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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

last modified: 2015-03-13 18:01:52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생애
3. 작품세계
4. 애증의 대상, 동독
5. 작품
5.1. 픽션
5.2. 연극
5.3.
5.4. 노래(가사)
5.5. 이론서



Bertolt Brecht

1898.2.10 – 1956.8.14

1. 개요

독일의 극작가 겸 연출가이며 시인으로도 활동했었다. 독일문학계에서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이름이며 독일문학을 넘어 그야말로 세계 연극계에 한 획을 그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사람이다. 그가 남긴 무수한 작품들은 그가 떠난 지금도 여전히 연구대상이며 무대에 올려지고 있으며, 그의 극작론은 연극계를 넘어 다른 학문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이다.

2. 생애

독일 바이에른아우크스부르크에서 출생했다. 뮌헨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여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병원에서 근무하였다. 1922년 <밤의 북소리>로 클라이스트 상을 수상하였으며, 28년 연극 <서푼짜리 오페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그는 초기에는 무정부주의적 경향을 보였으나, 1920년대 후반부터는 마르크스 주의를 받아들여 좌파적 성향을 작품에 이입하기 시작했다.[1]

그의 작품으로는 <어머니>, <도살장의 성 요한나> 등이 있다. 1933년 나치스가 독일 정권을 장악하고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을 날조하자, 브레히트는 덴마크로 망명하여 정치적 의식을 드러내는 시를 쓰는 한편, 연극 <제3제국의 공포와 빈곤>,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등을 썼다.

이후, 1941년 핀란드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는 미국의 매카시즘 때문에 스위스로 떠나 <안티고네>와 <파리 의 나날>을 쓰고, 연극론에 대한 개설서 <소사고 원리>를 집필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동독의 동베를린으로 가 자신의 작품들을 연출하면서 후배 연극인을 양성하였다. 모스크바에서 스탈린 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동독에서도 여전히 체제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작품을 남겼다.

브레히트는 사회주의를 연극 작품에 접목시킨 좌파 극작가로도 유명하지만, 그의 시 작품으로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1492년> 등이 유명하다. 휴머니즘 속에서 현실의 폭력성을 비판하고 전쟁을 고발하는 내용이 많다.

3. 작품세계


'소격효과(Verfremdungseffekt)'라는 기법으로 극작계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소격효과는 '생소화 효과', '낯설게하기 효과'로도 알려져 있다. Verfremdung이라는 단어의 철학 번역어가 그 유명한 다. (간소외 현상의 그 소외) 이런 입장을 따르면 브레히트의 연극이나 시에 관객이 감정이입을 하게 되면 독자는 작가의 를 잘못 해석한 셈이다.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나서도 껄끄러운 불편함이 남아서 현실비판하기 시작해야 한다.

서사극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내려온 기존 극작기법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연극을 감상할 때의 보통의 태도(연극 무대에 대한 공감, 주인공에 대한 동화, 대리만족 등)들을 부정한다. 대신 연극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낯설게' '관찰하는' 연극을 보여준다. 때문에 관객들 입장에서는 극의 진행을 예상할 수 없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으며 감성적인 보다는 이성적이며 생각하고 판단하는 관람을 작가가 주문한다.[2]

아래는 소격효과를 반영하는 예들이다.

- 브레히트는 초기작에서부터 무대에 이런 현수막을 걸었다고 한다. "그렇게 낭만주의적인 얼빠진 눈으로 바라보지 마시오!"

- 브레히트의 희곡에는 장편의 현실비판적 노래들이 어이없게갑작스레 끼어드는 경우가 많다. 극의 줄거리와 크게 상관도 없으면서 갑자기 현실비판에 들어가기 때문에 몰입을 오히려 해버리는데, 이는 소격효과를 위해 의도적으로 장치된 것이다.

- 연출을 맡을 당시 배우들에게도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의 초연 후 대히트를 쳤을 때 배우가 억척어멈에 감정이입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하여 판권을 회수하고 동베를린에서 초연 시 브레히트의 아내이자 여배우인 헬레네 바이겔(Helene Weigel)이 억척어멈역으로 재공연하였다. 브레히트에 따르면 연극을 볼 때 그 인물에 대해 관객이 느끼는 답답한 감정에 이입해야 한다. 보는 내내 답답하고 화가 나는 등장인물인 억척어멈 역을 맡은 배우는 그 억척어멈이 실제로 느꼈을 감정인 굳센 의지와 억척스러움, 어떻게든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감정을 표현하면 안 된다. 또 이렇게 연기해서 관객에게 억척어멈이라는 인물을 동정하게 하면 안 된다. 억척어멈이 하는 행동을 보면서 화를 내고 그러면서 전쟁을 벌이는 현실을 비판하게 되는 관객에 감정이입해서 해하고 를 내면서 연기해야 한다. 그래서 억척어멈을 연기하는 배우는 "이 놈의 세상 전쟁나든 말든 어떻게든 나하고 가족들만 잘 살면되지"라는 내용의 대사를 하면서도, "이 미련한 인간아, 전쟁나면 네 가족도 죽고 너도 죽는거야."라고 억척어멈을 비판하고 답답해 하는 입장에서 연기해야 한다. 아이구 브레히트 이놈아 배우들 정신분열 걸리겠다


때문에 브레히트가 20년대 좌파적 성향을 띄고, 나아가 30년대 '망명문학(Exileliteratur)'의 기수로써 다분히 사회비판적인 작품을 내놓을 수 있던 것은 그의 연극이론에서부터 이미 보여지고 있었다. 다음 그의 말은 그가 연극을 통해 무엇을 추구했으며, 그가 만든 결과물들이 의미하는 것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희곡작가이다. 나는 내가 본 것을 알리고자 한다. 인간시장에서 나는 보았다. 인신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나는, 희곡작가인 나는 그런 것을 알리고자 한다."

생소화 효과는 연극계 뿐만 아니라 관련 인문학에서도 종종 인용이 된다. 심지어는 연극학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역사교육이론에서도 역사 해석과 역사적 사고 증진 등의 방법으로 논의될 정도이니 이 정도면 한 획을 그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독일어권 작가는 '막스 프리슈(Max Frisch)'나 이른바 '희비극'으로 알려진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uerrenmatt)' 등을 꼽을 수 있다.[3]

4. 애증의 대상, 동독

앞서 언급하였듯이 브레히트는 망명생활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두 개의 독일 중 사회주의 진영에 있던 동독을 선택했다. 브레히트 외에도 안나 제거스[4] 등 다수의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독일 땅에 세워진 새로운 이념국가로써 동독을 선택했고, 브레히트 역시 그들처럼 본인이 영향을 받았던 좌파적이면서 사회비판적인 성향을 때문에 동독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5]

하지만, 사실 브레히트가 결정적으로 동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고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연극 세계를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극장이 바로 동베를린에만 있었다는 것이었다. 동독 당국은 이 걸출한 연극 스타에게 실제로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해주었다. 독일의 최승희[6] 당시 베를린의 최고 극장 중 하나인 '베를린 앙상블'을 주어졌으며, 그는 걱정없이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았지만...그는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빗대었다.

"예술작품은 사무실의 예술견해를 예술작품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우리가 자로 재서 만들 수 있는 것은 장화 뿐이다."

실제로 브레히트는 스탈린 체제에 대해서도 공공연연히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다행히 정치적인 분쟁에 휩쓸리지 않고 조용히 보내긴 했지만....

5. 작품

그가 지은 작품에는 큰 특징이 있는데, 작품의 무대가 대부분 독일 밖이라는 것이다.

5.1. 픽션

  • Geschichten vom Herrn Keuner(코이너씨의 이야기)

5.2. 연극


국내에 대본이 번역되어 있거나 잘 알려진 작품은 굵은 글씨로 표시했다.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은 임한순 교수의 <브레히트 희곡선집 1, 2권> 이 좋다. 작품 해설도 붙어 있고 과거 판본에 비해 번역도 깔끔하다. 학술서로 분류돼서인지 가격은 좀 쎄다...

많은 작품이 유명하지만, 당대에 가장 인기있었고 현재에도 가장 인기있는 작품은 '서 푼짜리 오페라',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갈릴레이의 생애', '사천의 선인'이다.

  • Baal(바알) 1918(작성), 1923(연출)
  • Trommeln in der Nacht(한밤의 북소리) 1918–20, 1922
  • Der Bettler oder Der tote Hund 1919/?
  • Die Kleinbürgerhochzeit 1919, 1926
  • Er treibt einen Teufel aus 1919/?
  • Lux in Tenebris 1919/?
  • Der Fischzug 1919?/?
  • Mysterien eines Friseursalons(연극) 1923
  • Im Dickicht der Städte 1921–24, 1923
  • Leben Eduards des Zweiten von England(잉글랜드의 에드워드 2세의 생애) 1924/1924
  • Der Untergang des Egoisten Johnann Fatzer 1926–30/1974
  • Mann ist Mann(인간은 인간이다) 1924–26/1926
  • Das Elefantenkalb 1924–26/1926
  • Mahagonny-Songspiel 1927/1927
  • Die Dreigroschenoper(서푼짜리 오페라) 1928/1928
  • Der Ozeanflug 1928–29/1929
  • Badener Lehrstück vom Einverständnis 1929/1929
  • Happy End 1929/1929
  • Aufstieg und Fall der Stadt Mahagonny(마하고니 시의 흥망성쇠) 1927–29/1930
  • Der Jasager; Der Neinsager(예, 아니오)[7] 1929–30/1930–?
  • Die Maßnahme 1930/1930
  • Die heilige Johanna der Schlachthöfe(도살장의 성 요한나) 1929–31/1959
  • Die Ausnahme und die Regel 1930/1938
  • Die Mutter(어머니) 1930–31/1932
  • Kuhle Wampe(쿨레 밤페)[8] 1931/1932
  • Die sieben Todsünden der Kleinbürger 1933/1933
  • Dreigroschenroman(푼짜리 오페라), 1934
  • Die Rundköpfe und die Spitzköpfe(둥근 머리와 뾰족 머리) 1931–34/1936
  • Die Horatier und die Kuriatier 1933–34/1958
  • Furcht und Elend des Dritten Reiches(제 3 제국의 공포와 참상) 1935–38/1938
  • Die Gewehre der Frau Carrar(카라르 부인의 소총)[9] 1937/1937
  • Leben des Galilei(갈릴레이의 생애) 1937–39/1943
  • Was kostet das Eisen? 1939/1939
  • Dansen 1939/?
  • 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억척어멈과 그 자식들)[10] 1938–39/1941
  • Das Verhör des Lukullus(루쿨루스의 재판) 1938–39/1940
  • Die Judith von Shimoda 1940
  • Herr Puntila und sein Knecht Matti(푼틸라씨와 그의 하인 마티) 1940/1948
  • Der gute Mensch von Sezuan(사천의 선인)[11] 1939–42/1943
  • Der aufhaltsame Aufstieg des Arturo Ui(아르투로 우이의 저지할 수 있는 상승) 1941/1958
  • Hangmen Also Die! 1942/1943
  • Die Gesichte der Simone Machard 1942–43/1957
  • The Duchess of Malfi 1943/1943
  • Schweyk im Zweiten Weltkrieg(제 2차 세계대전의 츠바이크) 1941–43/1957
  • Der kaukasische Kreidekreis(코카서스의 백묵원) 1943–45/1948
  • Die Antigone des Sophokles 1947/1948
  • Die Tage der Commune 1948–49/1956
  • Der Hofmeister 1950/1950
  • Die Verurteilung des Lukullus 1938–39/1951
  • Herrnburger Bericht 1951/1951
  • Coriolan 1951–53/1962
  • Der Prozess der Jeanne D'Arc zu Rouen, 1431 1952/1952
  • Turandot oder Der Kongreß der Weißwäscher 1953–54/1969
  • Don Juan 1952/1954
  • Pauken und Trompeten 1955/1955

5.3.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김남주 시인 및 독문학자들에 의해 활기차게 번역되었지만, 현재는 상당수 절판 상태. 김남주 시인의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라는 저항시선집[12]은 작품배경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고 대표작이 수록되어 있어 추천할 만 하다. 다행히 가격도 싸다

희곡이 서사극인 것처럼 시도 서사시이기 때문에 서정적인 것이 거의 없다. 당장 시집 제목으로 했던 시 이름이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5.4. 노래(가사)

초기에는 쿠르트 바일(Kurt Weil)과 합작하여 곡을 만들었으나, 바일과 결별한 이후에는 한스 아이슬러와 합작하였다. 그가 만든 대부분의 노래는 연극의 삽입곡이나 민중가요, 노동 운동가로 쓰였다.

5.5. 이론서

  • The Modern Theatre is the Epic Theatre (1930)
  • Der Dreigroschenprozess (1931; 1932)
  • The Book of Changes
  • The Street Scene (1938; 1950)
  • The Popular and the Realistic (1938; 1958)
  • Short Description of a New Technique of Acting which Produces an Alienation Effect (1940; 1951)
  • "Kleines Organon für das Theater" (1948; 1949)
  • Dialogue aus dem Messingkauf 1963년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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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때문에 그의 작품은 실질적으로는 그의 동료들과 공동으로 집필한 작품이 굉장히 많다. 그 예로 <서푼짜리 오페라>의 각본은 거의 대부분 그의 여비서였던 엘리자베스 하우프트만이 영국인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를 번역한 것을 메인 텍스트로 삼은 것이어서 후에 하우프트만이 공동 저자로 인정되었다.
  • [2] 예술은 자본주의가 현실에서 주체를 소외시키는 것에 대항해야 한다. 즉 현실을 위한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에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현실을 이성적으로 직시하게 만들어야 한다. 연극은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드러냄으로써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관객이 현실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너를 속이는 현실에 감정이입하지 말아야 한다 렇게 연극을 통해 관객이 현실에서 소외되어 있으며 자신이 현실에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 연극이 관객을 몰입시키지 않고 소외시키도록 한다. 관객은 현실에 소외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연극을 통해 감정이입에 실패하고 소외당하면서 깨닫게 된다.
  • [3] 브레히트 바로 다음 세대 독일어권 연극계를 잡았던 작가들이다. 참고로 이 두 사람은 모두 스위스인이다.
  • [4] 독일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소설가로 '일곱번째 십자가'로 알려져있다.
  • [5] 실제로 러시아 혁명 시절부터 냉전시기까지 사회주의라는 이념은 매우 이상적이고 희망찬 이념으로 알려졌었고, 더욱이 '약자의 해방'이라는 이미지와 겹쳤다. 때문에 상당수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은 사회주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고 동독 역시 그러한 새로운 이념 국가로써 진정한 이상적인 독일로써 이념적 우월성을 얻어 서독에 지지않으려 했었다.
  • [6] 이런 말이 괜히 가능한 것이 아닌게 북한 역시 만담의 귀재 신불출, 식민지 조선을 넘어 세계에도 알려진 최승희, 그리고 내가 고자라니 심영 등 수많은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에게 연구소 설립 등 전폭적인 예술활동 지원을 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념선전의 도구였으며 56년을 기점으로 이런 예술인들은 모조리 숙청을 당하게 된다.
  • [7] 국내 번역명은 '동의자와 거부자'. 원어 그대로 번역하면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사람'. 브레히트의 교육극 이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내용도 상징적이고 무대장치도 연극연습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간단히 구성되어 있다. 계단이나 절벽을 표현하는 데서 그냥 상자 몇 개만 배치하라고 되어 있다.
  • [8] 영화로도 제작됐으나, 과격한 선동을 시사하는 내용 때문에 유럽 각지에서 상영 금지 조치를 당했다.
  • [9] 국내 번역명 <까라 부인의 소총>
  • [10] 30년 전쟁 당시 전쟁터를 오가는 한 장사꾼 가족의 인생을 다룬 연극으로, 2차 세계대전의 위험성을 예고한 작품이다.
  • [11] 중국 사천성을 배경으로 한 연극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 [12] 브레히트만이 아니라 저항시인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인리히 하이네, 라디미르 미야코프스키, 이 아라공의 시도 포함되어 있다.
  • [13] 1953년 동베를린에서 발생한 민주화 봉기를 군대가 무력으로 진압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시다. 당시 브레히트는 동독 국가원수 발터 울브리히트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 [14] 브레히트의 보기 드문 서정시다. 영화 인의 삶에도 이 시가 등장한다. 노래로도 존재한다.
  • [15]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 [16] 브레히트가 처음 쓴 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사람들을 무차별 징집한 루덴도르프 장군을 규탄하기 위해 쓴 시다. 당시 브레히트는 군대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했다.
  • [17] 이 또한 시집제목이기도 하다.
  • [18] 연극 <서푼짜리 오페라>에 등장한 곡이다.
  • [19]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무리한 영토 확장을 비판하는 노래다.
  • [20] 연극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의 삽입곡이다. 곡을 부른 가수 에른스트 부슈(Ernst Busch)는 이 연극에서 취사병 역을 맡았다.
  • [21] 영화 <쿨레 밤페>의 삽입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