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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last modified: 2017-06-23 12:02:30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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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기
공식명칭 방글라데시 인민 공화국
(গণপ্রজাতন্ত্রী বাংলাদেশ[2], People's Republic of Bangladesh)
면적 147,570km²
인구 1억 6,332만 명[3]
수도 다카
정치체제 공화제
국가원수 압둘 하미드 대통령
정부수반 셰이크 하시나(শেখ হাসিনা) 총리
명목 GDP 1,049억 $, 1인당 638$(2010)
GDP(PPP) 2,586억 $, 1인당 1,572$(2010)
수출 225억 $(2011)
수입 300억 $(2011)
가신용등급 BB-(S&P)
공용어 벵골어
국가(國歌) 나의 금빛 벵골(আমার সোনার বাংলা)[4]
화폐단위 따까(Taka, B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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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인구
3. 자연
3.1. 지리
4. 역사
5. 사회
6. 문화
6.1. 스포츠
7. 산업
8. 국기
9. 외교 관계

1. 개요


인도 공화국 동북지역 벵골 만 연안에 자리잡은 국가이며, 정식국명은 '방글라데시 인민 공화국(গণপ্রজাতন্ত্রী বাংলাদেশ, 고노쁘로자똔뜨리 방라데시)'. 수도는 다카(ঢাকা, Dhaka). 국명의 어원은 벵골어로 벵골 지역이나 벵골어를 가리키는 말인 방라(বাংলা)와 나라를 의미하는 데시(দেশ)를 합친 단어이다.

2. 인구

국토 면적은 144,000km2로 그다지 큰 편은 못되지만 인구는 2011년 기준 약 1억 4,232만 명으로 방글라데시보다 영토가 120배나 큰 러시아(1억 4,193만명)보다도 인구가 많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로 꼽힌다. 인구밀도가 1,000명/km2에 육박하며 이는 한국의 울산광역시, 경기도와 비슷한 정도. [5]

게다가 앞에 나온 국가 설명의 '인구'란의 주석을 보면 1억 6,000만 명까지 올라갈 수도 있는데, 이대로라면 인구밀도는 1,100명/km2 정도가 되게 된다. 게다가 2050년이면 인구가 2억 5,000만 명까지 증가한다는데, 그러면 인구밀도는 1,737명/km2가 되고 2050년의 러시아보다 인구가 2배 가까이 많게 된다. 흠좀무.[6]

국가로 인정받는 나라를 대상으로는 모나코, 싱가포르, 바티칸, 바레인, 몰타, 몰디브에 이어 7위이나, 적어도 국토면적 1만㎢를 넘는 국가 중에선 1위이다.

다만 국토 대부분이 평야지역인데다 국토 면적의 60% 이상이 경작지라서 경지면적당 인구밀도는 한국, 대만보다 낮다.

그나마 출산율은 엄청 줄였다. 1970년대 해도 한집당 6.6명이라는 가공할 출산율을 보여 당시 중국의 5.1명이나 인도의 4.5명을 넘어섰던 걸 여러모로 노력하여 출산율을 세대교체율 2.1명을 약간 웃도는 수준(2.3명)으로 줄였다. 고로 1980년대 이후로 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보다 인구가 많아졌다.

민족측면에서는 대부분이 골인인 사실상 단일민족국가이다. 인도가 분할되는 과정에서 다른 지방의 무슬림들이(특히 비하르 주 출신의 비하리인) 소수 이주해오긴 했지만 워낙 벵골인의 인구가 많아서 비율은 얼마 안됐고, 방글라데시 독립전쟁때 다른 민족인 무슬림들은 파키스탄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비하리인은 전쟁 직전에 100만여명이 살고 있었으나 상당수가 파키스탄으로 이주하였고, 15만명은 피난을 갔다가 난민촌에 살면서 파키스탄 국적도 방글라데시 국적도 얻지 못한 무국적상태에 있다가 2009년에 대법원 판결에 의해국적을 부여받았다. 그 결과로 지금은 동부에 거주하는 불교계 소수민족 원주민들이 비하리인보다 많아졌다.

3. 자연

영토 자체가 다우지(多雨地, 비가 많이 오는 곳)에 자리잡은 데다 과도한 플랜테이션으로 인한 환경훼손까지 겹쳐져서 엄청난 대홍수를 겪는 국가가 되었다. 연평균 1.6건이 발생하는 사이클론과 이 대홍수 때문에 하구의 비옥한 삼각지가 다 쓸려나가서 농업에도 큰 손실이 났다.그래서 이를 두고 대홍수에 대해 홍수가 한번 날 때마다 영토가 줄어든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매년 약 0.4%씩[7] 영토가 줄어들고 있다.

이 때문에 부레옥잠 해상 농법을 시험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홍수로 늘어나는 호수에서 아예 집을 짓고 부레옥잠밭을 통하여 식용 호박류를 재배하는데 성공하여 그것을 재배하고 팔면서 생계수단으로 삼자는 것. 더불어 부레옥잠은 이나 염소같은 가축 먹이로도 나쁘지 않다.

또 이런 상황 때문에 2030년까지 2,000만 명후 난민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3.1. 지리

남쪽엔 벵골만에 접해 있고 여기를 통해 인도양으로 향한다. 그리고 국경의 대부분이 인도와 접해 있지만 동남쪽에는 미얀마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고, 직접 국경을 접하지 않지만 가까운 주변국으로는 네팔, 부탄, 중화인민공화국 등이 있다.


4. 역사

근대 이전의 역사는 옆나라 인도 벵골 지방의 역사와 겹친다. 수천 년 전부터 문명이 존재했으며, 마우리야 왕조나 굽타 제국, 팔라 제국 등의 영향권에 들어갔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방글라데시는 인도와 특별히 구분되진 않았으나, 12세기 아랍인 상인들에 의해 이슬람이 전파되기 시작해 이후 벵골 동부는 무슬림이 다수를 이루게 되었다. 이후 무굴 제국의 영향권에 들어갔고, 18세기부터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에도 방글라데시는 인도의 벵골과 구분되지 않다가 1905년 무슬림이 많은 지역인 현 방글라데시 지역이 분리되었다. 분리된 목적은 명목상 행정상 편의를 위해서라고 했으나, 실제론 벵골 지역의 독립운동에 종교로 분열을 일으키려는 목적이었다. 벵골인들은 이것에 대해 반대운동을 일으켰고, 이것이 인도 전역으로 퍼지자 결국 영국은 얼마 안가 벵골 분할령을 철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힌두교도와 무슬림의 분쟁은 피할 수 없었다. 힌두교도가 주도한 국민회의는 무슬림을 은근슬쩍 무시하게 되자 무슬림들은 전인도 무슬림 연맹을 창설한다.

1947년 힌두교도가 주류인 인도 공화국과 무슬림이 주류인 파키스탄이 종교적 이유로 따로 독립하면서 무슬림이 대다수였던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에 들어갔다. 이렇게 방글라데시는 동벵골(পূর্ববঙ্গ), 혹은 동파키스탄이라는 이름으로 파키스탄과 한 나라가 되었으나 영토가 인도에 의해 분리되어 있었으며[8], 내부적으로도 파키스탄 정부가 동벵골(방글라데시) 주민들을 차별대우하기도 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은 언어까지도 서로 달랐다. 방글라데시에서 많이 쓰는 벵골어 대신 파키스탄에서 쓰이는 우르두어를 쓰라고 하면서 다카 대학교 학생들이 반발시위를 벌이자[9] 군인들이 가서 폭력으로 누른 것이 방글라데시인들에게 자극이 되었고, 벵골인들은 아와미 연맹을 결성한다.

1970년 역사상 가장 큰 인명피해를 준 열대성 저기압인 사이클론 볼라가 방글라데시를 내습해 5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파키스탄은 받은 원조물자를 불공평하게 배분해 방글라데시인은 분노했다. 그리고 1970년 방글라데시 독립을 주장하는 아와미 연맹이 파키스탄 총선에서 압승해 사실상 제1당이 되자[10] 파키스탄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동벵골 지역에선 정부의 총선 무효화에 항의하는 폭력적인 시위가 벌어지자 파키스탄 대통령은 방글라데시로 와 아와미 연맹의 당수 무지부르 라흐만(মুজিবুর রহমান)을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파키스탄군이 만행을 저지르는 가운데 결국 아와미 연맹의 당수 무지부르 라흐만은 1971년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선언했다. 파키스탄군이 라흐만을 체포하자 방글라데시인들은 독립군을 결성해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을 일으켜 서파키스탄인들을 공격했고 방글라데시 일대를 장악했으나 결국 파키스탄군에게 진압당하고 국경 지대로 밀려났다.

방글라데시로 들어온 파키스탄군은 방글라데시인을 무차별 학살했으며 방글라데시 측은 이 때 300만 명이 학살되었다고 주장한다.[11] 방글라데시 독립국이 인도 국경에서 게릴라투쟁을 함에 따라 파키스탄이 인도 영토의 독립군을 폭격하고, 벵골인들이 1,000만여 명이 인도로 피난을 오자 인도군이 참전해 2주일만에 파키스탄군을 무찌르고, 결국 1971년 방글라데시는 독립했다. [12]

그리고 방글라데시 초대 지도자로는 아와미 연맹의 무지부르 라흐만[13]이 되었으나 얼마 안가 방글라데시를 1당 독재 국가로 만들려 하다가 1975년 쿠데타로 피살되고, 지아우르 라흐만(জিয়াউর রহমান)이 정권을 장악한다. 그러나 1981년 지아우르 라흐만도 피살되었고 1982년 쿠데타가 일어난다. 이런 혼란 내내 반정부투쟁이 계속 일어났으며, 1990년 반정부 시위로 에르샤드 대통령이 사임하고 일단 민정이 들어섰다. 그러나 2006년 반정부 시위가 또 일어났고 사망자가 발생했다.

2013년 2월부터 독립전쟁중 파키스탄군에 협력했던 전쟁범죄자의 사형여부를 두고 하탈(Hartal: 남아시아에서 파업을 일컫는 말. 사람들이 차도를 점거하고 소리지르며 돌아다니며 도로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부수거나, 심하면 길가의 가게들의 유리창을 부수고 약탈한다)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2013년 6월까지 여러번의 하탈이 있었으며, 내년에 있는 선거까지 하탈이 지속될 전망이다.

5. 사회

콩고민주공화국, 소말리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이다.

한때는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말이 있었지만 90년대 당시 행복도 조사의 기준이 애매해서 생긴 문제로, UN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오히려 하위권에 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현지 중산층이나 교민에게 물어보면 저런 조사결과에 대해서 코웃음을 친다고. 그들은 행복지수가 아니라 체념지수가 높다는 게 맞는 표현이지요라고 한단다. NEF의 행복지수 조사에선 30에서 40위 정도로 평가받으며 삶의 만족도는 세계 104위라고 한다.

2010년 기준 방글라데시의 자살률은 무려 인구 10만명당 128.8명이라는 경악할 수치를 보여줬으며, OECD 1위고 국민들의 행복도가 낮은 국가 중 하나인 대한민국의 자살률(2012년 기준 28.1명)의 4~5배나 되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 자료 환산하면 대략 한 해에 20만명이 자살을 하는 셈이며 방글라데시가 얼마나 살기 힘든 국가인지를 말해준다.[14]

여기에 따르면, 11세의 아동도 일 최대 14시간에 달하는 중노동을 독성 물질에 노출되면서도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세계보건기구에서 1984년의 보팔1986년의 체르노빌보다도 심각한, 역사상 최대의 집단 중독(?)이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비소 중독으로 최대 7700만 명이 수년에서 수년의 수명 단축을 겪을지도 모르며 심각한 보건상의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빈자들에게 무담보 저이자 소액대출을 해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의 개념이 처음 나오기도 한 나라이기도 하다. 창시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그라민 은행 총재는 이러한 빈자 구제 극복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유누스 그라민 총재가 정치에 진출하려고 했다가 견제를 받아 은행조차 몰락하고 말았다.#

6. 문화


수도 다카에 있는 국회의사당(জাতীয় সংসদ ভবন)이 유명한 편. 루이스 칸이 설계한 것으로, 건물이 독특한 게 특징이다. 하지만 외국인은 출입불가.
외국인은 허가 없이 들어갈 수 없지만, http://www.parliament.gov.bd/ 에서 방문을 신청할 수 있다.

6.1. 스포츠

축구 인기가 높지만 자국 축구 실력은 세계적 약체이다. 자세한 건 방글라데시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

하지만 이런 실력과 달리 이 나라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극성스런 축구팬들로 알려져 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자국 팀도 아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졌다고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이니 말 다했다. 1994 미국 월드컵 당시 디에고 마라도나가 약물 검사에 걸려 월드컵 출전이 금지당하자 방글라데시 축구팬 수천여명이 피파 본부가 있는 스위스 대사관 앞으로 몰려들어서 돌을 내던지며 분노했었고 1998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 vs 아르헨티나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가 네덜란드에 패하자 아르헨티나 축구팀을 응원하던 한 방글라데시인이 자살했다는 뉴스가 해외 토픽으로 실리기도 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선 프랑스가 탈락하자 방글라데시에서 분노하면서 작은 폭동이 벌어졌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정전으로 월드컵 중계가 중단되자 다카 거리에서 수천여명이 폭동을 일으켜 수백여명이 다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인기와 달리 정작 실력은 떨어지는 축구와 달리 영연방 나라답게 크리켓에도 환장하는 나라이다. 정전이 자주 일어나지만 크리켓 월드컵 땐 정전이 없다고 한다. 정전이 나면 사람들이 국영전기관계자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웃 인도스리랑카, 파키스탄이 크리켓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과 달리 크리켓 월드컵 최고성적은 8강 토너먼트 진출이다. 그러나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크리켓으로 마침내 염원하던 금메달을 따냈다. 이는 방글라데시 역사상 첫 구기종목 국제대회 우승기록이라고 한다.

7. 산업

의류업, 그 중에서도 직물 가공업 '국부'(國富)로 불릴 정도로 2010년대 현재 방글라데시의 산업에서는 직물 가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하지만 그만큼 이면에 숨겨진 인권 유린과 노동 환경 문제도 큰데, 이런 문제가 2013년 4월 24일에 사상 최악의 건물 붕괴 사고라는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붕괴사고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에 드러나게 되었다.

8. 국기

국기가 일본 국기인 일장기와 바탕 색깔만 다르게 보이지만 빨간 원이 정 중앙에 놓인 일장기와 달리 약간 [15]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는 기가 바람에 날릴 때 중앙에 보이기 위해 기의 중심보다 깃대쪽으로 조금 물러나 있는 거라고.


(1971년부터 1972년까지 동파키스탄 독립전쟁 당시 쓰던 옛 국기.)
바탕의 초록색은 이슬람교의 신성한 전통색깔이자 방글라데시 청년들의 의기와 패기 그리고 벵골 지방의 푸른 초원과 지방을 상징하며 빨강의 원은 붉은 피로 독립을 쟁취하고 싸워 이겨낸 방글라데시 국민들의 희생정신을 나타낸다.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점이나 이 나라의 위치가 인도 반도 동남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보아 해가 뜨는 동쪽의 이슬람 국가라는 뜻도 있다. 원래 빨강 원에는 금색의 방글라데시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 무늬가 없어지면서 일장기와 비슷하게 된 것이었다. 절대로 과거 일제의 식민지가 아니다[16] 단, 이 국기가 만들어질 당시에 재임중이던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인 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의 장녀이자 방글라데시 10대 총리인 이크 하시나가 "아버지가 국기를 디자인할 때 일장기를 참고하였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9. 외교 관계

1947년에서 1971년까지 한 나라였던 파키스탄과는 사이가 나쁘다. 50년대, 60년대 동파키스탄 시절 정치, 경제 등 파키스탄의 모든 주도권을 서파키스탄이 모두 독점했고 철저히 동파키스탄을 소외시켰으며 심지어 , 소고기, 생선 등 식량자원들까지 수탈하는 등 경제적 식민지로 차별하기까지 했다.[17] 거기다 서파키스탄 본국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같은 이슬람이라지만 언어와 문화가 차이가 컸다. 결국 서파키스탄의 이러한 차별과 지배에 쌓이고 쌓이다 못해 독립 전쟁을 일으켜 파키스탄으로부터 1971년에 독립할 정도였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인도파키스탄에 비해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사이가 좋다고들 생각하는데, 이는 오판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에 비해 잘 알려지질 않아서 그렇지 사실 인도와 방글라데시도 인도와 파키스탄 못지 않게 앙숙이다.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방글라데시 독립전쟁)당시 파키스탄과 싸우고 있던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인도가 지원할 정도로 독립 초기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사이가 좋았으나, 인접한 이웃나라의 특성상 두 나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대립관계로 변질 되었다. 육지 영토와 국경 획정을 둘러싼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었고 갠지스 강의 먹는 물을 두고 물 분쟁도 벌어졌었다.

결국 1979년2001년에 양국군인들끼리 국경지역에서 무력충돌이 벌어져 전쟁 위기까지 고조되었다. 거기다가 종교문제로도 대립하고 있는데, 인도는 힌두교에서 신성시 여기는 를 이슬람교를 믿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인도에서 밀수, 도축하여 쇠고기를 즐겨먹는다며 방글라데시를 수시로 비난한다. 이에 방글라데시는 이슬람교에서 금하는 돼지고기를 즐기는 주제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쇠고기 먹는 거 인도는 비난할 자격이 없다며 맞대응한다. 방글라데시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다. 하지만 인도가 방글라데시 돼지를 수입해다 먹고 있는 건 아니잖아.

또한 이웃에 맞닿은 나라 미얀마와 영토 분쟁이 있다. 위에 지도를 봐도 미얀마 쪽에서 있는 작은 섬들이 방글라데시 영토로 나와있는데 이 섬들을 두고 해상 영토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막대한 자원 및 군부의 오랜 독재 정치로 장비면에선 상당한 수준을 자랑하는 미얀마가 더 유리해보이지만 미얀마 자체도 오랜 독재와 폐쇄 및 미국 및 강대국들이 방글라데시를 지지하고 사이나 나쁘긴 해도 일단 파키스탄 견제를 위하여 우방으로 남은 인도를 미얀마가 무시못하며 방글라데시에 대한 영향력을 위하여 중국도 현재 방글라데시와 갈등을 바라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 상황이다. 게다가 방글라데시 해군이 한국에서 방가반두같은 호위함을 들여오면서 미얀마 해군력에 꿀리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얀마로서도 내부 문제로 골머릴 앓는 와중에 깊게 갈등을 빚을 일은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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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자세한 내용은 http://www.0404.go.kr/country/mapView.do?menuNo=1050100&country_code=82 를 참조
  • [2] Gônoprojatontri Bangladesh
  • [3] 이는 2011년에 시행된 센서스의 통계치지만 이에 대해선 논쟁이 있으며 UN(2010)에서는 1억 4,869만 명, CIA(2011)에서는 1억 5,857만 명, OECD세계은행(2010)은 1억 6,000여만 명으로 추정하는 등 기관에 따라 인구 통계가 들쭉날쭉하다.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센서스의 인구 통계가 사용된다.
  • [4]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직접 작사, 작곡하였다고 한다.
  • [5] 이유는 방글라데시 국토 전체가 삼각주이며, 따라서 인구부양력이 높은 벼농사에 최적화되어있기 때문.
  • [6] 다만 '예측'이라는 특성상 신중한 입장을 취해야 하며 정확한 사실은 아닌데다가 출처에 따라 숫자가 크게 차이날 수 있음도 고려해야 한다.그럼 설마 2억 500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는 건가? 레알 흠좀무
  • [7] 매년 약 서울특별시 면적 정도가 물에 잠기는 셈이다. 작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작은 게 아니다!
  • [8] 그냥 분리된 게 아니라 비행기 타고 아주 오래 걸리는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있었다.
  • [9] 이 시위는 1952년 2월 21일에 일어났는데, 이날은 현재 방글라데시의 주요 국가 기념일 중 하나이자 유네스코에서 계 모어의 날로 기념하는 날이다.
  • [10] 방글라데시의 인구는 현재 1억 4,000만으로 1억 7,000만 파키스탄의 인구와 맞먹는다는걸 생각하자. 당시엔 방글라데시의 인구가 더 많았다.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려고
  • [11] 파키스탄 정부 측은 26,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제적으론 50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자릿수가 다 달라 그래도 학살이 아예 없다고 하진 않았다. 비슷한 국기를 쓰는 어느 섬나라처럼 무조건 부정하지 않네
  • [12] 묘하게 방글라데시가 독립하여 여기 살던 파키스탄 지지자들은 파키스탄에 가서 살려고 하니 거기서도 차별하는 통에 지금까지도 어렵게 살고 있다고 한다;;
  • [13] 무지부르 라흐만의 별명이 '벵골의 친구'라는 의미의 '봉고본두(বঙ্গবন্ধু)'인데 방글라데시 해군 주력함으로 한국에서 수입한 프리깃 방가반두 함의 함명도 여기서 온 것이다. 그래서 반 무지부르 파가 집권했을 때는 강제 퇴역을 당하거나 함명이 변경되는 등 우여곡절도 겪었다.
  • [14] 다만 이 조사는 정부가 발표한 공식조사가 아닌 시민단체의 비공식 조사이므로 수치를 100% 신뢰하기는 어렵다. 물론 저런 추정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이지만.
  • [15] 정확히는 원의 중심이 국기 정 중앙에서 왼쪽으로 국기 가로 길이의 1/20만큼
  • [16]팔라우의 국기와도 비슷한데, 색깔은 다르지만 원이 조금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까지 같다.
  • [17] 심지어 동파키스탄 사람들이 먹어야 할 식량까지도 수탈할 정도로 악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