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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의 묘

last modified: 2020-08-27 17:24:15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관련 논쟁
2.1. 해당 작품 옹호론
2.2. 해당 작품 비판론
3. 이야기거리


1. 개요

火垂るの墓 / Grave of the Fireflies

1967년에 출간된 노사카 아키유키의 단편 소설과 1988년 개봉된 故 타카하타 이사오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2008년 4월에는 실사 드라마가 제작되었다.

국내에 정식 소개되기 전 소규모 상영회에서는 '반딧불의 무덤'으로 번역되었다.

주인공 세이타, 세츠코 남매가 태평양 전쟁 중 겪는 피난생활을 그리고 있으며 전쟁에서 군인이었던 아빠를 잃고, 폭격에 엄마도 잃고 둘이서 고생하다가 사망한다.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반전 작품 같은 게 절대 아니다. 그런 메시지는 일절 실려 있지 않다." 고 했으나 반전 애니메이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서 어쩔 도리가 없다고 회고했다.

그는 오누이가 둘만의 가정생활을 이뤄내는 것에 성공하지만 주변 사람과의 공생을 거절하고 사회생활에 실패하는 모습이 현대에도 통한다고 해설하고, 고등학생과 20대의 젊은이들이 공감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초반, 2002년, 2003년, 2006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내용은 사실상 작가 본인의 자전 (自傳)으로, 기아로 여동생을 잃었던 체험이 바탕이 되었다. 그 덕에 원작은 당시 기성세대에 대한 냉소주의가 강하다.

노사카 아키유키는 고베 공습으로 양아버지 (어린 시절 부모의 별거 및 이혼으로 다른 집안에 입양되었다.)를 잃고, 피난을 갔던 후쿠이현에서 여동생을 영양실조로 잃었다. 이때 동생을 구하지 못한 속죄를 위해 소설을 쓴 것.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죽지만, 실제로 작가는 살아남아 방황하다가 친아버지가 다시 거두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 관련 논쟁

개봉 당시 한국에는 일본이 피해자 행세를 한다며 논란이 일었다. 1990년 9시 뉴스에서는 우익 애니메이션이라고 맹비난한 적도 있다.

이것은 작품이 자세한 서술을 최대한 피하고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시대 상황을 그려냈기 때문에 빚어진 오해다.

원작의 냉소적인 내용과 남매의 행적을 보면 변해버린 현실 (유복했던 집안 → 친척집, 전쟁 초기의 부유한 생활 → 전쟁 말기의 궁핍한 생활)에 타협하는 것을 거부하고 뛰쳐나갔다가, 결국 여동생을 잃고 자신도 죽은 것이다. 거기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다른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어떻게든 제정신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무적의 일본 함대"라는 주인공의 대사와 군가를 따라 부르는 장면도 논란이 되었는데, 사실 주인공 남매는 어른들의 각종 프로파간다의 영향을 받은 추축국의 아이였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일본군 해군의 순양함 (타카오급 중순양함) 함장이었다.

타카오급 중순양함 중 마야는 레이테 만 해전 중 1944년 10월 23일 미군 잠수함 데이스에게 어뢰 4발을 맞고 8분 만에 격침되었다. 이 사실은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에 남매는 아버지의 생사를 몰랐다. 다만 승무원 996명에서 336명이 전사했을 뿐, 나머지는 구조되었기에 일본군 함정 중에서는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1]

남매의 아버지가 고위 간부라는 설정도 해당 논쟁에 주된 요인 중 하나. 또 이러한 일들이 일본의 피해자 행세에 이용되거나 민간인들 개개인의 책임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작품과는 별개의 문제로 반딧불의 묘를 이용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일본의 매년 8월은 원폭 희생자를 추도하는 달 (히로시마 원폭 투하 8월 6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 8월 9일)이다. 일본의 8월 15일은 종전 기념일, 한국의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일본이 매년 8월 15일마다 반딧불의 묘를 방영하며 일본인이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헌법 9조의 회' 결성집회에서 애니메이션 팬들이 전쟁 홍보용 애니메이션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던 일화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작품이 반전 요소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고민했으며, 전쟁 개시 전부터 일본 국민들이 브레이크 없이 치달은 결과 가해자가 되었다고 말하며, 군국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평화헌법을 옹호하였다.


전쟁말기의 자국민의 비참한 체험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 근본적인 원인, 즉 그 이전에 타국으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와, 그것들이 타국민에게 안겨준 참상에 대해 확실하게 전달하고, 생각하게 할 수 있어야만이 비로소 <반전>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한 편의 영화로 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자국의 타국으로의 침략을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우며,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굉장히 힘들다. 그렇기에 진정한 <반전>은 영화에서보다, 교육 등 보다 이성적인 방법으로 끊임 없이 실천해야만 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신이 평소 해왔는데 그 내용도 첨가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할 정도. 해당 발언은 그런 영화를 만들기는 힘들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단 미화의 의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 코멘트에 따르면 본인의 입장에서도 반딧불의 묘를 불완전한 반전 영화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감독은, "아무리 전쟁으로 인해 비참한 꼴을 당하는 이야기를 그려도 전쟁을 억지하는 힘이 되지는 못한다. 정치가들은 전쟁을 시작할 때 그런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전쟁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면서." 라고 언급한 바 있다.

2.1. 해당 작품 옹호론

원작 소설을 기준으로 볼 때,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에는 작중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의 모습이 문학적으로 당시 일본 국민과 지배층의 모습을 은유하고 있다는 것도 있다.

사실 자세히 보면 주인공 남매의 모습이 별로 불쌍하지가 않다. 44년에 설탕 절임 복숭아를 먹었고, 폭격을 피하기 위해 시골로 내려가면서 바리바리 싸간 것이 버터, 치즈, 기모노, 피아노 등 당시 기준상 대단한 사치품들이었다.

주인공 남매가 겪은 고난과 빈궁은 엄밀히 말해 당시 일본인들이 겪었던 평균적인 상황과는 좀 다르다. 폭격을 피해 시골로 소개되어 내려간 후, 친척 아주머니에게 천대받기 싫다는 여동생 때문에, 아직 어린 오빠가 독립하겠다고 집을 뛰쳐나간 것.

이 경우 문제는, 남매의 가출은 곧 도나리구미를 비롯한 지역 조직을 중심으로 편성된 식량 배급 체계에서 이탈하는 것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부모가 남겨준 유산으로 암시장에서 식량을 사 와서 남매끼리 재미있게 살았지만, 돈이 떨어지고 전쟁의 격화로 암시장 자체가 붕괴하면서 더 이상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되어 굶어죽은 것이다.

결국 이는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오빠가 여동생의 투정을 적당히 달래지 못하고, 부화뇌동하여 친척집을 나간 것이 죽음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차대전 시작 이전에 일본이 다른 동양 국가들에 비해서 여유로운 상황이었고, 전쟁에 돌입한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세츠코는 일본 민중을, 세이타는 일본 지도부를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전후 일본이 겪은 고난은 결국 자업자득이라는 것을 은유하는 것이다. 또한 발간 당시 '전쟁은 국가지도층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고, 일본 민중은 오히려 지도층의 무모한 야욕에 희생되었을 뿐이다' 라는 역사관이 유행하던 것이 비추어 생각한다면 결국 지배층은 어떤 식으로든 다수 대중의 요구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고, 전후의 참상은 결국 일본 민중들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책임의 대가를 스스로 치룬 것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무적의 일본 함대 운운하는 대사 역시 세이타의 시점에 가깝게 진행되는 이야기 특성상 주인공 입장에서는 아주 당연한 대사고, 더 나아가 이것이 주인공 (그리고 당시의 일본 대중)의 무지를 상징하는 대사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점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불쌍한 애들을 괴롭히는 악마로 묘사된 친척 아주머니 역시,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그리 나쁜 인물이 아니다. 어머니의 기모노를 대신 내다 팔아준다고 하더니 자기들에게는 고작 쌀 한 단지나 주고 말았다고 남매가 서러워하는 부분도, 사실 암시장 거래의 위험성이나 아이들을 부양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적절한 분배 비율에 대한 이견의 가능성이 있지만 기모노와 바꿔온 쌀 중에서 자기 가족 몫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남들은 다 농사일이나 대피훈련 등으로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방에서 피아노 치는 여동생과, (폭격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방 안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안 하는 오빠를 좋지 않은 눈으로 보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전쟁에 돌입한 일본의 태도가 마치 어린애와 다를 바 없었다는 비판으로도 해석 가능한 셈.

작중 묘사에서 그러한 의도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는 의견이 있으나, 그런 의도가 드러난 부분이 있다. 일단 남매가 부모님 돈으로 밥을 사먹자 섭섭하게 생각하는 장면이 나오며, 집을 떠날 때는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다. 또한 주인공 부모의 돈을 약탈하는 장면도 없다. 작중에선 물가가 극단적으로 올라가는데, 주인공은 물건을 한번에 사지 않고 천천히 쓰는 장면이 나온다. 부모의 돈이 엄청났다는 증거인데, 이걸 뺏지 않은 것만 해도 과연 악인인지 의문이다.

이 특징은 원작에서 더욱 드러난다. 밥은 커녕 죽도 먹기 힘든 상황에 설탕 절임 복숭아 타령을 하거나, 피난가면서 피아노까지 짊어지고 가서 남들은 다 바쁘고 힘들어 죽겠는데 피아노를 치고 있거나, 탐욕스러운 악마처럼 묘사되는 친척 아줌마가 정작 아이들이 독립해 나가겠다고 하는 상황에서는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재산을 탐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이타와 세츠코는 희생자인 동시에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고, 무조건적인 동정의 대상이 되기에는 석연찮은 인물임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남매가 당시 일본 사회에서 일종의 특권계급이던 해군 고급장교의 자식들로써, 남보다 훨씬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는 점은 작중에서 명확히 묘사된다.

이런 해석은 반딧불의 묘라는 작품을 최대한 우호적으로 해석한 것으로써, 이 작품을 일본인의 일방적인 피해자 가장으로 보는 관점 못지 않게 의심받을 여지가 큰 것은 사실이다.

다만, 세이타-세츠코 남매의 입장이나 행동에 대한 작중의 서술은 두 아이를 '죄 없고 가련한 희생양'으로 보기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서술에는 작가의 의도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2. 해당 작품 비판론

앞선 '관련 논쟁'에 쓰인 내용들은 역사 및 철학 연구를 통해 반박된 내용들이다.

첫째, 당시 일본인들이 과연 피지배 민중으로써 본인의 의지와는 반하여 타국민에 대한 수탈과 착취를 자행했는가.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홉스봄은 심지어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계급 역시도 수탈한 잉여가치를 나눠 갖는 노동귀족의 성격을 띤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것이 의식적이었든 의식적이지 않았든간에 '민중'이란 이름으로 전범국가의 국민을 순수한 피해자로 볼 수 없다.

둘째, 국가를 비롯 제삼자가 명령한 가해는 책임이 사라지는가? 혹은 이데올로기에 '선동'당하여 소극적으로 동조한 경우에는 개인의 책임을 물을 수 없는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 다양한 사례들에 대한 국내외의 연구들을 통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물론, 심지어는 명령을 이행한 군인에게도 분명한 책임이 있다는 게 다수설이다.

이는 한편으로 책임과 권력은 동시에 존재(해야)하기 때문이며, 개인에게는 어떠한 책임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개인에게 체제 및 국가에 대한 어떠한 권한이나 자격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건 좌파적인 자세라기보다는 차라리 전체주의에 가까운 주장이며, 구조에만 심각하게 매몰된 시각이다.

실제로 제국주의 국가에서는 그렇지 않았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끝까지 일본 제국주의와 전쟁을 반대한 당시 일본의 공산주의자, 평화주의자 등 양심을 지킨 인물들에 대한 모독이다. 그렇다면 다시 여전히 '일부'는 그렇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제국주의를 몰역사화하여 미시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에만 지탱 가능한 시각으로, 이 때 이 영화에 대해서 어떤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갖는 것은 논쟁으로 이어지기 어려우며, 미시적인 수준의 연구들이 그러하듯 다양한 종류의 해석 수준에서 그치는 정도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셋째, 영화를 포함한 매체에서 감독의 의도를 가지고 그 효과를 재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영화는 감상주의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가해사실을 망각하게 할 우려가 크며, 이는 실제로 원폭과 관련해서 각종 기념사업을 통해 일본 정부가 항상적으로 퍼뜨려온 분위기다. 좌파인 감독이 2차대전을 다룬 영화가 일으킬 이러한 효과에 무지했다면, 그 무지 역시 문제가 된다.

넷째, 한국인이 한국정부의 침략과 수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만큼 이 영화를 통해 일본인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심각한 논점 일탈이다.

앞서 논쟁 부분을 기술한 이가 지적하듯 다양한 학살과 전쟁 가해 사실이 있다면, 그 지점들에는 충분한 비판이 항상 가해져야 하며, 작품 제작자와 수용자 모두의 성찰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모든 영화가 가해 사실에 대해서 반드시 말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주장은, 이 영화가 갖는 스탠스와 일본 제국주의와 원자폭탄, 그리고 기존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는 특수한 사실들과의 관계 속에서 기각된다.

다섯째, 2차 대전이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결이 아니"인 데다, 일본인이 아시아인이어서 원자폭탄의 피해를 본 사실도 존재하며, 모두가 인종차별주의와 제국주의의 희생자이기도 하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이 주장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흐리려는 시도는 결국 가해자의 주장에 복무할 것이다.

세계 각지의 과거사 관련 연구들은 가해사실에 대한 물타기와 침묵이 가해 당사자와 지배세력에게 유리한 정치적 상황을 재생산해내고 있음을 보인다. 따라서 대중이 보이는 이 영화에 대한 반감은 그 격렬하기가 어느 정도이건간 단순한 비난이기 이전에, 일본과 한국을 둘러싼 정치상황에 대한 우려에 가깝다.

3. 이야기거리

작품의 배경이 된 도시는 고베. 애니메이션 마지막에 남매가 내려다 보는 도시도 80년대 당시의 고베다. 세이타가 아사한 곳은 고베의 산노미야역. 작중 초반의 공습 장면은 고베 공습 중 피해가 컸던 1945년 3월 17일 공습을 묘사한 것이다.

제작 스탭 중 안노 히데아키가 있었는데, 전함의 원화를 자신에게 맡겼을 때 신이 나서 극사실주의로 전함을 그렸지만 정작 감독은 실루엣으로 처리했다. 스즈키 프로듀서와의 대담에서 반딧불의 묘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있다.

스즈키 토시오 (이하 스즈키): 그리고나서, 반딧불의 묘 때에 다시 나타났었지?
안노 히데아키(이하 안노) : 그렇죠. 취직활동이죠. 일거리가 없어서요. 미야상한테가서 뭐 일거리 없습니까 물어보니, 토토로의 오프닝을 하던지, 타카하타상 쪽의 뭐랄까 전함 그릴 사람이 없다는데, 그쪽을 하든지 어디할래? 그래서 미야상하고는 전에 (같이) 해봐서 타카하타상하고 일을 해보고 싶었죠.
스즈키 : 그래. 그랬지.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전함에 일루미네이션 (여기서 웃음 터짐)하고 불꽃.
안노 : 네. 일루미네이션과 불꽃입니다. 실은 전함이 아니라 순양함 (巡洋艦)입니다. 전함이 아니라.
스즈키 : 그래서 그 다음엔가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에, "두 사람에 관해서는 잘 알고있으니까 "라고 말하던데...
안노 : 한번 같이 일해 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략 압니다.

작가의 딸이 학교에서 받은 과제 중에서 "반딧불의 묘 작가의 당시 심경에 대해서 제출하라." 라는 내용이 있어서 그걸 아버지에게 묻자, 아키유키는 "음, 마감에 치여서 필사적이었다." 라고 말했는데 그걸 그대로 제출한 딸이 낙제점을 받았다는 일화가 있었다.

이 일화는 예술가의 작품 제작 동기를 왜곡해서 해석하는 감상자와 평론가 등에 의해, 정형화된 감상방법 외에는 인정하지 않는 경직된 교육방법에 대한 비판으로 자주 쓰인다.

일본에서 첫 개봉시 같은 제작사의 이웃집 토토로와 동시상영 되었다. 이웃집 토토로를 먼저 상영하고 반딧불의 묘를 뒤에 상영해,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훈훈했던 관객들이 뒤에 나온 반딧불의 묘 때문에 순식간에 우울해져 이웃집 토토로의 이미지가 꽤 안 좋아진 일이 있었다. 보다보면 은근히 토토로와 비슷한 구도의 컷이 나오며, 토토로와 대치되는 형태로 사용되는 이미지도 나오며(우산, 조력자)서사 구조도 대조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원방송을 통해 더빙 방영 했다. 세이타는 故 김일, 세츠코는 김서영.

스웨덴의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인 아치 에너미의 곡중 The Day You Died는 이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구 일본군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던 드롭스 사탕이 등장하는데, 작중에 등장한 모델을 복각한 상품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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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시 일본해군이 보유한 조약형 순양함들은 타국해군의 동종함은 두 개를 가진 선체 종격벽을, 중심선에서 하나만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남은 중량을 공격력에다 투자했는데, 덕분에 어뢰피격으로 인한 침수가 일어날 경우 급격한 침수속도를 선체가 견디지 못하고 타국 해군의 동종함보다 훨씬 빠르게 전복했다.