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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읍

last modified: 2015-04-12 22:33:26 Contributors

보성군
법정읍 성읍 벌교읍
법정면 동면 력면 백면 어면 내면
덕면 성면 량면 천면 치면


筏橋邑 / Beolgyo-eup

벌교읍
筏橋邑 / Beolgyo-eup
광역자치단체 전라남도
기초자치단체 보성군
행정표준코드 4678025300
인구 14,014명[1]
면적 102.36㎢
인구밀도 138.22명/㎢
하위 법정리 21리
읍사무소 벌교리
벌교읍 홈페이지


벌교군청읍사무소. 채동선 음악당과 일체로 되어있다. 주소는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채동선로 297(舊 벌교리 602-2)


2004년 벌교 전경 벌교상고 운동장이 침수된 걸로 보이면 기분 탓

대한민국 문학기행 1번지[2]


여수에선 자랑하지 말고, 순천에선 인물 자랑하지 말고, 벌교에선 주먹 자랑하지 마라.
전남동부의 3개의 큰 고을의 특징을 나타낸 유명한 말. 여기에 광양도 없는데 벌교이 있다.[3]

Contents

1. 개요
2. 행정구역 변천사와 생활권 문제
3. 역사
4. 지리
5. 인지도
6. 정치
7. 경제/산업
7.1. 특산물
7.2. 2차 산업
7.3. 3차 산업
8. 관광
9. 대중매체 속의 벌교
10. 교통
10.1. 시가지 도로 상황
10.2. 읍외 도로
10.3. 철도
10.4. 버스
10.5. 해운
11. 교육
11.1. 관내 학교
11.2. 지역간 학생 이동
12. 출신 인물
13. 여담
14. 관할 리
14.1. 벌교리
14.2. 전동리
14.3. 지동리
14.4. 고읍리
14.5. 낙성리
14.6. 추동리
14.7. 징광리
14.8. 칠동리
14.9. 척령리
14.10. 마동리
14.11. 장좌리
14.12. 영등리
14.13. 장암리
14.14. 대포리
14.15. 연산리
14.16. 봉림리
14.17. 회정리
14.18. 장양리
14.19. 호동리
14.20. 장도리
14.21. 옥전리

1. 개요

전라남도 보성군 동부에 위치한 . 면적은 102.36㎢으로, 딱히 산골도 아니고 인구 희박 지역도 아닌데도 주변 읍면 대비해서 상당히 크고 아름답다. 실제로 호남 지방의 읍 중에서 면적이 2번째로 넓다.[4] 주민등록 인구는 2015년 3월 기준 14,014명으로 2014년보다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보성군 최다이다.

읽다 보면 알겠지만, 옆동네 순천시 못지 않게 기묘한 특성을 지닌 곳이다. 전남동부 종특 그리하여 호남 지방의 개별 읍 항목 중 최초로 개설되었다. 그리고 전국의 읍 항목 중 분량이 가장 많다

2. 행정구역 변천사와 생활권 문제

이 문단를 읽기 전에, 일제식민 통치의 효율성을 위해 무분별한 행정구역 변경을 강행하였고 전국에 수많은 행정구역 관련 문제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잘 알아두라. 심지어 이 벌교가 보성군에 편입된 일은 1914년부군면 통폐합 대병크보다 더 일찍 저지른 만행이다.

원래 현재의 벌교읍 일대는 낙안읍성으로 잘 알려진 안군이라는 독립된 고을에 속해 있었다. 사실 원래의 낙안군 관아는 지금의 벌교읍 고읍리 일대에 있었으나, 후에 낙안읍성으로 옮겨갔다. 현재의 벌교읍 지역은 낙안군 분해 당시 최초로 보성군에 편입된 고상면[5], 고하면[6], 남상면[7], 남하면[8] 4개면을 포함하여 여러 개의 면으로 쪼개져 있었다.

1908년, 당시 껍데기만 대한제국이지 실제로는 일제가 모든 것을 장악한 상황에서 통감부의 주도로 낙안군이 분해되면서 고상면과 고하면이 '고상면'으로, 남상면과 남하면이 '남면'으로 통합된 채 보성군에 편입되었다. 낙안군이 통째로 편입된 게 아니라 이들 면만 보성으로 넘어왔다. 낙안군의 다른 지역은 모조리 당시 순천군(현 순천시)에 편입된다.

1914년에는 남면의 일부가 고흥군 동강면에 편입되었으며정작 부군면 통폐합 때는 별 일 없었다?, 1915년에는 고상면과 남면을 통합하여 비로소 '벌교면'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 1929년에 벌교천 동쪽의 순천군 동초면의 일부를 가져왔고[9], 1937년에 벌교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에 고흥군 동강면 장도리를 편입하고 지금에 이른다. 고흥 지못미

하지만 벌교 지역은 원래부터 있었던 오리지날 보성[10] 지역과는 생활권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당장에 지도만 봐도 알 수 있지 아니한가? 보성읍과 벌교읍은 각각 동서로 길쭉하게 생긴 보성군의 서단과 동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성읍내에서 벌교읍내까지의 거리는 28km나 된다.[11] 이미 편입된지 100년이나 지났지만, 생활권은 생각하는 것처럼 하루아침에 쉽게 변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지역감정을 포함한 관련 문제들을 유발해왔다. 일단, 지역 범위의 인식부터 엄청난 차이가 난다. 지역 주민들은 보성과 벌교를 별개의 고을로 취급한다. 예시로 다른 곳에서 벌교를 언급할 때 '전라도 벌교', '전남 벌교' 그러지 절대 '보성군 벌교'라고 안 한다. '보성'은 주소 쓸 때나 들어가는 것일 뿐. 보성군의 다른 읍면 출신인 사람이 타지역에 가면 '나 보성에서 왔소' 하지만, 벌교 출신인 사람은 '나 벌교에서 왔소' 그러지 절대 '나 보성에서 왔소' 그러고 말 안 한다. 정작 '보성 벌교'라는 말은 이 지역의 실상을 잘 모르는 외지인들이나 주로 쓰는 말이다. 주민정서 상으로 벌교는 그냥 벌교다. 보성과 다르다. 오히려 벌교가 보성군에 속한 걸 불편한 진실 취급한다. 그리고 이같은 행태로 인해, 행정단위를 붙이지 않은 '보성'이라는 지역명의 범위가 상당히 모호해졌다.

광역생활권에도 약간 문제가 생겼다. 오리지날 보성 중에서 득량, 조성을 제외한 나머지 면들은 순천 뿐만 아니라 광주로 가기에도 편해 사람들이 광주로도 많이 가고 광주의 영향을 많이 받으나, 벌교가 완벽한 순천 생활권이라 거기에 이끌려서 보성군 전체가 행정을 순천시내 기관에서 관할하게 되었다. 법원도 순천지원 관할[12], 세무서도 순천세무서 관할[13], 고용지원도 순천고용센터 관할.

인근 지역과의 관계는 물론이요, 벌교읍이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소생활권에도 문제가 생겼다. 대표적으로 원래 같은 생활권이었던 순천시 낙안면과의 심리적인 분열을 예로 들 수 있다. 밑에서 나올 행정구역 개편과 관련해서 나온 의견이, 사람들이 낙안읍성을 구경할 때는 선암사, 순천만 등 순천 관내 관광지와만 묶어서 구경하고, 벌교를 구경할 때는 녹차밭 등 보성 관내 관광지와만 묶어서 구경하기 때문에, 정작 벌교와 낙안을 함께 구경하는 관광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순천 보성 양쪽 다 들르면 예외 그래서 벌교~낙안 간에 증기기관차 선로를 개통하자(...)는 말도 나왔지만 너무 무리수인지라 묻혔다. 또한, 순천시 소속인 주제에 순천 가는 버스보다 벌교 가는 버스가 더 자주 오는 낙안면·외서면·송광면이 순천 뿐만 아니라 벌교와도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고, 고흥에서도 고흥 가는 버스보다 벌교 가는 버스가 더 자주 오는[14] 동강면·대서면도 벌교 생활권이다. 특히나 벌교읍의 바로 남쪽에 붙어있는 동강면은 벌교의 멀티라고 해도 될 정도로 벌교읍내와 가까우며[15], 이 두 지역 사이에 거리감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16] 바꿔 말하면, 같은 생활권이 3개 지자체로 분열된 매우 안습한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군내 행정에도 문제가 생겼다. 보성군의 최대 인구밀집지역이 벌교읍인데, 정작 거의 모든 행정기관이 군청 소재지인 보성읍에 몰려있다.[17] 군청을 비롯해 경찰서, 교육청, 등기소, 보건소, 선관위... 벌교에서 저런 데 볼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닥치고 대장정 하는 거다. 군청에서도 벌교 편입 이후 100년이 지나도록, 심지어 벌교의 인구가 많았을 시절에도 출장 민원실 하나도 제대로 설치해 주지 않았다. 그나마 보성소방서 본서와 순천세무서 벌교지서가 벌교에 있다곤 하지만, 이건 벌교가 큰 것 뿐만 아니라 밑동네 고흥군도 같이 관할하기 위함이다.

벌교가 행정업무 면에서 불편을 겪는 것과 반대로, 보성읍은 상권이 쇠퇴하였다. 원래대로라면 군청 소재지인 보성읍에 상권이 몰리는 게 맞겠지만, 벌교의 존재로 인해 보성읍으로 가야 할 상권이 전부 벌교로 가 버렸다(...). 한 군에 점포를 두 개 내기엔 부적합하고 한 개만 낼 수 있는데 최대한 장사가 잘 되려면 규모가 더 큰 곳에 점포를 내야 할 것 아닌가. 실제로 벌교에 있는 주제에 '○○○ 보성대리점' 같은 간판을 단 곳이 많이 발견된다. 그리고 보성읍엔 진짜 놀거리가 없다. 정작 벌교 사람들은 놀려면 순천으로 나가지 벌교에서 안 논다

또한 두 개의 큰 읍이 한 군에 몰려있기 때문에, 군별로 편의시설을 하나씩 짓는다면 다른 군에서는 군청소재지에 지으면 그만이나, 보성군에서는 보성과 벌교가 서로 나눠먹어야 하기 때문에 양쪽이 서로 싸울 수밖에 없다. 만약 예산이 한 쪽으로 쏠린다? 진짜 싸움 난다. 밑에서 이야기할 순천 편입 논의가 이 현상의 절정.

주민들의 성향도 약간 차이가 난다. 예로부터 산골은 척박하여 주민들이 폐쇄적인 성향을 많이 띄고, 평야는 풍요로워 주민들이 여유로운 성향을 많이 띈다고들 한다. 그리고 실제로 보성은 산골인데다가 인구도 많지 않아 사람들이 좀 폐쇄적이고 후진적인 성향이 강한데, 벌교는 원래 소속 고을도 분지상에 있는 낙안군인데다가, 일제강점기 들어 상업도시로 급속하게 성장한 만큼 다른 고을과의 교류가 필연적이었기 때문에 보성보다는 살짝 개방적이다. 이외에도 정말 성향이 보성과 반대로 가는 동네가 바로 벌교다. 상성이 더럽게 안 맞는다.

백번 양보해서, 벌교는 반드시 보성 혹은 순천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자. 그러면 대체 왜 순천시 벌교읍이 아닌 보성군 벌교읍이 되어야 했는가? 위에서 보성과 벌교가 28km라고 했는데, 벌교에서 순천까지는 23km 내외다. 순천이 보성보다 가깝다(...). 게다가 순천이 성장하면서 순천-벌교 간 교통상황이 더욱 개선되었다. 거리도 가깝지, 도로도 개량되서 쭉쭉 뻗어있지, 이러면 어디로 가겠는가?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누구라도 벌교가 순천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심지어 벌교가 순천에 있는 줄 아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 순천 버스 88이 벌교읍내에서 순천시내 주요 번화가로 하루에 60회씩 퍼나른다는 운행정보만으로도 확인사살. 이것도 많이 감축해서 60회다. 옛날엔 순천 버스 77처럼 3대 동시배차도 이루어졌다! 벌교가 왜 보성에 편입되었는지는 '반일 세력이 강한 낙안군을 둘로 나눠 결속을 막고, 성향이 정반대이고 생활권이 다른 동네와 합쳐놓아 서로 싸우게 해서 와해시킨다' 등으로 추측해 볼 수는 있겠지만, 정확한 이유는 그걸 주도한 일제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여간 썩을 일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벌교는 순천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을 했지만, 단순 생각에 그칠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를 보여주는 듯 2005년, 벌교읍 주민들이 순천시 편입 서명운동을 벌였다. 벌교읍이 인구빨로 보성군에서 지방세를 가장 많이 내는 동네인데도, 예산 없다고 당시 벌교읍 쪽 현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벌교에 다른 축제 예산이 투입된 것을 이미 꼬막축제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착각해 꼬막축제 예산을 부결시켜버리는 등 보성군 측의 대병크가 기폭제가 되었다. 이때 벌교읍민의 70%가 이에 동의했다고. 편입 신청서가 각 지자체는 물론이요, 행정자치부청와대에도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2005년이면 아직도 보성군민들에게 고평가를 받고 있는 하승완 군수가 재직했을 때이다! 하승완 군수 시절에도 이랬는데 본격 길군수 정종해 시절때는...[18] 이때부터 벌교 주민들의 불만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벌교읍사무소 홈페이지 게시판에 본문검색으로 '순천'만 쳐봐도 벌교의 행정구역 개편과 관련된 글이 2005년 이후와 길군수 시절 때 많이 작성된 것으로 나온다. 게다가 '순천 편입해봤자 보성 시절처럼 다시 소외받을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순천 편입이 아닌 분리독립을 주창하는 의견도 상당히 나왔다. 보성군청은 회심의 미소를 지을 뿐 여순광 3시 통합에 벌교를 끼워넣자는 의견도 있었다.관련 기사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 행정구역 개편/전남권의 여순광 통합짤방에 통합지역으로 벌교가 끼어있던 것이 특정 유저의 독자연구 내용은 아니였던 것이고 지역에서 실제로 나온 주장 중에 하나였다는 것이다

전라남도에서 동부권을 푸대접하는 모습이 보성군에서 벌교읍을 푸대접하는 모습과 닮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여기 프랙탈 막상 보성군은 그 푸대접 받는다던 동부권에 속하는데 말이지... 가해자가 된 피해자

벌교읍이 보성읍보다 더 큰 점을 이용한 '벌교군 보성읍'러시아식 유머?[19]이라는 말은 옛날부터 보성군민 공인 개그였고, 지금도 잊을만 하면 행정구역 개편 이야기가 나오고는 있지만, 벌교를 포함해 이 주변 동네 전체가 낙후된 상태이기도 하고 보성군 전체에서 핵심적인 지역이기도 해서 이제와서 조정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이게 상당히 억울한 게, 60년대까지만 해도 벌교읍의 시 승격이 거의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거다! 당시에는 시 승격을 하면 소속 군에서 분리독립을 했기 때문에 벌교가 시로 승격하면 행정구역 문제 따위 한큐에 해결될 판이었다는 것. 일설에서는 근처에 동강 등 벌교와 가까운 곳이 또 있는데 벌교가 무리하게 낙안면에만 통합을 제시하다가 실패했다고도 한다. 이걸 재고하는 차원에서 나오는 설이 (가칭)벌교군 분리독립이다. 낙안군 복군과 거의 같은 선상에 있는 주장인데, 순천 편입 운동이 한창일 때 한편에서 '순천 편입해봤자 보성 시절처럼 다시 소외받을 것이다', '시승격 운동을 벌였던 벌교의 기상을 알려야 한다'라는 근거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벌교 땅에 뭔가 크고 아름다운 게 들어올 리도 전무하고 결정적으로 인구가 그리 많지가 않은지라 분리독립은 아무래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에 1읍 1면에 면적이 100㎢도 안 되는 증평군도 인구 3만은 거뜬히 채워서 독립했는데, 벌교같은 경우는 벌교+낙안외서송광+동강대서 1읍 5면으로도 약 2만 6천명이다(...). 여기에 조성면이 붙어야 간신히 3만을 채울 수 있다. 게다가 이같은 경우는 통합군이 될 지역이 3개 지자체에 산재해 있어 여론 수렴부터가 어렵다. 그리고 만약 벌교가 분리독립에 성공한다면? 결과적으로 보성/벌교 모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보성군은 인구의 3할을 잃게 되고, 새로 생긴 벌교군도 군세가 너무 과소하여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되기 때문.

이런 문제점을 감안하면 벌교읍의 행정구역 변동을 가정했을 때 순천시로 편입하는 것이 그나마 변동 이후 존폐여부에 고생하지 않는 방법일지 모른다. 순천시 벌교읍이 되고 순천+벌교의 인구가 성장하여 30만명을 넘게 되면 일반구 설치의 다른 조건인 인구 30만명 이상이면서 면적 1,000㎢라는 조건을 달성할 경우 승인을 통해 순천시 벌교구를 설치할 수 있다. 순천시와 벌교읍의 면적이 907.44㎢+102.36㎢으로 통합시 순천시의 면적이 1009.8㎢(!)이 된다. 통합 이후 인구가 30만명을 초과할 경우 법률을 통해 순천시가 인구 50만명 이상의 도시와 같은 지위를 인정받는 특례시로 지정되고 일반구 설치를 신청할 권한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럴 경우 일반구이기에 벌교가 순천시청의 임명 하로 들어가는 점이라는 것이다. 해당 내용은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약칭 : 지방분권법) 제3절 대도시에 대한 특례에서 제40조(대도시에 대한 사무특례) 1항에 적혀있는 조문을 근거로 하여 작성하였다. 해당 법률 약칭 지방분권법 그러나 인구 30만명 이상이면서 면적 1,000㎢인 시를 인구 50만명 이상 도시 취급해준다고 해서, 인구 30만명 이상이면서 면적 1,000㎢인 시는 무조건 일반구 설치를 신청할 권한이 있다고 보기엔 좀 무리가 있다. 또한 순천에서 구를 나누려면 순천 시가지를 반분하는 쪽으로 나누지, 벌교를 중심으로 읍면으로만 된 구를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개편 논의가 완전히 사그라들기는 어려운 것이, "차라리 순천시로 갈래!" 하고 실제로 편입운동이 벌어진 것도 그렇고, 이전부터 크게 쌓여있던 벌교 차별대우 논란을 달래며 보성군에서 벌교 발전에 나서지 않는 이상 불씨는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벌교가 보성군에 편입된지 2015년 현재 107년이나 지났다. 개편을 촉구하는 불만의 목소리도 많았지만, 딱 한 가지 안 부정적인 점을 꼽자면, 이웃 고을과의 교류가 돋보이지 않는 보성 지역이 적지만 그나마 가장 빈번하게 교류를 하는 곳이 벌교였다는 점. 보성은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기득권층의 텃세로 꽁꽁 무장하고 있고 또 지역적인 이유도 있어서 이웃한 고을과 교류를 잘 안 했다. 보성의 이웃동네로는 장흥군, 화순군, 고흥군이 있는데, 장흥은 보성에서 봤을 때 벌교보다도 거리가 가깝고[20], 인구총조사 연도별 전남의 읍면 인구순위를 정리해보면 1960~1985년도 총조사까지 항상 TOP 5에 랭크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고을이었지만 장흥에는 철도가 없어서 교통이 비교적 불편했다.[21] 화순은 현재 광주광역시베드타운이 되어 매우 크지만 그 장흥이 TOP 5에 랭크될 시절에는 오히려 화순이 장흥보다 더 작았다. 덩달아 화순역도 화순읍내에서 멀다. 고흥군은 어떠냐고? 벌교에서 고흥읍까지만도 30km가 넘는다. 하다못해 보성에서 간다면... 설명이 必要韓紙? 그래서 보성의 타 시군과의 교류관계는 광주 같은 큰 도시 위주로 돌아갔고 정작 이웃한 고을과는 교류가 적었는데, 마침 보성군 안에 벌교가 있었다. 벌교는 그 장흥이 TOP 5에 랭크될 시절에 같이 TOP 5를 찍었으며 장흥보다 인구가 많았고(이 이후로 벌교의 규모와 관련한 내용은 밑의 '역사' 문단에서 자세히 다룬다.), 일단 같은 보성군 안에 있는 만큼, 군계를 넘어야 하는 장흥이나 화순보다 심리적인 거리감이 덜 했을 것이다. 그 시절 가장 선호되던 교통인 철도도 연결되어 있고. 같은 군에 있다는 게 의외로 심리적인 거리감을 상당히 좁히는 효과가 있어서, 이 '보성군 벌교읍'을 알고 있는 사람 대부분은 보성과 벌교가 상당히 가까운 것으로 생각한다. 실거리는 보성에서 장흥을 가는 것보다도 먼 데도! '보성군이니까 보성에서 가깝겠지'라는 인식을 하게 하기 때문. 광주역이나 유스퀘어 등지에 꼭 한 명씩은 있는 장거리 택시 기사들도, 보성을 외치면 꼭 벌교를 같이 외친다.(예 : 나주 화순 보성 벌교 가요~) 앞의 택시 기사처럼 전남 지리를 잘 아는 사람들도 저렇게 인식한단 거다. 게다가, 벌교에 점포를 세워 놓고서 '보성군에서 가장 큰 곳에 있으니 보성군 전체를 담당한다'는 의미로 'XXX 보성지점', 'XXX 보성대리점' 등의 이름을 붙여놓은 것도 자주 볼 수 있다. 벌교에 있으면서 보성의 탈을 쓰고 있어서 벌교사람도 존심 상하고, 보성의 이름을 붙여놓고서 정작 실제론 벌교에 있어서 보성사람도 존심 상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바로 일제다. 일제를 죽입시다, 일제는 벌교읍과 전남동부 전체의 원쑤!

덤으로, 보성군이 한국지리 시험지에 자주 언급되는 지역 중 하나인데, 정작 보성에서 가장 큰 곳인 벌교읍과 관련된 설명이 단 한 번도 안 나왔다. 무조건 녹차드립.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읍 단위이지만 인지도가 넘쳐나는 게 분명한 동네가 확실하지만서도, 시군 이름으로 쓰이는 다른 지명들과 비교하면 언급도 적고, 명칭의 포괄성도 적어 어째 존재감이 없다. 예를 들자면, '보성'이라는 지명은 보성읍 말고도, 보성읍 주변에 있는 다른 면들까지 다 싸잡아서 부르는 명칭으로도 쓰이지만, '벌교'라는 지명은 오로지 벌교읍 한정으로만 쓰인다는 거다. 동강이나 낙안 등 벌교와 가까운 면들도 벌교라고 싸잡아 부르지 않는다. 실제로 옆동네 순천 사람들도 벌교행 버스로 벌교 간다고 하면 멀어봤자 벌교읍내 중심지 쪽을 이야기 하지, 벌교읍 소속 다른 리들이나 근처 면들을 생각하지는 못한다. 이름은 알려져 있으나 사람들이 떠올리는 범위가 매우 좁은 편이다.

그리고 벌교가 낳은 대표적인 인물인 홍암 나철 선생께서 대종교를 만드신 이유가 자기 고향을 멋대로 뒤흔들고 짓밟은 일제에 대항하고 복수하기 위해서카더라

3. 역사

참고자료1 : 국가통계포털 인구총조사
참고자료2 : 백괴사전 '벌교읍' 문서 위의 인구총조사 자료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벌교'(筏橋)라는 이름은 지명이지만 국어사전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한자로 미루어 보듯이 '뗏목을 엮어 만든 다리'라는 뜻이다. 이 지역의 강가에 어느 마을이 있었는데, 강에 다리가 없어 나무를 엮어 다리를 만들어 다녔다. 그 마을의 이름은 '뗏목 다리'라는 뜻으로 벌교가 되었고, 이 마을이 중심지가 되면서 읍 이름도 벌교읍이 되었다. 한편 이 뗏목다리는 당연히 큰비가 내리면 떠내려가기 일쑤였고, 이에 그 자리에 축조되는 돌다리가 바로 횡갯다리, 즉 벌교홍교다.

벌교는 일제가 한반도에 도래하기 전까지만 해도 낙안군의 끝자락 벌교천 하구에 위치한 그저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하지만 일제는 귀신같이 벌교의 지리적 중요성을 깨닫고 나서, 전남의 물자를 수탈하는 데 쓸 용도로 벌교에 항구를 개발하게 된다. 전남 내륙과 여수항을 중계하는 보조항의 역할을 하였으며, 전남 내륙의 물자를 여수항까지 가져가기 곤란할 때 일단 벌교에서부터 배에 태워서 여수항으로 가지고 가는 식의 운송을 하였다고 한다.

원래 보성보다도 작았던 최고시골 벌교에 일제가 개항한답시고 집도 짓고 가게도 지어 놓으니, 완전히 무에서 유가 창출된 상황이었고, 그대로 전남에서 손꼽히는 도시가 되었다. 특히나 육로와 수로가 모두 발달한 교통의 요충지로, 현대의 순천시와 비슷한 상업 도시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 지금의 전남동부 3시를 '여순광'이라고 한다면, 옛날의 전남동부 3대 고을은 '여순벌'이었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인구통계가 1925년 자료인데, 보성군내 다른 면이 많아봐야 9천명대인 판국에 혼자서 다섯자리를 쓰는 벌교의 위엄이란... 그때 벌교 인구가 당시 여수군 여수면, 순천군 순천면보다 많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여수·순천은 넘사벽이 되었긴 하지만, 벌교가 얼마나 컸는지 잘 나타내주고 있다. 벌교 편입 전의 오리지날 보성땅에 사는 사람들도 상당히 벙쪘을 것이다. 안 그래도 깡촌인 곳이 웬 뻘밭 깡촌을 가져오더니 도내 유수의 도시가 되고 정작 오리지날 보성의 발전속도는 상당히 뒤처졌으니.

아마도 이 항목을 보는 사람 모두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라는 말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수는 전남동부 제1항이었고 근해에는 어족 자원도 풍부했으며 또한 밀수도 성행해서 부자가 많았고, 순천에는 얼굴이 이쁜 사람이 많았고, 벌교에는 조폭을 비롯한 싸움꾼들이 많아서 이 말이 거의 속담급으로 퍼지게 되었다. 벌교에 싸움꾼들이 몰려든 배경도 벌교의 개항과 연관되어 있는데, 벌교가 개발되면서 상점과 유흥가가 생겨나 매우 번화한 지역이 되었고, 이에 토착 세력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 깡패들이 벌교로 총집합하면서 폭력배를 조직하였다. 그 당시 조폭의 생활이 상점에서 삥 뜯고 유흥가나 들락거리는 일이었는데, 상점과 유흥가가 많다는 건 조폭들이 활동하기에 참 적절한 입지 아닌가? 게다가 벌교 조폭이 생겨날 당시는 일제강점기였는데, 이 사람들은 애국을 들먹거리면서 활동했기 때문에 폭력배이면서도 인식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 물론 현재에는 벌교 기반의 조폭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이것도 벌교가 얼마나 컸는지 보여주는 사례. 특히나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히트하면서 아예 '벌교 사람 = 전투종족'이라는 기믹까지 성립시켜 현재도 벌교 하면 싸움 잘 하고 욕 잘하는 동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작 벌교사람이 보성가면 얻어맞고 왔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보성에선 텃세 자랑 하지 마라?

광복 이후로 벌교의 중요성은 크게 떨어졌지만 역시 튼튼한 경제기반으로 인구가 급성장하였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벌교읍의 역대 최고 인구수는 1966년 인구총조사 기록인 45,633명. 당시 인구가 4만을 넘어가는 읍면이 벌교밖에 없었다! 다시 말하면 송정리영산포보다 벌교가 더 컸다는 거(...).일제도 없어졌는데 대체 벌교에 뭐가 있기에 그런 거냐 시승격 인구 조건이 5만명이므로,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에는 시 승격 운동도 벌어졌다. 하지만 경부축 개발, 이촌향도, 산아제한운동 등의 시대적 이유였는지 증가하던 인구가 거꾸로 추락하면서 송정리와 인구순위를 맞바꾸고, 광양제철소 건설 이후로는 아예 광양읍한테도 추월당하는 등 신세가 영 좋지 않았으며, 2010년 인구총조사에서 12,008명을 찍었다(...). 동 시기의 주민등록 인구가 1만 4천명대로 뻥튀기되어있는 걸로 보아 2015년 현재에도 실거주인구는 1만 1~2천명대에서 놀고 있을 것으로 추정. 벌교가 탄광도시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다시 말하지만 벌교는 온통 갯벌 천지였다. 산업기반이라곤 하나도 없던 어촌마을이 도내 최대의 읍으로 급성장했다가 다시 이렇게까지 안습의 나락으로 떨어진 건 전국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현재 전남 동부권이 도정에서 차별을 받는 등 안습한 이유가 모두 벌교가 시 승격에 실패해서라는 흠좀무한 내용의 주장도 있다.여기 실제로 이때의 분리승격 실패가 향후 전남 동부권의 국회의원 선거구 문제에서 이래저래 걸림돌로 언급되고도 있다.

이렇게까지 DTD길에 빠져들었다고 해도, 보성고흥 일대에서 가장 큰 고을이다. 위에서 말했던 그 귀신같은 지리적 중요성의 하나가 바로 고흥군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점인데, 과거 여수에서 외지로 나갈 때 순천을 거치지 않으면 갈 수가 없었던 것처럼, 고흥과 외지를 오갈 때는 항상 벌교가 필수 경유지가 되어왔다. 고흥군으로 들어가는 모든 시외직행버스는 벌교버스공용터미널에 필수정차하며, 남해고속도로를 설계할 때 어차피 고흥 가려면 벌교는 다 거치니까 벌교IC 하나로 고흥까지 커버하려 하기도 했다.뭐 고흥군에서 나들목 만들어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를 시전하면서 고흥IC라는 반쪽짜리 나들목이 생기긴 했다 당연히 벌교는 보성, 고흥 지역 물산이 모두 모이는 이 지역의 허브로 기능했으며, 현재도 그 점이 어디 가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지역 학생들의 고등학교 진학으로도 파악할 수 있는데, 동강·대서 뿐만 아니라 고흥읍이나 녹동 쪽에서도 3할 이상의 학생들이 벌교로 건너온다.고흥고 안습 오리지날 보성 지역에서도 일부 학생들이 벌교로 가는 편.

역사가 오래된 곳이라 그런지 건물들 모습이 대체적으로 낡고 도로도 비좁다. 특히 인구가 보성읍보다 많은 지역임에도 여태까지 단지급 아파트는 주공아파트 딱 한 단지 생겼다. 그것도 2010년대 들어와서 생긴 것. 그 전까지는 연립주택이랑 단동 아파트밖에 없었다는 말이 된다... 반대로 인구가 적은 보성읍에는 단지급 아파트만 세 단지나 된다. 게다가 또 20층짜리 초고층 아파트를 짓는다고 하고 근처 주민들은 햇볕 안 든다고 결사반대하고 난리법석이다. 그걸 보성읍에 지을 바엔 차라리 벌교에 지으란 말이야

4. 지리

북쪽-남쪽 순으로 서술한다.

최북단의 추동리는 말 그대로 산골로, 호남정맥을 끼고 있다. 북쪽에는 외서면과의 경계를 이루는 석거리재(15번 국도)가 있으며 서쪽에는 율어면과의 경계를 이루는 주랫재(895번 지방도)가 있다. 아마도 태백산맥을 읽어봤다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15번 국도를 타고 낙성리 쪽으로 내려가면 비교적 넓고 평평한 땅인 낙안분지가 펼쳐져 있는데, 중앙에는 논이 있고 마을들은 주로 산의 사면에 자리잡아 있다. 낙성리, 지동리, 고읍리, 전동리 등은 낙안분지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연산리는 낙안분지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한편 낙성리에서 남서쪽으로 삐져나온 골짜기로 들어가면 징광리가 있으며, 징광리로 가는 길은 산을 타고 옥전리까지 이어진다.

계속 국도를 타고 내려가면 뜬금없이 골짜기가 생기고 벌교천이 산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는데 이 곳에 봉림리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부채꼴 모양의 벌교읍 시가지가 펼쳐진다. 회정리는 주로 동쪽 기슭으로 이루어져 있고, 벌교리는 서쪽 기슭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가지 동쪽에는 제석산이 있다.

벌교읍 시가지에서 동쪽으로 가다가 빠지면 장양리와 호동리가 있으며, 선근다리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장좌리가 있다. 2번 국도 아래를 통과하면 천국의 오르막길이 나오는데, 그곳을 넘어가면 동강면이다.

한편, 천국의 오르막길 직전에 843번 지방도로 빠지면 영등리를 거쳐 장암리, 대포리까지 이른다. 장암리와 대포리에는 포구가 조성되어 있으며, 이 중 장암리 포구에서는 장도로 가는 배가 뜬다. 장도는 장도리에 속해 있으며, 한 때는 근처 섬인 해도나 지주도 등에도 사람이 살았으나 지금은 무인도화된 것으로 보인다.

벌교읍 시가지에서 서쪽으로 가면 칠동천을 따라 길고 아름다운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는데(2번 국도가 따라간다), 이 곳에 척령리, 칠동리, 옥전리 등이 위치해 있다. 옥전리에서 남쪽으로는 조성면과의 경계를 이루는 열가재가 있으며, 척령리의 남쪽으로 또 삐져나온 골짜기에 마동리가 있다. 경전선은 열가재가 아닌 마동리 쪽으로 틀었다가 터널을 지나서 간다. 최서단에는 존제산이 있다.

5. 인지도

가장 대표적인 네임드는 꼬막의 성지. 정확히는 순천만 일대 중에서 고흥군과 순천시에서 많이 채취하고, 벌교의 해안가가 좁아서 벌교 자체의 생산량은 적었다. 나중에 고흥군 장도가 벌교읍 장도리로 넘어오면서 자체 생산량으로 편입되기 전까지. 하지만 이 지역의 지리 특성상 고흥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벌교읍을 거쳐야 했기에 벌교가 꼬막의 성지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참고로 순천에서 채취되는 꼬막은 순천 주민들의 내수용으로 많이 이용되었고, 순천만을 랜드마크화 하면서 순천만 브랜드로 타 지역에 판매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벌교의 인지도를 넘을 수가 없다. 지금도 꼬막=벌교 인 상황이다.덤으로 1박2일의 벌칙 용도로 자주 쓰이기도 다.

벌교의 네임드를 올려준 또 다른 것이라면 단연 조정래의 대표작품인 《태백산맥》이다. 아예 벌교가 배경이고, 이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벌교의 인지도가 폭풍상승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이 작품을 집필하던 당시 꼬막의 표준어는 고막이였는데 꿋꿋이 꼬막이라고 출판을 했고, 벌교와 함께 꼬막도 인지도를 얻으면서 기어이 표준어 표기까지 개정되면서 고막→꼬막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짜장면 표준어 인정의 선례. 표준어도 바꾸는 레전드 동네

물론 행정구역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지리덕후들도 잘 모른다.

6. 정치

호남지방 답게 대부분 새정치민주연합의 텃밭이겠지만, 기득권층이 몰려있는 보성읍보다는 보수성이 덜해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하지만 저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동네가 이렇게 평범하게 설명이 끝날 리가...

요약하자면 보성의 캐스팅보트. 그런데 캐스팅보트 지역임에도 지금까지 콩고물은커녕 푸대접을 심하게 받았다는 점에서 벌교의 기구한 역사를 알 수 있다

캐스팅보트라는 말에 정말 걸맞는 사례가 있다. 1967년 총선 보성군 단독 선거구에서 공화당 양달승 후보가 신민당 이중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 때 벌교를 제외한 득표는 이중재 23,562 : 양달승 20,428이었으나, 벌교에서 이중재 5,089 : 양달승 11,437로 양달승 후보가 크게 앞선 것이 당락을 갈랐다. 그런데 양달승 후보측의 벌교읍내에서의 광범위한 부정선거가 발견되어(...) 2년 뒤인 1969년에 벌교에서만 재투표, 결과는 이중재 4,017 : 양달승 5,681로 양달승이 많긴 했지만 벌교 제외 득표까지 합하여 이중재 후보가 당선자로 정정된 전례가 있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보성군내에서 인구는 가장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군정에서는 찬밥인 지역이라 군수가 헛짓거리 하면 다음 선거에는 반드시 심판모드가 뜬다. 그리고 벌교에서 몰표를 얻은 사람은 무조건 당선.

하승완이 3선에 도전했던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마침 위에서도 설명한 대병크로 인해 벌교 민심을 완전히 잃어버린 하승완이 자신의 소속 당이던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3선에 도전했고, 민주당에는 정종해가 공천되었다. 후보자는 3번 민주당 정종해, 6번 한미준[22] 김종표, 7번 무소속 하승완 총 3명이 나왔는데, 6번 김종표 후보는 표가 1,500여표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히 정종해와 하승완만 비교하도록 하자. 벌교읍 개표결과, 정종해 5,439 : 하승완 2,582. 정종해가 2배가 넘는 표를 얻었고, 그대로 정종해가 당선되었다. 사실 보성읍에서도 공천 버프로 정종해가 이겼긴 했지만 표차가 겨우 250표밖에 안 되었던 걸 보면...[23] 하지만 8년 후 정종해는 자신을 그렇게도 지지해준 벌교읍민들에게 되려 뒤통수를 맞고 물러나게 된다

하승완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듯,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의 판도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렇게 강한 지지를 받고 군수에 당선되었으면서 어째 하는 거라곤 유리궁전이랑 공원이랑 길 만드는 것밖에 없고 인사비리를 일삼던 우리의 길군수 정종해가 요번에도 민주당 공천을 등에 업고 3선에 도전했고[24], 상대는 서울특별시의회 의장을 지냈지만 그런 건 주민들한테 안 중요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용부였다.[25] 하지만 하승완보다 군정을 더 막장으로 하던[26] 정종해를 과연 벌교읍민들이 가만히 뒀을 것 같은가? 이용부 본인도 줄곧 벌교를 중심으로 유세를 펼치는 등 벌교 쪽 민심을 많이 돌렸다. 한편 보성읍에는 기득권층이 많아서 정종해 쪽이 약간 더 힘이 있었고, 게다가 이용부 본인은 어차피 보성읍에서 표 얻긴 틀렸다고 생각했는지 보성읍에는 본인이 안 가고 그냥 아줌마들만 투입했다(...).명색이 보성군의 중심지인데 결과는 정종해 13,031 : 이용부 15,944(보성군 전체)로 이용부의 승리. 그리고 보성읍의 정종해 지지자들은 개표가 끝나고 줄곧 벙쪄있었다고 한다

군의원 선거구는 보성군 '나' 선거구에 소속되어있으며, 벌교읍 단독으로 2명을 뽑는다. 6대 지선에서는 2-나 민주당 김판선 후보와 4번 무소속 강복수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김판선은 보성군의회 의장까지 되었다. 이제 군의회 의장도 벌교 사람이 되었으니 보성군 군정에서 벌교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으로 보인다.

7. 경제/산업

요약하자면 꼬막 버프.

7.1. 특산물

꼬막은 원래부터 벌교를 비롯한 순천만 연안의 대표 특산물이었는데, 벌교의 해안선이 의외로 좁아서 막상 대부분의 물량은 고흥군에서 책임졌다. 그러다 장도가 고흥군에서 보성군으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진짜 '벌교'산 꼬막의 채취가 많이 늘어났다. 그동안 쌓아온 명성과 교통의 편리성 등으로 인해 지금도 고흥 쪽에서 잡은 꼬막까지 벌교읍내에서 많이 유통되고 있다. 꼬막을 잡을 때는 갯벌 위에서 뻘배라는 것을 타고 채취를 하는데, 그 일련의 과정이 아주 고되기로 유명해서 1박2일 멤버들도 치를 떨었다.

언제부턴가 꼬막으로 아주 다양한 음식을 해서 한 상에 내놓는 '꼬막정식'이란 게 생났는데, 사실 벌교 요식업도 이 4글자로 설명 끝난다. 벌교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것으로 꼽히지만 식당에 따라 가격이나 품질의 편차가 심한 편이므로 잘 확인하고 가보도록 하자.심지어 호평과 악평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도 있다(...) 인기가 있었던 모양인지, 이제는 벌교 이외의 지역에서도 꼬막정식 전문점을 찾을 수 있다.

근데 2010년대 들어서는 꼬막이 거의 안 잡히는 모양이다. 태풍이라도 한 번 거하게 와서 해역을 뒤집어줘야 꼬막이 많이 서식하는데 그런 게 별로 없었다고. 꼬막이 없어서 다른 지역 꼬막까지 동원한다고. 그 다른 지역이라는 게 비단 순천만 일대뿐만이 아니라, 서해안 꼬막이나 일본 꼬막(...)이 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딸기 재배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딸기철만 되면 벌교에서 보성으로 넘어가는 2번 국도 가에 트럭을 세워놓고 딸기를 파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소쿠리 위쪽에만 좋은거 깔아놓고 아래쪽에는 안 좋은거 채워놓는 훼이크도 이따금 볼 수 있었지. 게다가 바가지야 지금은 남해고속도로가 개통해서 국도로 지나다니는 차도 줄어들고, 기후도 딸기농사에 부적합하게 변하고 있어 많이 쇠퇴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전보다 쇠퇴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딸기 트럭도 한두 대 보이고, 순천시 등 인근 지역에 가면 과일가게들마다 포장지에 '벌교딸기'라고 되어있는 딸기가 많이 진열되어 있고 소비도 꽤 하고 있다.

'꼬막으로 유명한 벌교'와 '녹차로 유명한 보성'의 이미지가 극명하다 보니 벌교에서는 녹차가 안 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누가 보성군 아니랄까봐 벌교에서도 녹차가 난다(...).

7.2. 2차 산업

낙안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연산리에 벌교농공단지가 있다. 벌교 뿐만 아니라 보성군 전체가 전형적인 농어촌이다 보니 공업의 비중이 매우 낮다.

7.3. 3차 산업

벌교역에서 동쪽(터미널 방면)으로 가면 벌교시장이 있다. 기본적으로 매일시장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매달 두 날은 정기휴업일이다. 구역이 '안쪽'과 '도로변'으로 나뉘는데, '도로변'은 앞에서 말한 벌교역에서 동쪽으로 가는 그 도로다. 꼬막 등 수산물을 파는 가게가 주욱 늘어서 있으며, 하나로마트도 있다. 그래서 하나로마트 바로 앞에서 난전이 벌어지는 진풍경도 목격할 수 있다.농협은 무슨 생각으로 저걸 시장 한복판에 지은 거지. 상인 다 죽게 생겼다. 농협들아 하나로마트 바로 옆(...)에는 대문짝만하게 '벌교 시장'이라고 써있는 간판을 단 골목이 있는데, 이곳을 '안쪽'이라고 칭한다. 총 2블럭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위에 5일장이 서는 구역이 있는 모양이다. 5일장은 4, 9로 끝나는 날에 열린다.

역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벌교농협(단위농협)이 있고, 더 북쪽으로 가면 NH농협은행(농협중앙회)이 있다. 시장 동쪽에는 수협도 있는데, 이름이 고흥군수협 보성지점이다. 즉 여기서 보성군 전체를 다 관할한다. 아무래도 회천 어민보다 벌교 어민의 수가 더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벌교로 수협이 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대신 광주은행은 없다. 막상 벌교보다 더 작은 보성읍에는 광주은행이 있다

이마트 계열 SSM인 이마트 에브리데이마저도 진출한 것이 목격되었다. 정식으로 진출한 게 아니라 상품공급점이긴 하지만. 벌교시장 옆 짝퉁 이마트와는 다르다!!

상권은 보성읍보다는 큰 편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보성읍에도 있는 교촌치킨(2014년 입점)이 벌교에는 없다. 2015년 들어서는 보성읍에 BHC까지 들어왔는데, 이것도 벌교에 없다.순천 가까우니까 그냥 순천이나 가라 그 소리렸다 대신 벌교에는 굽네치킨이 있다. 그런데 사실 굽네치킨은 보성읍에도 옛날에 생겼었는데 일찍 망했을 뿐이다(...). 더 안습인 건, 그 흔해빠졌다는 롯데리아는 보성읍이나 벌교나 다 없다(...).[27] 벌교에서 햄버거를 먹으려면 순천에서 공수해와야 한다.그리고 순천에서 공수할 정도면 절대 롯데리아 것은 안 사오겠지

8. 관광

순천, 보성과 세트로 묶여 전남동부 관광라인의 한 부분을 담당한다. 하지만 명승지만 돌고 돌면서 관광이 이루어지는 순천·보성과 달리, 벌교는 읍 곳곳에 산재한 역사·문학 관련 유적들을 돌아다니며 감상하는 형태의 관광이 이루어진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 건축물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목포시 구도심이나 군산시와도 비슷하다.

  •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외지인들이 벌교에 여행을 오면 반드시 둘러보고 가는 곳. 꼭 굴뚝 2개달린 공장처럼 생겼다 민선4기 정종해 시절이던 2008년 11월에 개관했으며, 조정래와 태백산맥에 관한 설명과, 원고나 조정래의 가족들이 쓴 필사본 등 관련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내부에는 작은 도서관과 읍내를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도 마련되어 있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이며 20인 이상 단체는 500원씩 감산, 보성군민은 무료. 벌교터미널에서 동쪽으로 향한 뒤 주유소 옆길로 올라가면 되겠다.
  • 현부자집
    태백산맥 문학관 바로 옆에 있어서 문학관이랑 세트로 취급된다. 벌교의 대지주였다고 하는 현부자의 집을 복원한 것으로, 일본풍이 들어있는 한옥이다.적산가옥은 아니고... 아산가옥? 대문 위로 일본식 창문을 단 망루가 서 있는데, 들에서 일하는 노비들을 감시하기 위해 세웠던 것이라고.
  • 소화의 집
    역시 문학관 바로 옆에 있어서 문학관, 현부자집과 세트로 취급되는 곳.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인물인 무당 소화의 집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작고 아름다운 한옥집.
  • 제석산
  • 벌교홍교
  • 소화다리
    1931년 6월에 세워진 왕복 2차로짜리 철근 콘크리트 다리로, 정식명칭은 '부용교'이나 모두들 '소화다리'라고 부른다. 소화다리의 소화는 위에서 언급한 태백산맥의 등장인물 소화가 아니라, 일본덴노였던 쇼와를 의미한다.[28] 쇼와 6년에 지어져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그렇다고 1989년 이후에 짓는 다리를 평성(平成)다리라고 부른다거나 그런 거 없다 참고로 소화다리에 간다는 것은 쇼와를 밟는다는 것이므로 쇼와가 싫은 위키러들은 많이들 가서 건너주자.
  • 철다리
    1930년 서부경전선이 개통될 때부터 있었던 철교. 태백산맥에서는 염상구와 땅벌이 치킨 게임을 하는 곳으로 나온다. 열차가 달려오는 가운데 철로 위에 서서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 내기해서, 진 사람은 벌교를 떠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결과는? 염상구의 승리.
  • 금융조합
  • 보성여관
  • 존제산
    원래 정상에 미사일기지가 있었지만 해체되면서 산에 오르는 사람이 많아졌다.지뢰주의 표지판은 덤 벌교읍과 율어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 북쪽의 주릿재에는 태백산맥 문학비가 있다.

9. 대중매체 속의 벌교

일단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지로 등장하며, 이야기 대부분이 벌교에서 진행된다. 작중에도 벌교의 풍경이 많이 묘사되어 있다. 태백산맥이 유명해지면서 소설 속 모습을 찾아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벌교를 방문했고, 그 결과 벌교의 인지도는 보성과 거의 동급으로 놀게 되었다. 다만 벌교는 시군명으로 쓰이는 지명이 아닌지라 보성에 비하면 존재감이 적다.

그리고 이 이후로 대중매체나 창작물 속에 벌교가 은근히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미 태백산맥을 통해 크나큰 인지도를 쌓았고 여기에 꼬막이라는 필수요소급 특산물까지 가세한 것, 또한 존재감이 적어서 의외로 깡촌처럼 느껴지는 점, 오랜 시간 동안 옛 모습을 간직해온 점 등이 강점으로 작용한 듯 싶다.

1박 2일 시즌 1에는 두 번씩이나 언급되었는데, 강원도 삼척 편에서 답이 '벌교읍'인 퀴즈문제가 나왔고[29], 이듬해 진짜로 벌교에 촬영을 왔다. 자세한 내용은 1박 2일/2009년 여행지 참조.

영화 《황산벌》에서는 백제 측에서 보성, 벌교 사람들을 불러 욕 공격을 시전하는 명장면이 나온다. 영상 급한 분들은 2:27부터 보시길.

설경구, 조한선, 나문희 주연열혈남아에서는 대부분의 촬영을 벌교 읍내에서 했다.

2011년에 개봉된 영화 《써니》에서는 주인공 임나미가 벌교에서 서울로 전학왔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미 황산벌에서 나와서 잘 알려진 욕 공격도 한다...

영화 《위험한 상견례》에서는 서울 출신인 줄만 알았던 다홍의 어머니 춘자가 사실 전라도 벌교 출신이더라... 하는 대반전이 펼쳐진다. 그 전에도 시장에서 춘자를 본 아줌마들이 '초대 벌교 꼬막아가씨 진'을 들먹거리며 아는체를 하는 데 춘자가 애써 지나친 걸 보면 복선은 충분히 깔려있었다. 덧붙여 주인공 현준에게 서울말을 가르쳐 준 음악카페 사장도 고향이 벌교라고 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도 나왔는데, 타블로가 딸 하루와 함께 여행을 와서 갯벌체험을 하고 갔다. 덤으로 그 다음편에는 보성 가서 고기 를 먹고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카더라. 본격 보성군 일주 투어

dignity_of_beolgyo_stationery_shop.jpg
[JPG image (Unknown)]

이런 짤방으로도 유명하다(...). 제목은 '벌교 문방구의 위엄.jpg'. 원본(야짤 있으니 후방주의) 주민의 말에 따르면, 저 짤방의 로케지는 벌교고등학교(+삼광중) 매점이라고 한다. 요약하면 '비싼것좀 사먹어라'


더 유명한 짤방. 비슷한 부류의 짤방으로는 '고흐 목포'가 있다. 목포시 항목 참조.

10. 교통

요약하면 고흥의 관문이자 교통의 요충지

10.1. 시가지 도로 상황

좁다. 이 2글자로도 설명 완료.

오래된 도시인 만큼 시가지 도로를 확장할 여지가 없어서 시가지 도로는 전부 2차로짜리 도로다. 사실 이건 보성읍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보성읍은 주차공간이라도 많지... 하여튼, 그래서 벌교읍내에 관광버스 몇 대가 들어오는 순간 헬게이트가 열려버린다.눈내리는 벌교중과 동급의 헬게이트다 특히나 이 관광버스의 승객 대부분은 꼬막정식을 먹기 위해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럼 이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일 때가 언제인 것 같은가? 당연히 꼬막축제 시즌이다. 만약에 꼬막축제 시즌에 방문하게 된다면 이왕이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열차라면 더욱 좋다.근데 서부경전선이잖아

10.2. 읍외 도로

고속도로로는 남해고속도로 영암순천선이 있다. 벌교IC가 소재해 있으며, 고흥IC는 일단 위치는 고흥이지만 군계를 넘어가자마자 바로 있어서 사실상 벌교에 있다(...). 게다가 벌교읍내에서 벌교IC보다 고흥IC가 더 가깝다(...). 다만 고흥IC의 구조가 영암방면 못 가는 고자 같은 구조라 IC 선택이 중요하다. 영암 쪽에서 오는 경우엔 벌교IC에서밖에 못 내리니까 벌교, 고흥 갈 사람은 무조건 여기서 내려야 한다. 반면 순천 쪽에서 오는 경우엔 고흥IC를 이용하는 게 아주 좋다.덤으로 요금을 아끼고 싶으면 순천에서 벌교까지 걍 국도로 와도 된다. 어차피 고속도로는 순천에서 한 번 끊기니까. 다만 신호크리

2번 국도가 동서로 관통한다. 벌교읍 전 구간이 왕복 4차로이며, 읍내 우회도로를 제외하면 보성 쪽으로도, 순천 쪽으로도 모두 평면교차로의 연속이기 때문에 신호가 많이 걸려서 약간 빡치는 도로. 특히나 보성에서 순천을 급하게 가야 하는 사람의 심정이라면... 기러기재 넘어와서 군머리에서부터 빨간불받고 출발해서 예당, 조성에서도 계속 빨간불 걸리고 열가재 넘어와서도 칠동리, 척령리 계속 빨간불 걸리다 드디어 좀 밟아보나 했더니 진토재 넘어가자마자 또 순천시내까지 계속 빨간불만 걸리는 사람의 심정이란... 아 망했어요. 이건 사실이다!

15번 국도·27번 국도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왕복 4차로로 고속화가 진행 중이지만 고흥에서 고읍교차로에 이르는 구간까지만 공사가 완료되었고, 광주로 가는 북쪽 방향으로는 진행이 요원하다. 그리하여 벌교에서 석거리재를 거쳐 송광까지 이르는 길이 영 좋지가 않아서 운전자들의 원성이 자자한데[30], 고읍교차로에서 송광사IC까지를 잇는 3구간 공사예산이 2015년 집행예산에도 반영되었다고 한다.#해당기사 지도에서 보면 이전 현재 공사중인 구간과 비교해서 27번 국도의 끝내주는 도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3구간까지 완전개통이 될 경우 벌교에서 호남고속도로 송광사IC까지 거리가 상당히 단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누가 벌교에서 광주 가는데 송광사IC에서 들어가서 호남고속도로의 백아산 드리프트를 체험하면서 갈까? 차라리 보성가서 29번 국도타고 말지

낙안 방향으로 857번 지방도가 있으며, 율어 방향으로는 895번 지방도가 있다. 또한 대포리 방향으로 843번 지방도가 있다.

참고로, 이곳에서 광주로 갈 때 두가지 방법이 있다. 첫번째는 15번 국도를 타고 석거리재를 지나 곡천, 용암삼거리, 사평을 거쳐 구암교차로에서 22번 국도 광주방향으로 올라가서 가는 길이고, 두번째는 2번 국도를 타고 벌교IC 가서 남해고속도로를 탄 뒤 보성IC에서 내려서 29번 국도 타고 광주까지 신나게 밟는 길이다. 전자는 거의 직선거리로 가기 때문에 키로수가 짧긴 하지만 대신 석거리재에 도달하는 순간 끝없는 드리프트들로 이루어진 극악의 선형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후자는 돈이 약간 깨지겠지만 잘 밟으면 더 빨리 갈 수 있다. 대신 전구간 4차선이라 시간이 안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작용이 있다.

10.3. 철도

경전선 벌교역이 있다. 다만 서부경전선이니 수준은 기대하기 힘들다. 정말 급하면서 우연히 시간대 딱 맞을 때만 타는 수준.

벌교역에서 열차를 이용하면 순천, 광주 방향으로 이동할 수가 있는데 일단 배차부터가 안습이고, 순천 방향으로는 88번이라는 강력한 대체제가 존재하고, 광주 방향으로 탈 경우 시외버스에 비하면 보성읍으로 돌아가는 데다가 광주로 가는 시외버스의 배차가 많아서 수요가 밀린다.

심지어 벌교에 가는 내일로 이용자들도 실제로 벌교역에서 내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굳이 서부경전선의 일 4왕복 배차를 기다릴 필요 없이 내일로의 성지인 순천역 앞에서 조금만 기다렸다가 88번 타고 그냥 쭉 가면 벌교읍내까지 편하게 모셔다 주니까. 게다가 저 버스 노선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88번 버스는 하루에 60번 순천에서 벌교로 드나든다(...). 이게 몇차례 개편으로 버스편을 줄여서 60회라는게 함정

10.4. 버스

일단 허벌나게 많이 다닌다. 벌교역 앞에 서 있으면 심심치 않게 버스를 목격할 수 있다. 그만큼 교통의 요지라는 소리. 보성, 고흥, 순천 3개 시군의 버스를 한 자리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며, 시외버스도 상당히 자주 온다.

보성교통에서 농어촌버스를 운행 중이다. 보성 방향으로는 2번 국도를 따라가는 보성~예당~조성~벌교 고정노선은 25회 있으며 율어를 경유하여 보성읍으로 가는 노선은 하루 4회 있다. 이외에 순천시 낙안, 외서, 송광 방면 노선도 운행하며, 순천 시내와 이들 지역을 잇는 순천 버스보다도 운행횟수가 많다(...). 고흥군 동강 방면으로도 아침 1왕복 운행. 이외에 고읍리-낙성리-지동리-연산리(일 3회)[31], 마동(일 4회), 장암(일 8회)[32], 대포(일 7회)[33], 호산[34](일 4회), 징광(일 5회)[35][36], 낙성리-연동[37]-하송리-낙안(일 2회) 등등 수많은 서브노선이 존재한다.

이외에 벌교에서 고흥군(주로 동강, 대서)으로 넘어가는 버스들을 고흥여객이 운행하고 있다.

순천시 시내버스88번이 해룡면의 농산물도매시장에서 신대지구, 금당지구, 국민은행 사거리, 순천역 정문, 아랫장, 순천터미널 등 순천의 알짜배기 지역들을 모두 통과하면서 벌교 삼성병원 앞까지 운행한다. 이외에 68번은 벌교로 들어오려다가 만 것 같은 선형을 갖고 있다. 88번은 예전 보성교통 시절에는 그 당시 돈으로 편도 2000원, 현재 물가였으면 2500원 이상이 되었을 흉악한 구간삥을 뜯었는데, 동신교통이 인수하여 순천 소속이 되고 나서 벌교터미널까지는 순천시내 기본요금인 1200원, 종점인 벌교역과 벌교삼성병원까지의 요금이 1600원으로 운임이 내려갔다. 400원을 아끼고 싶다면 벌텀까지는 걷자

시외버스벌교버스공용터미널에서 이용할 수 있다.

10.5. 해운

벌교를 넘어 보성군의 유일한 정기연락선인 '장도사랑호'가 있다. 군에서 직접 운영하며, 장암리 상진포구와 장도를 매일 2회 오간다. 날에 따라 운항시각이 조금씩 다르고 출항하지 않는 때도 있는데, 이 쪽 바다가 온통 뻘밭이라 수심이 얕아서 물때에 따라 배가 못 뜰 수도 있기 때문. 자동차도 실을 수 있어서 장도 주민의 오랜 숙원이 해소되었다.

11. 교육

요약하자면 보성고흥 일대의 교육 중심지.

11.1. 관내 학교

초등학교는 벌교초·중앙초·낙성초 3개가 있다. 약칭이 벌초벌교초등학교는 읍내 정중앙인 벌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학구는 벌교읍 시가지. 이외에 장도에 장도분교장을 두고 있으며, 장양리로 가는 길에도 제석분교장이라는 분교가 또 있다. 벌교중앙초등학교는 이름과 달리 벌교 중앙이 아닌 남쪽인 장좌리에 있으며(그나마 읍내다), 학구는 칠동천 유역과 벌교읍 남동부 지역.지도로 그려보면 동서로 길쭉하다 낙성초등학교는 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낙성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학구는 벌교읍 북부. 시골에 있어서 그런지 면단위 학교와 상황이 비슷하다.

중학교는 벌교중(남중)·삼광중(남중)·벌교여중 3개가 있다. 특이하게도 남중이 2개인데, 매년 벌교초 체육관에 학생들 모아서 뺑뺑이로 결정한다. 벌교중학교는 회정리에 있는데, 뜬금없이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눈만 왔다 하면 헬게이트 당첨.그래서 벌교에 눈오면 가장 벙찌는 사람들은 벌교중학교 다니는 사람이라고 한다. 심지어 썰매도 탈 수 있다고... 삼광중학교는 장좌리에 있으며, 벌교고와 같은 재단인 '삼광학원'에서 세운 사립학교이다. 재단에 대한 설명은 아래 참조. 벌교고와 동일부지 상에 존재한다. 벌교여자중학교는 벌교초 바로 북쪽에 있다. 여기가 옛날 벌교북국민학교의 부지였다. 벌교초는 당시 벌교남국민학교. 그리고, 남중이 2개인 것 때문인지, 벌교중과 삼광중은 현재 학년당 1학급으로 운영 중이다(...).명색이 보성고흥 최대의 고을인데 가끔씩 이 두 학교를 합치자는 주장이 나오곤 하는데... 삼광중이 사립이라 요원하다. 또한 벌교여중도 학년당 2학급으로 상황이 별로 안 좋아서 벌교중과 벌교여중을 합치자는 주장도 있다.근데 벌교중이랑 벌교여중이랑 합치면 여자가 7할이다 심지어 벌교여중을 분할통합해서 벌교중·삼광중 둘 다 남녀공학으로 만들자는 발칙한 상상을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정작 보성읍 소재 중학교들은 이제 3학급에서 2학급으로 쪼그라드는 시기인데...

고등학교는 벌교고(공학)·벌교여고·벌교상고(공학) 3개가 있다. 벌교고등학교는 장좌리에 있으며, 이름만 들으면 공립 같지만 훼이크 개신교 계열 재단인 '삼광학원'에서 1986년에 세운 사립학교이다.[38] 미션스쿨이며 매주 예배도 본다. 처음에는 남고로 시작했으며 2000년도에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벌교여고는 버렸어요? 벌교여자고등학교는 벌교고에서 2번 국도 건너편에 있으며 이쪽도 삼광학원 소속이다. 아무래도 삼광학원 측에서도 버린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추가바람. 벌교상업고등학교는 회정리에 있으며, 한때 벌교제일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꾼 적이 있으나, 상고로 안 바꾸면 거점고 지원을 안 해준다고 해서(...) 다시 상고로 갈아치웠다. 학과로는 금융회계과와 ERP정보관리과(...)가 있다. 참고로 벌교상고가 벌교에서 가장 먼저 생긴 고등학교이다.

참고로 보성군 관내의 유일한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장소가 벌교고등학교다.오리지날 보성 사는 학생들 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11.2. 지역간 학생 이동

이 문단에서는 지역 중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경우에 대해서 서술하도록 한다.

벌교는 보성고흥 지역에서 교육여건이 그나마 가장 나은 곳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바로 옆에 전남동부의 핵심인 순천시가 있으니까.

2014학년도 벌교고 신입생 합격명단을 토대로 계산한 결과, 전체 144명의 지원자 중 고흥군내 중학교 출신자가 53명에 달했으며, 비율로 계산하면 36.8%. 벌교고인데 고흥 사람이 1/3이 넘는다! 단순계산으로는 벌교고가 학년당 5학급이니까 1학급당 고흥 사람이 10명 이상. 사실상 벌교 생활권이라는 동강, 대서를 제외해도 26.3%이라는 비율이 나온다. 반대로 고흥고 합격명단을 아무리 뒤져봐도 벌교에서 고흥고 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순천시내 학생 일부가 벌교고로 진학하기도 하는데,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이것이 이 지역의 교육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벌교고 학생이 아닌 이상 자세한 조사는 힘들다. 내신 따러 오는 건지, 아니면 그냥 호기심에 오는 건지, 아무도 모른다. 추가바람 한편 정작 벌교 생활권인 낙안, 외서, 송광 일대에는 벌교고보다 더 좋은 순천시내 학교로 가버리는지 벌교고 가는 사람이 적다.인구도 적지만

이번엔 서쪽 보성으로 눈을 돌려 보자. 벌교-고흥 관계에서는 고흥 사람이 일방적으로 벌교로 몰려가는 양상이 나오는 반면에, 벌교-보성 관계에서는 보성에서 벌교가는 사람도 있고, 벌교에서 보성가는 사람도 있는 맞트레이드의 양상을 보인다. 양쪽 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이 가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보성에서 벌교로 가는 사람의 경우 실질적 실력의 향상을 위해서, 벌교에서 보성으로 가는 사람의 경우 시설빨[39]내신 획득을 위해서 간다. 내신 획득의 경우 고흥고도 상당히 유리한데도 보성고를 선택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시설빨 같은 보성군이라는 심리적 친근감과, 보성의 교통이 상당히 편한 덕분인 것 같다.

2014년 두 학교의 학생회 선거결과를 분석해본 결과, 보성고 부회장은 벌교 사람, 벌교고 부회장은 보성 사람이었다. 맞트레이드 쩌네요

한편 벌교여고는 사람들이 그 존재를 모르는지 외지인의 유입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특성화고인 벌교상고의 경우 눈에 띄는 이동상황은 없는 편.

벌교를 나가는 사람들의 출신 학교를 분석해 보면 삼광중이 거의 없다. 아무래도 같은 재단인 벌교고 좀 오라고 갖가지 압박과 술수를 쓰기 때문인 듯. 물론 전문계 갈 놈들은 다 놓아준다지만... 실례로, 보성고등학교에 삼광중 출신은 전교에서 딱 1명이다.

12. 출신 인물

  • 홍암 : 대종교의 창시자. 칠동리 어딘가에 생가가 위치해 있다고 하며, 벌교IC 근처에 또 나철 기념관을 짓고 있다. 이 사람의 호를 딴 '홍암로'가 있다.
  • 동선 : 민족 음악가. 벌교읍사무소 뒤편에 크고 아름다운 공연장이 붙어있는데, 이 공연장의 이름이 '채동선 음악당'이다.물론 한 달에 한번 영화 틀어줄 때나 쓰인다 역시 이 사람의 이름을 딴 '채동선로'가 있다.
  • 현민 : 개그맨. 현재 부모님이 벌교초등학교 앞에서 벌교에 하나밖에 없는 교복집을 하고 있다.

이 이외에 있을 경우 추가바람.

13. 여담

대동여지도에는 이상하게도 筏橋가 아닌 '伐'橋라고 나온다.

이상하게도 이름을 헷갈리는 사람이 꼭 있다. 주로 교읍이라는 오기가 많이 보이는데, 그나마 정작 몇 단어 뒤로 가면 '벌교읍'으로 제대로 써있는 등 대부분이 단순 오타인 것에 감사해야 할 지경. 근데 정작 벌교읍 옆에 순천시 량(別良)면이 있어서 이쪽도 헷갈리는 사람이 꼭 있다.

14. 관할 리

14.1. 벌교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21

벌교천, 칠동천, 산으로 둘러싸인 곳. 벌교천 서안에 있다.[40] 벌교읍내 중에서도 이곳이 중심지이다. 벌교읍사무소, 순천세무서 벌교지서, 우체국, 농협, 벌교역, 벌교시장, 벌교초등학교, 벌교여중 등이 위치한 행정과 상업의 중심지. 다만 군청이 없지

14.2. 전동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22

낙안분지의 남쪽 기슭에 위치한 곳. 벌교리와 접한다.

14.3. 지동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23

낙안분지의 서쪽 기슭에 위치한 곳. 순천시 낙안면과 접한다.

14.4. 고읍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24

낙안분지의 남서쪽 기슭에 위치한 곳. 전동리의 북서쪽에 있다. 낙안군의 관아가 처음에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14.5. 낙성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25

낙안분지의 서쪽 기슭에 위치한 곳. 지동리의 서쪽에 있다. 낙성초등학교와 벌교농협 고상지소가 있으며, 한때 벌교읍 북부인 구 고상면 지역[41]의 중심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4.6. 추동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26

벌교읍의 최북단. 낙성리에서 석거리재 방향으로 계속 들어가면 나온다. 주릿재를 통해 율어면과, 석거리재를 통해 순천시 외서면과 접한다.

14.7. 징광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27

낙성리와 옥전리 사이의 산골. 녹차밭이 있다고 한다.

14.8. 칠동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28

벌교리에서 옥전리까지 이어지는 칠동천 골짜기의 중간에 위치한 곳. 남해고속도로 벌교IC가 이곳에 있다. 2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이곳과 척령리에 딸기 파는 트럭을 많이 볼 수 있었다.

14.9. 척령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29

칠동천 골짜기의 초입부에 위치한 곳. 영역이 의외로 드넓은데, 선근삼거리에서 보성 방향으로 가면 바로 나오는 원동마을부터 척령리로 들어간다. 보성소방서 본서가 있다. 이쪽 사람들에게 일종의 랜드마크 취급을 받는 '찐빵만두집'도 이곳이다

14.10. 마동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30

척령리 즈음에서 왼쪽으로 톡 삐져나온 골짜기에 위치한 곳.

14.11. 장좌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31

벌교리에서 칠동천을 가로지르는 선근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곳. 종합병원인 벌교삼호병원[42]이 있으며 그 옆에는 보성군립노인전문병원이 있다. 벌교고등학교, 삼광중학교, 벌교여고, 벌교중앙초등학교가 여기에 있다.학원도시? 이곳과 고흥군 동강면을 잇는 천국의 오르막길은 고흥으로 가는 일종의 관문. 중앙초 주변으로는 주거지역이 형성되어 있어 빌라와 단독주택도 많다.

14.12. 영등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32

장좌리에서 대포리로 가는 길에 있는 곳.

14.13. 장암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33

영등리에서 대포리로 가다가 왼쪽으로 빠지면 나오는 곳. 섬을 제외하고 벌교읍 최동단이며, 장도로 가는 배가 여기서 뜬다.

14.14. 대포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34

14.15. 연산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35

14.16. 봉림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36

회정리 위쪽에 있다. 그 산에 있다는(...) 벌교중학교가 일단 이곳으로 들어간다.물론 현실은 회정리 취급

14.17. 회정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37

벌교천 동안에 위치한 동네.근데 강 건너로도 상당히 걸쳐있다 장좌리처럼 주거지역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벌교읍 최초의 아파트인 우리타운을 비롯해 고층 아파트도 많고 빌라도 많다.[43] 벌교버스공용터미널, 벌교상업고등학교, 태백산맥문학관, 홍교119안전센터가 위치해 있다.

14.18. 장양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38

14.19. 호동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39

14.20. 장도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40

1983년 2월 15일에 고흥군 동강면 소속이였다가 벌교읍으로 들어온 섬 장도를 포함한 행정구역이다.이 덕분에 레알 벌교산 꼬막이 가능해졌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보성군이 보유한 수많은 웃기는 지명 중에 하나.

14.21. 옥전리

행정표준코드 4678025341

벌교읍 최서단. 이 지역은 1908년에 편입된 낙안군 남면에 속해있어 행정표준코드 상으로 징광리와 칠동리 사이에 있어야 정상이나, 어째 맨 뒤로 밀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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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5년 3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 [2] 언제부턴가 생겨난 벌교읍의 비공식 슬로건. 공식 슬로건은 아직 없어서 보성군의 '녹차수도 보성'을 그대로 쓰고 있다.뭐 벌교에도 녹차밭은 있으니까 맞는 말이긴 하다. 지역명이 '보성'이라 문제지
  • [3] 역사적으로 광양의 원래 중심지는 광양읍인데, 포스코 광양제철소 건설 이전까지 광양읍은 벌교의 인구를 추월한 적이 없다.
  • [4] 1위는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115.92㎢)이며, 3위는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101.82㎢). 두곳 다 무진장이다!
  • [5] 낙성리 주변으로 추정. 참고로 낙성리에 있는 농협 지소 이름이 고상지소이다.
  • [6] 고읍리, 전동리 일대로 추정
  • [7] 칠동천 유역으로 추정
  • [8] 영등리, 장암리, 대포리 일대로 추정. 이 쪽을 지나는 도로 이름이 '남하로'로 되어 있다.
  • [9] 동초면은 원래 낙안군 동상·동하·초상·초하면이었으며 낙안군이 공중분해되던 때 순천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동초면으로 통합되었다. 현재는 벌교읍, 낙안면, 별량면 세 곳에 분할편입. 동상·동하·초상·초하면이 각각 지금의 어디인지는 추가바람.
  • [10] 사실 엄밀히 따지면 회천면, 웅치면은 벌교 편입보다 6년 늦은 1914년 부군면 통폐합장흥군에서 넘어왔기 때문에 제외가 되나, 이 두 곳은 현재 보성읍으로 강하게 결속이 되어 있으므로 오리지날 보성에 포함하도록 한다.
  • [11] 참고로 보성-벌교와 흡사한 포지션을 갖고 있다가 분리독립이 완료된 괴산-증평의 거리는 약 22km. 보성-벌교가 더 길다(...).
  • [12] 사실 1981년 이전까지 보성군은 장흥지원 관할이었다. 그리고 이게 왜 순천지원 관할로 바뀌었는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必要韓紙?
  • [13] 다행히 이쪽은 벌교에 지서가 있다.
  • [14] 이쪽은 아예 고흥군 버스업체인 고흥여객에서 저렇게 운행하고 계신다...
  • [15] 벌교읍내에서 동강면소재지까지 8km 정도인데, 동강면소재지는 동강면 최남단에 위치해 있다. 그 말은 동강면에 있는 마을들 중에 벌교읍 안의 마을들보다 벌교읍내에서 더 가까운 지역이 존재한다는 말(...).
  • [16] 다만 동강면도 벌교의 상황과 비슷하게 군청 소재지와 거리가 허벌나게 떨어져 있지만, 전통적으로 고흥 소속이었기에 주민들은 주로 자신이 고흥에 산다고 인식한다.
  • [17] 아니, 사실 벌교에도 많이 있긴 있었다. 모두 보성읍 쪽으로 통폐합돼서 그렇지. 일례로 1999년까지만 해도 벌교등기소가 따로 존재했으나 '1군 1등기소 원칙'이라면서 보성등기소로 통폐합되었다.관련 기사 참고로 옛 벌교등기소 자리는 벌교우체국 근처 삼거리에 면해있는데, 그 자리를 꼬막정식집이 낼름 먹어버렸다(...). 물론 꼬막정식집 건물은 옛 등기소 건물이 아니다.
  • [18] 참고로 오리지날 보성 지역에서는 하승완이 정종해보다 고평가를 받으나, 반대로 벌교에서는 이 사건의 영향도 있고 정종해가 태백산맥 문학관을 지어줬기 때문에 정종해가 약간 더 고평가를 받는다. 어째 성향이 항상 정반대로 간다
  • [19] 이 말의 속뜻은, 깔쌈하게 보성군청을 벌교로 옮겨버리자는 말이다! 다만 벌교읍이 오리지날 보성과 생활권이 다르고 보성군 동쪽에 따로 떨어져 있다는 걸 생각하면 벌교가 '보성군'의 중심지가 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 [20] 콩드립/예시 항목에는 보성읍과 장흥읍의 거리가 22.22km인 것이 증명되어 있다.
  • [21] 전남 지역에 도로망이 잘 깔린 지금은 실감나지 않지만, 장흥이 TOP 5에 랭크되던 시절엔 지방의 군에서 군을 잇는 도로는 열악하기 그지없어서 사람들이 쾌적하고 안락한 철도를 선호했다.서부경전선이 과연 쾌적하고 안락한 지 의문이지만 그땐 도로도 안습이었으니 그러려니 하자 목포~순천 간 2번 국도의 전 구간 왕복 4차로로의 확장이 21세기 들어서야 이루어졌다는 걸 생각하자.
  • [22] 국의 래를 비하는 당이라고 한다. 한국교회 미래 준비모임과는 다르다. 레알
  • [23] 참고로 정종해는 보성군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면이자 자기 고향인 득량면에서 1,300표차로 승리했고, 그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조성면에서도 700표차로 승리하는 등 선전했던 반면, 하승완은 자기 고향인 회천면에서마저도 겨우 600표도 안 되는 표차를 얻었다.
  • [24] 한편 이때 하승완은 공천에서마저도 떨어졌다는(...) 안습한 이야기가 있다.하는 짓은 정종해가 더 막장인데 대체 왜
  • [25] 참고로 이용부는 복내면이 고향이라고 한다. 득량만권 vs. 북부권.
  • [26] 사실 정종해도 벌교에 뭐 안 지어준 건 아니다. 태백산맥 문학관도 정종해 시절 작품이고, 축구장 옆의 크고 아름다운 체육관도 정종해 때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물론 그딴 유리궁전 따윈 주민들 민심 잡는 데 전혀 안 중요하고
  • [27] 참고로 롯데리아가 없는 지자체는 전국에서 19곳밖에 안 된다. 강원도 최전방에도 있는 게 롯데리아다. 롯데리아 항목 참조.
  • [28] 쇼와는 한자로 昭和라고 쓰며, 이를 한국식으로 읽으면 '소화'가 된다.
  • [29] 이 문제의 답을 이수근이 맞췄는데, 하필이면 체험 삶의 현장에서 이수근이 벌교에서 꼬막을 캔 적이 있다...
  • [30] 그래서 광주에서 벌교 갈 때 29번 국도>보성IC 진입>남해고속도로>벌교IC 진출 이렇게 가는 사람도 많아졌다(...). 광주에서 장흥 갈 때도 똑같이 보성IC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많이 간다.
  • [31] 첫차는 연산→지동→낙성→고읍 방향으로 돌며 나머지는 고읍→낙성→지동→연산 방면으로 돈다.
  • [32] 일 3회 영등리 봉황마을 경유.
  • [33] 일 2회는 제두마을 종점이며 일 3회는 대포마을로 직행. 일 4회 영등리 두평마을 경유.
  • [34] 벌교읍 호동리
  • [35] 첫차는 지동리 중흥마을, 연산리 경유, 일 1회 징광리 직행.
  • [36] 이상하게도 버스시간표에는 '증광'으로 나온다.
  • [37] 벌교읍 지동리
  • [38] 아무래도 보성에도 있는 남자 일반고가 벌교에 없다는 게 말이 안 되어서 경쟁심리로 세운 것 같다(...). 참고로 보성읍에는 원래 보성여고가 있었지만 1985년에 남녀공학으로 전환했고, 그게 지금의 보성고다.
  • [39] 보성고는 거점고 사업에 선정되어 2014년에 건물을 신축했다.
  • [40] 그런데 모두 벌교리일 것 같은 이 구역에 법정리가 회정리로 들어가는 곳이 있다!
  • [41] 위에서도 말했지만 벌교 지역은 보성 편입 이후부터 벌교면 설치 이전까지 고상면과 남면으로 나뉘어 있었다.
  • [42] 원래 벌교삼병원이었는데 2014년에 바꿨다. 삼성그룹의 소행인건가 서류상으로는 바뀌었으나 간판 등은 그대로이다. 순천 버스 88의 종점명도 아직까지 벌교삼병원으로 되어있다.
  • [43] 다만 대부분의 아파트는 1동(棟) 규모이며, 2동 이상의 단지로 이루어진 아파트는 2010년대 들어 지은 주공아파트 1개 단지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