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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

last modified: 2015-03-24 14:11:43 Contributors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중절모 방정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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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일본풍 옷을 입은 방선생님 허각??

방정환(方定煥, 1899.11.9 ~ 1931.7.23)

호는 Sofa소파(小波).

어린이라는 말을 만드시고, 나아가 어린이날도 만드신 분.[1]

공식 홈페이지로는 한국방정환재단http://www.korsofa.org/이 있다.

종로의 당주동[2]에서 태어났다. 종교는 천도교다.[3] 천도교와 관련한 각종 기관에서 일했을 뿐만 아니라, 천도교 제 3대 교주 손병희의 딸과 결혼해 사위가 되었으며, 장인 손병희의 권유로 보성전문학교[4] 법과에 입학했다. 고대 법대생들의 선배가 된다 천도교 기관지인 "개벽"에 아동문학을 연재하기도 했다. 이후 서울에서 천도교 소년회를 만들고, 최초의 순수아동잡지인 월간 "어린이"를 창간하고 도쿄에서 어린이 문제를 연구하는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고 어린이날을 만드는 등 활발한 어린이 교육 사업을 전개했다.

그는 지나치게 상하관념과 나이를 중시하는 유교 문화권 아래서 사회적 약자들인 어린이들이 천시와 억압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또한 일제강점 치하에서 조선 사람의 미래는 어린이들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했고, 그에 따라 방정환 선생은 실제로 어린이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하자!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아동인권 존중의 역사, 한국서 먼저 태동"

주로 외국 작품을 번역하였으며 그중 유명한 작품이 사랑의 선물이라는 외국 작품 모음집이었다. 물론 본인이 써낸 소설은 더 많다. 여러가지 가명[5][6]을 사용해서 수많은 작품을 써냈다. 신문과 잡지에 수필도 많이 기고했다.[7]

하지만 너무 열성적으로 활동한 나머지[8] 1931년에 과로와 비만, 거기다가 엄청난 헤비 스모커였던 탓에 지병인 고혈압이 악화되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동아일보의 신동아 창간으로 인해 "개벽"의 판매 조직이 와해되면서 스트레스가 겹쳐 화병으로 별세하였다. 향년 33세(...). "문간에 검정 말이 모는 검은 마차가 날 데리러 왔으니 가야겠다.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진만 봐도 상당히 살이 찐 것을 알 수 있는데, 본래 몸이 상당히 허약하였기에 장인인 손병희가 보약을 많이 먹였고 그로 인해 살이 쪄버렸다고 한다. 너무나도 뚱뚱해서 맞는 허리띠가 없었고 택시를 탔는데 너무 무거워서(...) 택시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친일파라는 소문이 있지만 실은 그냥 일본의 문학가 이와야 사자나미를 존경해서 그의 이름을 호로 썼다는 소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소파란 호는 잔잔한 물결처럼 천천히 어린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겠다는데에서 유래했다고 방정환이 밝힌 바 있다. 설령 진짜 존경해서 그랬어도 개인으로서 어떤 인물을 존경한것이 친일과 바로 연결되는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방정환은 개인적으로도, 일제의 검열 때문에 많은 글들이 뭉텅뭉텅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었다.

이야기 하는 재주가 매우 뛰어났다고 하며 일본 경찰의 의심을 받아 감옥에 갔을 당시 죄수들에게 얘기를 너무 재밌게 해 줘서(슬픈 이야기를 하면, 몰래 이야기를 듣던 간수들도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나중에 석방될 때 다른 죄수들(+간수들)이 그를 못 가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리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강연회에서 '난파선'이라는 이탈리아 동화를 번안해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모든 어른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든 관객도, 심지어는 감시차 방문했던 일본경찰도 눈시울을 적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문제는 방정환 선생님이 그날따라 물을 많이 마셔서 오줌이 많이 급했는데, 이야기를 끝내고 황급히 화장실을 가던 차에 아이의 어머니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느라 바지에 실례를 조금 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방정환의 묘는 중랑구 망우동의 망우동공원에 있는데, 묘가 특이하게도 돌무덤이다. 봉분 대신에 자연석들을 두르고 그 위에 묘지석을 얹어놓은 형태. 그의 묘비에는 '동심여선(童心如仙, 아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9]는 글씨가 크게 써 있고, 밑에 '어린이의 동무 소파 방정환의 묘'라고 쓰여 있다. 방정환의 묘비명인 '동심여선'은 맹꽁이 서당의 작가인 윤승운 화백이 사인을 할 때마다 반드시 사용하는 글귀이다.

의외로 정치적으로는 온건한 사회주의자, 최소 진보주의자였다. 아이들에게 인권의 개념을 도입한 것부터 원래 그러긴 했지만, 핵가족, 단추를 쓰는 개량한복], 양성평등론, ‘딸 있어도 학교에 안 보내겠소'와 같은 대안 교육의 주장 등에서 진보적인 측면이 드러난다. 그의 동료였던 백조동인(카프로 이어짐)이나 일본 유학 시절의 김찬(후의 자생적 공산조직 화요회의 수장이 됨) 등도 사회주의자가 많았다. 다만 어디까지나 친숙했단 것이지, 사회주의 활동을 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1980년 대한민국 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10년 후인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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