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 변발같은게 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 민국시대스런 비주얼이다. 사실 고증을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듯도 한데 이소룡정무문이나 성룡취권이 이런 예.[4] 시간적 배경은 청나라말기인데 비주얼은 굉장히 민국스럽(?)다. 어쨋든 이런 암묵적인 징크스를 최초로 깬 작품인 셈. 이 비주얼과 나름의 고증을 동시에 가지는 시도는 제법 성공해서 이후 80년대 청나라 시대극을 이러한 순화 변발(...)로 찍는게 유행했다. 그리고 청나라 배경의 시대극도 조금씩 흥하기 시작한다. 이소룡이 찍을 뻔 했던 연갱요도 '자마'의 영향을 받았는데, 돌아다니는 스틸컷의 의상이 바로 자마 촬영에서 적룡이 입었던 것. 이 시기의 무협물들이 일본에서도 인기를 끌며 일본 만화에도 영향을 줘 무술만화가 유행하거나 인기소재가 되었고, 이미지를 정착시켜서 일본 작품에서 이러한 순화 변발(...)을 차용한 중국풍 캐릭터를 제법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란마 등이 있을 듯.

이후 90년대에는 서극 감독의 황비홍의 음양두가 엄청난 임팩트를 선사한다(...)

최근까지도 쉽게 볼 수 있던 중국의 거리 이발사는 청나라때 변발을 깍으려고 파견한 하급관리에서 유래했다는 얘기도 있다.

4. 이 속성을 가진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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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영화 무인 곽원갑에서도 중간에 순식간에 지나가긴 하지만 도사로 추정되는, 변발이 아닌 속발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드라마 이름은 알 수 없으나 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어떤 드라마에도 다른 남자들은 다 단발을 하고 있는데 도사인 듯 유독 혼자서 속발을 한 사람이 나와 뭐라뭐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런 게 괜히 나온 것일 리도 없고... 비록 속발이 청에 의해 금지되고 일부 도사에게만 허용되긴 했지만 완전히 없어진 것은 의외로 변발이 없어진 것보다 더 뒤일지도 모르겠다.
  • [2] 여기도 촌마게라는 특유의 전통 머리모양 때문에 역사극 찍는 남성배우들이 머리를 밀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 [3] 가신 감독의 영화 명장의 원작격
  • [4] 이 두 작품의 주인공은 각각 곽원갑제자와 아무도 신경쓰지도 않고 아무래도 상관없고 알지도 않지만 황비홍이다(...)
  • [5] 현대 버젼. 여자애인데...
  • [6] 실제로는 프로토스 종족 특유의 텔레파시 기능을 담당하는 신경 다발 조직이지만 얼핏 보면 변발처럼 보인다.
  • [7] 정작 주연 인물들은 변발을 하지 않았다. 특히 루오대사(만사통)의 경우 한푸에 전형적인 명나라 행색을 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잘못 걸리면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행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