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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초토화작전

last modified: 2015-01-16 15:25:52 Contributors

상위 항목 : 학살, 독소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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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 우린 집 안에 수류탄을 던졌다. 집은 매우 빠르게 타들어갔다. 불은 다른 오두막으로 옮겨붙었다. 그 광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 우리는 눈물나게 웃겼다. 우리는 겨우 10개 마을에만 불을 질렀는데... 슬라브에겐 자비가 있을 수 없다. 저주스러운 것들은 우리에겐 외계생물 같다.
― 국방군 하사 요하네스 킴의 일기.

독일판 신멸작전. 누가 추축국 아니랄까봐 그 발상도 똑같다.

Contents

1. 소개
2. 전개
2.1. 점령 당시
2.2. 1943년
2.3. 퇴각 당시
2.4. 결과
3. 그 밖에
4. 참고 사이트


1. 소개

나치 독일벨라루스에서 벌인 제노사이드. 벨라루스에서 벌인 토벌작업은 빨치산 소탕뿐만 아니라 주민들과 주거지를 파괴하는걸 목적으로 했다.[1]

토벌작업은 국방군과 SS와 경찰이 벌였으며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대(對) 게릴라 작전을 하였다. 그 결과로 수많은 주민들이 죽거나 수용소로 끌려갔다.

2. 전개

2.1. 점령 당시

1941년 독일군은 첫번째 토벌작전을 벌였다. 경찰은 마을을 파괴하면서 과 인근 지역에 토벌작업을 벌였다. 나치의 작업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은 민간인들 사이에서 13,788명을 처리했다고 밝혔다. 그 다음 나치는 마을이나 해협 같은 곳을 태웠다.

2.2. 1943년

1943년부터 대규모 건설작업을 하였다. 나치는 잔인하게 민간인을 죽이고, 가축을 압수했으며, 곡물과 재산을 약탈했고, 노동 연령 인구는 강제노동에 동원시켰다. 모든 건물이 타버렸고 광대한 지역이 황폐화되었다. 1943년 6월에 벌인 토벌작전 결과에 따르면 약 만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고 6000개가 넘는 건물이 태워졌다.

2.3. 퇴각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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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에게 밀리기 시작하는 1943~1944년에는 점령 지역을 모두 태워 황폐화시키는 일을 수행했다. 그 작전을 맡은 병력들의 임무는 독일군이 퇴각할 때 땅을 완전한 파괴하는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였다. 초토화작전을 벌이는 방법 중 하나는 주민들과 그들이 사는 곳을 모조리 태워없애는 것으로, 사람들을 집이나 창고 또는 헛간에 가둬버리고 나선 불태우는 것이였다. 벨라루스가 해방됐을 때는 많은 지역이 사막처럼 됐다.

2.4. 결과

나치의 토벌작전 결과 3년동안 2,230,000명이 죽었다.

3. 그 밖에

사실 여기서 소개하는건 토벌작업에 한정한 것이다. 실제로는 이것뿐만 아니라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홀로코스트도 벌어졌다. 그 잔혹함은 아우슈비츠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이 벨라루스 토벌작전을 다룬 영화로 컴 앤 씨가 있다. 극한의 개막장을 보여주며 용서할 수 없는 악마인 독일군과 그 독일군의 장비를 노획하며 싸우면서 점점 독일군처럼 변해 구분을 할 수 없게된 빨치산들의 변화가 포인트인 영화.

4. 참고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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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엄밀히 말하자면 빨치산 토벌은 핑계로, 명령이 떨어지고 실행된 시점에서 빨치산 운동은 아직 시작도 안 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런 일을 벌인 목적은 처음부터 제노사이드였고, 아무리 온건하게 해석해도 대량 처형을 통한 공포 통치가 목적이었다. 사실 이건 1차대전 때부터 독일군이 항상 하던 짓이고, 여기에 나치 이념이 결부되자 말 그대로 제노사이드가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