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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드와이어

last modified: 2017-10-31 16:36:25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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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Budd Dwyer (1939년 11월 21일 – 1987년 1월 22일)
흔히 맨 앞의 로버트는 생략하고 버드 드와이어라 부른다.

Contents

1. 생애
2. 죽음
3. 이후
4. 영향
5. 대중매체에서


1. 생애

미국 공화당에 속했던 평범한 정치가이며, 1971년부터 1981년까지 펜실베이니아 주의 상원의원을 역임하고 1981년부터 1987년까지 펜실베이니아 주의 재무장관을 역임했지만, 연방을 무대로 활약한 정치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다지 관심을 끌 만한 정치인은 아니다.
여기까지 썼다면 그냥 그런 미국의 평범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했겠으나..

2. 죽음

그럼에도 버드 드와이어를 소개하는 이유는 버드 드와이어의 엽기적인 최후 때문이다.

1986년, 드와이어는 계약 관련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혐의까지 입증된 상황이었다. 만약 판결을 받았다면 징역 55년(당시 연령상으로 사실상 무기징역)에 추징금 30만달러가 부과될 상황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본인은 혐의를 줄기차게 부인했으며 판결 확정 전날인 1987년 1월 22일 아침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곳에는 TV촬영과 사진촬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드와이어는 준비된 글을 읽다가 갑자기 중단하고 측근들에게 편지를 나눠주었다. 그 편지는 세 가지였는데 하나는 자신의 아내에게 보내는 유서였고, 하나는 장기 기증 관련 및 기타 자료, 나머지 하나는 당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 편지를 준 다음 드와이어는, 노란색 계통의 마닐라지 봉투를 들고 거기에 든 것을 꺼냈다. 그것은 다름아닌 권총이었다.[1] 그 때까지만 해도 평온하던 회견장은 당연하게도 아수라장이 되었고, 주위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드와이어는 "불쾌하시다면 방을 나가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진정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정작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며 설득하자 드와이어는 손을 내저으며 자신을 말리지 말라고 했고, 바로 총구를 구개에 조준하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다. 드와이어는 즉사했다. 주위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으며, 진정하라고 소리친 사람도 있었다. 드와이어는 하필 구개에 조준하여 쐈던 터라 시신의 코에서는 피와 뇌척수액이 폭포 쏟아지듯이 나왔다. 생중계 상황이라 이 모든 상황은 여과없이 방송되었다.


자살 직전의 모습. 이 모습 이후 5초도 채 지나지 않아 드와이어는 자살하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자회견이 생중계되어 전국에 방송을 탔다는 것이다!! 당연히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2] 죽은 이후에는 자신의 고향에 묻혔다고 한다.

3. 이후

드와이어가 아직 파직당하기 전이라 가족들에게 128만 달러의 보상금이 돌아갔다고 한다. 사실 이는 드와이어의 자살 사유와 연관이 깊어 보이는데, 드와이어는 재판 비용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고 있었으며 형이 확정되어 파직당하면 가족들이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되고 더더욱 곤궁해지기 때문에 자살이라는 선택을 했다는게 현재의 중론이다. 비록 드와이어가 뇌물 수수라는 중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가족을 위해 자살했다는 점은 다소 측은해보이기도 한다. 물론 미국은 공직자의 비리에 대해 엄격하기 때문에 천하의 개쌍놈이자 흑역사 취급을 받고 있다. 죄에 대한 책임을 져도 모자랄 판에 결과적으로 100만 달러가 넘는 거금을 그것도 세금으로 유가족에게 바친 꼴이니...

그의 부인은 재혼하지 않고 살다가 2009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4. 영향

록가수 커트 코베인은 자살하기 직전 드와이어의 자살 비디오를 몇 번이나 되돌려가며 감상했다고 한다.

가끔 유튜브 등지에서 버드의 자살 영상을 보고 반응하는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사람이 종종 발견되는데 보는 사람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줄 수 있고 그 전에 명백한 고인드립이니 생각이 있다면 보여주지도 보지도 말자.[3][4] 언사이클로피디아에서도 그의 자살도중의 사진을 합성한 짤이 걸려있는데 한국의 별세한 일부 정치인들처럼 서구권에서 굉장히 민감한 요소이므로 멋대로 다루었다간 욕먹을 수 있으니 삼가하자.

5. 대중매체에서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였던 만큼 대중매체에서도 소재로 다루어졌다.

1995년 더스트리얼 락 밴드 가 이 사건을 주제로한 "Hey Man, Nice Shot"(어이 친구, 잘 쐈어)라는 곡을 냈다.

2010년에는 드와이어를 소재로 다룬 큐멘터리 영화가 나왔다.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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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스미스 & 웨슨 사의 모델 27로 357 매그넘 탄을 사용하는 모델이었다.
  • [2] 참고로, 1974년에도 크리스틴 처벅이라는 아나운서가 이런 생방송 자살을 일으켜 미국 전역을 뒤집어지게 한 적이 있었다.다만 이쪽은 사건이 일어난 방송국이 지방의 방송국이어서인지 다행스럽게도 자살 영상은 남아있지 않다.
  • [3] 덧붙여 이걸로 담력을 테스트하거나 키운다는 핑계로 보려는 사람도 있을까봐 적어두는데 PTSD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런거 본다고 당신의 담력에는 하나도 영향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당신의 정신건강만 해칠 수 있다.
  • [4] 실제로 이 반응 영상들의 댓글들을 보면 하나같이 찍은 놈은 소시오패스니 저런 놈은 씨를 뿌리지 말아야 한다느니 하는 비난 일색에 비추천이 추천의 10배를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