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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

last modified: 2015-04-12 00:39:50 Contributors


한화 이글스 No.37
배영수(裵英洙)
생년월일 1981년 5월 4일
출신지 대구광역시
학력 칠성초-경복중-경북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00~2014)
한화 이글스 (201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5번(2000~2014)
정회열(1999) 배영수(2000~2014) 타일러 클로이드(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37번(2015~)
앤드류 앨버스(2014) 배영수(2015~) 현역

2004년 한국프로야구 MVP
이승엽(삼성 라이온즈) 배영수(삼성 라이온즈) 손민한(롯데 자이언츠)

2004년 한국프로야구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정민태(현대 유니콘스) 배영수(삼성 라이온즈) 손민한(롯데 자이언츠)

2004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
심정수(현대 유니콘스) 배영수(삼성 라이온즈) 손민한(롯데 자이언츠)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2.1. 프로 입단
2.2. 삼성의 간판 에이스: 입단 후~2006 시즌
2.3. 비극의 시작: 2006년 팔꿈치 부상
2.4. 예상보다 빠른 귀환: 2008 시즌
2.5. 우려가 현실로.....: 2009 시즌
2.6. 희망고문: 2010 시즌
2.6.1. 2010년 말 일본 진출 시도
2.7. 끝나지 않는 희망고문: 2011 시즌
2.8. 에이스의 귀환: 2012 시즌
2.9. 9년만의 다승왕 복귀, 그러나…: 2013 시즌
2.10. 서로 상처만 받은 FA: 2014시즌
2.11. 새로운 팀에서 각오를 다지며... : 2015시즌
3. 투구 스타일
4. 이야깃거리
4.1. 야구 내
4.2. 야구 외
5. 연도별 주요 성적


진정한 강속구는 자신 있게 던지는 공이다. 난 요즘 어느 때보다 내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공으로 자신 있게 투구하고 있다. 난 아직도 강속구 투수다.

1. 개요

samsungbaeyoungsu.jpg
[JPG image (Unknown)]
남자는 등으로 말한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러나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푸른 피의 에이스

전 삼성 라이온즈, 현 한화 이글스 소속의 우완투수.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의 야구명문 경북고를 졸업했고, 역대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 중 가장 많은 승수를 챙긴 선수이며, 인간승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별명으로 삼성 시절의 푸른 피의 에이스,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전에서 30년 발언으로 비록 오해지만 한국에서 밉상으로 찍힌 스즈키 이치로에게 빈볼을 던져 얻은 배열사가 있다.[1] 또 한때는 "절정소년영수"에서 따온 CMB어떤 추리만화와는 무관하다 어떤 케이블방송사와도 무관하다로 삼성 팬들 사이에서 불린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사실 지금은 초절정 안경 미남이라 카더라 그리고 슬러거 유저 한정으로 배포크[2]란 별명도 있다.

물론 못할 때에는 얄짤없이 배영구[3], 더 내려가면 배민폐, 패영수, 배0승(...)으로 격하되며 심할 경우엔 패왕[4]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다만 아래 이야기거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배영수의 부진 원인이 06시즌의 역투다보니 삼성팬들이 배영수를 까는 경우는 거의 없다.였는데 최근에는 그만 선발에서 내리라는 말도 자주 보인다. 아무래도 신규 팬들의 유입도 있고 06시즌이 어땠든 지금 경기운영이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 과거가 어땠든 프로선수는 성적으로 말하는거다. 신규 팬들과 비판하는 팬들도 안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선두를 지키는데 자꾸 무너지기 때문에 배영수를 까는 거다. 그래도 애정있어서 까는거니까 이젠 애정도 없다. 오히려 삼성 팬이 까고 타팀 팬이 쉴드를 치는 판

성적과 컨디션에 상관없이 영쑤 라는 별명도 자주 쓰인다. 헤이 영쑤!

2014년 12월 3일 2명의 선발 용병과 윤성환, 장원삼이 선발로 4명의 선발이 확정 된 삼성에게 5선발 자리는 선발 유망주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있었고, 경쟁을 통해 지속적으로 출장 기회를 얻고 싶었던 배영수는 삼성에서 한화로 FA 이적한다.

2. 선수 생활

2.1. 프로 입단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았으며[5] 1999년 11월, 팀 고졸 역대 최고 계약금인 2억 5천만 원을 받고 입단했다.

2.2. 삼성의 간판 에이스: 입단 후~2006 시즌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입단한 그는, 이듬해인 2001년부터 13승을 거두며,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두며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특히,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기록했던 3년 연속 2점대 평균자책점은 2000년대 극심한 타고투저 속에서 거둔 기록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6] 비록 2006년 시즌엔 8승 9패로 비록 10승을 달성하진 못했다 하더라도, 팔꿈치부상을 가진 상태로 평균자책점 2.92(...)[7] 아니, 이게 사람인가?

2004년 17승 2패, 평균 자책 2.61로 다승과 승률 부문 1위를 기록하며, 선발 투수로는 14년 만에 정규 리그 MVP로 선정되었다. 특히 한국 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을 노히트노런 달성 기세로으로 던졌으나, 연장 11회초 권오준에게 마운드를 내주며 노히트노런 기록도 무산되고 말았다. 경기는 연장 12회까지 가서 시간 제한[8]에 걸려 무승부로 끝났고, 그의 10이닝 노히트 노런은 달성이 실패 되고 말았다. 안습

2.3. 비극의 시작: 2006년 팔꿈치 부상

배영수는 2006년 결국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다. 그리고 선뚱은 그런 그를 위해 등판을 늦추거나 하다가 시즌 말미에는 불펜진에 합류시켰다. 한국시리즈에서 2승 1세이브 1홀드를 기록한 배영수(이긴경기 모두 등판)였으나, 경기 후에는 팔꿈치가 안 펴지고 경기에 나서기 전에 진통제[9]주사를 맞아야할 정도로 그의 팔꿈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결국 한국시리즈 후에 토미존 수술을 받게 된다. 그러나 보통 선수들이 팔꿈치 인대가 늘어나거나 일부 손상된 상황에서 수술을 받는데에 비해, 배영수의 팔꿈치는 아예 끊어진 상태로 조브 클리닉 역대 최악의 상태였다고. 수술 소식을 들은 박찬호는 배영수에게 "(재활기간) 1년 생각해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게다가 배영수는 선천적으로 간수치가 높아 예정보다 2달 가량 늦게 수술했다. 하지만 당시 감독은 박찬호의 말을 씹어버렸는데...

2.4. 예상보다 빠른 귀환: 2008 시즌

수술 후 2007 시즌은 재활로 보냈는데 회복이 빠른데다 팔꿈치 통증이 없어 당초 예상보다 빠른 2008 시즌 전에 복귀했다. 평균구속은 130대 후반으로 떨어지고, 변화구 위주의 피칭을 하게 되었지만 9승 8패 평균자책 4.55로 부상 전만큼은 아니지만, 부상당했던 선수의 복귀 시즌 치고는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회복되지 않는 구속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던 한 해였다. #

2.5. 우려가 현실로.....: 2009 시즌

잃어버린 10km로 표현하는 그의 구속을 2009 시즌 들어서도 되찾지 않자 자신감을 잃어버렸고 성적마저 나빠지자 결국 5월, 1승 7패의 상태에서 계투로 강등되었다. 그리고 6월 11일에는 결국 2군으로 내려갔다. 7월 초 다시 1군에 합류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자, 결국 8월 18일에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2009년 최종성적은 23경기 75⅔이닝 1승 12패 평균자책 7.26

후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때 배영수는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었다. 하지만... #

2.6. 희망고문: 2010 시즌

2009 시즌 말 구속 회복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내용으로 다시 한번 설렘을 줬다.(정말 구속회복만 된다면 삼성은 선발 걱정할 문제가 없으니....)

그리고 2010년 4월 7일 344일만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정말 눈물의 감격. 이 기세를 몰아서 2010년 4월 13일 LG 트윈스전에서도 승리투수가 되었다. 오오… 배덕스여……

위에 나온 기사와 달리 실제로 구속은 회복되지 못했고 (안 되는 경우와 되는 경우의 비율이 절반 정도? 자세한 건 토미 존항목에서 수술 부분을 읽어 보도록. 임창용이 특이한 경우) 예전처럼 묵직한 구위를 앞세운 삼진쇼는 보여주지 못하지만 속구를 버리고 기교파 투수로 거듭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강타선을 보유한 두산, SK와의 대결 내용에 따라 완벽한 부활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듯하다.

4점대 후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전성기 시절보다는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지만, 최고 구속이 140km/h에 육박하면서 점차 구위를 회복하는 중이었다.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고, 아직 나이도 만 서른이 안됐으니 제 2의 전성기를 기대할 법했다.[10]

2010년 7월 15일 선발로 나온 경기에서 김상수가 클러치 실책을 두 번이나 하자 '상수야 상수야' 이름 두 번 부르고 괜찮다고 고개 한번 끄덕이고 다시 돌아가는 대인배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2010년 8월 22일 경기에서 구원등판해 2⅔이닝동안 무실점 투구를 하며 전광판에 146km를 찍고 시즌 6승을 챙겼다. 진짜 잃어버린 구속 10km를 드디어 찾는 것인가...!

2010년 최종 성적은 31경기 119⅔이닝 6승 8패 1세이브에 평균자책 4.74를 기록.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지던 2010년 10일 1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8:7로 불안한 리드를 지키고 있던 8회말 2사 3루 상황에서 7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⅓이닝 17투구수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8:7로 이겨서 배영수는 이날 세이브를 따냈다.
이 경기에서 거의 전성기급 구속인 최고 구속 147km/h, 포크볼은 140km/h까지 찍어서 삼성 팬들은 다시금 희망을 보았다.

배영수는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8⅓이닝 5피안타 4볼넷 1몸에 맞는 공 5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3.24, 1패 1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배영수는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경기 4⅔이닝 4피안타 1볼넷 2몸에 맞는 공 3탈삼진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3.86,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배영수는 2010년 포스트시즌 9경기 중 4경기에 등판하여 13이닝 9피안타 5볼넷 3몸에 맞는 공 8탈삼진 5실점 5자책점 평균자책점 3.46, 2패 1세이브를 기록했다.

2.6.1. 2010년 말 일본 진출 시도

2010 시즌을 끝으로 FA가 되는데, 한신 타이거즈에서 배영수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으나, 한창 좋았던 시절의 배영수만 알고 있는 한신 스카우트 말이나 당시 배영수의 상태를 보면 그저 찌라시에 불과할 가능성이 99%. 그리고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스카우터가 배영수의 피칭을 보기도 했다. 과거 배영수의 가능성을 보고 이런 관심을 보이는 듯 만약 배영수가 일본으로 간다면 제2의 임창용이 될지…….

결국 삼성에서의 잔류를 포기하고 가슴 뛰는 삶을 위해 일본프로야구 진출을 시도 중이라고 밝혔다. 영입에 가장 적극적인 팀은 야쿠르트 스왈로즈[11]한신 타이거즈가 있으나 투수진이 전체적으로 강력한 야쿠르트보단[12] 비교적 약한 편의 한신으로 갈 확률이 높았다.[13] 더구나 타격 면에선 한신이 야쿠르트보다 좋은 편.

마침내 결정된 곳은 야쿠르트로, 등번호까지 결정되었을 정도로 계약이 거의 다 되었는데 메디컬 테스트 결과 B형 간염 보균자라는 이유로 계약이 결렬되었다고 한다.[14]간 때문이야 이걸 계기로 배영수는 'B형수', 'B영수'란 별명을 얻었다. 안티들은 배영수가 대구출신이고 간염 보균자가 보니 상어를 삭혀 만든 경상도 대표 음식인 돔배기에 빗대 '돔배영수'(...)로 부르기도 한다.

결국 삼성과 FA계약을 체결했다. 2년간 옵션 포함 총 17억원으로 계약 조항에 해외진출을 원하면 조건없이 보내주는 조항이 있다고.

2.7. 끝나지 않는 희망고문: 2011 시즌

4월 10일 SK전과 4월 17일 두산전, 4월 23일 넥센전에서 승리함으로써 3연승을 거두었다. 삼성팬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5월 1일 한화전에서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고도(장성호에게 맞은 투런홈런도 실투가 아니었을정도로 좋은 볼을 던졌다.) 팀 타선이 1점밖에 내지 못해 패전투수가 되었다. 가뜩이나 삼성타자들이 부진한데다가, 한화 선발투수가 류현진이었는지라... 지못미. 본인은 최선을 다해 던졌기 때문에 아쉬움도 후회도 없다고 한다. # 여담으로 이 날 경기는 철저히 투수전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5시에 시작해 7시반에 끝나는 기염을 토했다. 타 구장엔 5회말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곳도 있을정도로.

5월 말까지 좋은 성적을 기록하나, 6월부터 다시 부진하기 시작해 7월 말까지 다시 기나긴 부진이 시작된다. 이 기간에만 승리 없이 3패... 평균자책점도 3점대 중반에서 5점대 중반까지 상승하고 만다.아, 앙대!!! ㅜ.ㅜ

그렇게 계속된 부진에 늪에서 헤매이다가 8월 7일 사직 롯데 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하며 무려 77일만에 승수를 추가하였다. 곧 태어날 아이(태명은 부활이)에게 결코 부끄럽지 않을 아빠의 힘으로 명투구를 선보여 팀을 위닝 시리즈로 이끌어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승으로 이기던 2011년 10월 28일 인천 문학 경기장에서 열린 SK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 팀이 1:2로 지고 있던 8회말에 등판하여 정근우에게 안타, 박재상에게 희생번트, 최정에게 유격수 땅볼 진루타를 허용, 2사 3루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다음 투수인 권혁임훈운 좋게도 3루수 라인드라이브로 잡아내어 이닝을 끝낸 덕분에 배영수의 실점과 자책점은 없었다.

한국시리즈에서 10이닝 노히트노런 달성을 실패했던 선수가 세월이 흘러 지고 있는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여 3타자만 상대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배영수의 이날 성적은 ⅔이닝 15투구수 1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으로, 이날 경기가 배영수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가 되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2.8. 에이스의 귀환: 2012 시즌

에이스의 재림

해당 항목 참조.

2.9. 9년만의 다승왕 복귀, 그러나…: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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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 구단 체제 이후 최초로 8개 구단 상대 승리투수가 된 경기.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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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엘리트 영수 탁재훈닮았다 탁재훈도 원래는 배씨다

누가 배영수를 패왕이라 했는가
에이스라 하기에는 성적이 모자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 선발진의 한 축으로 꾸준히 뛰면서 2004년에 이어 또다시 공동 다승왕을 수상했다.

해당 항목 참조.

2.10. 서로 상처만 받은 FA: 2014시즌

2014년 6월 25일, KBO 통산 120승 달성

준수한 5선발로 활약했으나 시즌 후 FA 협상장에서 삼성으로부터 최초 2년, 최종 2+2년을 제시받고 우선협상이 결렬됐다.삼성이 최종 3+1을 제시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근거 제시 바람. 어떤 경우든 최초 2년 제시는 확실하다. 무옵션에 바로 가치를 보장받은 동갑 윤성환이나 백업인 조동찬보다도 못한 대우에 실망한 나머지 "기회를 원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FA시장으로 나갔다. 이런 상황이 안타까운 팬들은 지역 신문에 배영수를 위한 광고를 걸고 있는 상황.

결국 한화로 확정. 3년 21.5억의 값으로 결정됐다. 그 과정에서 직원이 안지만, 윤성환 등의 계약을 하는데 배영수를 1시간 동안 멍하니 기다리게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배영수 '길었던 1시간' 그리고 한화행[15] 배영수는 실수라고 감싸주고 있지만 사실상 필요없어진 직원을 모멸감을 줘서 제발로 나가게 할 때 쓰이는 흔한 수법이라 온전히 실수라고 보는 것은 순진한 시각일 것이다. 상식적으로 수십억짜리 계약 앞두고 삼성 직원이 클라이언트 1시간 기다리게 해서 계약 파토 나면 그 직원 목이 무사할까? 삼성이 그렇게 허술한 기업인가? 심지어 또 다른 기사에서는 저녁에 경산볼파크에 왔다가 허탕치고 10시에 불러서 다시 나갔다고 하니, 1시간이 아니라 몇시간씩 방치되었던 것이다. '한화행' 배영수 "광야에서 기다림을 배웠습니다"

그리하여 배영수는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바로 전화를 걸어 "힘드냐"고 다독여준 김성근 감독, 그리고 단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직접 찾아가서 성의를 보인 한화 이글스로 데뷔 후 14년만에 팀을 이적하게 되었다. 그리고 2대 참교육자하고도 한 팀이 될 뻔했다. 김성근 감독 “영수야, 야구 오래해야지”… 배영수 “예, 감독님”

배영수가 삼성을 떠날 수 밖에 없던 이유라는 기사에서 정리된 바에 의하면 연간 금액으로 따지면 삼성과 한화가 제시한 액수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또한 일부의 루머와 달리 배영수는 "내가 구단 측에 선발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협상 과정에서 수치심까지 느꼈다고. 배영수 CBS 인터뷰 전문 참조. 팬들이 지역신문에 낸 광고를 보고 너무 감사하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다만 이 인터뷰 내용은 이틀 전 그가 한 "누구도 원망 안한다. 정말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오해는 없다."라는 발언과는 배치되는 내용이라 그 사이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발언으로 그동안 그의 잔류를 위해 응원했던 삼성 팬들은 배신감을 느꼈는지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는 완벽하게 돌아섰고, 배영수를 옹호하던 MLBPARK 내의 삼성팬들마저 떨어져 나가버렸다. 계약 조건으로 보았을 때 삼성과 한화 각 구단에서 제시한 내용은 선발 기회 보장을 제외하면 삼성이 한 수 위였다. 이 때문에 삼성 팬들의 반응도 반반 갈라져서 '삼성이 배영수를 버렸다' vs '배영수가 삼성을 버렸다' 이런 대립구조를 이루는 중...이었지만 위의 저 기사로 인해 후자 쪽이 더 지지를 받게 되었다. 저 기사로 인해 배통수라는 불명예 별명까지 생겨버렸다.(...)

안현호 단장은 이와 같이 해명하였는데, 우선협상기간마감을 2시간 남기고 사람을 불렀으니 오는데 30분, 10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1시간을 기다리게 했다는 것이다. 조동찬도 기다렸다고 변명했지만 저녁에 계약한 조동찬과 마감 1시간 30분을 남기고 불려와서 마감 30분전까지 방치된 배영수의 심정이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 심지어 "트레이드로도 돌아올 수 있다"라는 발언을 남겨 야구팬덤 전체로부터 무개념이라고 엄청나게 까였다.


저 사진에 2014년 성적을 붙였으면 좋겠는데...
이 사태는 KBS 9시 뉴스에도 실렸다. ‘배영수마저…’ 삼성, 레전드★ 홀대 재현?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사건이 오롯이 한 의견으로만 정리되는게 아닌 것일 뿐이지 어느 쪽이 맞다고 보긴 힘들다. 그리고, 10억이 넘는 보상금(+보상선수)을 남기고 떠나는 배영수.

12월 15일 보상선수로 정현석이 지명되었으나... 선수 개인 사정과 삼런트의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삽질로 인해 결국 연봉 300%의 보상금으로 받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정현석 항목 참고.

3. 투구 스타일

2004년에는 10이닝 노히트노런을 기록할 뻔 하거나 2005년에는 최다 이닝 4위 등 완투 능력이 있었고, 2006년에는 팔꿈치 통증에도 불구하고 선발, 불펜을 오가는 등 연투 능력도 있었지만…… 지금은 옛말이 되었다.

전성기였던 2006시즌까지는 평균 140대 중반, 최고 153km/h의 속구[16], 140 초반대의 슬라이더, 130 후반대의 포크볼, 단 세 가지의 구질로 타자를 윽박질렀다. 투구 스타일만 보면 딱 존 스몰츠의 다운그레이드버전.

팔꿈치 부상 이후에는 대개 10km/h씩 구속이 줄었다. 이 때문에 나온 말이 잃어버린 10km. 이 때문에 예전처럼 타자와 정면승부하기보다는 변화구 등으로 맞춰잡는 스타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속구는 평균 130대 후반으로 줄었지만, 특이하게도 슬라이더는 130대 초중반대로 속구와 몇 킬로 차이나지 않는다. 구속이 줄어든 시점에서 그나마 다행인 부분.

원래 던지던 3개의 구종 외에도 부상 이후로 서클체인지업, 싱커(혹은 투심, 각 기사마다 다름)를 추가했고 2011 시즌에는 커터 추가도 시도했다.# 이외에도 2008년 포스트시즌 때는 너클커브를 던졌으며,# 2013년 8월경에는 너클볼까지 선보였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새 인대가 자리를 잡으며, 2013년에 접어들면서 속구 구속이 다시 150km대까지 올라오기 시작했다.

팔꿈치 부상 후로 기복이 많이 심해졌다. 잘 던지는 날에는 그야말로 알짤없이 호투, 컨디션 안 좋은 날에는 엄청나게 털리는 경향이 많아졌다. 유독 그가 나오는 날에는 실책이 좀 잦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라 그렇게 흔들릴 투수는 절대로 아닌데도 그런 경향을 보이는 건 좀 미스터리...

4. 이야깃거리

4.1. 야구 내

  • 펠릭스 호세빈볼로 얽힌 악연으로 유명한데, 2001년 9월 18일 마산 롯데에서 호세에게 빈볼성 투구로 볼넷을 준 뒤 후속타자인 얀에게 또 다시 빈볼성 투구를 계속 던져[17] 허리를 맞추자 얀이 분노, 심판이 말리고 있는 사이 1루에서 분노한 호세가 달려와 죽빵을 후려갈긴 사건이다.입단 첫 해에는 영감님한테 죽빵을 뒤지도록 강타당했다. 그래서 그런지 호세한테 그렇게 쳐맞고도 멀쩡했다.[18]



    헤이 영쑤!! 돈 두댓!
    이, 이것이 흑형인가.

    이 사건으로 펠릭스 호세가 출장 정지를 먹자, 우용득 당시 롯데 감독대행은 다음 날 호세를 1군에서 말소하고 이 선수를 1군에 처음으로 등록한다.

  • 그리고 이후 임독이맥이 뚫린 배영수가 성적이 좋아지자 호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참교육자" 라는 말과 함께 그의 죽빵을 강타한 펀치는 "참교육"으로 불렸다. 타팀 팬들이 자기 팀의 못하는 선수를 보고 죽빵을 때려달라면서 "참교육 한 번만 시켜주세요" 라고 말한다. 장난인 줄 알았지만 방망이까지 들고 나와서 온몸으로 거부했던 신승현이 그렇게 됨으로써 완벽한 "참교육자"가 되어 버렸다.

  • 2013년 8월 8일 대구 한화전에서 선발 등판해 6과 ⅔이닝 동안 3실점으로 틀어막고 승리를 추가하였는데, 이로써 배영수는 통산 112승째를 따내 김시진삼성 라이온즈에서 현역 시절 기록했던 111승을 뛰어넘어 삼성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 2006년 WBC에서 스즈키 이치로에게 던진 공은 아예 해설이 일부러 맞춘 것 같다고 대놓고 말했지만 그때 한창 30년 발언 덕에 이치로에 대한 반발심이 들끓을 때라 '열사' 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환영받았다. 당시 구대성과 짜고서 일부러 맞춘 거라고 밝혔다. #

  • 이러니저러니 해도, 21세기에 들어선 후 삼성은 2014년초를 기준으로 7회 우승 중 6회가 배영수가 데뷔한 후 달성한 것이고, 이승엽이 떠난 2000년대 중반의 삼성의 최대 흥행카드이기도 했다.

4.2. 야구 외

  • 정수근과 묘하게 외모가 닮았다. 그 덕분에 예전에 부산 원정을 갔을때 부산 사람들에게 정수근으로 오해받아 싸인요청까지 받았더라고 한다. 본인은 정수근으로 오해받은 덕택에 밥을 공짜로 얻어먹게 되어서 좋았다라고…… 그 때문에 한때 붙었던 별명이 배수근
그런데 정수근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면…

  • 이대호처럼 어린시절이 상당히 불우했던 선수 중 하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이혼해서 도망치고 할머니와 누나가 함께 돌봐줬다고 한다. 그러나 2005년 4월 2일 롯데와의 시즌 개막전 때 완봉승을 챙기는 날 임종하셨다고 한다. 이 날 경기할 때 모자 챙 안쪽에다 '할머니 생각'이라고 써놓았다.


  • 위에 기술된 부상과 재활 과정 때문에 비슷한 과정을 걸었던 전 두산 베어스의 투수 이경필이 배영수에 대해 염려하기도 했다.

  • 김응룡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사장직에서 물러나며 한 인터뷰에서 그가 있었던 팀에서 생각나는 선수 3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선동열, 이종범, 그리고 배영수를 꼽았다.

  • 삼성팬들은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자신의 팔꿈치를 희생해가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배영수에게 영구까방권을 부여해주었다. 이후 토미존 수술 후유증으로 극도의 부진으로 빠졌을때도 비난의 목소리 하나없이 묵묵히 배영수를 지지해주었다. 2012년 배영수의 부활은 3년동안 영구까방권을 사용해준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팬이라면 배영수를 절대 까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을 정도. 그럼에도 배영수를 깐다면 '올림픽 금메달 이후에 야구 보기 시작한 뉴비' 취급을 당한다. 다만 2014년 FA 협상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상황이 다소 달라져 신규 팬이든 올드 팬이든 배영수를 더 우선시하는 팬과 삼성을 더 우선시하는 팬들로 갈려 까방권도 퇴색되고 있다.

  • 2010년 12월 19일에 탤런트인 규휘(본명 박성희)와 결혼하여 현재까지 딸 2명을 낳았다. (딸바보 등극)

  • 1981년생으로 2011년 기준 만 30살이지만, 워낙 어릴때부터 활약했던 것과 함께 손민한, 박명환과 더불어 2000년대 우완 3대 에이스로 불렸던 것 때문에 노장 이미지가 있다. 그가 등판했던 4월 23일 넥센전의 선발투수는 그와 동갑이자 같은 해에 프로입단한 김성태였는데, '베테랑 배영수와 신예 김성태의 선발대결' 이라는 방송 멘트가 나오기도... 심지어 어떤 팬은 그에게 배영수 선수 이제 40살 가까이 되었지요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지못미. 본인도 이에 불만이 많아서, 기자들에게 제발 자기 이름 앞에 '베테랑', '노장' 이란 단어를 쓰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다. 노장이 아닐 뿐 베테랑은 맞지만.

  • 개인통산 100승 달성 후 인터뷰에서 고마운 사람으로 가족 다음으로 참교육자 호세 배우 박재정을 언급했다. 배영수와 호세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인가 보다 경북고 동문으로 박재정이 1년 선배인데, 박재정이 배영수 결혼식 사회를 봐줬을 정도로 친한 사이라고.

  • 버스커 버스커의 장범준과 닮았다.

  • 성우 엄상현과 묘하게 닮았다.

  • 2013년 3월 30일 두산과의 개막전에서 오재원과 김현수에게 만루홈런을 맞는 개만두를 시전하였는데 그 다음 등판인 4월 7일 NC전에서 "개만두 아십니까. 저, 개만두 됐습니다. 개만두!"라고 기자들한테 말하면서 웃었다고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배영수의 멘탈이 어떠한지 잘 알 수 있는 일화 중 하나그리고 깨알같은 선배 박찬호의 디스까지.#

  • 배영수 아줌마[19], 배영수 이모, 꽹가리 이모 등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유명한 팬이 있다. 항상 배영수 유니폼을 입고 와서 꽹가리를 두들기며 응원하는 중년 여성으로 아들이 배영수와 동갑이라서 배영수를 응원한다고 한다. 삼성팬들에게 워낙 유명인사였던 지라 2014년 7월 29일 경기에서는 삼성 구단에서 이 배영수 이모를 시구자로 선정하기도 했다.기사 하지만 이 날 경기는 차우찬핵폭발 하면서 패배...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0 삼성 라이온즈 25 45⅓ 0 2 0 0 0.000 6.75 59 9 24 32 36 34 1.765
2001 35 169⅔ 13 8 0 0 0.619 3.77 169 11 97 96 82 71 1.521
2002 22 81⅓ 6 7 0 0 0.462 5.53 94 13 48 63 55 50 1.684
2003 30 163⅔ 13 5 0 0 0.722
(5위)
4.51 174 11 84 99 85 82 1.534
2004 35 189⅔
(3위)
17
(1위)
2 0 0 0.895
(1위)
2.61
(3위)
163 6 85 144
(4위)
65 55 1.250
2005 31 173
(4위)
11 11 2 1 0.500 2.86
(2위)
148 10 59 147
(1위)
61 55 1.133
2006 32 157⅓ 8 9 0 4 0.471 2.92 142 13 47 133 56 51 1.144
2007 1군 기록 없음
2008 27 114⅔ 9 8 0 0 0.529 4.55 127 15 41 71 59 58 1.439
2009 23 75⅔ 1 12 0 0 0.077 7.26 106 18 29 40 73 61 1.692
2010 31 119⅔ 6 8 1 0 0.429 4.74 136 11 45 64 69 63 1.446
2011 25 103 6 8 0 1 0.429 5.42 127 5 33 47 67 62 1.495
2012 26 160 12 8 0 0 0.600 3.21 159 7 42 89 64 57 1.238
2013 27 151 14
(1위)
4 0 0 0.778
(2위)
4.71 193 9 52 101 83 79 1.530
2014 25 133⅔ 8 6 0 0 0.571 5.45 171 14 44 111 87 81 1.571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5 한화 이글스 - - - - - - - - - - - - - - -
통산(15시즌) 394 1837⅔ 124
(현역 1위)
98 3 6 0.559 4.21 1968 152 730 1237 942 859 1.414

역대수상
년도 수상내용
2004년 정규시즌 MVP
골든글러브 투수부분 수상
2012년 사이영수상

완투, 완봉기록
년도 완투 완봉
2003년 1완투
(8위)
0완봉
2004년 4완투
(1위)
2완봉
(1위)
2005년 2완투
(3위)
1완봉
(2위)
2012년 2완투
(5위)
0완봉
2014년 1완투 0완봉
통산 10완투 3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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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모바일 게임인 게임빌 프로야구/2011에서도 배영수의 이름이 배열사로 나온다.
  • [2] 이거 때문에 배영수가 정통포크를 던질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배영수의 포크는 반포크성으로 스플리터에 가깝다. 떨어지는 각도는 적지만 스피드는 빠른.
  • [3] 왠지 모르게 순박해보이는 외모에 이름이 비슷하기도 해서인지 평상시에도 애칭으로 배영구라고 불리는 일도 있다.
  • [4] 말 그대로 王. 특히 1승 12패를 기록한 2009년이 절정이었다.(...)
  • [5] 애초에 당시 대구상고의 에이스였던 장준관이 1999년 대구 개막전 시구자로 나서며 이미 1차지명은 장준관으로 정해져 있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장준관이 계속 슬라이더 위주의 피칭을 했던데다 지명을 앞두고 계약금을 올리고자 미국으로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삼성에선 배영수로 선회했다. 그리고 장준관은 모 팀으로 드래프트 지명이 되는데...
  • [6] 하지만 2006년은 극도의 투고타저...
  • [7] 2007년 윤석민, 2008~2009년 봉중근, 2012년 류현진의 원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팀 타선 지원을 받지 못했다. (2006년 득점지원율 0.97) 무려 1점도 되지 않는다!! 뻥뻥 터지던 삼성의 타선은 이상하게도 배영수가 등판하던 날엔 버로우탔다. 문제는 현재까지도 그런다는 거. 그러나 2013년 드디어 타선지원을 받게 되는데...
  • [8] 당시에는 경기 시작 후 4시간을 넘기면 새 이닝을 시작할 수 없게 했다. 결국 2004년 한국시리즈는 역대 한국시리즈 중 제일 길게 간 시리즈였고 무승부가 제일 많은 시리즈가 되었다.
  • [9] 흔히 대포주사라고 알려진 데포메드롤로 현재는 금지 약물로 지정된 상태. 그런데 대포주사에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물질인 메틸프레드니솔론이 포함되어 있다. 쉽게 말해 약쟁이
  • [10] 2008시즌, 2009 시즌과 비교해봤을 때 피홈런 개수가 준 것이 결정적으로 보인다.
  • [11] 임창용의 야쿠르트행을 주선했던 매니저와 만났다고 한다.
  • [12] 주요 선발진으론 이시카와 마사노리(13승 8패), 사토 요시노리(12승 9패), 타테야마 쇼헤이(12승 7패), 무라나카 쿄헤이(11승 10패) 등이 있고 주요 불펜진으론 마쯔오카 케니치(34홀드), 마스부치 타츠요시(20홀드), 오시모토 타케히코(16홀드), 임창용(35세이브) 등 리그 수준급의 투수가 넘치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주전경쟁 하기가 영 쉽지 않을 것이다.
  • [13] 어디까지나 비교적이다. 최소한 선발로는 쿠보 요시모토(14승 5패), 제이슨 스탠드릿지(11승 5패)가 있고 불펜진으론 쿠보타 토모유키(28홀드), 니시무라 켄(14홀드), 후지카와 큐지(28세이브)가 있다. 어딜가든 쉽지않다.
  • [14] 원래 배영수는 선천적인 이유로 간 수치가 높다고 한다. 그것때문에 2006년 시즌끝나고 수술을 미룬것.
  • [15] 작성한 기자가 기자인 만큼 걸러서 볼 필요가 있는 기사.
  • [16] 특히 속구는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테일링이 걸렸을 정도
  • [17] 훗날 배영수가 말하길 당시 슬라이더가 손에서 빠지는 바람에 그런 거라고 해명했다. 호세는 벤치에서 사인도 있고 해서 계속 몸쪽으로 던진 거고.
  • [18] 배영수가 마운드에서 날아갈 정도로 세게 맞았다. 이후 공 집어던지려다정말 던졌다간 죽을까봐 참았다고.
  • [19] 현지 대구쪽의 삼성팬들이 부르는 애칭은 영수아지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