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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복스

last modified: 2015-04-12 17:27:44 Contributors


베이비복스의 하이라이트 시기 (3집, 1999년)
좌측부터 심은진, 윤은혜, 김이지, 이희진, 간미연


베이비복스의 마지막 정규 앨범 'Ride West' 자켓 (2004년)


리더 김이지 결혼식 웨딩사진 (2011년)

Baby V.O.X Baby Voice of Expression의 약자이다. '순수하고 깨끗한 목소리를 표현하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1997년 데뷔했으며 전성기 때의 멤버는 김이지, 심은진, 간미연, 이희진, 윤은혜 5인조였다. 2004년까지 총 8장의 음반을 발매했고 2006년 멤버 전원이 탈퇴해 잠정 해체되었다.

이 그룹의 팬은 한자 腹과 미분의 특성을 거저 외우게 된다. 각각 한자 배 복[1]자, 간단히 말해 미분 가능하면 연속임을 뜻한다.


Contents

1. 개요
2. 콘셉트
3. 이력
3.1. 1집
3.2. 2집
3.3. 3집
3.4. 4집
3.5. 5집
3.6. 5.5집 스페셜 앨범
3.7. 6집 DEVOTION
3.8. 7집 Ride West
4. 2기 베이비복스, 베이비복스 리브
5. 사건
5.1. 문희준 간미연 스캔들 사건
5.2. 이하늘 미아리복스 사건
6. 멤버
6.1. 멤버
6.2. 이전 멤버
6.3. 베이비복스 리브 멤버
6.4. 베이비복스 리브 원 멤버
7. 음반
8. 관련 링크

1. 개요


현대 걸그룹의 실질적인 시초[2][3]
대한민국의 여성 5인조 1세대 아이돌 걸그룹으로, DR 뮤직 소속이다. S.E.S.핑클이 1세대 걸그룹의 투톱이었다면 베이비복스는 3인자였다. 팬덤수는 이들보다 덜하지만, 컨셉 보정으로 군대에서의 인기는 넘사벽인, 소위 '군통령'의 시조이다.

이렇게만 써있으니 마치 미약한 가수 같지만, 많은 히트곡을 가지고 있다.
야야야 - 베이비복스의 인지도를 올려준 노래이다. 2014년 어반 자카파하이스쿨 러브온OST리메이크했다.
Get up - 1위곡
killer - 1위곡(김현성 2집에 실린 곡을 리메이크)
why - 1위곡
인형
나 어떡해 - 1위곡
우연 - 1위곡(혼성그룹 '콜라'의 '우울한 우연'을 리메이크)

매년 연말시상식에서 상도 탔다. 정확히 말하면 나름대로 인기를 얻었다 수준이 아니다. 굉장한 인기를 누렸던 그룹이다. 만약 이 그룹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4집 활동이었던 2000년 무대를 꼭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때의 비주얼로만 따지자면 핑클, SES보다도 더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뒤쳐지지 않았을 정도로 비주얼이 폭발했던 시기였다.

카라가 여러모로 베이비복스와 닮았다. 5인조. 3인자, 당시대 투톱보다 빠른 데뷔,(베이비 복스는 3팀중 가장 빠르지만 카라는 원더걸스보다는 느리고 소시보다 빠르다) 데뷔앨범 폭망, 맴버교체 이후 인기상승. 해외진출 성공, 맴버 교체시마다 막내가 바뀌는 점 등이있다. 베이비복스 이희진→간미연→윤은혜 카라 니콜→강지영→허영지.

2. 콘셉트

사실상 많은 여자아이돌들이 핑클이나 S.E.S를 롤모델로 삼지만 두 그룹은 가창력 담당 " 1과 그외 얼굴마담으로 구성되어있었다. 핑클 S.E.S에 비해 좀더 파워풀하고 시원시원한 쪽은 베이비복스였다. 심지어 유일한 요정 이미지를 보여준 2집 타이틀곡 '야야야'에서도 춤만큼은 베이비복스의 히트곡중 희귀한 귀여운 노래에 비해 파워풀한 안무였다.

베이비복스의 경우 리드 싱어2명(이희진, 간미연), 서브보컬 2명(심은진,윤은혜), 랩1명(김이지)으로 안정적으로 구성된 현 시대의 아이돌그룹의 시초로 봐도 무방할듯 하다. 김이지의 경우 요즘 아이돌 저음랩의 시초였다. S.E.S디바도 랩은 했었지만 요즘 아이돌 랩이랑은 확연 히 구분된다. 중국이나 대만등 해외에 진출해서 대박친 것도 현 아이돌의 해외진출의 밑거름이 되었다.
베이비복스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지는 의의

3. 이력

3.1. 1집

1997년 7월 3일 1집《남자에게》로 데뷔하였다. 인지도 자체가 SES핑클에게 밀려 이들보다 늦게 데뷔한걸로 인식 되긴 하지만 실제로 베이비 복스는 1997년 7월데뷔로 1997년 11월에 데뷔한 SES나 1998년 5월에 데뷔한 핑클보다 먼저 데뷔했다. 그러나 1집은 페미니스트 갱스터 디스코(...) 음악으로 실적이 매우 저조했다. 앨범 자체가 많이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한 때 이 앨범을 구하려면 중고로 5~6만원 이상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앨범은 극소수의 사람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었는데, 남자에게, 머리하는 날, 미혼모 등으로 구성된 일부 트랙들은 당시 시대를 보더라도 도전적이고 굉장히 독특한 스타일의 음악이었다. SES나 핑클의 1집 타이틀곡이 남자들 듣기 좋을 달콤한 쪽인 것과 달리 남자친구에게 불러주면 '우리 헤어져' 소리나 다름없는게 타이틀곡(머리하는 날)이었다. 물론 독특한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도중에 차유미가 팀을 떠나고 간미연이 합류했다.

3.2. 2집


2집에서는 정시운, 정현전이 나가고 이가이, 심은진이 합류면서, 대세가 된 SES와 핑클을 철저히 벤치마킹 하게 된다. 김형석이 작곡한 타이틀 곡 '야야야'가 가요순위 3위까지 랭크되며 10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후속곡 'Change'도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 시기에 팬클럽까지 창설되며 베이비복스의 첫 히트 앨범이 된다. 하지만 1999년 1월 스포츠서울에서 멤버 이가이가 전 세또래 멤버[4]이고 나이를 속여가며 연예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위기를 겪었다. 1998년 11월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2집 컴백이 9월 중순이고 11월 당시에는 후속곡 Change 활동 당시였다. 12월 각종 시상식에도 신인상을 수상하며 활동을 이어갔는데 11월이라는 주장은 말이 안된다. 당시 이가이는 무려 나이를 10살이나 속여서 활동을 했었다. 결국 이가이는 실제 나이를 공개하고 그렇게 된 사정을 밝힌 뒤에 연예계를 완전히 떠났다.

3.3. 3집

이가이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한 오디션을 통해 당시 중학생이던 윤은혜가 새로 들어오면서 베이비복스 5인 체제가 완성된다. 소속사측은 SES와 핑클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섹시 컨셉을 표방하여 3집 앨범을 발표했는데 타이틀곡 'Get up'이 큰 인기를 끌어 각종 방송 차트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1위에 올랐고 후속곡 'Killer' 역시 히트에 성공하여 뮤직뱅크에서 2주간 1위를 차지했다.


Killer 활동 시절

3집은 20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했고 4편의 광고 촬영등으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3.4. 4집

3집의 성공으로 이후 탄탄대로의 길을 걸을 줄 알았던 베이비복스는 99년 말, 갑자기 중국 진출을 선언한다. 이 당시 멤버들은 "그동안 해온 고생도 모두 끝났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중국행을 하게 되서 매우 당혹스러웠다'라고 회상했다.


4집 활동 시절. 미모 리즈시절

2000년 초에 각종 중국 방송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해외 활동에 나선 그들은 곧 4집 앨범 작업에 착수해 5월에 4집 음반 'WHY'로 국내 가요계에 컴백한다. 하지만 중국 활동과 맞물려 방송 활동에 차질을 빚었고 더군다나 당시 멤버 이희진의 머리 색깔이 금발이었기 때문에 KBS에서는 방송 금지를 당한다. 결국 'WHY'는 전작만큼의 인기를 얻는데엔 실패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여성그룹 '샤크라'가 데뷔와 동시에 큰 인기를 누려 베이비복스는 주춤하는듯 보지만 이들은 곧 후속곡 '배신' 을 내놓으면서 SBS 예능방송 대한해협에도 출연하고 타이틀 곡 프로모션때는 소홀했던 음악 방송스케쥴에도 몰두하여 괜찮은 인기를 누렸다. 음판 판매량은 약 16만장을 기록.

4집때는 국내 활동보단 중국 활동에 치중했기 때문에 국내에서의 성적이 기대보다 안나오긴했지만 중국 진출 6개월만에 현지에서 차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10월에는 중국 계림시의 홍보대사로도 임명되었으며 같은 달에는 일본에도 진출하여 단독 콘서트를 가지며 점점 아시아에서의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3.5. 5집

4집이 기대 이하의 성과를 얻자 5집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원래는 2001년 2월 컴백 예정이었지만 소속사 DR뮤직은 멤버 전원이 작곡에 참여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음반 작업을 다시 시작한다. 멤버들은 프로듀서 김형석의 지도 하에 작곡 공부를 했고 당시 학교에 재학중이어서 시간적 여유가 적었던 윤은혜를 제외한 4명의 멤버들은 앨범에 개개인의 자작곡을 싣게 되며 음악적으로도 크게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2001년 6월, 5집 앨범 'Boyish Story'가 발매되고 국내 활동을 재개한다. 발매 직후 가요차트 10위권에 들며 순조로운 활동을 예견했으나 소속사는 병크를 저지른다. 4집 부진의 주 원인이었던 해외 활동에 미련을 못버리고 7월부터 중국에서의 전국 순회 공연을 추진한것이다. 결국 재기를 기대했던 타이틀 곡 'Game Over'가 전작보다 더 부진한 성과를 거두었고 베이비복스 위기론까지 생산될 정도로 대책이 필요해졌다. 더군다나 이 시기에는 대중들에게 비난받았던 섹시 컨셉을 은퇴한다는 식으로 언플했지만 후속곡으로 '가까이'라는 곡을 채택했다고 언론에 밝혔는데 이 곡에서는 진한 사랑행위를 연상시키는 가사로 선정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활동도 못하고 후속곡 활동을 취소하기에 이른다.

결국 8월 초부터 김형석 작곡의 '인형'으로 활동을 재개했는데 다행히 이 곡이 인기를 얻어 부진을 어느정도 만회했다.
5집이 베이비복스의 정규 음반 중 대중적 인기는 전보다 덜했으나 4집과 함께 최고 명반으로 손꼽히는 앨범이기도 하다.

3.6. 5.5집 스페셜 앨범

4,5집이 연달아 부진을 겪자 소속사 DR 뮤직의 윤등룡 대표는 당시 베이비복스의 인기의 주축이던 간미연과 심은진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를 모두 탈퇴시키고 제2의 베이비복스를 만들어 활동을 벌인다고 인터뷰하며 팬들사이에서 큰 파장이 일어났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멤버들의 반대와 팬들의 항의로 인해 물거품되는듯 했지만 2007년 베이비복스 리브로 실현된다.

재기에 목이마른 소속사측은 결국 3집부터 5집까지 프로듀서를 맡았던 김형석을 하차시키고 당시 주가를 올리던 작곡가 김창환을 영입하여 스페셜 음반 제작에 돌입한다. 그 사이 베이비복스는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어 멤버 간미연이 중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한국 연예인 랭킹 1위에 오르는 등 인지도를 넓혔고 그 영향력은 점점 커져갔다.


2002년 4월, 스페셜 앨범 '우연'을 발매하고 활동을 재개했다. 타이틀 곡 '우연'은 1990년대 중반 그룹 콜라가 불러 히트시킨 '우울한 우연'을 당시 트렌드에 맞춰 재편곡한 노래였고 당시 월드컵 열기에 편승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1999년 이후 3년만에 국내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며 재기에 성공한다. 이때 멤버 간미연과 심은진등이 예능 방송에서 크게 활약해 국내 인지도도 다시금 상승했으며 김이지는 드라마에 캐스팅, 간미연은 한중합작 영화에 캐스팅되며 개인활동도 시작했다. 포스터 촬영까지 진행됐던 이 영화는 제작이 계속 지연되다가 결국 취소되었다. 이 시기에는 베이비복스가 당시 걸그룹중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었고 음반 판매량 역시 전작의 약 13만장 이상을 훌쩍 넘은 24만장을 기록하며 베이비복스 커리어중 가장 많이 판매된 음반이 되었다.

이 해에는 국내 가수 최초로 태국 시장에도 진출했는데 굉장히 좋은 성과를 얻었다. 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인기에 정점을 찍어 베이비복스 가요제를 개최했는데 이 가요제에서 선발된게 지금의 SM 엔터테인먼트 소속가수 장리인이다. 이 문제로 인해 DR뮤직과 SM엔터테인먼트 사이에 법정공방이 있었다.

3.7. 6집 DEVOTION

2002년 5.5집의 대박 이후 베이비복스는 대한민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태국에 진출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일본에서도 싱글 음반을 발매하며 아시아 전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2002년 S.E.S.핑클이 해체 혹은 개별활동을 선언하는 바람에 베이비복스도 해체설이 일어났었지만 소속사는 이를 부정하고 6집 음반 작업에 착수한다.

2003년 3월, 작곡가 김형석과 결별하고 <우연>의 작곡가였던 김창환을 메인 프로듀서로 두어 작업한 6집 앨범 <DEVOTION>을 발매했다. 타이틀 곡 역시 김창환이 작곡한 '나 어떡해'였는데 팬들 사이에서는 '베이비복스만의 세련된 느낌이 사라졌다', '촌스럽다'라는 의견이 대다수였지만 대중성이 짙은 노래였기에 '우연'에 이어 1년만에 다시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수상하며 여전한 인기를 누렸다. 6월중에 국내에서 두 번째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었고 티켓팅까지 완료한 상황이었지만 어른의 사정으로 취소되었다. 후속곡은 '바램'과 'Loveless'로 확정되어 여름에 활동을 벌일 예정이었지만 '바램'으로 2주정도 선보이고 국내 활동을 정리했다.

연말 가요제에서 본상, 한류 공로상을 수상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당시 걸그룹중에 가장 많은 음반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빅마마가 1집으로 2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지만 엄연히 빅마마는 걸그룹이 아니다.

3.8. 7집 Ride West

국내에서의 6집과 해외에서의 활동으로 아시아에서 톱자리에 오른 베이비복스는 미국의 벙갈로 뮤직에서 음반 프로듀싱 제의를 받았고 국내 작곡가가 아닌 해외 뮤지션들로부터 곡을 취입했다. 이 과정에서 힙합계의 거장 '투팍'이 생전 녹음해놨던 미공개 음원을 구입해서 샘플링했고, 제니퍼 로페즈도 음반에 코러스로 참여하며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앨범을 제작한다.

사실 본 앨범의 타이틀 곡 활동을 2주로 아주 짧게 잡았고 국내 정서와는 맞지 않는 음악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초반 정규 음반이 아닌 스페셜 음반 (6.5집)으로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발표 직전 정규 7집 앨범으로 발매하는것으로 확정되었다.

2004년 4월, 7집으로 컴백한 베이비복스는 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타이틀 곡 'Xcstasy'에 투팍의 목소리가 삽입되었다는 점이 힙합팬들에게도 큰 논쟁거리가 되었고 국내의 기존 팬들사이에서도 반응이 크게 갈렸다. 그리고 'Xcstasy'라는 제목을 문제삼아 SBS측은 노래 제목을 '환상'으로 표기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활동 초반 여러가지 이슈들로 화제가 되어 발표 2주만에 <SBS 인기가요> Take 7에 오른다. 본래는 2주간 활동할 예정이었지만 랩핑에 참여한 '플로스 피'가 본인의 음악 작업 일정도 미뤄두고 베이비복스를 위해 2주간 더 한국에 머물러 1달동안 'Xcstasy'의 무대에 참여했다.

그렇게 활동을 이어가던 6월, 그 유명한 미아리 복스 파문이 터진다. 아래항목참조.

7집 활동이 완전히 실패하고 베이비복스는 활동 중단을 선언한다. 수억원의 개런티를 받고 일본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었으나 이 계획도 모두 취소하고 3달여간 해외 공연을 위주로 활동하다가 12월, 멤버 심은진이 탈퇴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 후 멤버가 차례차례 탈퇴하여 2006년에 잠정 해체되었다. 어떤 한 사람의 말로 인해 여러 사람 인생 망하게 했다

4. 2기 베이비복스, 베이비복스 리브

2007년 베이비복스 리브(Baby Vox Re.V)라는 이름으로 2기 베이비복스가 출범하였고, 2008년 다시 '베이비복스'란 이름으로 2집을 발표했다. 2기 베이비복스도 2집을 끝으로 해체되었다. 3기 베이비복스가 결성중에 있었으나 같은 회사에서 발굴한 6인조 다국적 걸그룹 라니아가 데뷔했기 때문에 3기 베이비복스 출범은 불투명한 상태이다. 라니아가 사실상 망했으니 다시 시도할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2008년 발매된 베이비복스 리브(2기) 2집 노래중 김창환 작곡의 'why'라는 노래가 사실은 소년탐정 김전일 애니메이션의 오프닝곡으로 쓰였던 노래로 그때는 COLOR라는 그룹이 불렀다. 그리고 2002년에 Buzy로 그룹명을 바꿨다. 애니 팬들에게는 트윈 스피카 OP에도 사용된 鯨이나 록맨 EXE Stream OP인 Be Somewhere를 부른 그룹이라면 이해될듯. 김전일 애니메이션 자체가 오래된데다가 우리나라에서 이 노래가 알려져있지도 않아서 대체로 잘 모르는 사실. 작곡가가 같으니 표절은 아니다. 참고로 2003년 발매된 원년 멤버들의 베이비복스 6집 Devotion 의 5번 트랙 '사랑인가봐요'는 라라의 스타일기 에서 성우가 부른 버젼이 삽입곡으로 쓰였다 그외 리브(2기) 역시 같은 애니의 삽입곡등으로 쓰인바 있다.

5. 사건

5.1. 문희준 간미연 스캔들 사건

사실 노래보다는 문희준과 있었던 간미연의 스캔들로 인해 다량의 협박편지 배달된 사건이 보도되며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이들의 존재가 각인됐다. 1세대 사생팬이 일으킨 사건들중 가장 유명한 사건중 하나로 다량의 커터칼날 + 피로 쓰여진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문구 + 간미연의 눈을 모조리 파낸 사진 등. 이 사건은 딱히 범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황상 H.O.T.의 열성팬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음악방송에서 '배신' 무대를 하던 중 H.O.T.의 팬으로 추정되는 여성 관객들이 노래 시작과 동시에 꺼져라! 등 온갖 야유를 무대 내내 보내기도 했다. 똑같이 H.O.T. 멤버였던 강타와 열애설이 났던 가수 박지윤도 똑같은 수준의 테러를 당한 걸로 잘 알려져 있다.

SNS도 활발하고 연예인들이 악플 읽어본 이야기도 쉽게 하는 요즘과 달리, 당시는 아이돌의 경우 팬덤 외엔 크게 관심을 가지지않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었고, 아이돌들은 인터넷으로 팬사이트만 확인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다보니 안티들의 공격이 단순히 악플이나 루머 양산, 안티카페 개설 등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신체적 위협(폭행,의상훼손)이나 협박(살해협박)처럼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가 사라지는 끝물에 일어난 것이 안티팬이 모그룹에 행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던 음료수본드 테러범행. 아이돌에 대한 관심이 코어팬덤 외 일반인들에게까지 번진 요즘은 팬덤들 사이에서만 도는 '그랬다더라' 수준의 소문 외에 아이돌이 실제로 직접적인 공격을 받은 경우는 공식적으로 없다.

5.2. 이하늘 미아리복스 사건

사실 해체에 대해서도 말이 꽤 많았는데 7집 타이틀곡인 '엑스터시'가 힙합계에선 신적으로 추앙받던 2pac의 죽기전 감옥에서 힘든 심경을 담은 미공개 곡을 돈주고 사서 샘플링해서 '엑스터시' 곡중 한 멤버와 대화를 주고받는 식으로 이용했다 한다. 아이돌이 힙합이나 락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도 심한 거부감을 표출하던 시절이다 보니 까였다. 장르 문제와 함께 곡 자체의 수위도 있었고 뭣보다 샘플링한 곡도 곡이었던만큼 엄청 까였다.

특히 DJ DOC이하늘이 샘플링 문제를 두고 베이비복스를 미아리복스, 섹스가수로 칭하며 미아리복스 데려와서 홍등가 열자는 드립으로 언론들도 시끌했다. 결국 베이비복스 소속사 측은 이하늘을 고소했고 결국 이하늘이 졌다. 하지만 1세대 아이돌의 황혼기에 일어난 이 일의 여파로 인하여 베이비복스는 결국 7집 활동을 일찍 접어야했고, 소속사와의 계약기간 만료 후 재계약 논의도 없이 그냥 각자 갈길을 갔다. 솔직히 저런 상황에서 누가 재계약을 하겠는가. 이하늘 개객기 대놓고 공식해체는 아니었지만, 안티부터 시작해 2014년 기준으로는 그저그렇(...)겠지만 과도한 섹시 컨셉 푸쉬와 이하늘 사건등을 겪으면서 탈이 거의 다 박살나버린 멤버들이 심은진의 탈퇴를 시작으로 뒤를 이어 계약 기간이 끝난 사람부터 나간 것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해체 후 윤은혜가 잘 나갔고 나머지 멤버들도 미약하게나마 연예 활동을 계속하니까 망정이지 베이비복스 자체만 놓고 보면 이하늘의 폭언 한마디가 다섯명 인생을 말아먹은 셈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이하늘은 미아리복스 발언은 지나쳤다고 사과했지만 ' 투팍의 노래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그를 두번 죽였다 ' 라는 발언은 사과할 의향이 없음을 밝혔다. 그러나 이하늘 본인도 DJ DOC의 Run To You 를 무단 샘플링을 하였으며, 비난을 피하기 위해 방송에서 대놓고 거짓말 까지 하였었던 전적이 있다. 자신들이 우상으로 여기던 뮤지션이 상업적으로 이용된다는 사실이 그를 존경하는 뮤지션들의 입장에선 충분히 불쾌해 할수는 있어도, 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 차이콥스키 등의 음악들도 샘플링 되는 마당에 투팍의 음악이 샘플링 되었다고 "니들 따위가 감히." 라고 외치며 성적인 비하 발언 까지 한 것 자체가 힙합 뮤지션들의 근거 없는 힙부심을 드러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문희준의 사례와 비슷한 경우. 게다가 망해서 그렇지 베이비복스 1집은 갱스터였다는데?

6. 멤버

6.1. 멤버

  • 김이지: 리더, 랩, 서브보컬(2006년 탈퇴). 베이비복스의 원년 멤버. 크고 아름다운 어떤 것으로 베이비복스가 3집부터 밀던 '섹시' 이미지의 중심. 171cm로 팀에서 가장 큰 멤버이다. 무용학과를 나와서 춤을 잘추는 멤버이기도 했다. 탈퇴후 간간히 케이블에서 MC를 하는 정도의 활동을 하다 이후 결혼해 아들,딸 낳고 잘 살고 있다. 이희진과 함께 강심장에 출연해 과거 여성그룹 디바와의 해프닝을 해명하여 베이비복스와 디바사이의 응어리를 풀기도 했다.

  • 이희진: 메인보컬(2006년 탈퇴). 베이비복스의 원년 멤버. 심은진과 함께 168cm로 팀에서 가장 작은 멤버이다. 1세대 아이돌이 3세대 아이돌 기죽이는 소리다 수끼리강자라이언트 같은 사례도 있지만 탈퇴 후 TV에서 많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동안 연극과 뮤지컬을 주로 했고, 2011년 최고의 사랑을 시작으로 조연급 역할들로 상당히 다작을 하고 있으며 2013년엔 무려 네 작품을 끝냈다. 베이비복스 시절보다 살이 쪄서 마르고 스포티하던 이미지가 부드러워졌다.

  • 심은진: 서브보컬(2004년 탈퇴). 2집부터 합류했다. f(x)의 엠버같은 보이시한 멤버 이미지의 원조다. 간미연과 함께 인기가 가장 많았던 멤버였다. 5집 성적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DR뮤직 대표는 간미연과 심은진만 남기고 멤버를 전부 바꾸고 6집을 내려고 했으나 간미연과 심은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탈퇴 초반엔 가장 활동이 활발했다. 2005년에 발표한 솔로 1집를 발표하고 'Oopsy' '사랑이 떠나는 길목에서'등으로 인기를 끌다가 2006년에는 드라마 대조영으로 연기자 데뷔를 한 뒤 드라마, 뮤지컬, 연극 등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 간미연: 리드보컬(2006년 탈퇴). 차유미를 대신해 1집 활동 도중 합류했다. S.E.S.엔 유진이, 핑클엔 성유리가, 베이비복스는 간미연이 얼굴마담이었다. 예를 들자면 여학생들이 베이비복스 노래로 장기자랑을 하게 되면 다들 간미연을 하고 싶어했다. 전설의 lose 흑역사가 있다(...).# 당시 수능 준비중이였던 고3 수험생 연예인들을 모아 퀴즈를 푸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장미란 뜻의 영어단어인 rose를 lose로(...) 썼다. 탈퇴 후 한동안 조용했으나 1세대 걸그룹 비주얼 담당 출신으로는 좋은 가창력을 갖고 있기에 가수로 꾸준히 활동 중이다. 비주얼 멤버라는 이미지때문 간미연을 떠올리면 노래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메인보컬 출신답게 노래를 꽤나 잘한다. 2011년에 출연했던 비틀즈코드에서 윤종신이 간미연을 보고 극찬을 할 정도. 간미연의 실력이 궁금한 사람들은 [http://www.youtube.com/watch?v=8sraHw72FLI 김태우와 함께 듀엣으로 선보인 이 영상을 보길 바람.

    간미연의 친한친구 진행 당시 후배 걸그룹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으로 글루코사민 꼭 챙겨먹고 춤을 지나치게 험하게 추지말라고 했다. 나중에 안 쑤시는 곳이 없게 된다고... 굉장히 마른 체형인데, 타고난 체질이라 한다.

  • 윤은혜: 막내(2005년 탈퇴). 3집부터 새로 합류했다. 탈퇴 후 가장 성공한 멤버. 한때는 성유리 짝퉁 소리에 김구라가 부엌데기라고 칭하던 그녀였는데, 해체 후 다른 멤버들이 공식석상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도 유독 혼자 놀기만 해서 한때는 베이비복스 불화설의 원흉으로 자주 지목됐다. 이에 대해 2010년 김정은의 초콜릿에 멤버들과 함께 출연해 연기자로 자리를 잡는 동안 주변에 의해 베이비복스 활동을 제약당해야했다고 해명했다. 언니들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6.2. 이전 멤버

  • 정시운: 1집 활동 후 탈퇴.

  • 차유미: 1집 활동 도중 탈퇴. 1997년 9월 말, 다리 부상을 당했음에도 소속사가 무리하게 스케쥴을 요구했고 결국 미국으로 잠적했다. 이 사실은 심은진이 라디오에서 밝혔다.

  • 정현전: 1집 활동 후 탈퇴. 1집 활동 당시 김이지와 이희진 보다 나이가 많았던 정시운, 차유미, 정현전 세 멤버가 김이지와 이희진을 자주 폭행하는 바람에 김이지와 이희진의 부모님이 소속사에 이들의 탈퇴를 요구했었다는 루머가 있었다.

  • 이가이: 1968년생이다. 베이비복스 데뷔 당시 한국 나이로 30살(!), 2015년 현재 48살! 나이를 무려 10년이나 어리게 설정했다고. 1987년 서울 올림픽 전에 세또래라는 이름의 일본 소녀대의 컨셉을 따온 그룹의 멤버였다. 이때는 본명인 이희정으로 활동했다. 나중에 이 사실이 알려져서 조용히 사라졌다. 아버지가 아파서 병원비를 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기자회견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남아있지않다.

6.3. 베이비복스 리브 멤버

6.4. 베이비복스 리브 원 멤버

  • 한애리
  • 명사랑: 독일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공식 탈퇴 사유는 학업이나, 섹시 컨셉을 부담스러워했다는 게 정설.
  • 양은지: 버거소녀로 유명했던 미라의 친동생. 축구선수 이호의 부인이다.
  • 안진경: 한 때 잘나갔던 '투야'의 전 멤버.

7. 음반

발매일제목판매량활동곡
1997.07.10Equalize Her 46,333남자에게, 머리 하는 날
1998.09.15BABY VOX II 206,221야야야, Change
1999.07.21Come Come Come Baby 218.946Get Up, Killer, Missing You
2000.05.15Why 155.864Why, 배신
2001.06.04Boyish Story 90,014Game Over, 인형
2002.04.24Special Album 240,349우연
2003.04.03DEVOTION 84,612나 어떡해, 바램
2004.04.16Ride West 32,863Xcstasy, Play Remix

8. 관련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베이비복스 - 베이비복스 팬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항목. 정보도 많으며, 언론 출처 또한 풍부하다. 다만 팬들이 주로 작성 하다보니 여러 부분에서 베이비복스에게 우호적으로 작성된 느낌이 있다.

  • Play With BABY V.O.X - 베이비복스 커뮤니티 팬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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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베이비복스'를 줄여 '베복'이라고 쓰는데, 공교롭게도 한자 중에 '배 복'자가 있다.
  • [2] 1세대 걸그룹의 대표격으로 S.E.S., 핑클, 베이비복스를 꼽지만 2세대 이후의 대부분의 걸그룹은 차세대 베이비복스를 표방했다 해도 무방하다. 대표적으로 한동안 열풍이 불었던 섹시컨셉의 경우도 S.E.S.와 핑클은 굳이 섹시노선을 고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이비복스도 섹시컨셉을 채용한 적이 있을 뿐이지, 요즘 걸그룹처럼 섹시컨셉 일직선으로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 [3] S.E.S.와 핑클로 대표되는 청순컨셉은 그 후 꽤 많은 걸그룹이 시도했지만 계속해서 실패하다가 Apink가 데뷔한 이후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 [4] 세또래가 얼마나 오래된 그룹인가 하면 1988년 데뷔로, 소방차와 데뷔년도가 같다. 한국 걸그룹 아이돌의 시초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